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조선업, 올해는 다를까] 당장의 손익보다 업황에 주목하라
[위기의 조선업, 올해는 다를까] 당장의 손익보다 업황에 주목하라
삼성중·현대중 잇단 유상증자에 불안감 ... 수주 잔고 늘고, 수주 선박가격도 오를 듯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3일 대우조선해양 거제조선소를 방문했다. 격려 발언차 연단에 오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을 향해 한마디 했다고 한다. “금융이 빠지면 일이 안 됩니다.” 언론 매체들은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고 전했다. 정작 세계 톱클래스 조선 업체인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은행이 대출금 회수에 나설까 조마조마한다. 그래서 결국 1조원이 넘는 유상증자에 나선다. 차입금을 일부라도 갚아야 은행이 신규 수주에 대한 선수금환급보증(RG)을 해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은행도 사정이 딱하긴 마찬가지다. 대우조선해양과 STX조선해양에 이미 수조원이 물려 있다. 그렇다 보니 조선 업체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 대통령의 이런 행보가 행여 조선 업계 구조조정 지연의 빌미를 제공하거나 의지를 퇴색시키지나 않을까 걱정도 하는 모양이다. 최근 조선 업계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삼성중공업(1조5000억원)과 현대중공업(1조3000억원)이 유상증자 계획을 잇따라 밝히자 불안감이 증폭됐다. 두 회사는 지난해 4분기 수천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이 때문에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을 내다 연간으로 적자전환하거나(삼성), 이익규모가 큰 폭으로 감소(현대)했다. 올해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은 모두 영업손실을 낼 가능성이 크다. 한 언론에서는 “한국 경제에 위기가 닥친다면 그 진앙지는 조선업일 것”이라는 식의 무시무시한 전망도 내놓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최근 조선 업체의 주가는 꾸준히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유상증자 공시 직후 급락에 대한 단순 반등이라면 한두 차례 상승 후 다시 하락으로 가는 게 맞다. 증권사들은 조선업 투자비중 확대를 권유하고 있다. 조선 업체 목표주가도 올리고 있다. 그 이유는 뭘까.
삼성중공업의 지난해 4분기 영업손실은 5600억원이다. 3분기 누적 영업이익 720억원을 연간 4900억원 손실로 뒤집어 놓았다. 올해 매출은 지난해보다 35% 줄어든 5조1000억원, 영업손익은 여전히 적자(2500억원)를 기록할 것이라고 회사는 예상했다. 지난해 12월 7일 공시에서 회사는 이렇게 ‘커밍아웃’을 했다. 사람들은 이때만 해도 현대중공업도 유상증자를 추진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당시 한 증권사는 리포트에서 “삼성중공업 때문에 현대중공업의 어닝쇼크 가능성을 의심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대중공업의 지난해 연결기준(현대중+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 영업이익 추정치 4410억원을 사수했다. 그로부터 불과 20여일 후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이 470억원이라고 밝혔다. 1조3000억원의 유상증자를 할 것이라는 내용도 공시했다. 3분기 누적치가 4090억원에 달했지만 4분기 31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탓이었다. 올해 예상 매출은 12% 줄어든 13조6000억원. 그러나 영업손익 전망은 공시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현대중공업 역시 올해 영업적자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두 회사가 4분기에 대규모 손실의 낸 주된 이유는 지난해 수주한 선박에서 공사손실충당금이 대거 발생했기 때문이다.
회사는 수주 입찰에 참여할 때 공사 원가를 추정하고 적당한 마진을 붙여 입찰금액을 적어낸다. 그런데 수주에 성공한 후 원자재 가격 급등 등 원가 변동 요인이 발생하면 첫 삽을 뜨기도 전 적자 공사로 출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공사 계약 금액이 1000만원인데, 투입해야 할 공사비(총예정원가)가 1200만원으로 산출됐다면, 200만원을 공사손실충당금으로 반영해야 한다. 지난해 4분기 조선용 강재(후판) 가격이 t 당 50달러 상승했다. 아울러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1140원~1150원에서 1060원~1070원으로 6~7% 강세를 기록했다. 3분기 수주할 때는 해외 선사와 달러 기준으로 선박가격을 결정한다. 그런데 4분기 건조계약을 체결하는 시점까지 원화 가치가 6~7% 오르는 바람에 선박건조가격이 그만큼 하락한 셈이 됐다. 여기에다 후판 같은 원자재 가격까지 오르다 보니 공사 예정 원가가 예정 매출을 초과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4분기 영업손실은 모두 4분기 신규 수주 선박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필이면 수주가 4분기에 몰렸고, 하필이면 환율과 후판 가격이 불리하게 작용했다. 선박가격을 충분히 높게 체결하지 못한 탓도 있다. 회사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저가 수주 또는 적자 수주가 됐다”며 “수주 당시 기준으로는 적자 공사가 될 수준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4분기 계약선박에서 발생한 공사손실충당금에다 매출 감소로 기존 진행 공사의 고정비 부담이 커졌다. 회사 관계자는 “건조계약을 하면 대개 선물환 헷지를 한다”며 “선주사의 선박금융 체결 문제로 즉각 헷지를 못하고 환 리스크에 노출시킬 수밖에 없었던 기간이 지난해 원화 가치 상승기와 맞물렸다”고 설명했다.
