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리더 2030 | ART & CLASSIC] 선우예권 피아니스트 외 4인
[파워리더 2030 | ART & CLASSIC] 선우예권 피아니스트 외 4인
ART & CLASSIC 분야의 ‘2018 2030 파워리더’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선정됐다. 지난해 세계적 권위의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클래식의 저력을 다시 알린 그는 최근 예능 프로그램 출연으로 대중에게 더 알려졌다. 엘리트 코스를 밟은 천재임에도 그는 자수성가형 피아니스트로 ‘노력파’임을 자처한다. 몰입은 강렬했다. 대서사시의 한 장면이 펼쳐지는 듯했다. 건반 위를 조용히 흐르던 물결은 파도가 됐다가 숨이 멎듯 고요해지기를 반복했다. 섬세함과 웅장함이 숨 가쁘게 오갔고 이윽고 폭발적인 에너지가 터져 나왔다. 무대의 공기까지 꽉 쥐었다 펴는 마지막 음을 쳐낸 순간, 관중석은 환호로 뒤덮였다. 그의 두 손은 선율을 빚어내 청중을 전율시켰다.
1월 9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신년음악회에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29)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3번 제3악장’을 협연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은 작곡가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초월적 의지를 반영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3번 3악장은 협주곡 중 가장 고난도라고 한다. 작곡가 자신도 이 작품을 “코끼리를 위해 작곡했다”며 곤혹스러워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선우예권은 마치 이 곡을 통째로 삼킨 것 같았다.
‘북미의 쇼팽 콩쿠르’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 선우예권의 인터뷰를 앞두고 그의 연주를 직접 접한 건 참 ‘운이 좋았다’는 표현으로밖에 설명이 안 된다. 공연마다 전석 매진 열풍을 잇는 그가 한국에 있는 일정 또한 길지 않기 때문이다. 3~4일에 한 번 미국과 유럽을 오가고, 향후 3년 전 세계 연주일정까지 잡혀 있는 상태다.
선우예권은 2017년 6월 차이코프스키·쇼팽·퀸엘리자베스 콩쿠르와 더불어 세계적 권위의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첫 한국인이다. 전 세계 290명이 참가했다. 1962년 시작해 4년마다 열리는 이 대회 우승으로 한국 클래식음악의 저력을 세계에 알렸다. 2009년엔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2위에 입상했다.
최근 JTBC 예능프로그램 [이방인]에서 독일 뮌헨에서의 일상을 보여주며 대중에게 더 친숙해진 그는 통통한 볼살 덕에 ‘곰돌이 푸’, 피부가 뽀얘서 ‘깐 달걀, 모찌’ 등의 애칭도 붙었다. 반려견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검은색 마스크팩으로 피부관리를 하고 요리엔 서툰 모습으로 ‘클래식 아이돌’ 반열에 올라섰다. 인터뷰 사진 촬영을 위해 찾은 서울 잠실 롯데월드에서는 그의 이름을 반색하며 부르는 팬들도 눈에 띄었다.
만나자마자 선우예권의 두 손으로 시선이 향했다. 무대를 압도한, ‘피아니스트들이 탐내는 특별한 손’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는 손을 들어 이리저리 돌려보며 “저처럼 손이 투박하고 두툼하면 무겁고 깊은 소리를 낼 수 있는데 아마도 그런 힘 때문에 그렇게 보시는 것 같다”고 말한다.
선우예권은 이미 클래식계에서 자연스러운 프레이징과 본연에 충실하기로 알려진 실력파 피아니스트다.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를 수석 졸업하고 2005년 전액 장학생으로 미국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해 라흐마니노프 상을 받으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이후 줄리아드 음대 대학원, 매네스 음대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독일로 거처를 옮겨 현재 하노버 국립음대에서 베른트 괴츠케를 사사하고 있다.출전 마지막 기회에서 우승을 거머쥐다 불과 3년 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에 스포트라이트가 쏠릴 때 선우예권은 이 콩쿠르 예선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심기일전의 기회였다. 그래도 망설였다. “참가자 중 제가 나이도 많고 한국에서 쌓아온 커리어가 잘못하면 흠이 될 수도 있어서 고민이 됐어요.”
반 클라이번 대회에는 30세까지만 참가할 수 있다. 28세 선우예권에게 마지막 기회이기도 했다. 그만큼 더 집중했다. “다른 무대와 비교했을 때 5~6배는 연습했고, 24시간 콩쿠르 생각만 했던 것 같아요. 모든 연주자가 그렇겠지만 저도 음악에 사로잡혀서 다 쏟아 부었어요. 집에서 조립해야 할 옷장도 손을 다칠까봐 건드리지 않고 주변 연락도 자제했지요.”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이후, 선우예권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우승 상금은 5만 달러(약 5600만원), 연주료는 다섯 배 올랐고 해외무대 공연은 수십 배가 늘었다. 현재 미국의 반 클라이번 재단과 영국 매니지먼트 키노트, 국내 소속사가 동시에 그의 일정을 관리하고 있다.
