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역에 양자암호를 전송할 수 있는 네트워크 구축 … 각료와 군 간부 600명 이상이 비밀 통신에 양자암화화 링크 사용해 중국의 양자통신용 위성 묵자호와 티베트 서남부에 설치된 지상 기지 사이의 링크가 이뤄진 모습을 보여주는 합성 사진. / 사진:JIN LIWANG-XINHUA-NEWSIS나치는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열쇠가 통신 보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비밀 통신에 암호를 사용하기 위해 그들이 중시한 기술은 ‘에니그마(Enigma, ‘수수께끼’라는 뜻)’였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독일 전차부대와 대사관, 잠수함이 무선 메시지를 주고받는 데 사용한 암호화 기계를 말한다. 에니그마를 사용한 암호 시스템은 완벽해 그 기계 없이는 누구도 암호 해독이 불가능하다고 그들은 굳게 믿었다. 그러나 영국의 젊은 수학자 앨런 튜링은 숫자 조합 수천 가지를 체계적으로 시도함으로써 뜻이 통하는 메시지를 찾아내는 기계를 만들 수 있다면 그 암호를 풀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2014년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이 그 과정을 그렸다).
그 결과가 세계 최초의 컴퓨터 ‘튜링 머신’이었다. 결국 독일의 암호화된 메시지 코드를 해독할 수 있는 영국의 능력이 연합군의 승리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제 ‘양자암호화’ 기술 덕분에 ‘진짜’ 완벽한 비밀이 보장되는 통신이 현실이 될 수 있다. 온라인 사기와 신원 도용, 해킹 공격, 전자 도청에서 세계를 해방시킬 수 있는 기술이다. 하지만 그 기술을 사용하면 테러리스트와 범죄자도 아무도 모르게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 또 불량한 정부도 음모나 비리와 관련된 비밀을 아무도 알아내지 못하도록 숨길 수 있다. 그처럼 해독이 불가능한 암호화 기술의 세계에선 인간의 모든 전자식 통신이 완전히 비밀이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사이버 보안 측면에선 희소식이기도 하고 아주 골치 아픈 일이기도 하다.
지난 9월 29일 그런 세계가 현실에 바짝 다가왔다. 중국 과학원의 암호전문가·물리학자 팀이 양자암호화 기술을 사용해 오스트리아 빈의 상대방과 30분 동안 화상통화를 했다. 통화 내용을 해킹하거나 도청하기가 불가능한 기술이다.
영국의 한 고위 정보 관리(민감한 문제라 익명을 요구했다)는 “최근의 모든 기술혁신 중에서 가장 흥분되기도 하고 가장 우려되기도 하는 것이 새로운 암호화 기술”이라고 말했다. “세계를 바꿔놓을 수 있는 기술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지금으로선 양자기술의 주요 혁신이 미국 뉴욕 주 아몽크 소재 IBM이나 캘리포니아대학(구글이 지원한다), 네덜란드 델프트공과대학(EU가 지원한다) 같은 서방의 대학이나 기업에서 나오고 있지만 그 혁신의 ‘실행’ 측면에선 중국이 서방보다 훨씬 앞서 있다.
