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 대가가 건네는 ‘인생 나침반’ | 나를 만드는 힘(5)] 복잡한 문제 단순화하는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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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 자본주의 내세운 빌 게이츠...“난제도 쉽게 해결할 방법 찾는 실천가 돼야”
저성장·양극화·고령화로 대별되는 뉴노멀의 시대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디지털 변혁으로 생산성이 증대되고 있지만 삶이 축복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어디에서 와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고 있고, 종착역이 어딘지 모르고 살고 있다. 올바른 ‘나’를 세우고 디지털 세상을 똑바로 살아갈 수 있는 버팀목은 없을까. 경제·경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대가들의 가르침을 인생의 나침반으로 삼아 나의 가능성을 파악하고 잠재력을 끌어 올려보는 건 어떨까. 나를 방해하는 수많은 유혹에서 나를 지키는 힘도 키워보자. 혼돈의 시대 자아를 재발견하는 여정을 떠나는 이유다. 복잡한 문제를 쉽게 만들어 주는 상관을 만난다면 그야말로 행운이다. 사사건건 일에 개입하는 상관, 무턱대고 약속만 하고 실행을 하지 않는 상관, 지나치게 의사결정을 느리게 하는 상관, 부하보다 걱정을 더 많이 하는 상관…. 그런 부류의 상관을 만나다 보면 울화통이 터지기도 한다. 더구나 어떤 상관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기도 한다.
기술도 마찬가지다. 삶을 단순명료하게 보이도록 도와준다면 기술의 유용성은 증가할 것이다. 당신이 가난한 국가에 대해 애정을 갖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 돈이 진짜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사용되지 않고 권력자나 그의 이해관계자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면 당신은 원조를 주저하게 될 것이다. 개발도상국 정부나 원조당국자의 사기, 부패, 차별, 부실 경영은 인도주의적 원조를 방해하는 주요 요인이 된다. 유엔(UN) 세계식량계획(World Food Program)은 파키스탄의 신드 지방에 ‘블록 쌓기(Building Block)’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원조를 받은 사람이 확인되고 지불내역을 일일이 확인하는 자금 추적 기술이 확보된다면 많은 사람이 자발적으로 원조하려는 의사가 강해질 것이다. 해킹을 어렵게 만드는 보안기술인 블록체인으로 개발 원조 플랫폼을 만들어 신뢰가 쌓인다면 어떻게 되겠나. 그런 블록 쌓기 사업은 ATM 기계가 없거나 은행이 정상적인 업무를 할 수 없는 오지나 재난 발생 지역에 대한 원조를 늘릴 여력을 만든다. 역사를 돌아보면 숱한 문제의 연속이었다. 그때마다 시대의 영웅은 탄생했다. 링컨을 보자. 그를 만든 힘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는 강한 호기심을 가진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호기심은 다양한 학문에 걸쳐 있었다. 그래서 그가 법학을 이수하고, 웅변기술을 연마하도록 했다. 사람들은 그의 깊은 관찰력과 성찰이 그를 만든 힘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런 그의 자세가 지속적으로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한 원동력이었고 그 결과 혁신적인 해결책으로 이어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2차 세계대전 후 독일과 유럽을 재건시킨 조지 마샬도 인류사적인 측면에서 복잡한 문제를 해결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전쟁에서 이긴 자와 패한 자를 생각하면 어떤 해결책을 내놓아야 할까?
“리더는 혁신적인 방법, 수단, 절차를 적시적소에 적절히 사용해야 합니다. 대립되는 양쪽 진영이 제대로 된 해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하지요. 서로가 필요로 하는 큰 변화를 이끌어내도록 유도하는 리더십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2차 대전 당시 육군참모총장으로 활약했던 마샬이 유럽 재건을 위해 고안한 ‘마샬 플랜’은 그런 점에 당시 상황에 부합한 해결책으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마샬에 영감을 받은 유명인이 있었는데 그는 다름 아닌 컴퓨터 하면 생각나는 빌 게이츠다. 그는 하버드 졸업 연설을 부탁받고 한참 후에 우연한 곳에서 원고를 쓰는데 필요한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미 국무성에서 곤돌리자 라이스 장관을 만나려고 기다리던 때에 게이츠는 갑자기 라이스의 집무실 의자에서 일어선다. 그는 큰 사각형을 손가락으로 그리면서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나는 그곳 로비에서 기다리면서 앉아 있었어요. 그곳에는 서류가 있었는데 테두리를 두르고 있었고, 빛이 났으며, 너무 아름다웠어요. 그게 바로 조지 마샬의 연설문이었습니다.”