밀려드는 연주회를 소화하느라 전 세계를 오가는 장거리 비행이 요즘 선우예권의 일상이다. 익숙해보였다. 잦은 시차 적응에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어느 정도 여행을 자주 다닐 수 있는 체력은 타고난 것 같다”며 “그래도 연주회 전에는 건강식을 많이 챙겨 먹으려 하고, 홍삼은 한국에서 나갈 때 꼭 사 간다”며 활짝 웃었다.
선우예권은 “비행으로 이동하는 때가 가장 편하다”고 말했다.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차로 대부분 이동하는 유럽 국가에서는 창 밖을 바라보는 시간도 즐긴다. 연주를 위한 감정과 상상력, 영감도 그렇게 채워진다. “그림은 조예가 없어서 색채감이나 느낌으로 영향 받아서 나타낼 수 있고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도 지나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걸으면서 생각하고, 풍경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이 연주할 때 반영되는 것 같아요.”
무대에서 바라보는 국가별 관중석의 각기 다른 반응도 투어 연주의 묘미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소리도 안 내고, 박수를 안 치기도 해요. 절제와 조용함 속에 있는 격려가 느껴지고, 러시아는 관중들이 박수를 딱딱 맞춰서 치기도 해요. 미국은 아시다시피 매우 자유로워서 기립이나 환호가 큰 편이고요.”
선우예권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피아노 영재치곤 다소 늦은 출발을 했다. 두 명의 누나가 피아노를 치는 걸 보고 흥미를 가져 배웠는데, 학원 선생이 “재능이 원석 같다”고 권유하며 피아니스트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스스로 악보를 찾아서 읽고 배우는 걸 즐겼다. 단선율 악기가 아닌 피아노처럼 노트가 많은 악보에서 그런 습관은 주효했다고 한다. 악보를 한 번만 봐도 구조나 흐름, 멜로디 라인을 금세 기억하는 편이었다.
선우예권은 총 여덟 번의 국제 콩쿠르 우승을 휩쓴 ‘콩킹(콩쿠르킹)’으로 불린다. 20대 대부분을 콩쿠르 도전으로 채웠다. 18세 플로리다 국제 콩쿠르부터 인터라켄, 윌리엄 카펠, 센다이, 방돔 프라이즈(베르비에 콩쿠르) 등에서 우승했다.
“콩쿠르, 반은 우승하고 반은 떨어졌다”한편 이렇게 콩쿠르를 도전한 이유가 생활비가 모자라서였다는 점은 대중에게 놀라움을 안겼다. 우승 상금은 생활비나 집세 등 생계로 이어졌다. 유학 시절 연주용 피아노 가격이 만만찮아 피아노를 사지 않고 학교 연습실에서 자정까지 연습했다고 한다.
“어릴 땐 박탈감 같은 게 있기도 했죠. 콤플렉스? 주변의 친구들이 명품시계 얘기를 하거나 갖고 다니는 현금을 자랑하거나 하면, 자괴감은 아니어도 위축되긴 했어요. 왜 어릴 때는 돈이 없으면 잘 못한 것처럼 숨기고 싶어 하고 그렇잖아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관이 없더라고요. 음악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단 생각이 들었거든요. 제가 가진 재능으로 다른 걸 생각할 수는 없었어요.”
선우예권은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미리 걱정하면 연주에 방해가 되거든요. 그래서 있지 않은 일을 앞서서 생각하지 않으려고 가족이나 주변에 이야기를 하지 않았죠.” 그의 말투에 왠지 모를 어른스러움이 짙게 묻어나는 것도 그 이유일까?
“반은 우승하고 반은 떨어졌다”는 콩쿠르 도전은 오히려 선우예권을 성장하게 했다. “치열한 경쟁의 무대는 다른 연주회보다도 스트레스가 많은데, 이런 경험들이 쌓여서 마인드 콘트롤하는 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떨어져도 ‘노력은 했으니 괜찮아, 혹은 노력을 안 했으니 당연해’ 등으로 받아들이게 됐어요. 점점 음악의 깊이를 알아가면서 나아졌지요. 안 좋은 일이 생겨도 우선순위를 잘 매겨서 집중하는 힘이 생긴 것 같아요.”