환율이나 원자재 가격이 불리하게 급변했는데도 조선사가 선발주처(선주사)와 가격 조정 협상을 못한 것은 현재 발주처가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유상증자’와 ‘4분기 영업적자’가 결합되다 보니 두 회사는 이번 유상증자가 혹시라도 자금 위기설로 확대되지나 않을지 우려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따라쟁이’가 된 현대중공업은 삼성중공업과는 유상증자 목적의 차원이 다르다고 은연중에 강조한다. 삼성중공업은 유동성 위기를 막기 위한 증자인 반면 현대중공업은 현재 수준의 양호한 재무구조를 유지해 수주 경쟁력을 키우는 한편 소홀했던 연구개발(R&D)에 박차를 가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이야기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상반기 회사분할을 진행하면서 올해 적절한 시점에 유상증자를 하는 방안을 구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관계자는 “삼성중공업이 먼저 유상증자를 발표하자 현대중공업이 고민에 빠졌다”며 “혹시라도 삼성중공업의 유상증자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한다면 그 뒤에 나서는 현대중공업이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도 “삼성중공업이 먼저 움직이는 바람에 시기를 당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총 차입금 중 단기 차입금 비중이 70~80%에 달하기 때문에 수주 경쟁력과 직결될 수 있는 재무건전성을 유지해야 할 필요 등이 유상증자의 이유”라고 설명했다. 삼성중공업 역시 은행권의 상환요구에 미리 대응하겠다는 목적이 강하다. 업계 전문가들은 두 회사의 올해 손익 등 단기 실적에 집착하기보다는 업황의 회복세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손익으로 보면 두 회사 모두 올해 적자를 낼 가능성이 크다. 삼성중공업은 이미 2500억원 영업적자 전망공시를 했다. 회사 관계자는 “매출 감소에 따른 고정비 부담이 크다”며 “예상 적자 규모는 진행중인 체인지오더(초과원가보상)는 모두 배제하고 보수적으로 산출한 수치”라고 설명했다. 체인지오더의 결과에 따라서는 회사 전망치보다 적자가 크게 줄거나 손익 분기 수준을 맞출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전문가들 중에는 올해 가시적 수주 증가는 물론이고 신조선가(신규 계약 선박가격)의 상승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하는 이들이 많다. 최광식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2015년 하반기 수주한 배를 지난해 조선소에서 많이 건조했는데, 당시 신조선가는 하락했지만 원화 약세로 수주 마진이 양호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해 건조하는 배 가운데는 2016년과 지난해 저가 수주 물량이 많다는 설명이다. 그는 “조선업의 특성을 감안하면 이런 실적보다 업황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애널리스트는 “올해 주시해야 할 지표 중 하나가 신조선가”라며 “가격 인상에 성공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2015년 대비 원화 기준 신조선가는 선종에 따라 -7%~-16% 수준에 걸쳐 있다. 조선업계 리서치회사인 클락슨의 신조선가 지수는 2013년보다 낮은 수준이다. 최 애널리스트는 “올해 대표적으로 상선 발주가 대폭 증가하고, 해양플랜트 시장도 좋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선 업계 관계자들은 올해 단순히 발주 물량만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조선이 강점을 지닌 LNG선이나 초대형 컨테이너선, 친환경설비 장착 선박 등 고부가 선박 발주가 늘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조선업황 회복 신호를 세 가지 근거에서 찾는다. 