빌 게이츠는 마샬의 연설문 액자를 보았는데 그 속에 있던 글귀는 그 전에 읽은 것이다. 게이츠는 연설을 앞두고 세상살이의 복잡함을 졸업생에게 어떻게 쉬운 언어로 이해시킬지 고민하고 있었다. 마샬이 재건 계획을 만들면서 전후 유럽이 직면한 어마어마한 복잡한 문제를 대중에게 어떻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었을까 궁금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고차방정식처럼 얽힌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하고 대중에게 설득을 구한다. 게이츠 역시 억만장자 친구인 워런 버핏과 세금제도나 연방예산 문제에 내재한 수많은 복잡함 탓에 사람들이 경제·사회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논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점이 궁극적으로 변화를 가로막고 있지 않는지에 대해 토론했다.
빌 게이츠가 하버드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975년 1월 어느 날 일이다. 그 전 학창시절의 삶이 황홀할 만큼 즐거웠던 건 아니었다. 승부사 기질이 있던 그는 밤에 기숙사에서 포커의 판돈을 긁어모으기도 했다. 사업을 해서 왕성한 업적을 누린 사람들은 학교 생활이 상당히 지겨울 수도 있는가 보다. 아니면 자기의 승부수를 띄울 대상을 누군가에게 빼앗기기 싫다는 동물적 감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친구로부터 한 회사가 세계 최초로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기 시작할 거라는 뉴스를 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게이츠는 운명이 그렇게 그에게 사업으로 향하는 문을 두드렸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는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의 한 회사에 전화를 걸어 소프트웨어를 팔겠다고 제의를 한다. 회사는 구매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한 달 뒤에 연락하라고 한다. 당시 많은 사람이 소프트웨어 판매에 관심이 큰 상황에서 게이츠는 그들 중 한 사람에 불과한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역시 회사가 필요로 하는 소프트웨어를 완성하지 못했을 때라 잘됐다고 생각하고 일을 마무리하는 데 열중했다. 그리고 회사가 필요로 하는 소프트웨어를 똑 소리 나게 만들었다. 그게 학업을 중단하고 훗날 마이크로소프트(MS)와의 여행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다. 아버지의 뜻에 어긋났지만 미래를 향한 그의 열정을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그는 하버드 생활을 돌이켜보면서 한 가지 큰 유감이 있었다고 회고한다. “나는 세상에 지독한 불평등, 즉 수백만 명을 절망에 빠뜨리는 ‘건강, 부(富), 기회의 불균형’이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하고 하버드를 떠났습니다. 나는 하버드대에 다닐 때 경제학과 정치학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습니다. 과학의 진보를 이룬 위대한 발견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러나 인간애의 위대한 진보에 대해서는 무지했습니다. 내가 배운 것을 어떻게 적용해 불평등을 없애는가에 대해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컴퓨터를 접할 기회를 일찍이 가졌다. 어쩌면 그의 환경이 그를 만드는 데 큰 힘이 된 것이다. 그래서 좀 젊은 시절 사람들은 그를 건방지게 느꼈고 돈의 노예라는 비난도 했다.
“우주는 오직 나를 위해 존재할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내가 잘 되는 건 당연하며, 나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1995년 마흔 살에 ‘포브스’ 선정 세계 억만장자 순위 1위에 올랐던 빌 게이츠가 2년 후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당시 그는 상당히 자기중심적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그가 성공한 데에는 자식에 대한 교육에 관심이 큰 부모의 역할도 컸다. 그렇다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 그의 노력을 폄하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후 그는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상당히 변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처럼 세상에서 가장 큰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이 아무 특권이 없는 이들의 삶에 대해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오늘 여러분이 세상의 심각한 불평등이라는 이 한 가지 복잡한 문제를 택해 그에 관한 전문가가 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행동가가 되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곳에서 발생한 비행기 추락사고의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하지만 일상화된 가난으로 만성적으로 죽어가는 저소득 국가의 뼈만 앙상한 어린아이의 죽음에 대해서는 무디다. 원래 세상이 그렇게 불공평하다고 말한다면 너무 가슴 아픈 일이 아닐까?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다. 조지 마샬이 하버드를 떠나고 게이츠가 하버드를 떠난 이후 수많은 기술 진보가 이루어졌고,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만드는 성과가 이어졌다. 예컨대 인터넷은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공통의 문제에 대해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모을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그래서 그는 함께 자선에 동참하자는 이야기를 하버드의 공부벌레들에게 말 하려 하는지 모르겠다. 그의 가슴 따뜻한 말을 들어 보자. “내 아내 멜린다와 나의 경우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가진 자원을 많은 슬픈 사연을 가진 사람을 위해 쓸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 나라에선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병으로 가난한 나라의 수백만 어린이가 매년 사망한다는 내용을 생각해 봅시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아이가 죽을 수 있을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시장이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관심이 없고, 정부도 지원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업 활동으로 돈을 버는 동시에 자선 활동도 하는 결합된 형태의 자본주의를 ‘창조적 자본주의’라고 지칭했다. 물론 이를 이론으로 제시한 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창조적 자본주의를 실천해 모범을 보이려고 한 것이다. 기부왕으로 그의 창조적 자본주의론에 많은 사람이 열광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는 차원이 다른 아름다운 행동에 감동을 받고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에 가슴을 쓰다듬는다. 때로는 가슴 뭉클하게 울먹이면서 말이다. 게이츠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고(故) 이태석 신부님의 담담한 말씀이 우리의 귓전을 울린다.
