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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연 기자의 ‘스칸디나비안 파워’(17) 피스카스(Fiskars)] 결국 클래식은 영원하다

[허정연 기자의 ‘스칸디나비안 파워’(17) 피스카스(Fiskars)] 결국 클래식은 영원하다

370년 역사의 핀란드 최장수 기업…제철소에서 출발해 글로벌 소비재 회사로



헤이(Hej)’는 노르웨이·덴마크·스웨덴·핀란드에서 모두 통하는 인사말이다. 철자는 차이가 있지만 뜻은 하나다. 북유럽 4개국은 비슷한 언어만큼이나 정치·경제·문화적으로 공통점이 많다. 세계적인 경제 불황 속에서 재빨리 침체를 벗어난 점도 닮았다. 위기 극복의 저력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에서 나왔다. 각국 인구가 1000만명이 채 되지 않는 북유럽 국가들은 작은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일찍이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덕분에 우리에게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세계 시장 점유율 1~2위를 다투는 북유럽 출신 ‘히든챔피언’이 적지 않다. 우리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세계 시장을 휘젓는 북유럽의 숨은 강자들을 소개한다.
사진:피스카스 제공
‘피스카스(Fiskars)’라는 브랜드는 낯설어도 이 회사가 원조인 도구는 누구나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바로 가위다. 금속 가위에 플라스틱 손잡이를 적용한 ‘현대판 가위’를 처음으로 만든 회사가 바로 피스카스다. 이전까지 가위는 연철로 만들었다. 가위 손잡이로는 그립감이 불편해 가위날과 황동을 결합해 사용했다. 대량 생산되는 제품도 아니어서 일반인들은 물론 전문가들도 쉽게 사용할 수 없는 도구였다. 피스카스 가위가 탄생하기 전까지 재단사들은 전문가용 가위를 사는 데 한 달치 월급과 맞먹는 돈을 내야 했다.

피스카스의 디자이너 올로프 벡스트륌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6년 간 연구했다. 손가락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힘들이지 않고 물건을 자를 수 있도록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을 적용했다. 손잡이 재료도 가볍고 내구성이 좋은 플라스틱으로 바꿨다. 그 결과 1967년 주황색 플라스틱 손잡이가 달린 가위인 ‘O 시리즈’가 탄생했다.

이 제품은 50여 년이 흐른 지금도 ‘클래식 가위’라는 제품명으로 생산된다. 이제는 값싼 중국산 제품을 비롯해 유사품이 넘쳐나지만 여느 가정의 주방에 하나쯤 걸려있을 법한 오렌지색 플라스틱 손잡이 가위의 시초가 피스카스란 점은 변함없다. 많은 색깔 가운데 왜 하필 오렌지색 손잡이일까. 디자이너가 처음 시제품을 만들 때 쥬서 제품에 사용하고 남은 오렌지색 염료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제품은 지금까지 전 세계에 10억개 넘게 팔리며 원조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1649년 설립된 피스카스는 핀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다. 작은 제철소에서 출발한 피스카스는 그동안 홈·리빙·가든·아웃도어 브랜드를 아우르는 글로벌 소비재 회사로 성장했다. 피스카스는 작은 공구 하나에도 사용하는 사람을 배려한 디자인을 중시한다. ‘사용하기 편한’ 제품을 강점으로 핀란드 공구 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북유럽 국가 전체에서도 가위와 정원 제품으로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한다. 피스카스 그룹 산하에는 피스카스를 비롯해 이탈라(Iittala), 아라비아 핀란드(Arabia Finland), 해크먼(Hackman), 거버(Gerber), 실바(Silva), 버스터(Buster) 등 20여 개 브랜드가 포진했다. 이 브랜드는 전 세계 60여 개국에서 판매 중이다.
 플라스틱 손잡이 적용한 가위 세계 최초로 만들어
사진:피스카스 제공
‘핀란드 국민기업’의 역사는 37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피스카스가 탄생한 핀란드 남부의 ‘피스카스 브럭’이라는 마을은 작지만 제철산업에 적합한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넓은 숲 지역을 따라 펼쳐진 호수에서 풍부한 수자원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핀란드는 주변 국가와의 잦은 전쟁 탓에 제철소가 많이 생겼는데 피스카스도 그중 하나였다. 피스카스의 역사는 곧 핀란드 산업의 역사로 볼 수 있다. 12세기 중엽 스웨덴 왕 에리크 9세의 군대가 핀란드에 쳐들어오면서 핀란드는 스웨덴의 지배를 받게 됐다. 스웨덴의 역대 왕들은 호시탐탐 핀란드 영토를 침략해 국경을 넓혔다. 포메라니아의 에리크가 1397년 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의 연합 왕으로 즉위한 후 핀란드도 이 왕국에 편입됐다. 1523년 구스타프 바사가 스웨덴을 독립 왕국으로 만들면서 핀란드는 스웨덴 속국으로, 직접적인 지배를 받기 시작했다. 이후 스웨덴은 17세기 중반 일어난 ‘30년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며 유럽의 강대국으로 발돋움했다.

