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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정책으로 읽는 2017년 일본 총선] 원전 재가동 추진한 아베 정권 탄력 받아

[원전정책으로 읽는 2017년 일본 총선] 원전 재가동 추진한 아베 정권 탄력 받아

야당의 탈원전 노선에 압승...야권 분열로 자민당 어부지리 얻을 수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0월 22일 총선 후 당 본부에 마련된 개표 상황실에서 방송사들과 인터뷰하며 활짝 웃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10월 22일 치러진 일본 총선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이끄는 자유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아베의 자민당은 465석의 중의원 의석 가운데 284석을 얻었다.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대표가 이끄는 신당 입헌민주당은 55석을 얻어 제1야당이 됐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가 세운 신당 ‘희망의 당’은 50석을 얻어 뒤를 이었다.

자민당의 의석 획득은 지난 9월 중의원을 해산하기 직전과 같다. 지난 총선에서 자민당은 291석을 얻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감소해 284석을 유지했다. 아베는 이번 총선에서 제자리걸음을 한 셈이다. 하지만 국회 해산 직전 아베가 처했던 위기와 비교하면 상당히 선전한 결과다. 중의원 해산 직전 아베는 자신과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의 사학스캔들로 지지율이 폭락한 상태였다. 아베의 정치적 몰락을 예견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아베는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따른 보수층 결집을 바탕으로 국회 의석을 지켰다. 야마구치 나츠오(山口那津男) 대표가 이끄는 연립여당 공명당이 획득한 29석을 합치면 연립여당의 의석은 313석으로 개헌안 발의가 가능한 3분의 2 의석인 310석을 넘었다. 공명당은 지난 선거에서 35석을 얻었으며 국회 해산 당시 34석을 보유했으나 이번 선거에서 5석이 줄었다. 그럼에도 아베는 자민당 의석을 지키고 연립여당을 합쳐 개헌안 발의가 가능한 의석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자신을 공격해온 야당들의 허를 찌르며 중의원 해산카드라는 극약의 승부수를 기습적으로 던진 아베의 정치적인 승리로 평가된다.
 아베의 중의원 해산 승부수 적중
지난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6주기를 맞아 도쿄 국회의사당 앞에서 방독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원전 재가동 정책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이렇게 총선에서 압승해 ‘정치 승부사’로 평가를 받으면서 아베의 인기도 반등했다. 아베 내각의 지지율이 총선 압승 이후 크게 뛰었다. 요미우리신문이 10월 23~24일 실시해 25일자에 게재한 유권자 대상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52%로 과반수를 기록했다. 10월 7~8일 조사 때보다 11%포인트나 뛰어오른 수치다.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개각 직후인 9월 8~10일 조사에서 50%를 기록한 이후 계속 내리막이었지만 40여일 만에 50%대를 회복했다. 집권 자민당에 대한 지지율도 43%를 기록했다. 이전 조사 때의 33%보다 10%포인트가 늘어난 것이다.

주목할 점은 이번 총선을 계기로 일본의 원전 재가동 정책이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는 점이다. 이번 총선은 어떤 의미에서 원전 재가동과 탈원전 간의 대결이었다. 원전 재가동은 아베 정권의 정책이다. 이에 비해 리버럴(자유주의 세력)의 대표인 입헌민주당은 물론 보수정당인 희망의 당도 이와 반대로 탈원전을 내세웠다. 원전 재가동을 둘러싼 일본의 논쟁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하자 당시 민주당의 간 나오토 총리는 전국의 모든 원전의 가동을 중단했다. 여기에 더해 2030년까지 ‘원전 가동 제로(0)’ 정책을 펼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탈원전을 추진한 민주당은 정권을 잃고 야당이 됐고, 2012년 말 출범한 아베 정부는 이를 뒤집었다. 아베 정부는 2030년까지 에너지의 20~22%를 원전에서 얻겠다는 계획을 추진해왔다.

