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원의 ‘CEO를 위한 생태학 산책’(21) 인간은 걸어야 한다, 왜?] 더 큰 능력을 얻고 더 넓은 세상을 만나다
[서광원의 ‘CEO를 위한 생태학 산책’(21) 인간은 걸어야 한다, 왜?] 더 큰 능력을 얻고 더 넓은 세상을 만나다
걷기 덕에 뇌 용량 커지고 다양한 발성 가능해져 … “모든 걸 잃었을 때도 계속 걸어야” 캄캄한 어둠 속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바짝 말라 부서질 듯한 몸으로 걷고 있다. 계속 갈 수 있을까 싶은데 다시 보면 다른 게 보인다. 계속 갈 것 같다. 어떤 의지가 있는 것 같다.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스위스 출신의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전시관에는 어딘가로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말 그대로 자코메티의 대표작 ‘걸어가는 사람’이다. 얼핏 보면 인간적이지 않은 것 같은데 다시 보면 또 인간적인 그런 사람이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으로부터 찬탄을 받는지, 무슨 이유로 몸값이 1200억원이나 되는지 직접 보니 알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자코메티는 생전에 이 ‘걸어가는 사람’을 여섯 점 만들었는데 그중 한 점이 2010년 2월 소더비 런던 경매에서 무려 6500만 파운드에 팔렸다). 어둠 속을 하염없이 걸어가는 그는 길고 부서질 듯한 모습에 살이 하나도 없다. 뼈만 있는 듯 앙상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인간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보면 볼수록 인간적인 느낌이 든다. 약한 듯 보이지만 절대 약할 것 같지 않은 모습에서, 왠지 고독한 것 같고 불안한 것 같은데 그럼에도 계속 나아가고 있는 모습에서 그런 느낌이 든다. 더구나 가야 할 곳을 가고 있는 이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조용하지만 살아있는 눈빛이 있다. 지금 헤매거나 방황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시선이다. 이 묘한 느낌의 실체가 뭘까, 싶어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찬찬히 몇 번을 둘러보고 있는데 가만 보니 그런 사람들이 또 있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건축을 한다는 사업가가 이런 말을 했다. “이상하게 계속 보게 되네요. 그렇죠?”
그래서일까? 걸어가는 사람을 옆에서 보니 그 모습이 사람 인(人)처럼 보였다. 자코메티는 왜 인간을 이런 ‘걸어가는 사람’으로 표현했고, 우리는 왜 이 ‘걸어가는 사람’에게서 묘한 인간적인 느낌을 느끼는 걸까? 1200억원이라는 몸값은 아마도 이 ‘걸어가는 사람’이 인간 본연의 가치를 의미 있게 표현했다는 숫자일 텐데, 이 엄청난 숫자는 어디서 나온 걸까? 우리 인류가 살아온 궤적에 그 실마리가 있을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180만~150만년 전, 인류의 발상지라고 여겨지는 아프리카 동부와 남부에는 두 종류의 인류가 살고 있었다. 파란트로푸스 로부스투스와 호모 에스가스테르였다. 그들은 서로 달랐다. 생긴 모습도 달랐고 살아가는 방식, 그러니까 생존전략도 달랐다. 파란트로푸스는 키가 작고(약 150cm) 땅딸막했으며 얼굴이 둥글었다. 이와 달리 호모 에스가스테르는 키가 크고(약 170cm) 날씬했다. 어느 생명체나 현재의 모습은 그 생명체가 지금까지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는지를 나타내 주는 생존전략의 결과다. 이 두 인류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이들이 살던 아프리카는 대단한 변화를 겪고 있었다. 200만년 전쯤부터 가파르게 건조해지기 시작한 기후는 오랫동안 우거졌던 숲을 빠르게 초원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리 크지 않았던 사하라 사막이 대폭 넓어진 것도 이때였다. 인류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하지만 적응하는 방식이 달랐다. 당시 그들이 남긴 유물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파란트로푸스는 새로운 식량을 땅속에서 찾았던 것 같다. 발굴되는 그들의 어금니에는 작은 흠집이 많다. 그 이전 인류 조상의 어금니가 매끈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흠집은 그 이전의 인류가 먹지 않았던 걸 파란트로푸스가 먹었다는 걸 의미한다. 무엇이었을까? 모래가 많은 것, 그러니까 땅 속에 있는 식물의 뿌리였다. 이 먹거리는 지금도 전통 채집으로 살아가고 있는 아프리카 사람의 인기 메뉴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유골에는 큰 어금니와 함께 턱 아래쪽까지 길게 이어지는 측두근이 크게 발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얼굴이 둥글어진 이유다.
