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영 대가가 건네는 ‘인생 나침반’ 나를 사랑하는 힘(5)] 인생에서 최선의 헤징은 재미있는 일 추구
[경제·경영 대가가 건네는 ‘인생 나침반’ 나를 사랑하는 힘(5)] 인생에서 최선의 헤징은 재미있는 일 추구
리처드 세일러 교수, 개인·사회가최선의 결정 내리도록 돕는 시스템 연구
저성장·양극화·고령화로 대별되는 뉴노멀의 시대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디지털 변혁으로 생산성이 증대되고 있지만 삶이 축복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어디에서 와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고 있고, 종착역이 어딘지 모르고 살고 있다. 올바른 ‘나’를 세우고 디지털 세상을 똑바로 살아갈 수 있는 버팀목은 없을까. 경제·경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대가들의 가르침을 인생의 나침반으로 삼아 나의 가능성을 파악하고 잠재력을 끌어 올려보는 건 어떨까. 나를 방해하는 수많은 유혹에서 나를 지키는 힘도 키워보자. 혼돈의 시대 자아를 재발견하는 여정을 떠나는 이유다. 특별한 사람들을 위하며 특별한 연설을 할 때 프리젠테이션 스킬이 요구된다. 누구나 흥미를 보일 눈요기거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청중이 좋아하지 않을까? 멋진 글쟁이가 있듯 멋진 화술가도 있다. 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 교수는 한국인에게 인기가 높다. 베스트셀러 책을 여러 권 내놓은 덕이 크다. [넛지] [승자의 저주]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이 그의 대표작이다. 그는 시카고 대학의 졸업식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전에 동영상을 튼다. 세계적인 첼리스트가 나온다. 그의 이름은 요요마. 프랑스 태생의 중국계 첼리스트다. 이제 나이 지긋한 그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음악을 통해 희망을 전하고 있다. 그는 예술이 많은 사람에게 희망의 문을 열어준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를 보며 사람들은 음악을 떠나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으로 부러워할 수 있다.
“요요마는 좋겠어요. 그는 자신이 자랑스럽고 떳떳하겠죠. 뭐하나 잘하는 자기만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각광받는 시대잖아요. 나 같은 경우는 잘하는 것이 단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아직 못 찾은 거 같아요. 있기는 하는 거겠죠? 그래서 나는 내 자신을 종종 비하하기도 해요.” 자존감 수업이 필요한 것 같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는 것에 집중해서 이런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이 아닐까? 못 찾아서 그런 것이지, 잘하는 것이나 장점이 없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지 않을까? 동영상은 요요마와의 인터뷰 내용을 담았다. 그는 3살에 바이올린으로 음악을 시작했는데 바이올린에서 그냥 평균적인 아이의 연주보다 좋은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바이올린으로 3년 간 고군분투하는 시기를 보낸 후 어느 날 누군가 그에게 첼로를 줬는데, 그는 바이올린보다 이상하게 첼로를 훨씬 더 즐겼다. 그는 첼로에 특별한 소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인식했다. 그는 여기저기에서 멋진 연주를 하며 상당한 인기를 얻는다. 연주에 몰두하면서 공연을 하던 어느 날 첼로를 두고 택시에서 내린 일화는 유명하다. 첼로의 어마어마한 가격은 둘째 치고 신동이 연주하던 보물이 사라지자 많은 사람이 당황했다. 결국 방송을 통해 첼로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왜 택시를 탔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그는 조용히 말한다. 자신은 유명 인사가 아니고 그냥 첼로를 하는 사람이라고. 우리나라에도 요요마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그는 천재 첼리스트로 불린다. 세일러 교수는 동영상을 보여준 후 이렇게 말을 시작한다.
“같은 음악가인데 그는 바이올린에서는 평범했죠. 그런데 6살에 첼로를 기가 막히게 연주하게 된 걸 보세요. 나는 이 동영상을 통해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여러분의 첼로를 찾으세요.”
학생들의 귀가 솔깃해진다. 그는 사람의 흥미를 부추기는데 일가견이 있는 교수였다.