피스카스 지역도 스웨덴 영향권에 있었다. ‘피스카스(fiskars)’라는 이름도 스웨덴어로 낚시를 뜻하는 ‘피스케(fiske)’에서 유래했다. 이곳 호수에서 물고기가 많이 잡힌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스웨덴이 핀란드를 지배하는 과정에서 핀란드의 작은 마을에서는 두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철강 산업이 발달하고, 스웨덴과 교역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스웨덴은 자국 내 섬에서 채취한 철광석을 핀란드로 옮겨 가공했다. 피스카스는 석탄을 손쉽게 공급할 수 있는 지리적 위치에 있었다. 또 호수를 끼고 있는 덕분에 철강산업에 유리할 뿐 아니라 호수를 통해 스웨덴과 교역하기도 쉬웠다. 철강산업이 발달할 수 있는 삼박자를 두루 갖춘 셈이다.

스웨덴은 30년전쟁에서 승리를 거듭했지만 갈수록 재정도 악화됐다.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웨덴은 피스카스 지역 사업권을 네덜란드 사업가에게 넘겼다. 네덜란드 출신의 야심찬 사업가 피터 토르뵈스테는 30년전쟁이 끝난 직후 피스카스 지역에 제련공장을 세웠다. 이것이 오늘날의 피스카스의 전신이 됐다. 당시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은 대포를 만들지 않는 조건으로 사업허가를 내줬다. 이후 1822년부터 1853년까지 약 30년 간은 피스카스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1822년 피스카스를 인수한 핀란드 사업가 요한 야콥 율린은 핀란드 최초의 단조공장·기계공장·방적공장 등을 차례로 이 지역에 세웠다. 1832년에는 핀란드 최초의 증기 기관 공장을 설립했다. 이때 첫번째 나이프 공장도 설립했는데, 나이프 소비량이 증가하며 생산범위를 포크와 가위로 더욱 확장해나갔다.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며 이 시기 피스카스 지역의 인구는 6배 이상 증가했다. 1883년 율린이 죽자 그의 후손 에밀 린지 폰 율린은 피스카스사를 주식회사로 등록해 1915년 헬싱키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이후 피스카스는 핀란드 최초의 금속 스프링 공장, 압연 공장 등 다양한 ‘최초’를 기록하며 황금기를 맞게 된다.

그 정점은 1967년 플라스틱 손잡이 가위를 출시했을 때다. 오렌지색 손잡이 가위로 피스카스가 점차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마을에는 일거리가 넘쳐났다. 이주민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은 물론 이제 갓 예닐곱살 된 아이들까지 공장 일을 하며 용돈을 벌 정도로 돈이 넘쳤다. 당시로서 획기적인 디자인이었던 피스카스 가위의 성공 비결은 크게 두 가지로 꼽힌다. 우선 사용자의 편리를 최우선한 점이다. 관절의 움직임을 고려한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을 적용해 가위를 쥐면 손에 착 달라붙는 것처럼 사용감이 좋다. 자유자재로 천이나 종이를 자를 수 있어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도 천을 재단할 때 피스카스 가위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페라리는 오래 전부터 자동차의 가죽시트를 만드는 장인들이 피스카스 제품을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두번째는 전에 없던 주황색을 사용한 것이다. 덕분에 주방이나 수납장 등 어디에 두어도 눈에 잘 띈다. 사용자들이 공구가 필요할 때 어디서든 쉽게 찾아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관절 움직임 고려한 인체공학적 설계
플라스틱 손잡이 가위 생산을 시작한 1967년 당시 피스카스 광고.
피스카스는 현재 100여종에 달하는 다양한 가위를 생산한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가위부터 직물을 자르는 용도의 패브릭 가위, 바느질용 가위, 정원용 가위, 종이용 가위를 비롯해 손톱용 가위와 어린이용 가위, 왼손잡이용 가위 등 그야말로 세상 모든 가위류를 취급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피스카스 가위는 크게 절삭·성능·강도·내구성·회전 실험 등 까다로운 테스트 과정을 거친다. 절삭 테스트의 경우 허공에 대고 가위를 사용해 날이 부딪히는 소리가 정상적으로 나는지 확인한다. 그 다음 두꺼운 패브릭을 자르는 테스트를 한다. 강도 실험의 경우 1m, 1.5m, 2m 높이에서 각각 떨어뜨려 제품의 파손 여부와 안전성을 확인한다. 주방이나 거실 테이블 등에서 가위가 미끄러져 떨어지는 상황에 대비해 여러 차례 회전시켜 떨어뜨리는 실험도 거친다. 까다로운 테스트를 거쳐 제품이 안전성과 성능을 확인한 후에야 제품으로 출시된다.