아베 정부의 판단의 배경에는 경제성과 전기 공급의 안정화가 자리잡고 있다. 일본에선 원전 가동을 중지하면서 이를 대체하기 위해 석유를 사용하는 석유화력발전과 액화천연가스(LNG)를 쓰는 LNG 발전을 늘렸다. 석유화력발전은 환경 논란을 일으켰고 LNG발전은 비용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특히 환경오염이 적은 LNG 수입이 급속도로 늘면서 무역수지에 부담을 줬다. 2011년 31년 만에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선 가장 큰 이유로 과도한 LNG 수입이 꼽혔다. 일본은 이후 5년 연속 무역수지 적자를 겪었다. 올해 들어 주요 LNG 생산국인 카타르가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갈등을 벌이면서 중동의 지정학적 위험도 부각됐다. 불안한 지역에 에너지를 의존하는 일은 이중으로 불안한 일이다. 인도네시아 등으로 수입선을 다변화한다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다. 가장 좋은 것은 산유국에 의존하지 않고도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일이다. 원전보다 더 나은 대안을 찾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석유화력발전은 원전은 물론 석탄화력발전에 비해 발전단가가 높아 전기료 인상 부담이 우려됐다. 전기료가 높아지면 정치적으로 불리하다. 당장 자신의 전기료가 늘어나는 유권자의 표가 달아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경제에도 부담을 준다. 경제 발전은 곧 정권의 성적표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 원전 가동을 중단하면서 일본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당장 에너지 자급률이 2010년 19%에서 2015년 6%로 하락했다. 전기요금도 실제로 올랐다. 동일본 대지진 직전과 비교해서 가정용은 20%, 산업용은 30% 올랐다. 국민 1인당 부담액은 연 1만엔 정도 늘었다. 만만치 않은 액수다. 집권당으로선 원전을 가동할 이유가 충분한 셈이다. 그리고 후쿠시마 사고는 200년 만에 한 번 생길까 말까하는 엄청난 자연재해일 뿐 원자력 자체의 문제는 아니라는 시각도 작용했다. 후쿠시마 원전이 지진이나 외부 충격으로 문제가 된 게 아니라는 점도 감안됐다. 지진해일로 전기공급 장치가 침수돼 원자로를 식히는 냉각 기능을 상실하면서 노심이 과열돼 녹아버리는 바람에 방사선 누출 사고가 발생했다는 과학적인 설명이 일본 정치인을 설득했다.

이와 달리 입헌민주당은 과거 민주당 집권 시기의 정책을 계속 추구한다. 일본 리버럴의 대표라는 점도 작용했다. 특이한 것은 희망의 당이다. 여기에는 대표인 고이케 도쿄도 지사와 고이즈미 전 총리와의 관계가 작용했다. 고이즈미 당시 각료에 임명됐던 고이케는 그를 정치적 스승으로 삼고 있다. 그런 고이즈미는 동일본 대지진 이후 보수 정치인으로선 특이하게 탈원전을 주장하고 다닌다. 주변에 원군도 별로 없는 독불장군이다. 오히려 리버럴 쪽에서 그의 탈원전을 지지했다. 그런 상황에서 ‘정치적인 자식’인 고이케가 유망 정치인으로 부상하자 고이즈미는 입김을 불어넣었다. 고이케는 정치적 스승을 따라 리버럴의 정책인 탈원전 정책을 받아들였다.
 LNG 수입 늘면서 무역수지 적자
탈원전을 내세운 에다노 유키오 대표가 이끄는 신당 입헌민주당은 55석을 얻어 제1야당이 됐다. / 사진:뉴시스
이 때문에 일부 보수신문 독자 투고란에 ‘고이케의 탈원전 정책은 당의 정체성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는 글이 등장해도 고이케는 스승을 충실하게 따랐다. 그런 고이케는 이번 총선에서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앞으로 개헌 등에서 자민당을 지원하는 원군으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 그런 과정에서 탈원전을 둘러싼 당내 정체성 갈등 등으로 일부 의원이 자민당을 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본 정치에서 때 아닌 원전 재가동과 탈원전이 주요 현안으로 떠오른 이유다.