“내가 교수가 된 것은 학문을 좋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나의 기질을 잘 알죠. 나는 직업을 선택하는 데 우선 내가 하기 싫은 직업군부터 제거했습니다. 나는 복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누군가 이런 걸 해라 뭐 그렇게 시키는 게 싫어요. 그래서 자가진단을 한 후에 나는 비즈니스계에 몸을 담을 사람이 아니란 결론을 내렸습니다. 민간 분야에서는 시키면 다 해야 하잖아요. 정부 쪽은 사기업보다 덜하지만 그래도 시키면 해야 하는 건 비슷하죠. 음, 그래서 나의 자유를 건드리지 않는 학계를 선택한 것입니다. 그곳이 나를 방해할 곳이 아니라고 믿은 거죠.”
그는 상당히 솔직했다. 그는 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가르치는 일과 연구를 하게 된 연유에 대해서도 설명을 곁들였다. 학위를 받고 교수가 된 몇 년 후에 그는 그저 그런 평범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 논문 지도교수조차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내게 기대할 만한 게 크지 않다고 말했어요. 사실 나는 경제학이 따분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재미가 있는 게 있어요. 사람들을 관찰하는 겁니다. 사람들의 행동방식이 전통 경제학 이론과 전혀 다르더라고요. 사람들은 경제학 이론대로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는 자신의 지도교수였던 사람을 예로 들며 그가 산 포도주 가격이 엄청나게 올랐는데 그것을 팔지 않고 그냥 마시더라는 이야기를 한다. 자기 같으면 그 포도주는 팔고 다른 포도주를 사서 마셨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세일러는 사람들의 재미있는 행동에 대한 관찰 결과를 목록으로 만들어 본다. 사람들은 실제 똑똑한 전통 경제학자들이 보기에 바보 같은 행동을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싸게 하나 얹어준다는 말에 ‘1+1 상품’을 사고 막상 쓸 데가 없어 친구에게 공짜로 나눠준다. 좋은 정보라는 친구의 말에 솔깃해서 주식을 왕창 샀다가 돈을 날리기도 한다. 합리성과 거리가 먼 행동이다.
세일러 교수의 이야기를 들으니 잘하는 일의 목록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 경우 자신이 할 줄 아는 모든 일을 나열한 재고 목록을 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크리스틴 라가르드가 말했던 교육이나 기술을 생각해 보라. 대학·지방대학 등의 고등교육기관에서 습득한 기술, 부모 또는 다른 역할 모델로부터 습득한 기술, 일 또는 커리어를 통해 습득한 기술, 책을 읽거나 인터넷 강의를 듣거나 시행착오를 거치며 스스로 습득한 기술 등을 모두 작성해 보자. 이런 것은 모두 귀중하며 자기에게 어떤 희망의 기쁨을 선사해 줄 수 있는 대상이다. 설사 기술이 그만큼 전문화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써놓은 기술의 목록은 새로운 세상을 여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다음 단계는 세일러 교수가 말한 자신의 약점을 아는 것이다. 만일 자신이 공과대학생에게 요구되는 분야의 문외한이라면 그런 쪽은 피하는 것이 좋다. 이 경우 목표는 2가지 목록을 들고 개선이 필요한 항목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 때 잘 못하는 일을 굳이 잘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흔히 우리는 잘 못하는 일이라고 하더라도 먹고 살기 위해서는 참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과연 그 선택이 우리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끝까지 할 수 없는 일을 아무리 붙잡고 있어도 우리는 그 일을 잘하는 것은 물론, 굉장히 잘할 수 있을 가능성도 작아진다. 그래서 나름 이런 결론을 내려 보자. 현재 가지고 있는 결점이나 약점을 부정하려고 하거나 숨기려고 하지 말고 온전히 인정하자. 그 결점과 약점을 장점으로 개선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져 보자. 장점을 인식하고 스스로 행복할 만한 충분한 이유와 권리가 있음을 자각하자. 인생은 마라톤이다. 단거리 경주가 아닌 장거리 경주로 인생을 보다 길게 내다보고 우리가 가진 문제나 약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노력을 한다면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뭘 가장 즐겼는지 아시나요. 내 동료 교수들이 내가 만든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행동 목록을 보고 내게 매우 화를 내는 것을 즐겼습니다. 경제학에 따르면 우리는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합리적 주체여야 하죠. 비용과 효용을 정확히 파악해 대안 중 최선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 합리적 주체를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는 비현실적 가정이죠.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들은 합리적 주체라기에는 비이성적인 행동을 너무 많이 합니다. 젊은 시절 그들을 화나게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동안에 사실 그런 일로 내가 제대로 생계를 이어갈지 걱정이 되더군요. 바로 그 순간 나는 내 일생의 가장 큰 발견을 하게 됩니다. 두 명의 이스라엘 심리학자와의 만남은 나의 세계에서 신세계의 발견 자체였습니다. 물론 그 심리학자들에 대해 다른 경제학자들은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각자의 운명은 그렇게 다른가 봅니다.”