키가 크고 날씬한 에스가스테르는 다른 식량을 개발했다. 초원에는 수많은 초식동물이 살기에 자연사한 동물도 많고, 사자나 표범, 치타 같은 전통적인 사냥꾼이 먹고 남긴 고기도 꽤 된다. 이 사냥꾼들은 뼈에 붙은 고기나 뼈 속 골수까지 먹지 않기에 이걸 식량화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유골과 같이 발견되는 동물의 뼈에 작은 흠집이 있다. 뼈를 살뜰하게 발라 먹는 전략을 개발한 것이다. 이런 고기는 소화가 잘 될 뿐 아니라 에너지가 많아 성장에도 도움이 되었기에 꽤 괜찮은 생존방식이었다. 문제는 이런 고기를 언제 발견할지 모른다는 것과 항상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렇기에 많이 걸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키가 크지만 날씬해질 수밖에 없었다. 채식도 했지만 주식은 육식이었던 것 같다.
채식과 육식, 둘 다 괜찮은 방법이었는지 두 인류 모두 수백 만년 동안 나름 번성했다. 그런데 100만년 전부터 이 둘 중 하나의 화석이 뚝 끊긴다. 화석이 끊긴다는 건 멸종했다는 의미다. 누구였을까? 파란트로푸스였다. 인류의 역사에 나타난 20여종의 인류가 그러했던 것처럼 파란트로푸스도 어떤 환경 변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사라진 것이다. 왜 사라졌을까? 정확한 이유는 아직 모르지만 멸종한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면 호모 에스가스테르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역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화석에서 나타나는 분명한 특징 중 하나는 멸종한 파란트로푸스보다 뇌가 훨씬 컸다는 것이다. 사실 20여종의 인류사에서도 이 공통점은 일관되게 나타난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닥친 생존의 고비를 견뎌내고 살아남은 인류는 이전 인류의 뇌나 멸종한 인류의 뇌보다 컸다. 자신들에게 닥친 격변을 이겨내면서 뇌가 커졌다는 게 정설인데, 그렇다면 그런 격변을 이겨내는 데 뇌가 도움이 되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파란트로푸스의 뇌 용량은 침팬지보다 조금 더 큰 500ml였던 반면 살아남은 에스가스테르의 뇌는 900ml였다. 호모 에스가스테르 이후에 나타난 호모 에렉투스는 1000ml를 넘었다. 현재 호모 사피엔스의 평균 뇌 크기는 1400ml쯤 된다.
