크루즈산업 개척자, 백현 롯데관광 대표
크루즈산업 개척자, 백현 롯데관광 대표
2010년 국내에 크루즈관광 상품을 처음 도입한 백현 롯데관광개발 대표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단단해졌다. 그는 “아이러니컬하게도 크루즈 관광객이 줄어든 지금이 콘텐트 개발과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낼 적기”라고 말했다. 백현(55) 롯데관광개발 대표가 크루즈 관광산업에 꽂힌 것은 2008년 그리스 산토리니 섬을 방문하면서다. 산토리니는 면적이 73㎢로 울릉도 크기만 했고 당시 인구 또한 1만 명이 조금 넘어 얼추 비슷했다. 하지만 연간 관광객 수는 울릉도 50만 명의 50배가 넘는 2500만 명에 달했다. ‘이 조그만 섬에 어떻게 많은 관광객이 모일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정박해 있는 거대한 크루즈를 보곤 머리가 번쩍 깨었다고 한다. 3면이 바다인 데다가 아시아의 거대 시장인 중국과 일본에 인접해 있는 우리나라에도 크루즈관광 상품을 개발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이후 롯데관광개발은 국내 크루즈관광 산업을 개척해왔다. 2010년 코스타 클래시카 호를 전세로 빌려 중국~한국~일본 코스에 첫 출항한 이후 올해까지 8년 연속 러시아를 포함한 환동해 노선에 전세 크루즈를 띄우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부산·속초를 모항으로 출발한다. 유럽 리버 크루즈, 중국 장강삼협 크루즈, 알래스카 크루즈, 동남아 크루즈 등 전 세계의 절경을 찾아가는 해외 크루즈관광 상품도 매년 선보인다. 지난 9월 서울 광화문 롯데관광개발 본사에서 만난 백현 대표는 “크루즈 상품을 통해 회사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인 것, 우리가 외국 선사를 유치하자 이를 시발점으로 정부가 크루즈 산업 육성을 시작하게 된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며 “관광산업에 있어 아시아 크루즈 시장이 향후 새로운 가치 창출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 대표는 한국 크루즈관광 산업의 개척자로 불린다. 그는 크루즈라는 개념조차 희박했던 2010년 처음으로 코스타에서 5만3000t급 클래시카 호를 차터(전세 계약)해 상하이와 일본, 부산을 경유하는 상품을 선보였다. 차터는 운영리스의 일종으로, 주로 선박이나 항공기 등을 임대하며 중도해약이 가능하다. 당시 특정 기업과 단체에서 행사를 위해 배를 빌리는 경우는 있었지만 오로지 일반 관광객을 위한 전세선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었다.
백 대표는 “크루즈관광 상품은 단가가 높기 때문에 어느 나라나 크루즈 분야 1등 회사가 그 나라의 관광업계 1등 브랜드가 된다”며 “우리가 크루즈 사업을 시작한 이유이며, 또 크루즈 산업을 키워야만 인바운드 관광을 크게 성장시킬 수 있을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이후 중국과 일본의 관광회사들이 차터 방식을 벤치마킹하면서 동아시아 지역 크루즈 수요가 커졌다. 롯데관광은 올해로 8년 연속 코스타 크루즈 전세선을 운영하고 있다.
그렇다고 ‘꽃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관광업은 경제 상황과 외부 요인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업종.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2014년 세월호 사고, 2015년 메르스 사태라는 암초를 만났다. 게다가 크루즈 선을 정박시킬 항구 등 제반 시설도 턱없이 부족했다. 급기야 2012년에는 길이 230m, 5만3000t급 크루즈가 인천항에 들어오다가 측면이 찢어지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7만6000t급 크루즈를 인천항에 대기 위해 민자사업자·국방부·법무부·국정원 등 7군데 관계 기관을 찾아다니며 허가를 받아야 했다.