이번 총선에서 아베가 승리하면서 일본의 원전 재가동은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이와 함께 아베는 외조부부터 시작된 아베가문의 3대 숙원 작업인 개헌에 가속도를 붙일 전망이다. 아베는 이번 총선에서 ‘일본을 끝까지 지키겠다’를 선거구호로 내세웠다. 이른바 안보선거이자 북풍몰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최대한 정치에 활용해 성공했다. 이를 바탕으로 자위대를 합법화하고 개헌을 더욱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 자민당 선거 공약에도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헌법에 자위대를 명기하는 개헌을 하고 도쿄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에는 새 헌법을 사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전쟁 포기를 명문화한 평화헌법 9조를 폐기하거나 해석을 달리해 전쟁 가능한 ‘보통 국가 일본’을 헌법으로 분명히 하겠다는 것이다. 자민당과 공명당의 연립여당이 이번 총선에서 313석을 확보해 개헌 발의에 필요한 3분의 2(310석) 이상의 의석을 다시 확보한 것은 의미가 크다. 게다가 자민당은 단독으로 과반수를 차지해 국회 주도권을 다시 쥐게 됐다. 여기에 개헌에 찬성하는 희망의 당이 가세하면 개헌에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자민당 일각에서는 11월 임시 국회를 열어 당 개헌안을 제출한 다음 내년 정기국회에서 개헌안을 발의하자는 초고속 개헌 추진 시나리오도 나오고 있다.
 ‘전쟁 가능한’ 일본으로 개헌 탄력
하지만 일본 헌법상 국회 발의는 개헌의 시작일 뿐이다. 일본은 평화헙법을 지키기 위해 개헌 요건을 까다롭게 정했기 때문이다. 국회에서 개헌을 발의해도 최종 관문인 국민투표를 통과해야 한다. 특히 일본 국민의 상당수가 자민당을 지지했지만 개헌에 반대하는 비율이 절반을 넘는다. 아베와 자민당이 개헌을 하려면 여론을 돌려세우는 힘겨운 작업을 거쳐야 한다. 보수정권에 나라는 맡겨도 개헌까지는 손을 들어주지 않겠다는 국민이 많다. 헌법에 자위대 존재를 명기해 자위대를 헌법상 군대로 만들려는 시도에 대해 찬성 35%, 반대 42%로 부정적인 여론이 많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다만 이런 과정을 진행하면서 아베는 더욱 힘에 의한 평화를 유지하려고 들 가능성이 크다. 가뜩이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힘의 중국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 주석은 10월 열린 19차 중국공산당 당대회에서 관례와 달리 후계자를 지명하지 않고 자기 측 인사로 공산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을 구성하면서 권력을 강화했다. 아베도 미국과의 공조를 강화하면서 동북아에서 강경 외교를 계속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과 북한을 압박하면서 동북아에서 위상을 높이려고 지속적으로 시도할 전망이다. 이를 위해 미국과 더욱 밀착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외교적 ‘이간질’로 미국과 한국 관계를 소원하게 하면서 일본이 동북아에서 미국의 대리인이 되기를 자처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이번 총선 승리로 국내 지지자를 결집하기 위해 ‘한국 때리기’까지 동원할 가능성은 어느 정도 줄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총선 승리로 아베는 내년 초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다시 총재에 선출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럴 경우 아베는 2021년까지 집권할 수 있다. 전후 최장수 총리가 되는 것도 시간문제다. 더 이상 무리할 필요는 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아베 총리의 재집권으로 보수화 성향이 짙어질 것은 자명하다. 