하지만 더 큰 뇌보다 훨씬 근원적인 특징이 있다. 살아남은 인류는 더 많이 걸었다. 더 많이 걸었다는 건 더 넓은 세상을 살았다는 것이고, 여기서 살아남았다는 건 이 넓은 세상에서 더 나은 기회를 찾았다는 의미다. 사실 걷는 건 우리 인류가 인류로서 발걸음을 시작한 최초의 특징이기도 했다. 숲에 머문 유인원들과 달리 초원으로 나온 인류는 직립보행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이를 통해 삶의 능력을 높여갔다. 예를 들어 뇌 용량이 1000ml를 넘은 호모 에렉투스는 최초로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통해 전 세계로 나아간 최초의 인류였다. 그들은 자신의 영역을 떠나 불확실한 다른 세상으로 걸어가 새로운 세상을 개척한 인류였다. 이들에 이어 나타난 호모 사피엔스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한 두 번째 주인공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걷기 덕분에 인류 최대의 특징인 뇌가 커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인류는 두 발로 걷게 되면서 얻은 손으로 도구를 제작하고 사용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효과적으로 먹이를 구할 수 있었다. 특히 고기를 더 많이 섭취하면서 이빨과 턱이 작아지기 시작했는데 이때 생각지도 않은 ‘부작용’이 나타났다. 이렇게 생겨난 공간에 더 큰 뇌를 장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초원에 늦게 진출했기에 사자나 표범처럼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을 가지지 못한 데다 덩치도 없어 약자에 불과했던 인류는 뇌를 키워 더 나은 존재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뇌는 효과적이었다. 주변 상황을 좀 더 똑똑하게 파악할 수 있는 인지능력으로 어느 생명체보다 위기와 기회를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알아차릴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인류는 저 너머의 수풀 사이로 지나간 아주 작은 뭔가만 보고도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작은 부분만 보고도 전체를 떠올릴 수 있는 능력은 높은 지능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지금도 낌새를 통해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은 중요한 삶의 능력이다).
‘부작용’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몸을 수직으로 세워 걷다 보니 목 안의 후두가 아랫쪽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이 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물론 변화가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음식이 식도가 아니라 숨구멍(기도)으로 들어가면 질식사할 수 있었다.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는 아기들은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은 감수하고도 남을 만한 것이었다. 후두가 위쪽에 있을 때보다 훨씬 많은 소리를 낼 수 있어 어느 생명체보다 다양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언어의 탄생은 이렇게 시작됐다.
언어의 탄생은 뇌가 커지는 것만큼이나 엄청난 성장동력을 인류에게 가져다 주었다. 언어를 사용하게 되면서 인류는 훨씬 정교하면서도 탁월한 협력을 할 수 있었고, 후세에게 자신들이 획득한 생존기술을 전해줄 수 있었다. 언어가 없다면 대규모 협력은 꿈도 꿀 수 없는 건 물론이고, 계획도 제대로 세울 수 없다. 서로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어야 아이디어를 교환할 수 있고 그걸 더 나은 걸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게 아닌가. 예를 들어 사슴은 새끼에게 어떤 동물이 위험한지 알려줄 수 없다. 오랜 시간 유전자를 통해 본능으로 알려주거나 직접 경험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두 방법은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위험하다. 인류는 말을 통해 가르쳐 줄 수 있다. 기술을 전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존의 지혜를 전할 수 있다. 부산물치고는 엄청난 부산물이었다. 문제 해결 능력과 정보 축적 능력을 동시에 대폭 향상시킨 것이다.
뛰어난 인지능력으로 위기와 기회를 누구보다 빨리 찾아낼 수 있고, 손으로는 효과적인 무기를 만들 수 있으며 어느 동물보다 정교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으로 세밀한 협력을 할 수 있는 건 인류와 다른 생명체를 구분하는 대표적인 차이다. 인류가 인류로서 살아올 수 있었던 성장동력이다. 그런데 이 성장동력이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직립보행, 즉 걷기에서 시작됐다. 한마디로 우리 인류는 뇌가 있었기에 오늘날의 우리가 된 게 아니라 걷기 시작하면서 더 큰 뇌와 같은 차별화된 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 인류의 역사는 걷는 것에서 시작됐다. 그러니 걸어가는 사람은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하는 인간적인 본성이며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사람’이 우리에게 반향을 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이 원리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걷고 또 걸을수록 우리는 더 큰 세상을 만날 것이고, 더 큰 능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자코메티 또한 왜 ‘걸어가는 사람’을 만들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을 잃었을 때 그 모든 걸 포기하는 대신 계속 걸어가야 한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좀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 만약 이것이 하나의 환상 같은 감정일지라도 (걸으면) 무언가 새로운 것이 또 다시 시작될 것이다. (그러기에)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는 계속 걸어 가야 한다.”