“한국에도 가난한 사람이 많은데 왜 아프리카에 갔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내 삶에 영향을 준 아름다운 향기가 있습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프리카에서 평생을 바친 슈바이처 박사, 어릴 때 집 근처 고아원에서 본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헌신적인 삶, 마지막으로 10남매를 위해 평생 희생하신 어머니의 고귀한 삶 이것이 내 마음을 움직인 아름다운 향기입니다."
그런 말을 하는 이태석 신부의 환한 웃음을 생각한다. 문둥병·나병이라는 한센병에 걸린 아이의 발에 약을 발라주고 신발을 만들어 주던 이태석 신부는 분명 천사 자체였다. 매일 엄청난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며 버리는 우리들. 누구는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의 1%만이라도 가난한 자들과 나누면 이들이 얼마나 많은 혜택을 입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굶주림이나 갖가지 질병 앞에서 너무나 쉽게 죽어가는 그들은 죽음에 저항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그럼 우리는 왜 이런 사람들을 보고도 행동하는 실천가가 되지 못할까? 게이츠는 말한다.
“어머니는 나와 아내에게 항상 베풀며 살아가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애정과 연민이 있는데 그에 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도와줄 것을 제대로 안다면 행동으로 옮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를 막고 있는 장벽은 애정이나 연민의 부족이 아니라 사안의 복잡함입니다.”
언론은 기아로 죽어가는 아이의 이야기에 무디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게이츠는 우리가 이러한 인류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위대한 것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문제를 복잡하게 바라보지 말고 쉬운 해결방법을 찾아 실천가가 되라고 한다.
“우선 목표를 세우세요. 그리고 가장 비용효과적인 접근방법을 찾아 나서세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기술을 찾아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에서의 실패와 성공담을 다른 사람과 공유해 나가세요. 에이즈(AIDS)를 예로 들어 보죠. 상위 목표는 질병을 없애는 것이겠죠. 물론 가장 비용효과적인 방법은 예방입니다. 가장 이상적 기술은 한 방울의 약물로 평생면역체계를 만드는 백신이겠죠. 그래서 정부와 업계와 자선재단은 백신개발을 공동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작업은 수십 년이 걸릴 수 있죠. 그래서 그때까지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기술을 활용해야 합니다. 현재 가지고 있는 최선의 예방법은 사람들이 위험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죠. 여러분이 하버드를 떠나 나처럼 30여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에 이곳을 방문했을 때 지성인으로서 뒤늦은 후회와 번민을 느껴서는 안 되겠지요. 세상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과 여러분들이 아무런 공통점이 없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인류애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가 말한 것처럼 휴머니즘의 위대한 측면은 발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견을 불평등 해소에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민주주의를 통해서든, 교육을 통해서든, 양질의 사회보험을 통해서든, 다양한 경제적 기회를 통해서든, 불평등을 해소하는 실천이 핵심이다. 그게 가장 높은 수준의 인류의 성취라는 게 게이츠의 주장이다. 그가 그런 말을 한 이후에도 인류의 불평등은 크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 기술이 문제를 쉽게 만들고 사안을 간단하게 만든다는 데 왜 우리는 불평등이 크게 줄어 들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사안을 쉽게 만드는 것을 넘어 디지털 정보 격차 해소와 기술 진보에 가려진 어두운 문제를 간과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기술 진보에 따른 기술적 실업과 승자독식의 지형이 복잡하게 얽혀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한 창조적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걸까? 사실 기술은 저개발국 국가의 사람들에게도 많은 희망과 용기를 심어줄 수 있고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좋은 물건을 만들어 플랫폼을 이용하여 판다면 사업기회로도 될 수 있다.