삶을 채워 준 스승들좋은 연주자들에게는 훌륭한 스승이 있기 마련이다. 그의 연주는 기억에 남는 가르침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스승의 이야기에 그는 더 즐거워 보였다.
미국 커티스 음악원에서 만난 세이무어 립킨 교수는 음악을 위해 다양한 경험을 권유했다고 한다. 책이나 오페라, 영화, 미술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 접하라고 했다. 어떤 곡을 접해도 연주자가 작곡가 성향과 개성을 살릴 수 있게 하려면 많은 감정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란다. 매네스 음대에서 만난 리처드 구드 교수는 할아버지 같은 분이다. “제일 오래, 6년간 함께 했는데 지금까지 음악가의 태도로선 모범이 되세요. 88세 고령에도 아침마다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 연습하시고 삶을 음악으로 채워가시거든요.”
지금 선우예권을 가르치는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 베른트 괴츠케 교수는 콩쿠르 우승을 이끌어준 스승이기도 하다. “괴츠케 선생님은 악보에 충실함을 강조하셨는데, 곡의 세밀하고 디테일한 부분을 신경 써서 본질적인 감정까지 파악하게 하시는 데 도움을 주셨어요. 음악에 대한 생각들을 밀도 있게 붙잡아 주셨지요.”
선우예권은 한 언론에서 “제가 생각하는 슬픔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슴으로 붙잡고 있는 것. 꾹꾹 눌러 담고 있다가 넘치면 툭 하고 가볍게 흐르는 게 슬픔인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좋아하는 음악가는 망설임 없이 슈베르트를 꼽는다. “가곡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슈베르트의 모든 곡은 노래하듯 쓰여져 있고, 겉으로는 밝고 희망을 가득 품고 있지만 멜로디의 슬픔이 잔잔하게 아려 있다”며 “고달픈 생을 살다 가서인지 뭉클함과 여운이 오래 남는다”고 설명한다.
선우예권은 앞으로도 노력파 피아니스트로 불리고 싶다고 했다. “저 스스로 타고난 천재나 영재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뿐더러 뭐든 노력을 해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머리와 손으로 하는 게 아니라 감정을 느끼는 연주자 활동을 하려면 계속 노력해야죠.”
연애나 결혼관을 물었다. 어떤 질문에도 의연하던 그가 쑥스러운 웃음을 감추지 않는다. “글쎄요. 저도 연주자로선 말도 안 되는 예민함과 까칠함을 가지고 있는데, 그걸 다 이해해주고 받아줄 수 있는 사람? 이렇게 말해도 되나요?”(웃음)
‘미쳐야 미친다(불광불급, 不狂不及)’. 그와의 인터뷰를 하며 떠오른 구절이다. 선우예권의 연주는 삶이고 몰입으로 보인다. 서른의 길목에 들어선 그는 세계 무대를 향해 이제 막 날갯짓을 시작했을 뿐이다. 유의정 작가는 전통적인 도자 형태에 현대의 문화와 현상을 기록하는 작업을 선보인 현대미술 작가다. 현대문화를 상징하는 아이템들을 융합해 입체화시킨다. 2006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도예유리과를 졸업, 도예과 석사를 거쳐 박사과정을 이수했다. 김해 클레이아크 미술관에서 2014~5년 레지던시 작가로 활동했다. 2015년 2월에는 인도의 Kalakshetra Foundation에서 단기 레지던시 작가로 전시를 여는 등 외부활동도 활발히 했다.
그가 매 전시에서 하는 일이 있는데, 바로 신작을 선보이면서 전시장 주변에 도자기를 묻는 것이다. 유행하고 있거나 각광받는 기호적 가치를 차용하는 것을 넘어서 본질적으로 인간이 갖고 있는 욕망의 구조나 사화문화적인 현상들을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
‘일상과 예술’의 경계에서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도자기를 만든다. 유물로서 도자기는 예술 측면도 지녔지만 역사와 삶을 유추하는 기능도 한다. 도자기는 과거의 형태를 입고 현재의 기록을 전사한 기록물의 일종이다. 일련의 행보에는 여느 현대 도예가들과는 다른 지점이 많다. 도자기인 듯 그림인 듯 양면적으로 보이게 한다. 작가는 흙에 유약을 발라서 많게는 7번 정도까지 굽는데, 순차적으로 위에 이미지를 얹히는 방식으로 온도까지 달리하며 굽는다. 물감이 아래로 흘러내린 형태도 있고, 뚜렷하게 그림이 얹힌 형태도 있다. 눕힌 상태의 전시뿐 아니라 마치 그림처럼 벽에 걸어 전시하기도 한다. 많은 비평가들은 유의정이 현대 도예가인지 현대미술 작가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김봄소리는 탁월한 음악성을 바탕으로 전 세계 청중을 매료시키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다.