그렇다. 걷는다는 것이야 말로 가장 인간적인 것이고 살아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살아있기 위해 계속 걸어야 한다. 웅크리거나 주저앉지 말고 일어나 걸어야 한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말고 자신의 힘으로 걸어야 한다. 걸어야 산다. 걸어야 인간이다. 한 중견기업의 사장은 힘든 상황이 닥칠 때마다 걷는다. 걸어서 동대문시장을 간다. 서울 강남에서 한강 다리를 건너 동대문시장으로 가서 몇 시간 동안 어슬렁거린다.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상품, 왁자지껄한 소리…. 그는 거기서 살아있음을 느낀다. 그렇게 돌아다니다 소주나 막걸리 한 잔 하고 집에 와서 잠을 자고 나면 복잡하게 엉클어져 있던 머릿속이 맑아져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책상 앞에서나 회의에서는 아무리 구체적인 수치를 갖고 말해도 막연하고 추상적일 수밖에 없는데, 내 몸을 움직여서 걷고, 또 그렇게 걸어서 시장을 걸어 다니다 보면 구체적이 됩니다. 무엇보다 책상 앞이 아니라 모든 것이 살아 움직이는 현실에서 우리 회사를 보고, 결정해야 하는 사안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서 그렇게 보면 다른 게 보입니다.”
의외로 걷는 걸 즐기는 경영자가 많다. 일의 특성상 머리를 많이 쓸 수밖에 없기에 걷는 것으로 몸과 마음의 균형을 맞추려는 것이다. 걸어가는 사람이 되는 건 온몸을 움직이는 것이어서 운동 효과가 크고 혈액순환이 좋아져 머리 또한 맑아진다.
경영컨설턴트로 30년 이상 활동한 미치 코언 전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부회장에 따르면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산책을 통해 마음의 여유를 찾곤 했다. 그는 특히 동료나 새로운 비즈니스 파트너와 함께 오랫동안 산책하는 걸 즐겼다. 서로 여유로울 수 있었고 그런 여유 속에서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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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사람’에 끌리나
그래서일까? 걸어가는 사람을 옆에서 보니 그 모습이 사람 인(人)처럼 보였다. 자코메티는 왜 인간을 이런 ‘걸어가는 사람’으로 표현했고, 우리는 왜 이 ‘걸어가는 사람’에게서 묘한 인간적인 느낌을 느끼는 걸까? 1200억원이라는 몸값은 아마도 이 ‘걸어가는 사람’이 인간 본연의 가치를 의미 있게 표현했다는 숫자일 텐데, 이 엄청난 숫자는 어디서 나온 걸까? 우리 인류가 살아온 궤적에 그 실마리가 있을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180만~150만년 전, 인류의 발상지라고 여겨지는 아프리카 동부와 남부에는 두 종류의 인류가 살고 있었다. 파란트로푸스 로부스투스와 호모 에스가스테르였다. 그들은 서로 달랐다. 생긴 모습도 달랐고 살아가는 방식, 그러니까 생존전략도 달랐다. 파란트로푸스는 키가 작고(약 150cm) 땅딸막했으며 얼굴이 둥글었다. 이와 달리 호모 에스가스테르는 키가 크고(약 170cm) 날씬했다. 어느 생명체나 현재의 모습은 그 생명체가 지금까지 어떤 방식으로 살아왔는지를 나타내 주는 생존전략의 결과다. 이 두 인류도 마찬가지였다.