그는 세계경제포럼 연설에서도 ‘창조적 자본주의’ 개념을 다시 들고 나왔다. 그는 연설에서 자본주의는 부자들만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루 1달러 이하의 생계비로 살아가는 빈곤 인구를 도울 방법을 찾자고 호소했다. 시장의 힘을 빈곤 문제 해결에 활용하자는 것이다. 기업은 순익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 과업에 많은 기업이 참여할 것을 주장했다. 빌 게이츠에게 창조적 자본주의란 기업과 비정부조직(NGO)이 함께 일하면서 세계의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시장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기업 봉사를 사회적 책임 차원이 아닌 의무로 끌어올린 개념이다. 사회에서 수익을 올리는 기업이 소외계층을 위해 환원할 의무가 있다는 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서 한발 더 나가자는 이야기다. 그는 지금까지의 경쟁적이고 살벌한 자본주의와 다른 따뜻하고 친절한 자본주의야말로 창조적 자본주의가 될 것이라고 했다. 너무 이상적이게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을 아우르는 그의 따뜻한 마음씨가 느껴지지 않나.
물론 빌 게이츠의 창조적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현재의 빈부격차 문제는 개인이나 기업이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비판의 주된 논점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마취제로 일시적으로 통증을 멈추게 만드는 정도에 머물 수도 있다는 반박이 제기된다. 이런 비판 역시 충분히 근거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빈부격차 문제를 각국 정부에만 맡길 수도 없다. 그런 점에서 빌 게이츠 같은 창조적인 자본주의자가 감당해야 할 역할이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기업과 정부와 NGO가 함께 나서 이 세상을 더 따뜻한 사회로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창조적 자본주의는 빌 게이츠 개인의 삶에서 갖는 의미도 적지 않다. 빌 게이츠의 삶에도 냉혹한 자본주의와 창조적 자본주의 두 가지가 모두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게이츠가 본격적으로 자선 활동에 관심을 갖기 이전까지 그의 삶을 지탱하는 코드는 속도와 경쟁이었다. 그는 1999년 저술한 책의 제목처럼 ‘생각의 속도’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게이츠가 10년 전 제기한 생각의 속도라는 개념은 당시 막 불길이 타올랐던 닷컴 붐과 맞물리면서 많은 사람에게 통찰력 있는 사상으로 받아들여졌다. 그게 신기루였지만 말이다. 새천년이 시작된 2000년 게이츠는 인생 최대의 좌절을 겪는다. 그야말로 특별한 한 해였다. 그 해 4월 MS는 법원으로부터 기업분할 명령을 받았다. 정부로부터 독점 자본가로 낙인 찍히고 기업을 쪼개라는 명령을 받았다. 게이츠는 애초 아버지의 권유에도 자선사업이나 기부에 큰 관심이 없었다. 게이츠가 자신이 삶의 지표를 바꾼 것은 부인 멜린다 덕분이었다. 멜린다의 조언으로 그는 자산 200억 달러 규모의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의 주된 관심 분야는 AIDS나 말라리아, 풍토병과 같은 질병 퇴치 연구와 교육이었다. 하지만 독점 사업가가 소송을 벌이는 와중에 천문학적 기부를 한 것을 두고 일각에선 ‘고도의 홍보작전’이란 비판이 제기됐다. 2001년 기업분할 항소심에서 승리한 후 게이츠는 꾸준히 사재를 재단에 기부했다. 그의 진정성이 받아들여지면서 냉혈한 자본가 이미지는 따뜻한 기업인 이미지로 바뀌어갔다. 마침내 2005년 타임은 빌 게이츠와 부인 멜린다 게이츠를 인류를 위해 인도적 노력을 아끼지 않는 ‘올해의 인물들’로 선정했다. 게이츠는 자선 활동에 관심을 보이면서 속도나 경쟁보다는 ‘더불어 사는 삶’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특히 2008년 6월 말을 끝으로 MS 경영 활동에서 손을 떼면서 빌 게이츠는 속도보다는 주변을 돌아보는 삶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그동안 주로 MS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모습을 드러냈던 게이츠는 2008년 하반기부터는 순수한 자선사업가로 새롭게 변신했다. 그리고 그 변신은 창조적 자본주의라는 그의 철학과 함께 많은 사람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내 안에 나를 만드는 힘을 생각해 본다. 누군가는 선택을, 누군가는 과거 경험과의 연결·상실·죽음이, 그리고 누군가는 목적이, 누군가는 미래의 힘이, 누군가는 주변을 돌보는 삶이 그를 만든 힘이었다. 여기서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양면성을 생각해 보자. 성선설 성악설을 떠나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아를 들여다보는 거울을 생각해 보자. 우리 모두에게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존재할지 모르겠다. 선을 추구하고 악을 멀리하자는 설교를 하는 게 아니다. 다만 우리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에 나오는 구절을 상기하며 인생을 살아가면 어떨까?