이후 백 대표의 목표는 크루즈 인프라를 갖추는 것으로 바뀌었다. 청와대와 국회에서 크루즈 산업의 중요성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인천·제주·속초 등을 뛰어다니며 공무원과 지역 단체에 크루즈항 건설을 호소했다. 회사 내에선 “적자투성이 크루즈관광 사업을 접자”는 목소리도 높았지만 김기병 롯데관광개발 회장의 지원을 받은 백 대표는 오히려 항차 수를 늘리며 강력히 밀어붙였다. 그 결과 롯데관광의 크루즈관광 분야는 지난해부터 흑자로 전환했다. 백 대표는 “크루즈 상품은 일찌감치 예약을 받는데 우리를 믿고 여행을 기다린 고객들의 신뢰를 저버릴 수 없었다”며 “덕분에 크루즈 단골손님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롯데관광은 올해 단독으로 운항하는 7만5000t급 크기의 코스타 빅토리아 크루즈를 이용해 상하이~속초, 속초~러시아~일본~속초 코스 등 전세선을 3항차 운영했다. 내년 5월엔 인천~일본~대만~부산 노선과 부산~러시아~일본~부산 노선 등에 11만t급 코스타 세레나호 크루즈를 운영한다. 백 대표는 “내년엔 한국과 대만을 잇는 신규 항로를 새롭게 소개할 수 있게 됐다”며 “끊임없는 신규 항로 개척을 통해 우리나라가 동북아 크루즈 시장의 주요 노선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백 대표는 “최근 사드 여파 등으로 관광객이 줄었지만 오히려 여행사·면세점·지자체가 머리를 맞대고 국내 관광프로그램을 제대로 점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인에 집중된 관광객의 다양화, 승선 인원의 20%에 달하는 크루즈 승무원에 대한 서비스 강화, 하선·승선 등 수속 시간 단축, 저가 덤핑 여행사에 대한 단속 강화 등을 꼽았다. 그는 “인프라는 해수부, 콘텐트는 문광부에 속한 산업이다 보니 교통정리가 잘 안 된다. 총리실 산하에 헤드테이블을 둔 일본처럼 담당 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 대표는 대학 졸업 후 종합상사에서 무역 일을 하다가 유학 후 관광산업에 뛰어들었다. 2015년 3월 롯데관광개발 대표로 취임했다. 그는 “미래학자들은 ‘가능성 있는 3대 산업’으로 텔레커뮤니케이션, 자동차, 투어리즘을 꼽는다”며 “투어리즘은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크고 국가 브랜드를 높인다. 관광산업을 주목한 이유”라고 말했다.
산업계에서는 국적 크루즈선사를 통한 모항 육성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백 대표는 “일본 시장은 아웃바운드 크루즈 관광객이 연간 40만 명, 호주는 100만 명이지만 우리는 5만 명에 불과하다. 이 숫자로는 국적 선사가 운영될 수 없다”며 “내수가 최소한 10만 이상이 되어야 국적 선사도 생기고 모항으로서의 가능성이 생긴다”고 말했다. 결국 인바운드를 키우려면 아웃바운드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백 대표는 “연안 크루즈 사업을 먼저 시도하자”고 강조한다. 그는 “2만t급 크루즈로 속초에서 출발해 울릉도~일본 대마도~부산~제주~여수~목포~인천을 오가는 연안 프로그램을 만들면 내수와 외수를 모두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커지면 국적 선사가 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거리 항해에 나서기엔 초기 투자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연안 크루즈, 플라잉 크루즈 등을 개발해 외국에서 비행기 타고 와서 연안 크루즈를 즐기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백 대표는 다음 목표로 북한 원산항을 내다보고 있다. 러시아를 잇는 속초항 루트는 그런 목표까지 내다보고 세운 계획이다. 그는 “만약 강원도 속초를 출발해서 북한 원산항,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일본 홋카이도를 오가는 크루즈 여정을 만들 수 있다면 동해는 카리브해나 지중해 못지않은 세계적인 크루즈 시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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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롯데관광개발은 국내 크루즈관광 산업을 개척해왔다. 2010년 코스타 클래시카 호를 전세로 빌려 중국~한국~일본 코스에 첫 출항한 이후 올해까지 8년 연속 러시아를 포함한 환동해 노선에 전세 크루즈를 띄우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부산·속초를 모항으로 출발한다. 유럽 리버 크루즈, 중국 장강삼협 크루즈, 알래스카 크루즈, 동남아 크루즈 등 전 세계의 절경을 찾아가는 해외 크루즈관광 상품도 매년 선보인다. 지난 9월 서울 광화문 롯데관광개발 본사에서 만난 백현 대표는 “크루즈 상품을 통해 회사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인 것, 우리가 외국 선사를 유치하자 이를 시발점으로 정부가 크루즈 산업 육성을 시작하게 된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며 “관광산업에 있어 아시아 크루즈 시장이 향후 새로운 가치 창출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차터 방식’ 개발해 크루즈 도입
백 대표는 “크루즈관광 상품은 단가가 높기 때문에 어느 나라나 크루즈 분야 1등 회사가 그 나라의 관광업계 1등 브랜드가 된다”며 “우리가 크루즈 사업을 시작한 이유이며, 또 크루즈 산업을 키워야만 인바운드 관광을 크게 성장시킬 수 있을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이후 중국과 일본의 관광회사들이 차터 방식을 벤치마킹하면서 동아시아 지역 크루즈 수요가 커졌다. 롯데관광은 올해로 8년 연속 코스타 크루즈 전세선을 운영하고 있다.