멸종한 파란트로푸스, 생존한 에스가스테르의 차이
파란트로푸스는 새로운 식량을 땅속에서 찾았던 것 같다. 발굴되는 그들의 어금니에는 작은 흠집이 많다. 그 이전 인류 조상의 어금니가 매끈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흠집은 그 이전의 인류가 먹지 않았던 걸 파란트로푸스가 먹었다는 걸 의미한다. 무엇이었을까? 모래가 많은 것, 그러니까 땅 속에 있는 식물의 뿌리였다. 이 먹거리는 지금도 전통 채집으로 살아가고 있는 아프리카 사람의 인기 메뉴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유골에는 큰 어금니와 함께 턱 아래쪽까지 길게 이어지는 측두근이 크게 발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얼굴이 둥글어진 이유다.
키가 크고 날씬한 에스가스테르는 다른 식량을 개발했다. 초원에는 수많은 초식동물이 살기에 자연사한 동물도 많고, 사자나 표범, 치타 같은 전통적인 사냥꾼이 먹고 남긴 고기도 꽤 된다. 이 사냥꾼들은 뼈에 붙은 고기나 뼈 속 골수까지 먹지 않기에 이걸 식량화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유골과 같이 발견되는 동물의 뼈에 작은 흠집이 있다. 뼈를 살뜰하게 발라 먹는 전략을 개발한 것이다. 이런 고기는 소화가 잘 될 뿐 아니라 에너지가 많아 성장에도 도움이 되었기에 꽤 괜찮은 생존방식이었다. 문제는 이런 고기를 언제 발견할지 모른다는 것과 항상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렇기에 많이 걸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키가 크지만 날씬해질 수밖에 없었다. 채식도 했지만 주식은 육식이었던 것 같다.
채식과 육식, 둘 다 괜찮은 방법이었는지 두 인류 모두 수백 만년 동안 나름 번성했다. 그런데 100만년 전부터 이 둘 중 하나의 화석이 뚝 끊긴다. 화석이 끊긴다는 건 멸종했다는 의미다. 누구였을까? 파란트로푸스였다. 인류의 역사에 나타난 20여종의 인류가 그러했던 것처럼 파란트로푸스도 어떤 환경 변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사라진 것이다. 왜 사라졌을까? 정확한 이유는 아직 모르지만 멸종한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면 호모 에스가스테르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역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화석에서 나타나는 분명한 특징 중 하나는 멸종한 파란트로푸스보다 뇌가 훨씬 컸다는 것이다. 사실 20여종의 인류사에서도 이 공통점은 일관되게 나타난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닥친 생존의 고비를 견뎌내고 살아남은 인류는 이전 인류의 뇌나 멸종한 인류의 뇌보다 컸다. 자신들에게 닥친 격변을 이겨내면서 뇌가 커졌다는 게 정설인데, 그렇다면 그런 격변을 이겨내는 데 뇌가 도움이 되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파란트로푸스의 뇌 용량은 침팬지보다 조금 더 큰 500ml였던 반면 살아남은 에스가스테르의 뇌는 900ml였다. 호모 에스가스테르 이후에 나타난 호모 에렉투스는 1000ml를 넘었다. 현재 호모 사피엔스의 평균 뇌 크기는 1400ml쯤 된다.
하지만 더 큰 뇌보다 훨씬 근원적인 특징이 있다. 살아남은 인류는 더 많이 걸었다. 더 많이 걸었다는 건 더 넓은 세상을 살았다는 것이고, 여기서 살아남았다는 건 이 넓은 세상에서 더 나은 기회를 찾았다는 의미다. 사실 걷는 건 우리 인류가 인류로서 발걸음을 시작한 최초의 특징이기도 했다. 숲에 머문 유인원들과 달리 초원으로 나온 인류는 직립보행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이를 통해 삶의 능력을 높여갔다. 예를 들어 뇌 용량이 1000ml를 넘은 호모 에렉투스는 최초로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통해 전 세계로 나아간 최초의 인류였다. 그들은 자신의 영역을 떠나 불확실한 다른 세상으로 걸어가 새로운 세상을 개척한 인류였다. 이들에 이어 나타난 호모 사피엔스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한 두 번째 주인공이었다.