우선 선박 황산화물 배출 규제에 따른 친환경선박 발주 조짐이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20년부터 선박배출가스에 포함된 황산화물 함량 허용치를 기존 3.5%에서 0.5%로 낮출 예정이다. 해운선사들이 이 규제에 대응하는 방법은 세 가지다. 클린연료(LNG나 저유황 함유 연료)를 사용하거나 황산화물 거름장치(스크러버)를 장착하는 방법, 그리고 LNG추진선이나 스크러버 장착 선박을 발주해 운항하는 방법 등이다. 클린연료는 단기 처방이다. 고비용 때문에 장기적 방안이 될 수는 없다. 기존 선박에 스크러버를 장착할 경우에도 관련 비용이 만만치 않다. 선박 사이즈에 따라 몇십억원부터 몇백억원에 걸쳐 있다. 연령이 오래된 선박에 600만 달러짜리 스크러버를 장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궁극적으로 신규 선박 발주가 답이라는 게 조선 업계의 설명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그런 물량이 실제 발주되고 있다”며 “지난해 수주선박 중 90%가 환경규제적응기술을 탑재한 선박들”이라고 말했다. 증권 업계 전문가들은 “환경규제 적용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 선주들의 선박구매 결정을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도 시황회복 강도가 세지고 있는데 2020년 환경규제를 앞두고 2019년의 시황회복은 더 뚜렷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음으로 LNG선에 대한 기대다. 에너지로서 LNG에 대한 글로벌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 운반선에 대한 발주 역시 증가세로 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중국 등이 복합화력발전으로 전환하면서 LNG선 수요 증가가 있을 것으로 봤으나, 지난해 예상만큼의 발주는 없었다. 그러나 운임은 계속 상승 중이다. 따라서 올해 발주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LNG 선은 한국 조선3사가 과점하고 있는 데다, 다른 선종 대비 고수익 선박이다.
초대형 컨테이너선 전망도 긍정적이다. 초대형 컨테이너 선은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조선 업계에서 별로 기대하지 않던 선종이었다. 지금도 초과 공급 상태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1만~2만TEU급 이상 선박이 서서히 발주되고 있다. 글로벌 메이저 선사들이 경쟁구도 속에서 비밀리에 발주하기 때문에, 조선 업체들은 이를 두고 전략적 발주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대형 컨테이너 해운사들은 대부분 해운동맹(얼라이언스)을 결성하고 있다. 현재 세계 3대 얼라이언스 간에 선박 효율성 제고 경쟁이 벌어지면서 대형 선박 발주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예를 들어 선대 규모 35만TEU인 현대상선이 2만TEU급 컨테이너선을 추가로 20척 정도 발주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계 선두권 해운동맹 선사의 경우 120만TEU에서 280만TEU사들이다. 현대상선이 머스크-MSC얼라이언스와 맺은 협약은 2020년 만료된다. 현대상선은 선대가 부족하다 보니 머스크-MSC 얼라이언스와 상당히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다. 2020년 재계약시 100만TEU 수준의 선대를 갖춘다면 재계약에서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삼성중공업은 2011~2015년처럼 연평균 100억 달러 수주시대가 열리려면 2020년은 돼야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는 과거 호황기의 70% 이상은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유가 상승으로 엑슨모빌 등 오일메이저들이 해양플랜트 투자를 늘릴 계획인 것도 긍정적 신호다.
