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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수의 이솝투자학] 돈 벌었을 때가 가장 위험하다

[서명수의 이솝투자학] 돈 벌었을 때가 가장 위험하다

기원 전 6세기 그리스의 노예 이솝이 쓴 것으로 알려진 [이솝 우화]는 인간의 심리를 동물의 행동에 투영한 우화집이다. 이솝은 정글의 논리가 판치는 세상에서 약자가 살아남는 비법을 번득이는 재치로 풀어내고 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이솝 우화의 “숲 속의 두 마리 새보다 손 안의 한 마리 새가 낫다”를 인용하며 비효율적 숲 이론을 제시했다. 투자자 행동과 관련이 있는 이솝 우화 이야기를 읽으며 성공 투자의 길을 모색해본다.



굶주린 여우 한 마리가 있었다. 여우는 기진맥진한 상태로 먹을 것을 찾아 숲 속을 어슬렁거렸다. 그러다가 아주 향기로운 냄새를 맡게 됐다. 여우는 서둘러 그 곳으로 달려갔다. 먹음직스런 포도가 덩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보기만 해도 저절로 침이 고일 정도였다. “정말 맛있게 생긴 포도구나” 포도는 무척 달콤할 것만 같았다. 여우는 포도송이를 따기 위해 팔을 뻗었지만 닿지 않았다. 뒤로 물러났다가 달려가 힘껏 뛰어올라 봐도 포도송이에는 손이 닿지 않았다. 포도를 따려고 갖은 방법으로 애를 쓰던 여우는 결국 눈앞의 포도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여우는 포도밭을 떠나면서 중얼거렸다. “흥 덜 익은 포도잖아? 아직 시큼해서 못 먹을 거야. 난 아주 잘 익은 포도만 좋아하거든.”
사진:© gettyimagesbank
 재산 손실 부르는 인지부조화의 대가
사람들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과 반대되는 새로운 정보를 접했을 때 정신적 스트레스나 불편한 경험을 겪게 된다. 이를 ‘인지부조화’라고 한다. 부조화를 겪는 개인은 자신의 믿음이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고통스런 일이어서 이솝 우화의 여우처럼 적당한 핑계를 대며 자기합리화를 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잠시의 스트레스를 피할지 모르지만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대가를 톡톡히 치른다는 점에서 인지부조화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인지부조화를 처음 주장한 것은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다. 1954년 미국 일리노이주 한 지역신문에 실린 기사가 인지부조화 연구에 착수한 계기가 됐다. 한 사이비 종교집단이 외계인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는 내용이다. 종교집단은 12월21일 대홍수가 나서 세상이 끝날 것이니 오로지 독실한 신자만이 비행접시에 구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통 사람이 생각하기엔 종교집단 구성원들이 틀린 예언과 그에 따른 인지부조화 때문에 신념을 버렸을 법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 상황이 벌어졌다. 심판의 날이 오자 구성원들의 헌신 덕에 세상이 종말을 면하게 됐다고 선언했고, 구성원들은 더욱 열렬한 신자가 됐다. 페스팅거는 이를 예상했다. 사람들은 신념과 모순된 현실을 인정하게 되면 심각한 부조화 문제를 겪게 된다는 것이다.

인지부조화의 예는 우리의 일상에서 얼마든지 발견된다. 주변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고 선언해놓고 담배를 끊지 못하는 사람을 목격할 수 있다. 그는 자산의 몸에 담배가 해롭다는 것을 알고 끊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담배를 끊는 대신 담배를 피우는 행동을 정당화하는 하는 것이 쉽고 편하기 때문에 담배를 계속 피운다. ‘담배 때문에 병에 걸리는 사람은 극소수여서 난 피워도 안 걸릴 거야’ ‘금연하는 스트레스로 인해 생기는 질병이 더 크고 무서워’ 등으로 생각을 변화시켜 담배 피우는 행동을 합리화한다. 그래도 중단하기 어려운 기호와 관련한 인지부조화 문제는 습관을 고쳐 극복할 수 있다. 보다 심각한 것은 명성이나 직업, 또는 돈이 걸린 경우는 치명적인 손실을 부른다.