“나의 결점 중에서도 가장 나쁜 점은 쾌락을 추구하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그럼에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나로서는 내 정신을 고결하게 유지하고 사람들 앞에서 위엄 있는 냉정함을 유지하고 싶은 성격과 쾌락을 추구하는 욕구를 조화시키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 몰래 쾌락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 결과 내가 과거를 뒤돌아볼 만한 나이가 되어 내 주변을 돌아보고, 내가 가진 부와 사회적 지위를 평가하게 되었을 때 나는 이미 이중생활에 깊숙이 빠져 있었다.”
쾌락이 무조건 나쁘다는 도덕 군자적인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내 안에 나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목적과 끊임없는 동기부여를 통해 삶의 승부수를 띄우며 남을 헤아리며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그들이 있기에 나도 온전하게 살고 있고 세상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우리의 삶이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비극으로 끝나서야 되겠는가. 소설을 각색한 뮤지컬의 음악에서 우리는 나를 움직이는 힘의 힌트를 읽을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이 순간
지금 이 순간 내 모든 걸 내 육신마저 내 영혼마저 다 걸고
던지리라 바치리라 애타게 찾던 절실한 소원을 위해’
그렇게 우리는 나를 만드는 힘을 생각하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 필자는 연세대(경제학과)와 미국 미시간주립대(파이낸스 석사)를 졸업했다. 행시(재경직) 34회 출신으로 재무부·재정경제원·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에서 관세·물가·복지·국제금융·통상 등의 분야에서 일했다. 저서로는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 [경제적 청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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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양극화·고령화로 대별되는 뉴노멀의 시대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디지털 변혁으로 생산성이 증대되고 있지만 삶이 축복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어디에서 와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고 있고, 종착역이 어딘지 모르고 살고 있다. 올바른 ‘나’를 세우고 디지털 세상을 똑바로 살아갈 수 있는 버팀목은 없을까. 경제·경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대가들의 가르침을 인생의 나침반으로 삼아 나의 가능성을 파악하고 잠재력을 끌어 올려보는 건 어떨까. 나를 방해하는 수많은 유혹에서 나를 지키는 힘도 키워보자. 혼돈의 시대 자아를 재발견하는 여정을 떠나는 이유다. 복잡한 문제를 쉽게 만들어 주는 상관을 만난다면 그야말로 행운이다. 사사건건 일에 개입하는 상관, 무턱대고 약속만 하고 실행을 하지 않는 상관, 지나치게 의사결정을 느리게 하는 상관, 부하보다 걱정을 더 많이 하는 상관…. 그런 부류의 상관을 만나다 보면 울화통이 터지기도 한다. 더구나 어떤 상관은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기도 한다.
기술도 마찬가지다. 삶을 단순명료하게 보이도록 도와준다면 기술의 유용성은 증가할 것이다. 당신이 가난한 국가에 대해 애정을 갖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 돈이 진짜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사용되지 않고 권력자나 그의 이해관계자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면 당신은 원조를 주저하게 될 것이다. 개발도상국 정부나 원조당국자의 사기, 부패, 차별, 부실 경영은 인도주의적 원조를 방해하는 주요 요인이 된다. 유엔(UN) 세계식량계획(World Food Program)은 파키스탄의 신드 지방에 ‘블록 쌓기(Building Block)’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원조를 받은 사람이 확인되고 지불내역을 일일이 확인하는 자금 추적 기술이 확보된다면 많은 사람이 자발적으로 원조하려는 의사가 강해질 것이다. 해킹을 어렵게 만드는 보안기술인 블록체인으로 개발 원조 플랫폼을 만들어 신뢰가 쌓인다면 어떻게 되겠나. 그런 블록 쌓기 사업은 ATM 기계가 없거나 은행이 정상적인 업무를 할 수 없는 오지나 재난 발생 지역에 대한 원조를 늘릴 여력을 만든다.