대니얼 캐너먼과 고(故) 아모스 트베르스키는 그에게 필요한 열쇠를 주었다. 다른 경제학자들이 전혀 관심이 없는 분야에서 경제학자들에게 반란을 일으키는 힘을 불어 넣은 것이다. 2017년 세일러가 오래 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캐너먼에 이어 노벨경제학상을 받으면서 비주류로 불리던 행동경제학이 주류경제학에 편입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실 행동경제학은 이미 대중에게 인기를 얻은 분야이다. 그들은 스탠퍼드에서 만나 심리학과 경제학을 연계하는 실험을 하며 행동경제학의 싹을 틔웠다. 그 때가 세일러의 나이 32살이 되던 해였다.
“여러분들은 오늘 졸업식에서 내가 귀에 듣기 좋은 말을 할 거라 생각합니까? 열심히 하면 뭐든지 이룰 수 있다고 하는 그런 상투적인 말말입니다. 미안한데 사양할래요. 오히려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나는 학생들에게 차갑고 잔인한 가능성을 고려할 것을 상기시킵니다. 심리학에서 ‘바탕이 되는 통계(base rate)’를 들먹여서 미안한데요. 세상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여러분이 결혼해서 이혼할 확률은 반반입니다. 사업을 해서 성공할 확률은 훨씬 낮지요. 여러분 이런 승산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내가 나만의 연구를 시작할 때 그게 성공한다거나 50%의 승산 가능성이 있거나 해서 시작했다고 생각하세요? 그렇지 않습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럼 그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행동경제학 연구에 뛰어든 것일까? 그는 그의 판단이 상당히 이성적이었다며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한다.
“내 경우 기회비용이 거의 없었어요. 나는 유명한 경제학자도 아니었어요. 그저 평범했죠. 잃을 명성이 없잖아요. 가진 게 없는데 뭘 잃겠어요. 대신 내가 할 과제가 너무 재미있다고 생각되더군요. 누군가 재미에 근거해 직업을 선택하는 게 이성적이냐고 반문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보다 이성적인 게 있나요. 재미라는 것은 위험을 피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헤징 수단입니다. 재미있는 것을 한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든 좋은 기초 공사를 할 수 있어요. 뛰어놀 마루는 깔아 놓는 것이죠. 반대로 매 단계가 힘들다고 한다면 부자가 된들, 세속적으로 성공을 한들 그게 할만한 가치가 있나요? 물론 그건 가치관의 차이입니다.”
그는 분명히 유교적으로 부와 성공을 쫓는 동양적 기성세대의 사고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인물이다. 서양 사람들은 의외로 소소한 일상의 가치에서 행복을 느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삶이 아름다운 이유는 저마다 다르리라. 그는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하더라도 요요마, 빌게이츠, 마이클 조단이 될 수 없다면서 즐기고 싶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일을 시작하라고 학생들에게 권유한다. 사람들이 첫 직장을 선택할 때는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선택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누군가는 매력적이지 못한 일을 ‘안 한다’고 버틸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인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단은 채용해주는 곳에 취업을 결정한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첫 직장에서 1년 이내에 퇴직을 고민하게 된다. 과연 여기서 일하는 게 최선일까? 지금 이 직장을 나가면 패배자가 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속을 끓이면서 두 번째 명함을 가지기 위해서 도전할 것이냐, 지금 이대로 남아 싫어하는 일이라도 내일을 위해 참을 것인가 고민한다.
“이제 행동경제학이 상당히 말이 되는 학문이 되었고 경제학 전공 교수들을 약 올리기도 어려워졌으니 다른 선율을 내는 나의 첼로를 찾는 여정을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어쩌면 그게 다른 소명일수도 있지요.” 그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인간 본연의 심성에 대한 진지한 통찰을 하고 싶어 하는 학자이다. 세일러 교수는 경제위기나 저성장의 원인을 ‘정책 운영자나 기업인 개인’의 문제로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인간과 집단의 비합리성이 구조적으로 누적돼 만들어진 ‘경로의존성’의 결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일러 교수가 말하는 ‘잘못된 행동’의 원인은 경로의존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경제 주체는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언제나 오류를 저지르며, 가장 합리적인 선택보다는 과거에 해왔던 익숙한 선택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잘못된 경로를 따르는 경향이 매우 높다는 뜻이다. 세일러는 ‘선택 설계자’로서 경제 주체들이 경로의존성의 길만 밟지 않고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조언을 하는 역할을 하고 싶어 한다. 그게 그의 소명이다.