예원중·예원예고·서울대를 수석으로 입학, 졸업했고 현재 뉴욕 줄리어드에서 석사과정 졸업 후 아티스트 디플로마 과정 중이다.
세계 굴지의 콩쿠르에 잇달아 입상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2016년 제15회 국제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 2016년 앨리스 엘리노어 쉔펠드 국제 현악 콩쿠르, 2016년 몬트리올 국제콩쿠르 등에서 2위를 수상했다. 2010년 제10회 시벨리우스 국제콩쿠르에 한국인 연주자로는 유일하게 입상해 2011년 차이나 국제 콩쿠르 우승, 2012년 하노버 콩쿠르에 이어 입상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녀의 연주는 핀란드 현지 언론과 비평가들로부터 ‘신선하고 탁월한 음악성으로 청중을 매혹시킨 연주자’로 호평 받았다.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는 이번 선정에서 김봄소리의 연주를 “관중이 완전히 몰입한 마법에 빠진 비둘기 같다”고 평했다. 국내외 저명한 지휘자들의 러브콜을 받으며 ‘가장 궁금한 연주자’로 주목받고 있다.
2017년 바르샤바 필하모닉, 마에스트로 야첵 카스프쉬크와 첫 음반 작업을 함께했고 비에니아프스키 협주곡 2번과 쇼스타코비치 협주곡 1번을 담은 앨범을 워너 클래식(Warner Classics) 레이블로 전 세계 동시 발매되었다. 2018년 라파우 블레하츠와 듀오 리사이틀로 유럽투어를 예정 중인 김봄소리는 또 한 번 새로운 도약을 앞두고 있다. 정윤경 작품은 미학적으로 동양적이면서도 실험정신이 과감한 것으로 평이 났다. 이화여자대학교 조형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2005년 영국으로 갔다. 2008년 저명한 Slade School of Fine Art (University College London)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캔버스 위의 단색화가 극세사 위의 유색화로 변하고, 전통적 색칠 기법과 디지털 기술을 차용하기도 하는 등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그의 작품은 “예술가로 하여금 자꾸자꾸 돌아보게 하는 영감과 격려의 원천인 시상(muse)을 가졌다”는 호평을 받았다. 박은주 전시기획자는 선정 이유를 “정 작가의 에너지는 기하학적이고 건축적인 구조가 조화롭게 충돌한다”고 말했다.
아트바젤 홍콩(Gallery EXIT), 아트센트럴 홍콩, LA아트쇼 (Gallery Koo) 등 다수의 페어에 참가했다. 햄퍼스 바자르 아트 매거진(러시아)에 150주년 기념 커버이미지를 위한 5인의 아티스트로 꼽혔다. 삼성 더 프레임 TV를 위한 37명의 아티스트로 선정되기도 했다. 미술계에서 예술 TV로 평가 받고 있는 ‘더 프레임’은 아트 모드로 TV가 꺼져 있을 때 검은 화면 대신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Tiroche DeLeon Collection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고, 2016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에 작품이 소장됐다. 소더비 홍콩에 출품되어 낙찰되기도 했다. 벨기에에서 개인전을 여는 등 국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 오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신진 작가 융성에 힘쓰는 젊은 갤러리인 Gallery Koo를 통해 작품을 알리고 있다. 문성식은 2005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를 졸업하고 2008년 동 대학교 전문사 과정을 마쳤다. 2005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의 최연소 작가로 참여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작가의 풍경화에 세필 붓으로 표현된 사실적이고 인공적인 나무는 대표작품 이미지다. 그의 그림에서는 배경이 생략되고, 몇몇 대상들만이 무대 주인공처럼 세밀하게 묘사가 이루어져 있다. “그의 풍경들은 인공적이면서도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하고 독특한, 마치 조화(造花)와 같은 풍경화의 스타일을 취하고 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정신 없이 변하는 현대의 풍경 속에서 다른 유형의 풍경화를 그려내고자 노력해 왔다.