아베 총리의 ‘가업’이자 ‘본질’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위안부 문제나 독도, 교과서 문제 등에서 양보나 타협은 더욱 어려워졌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이번 총선에서 야당은 한마디로 분열과 지리멸렬이었다. 아베의 개헌을 저저하기엔 역부족이다. 그런 가운데 창당 한 달이 못된 입헌민주당의 약진이 비교적 눈부시다. 에다노 대표가 이끄는 입헌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사실상 리버럴의 대표주자이자 유일 주자로 비장한 출사표를 던졌다. 에다노가 내건 입헌민주당의 선거구호는 ‘정직한 정치’였다. 선 굵고 강하며 단순명료한 구호다. 그 결과 55석의 의석을 확보하면서 제1야당의 자리를 확보했다. 지난 10월 3일 입헌민주당을 창당하고 선거에 뛰어들 당시 15석에 불과하던 의석은 40석이나 늘었다. 도치기현 출신의 에다노는 도후쿠(東北)대를 마친 변호사로 1993년부터 중의원을 지낸 9선 의원이다. 일본신당을 시작으로 ‘민주의 바람’, 신당사키가케를 거쳐 민주당에 합류했다. 에다노는 간 나오토(菅直人) 전 총리의 측근이다. 민주당 집권 기간 간 총리의 비서실장 격인 관방장관(2011년 1월~9월)을 지내며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라는 초유의 위기를 침착하게 대처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경제산업대신(2011년 9월~12월)을 지내며 각료로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빈손으로 출발한 희망의 당은 여러 정당에서 의원을 모아 57명까지 세를 불리며 선거에 임했다. 고이케가 이끄는 희망의당이 제1야당이 되고 일본 정계 개편의 중핵이 될 가능성을 예상하는 사람도 늘었다. 그 와중에 고이케는 교만의 실수를 범했다. 입당하려는 의원이나 정치인들에게 ‘개헌에 찬성한다’는 각서를 요구하는 등 오만한 자세를 보였다. 이는 그의 세력 확산에 걸림돌이 됐다. 고이케와 희망의 당은 찻잔 속의 폭풍에 그치고 말았다. 고이케가 뿌리가 약한 정치인이라는 점도 작용했다. 고이케는 효고(兵庫)현 출신으로 8선의원을 지낸 후 도쿄도 지사를 맡고 있다. 하지만 1992~1993년 참의원을 지낸 후 1993년부터 중의원을 지내면서 효고에서 도쿄로 지역구를 옮겼다. 소속 정당도 일본신당에서 신진당을 거쳐 자유당, 보수당, 보수클럽을 전전하다 자민당에 들어가 호소다(細田)파에 몸을 의탁했다가 이내 무파벌이 됐다. 고이즈미 총리 내각에서 2003년 9월~2006년 9월 제5~7대 환경장관과 2004년 9월~2006년 9월 내각부특명담당장관(오키나와와 북방영토 담당)을 지내고 아베 총리 내각에서 2007년 7월~8월 방위장관을 지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첫 여성 방위 수장이다. 2008년 9월엔 자민당 총재 선거에 여성으로 처음 출마했다가 아소 다로(麻生太郞) 전 총리와 요사노 가오로 전 관방장관에 이어 3위로 낙선했다.
 야당은 지리멸렬
그러다 그는 지난해 7월 31일 정치 인생에서 전기를 맞았다. 자민당 공천으로 도쿄 도지사 재보궐 선거에 뛰어들어 당선했다. 도쿄도의 첫 여성 지사다. 자신을 얻은 그는 자민당을 떠나 올해 1월 23일 도쿄도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정당인 도민퍼스트회를 창당했다. 그는 이 정당을 앞세워 7월 2일의 도쿄 도의회 선거에서 127석의 의석 중 도민퍼스트회 소속 49석, 도민퍼스트회 추천 6석을 합쳐 55석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자민당·민진당 등 기성 정당을 누른 승리였다. 이를 계기로 그는 일본 보수 정치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아베 총리가 학원 스캔들로 맥을 추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여세를 몰아 도민퍼스트회를 바탕으로 희망의 당을 창당했지만 자신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오만함으로 인한 세 불리기의 한계, 지나친 보수 성향 등이 패인이었다. 고이케의 희망의 당은 이번 총선에서 ‘일본에 희망을, 일본을 리셋’이라는 선거구호를 들고 나섰다. 오만한 고이케는 유권자들에게 희망을 얻지 못했으며 그 결과 희망의당이 국민에게 사실상 리셋을 당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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