삶을 단순명료하게 보이게 도와주는 유용한 기술
“리더는 혁신적인 방법, 수단, 절차를 적시적소에 적절히 사용해야 합니다. 대립되는 양쪽 진영이 제대로 된 해법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하지요. 서로가 필요로 하는 큰 변화를 이끌어내도록 유도하는 리더십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2차 대전 당시 육군참모총장으로 활약했던 마샬이 유럽 재건을 위해 고안한 ‘마샬 플랜’은 그런 점에 당시 상황에 부합한 해결책으로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이러한 마샬에 영감을 받은 유명인이 있었는데 그는 다름 아닌 컴퓨터 하면 생각나는 빌 게이츠다. 그는 하버드 졸업 연설을 부탁받고 한참 후에 우연한 곳에서 원고를 쓰는데 필요한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미 국무성에서 곤돌리자 라이스 장관을 만나려고 기다리던 때에 게이츠는 갑자기 라이스의 집무실 의자에서 일어선다. 그는 큰 사각형을 손가락으로 그리면서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나는 그곳 로비에서 기다리면서 앉아 있었어요. 그곳에는 서류가 있었는데 테두리를 두르고 있었고, 빛이 났으며, 너무 아름다웠어요. 그게 바로 조지 마샬의 연설문이었습니다.”
빌 게이츠는 마샬의 연설문 액자를 보았는데 그 속에 있던 글귀는 그 전에 읽은 것이다. 게이츠는 연설을 앞두고 세상살이의 복잡함을 졸업생에게 어떻게 쉬운 언어로 이해시킬지 고민하고 있었다. 마샬이 재건 계획을 만들면서 전후 유럽이 직면한 어마어마한 복잡한 문제를 대중에게 어떻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었을까 궁금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고차방정식처럼 얽힌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하고 대중에게 설득을 구한다. 게이츠 역시 억만장자 친구인 워런 버핏과 세금제도나 연방예산 문제에 내재한 수많은 복잡함 탓에 사람들이 경제·사회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논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점이 궁극적으로 변화를 가로막고 있지 않는지에 대해 토론했다.
빌 게이츠가 하버드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1975년 1월 어느 날 일이다. 그 전 학창시절의 삶이 황홀할 만큼 즐거웠던 건 아니었다. 승부사 기질이 있던 그는 밤에 기숙사에서 포커의 판돈을 긁어모으기도 했다. 사업을 해서 왕성한 업적을 누린 사람들은 학교 생활이 상당히 지겨울 수도 있는가 보다. 아니면 자기의 승부수를 띄울 대상을 누군가에게 빼앗기기 싫다는 동물적 감각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친구로부터 한 회사가 세계 최초로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기 시작할 거라는 뉴스를 접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게이츠는 운명이 그렇게 그에게 사업으로 향하는 문을 두드렸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는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의 한 회사에 전화를 걸어 소프트웨어를 팔겠다고 제의를 한다. 회사는 구매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한 달 뒤에 연락하라고 한다. 당시 많은 사람이 소프트웨어 판매에 관심이 큰 상황에서 게이츠는 그들 중 한 사람에 불과한 존재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역시 회사가 필요로 하는 소프트웨어를 완성하지 못했을 때라 잘됐다고 생각하고 일을 마무리하는 데 열중했다. 그리고 회사가 필요로 하는 소프트웨어를 똑 소리 나게 만들었다. 그게 학업을 중단하고 훗날 마이크로소프트(MS)와의 여행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됐다. 아버지의 뜻에 어긋났지만 미래를 향한 그의 열정을 누구도 꺾을 수 없었다. 그는 하버드 생활을 돌이켜보면서 한 가지 큰 유감이 있었다고 회고한다.
‘건강, 부(富), 기회의 불균형’의 존재 깨닫지 못해
그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컴퓨터를 접할 기회를 일찍이 가졌다. 어쩌면 그의 환경이 그를 만드는 데 큰 힘이 된 것이다. 그래서 좀 젊은 시절 사람들은 그를 건방지게 느꼈고 돈의 노예라는 비난도 했다.