직립보행 후 후두 이동으로 많은 소리 내
‘부작용’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몸을 수직으로 세워 걷다 보니 목 안의 후두가 아랫쪽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이 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물론 변화가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음식이 식도가 아니라 숨구멍(기도)으로 들어가면 질식사할 수 있었다.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는 아기들은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이런 불편함은 감수하고도 남을 만한 것이었다. 후두가 위쪽에 있을 때보다 훨씬 많은 소리를 낼 수 있어 어느 생명체보다 다양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언어의 탄생은 이렇게 시작됐다.
언어의 탄생은 뇌가 커지는 것만큼이나 엄청난 성장동력을 인류에게 가져다 주었다. 언어를 사용하게 되면서 인류는 훨씬 정교하면서도 탁월한 협력을 할 수 있었고, 후세에게 자신들이 획득한 생존기술을 전해줄 수 있었다. 언어가 없다면 대규모 협력은 꿈도 꿀 수 없는 건 물론이고, 계획도 제대로 세울 수 없다. 서로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어야 아이디어를 교환할 수 있고 그걸 더 나은 걸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게 아닌가. 예를 들어 사슴은 새끼에게 어떤 동물이 위험한지 알려줄 수 없다. 오랜 시간 유전자를 통해 본능으로 알려주거나 직접 경험하게 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두 방법은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위험하다. 인류는 말을 통해 가르쳐 줄 수 있다. 기술을 전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존의 지혜를 전할 수 있다. 부산물치고는 엄청난 부산물이었다. 문제 해결 능력과 정보 축적 능력을 동시에 대폭 향상시킨 것이다.
뛰어난 인지능력으로 위기와 기회를 누구보다 빨리 찾아낼 수 있고, 손으로는 효과적인 무기를 만들 수 있으며 어느 동물보다 정교한 커뮤니케이션 능력으로 세밀한 협력을 할 수 있는 건 인류와 다른 생명체를 구분하는 대표적인 차이다. 인류가 인류로서 살아올 수 있었던 성장동력이다. 그런데 이 성장동력이 어디서 시작되었는가? 직립보행, 즉 걷기에서 시작됐다. 한마디로 우리 인류는 뇌가 있었기에 오늘날의 우리가 된 게 아니라 걷기 시작하면서 더 큰 뇌와 같은 차별화된 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 인류의 역사는 걷는 것에서 시작됐다. 그러니 걸어가는 사람은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하는 인간적인 본성이며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다. 자코메티의 ‘걸어가는 사람’이 우리에게 반향을 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걸어야 살고 걸어야 인간이다
그렇다. 걷는다는 것이야 말로 가장 인간적인 것이고 살아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살아있기 위해 계속 걸어야 한다. 웅크리거나 주저앉지 말고 일어나 걸어야 한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말고 자신의 힘으로 걸어야 한다. 걸어야 산다. 걸어야 인간이다.
[박스기사] “걸으면 다른 게 보인다”
의외로 걷는 걸 즐기는 경영자가 많다. 일의 특성상 머리를 많이 쓸 수밖에 없기에 걷는 것으로 몸과 마음의 균형을 맞추려는 것이다. 걸어가는 사람이 되는 건 온몸을 움직이는 것이어서 운동 효과가 크고 혈액순환이 좋아져 머리 또한 맑아진다.
경영컨설턴트로 30년 이상 활동한 미치 코언 전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부회장에 따르면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산책을 통해 마음의 여유를 찾곤 했다. 그는 특히 동료나 새로운 비즈니스 파트너와 함께 오랫동안 산책하는 걸 즐겼다. 서로 여유로울 수 있었고 그런 여유 속에서 원활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필자는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 소장이다. 조직과 리더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콘텐트를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사장으로 산다는 것] [사장의 길] [사자도 굶어 죽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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