또 연필 드로잉 작품도 볼 수 있는데, 연필의 흑색으로 표현되어 동양적인 느낌을 준다. 드로잉 작품엔 인물과 동물이 종종 등장하며 이야기를 이루는데 이는 작가의 의식을 유머스럽고 담담하게 보여준다. 문성식은 2006년 ‘바람없는 풍경’이라는 주제로 [키미아트]에서 개인전을 가진 바 있으며, 국제갤러리에서는 2007년 [On Painting]을 주제로 해 동양적인 느낌의 드로잉 작품으로 그룹전을 선보인 바 있다. 올해 11월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 파워리더 선정 이렇게 했습니다ART & CLASSIC분야의 2030 유망주 선정은 2017년 12월 말부터 올해 1월 5일까지 약 2주에 걸쳐 5명의 심사위원(명단은 아래)의 도움을 받아 진행했다. 미술과 클래식 분야 심사위원은 각 분야에서는 명망이 있거나 다양한 네트워크를 형성한 인물로 구성했고, 유망주 선정은 1차와 2차로 나눠 진행했다. 1차에서는 5명의 심사위원에게 각각 6명씩의 후보를 추천 받았고, 총 30여 명의 후보에서 젊고 중복 추천을 받은 순으로 진행했다. 2차에서는 심사위원 추천자 중 가장 우선 순위로 꼽은 한 명을 각 분야 선정자로 최종 선발하는 방식이었다.
※ 심사위원 - 금난새 지휘자, 박은주 전시 기획자 및 예술가 에이전트, 양정무 한국예술종합대학교 교수, 이지윤 ‘숨’ 프로젝트 대표,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가나다 순)
-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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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9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신년음악회에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29)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3번 제3악장’을 협연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은 작곡가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초월적 의지를 반영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3번 3악장은 협주곡 중 가장 고난도라고 한다. 작곡가 자신도 이 작품을 “코끼리를 위해 작곡했다”며 곤혹스러워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선우예권은 마치 이 곡을 통째로 삼킨 것 같았다.
‘북미의 쇼팽 콩쿠르’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 선우예권의 인터뷰를 앞두고 그의 연주를 직접 접한 건 참 ‘운이 좋았다’는 표현으로밖에 설명이 안 된다. 공연마다 전석 매진 열풍을 잇는 그가 한국에 있는 일정 또한 길지 않기 때문이다. 3~4일에 한 번 미국과 유럽을 오가고, 향후 3년 전 세계 연주일정까지 잡혀 있는 상태다.
선우예권은 2017년 6월 차이코프스키·쇼팽·퀸엘리자베스 콩쿠르와 더불어 세계적 권위의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한 첫 한국인이다. 전 세계 290명이 참가했다. 1962년 시작해 4년마다 열리는 이 대회 우승으로 한국 클래식음악의 저력을 세계에 알렸다. 2009년엔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2위에 입상했다.
최근 JTBC 예능프로그램 [이방인]에서 독일 뮌헨에서의 일상을 보여주며 대중에게 더 친숙해진 그는 통통한 볼살 덕에 ‘곰돌이 푸’, 피부가 뽀얘서 ‘깐 달걀, 모찌’ 등의 애칭도 붙었다. 반려견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검은색 마스크팩으로 피부관리를 하고 요리엔 서툰 모습으로 ‘클래식 아이돌’ 반열에 올라섰다. 인터뷰 사진 촬영을 위해 찾은 서울 잠실 롯데월드에서는 그의 이름을 반색하며 부르는 팬들도 눈에 띄었다.
만나자마자 선우예권의 두 손으로 시선이 향했다. 무대를 압도한, ‘피아니스트들이 탐내는 특별한 손’을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는 손을 들어 이리저리 돌려보며 “저처럼 손이 투박하고 두툼하면 무겁고 깊은 소리를 낼 수 있는데 아마도 그런 힘 때문에 그렇게 보시는 것 같다”고 말한다.
선우예권은 이미 클래식계에서 자연스러운 프레이징과 본연에 충실하기로 알려진 실력파 피아니스트다. 예원학교와 서울예고를 수석 졸업하고 2005년 전액 장학생으로 미국 커티스 음악원에 입학해 라흐마니노프 상을 받으며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이후 줄리아드 음대 대학원, 매네스 음대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독일로 거처를 옮겨 현재 하노버 국립음대에서 베른트 괴츠케를 사사하고 있다.출전 마지막 기회에서 우승을 거머쥐다 불과 3년 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에 스포트라이트가 쏠릴 때 선우예권은 이 콩쿠르 예선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심기일전의 기회였다. 그래도 망설였다. “참가자 중 제가 나이도 많고 한국에서 쌓아온 커리어가 잘못하면 흠이 될 수도 있어서 고민이 됐어요.”