한편 삼성중공업은 상선의 경우 해운 선복량 공급 과잉이 많이 해소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LNG 연료 수요는 과거 30년 간 연평균 5~6% 증가했다. 연 30척 발주되던 LNG선은 2014에 이례적으로 70척이나 발주됐다. 그 부작용이 2015~2017년까지의 발주 감소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발주 이후 용선처를 찾지 못하고 조선소에 잔류하던 선박들이 해소되기 시작하자 LNG선 발주가 다시 재개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올해와 내년 조선 업계의 회복 강도를 가늠할 신규 수주 선박가격(신조선가) 인상은 어떻게 될까. 신조선가는 조선업계의 수주 잔고와 관련이 있다. 조선 업계가 충분한 물량을 확보해 놓고 있으면 가격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 한마디로 쌀독에 쌀이 든든하게 차 있어야 큰소리 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조선 업계는 가격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캐퍼(생산능력) 감축을 진행하기도 한다. 업황이 좋을 때 조선소 슬롯은 신규 물량으로 채워진다. 불황일 때는 슬롯을 비워두지 않고 인위적인 캐퍼 축소 전략을 선택하기도 한다. 현대중공업의 군산조선소 폐쇄나 울산조선소 4번, 5번 도크 잠정 가동중단 같은 경우가 캐퍼 축소 전략의 사례다. 저가 수주를 해서라도 수주 잔고를 늘리려는 목적에는 앞으로 시장이 회복됐을 때 좀 더 높은 신조선가에 계약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을 수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올해 수주 잔고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본다”며 “조선사의 가격 협상력이 커져 신조선가는 점진적으로 인상되어 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올해 70억 달러대 후반에서 80억 달러 정도 수주하면 매출 기준 잔고(매출인식분만큼 지속적으로 수주 잔고에서 제거)가 2년 이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는 수주 잔고를 3년 이상 쌓아 왔는데 최근 몇 년 동안 1.5년에 못 미치는 수준에서 협상하다 보니 발주처에 비해 열세에 있었다”고 말했다. 인도 기준 잔고(선박을 인도해야 수주 잔고에서 제거)를 보더라도 올해는 인도보다 수주가 많아 수주 잔고는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신조선가 상승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최광식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올해 상선 발주가 1억 DWT까지 늘어나 상선에서만 한국 조선 업체 수주가 지난해 대비 30% 늘어난 230억 달러가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정상 발주를 초과하는 발주 어닝서프라이즈 가능성도 제기했다. 최 애널리스트는 “2016년의 발주 가뭄과 지난해의 부진은 경기 불확실이나 금융 경색, 선가 하락 대기 수요 등 일반 요인도 있지만 기술 변화에 따른 관망세가 더 큰 이유”라며”이런 수요가 이월됨으로써 최근 2년과는 정반대로 올해 발주서프라이즈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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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중공업·현대중공업, 올해도 영업손실 가능성
그런데 이상하게도 최근 조선 업체의 주가는 꾸준히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유상증자 공시 직후 급락에 대한 단순 반등이라면 한두 차례 상승 후 다시 하락으로 가는 게 맞다. 증권사들은 조선업 투자비중 확대를 권유하고 있다. 조선 업체 목표주가도 올리고 있다. 그 이유는 뭘까.
삼성중공업의 지난해 4분기 영업손실은 5600억원이다. 3분기 누적 영업이익 720억원을 연간 4900억원 손실로 뒤집어 놓았다. 올해 매출은 지난해보다 35% 줄어든 5조1000억원, 영업손익은 여전히 적자(2500억원)를 기록할 것이라고 회사는 예상했다. 지난해 12월 7일 공시에서 회사는 이렇게 ‘커밍아웃’을 했다. 사람들은 이때만 해도 현대중공업도 유상증자를 추진할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당시 한 증권사는 리포트에서 “삼성중공업 때문에 현대중공업의 어닝쇼크 가능성을 의심하는 것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대중공업의 지난해 연결기준(현대중+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 영업이익 추정치 4410억원을 사수했다. 그로부터 불과 20여일 후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이 470억원이라고 밝혔다. 1조3000억원의 유상증자를 할 것이라는 내용도 공시했다. 3분기 누적치가 4090억원에 달했지만 4분기 31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탓이었다. 올해 예상 매출은 12% 줄어든 13조6000억원. 그러나 영업손익 전망은 공시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현대중공업 역시 올해 영업적자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두 회사가 4분기에 대규모 손실의 낸 주된 이유는 지난해 수주한 선박에서 공사손실충당금이 대거 발생했기 때문이다.
회사는 수주 입찰에 참여할 때 공사 원가를 추정하고 적당한 마진을 붙여 입찰금액을 적어낸다. 그런데 수주에 성공한 후 원자재 가격 급등 등 원가 변동 요인이 발생하면 첫 삽을 뜨기도 전 적자 공사로 출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공사 계약 금액이 1000만원인데, 투입해야 할 공사비(총예정원가)가 1200만원으로 산출됐다면, 200만원을 공사손실충당금으로 반영해야 한다. 지난해 4분기 조선용 강재(후판) 가격이 t 당 50달러 상승했다. 아울러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1140원~1150원에서 1060원~1070원으로 6~7% 강세를 기록했다. 3분기 수주할 때는 해외 선사와 달러 기준으로 선박가격을 결정한다. 그런데 4분기 건조계약을 체결하는 시점까지 원화 가치가 6~7% 오르는 바람에 선박건조가격이 그만큼 하락한 셈이 됐다. 여기에다 후판 같은 원자재 가격까지 오르다 보니 공사 예정 원가가 예정 매출을 초과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4분기 영업손실은 모두 4분기 신규 수주 선박에서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필이면 수주가 4분기에 몰렸고, 하필이면 환율과 후판 가격이 불리하게 작용했다. 선박가격을 충분히 높게 체결하지 못한 탓도 있다. 회사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저가 수주 또는 적자 수주가 됐다”며 “수주 당시 기준으로는 적자 공사가 될 수준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4분기 계약선박에서 발생한 공사손실충당금에다 매출 감소로 기존 진행 공사의 고정비 부담이 커졌다. 회사 관계자는 “건조계약을 하면 대개 선물환 헷지를 한다”며 “선주사의 선박금융 체결 문제로 즉각 헷지를 못하고 환 리스크에 노출시킬 수밖에 없었던 기간이 지난해 원화 가치 상승기와 맞물렸다”고 설명했다.