그래서 세일러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정책이나 의사를 결정하는 개인이나 특정 기업인이 잘못을 저질러 경제적 어려움이 초래됐다는 설명은 맞지 않다. 오히려 여러 집단의 실패와 비합리적 선택이 누적돼 ‘경로의존적’으로 진화돼온 오류가 저성장이나 경제 위기 등의 근본 원인에 가깝다. 따라서 경제정책 운영자들은 인간과 집단의 불완전성을 고려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의사결정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 세일러 교수의 관점이다. 세일러 교수는 경제 분석에서 가장 주요한 것은 인간 본연에 대한 치열한 통찰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대부분의 국가가 내놓는 규제와 기업의 정책이 불완전하다고 본다. 유명한 저작 [넛지]도 이 관점에 기초해 쓴 작품이다. 그는 규제는 완전한 공정성이 아니라 특정 집단과 주체의 이익에 봉사하기 위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업 정책도 고객들로부터 불공정성의 원흉으로 비판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매출 압박에 시달리는 제조 업체가 급하게 할인 정책을 편다고 하자. 이전에 정가로 구매한 고객들은 비난할 수 있다. 그러면 기업 평판은 하락하게 된다. 그래서 세일러 교수는 기업이나 정부가 갑작스럽게 시장에 개입하기보다는 대중의 심리 조절 단계를 통해 ‘부드러운 개입인 넛지’를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팔꿈치로 넌지시 쳐서 사람들이 알아채도록 하는 넛지의 기술 말이다. “여러분 자유주의적 온정주의자(Liberarian Paternaist)가 되면 공공정책을 합리적으로 펼칠 수 있습니다. 자유주의자로 무조건 시장을 가만 내버려 두거나 시장개입주의자로서 강제하지 않고, 경제 주체들이 옳은 선택을 하도록 틀을 만들어 조정할 수 있거든요.”
만약 교통사고로 사람이 죽는다고 하자. 자동차 번호판에 특별한 서명을 한 경우에만 장기이식을 한다고 인정하는 경우 장기이식은 많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서명을 한 경우에 장기이식을 반대하는 경우로 인식한다고 하자. 그러면 더 많은 사람이 죽더라도 장기이식으로 생명을 담보할 수 있는 경우가 많을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정책의 틀을 짜느냐에 따라 선택의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자유주의적 온정주의자로서 많은 사람이 안정된 은퇴를 하기를 바랍니다. 퇴직연금에 쥐꼬리만큼 가입하거나 가입하지 않는 경우를 보면 안타깝죠. 월급이 오르면 자동으로 퇴직연금에 더 많이 가입하게 해서 저축률을 높이는 방법을 사용해야 사람들이 노후에 편안한 삶을 살지요. 사람들에게 유인을 통해 제대로 행동하게 하려면 그들의 관성을 어떻게 해결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도 월급이 깎이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그러니 월급이 증가할 때 퇴직연금이 느는 식으로 설계를 해야 반발을 줄일 수 있죠. 그런 시기에 저축률을 늘려야 합니다.”
실제로 퇴직연금 가입자들 대부분은 기존 옵션을 변경하려는 시도를 거의 하지 않는다. 저축률을 높이기 위한 계획을 시작하도록 어떻게든 자극할 수 있다면, 더욱이 그것을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게 할 수 있다면, 관성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친구로 작동할 것이다. 세일러 교수는 맺음말을 하면서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지켜야 할 세 가지 규칙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그것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똑똑한 사람의 현명한 향기가 물씬 풍긴다.
“먼저 여러분들은 사람들과 사회가 분별력 있는 선택을 쉽게 하도록 정책을 설계하는 것을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인생이란 게 굴곡이 있잖아요. 내려가는 상황에서 최선의 헤징은 삶에서 재미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다른 헤징과 다르게 투자은행에 수수료를 낼 필요도 없으니 얼마나 좋은 방법인가요. 인생에서 여러분 자신의 첼로를 발견하는 데 시간이 늦어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떤 것도 인생에서는 늦는 것은 없어요. 그게 여러분이 여러분 스스로를 인정하고 즐기는 인물로, 나아가 참사랑으로 이끄는 길입니다.”