그렇다고 ‘꽃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관광업은 경제 상황과 외부 요인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업종.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2014년 세월호 사고, 2015년 메르스 사태라는 암초를 만났다. 게다가 크루즈 선을 정박시킬 항구 등 제반 시설도 턱없이 부족했다. 급기야 2012년에는 길이 230m, 5만3000t급 크루즈가 인천항에 들어오다가 측면이 찢어지는 사고까지 발생했다. 7만6000t급 크루즈를 인천항에 대기 위해 민자사업자·국방부·법무부·국정원 등 7군데 관계 기관을 찾아다니며 허가를 받아야 했다.
이후 백 대표의 목표는 크루즈 인프라를 갖추는 것으로 바뀌었다. 청와대와 국회에서 크루즈 산업의 중요성에 대해 브리핑을 하고, 인천·제주·속초 등을 뛰어다니며 공무원과 지역 단체에 크루즈항 건설을 호소했다. 회사 내에선 “적자투성이 크루즈관광 사업을 접자”는 목소리도 높았지만 김기병 롯데관광개발 회장의 지원을 받은 백 대표는 오히려 항차 수를 늘리며 강력히 밀어붙였다. 그 결과 롯데관광의 크루즈관광 분야는 지난해부터 흑자로 전환했다. 백 대표는 “크루즈 상품은 일찌감치 예약을 받는데 우리를 믿고 여행을 기다린 고객들의 신뢰를 저버릴 수 없었다”며 “덕분에 크루즈 단골손님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롯데관광은 올해 단독으로 운항하는 7만5000t급 크기의 코스타 빅토리아 크루즈를 이용해 상하이~속초, 속초~러시아~일본~속초 코스 등 전세선을 3항차 운영했다. 내년 5월엔 인천~일본~대만~부산 노선과 부산~러시아~일본~부산 노선 등에 11만t급 코스타 세레나호 크루즈를 운영한다. 백 대표는 “내년엔 한국과 대만을 잇는 신규 항로를 새롭게 소개할 수 있게 됐다”며 “끊임없는 신규 항로 개척을 통해 우리나라가 동북아 크루즈 시장의 주요 노선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백 대표는 “최근 사드 여파 등으로 관광객이 줄었지만 오히려 여행사·면세점·지자체가 머리를 맞대고 국내 관광프로그램을 제대로 점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인에 집중된 관광객의 다양화, 승선 인원의 20%에 달하는 크루즈 승무원에 대한 서비스 강화, 하선·승선 등 수속 시간 단축, 저가 덤핑 여행사에 대한 단속 강화 등을 꼽았다. 그는 “인프라는 해수부, 콘텐트는 문광부에 속한 산업이다 보니 교통정리가 잘 안 된다. 총리실 산하에 헤드테이블을 둔 일본처럼 담당 부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만t급 연안 크루즈로 내수·외래 모두 잡자
산업계에서는 국적 크루즈선사를 통한 모항 육성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백 대표는 “일본 시장은 아웃바운드 크루즈 관광객이 연간 40만 명, 호주는 100만 명이지만 우리는 5만 명에 불과하다. 이 숫자로는 국적 선사가 운영될 수 없다”며 “내수가 최소한 10만 이상이 되어야 국적 선사도 생기고 모항으로서의 가능성이 생긴다”고 말했다. 결국 인바운드를 키우려면 아웃바운드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백 대표는 “연안 크루즈 사업을 먼저 시도하자”고 강조한다. 그는 “2만t급 크루즈로 속초에서 출발해 울릉도~일본 대마도~부산~제주~여수~목포~인천을 오가는 연안 프로그램을 만들면 내수와 외수를 모두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커지면 국적 선사가 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거리 항해에 나서기엔 초기 투자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연안 크루즈, 플라잉 크루즈 등을 개발해 외국에서 비행기 타고 와서 연안 크루즈를 즐기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백 대표는 다음 목표로 북한 원산항을 내다보고 있다. 러시아를 잇는 속초항 루트는 그런 목표까지 내다보고 세운 계획이다. 그는 “만약 강원도 속초를 출발해서 북한 원산항,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일본 홋카이도를 오가는 크루즈 여정을 만들 수 있다면 동해는 카리브해나 지중해 못지않은 세계적인 크루즈 시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조득진 기자 chodj21@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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