“우주는 오직 나를 위해 존재할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내가 잘 되는 건 당연하며, 나는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1995년 마흔 살에 ‘포브스’ 선정 세계 억만장자 순위 1위에 올랐던 빌 게이츠가 2년 후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당시 그는 상당히 자기중심적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그가 성공한 데에는 자식에 대한 교육에 관심이 큰 부모의 역할도 컸다. 그렇다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부단한 노력을 기울인 그의 노력을 폄하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후 그는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상당히 변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처럼 세상에서 가장 큰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이 아무 특권이 없는 이들의 삶에 대해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오늘 여러분이 세상의 심각한 불평등이라는 이 한 가지 복잡한 문제를 택해 그에 관한 전문가가 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행동가가 되라고 힘주어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곳에서 발생한 비행기 추락사고의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하지만 일상화된 가난으로 만성적으로 죽어가는 저소득 국가의 뼈만 앙상한 어린아이의 죽음에 대해서는 무디다. 원래 세상이 그렇게 불공평하다고 말한다면 너무 가슴 아픈 일이 아닐까?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다. 조지 마샬이 하버드를 떠나고 게이츠가 하버드를 떠난 이후 수많은 기술 진보가 이루어졌고,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만드는 성과가 이어졌다. 예컨대 인터넷은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공통의 문제에 대해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을 모을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그래서 그는 함께 자선에 동참하자는 이야기를 하버드의 공부벌레들에게 말 하려 하는지 모르겠다. 그의 가슴 따뜻한 말을 들어 보자.
시장의 힘을 빈곤 문제 해결에 활용하라
그는 기업 활동으로 돈을 버는 동시에 자선 활동도 하는 결합된 형태의 자본주의를 ‘창조적 자본주의’라고 지칭했다. 물론 이를 이론으로 제시한 건 아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 창조적 자본주의를 실천해 모범을 보이려고 한 것이다. 기부왕으로 그의 창조적 자본주의론에 많은 사람이 열광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는 차원이 다른 아름다운 행동에 감동을 받고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에 가슴을 쓰다듬는다. 때로는 가슴 뭉클하게 울먹이면서 말이다. 게이츠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고(故) 이태석 신부님의 담담한 말씀이 우리의 귓전을 울린다.
“한국에도 가난한 사람이 많은데 왜 아프리카에 갔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내 삶에 영향을 준 아름다운 향기가 있습니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프리카에서 평생을 바친 슈바이처 박사, 어릴 때 집 근처 고아원에서 본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헌신적인 삶, 마지막으로 10남매를 위해 평생 희생하신 어머니의 고귀한 삶 이것이 내 마음을 움직인 아름다운 향기입니다."
그런 말을 하는 이태석 신부의 환한 웃음을 생각한다. 문둥병·나병이라는 한센병에 걸린 아이의 발에 약을 발라주고 신발을 만들어 주던 이태석 신부는 분명 천사 자체였다. 매일 엄청난 음식물 쓰레기를 만들며 버리는 우리들. 누구는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의 1%만이라도 가난한 자들과 나누면 이들이 얼마나 많은 혜택을 입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굶주림이나 갖가지 질병 앞에서 너무나 쉽게 죽어가는 그들은 죽음에 저항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다. 그럼 우리는 왜 이런 사람들을 보고도 행동하는 실천가가 되지 못할까? 게이츠는 말한다.
“어머니는 나와 아내에게 항상 베풀며 살아가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애정과 연민이 있는데 그에 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도와줄 것을 제대로 안다면 행동으로 옮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를 막고 있는 장벽은 애정이나 연민의 부족이 아니라 사안의 복잡함입니다.”
언론은 기아로 죽어가는 아이의 이야기에 무디다.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게이츠는 우리가 이러한 인류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위대한 것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문제를 복잡하게 바라보지 말고 쉬운 해결방법을 찾아 실천가가 되라고 한다.
“우선 목표를 세우세요. 그리고 가장 비용효과적인 접근방법을 찾아 나서세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기술을 찾아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동에서의 실패와 성공담을 다른 사람과 공유해 나가세요. 에이즈(AIDS)를 예로 들어 보죠. 상위 목표는 질병을 없애는 것이겠죠. 물론 가장 비용효과적인 방법은 예방입니다. 가장 이상적 기술은 한 방울의 약물로 평생면역체계를 만드는 백신이겠죠. 그래서 정부와 업계와 자선재단은 백신개발을 공동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작업은 수십 년이 걸릴 수 있죠. 그래서 그때까지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기술을 활용해야 합니다. 현재 가지고 있는 최선의 예방법은 사람들이 위험한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죠. 여러분이 하버드를 떠나 나처럼 30여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에 이곳을 방문했을 때 지성인으로서 뒤늦은 후회와 번민을 느껴서는 안 되겠지요. 세상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과 여러분들이 아무런 공통점이 없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인류애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가 말한 것처럼 휴머니즘의 위대한 측면은 발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견을 불평등 해소에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민주주의를 통해서든, 교육을 통해서든, 양질의 사회보험을 통해서든, 다양한 경제적 기회를 통해서든, 불평등을 해소하는 실천이 핵심이다. 그게 가장 높은 수준의 인류의 성취라는 게 게이츠의 주장이다. 그가 그런 말을 한 이후에도 인류의 불평등은 크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 기술이 문제를 쉽게 만들고 사안을 간단하게 만든다는 데 왜 우리는 불평등이 크게 줄어 들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사안을 쉽게 만드는 것을 넘어 디지털 정보 격차 해소와 기술 진보에 가려진 어두운 문제를 간과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기술 진보에 따른 기술적 실업과 승자독식의 지형이 복잡하게 얽혀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한 창조적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걸까? 사실 기술은 저개발국 국가의 사람들에게도 많은 희망과 용기를 심어줄 수 있고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좋은 물건을 만들어 플랫폼을 이용하여 판다면 사업기회로도 될 수 있다.