환율이나 원자재 가격이 불리하게 급변했는데도 조선사가 선발주처(선주사)와 가격 조정 협상을 못한 것은 현재 발주처가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유상증자’와 ‘4분기 영업적자’가 결합되다 보니 두 회사는 이번 유상증자가 혹시라도 자금 위기설로 확대되지나 않을지 우려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따라쟁이’가 된 현대중공업은 삼성중공업과는 유상증자 목적의 차원이 다르다고 은연중에 강조한다. 삼성중공업은 유동성 위기를 막기 위한 증자인 반면 현대중공업은 현재 수준의 양호한 재무구조를 유지해 수주 경쟁력을 키우는 한편 소홀했던 연구개발(R&D)에 박차를 가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이야기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상반기 회사분할을 진행하면서 올해 적절한 시점에 유상증자를 하는 방안을 구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 관계자는 “삼성중공업이 먼저 유상증자를 발표하자 현대중공업이 고민에 빠졌다”며 “혹시라도 삼성중공업의 유상증자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못한다면 그 뒤에 나서는 현대중공업이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도 “삼성중공업이 먼저 움직이는 바람에 시기를 당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총 차입금 중 단기 차입금 비중이 70~80%에 달하기 때문에 수주 경쟁력과 직결될 수 있는 재무건전성을 유지해야 할 필요 등이 유상증자의 이유”라고 설명했다. 삼성중공업 역시 은행권의 상환요구에 미리 대응하겠다는 목적이 강하다.
상선 발주 늘고 해양플랜트 시장도 호조 예상
전문가들 중에는 올해 가시적 수주 증가는 물론이고 신조선가(신규 계약 선박가격)의 상승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하는 이들이 많다. 최광식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2015년 하반기 수주한 배를 지난해 조선소에서 많이 건조했는데, 당시 신조선가는 하락했지만 원화 약세로 수주 마진이 양호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해 건조하는 배 가운데는 2016년과 지난해 저가 수주 물량이 많다는 설명이다. 그는 “조선업의 특성을 감안하면 이런 실적보다 업황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애널리스트는 “올해 주시해야 할 지표 중 하나가 신조선가”라며 “가격 인상에 성공할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2015년 대비 원화 기준 신조선가는 선종에 따라 -7%~-16% 수준에 걸쳐 있다. 조선업계 리서치회사인 클락슨의 신조선가 지수는 2013년보다 낮은 수준이다. 최 애널리스트는 “올해 대표적으로 상선 발주가 대폭 증가하고, 해양플랜트 시장도 좋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선 업계 관계자들은 올해 단순히 발주 물량만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조선이 강점을 지닌 LNG선이나 초대형 컨테이너선, 친환경설비 장착 선박 등 고부가 선박 발주가 늘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조선업황 회복 신호를 세 가지 근거에서 찾는다. 우선 선박 황산화물 배출 규제에 따른 친환경선박 발주 조짐이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20년부터 선박배출가스에 포함된 황산화물 함량 허용치를 기존 3.5%에서 0.5%로 낮출 예정이다. 해운선사들이 이 규제에 대응하는 방법은 세 가지다. 클린연료(LNG나 저유황 함유 연료)를 사용하거나 황산화물 거름장치(스크러버)를 장착하는 방법, 그리고 LNG추진선이나 스크러버 장착 선박을 발주해 운항하는 방법 등이다. 클린연료는 단기 처방이다. 고비용 때문에 장기적 방안이 될 수는 없다. 기존 선박에 스크러버를 장착할 경우에도 관련 비용이 만만치 않다. 선박 사이즈에 따라 몇십억원부터 몇백억원에 걸쳐 있다. 연령이 오래된 선박에 600만 달러짜리 스크러버를 장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궁극적으로 신규 선박 발주가 답이라는 게 조선 업계의 설명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그런 물량이 실제 발주되고 있다”며 “지난해 수주선박 중 90%가 환경규제적응기술을 탑재한 선박들”이라고 말했다. 증권 업계 전문가들은 “환경규제 적용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 선주들의 선박구매 결정을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도 시황회복 강도가 세지고 있는데 2020년 환경규제를 앞두고 2019년의 시황회복은 더 뚜렷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음으로 LNG선에 대한 기대다. 에너지로서 LNG에 대한 글로벌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 운반선에 대한 발주 역시 증가세로 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중국 등이 복합화력발전으로 전환하면서 LNG선 수요 증가가 있을 것으로 봤으나, 지난해 예상만큼의 발주는 없었다. 그러나 운임은 계속 상승 중이다. 따라서 올해 발주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LNG 선은 한국 조선3사가 과점하고 있는 데다, 다른 선종 대비 고수익 선박이다.