대표적인 곳이 주식시장이다. 특히 요즘처럼 증시가 오를 만큼 올라 장밋빛 전망이 고개를 들 때 인지부조화에 빠지는 투자자가 많다. 금리 인상과 함께 출구전략에 대한 논의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그간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써온 여러 정책을 거둬 들여 원상태로 만든다는 뜻이다. 출구전략의 핵심은 시장에 풀었던 돈을 회수하거나 금리를 올리는 것이다. 증시엔 부정적인 재료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일부에선 출구전략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금리를 올리는 것은 경기가 좋다는 뜻이라며 주식을 사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원화의 대미 달러 환율 상승을 점치며 수출기업의 채산성이 좋아지니 호재라는 판단을 내놓기도 한다. 환율 하락 소식엔 우리나라 경제의 기초체력이 강화됐다는 쪽으로 해석한다. 또 국제유가가 오르면 세계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하락하면 기업의 원가 부담이 줄어든 것이니 역시 호재라는 생각을 전한다. 중국 증시가 오르면 중국 수출 비중이 큰 우리 수출기업이 수혜를 입으니 좋고, 내리면 중국에 투자했던 외국인 자금이 우리 증시로 흘러 들어온다는 설명을 붙인다. 이처럼 같은 재료를 놓고 아전인수격 요리를 한다. 호황기엔 악재란 있을 수 없다. 현재 투자한 것이 성공적이어서 수익을 내고 있고 주식을 잔뜩 보유하고 있다면 이런 인지부조화에 걸려들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호황기엔 악재가 호재로 둔갑
투자자들은 대중 매체가 제시하는 정보에 대해서도 인지부조화의 문제를 드러낸다. 가령 주가가 오르고 시장이 들썩이면 경제신문이나 증권사이트의 구독자가 급증한다. 기사 내용은 다들 엇비슷하다. 유망 종목, 돈 번 투자자 들에 관한 이야기며 주식 호황기는 이제 시작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넘쳐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구독자들이 신문을 열심히 읽는 이유는 새로운 정보를 얻으려는 게 아니라 자신들이 믿고 있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자기에게 불리한 정보는 유리하게 해석하거나 아예 무시하기도 한다. 주가가 오르고 있는 보유 종목에 투자한 자신의 결정을 지지하고 인정해 주는 기사만 골라 읽는다. 하지만 시장이 하락기로 접어들면 이상하게도 경제신문이나 증권 전문지의 인기가 시들해져 구독을 중단하는 사례가 많아진다. 실제로 경제 신문들은 시장 하락기에 판매가 급감해 골머리를 앓는다. 시장 하락기엔 가치있는 정보가 더 필요한 데도 그렇다. 신문을 끊는 것은 주가 하락에 따른 손실의 아픔을 되새김해 주는 기사를 보기 싫어서가 아닐까. 그러다 손실폭은 더 커지고 결국에는 될 대로 되라며 자포자기 심정에 빠진다. 결국 엄청난 손실을 견디지 못하고 주식을 처분하지만 그 때는 주가가 바닥인 경우가 많아 땅을 치고 후회의 눈물을 흘린다. 개인들이 이처럼 입맛에 맞는 정보만 취사선택하고 나머지는 무시하는 인지의 모순에 빠져 재산을 날리는 과정이 대개 이렇다.

주식 투자에서 인지부조화의 오류에서 벗어나는 길은 주식을 소유하는 물건으로 보지 않고 잠시 머물렀다 다른 사람에게 가는 종이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면 애착이 사라져 쉽게 헤어질 수 있다. 또 다른 전략은 ‘초심으로 돌아가기’다. 보유한 주식을 팔기가 망설여진다면 ‘이 종목에 투자하기로 했던 당시로 돌아간다면 과연 지금 시점에도 이 종목을 살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을 가지면 소유 효과에서 벗어나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



※ 필자는 중앙일보 ‘더, 오래팀’ 기획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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