베이징-빈 화상통화는 스카이프 방식의 인터넷 연결을 통해 이뤄졌다. 그러나 혁신적인 것은 중국이 쏘아올린 위성에 탑재된 양자기기에서 생성된 암호키였다. 무엇보다 양자물리학으로 암호키를 생성했다는 사실은 암호를 해독하려는 어떤 시도도 즉시 탐지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기존 광통신과 달리 다수의 빛 알갱이가 아닌 단일 광자를 이용하기 때문에 제3자가 중간에서 정보를 가로채려 할 경우 송·수신자가 이를 알 수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교수로 중국인이 사용한 양자통신 시스템의 기본 모델을 발명한 아터 에커트는 “양자암호는 해킹이 불가능한 암호에 최대한 근접한 형태”라고 설명했다. 세계 최초의 양자통신용 위성 묵자호는 지난해 8월 발사된 뒤 궤도상 테스트를 거쳐 연말부터 실제 사용됐다. / 사진:JIN LIWANG-XINHUA-NEWSIS에커트 교수의 암호화 방법은 ‘양자 중첩성’(quantum entanglement, ‘양자 얽힘’이라고도 한다)으로 알려진 양자의 특이한 효과를 바탕으로 한다. 서로 멀리 떨어진 두 입자가 존재적으로 연결돼 있어 한 입자의 상태가 확정되는 즉시 다른 입자의 상태도 변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두 입자가 항상 반대 방향으로 돈다고 가정할 때 측정 전까지는 두 입자의 상태를 알 수 없지만 한 입자를 측정하는 순간 그 입자 상태가 결정되면서 마치 그 정보가 순식간에 전달되는 것처럼 다른 입자 상태를 결정하게 된다. 이 현상은 너무나 기이하고 설명이 불가능해 이를 발견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당황했다. 1935년 아인슈타인은 이 효과를 두고 “유령 같은 원격 작용”이라고 묘사했다.
그런 작용이 정확히 어떻게 일어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현상은 1984년 IBM의 찰스 베넷 박사와 캐나다 몬트리올대학의 자일스 브라사드 교수에 의해 실험실에서 시연됐다. 지난 9월 말의 베이징-빈 화상통화 실험에서 놀라운 점은 과학자들이 양자 중첩성을 이용해 일련의 데이터 조각으로 구성된 암호키가 지구상의 멀리 떨어진 곳에서 동시에 나타나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양자통신은 빛의 최소 단위인 광자에 정보를 실어 보내는 기술이다. 광자는 기본적으로 전자기파다. 전자기파는 여러 각도로 전달되는데 이 각도들이 양자의 정보가 된다. 광자의 양자 정보를 전송하려면 먼저 그 양자 정보를 다른 광자에 보낸다. 이 정보는 양자역학적으로 ‘중첩(얽힘) 상태’에 있는 또 다른 광자의 상태를 변화시킨다. 이런 방식으로 돌다리를 순식간에 건너듯 양자 정보를 안 보고 전송할 수 있다.
더구나 판젠웨이 중국 과학기술대 교수가 이끈 중국팀은 완전히 실행 가능한 현실 세계의 양자암호화 통신 시스템을 만들었다. 중국팀은 기지국과 위성, 수천㎞에 이르는 광섬유 케이블을 연결해 중국 전역에서 양자암호키를 전송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미국 메릴랜드대학 산하 산학연구센터 JQI에서 원거리 양자통신을 가장 먼저 연구한 찰스 클라크 교수는 “그 기술은 새로운 물리학 원칙을 발견하지 않아도 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상적인 점은 중국팀이 그 시스템이 실행될 수 있도록 만든 규모와 거리다. 클라크 교수는 “아주 멋진 시연이었다”고 말했다. 판젠웨이 교수는 묵자호에서 매초 800만 쌍의 광자를 생성해 티베트 고원의 1200㎞ 떨어진 과학기지에 전송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 사진:SHEN HONG-XINHUA-NEWSIS얼마 전까지는 모든 암호화 기술이 기본적으로 에니그마처럼 적의 기술적 역량을 넘어서는 수학적 수수께끼를 만드는 것을 바탕으로 했다. ‘공개키 기술’로 불리는 지금의 암호화 표준은 에니그마보다 훨씬 복잡하다. 현재 그 기술은 모든 인터넷 인증과 왓츠앱 등 ‘안전하다’고 알려진 통신 응용프로그램의 기본이다.
그러나 실제론 에니그마와 똑같은 원칙에 의존하는 기술이다. 두 방식 모두 신호의 암호화와 해독에 필요한 키가 컴퓨터에 의해 생성되며 양측으로 동시에 전달된다. 따라서 컴퓨터 성능만 충분히 좋다고 가정하면 누군가가 그 키를 해킹할 수 있다.