눈을 감고 그의 연설을 듣는데 어디선가 첼로 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청정 숲을 거니는 듯한 개운함과 감동을 준다. 우리는 투자에서부터 자녀 교육, 식생활, 우리가 옹호하는 신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항에 대해 선택을 한다. 문제는 부적절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우리가 인간인 이상 그런 경우를 피할 수는 없다. 우리를 실수로 이끄는 갖가지 편견에 취약한 것은 기정사실이다. 이러한 실수들 때문에 교육과 투자, 의료보험, 신용카드, 가족, 심지어는 지구환경에 대해서도 부적절한 결정을 내린다면 큰 일이 아닌가. 그렇게 되면 선택의 잘못으로 세상은 더욱 어둡게 된다. 세일러 교수는 우리 자신과 사회에 최선이 되는 결정을 보다 쉽게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설계할 수 있음을 생생한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다. 행동경제학자들이 나타난 것은 30여 년 정도 됐다. 행동경제학의 원리를 사회 문제에 적용하기 시작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다. 운 좋게도 새로운 사고방식에 열려있는 경제학자들은 상관없어 보이는 요인을 적용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어떻게 더 좋은 곳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창의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세일러 교수처럼 말이다. 역경을 이겨 내는 사람들의 이야기부터 선택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나를 사랑하는 법을 이야기 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좋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차선은 있는 것이고 그런 삶을 살면서 경험의 자아와 기억의 자아가 즐거워하는 선택을 하자. 좋은 습관을 몸에 익히고 목표를 너무 많이 가지지 말고 선택의 우선순위를 정하자. 우리의 훈련과 가치가 그런 선택에 도움을 주리라. 일단 선택을 하면 열정을 가지고 매사에 임하자. 그래야 내가 비참해지지 않고 나를 온전히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 필자는 연세대(경제학과)와 미국 미시간주립대(파이낸스 석사)를 졸업했다. 행시(재경직) 34회 출신으로 재무부·재정경제원·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에서 관세·물가·복지·국제금융·통상 등의 분야에서 일했다. 저서로는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 [경제적 청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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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양극화·고령화로 대별되는 뉴노멀의 시대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디지털 변혁으로 생산성이 증대되고 있지만 삶이 축복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특히 어디에서 와서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고 있고, 종착역이 어딘지 모르고 살고 있다. 올바른 ‘나’를 세우고 디지털 세상을 똑바로 살아갈 수 있는 버팀목은 없을까. 경제·경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대가들의 가르침을 인생의 나침반으로 삼아 나의 가능성을 파악하고 잠재력을 끌어 올려보는 건 어떨까. 나를 방해하는 수많은 유혹에서 나를 지키는 힘도 키워보자. 혼돈의 시대 자아를 재발견하는 여정을 떠나는 이유다. 특별한 사람들을 위하며 특별한 연설을 할 때 프리젠테이션 스킬이 요구된다. 누구나 흥미를 보일 눈요기거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청중이 좋아하지 않을까? 멋진 글쟁이가 있듯 멋진 화술가도 있다. 2017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 교수는 한국인에게 인기가 높다. 베스트셀러 책을 여러 권 내놓은 덕이 크다. [넛지] [승자의 저주]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이 그의 대표작이다. 그는 시카고 대학의 졸업식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전에 동영상을 튼다. 세계적인 첼리스트가 나온다. 그의 이름은 요요마. 프랑스 태생의 중국계 첼리스트다. 이제 나이 지긋한 그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음악을 통해 희망을 전하고 있다. 그는 예술이 많은 사람에게 희망의 문을 열어준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를 보며 사람들은 음악을 떠나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으로 부러워할 수 있다.
“요요마는 좋겠어요. 그는 자신이 자랑스럽고 떳떳하겠죠. 뭐하나 잘하는 자기만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각광받는 시대잖아요. 나 같은 경우는 잘하는 것이 단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아직 못 찾은 거 같아요. 있기는 하는 거겠죠? 그래서 나는 내 자신을 종종 비하하기도 해요.”