반 클라이번 대회에는 30세까지만 참가할 수 있다. 28세 선우예권에게 마지막 기회이기도 했다. 그만큼 더 집중했다. “다른 무대와 비교했을 때 5~6배는 연습했고, 24시간 콩쿠르 생각만 했던 것 같아요. 모든 연주자가 그렇겠지만 저도 음악에 사로잡혀서 다 쏟아 부었어요. 집에서 조립해야 할 옷장도 손을 다칠까봐 건드리지 않고 주변 연락도 자제했지요.”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이후, 선우예권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우승 상금은 5만 달러(약 5600만원), 연주료는 다섯 배 올랐고 해외무대 공연은 수십 배가 늘었다. 현재 미국의 반 클라이번 재단과 영국 매니지먼트 키노트, 국내 소속사가 동시에 그의 일정을 관리하고 있다.
밀려드는 연주회를 소화하느라 전 세계를 오가는 장거리 비행이 요즘 선우예권의 일상이다. 익숙해보였다. 잦은 시차 적응에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어느 정도 여행을 자주 다닐 수 있는 체력은 타고난 것 같다”며 “그래도 연주회 전에는 건강식을 많이 챙겨 먹으려 하고, 홍삼은 한국에서 나갈 때 꼭 사 간다”며 활짝 웃었다.
선우예권은 “비행으로 이동하는 때가 가장 편하다”고 말했다.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차로 대부분 이동하는 유럽 국가에서는 창 밖을 바라보는 시간도 즐긴다. 연주를 위한 감정과 상상력, 영감도 그렇게 채워진다. “그림은 조예가 없어서 색채감이나 느낌으로 영향 받아서 나타낼 수 있고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도 지나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걸으면서 생각하고, 풍경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이 연주할 때 반영되는 것 같아요.”
무대에서 바라보는 국가별 관중석의 각기 다른 반응도 투어 연주의 묘미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소리도 안 내고, 박수를 안 치기도 해요. 절제와 조용함 속에 있는 격려가 느껴지고, 러시아는 관중들이 박수를 딱딱 맞춰서 치기도 해요. 미국은 아시다시피 매우 자유로워서 기립이나 환호가 큰 편이고요.”
선우예권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피아노 영재치곤 다소 늦은 출발을 했다. 두 명의 누나가 피아노를 치는 걸 보고 흥미를 가져 배웠는데, 학원 선생이 “재능이 원석 같다”고 권유하며 피아니스트의 길을 걷게 됐다. 그는 스스로 악보를 찾아서 읽고 배우는 걸 즐겼다. 단선율 악기가 아닌 피아노처럼 노트가 많은 악보에서 그런 습관은 주효했다고 한다. 악보를 한 번만 봐도 구조나 흐름, 멜로디 라인을 금세 기억하는 편이었다.
선우예권은 총 여덟 번의 국제 콩쿠르 우승을 휩쓴 ‘콩킹(콩쿠르킹)’으로 불린다. 20대 대부분을 콩쿠르 도전으로 채웠다. 18세 플로리다 국제 콩쿠르부터 인터라켄, 윌리엄 카펠, 센다이, 방돔 프라이즈(베르비에 콩쿠르) 등에서 우승했다.
“콩쿠르, 반은 우승하고 반은 떨어졌다”한편 이렇게 콩쿠르를 도전한 이유가 생활비가 모자라서였다는 점은 대중에게 놀라움을 안겼다. 우승 상금은 생활비나 집세 등 생계로 이어졌다. 유학 시절 연주용 피아노 가격이 만만찮아 피아노를 사지 않고 학교 연습실에서 자정까지 연습했다고 한다.
“어릴 땐 박탈감 같은 게 있기도 했죠. 콤플렉스? 주변의 친구들이 명품시계 얘기를 하거나 갖고 다니는 현금을 자랑하거나 하면, 자괴감은 아니어도 위축되긴 했어요. 왜 어릴 때는 돈이 없으면 잘 못한 것처럼 숨기고 싶어 하고 그렇잖아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관이 없더라고요. 음악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단 생각이 들었거든요. 제가 가진 재능으로 다른 걸 생각할 수는 없었어요.”
선우예권은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미리 걱정하면 연주에 방해가 되거든요. 그래서 있지 않은 일을 앞서서 생각하지 않으려고 가족이나 주변에 이야기를 하지 않았죠.” 그의 말투에 왠지 모를 어른스러움이 짙게 묻어나는 것도 그 이유일까?
“반은 우승하고 반은 떨어졌다”는 콩쿠르 도전은 오히려 선우예권을 성장하게 했다. “치열한 경쟁의 무대는 다른 연주회보다도 스트레스가 많은데, 이런 경험들이 쌓여서 마인드 콘트롤하는 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떨어져도 ‘노력은 했으니 괜찮아, 혹은 노력을 안 했으니 당연해’ 등으로 받아들이게 됐어요. 점점 음악의 깊이를 알아가면서 나아졌지요. 안 좋은 일이 생겨도 우선순위를 잘 매겨서 집중하는 힘이 생긴 것 같아요.”