그는 세계경제포럼 연설에서도 ‘창조적 자본주의’ 개념을 다시 들고 나왔다. 그는 연설에서 자본주의는 부자들만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하루 1달러 이하의 생계비로 살아가는 빈곤 인구를 도울 방법을 찾자고 호소했다. 시장의 힘을 빈곤 문제 해결에 활용하자는 것이다. 기업은 순익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이 과업에 많은 기업이 참여할 것을 주장했다. 빌 게이츠에게 창조적 자본주의란 기업과 비정부조직(NGO)이 함께 일하면서 세계의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시장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기업 봉사를 사회적 책임 차원이 아닌 의무로 끌어올린 개념이다. 사회에서 수익을 올리는 기업이 소외계층을 위해 환원할 의무가 있다는 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서 한발 더 나가자는 이야기다. 그는 지금까지의 경쟁적이고 살벌한 자본주의와 다른 따뜻하고 친절한 자본주의야말로 창조적 자본주의가 될 것이라고 했다. 너무 이상적이게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을 아우르는 그의 따뜻한 마음씨가 느껴지지 않나.
물론 빌 게이츠의 창조적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현재의 빈부격차 문제는 개인이나 기업이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비판의 주된 논점이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마취제로 일시적으로 통증을 멈추게 만드는 정도에 머물 수도 있다는 반박이 제기된다. 이런 비판 역시 충분히 근거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빈부격차 문제를 각국 정부에만 맡길 수도 없다. 그런 점에서 빌 게이츠 같은 창조적인 자본주의자가 감당해야 할 역할이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기업과 정부와 NGO가 함께 나서 이 세상을 더 따뜻한 사회로 만들면 얼마나 좋을까. 창조적 자본주의는 빌 게이츠 개인의 삶에서 갖는 의미도 적지 않다. 빌 게이츠의 삶에도 냉혹한 자본주의와 창조적 자본주의 두 가지가 모두 자리를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게이츠가 본격적으로 자선 활동에 관심을 갖기 이전까지 그의 삶을 지탱하는 코드는 속도와 경쟁이었다.
속도나 경쟁보다 더불어 사는 삶에 관심
“나의 결점 중에서도 가장 나쁜 점은 쾌락을 추구하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그럼에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나로서는 내 정신을 고결하게 유지하고 사람들 앞에서 위엄 있는 냉정함을 유지하고 싶은 성격과 쾌락을 추구하는 욕구를 조화시키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 몰래 쾌락에 빠져들게 되었다. 그 결과 내가 과거를 뒤돌아볼 만한 나이가 되어 내 주변을 돌아보고, 내가 가진 부와 사회적 지위를 평가하게 되었을 때 나는 이미 이중생활에 깊숙이 빠져 있었다.”
쾌락이 무조건 나쁘다는 도덕 군자적인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내 안에 나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목적과 끊임없는 동기부여를 통해 삶의 승부수를 띄우며 남을 헤아리며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그들이 있기에 나도 온전하게 살고 있고 세상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우리의 삶이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비극으로 끝나서야 되겠는가. 소설을 각색한 뮤지컬의 음악에서 우리는 나를 움직이는 힘의 힌트를 읽을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이 순간
지금 이 순간 내 모든 걸 내 육신마저 내 영혼마저 다 걸고
던지리라 바치리라 애타게 찾던 절실한 소원을 위해’
그렇게 우리는 나를 만드는 힘을 생각하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 필자는 연세대(경제학과)와 미국 미시간주립대(파이낸스 석사)를 졸업했다. 행시(재경직) 34회 출신으로 재무부·재정경제원·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에서 관세·물가·복지·국제금융·통상 등의 분야에서 일했다. 저서로는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 [경제적 청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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