바이올린 연주는 평범했던 요요마
“같은 음악가인데 그는 바이올린에서는 평범했죠. 그런데 6살에 첼로를 기가 막히게 연주하게 된 걸 보세요. 나는 이 동영상을 통해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여러분의 첼로를 찾으세요.”
학생들의 귀가 솔깃해진다. 그는 사람의 흥미를 부추기는데 일가견이 있는 교수였다.
“내가 교수가 된 것은 학문을 좋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나의 기질을 잘 알죠. 나는 직업을 선택하는 데 우선 내가 하기 싫은 직업군부터 제거했습니다. 나는 복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누군가 이런 걸 해라 뭐 그렇게 시키는 게 싫어요. 그래서 자가진단을 한 후에 나는 비즈니스계에 몸을 담을 사람이 아니란 결론을 내렸습니다. 민간 분야에서는 시키면 다 해야 하잖아요. 정부 쪽은 사기업보다 덜하지만 그래도 시키면 해야 하는 건 비슷하죠. 음, 그래서 나의 자유를 건드리지 않는 학계를 선택한 것입니다. 그곳이 나를 방해할 곳이 아니라고 믿은 거죠.”
그는 상당히 솔직했다. 그는 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가르치는 일과 연구를 하게 된 연유에 대해서도 설명을 곁들였다. 학위를 받고 교수가 된 몇 년 후에 그는 그저 그런 평범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들을 관찰하는 게 재미있었다”
그는 자신의 지도교수였던 사람을 예로 들며 그가 산 포도주 가격이 엄청나게 올랐는데 그것을 팔지 않고 그냥 마시더라는 이야기를 한다. 자기 같으면 그 포도주는 팔고 다른 포도주를 사서 마셨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세일러는 사람들의 재미있는 행동에 대한 관찰 결과를 목록으로 만들어 본다. 사람들은 실제 똑똑한 전통 경제학자들이 보기에 바보 같은 행동을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싸게 하나 얹어준다는 말에 ‘1+1 상품’을 사고 막상 쓸 데가 없어 친구에게 공짜로 나눠준다. 좋은 정보라는 친구의 말에 솔깃해서 주식을 왕창 샀다가 돈을 날리기도 한다. 합리성과 거리가 먼 행동이다.
세일러 교수의 이야기를 들으니 잘하는 일의 목록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이 경우 자신이 할 줄 아는 모든 일을 나열한 재고 목록을 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크리스틴 라가르드가 말했던 교육이나 기술을 생각해 보라. 대학·지방대학 등의 고등교육기관에서 습득한 기술, 부모 또는 다른 역할 모델로부터 습득한 기술, 일 또는 커리어를 통해 습득한 기술, 책을 읽거나 인터넷 강의를 듣거나 시행착오를 거치며 스스로 습득한 기술 등을 모두 작성해 보자. 이런 것은 모두 귀중하며 자기에게 어떤 희망의 기쁨을 선사해 줄 수 있는 대상이다. 설사 기술이 그만큼 전문화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써놓은 기술의 목록은 새로운 세상을 여는 열쇠가 될 수도 있다.
잘하는 일의 목록 만들어라
“내가 뭘 가장 즐겼는지 아시나요. 내 동료 교수들이 내가 만든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행동 목록을 보고 내게 매우 화를 내는 것을 즐겼습니다. 경제학에 따르면 우리는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합리적 주체여야 하죠. 비용과 효용을 정확히 파악해 대안 중 최선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런 합리적 주체를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는 비현실적 가정이죠.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들은 합리적 주체라기에는 비이성적인 행동을 너무 많이 합니다. 젊은 시절 그들을 화나게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동안에 사실 그런 일로 내가 제대로 생계를 이어갈지 걱정이 되더군요. 바로 그 순간 나는 내 일생의 가장 큰 발견을 하게 됩니다. 두 명의 이스라엘 심리학자와의 만남은 나의 세계에서 신세계의 발견 자체였습니다. 물론 그 심리학자들에 대해 다른 경제학자들은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각자의 운명은 그렇게 다른가 봅니다.”