삶을 채워 준 스승들좋은 연주자들에게는 훌륭한 스승이 있기 마련이다. 그의 연주는 기억에 남는 가르침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스승의 이야기에 그는 더 즐거워 보였다.
미국 커티스 음악원에서 만난 세이무어 립킨 교수는 음악을 위해 다양한 경험을 권유했다고 한다. 책이나 오페라, 영화, 미술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 접하라고 했다. 어떤 곡을 접해도 연주자가 작곡가 성향과 개성을 살릴 수 있게 하려면 많은 감정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란다. 매네스 음대에서 만난 리처드 구드 교수는 할아버지 같은 분이다. “제일 오래, 6년간 함께 했는데 지금까지 음악가의 태도로선 모범이 되세요. 88세 고령에도 아침마다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 연습하시고 삶을 음악으로 채워가시거든요.”
지금 선우예권을 가르치는 독일 하노버 국립음대 베른트 괴츠케 교수는 콩쿠르 우승을 이끌어준 스승이기도 하다. “괴츠케 선생님은 악보에 충실함을 강조하셨는데, 곡의 세밀하고 디테일한 부분을 신경 써서 본질적인 감정까지 파악하게 하시는 데 도움을 주셨어요. 음악에 대한 생각들을 밀도 있게 붙잡아 주셨지요.”
선우예권은 한 언론에서 “제가 생각하는 슬픔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가슴으로 붙잡고 있는 것. 꾹꾹 눌러 담고 있다가 넘치면 툭 하고 가볍게 흐르는 게 슬픔인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인지 좋아하는 음악가는 망설임 없이 슈베르트를 꼽는다. “가곡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슈베르트의 모든 곡은 노래하듯 쓰여져 있고, 겉으로는 밝고 희망을 가득 품고 있지만 멜로디의 슬픔이 잔잔하게 아려 있다”며 “고달픈 생을 살다 가서인지 뭉클함과 여운이 오래 남는다”고 설명한다.
선우예권은 앞으로도 노력파 피아니스트로 불리고 싶다고 했다. “저 스스로 타고난 천재나 영재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뿐더러 뭐든 노력을 해야 결실을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머리와 손으로 하는 게 아니라 감정을 느끼는 연주자 활동을 하려면 계속 노력해야죠.”
연애나 결혼관을 물었다. 어떤 질문에도 의연하던 그가 쑥스러운 웃음을 감추지 않는다. “글쎄요. 저도 연주자로선 말도 안 되는 예민함과 까칠함을 가지고 있는데, 그걸 다 이해해주고 받아줄 수 있는 사람? 이렇게 말해도 되나요?”(웃음)
‘미쳐야 미친다(불광불급, 不狂不及)’. 그와의 인터뷰를 하며 떠오른 구절이다. 선우예권의 연주는 삶이고 몰입으로 보인다. 서른의 길목에 들어선 그는 세계 무대를 향해 이제 막 날갯짓을 시작했을 뿐이다.
유의정(37) | 현대미술(도예) 작가
그가 매 전시에서 하는 일이 있는데, 바로 신작을 선보이면서 전시장 주변에 도자기를 묻는 것이다. 유행하고 있거나 각광받는 기호적 가치를 차용하는 것을 넘어서 본질적으로 인간이 갖고 있는 욕망의 구조나 사화문화적인 현상들을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
‘일상과 예술’의 경계에서 ‘사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도자기를 만든다. 유물로서 도자기는 예술 측면도 지녔지만 역사와 삶을 유추하는 기능도 한다. 도자기는 과거의 형태를 입고 현재의 기록을 전사한 기록물의 일종이다. 일련의 행보에는 여느 현대 도예가들과는 다른 지점이 많다. 도자기인 듯 그림인 듯 양면적으로 보이게 한다. 작가는 흙에 유약을 발라서 많게는 7번 정도까지 굽는데, 순차적으로 위에 이미지를 얹히는 방식으로 온도까지 달리하며 굽는다. 물감이 아래로 흘러내린 형태도 있고, 뚜렷하게 그림이 얹힌 형태도 있다. 눕힌 상태의 전시뿐 아니라 마치 그림처럼 벽에 걸어 전시하기도 한다. 많은 비평가들은 유의정이 현대 도예가인지 현대미술 작가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김봄소리(29) | 바이올리니스트
예원중·예원예고·서울대를 수석으로 입학, 졸업했고 현재 뉴욕 줄리어드에서 석사과정 졸업 후 아티스트 디플로마 과정 중이다.