그에 비해 양자암호화는 그런 기술 경쟁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바꿔놓는다. 컴퓨터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해독할 수 없다는 뜻이다. 에커트 교수는 “수학적 시스템과 달리 양자암호는 물리학 법칙에 의존하기 때문에 해킹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해독 불가능한 키를 생성하는 장치인 ‘양자암호키 분배기기’는 해킹과 신원 도용을 완전히 없앰으로써 세계의 전자상거래와 데이터 보호를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어줄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양자암호화 기술의 최대 투자자는 전 세계의 군대와 정보기관이다. 중국의 인민해방군과 미국 국방부가 대표적이다. 절대 우연이 아니다. 클라크 교수는 “모든 유익하고 아름다운 것에서와 마찬가지로 양자기술도 군과 정보기관의 비상한 관심을 끈다”고 말했다. “이 기술을 가장 먼저 정복하는 국가가 전략적으로 중요한 통신 분야에서 단기적으로 중요한 이점을 갖게 될 것이다.”
판젠웨이 교수의 작업이 바로 그런 일이다. 그는 중국 정부를 설득해 양자통신용 위성인 ‘묵자호’(기원전 전국시대의 중국 사상가 이름을 땄다)를 지난해 8월 지구 저궤도에 쏘아 올리고 지상에 거대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수억 달러를 투자하도록 했다(프로젝트에 투입된 정확한 비용은 서방에 알려지지 않았다). 중국 허베이성 북부의 양자통신 기지에 설치된 망원경. / 사진:JIN LIWANG-XINHUA-NEWSIS그는 묵자호에서 매초 800만 쌍의 광자를 생성해 티베트 고원의 1200㎞ 떨어진 2곳의 과학기지에 전송하는 데 성공했다(전송 속도는 지상 광케이블보다 1조 배나 빨랐다). 아울러 지난 9월 베이징에서 산둥성 지난과 안후이성 허페이를 관통해 상하이를 연결하는 2000㎞의 세계 최장 양자통신 네트워크도 개통했다.
중국의 암호화 기술 개발에 정통한 고위 보안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의 각료와 군 간부 600명 이상이 모든 비밀 통신에 양자암호화 링크를 사용한다. 민감한 문제라며 익명을 요구한 그는 “중국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추진할 전략적 비전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양자암호화가 미래다. 중국군은 이 기술을 정복할 수 있는 자원과 비전을 갖췄다.”
묵자호가 지구 저궤도에 띄워졌다는 사실은 중국의 광섬유 케이블 시스템에 연결되지 않은 사용자는 중국 안에서 다른 키 소유자와 통신하는 데 필요한 양자암호키를 수신하기 위해 위성이 자신의 머리 위를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
판젠웨이 교수는 지난 8월 한 과학잡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중국이 앞으로 5년 안에 고도 2만㎞의 궤도에 새로운 양자통신 위성을 띄워 지구 표면의 훨씬 더 넓은 부분을 서비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22년까지 건설될 중국의 유인 우주정거장은 운영자가 관리하고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실험용 양자통신 장치를 갖게 될 것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지구 전체를 서비스할 수 있는 지구 정지궤도 위성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이다.