대니얼 캐너먼과 고(故) 아모스 트베르스키는 그에게 필요한 열쇠를 주었다. 다른 경제학자들이 전혀 관심이 없는 분야에서 경제학자들에게 반란을 일으키는 힘을 불어 넣은 것이다. 2017년 세일러가 오래 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캐너먼에 이어 노벨경제학상을 받으면서 비주류로 불리던 행동경제학이 주류경제학에 편입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실 행동경제학은 이미 대중에게 인기를 얻은 분야이다. 그들은 스탠퍼드에서 만나 심리학과 경제학을 연계하는 실험을 하며 행동경제학의 싹을 틔웠다. 그 때가 세일러의 나이 32살이 되던 해였다.
“여러분들은 오늘 졸업식에서 내가 귀에 듣기 좋은 말을 할 거라 생각합니까? 열심히 하면 뭐든지 이룰 수 있다고 하는 그런 상투적인 말말입니다. 미안한데 사양할래요. 오히려 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나는 학생들에게 차갑고 잔인한 가능성을 고려할 것을 상기시킵니다. 심리학에서 ‘바탕이 되는 통계(base rate)’를 들먹여서 미안한데요. 세상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여러분이 결혼해서 이혼할 확률은 반반입니다. 사업을 해서 성공할 확률은 훨씬 낮지요. 여러분 이런 승산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내가 나만의 연구를 시작할 때 그게 성공한다거나 50%의 승산 가능성이 있거나 해서 시작했다고 생각하세요? 그렇지 않습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럼 그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행동경제학 연구에 뛰어든 것일까? 그는 그의 판단이 상당히 이성적이었다며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한다.
“내 경우 기회비용이 거의 없었어요. 나는 유명한 경제학자도 아니었어요. 그저 평범했죠. 잃을 명성이 없잖아요. 가진 게 없는데 뭘 잃겠어요. 대신 내가 할 과제가 너무 재미있다고 생각되더군요. 누군가 재미에 근거해 직업을 선택하는 게 이성적이냐고 반문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보다 이성적인 게 있나요. 재미라는 것은 위험을 피하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헤징 수단입니다. 재미있는 것을 한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든 좋은 기초 공사를 할 수 있어요. 뛰어놀 마루는 깔아 놓는 것이죠. 반대로 매 단계가 힘들다고 한다면 부자가 된들, 세속적으로 성공을 한들 그게 할만한 가치가 있나요? 물론 그건 가치관의 차이입니다.”
그는 분명히 유교적으로 부와 성공을 쫓는 동양적 기성세대의 사고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인물이다. 서양 사람들은 의외로 소소한 일상의 가치에서 행복을 느끼고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삶이 아름다운 이유는 저마다 다르리라. 그는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하더라도 요요마, 빌게이츠, 마이클 조단이 될 수 없다면서 즐기고 싶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일을 시작하라고 학생들에게 권유한다. 사람들이 첫 직장을 선택할 때는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을 선택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누군가는 매력적이지 못한 일을 ‘안 한다’고 버틸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인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단은 채용해주는 곳에 취업을 결정한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첫 직장에서 1년 이내에 퇴직을 고민하게 된다. 과연 여기서 일하는 게 최선일까? 지금 이 직장을 나가면 패배자가 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속을 끓이면서 두 번째 명함을 가지기 위해서 도전할 것이냐, 지금 이대로 남아 싫어하는 일이라도 내일을 위해 참을 것인가 고민한다.
“이제 행동경제학이 상당히 말이 되는 학문이 되었고 경제학 전공 교수들을 약 올리기도 어려워졌으니 다른 선율을 내는 나의 첼로를 찾는 여정을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어쩌면 그게 다른 소명일수도 있지요.”