세계 굴지의 콩쿠르에 잇달아 입상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2016년 제15회 국제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 2016년 앨리스 엘리노어 쉔펠드 국제 현악 콩쿠르, 2016년 몬트리올 국제콩쿠르 등에서 2위를 수상했다. 2010년 제10회 시벨리우스 국제콩쿠르에 한국인 연주자로는 유일하게 입상해 2011년 차이나 국제 콩쿠르 우승, 2012년 하노버 콩쿠르에 이어 입상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녀의 연주는 핀란드 현지 언론과 비평가들로부터 ‘신선하고 탁월한 음악성으로 청중을 매혹시킨 연주자’로 호평 받았다.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는 이번 선정에서 김봄소리의 연주를 “관중이 완전히 몰입한 마법에 빠진 비둘기 같다”고 평했다. 국내외 저명한 지휘자들의 러브콜을 받으며 ‘가장 궁금한 연주자’로 주목받고 있다.
2017년 바르샤바 필하모닉, 마에스트로 야첵 카스프쉬크와 첫 음반 작업을 함께했고 비에니아프스키 협주곡 2번과 쇼스타코비치 협주곡 1번을 담은 앨범을 워너 클래식(Warner Classics) 레이블로 전 세계 동시 발매되었다. 2018년 라파우 블레하츠와 듀오 리사이틀로 유럽투어를 예정 중인 김봄소리는 또 한 번 새로운 도약을 앞두고 있다.
정윤경(37) | 회화, 현대미술 작가
캔버스 위의 단색화가 극세사 위의 유색화로 변하고, 전통적 색칠 기법과 디지털 기술을 차용하기도 하는 등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그의 작품은 “예술가로 하여금 자꾸자꾸 돌아보게 하는 영감과 격려의 원천인 시상(muse)을 가졌다”는 호평을 받았다. 박은주 전시기획자는 선정 이유를 “정 작가의 에너지는 기하학적이고 건축적인 구조가 조화롭게 충돌한다”고 말했다.
아트바젤 홍콩(Gallery EXIT), 아트센트럴 홍콩, LA아트쇼 (Gallery Koo) 등 다수의 페어에 참가했다. 햄퍼스 바자르 아트 매거진(러시아)에 150주년 기념 커버이미지를 위한 5인의 아티스트로 꼽혔다. 삼성 더 프레임 TV를 위한 37명의 아티스트로 선정되기도 했다. 미술계에서 예술 TV로 평가 받고 있는 ‘더 프레임’은 아트 모드로 TV가 꺼져 있을 때 검은 화면 대신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Tiroche DeLeon Collection에서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고, 2016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에 작품이 소장됐다. 소더비 홍콩에 출품되어 낙찰되기도 했다. 벨기에에서 개인전을 여는 등 국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 오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는 신진 작가 융성에 힘쓰는 젊은 갤러리인 Gallery Koo를 통해 작품을 알리고 있다.
문성식(38) | 회화 작가
또 연필 드로잉 작품도 볼 수 있는데, 연필의 흑색으로 표현되어 동양적인 느낌을 준다. 드로잉 작품엔 인물과 동물이 종종 등장하며 이야기를 이루는데 이는 작가의 의식을 유머스럽고 담담하게 보여준다. 문성식은 2006년 ‘바람없는 풍경’이라는 주제로 [키미아트]에서 개인전을 가진 바 있으며, 국제갤러리에서는 2007년 [On Painting]을 주제로 해 동양적인 느낌의 드로잉 작품으로 그룹전을 선보인 바 있다. 올해 11월 국제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준비 중이다.
※ 파워리더 선정 이렇게 했습니다ART & CLASSIC분야의 2030 유망주 선정은 2017년 12월 말부터 올해 1월 5일까지 약 2주에 걸쳐 5명의 심사위원(명단은 아래)의 도움을 받아 진행했다. 미술과 클래식 분야 심사위원은 각 분야에서는 명망이 있거나 다양한 네트워크를 형성한 인물로 구성했고, 유망주 선정은 1차와 2차로 나눠 진행했다. 1차에서는 5명의 심사위원에게 각각 6명씩의 후보를 추천 받았고, 총 30여 명의 후보에서 젊고 중복 추천을 받은 순으로 진행했다. 2차에서는 심사위원 추천자 중 가장 우선 순위로 꼽은 한 명을 각 분야 선정자로 최종 선발하는 방식이었다.
※ 심사위원 - 금난새 지휘자, 박은주 전시 기획자 및 예술가 에이전트, 양정무 한국예술종합대학교 교수, 이지윤 ‘숨’ 프로젝트 대표,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가나다 순)
-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사진 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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