양자암호화 기술을 실제로 사용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투자한 나라는 지금까지 중국 외엔 없다. 클라크 교수는 “진입 장벽이 아주 높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국가 차원의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서방의 한 사이버보안 전문가(그 역시 정부를 비판하는 민감한 문제라는 이유로 익명을 요구했다)도 “지구 정지궤도를 따라 양자통신용 위성 네트위크를 구축하는 것은 과거의 달 유인탐사나 원자폭탄을 개발한 맨해튼 프로젝트처럼 규모가 엄청나고 획기적인 사업”이라며 클라크 교수의 지적에 동의했다. “하지만 지금 서방엔 장기적인 과학 프로그램에 그 정도 규모의 투자를 할 만한 비전을 가진 정치인이 없다. 중국이 이 게임에서 선두를 달리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는 사이버전쟁 무기 개발을 위한 암암리의 치열한 군비경쟁에 돌입했다. 전화와 전기 시스템을 마비시킬 수 있는 바이러스부터 적의 비밀을 훔치는 구식 스파이 게임까지 경쟁은 다양한 분야에서 펼쳐지고 있다. 단기적으로 볼 때 양자암호화의 새로운 시대가 도래한다고 해서 현 세계의 주요 취약점(부적절한 암호화가 아니라 기본적인 인터넷 보안마저 결여된 어처구니없는 상태를 말한다)이 메워지진 않을 것이다. 잘 알려졌듯이 얼마 전까지 만해도 미국 민주당 전국위원회 또는 심지어 백악관 같은 아주 민감한 시스템이 엉성한 비밀번호와 허약한 백신 소프트웨어로만 보호됐다. 2015~16년 러시아가 지원한 사이버범죄단이 미국 대선과 관련된 해킹에서 이용한 것으로 알려진 취약점이 바로 그런 예다. 중국은 지난해 8월 묵자호를 지구 저궤도에 쏘아 올리고 지상에 거대한 인프라를 구축했다. / 사진:CAI YANG-XINHUA-NEWSIS‘미국 정부가 민간인을 전방위적으로 감시한다’는 국가안보국(NSA) 전 계약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가 보여주듯이 현재 서방의 정보 수집 표적은 대부분 이메일이나 전화 통화의 실제 내용 같은 데이터라기보다는 ‘메타데이터’다. 누가 누구에게 언제 메시지를 보냈느냐 등의 정보를 말한다. 양자암호화의 세계에서도 그런 메타데이터는 계속 수집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사용자 양쪽 말단을 암호화해도 여전히 말단은 남아 있다”는 사실이라고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연구원이자 사이버정책 저널의 편집자인 에밀리 테일러가 말했다. “바로 거기에 취약점이 있다.” 다시 말해 양자암호화 시스템이 아무리 완벽해도 두 사람은 여전히 서로의 전자기기를 통해 메시지를 주고받아야 하기 때문에 암호화 이전이나 해독 후 누군가 엿들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양자암호화가 와해성이 대단히 큰 기술이란 점은 분명하다. 글로벌 통신의 기본 구성요소가 완벽하게 안전하다면 “우리가 거의 모든 것을 의존하는 글로벌 정보·통신 인프라의 주요 시스템적 위험은 논외의 사항이 될 것”이라고 캐나다 워털루대학 산하 양자컴퓨팅연구소의 미셸 모스카가 말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온라인에서 완벽하게 안전해지거나 침투 불가능한 온라인 보안의 시대가 도래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신용카드 거래, 데이터베이스, 모든 형태의 전자통신 등 잠재적인 사이버 취약점의 많은 부분이 양자암호화로 메워질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테러리스트와 범죄자도 양자암호화 기술을 이용할 수 있다. 테일러 연구원은 “모두가 비밀 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하려고 하지만 만약 모두가 해킹 불가능한 암호화 기술을 사용한다면 테러 방지와 정보 수집이 본업인 기관들로선 일이 아주 불편하고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분명한 점은 중국 연구팀이 ‘양자암호키 분배’가 실제로 가능하며 완벽한 통신 보안을 원하는 국가는 그 프로젝트에 거액을 투자해야 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는 것이다. 워털루대학의 양자 연구 개척자인 노르베르트 뤼트켄하우스 교수는 “양자통신에 비법은 없다”고 말했다. “서방 국가들도 중국을 쉽게 따라잡을 수 있다.” 물론 그럴 수 있는 정치적 비전만 있다면 말이다.
에커트 교수는 “정보를 장악하는 자가 세계를 장악한다”고 말했다. 그런 논리에 따르면 미래는 중국의 것인 듯하다.
- 오언 매튜스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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