자유주의적 온정주의자의 의미 있는 세계
그래서 세일러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정책이나 의사를 결정하는 개인이나 특정 기업인이 잘못을 저질러 경제적 어려움이 초래됐다는 설명은 맞지 않다. 오히려 여러 집단의 실패와 비합리적 선택이 누적돼 ‘경로의존적’으로 진화돼온 오류가 저성장이나 경제 위기 등의 근본 원인에 가깝다. 따라서 경제정책 운영자들은 인간과 집단의 불완전성을 고려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의사결정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 세일러 교수의 관점이다. 세일러 교수는 경제 분석에서 가장 주요한 것은 인간 본연에 대한 치열한 통찰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대부분의 국가가 내놓는 규제와 기업의 정책이 불완전하다고 본다. 유명한 저작 [넛지]도 이 관점에 기초해 쓴 작품이다. 그는 규제는 완전한 공정성이 아니라 특정 집단과 주체의 이익에 봉사하기 위해 만들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기업 정책도 고객들로부터 불공정성의 원흉으로 비판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매출 압박에 시달리는 제조 업체가 급하게 할인 정책을 편다고 하자. 이전에 정가로 구매한 고객들은 비난할 수 있다. 그러면 기업 평판은 하락하게 된다. 그래서 세일러 교수는 기업이나 정부가 갑작스럽게 시장에 개입하기보다는 대중의 심리 조절 단계를 통해 ‘부드러운 개입인 넛지’를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팔꿈치로 넌지시 쳐서 사람들이 알아채도록 하는 넛지의 기술 말이다. “여러분 자유주의적 온정주의자(Liberarian Paternaist)가 되면 공공정책을 합리적으로 펼칠 수 있습니다. 자유주의자로 무조건 시장을 가만 내버려 두거나 시장개입주의자로서 강제하지 않고, 경제 주체들이 옳은 선택을 하도록 틀을 만들어 조정할 수 있거든요.”
만약 교통사고로 사람이 죽는다고 하자. 자동차 번호판에 특별한 서명을 한 경우에만 장기이식을 한다고 인정하는 경우 장기이식은 많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서명을 한 경우에 장기이식을 반대하는 경우로 인식한다고 하자. 그러면 더 많은 사람이 죽더라도 장기이식으로 생명을 담보할 수 있는 경우가 많을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정책의 틀을 짜느냐에 따라 선택의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자유주의적 온정주의자로서 많은 사람이 안정된 은퇴를 하기를 바랍니다. 퇴직연금에 쥐꼬리만큼 가입하거나 가입하지 않는 경우를 보면 안타깝죠. 월급이 오르면 자동으로 퇴직연금에 더 많이 가입하게 해서 저축률을 높이는 방법을 사용해야 사람들이 노후에 편안한 삶을 살지요. 사람들에게 유인을 통해 제대로 행동하게 하려면 그들의 관성을 어떻게 해결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도 월급이 깎이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그러니 월급이 증가할 때 퇴직연금이 느는 식으로 설계를 해야 반발을 줄일 수 있죠. 그런 시기에 저축률을 늘려야 합니다.”
실제로 퇴직연금 가입자들 대부분은 기존 옵션을 변경하려는 시도를 거의 하지 않는다. 저축률을 높이기 위한 계획을 시작하도록 어떻게든 자극할 수 있다면, 더욱이 그것을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게 할 수 있다면, 관성은 우리의 적이 아니라 친구로 작동할 것이다. 세일러 교수는 맺음말을 하면서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서 지켜야 할 세 가지 규칙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학생들이 그것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똑똑한 사람의 현명한 향기가 물씬 풍긴다.
“먼저 여러분들은 사람들과 사회가 분별력 있는 선택을 쉽게 하도록 정책을 설계하는 것을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인생이란 게 굴곡이 있잖아요. 내려가는 상황에서 최선의 헤징은 삶에서 재미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다른 헤징과 다르게 투자은행에 수수료를 낼 필요도 없으니 얼마나 좋은 방법인가요. 인생에서 여러분 자신의 첼로를 발견하는 데 시간이 늦어 못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어떤 것도 인생에서는 늦는 것은 없어요. 그게 여러분이 여러분 스스로를 인정하고 즐기는 인물로, 나아가 참사랑으로 이끄는 길입니다.”
눈을 감고 그의 연설을 듣는데 어디선가 첼로 소리가 들려온다. 마치 청정 숲을 거니는 듯한 개운함과 감동을 준다. 우리는 투자에서부터 자녀 교육, 식생활, 우리가 옹호하는 신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항에 대해 선택을 한다. 문제는 부적절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우리가 인간인 이상 그런 경우를 피할 수는 없다. 우리를 실수로 이끄는 갖가지 편견에 취약한 것은 기정사실이다. 이러한 실수들 때문에 교육과 투자, 의료보험, 신용카드, 가족, 심지어는 지구환경에 대해서도 부적절한 결정을 내린다면 큰 일이 아닌가.
부적절한 선택 하는 경우 많아
※ 필자는 연세대(경제학과)와 미국 미시간주립대(파이낸스 석사)를 졸업했다. 행시(재경직) 34회 출신으로 재무부·재정경제원·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에서 관세·물가·복지·국제금융·통상 등의 분야에서 일했다. 저서로는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 [경제적 청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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