초대형 컨테이너선 전망도 긍정적이다. 초대형 컨테이너 선은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조선 업계에서 별로 기대하지 않던 선종이었다. 지금도 초과 공급 상태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1만~2만TEU급 이상 선박이 서서히 발주되고 있다. 글로벌 메이저 선사들이 경쟁구도 속에서 비밀리에 발주하기 때문에, 조선 업체들은 이를 두고 전략적 발주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대형 컨테이너 해운사들은 대부분 해운동맹(얼라이언스)을 결성하고 있다. 현재 세계 3대 얼라이언스 간에 선박 효율성 제고 경쟁이 벌어지면서 대형 선박 발주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예를 들어 선대 규모 35만TEU인 현대상선이 2만TEU급 컨테이너선을 추가로 20척 정도 발주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계 선두권 해운동맹 선사의 경우 120만TEU에서 280만TEU사들이다.
신규 수주 선박가격 오를 세 가지 이유
한편 삼성중공업은 상선의 경우 해운 선복량 공급 과잉이 많이 해소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LNG 연료 수요는 과거 30년 간 연평균 5~6% 증가했다. 연 30척 발주되던 LNG선은 2014에 이례적으로 70척이나 발주됐다. 그 부작용이 2015~2017년까지의 발주 감소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발주 이후 용선처를 찾지 못하고 조선소에 잔류하던 선박들이 해소되기 시작하자 LNG선 발주가 다시 재개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올해와 내년 조선 업계의 회복 강도를 가늠할 신규 수주 선박가격(신조선가) 인상은 어떻게 될까. 신조선가는 조선업계의 수주 잔고와 관련이 있다. 조선 업계가 충분한 물량을 확보해 놓고 있으면 가격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 한마디로 쌀독에 쌀이 든든하게 차 있어야 큰소리 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조선 업계는 가격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캐퍼(생산능력) 감축을 진행하기도 한다. 업황이 좋을 때 조선소 슬롯은 신규 물량으로 채워진다. 불황일 때는 슬롯을 비워두지 않고 인위적인 캐퍼 축소 전략을 선택하기도 한다. 현대중공업의 군산조선소 폐쇄나 울산조선소 4번, 5번 도크 잠정 가동중단 같은 경우가 캐퍼 축소 전략의 사례다. 저가 수주를 해서라도 수주 잔고를 늘리려는 목적에는 앞으로 시장이 회복됐을 때 좀 더 높은 신조선가에 계약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을 수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올해 수주 잔고는 계속 증가할 것으로 본다”며 “조선사의 가격 협상력이 커져 신조선가는 점진적으로 인상되어 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올해 70억 달러대 후반에서 80억 달러 정도 수주하면 매출 기준 잔고(매출인식분만큼 지속적으로 수주 잔고에서 제거)가 2년 이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는 수주 잔고를 3년 이상 쌓아 왔는데 최근 몇 년 동안 1.5년에 못 미치는 수준에서 협상하다 보니 발주처에 비해 열세에 있었다”고 말했다.
수요 이월로 발주 서프라이즈 가능성
정상 발주를 초과하는 발주 어닝서프라이즈 가능성도 제기했다. 최 애널리스트는 “2016년의 발주 가뭄과 지난해의 부진은 경기 불확실이나 금융 경색, 선가 하락 대기 수요 등 일반 요인도 있지만 기술 변화에 따른 관망세가 더 큰 이유”라며”이런 수요가 이월됨으로써 최근 2년과는 정반대로 올해 발주서프라이즈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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