피스카스는 인건비를 더 부담하면서도 자국 생산을 원칙으로 한다. 피스카스 가위는 300년 넘게 숙련된 직원들이 전통적인 방식대로 만든다. 피스카스 가위에 붙은 ‘메이드 인 핀란드’는 곧 핀란드의 장인정신이자 피스카스의 역사인 셈이다.

줄곧 핀란드의 작은 마을에 머물러 있던 피스카스는 1977년 미국에 가위 공장을 설립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다. 1985년 들어 현대적인 원예용 도구를 생산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미국의 칼·멀티툴 제조사 거버를 인수했다. 21세기 들어 피스카스는 본격적으로 기업 인수를 통해 몸집을 키웠다. 2007년 핀란드의 라이프스타일 디자인 브랜드 이딸라를 인수해 리빙 분야의 기반을 다졌고, 정원 사업 강화를 위해 프랑스 르보르뉴를 잇따라 인수했다. 2013년엔 덴마크의 왕실 도자기 브랜드 로얄코펜하겐을, 2015년에는 영국의 럭셔리 리빙 그룹 WWRD(웨지우드·워터포드·로얄덜튼·로얄알버트·로가스카)를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피스카스 그룹은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전 세계의 소비자에게 꼭 필요한 물건들을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며 “피스카스의 비전은 앞으로도 ‘사람들이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Making the everyday extraordinary)’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핀란드에서 가장 존경받는 ‘국민기업'
핀란드 헬싱키 피스카스 본사 전경. / 사진:피스카스 제공
핀란드 대표 장수기업인 피스카스는 동시에 가장 존경받는 기업으로 손꼽힌다. 핀란드의 마케팅 전문지 M&M이 2008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피스카스가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나머지 2~5위도 피스카스 산하 브랜드가 포진했을 정도로 신뢰가 높다. 지난해 피스카스는 핀란드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회사 소유의 산림 약 40만㎡(약 12만1000평)를 국가에 기부했다. 피스카스 그룹은 “제철소에서 시작한 우리 그룹에게 나무를 비롯한 자연은 항상 중요한 원료였다”며 “피스카스가 수 백년 세월 동안 지켜온 자연유산을 이제는 더 많은 사람이 즐기면서 평화와 영감을 얻길 바란다”고 밝혔다.

지난해 탄생 50주년을 맞은 피스카스의 ‘클래식 가위’의 디자인은 초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엄지가 들어가는 고리 모양이나 검지와 중지가 감싸는 부분의 휘어짐, 잘리는 순간 열리는 날의 각도 같은 미세한 부분이 조금씩 달라졌다. 새로운 기술을 적용하고, 더 적합한 소재를 찾아쓰는 것은 물론이다. 지금 이 순간도 피스카스는 진화 중이다. 누군가는 ‘그래 봤자 가위’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소한 물건 하나에도 시간과 정성을 아끼지 않는 것이 피스카스의 힘이다. 300년 넘게 ‘클래식’을 고집하는 기업. 결국 클래식은 영원하다.
 [박스기사] 피스카스 출범한 ‘피스카스 브럭’ 마을은 지금 - 연 15만 관광객 찾는 문화·예술 마을로 탈바꿈
사진:피스카스 제공
피스카스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자 더이상 피스카스 마을에만 머물 수 없게 됐다. 1990년대 들어 피스카스는 본사를 핀란드 수도 헬싱키로 옮겼고, 이 지역은 점차 쇠퇴했다. 피스카스는 300년 넘게 회사의 근간이 된 작은 마을을 살릴 방안을 고민했다. 피스카스는 ‘살아 있는 제철 마을 만들기(A living ironwork village)’라는 슬로건 아래 지역 전통인 철강산업을 지켜가며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주거지역 설립 계획을 세웠다. 피스카스는 자사가 사용하던 대지와 건물을 예술가들에게 작업장 겸 주거 공간으로 제공했다.

1993년 20여 개 분야의 예술가들이 피스카스 마을로 첫 이주민이 됐고, 이들은 공동 전시회를 개최했다. 전시회가 성공적으로 치뤄지자 국내외 많은 예술인들이 피스카스 마을로 찾아들었다. 피스카스가 사용하던 19세기 건축물이 전시회를 여는 갤러리가 됐고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는 상점이 됐다. 1996년에는 ‘피스카스의 예술가 조합’이 설립되기도 했다. 수백 여 명의 화가와 가구장인, 유리공예가, 도예가, 금속공예가, 산업디자이너 등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현재 피스카스 마을에 사는 600여 명의 주민 가운데 절반가량이 예술계 종사자다. 피스카스 예술인 마을은 30%의 후원과 70%의 자체 수익으로 운영된다. 후원은 크게 문화재단·문화·사기업의 후원으로 이뤄지며 수익은 피스카스의 장인, 디자이너, 예술가 조합(ONOMA)에서 운영하는 상점의 판매 수익과 전시회 티켓의 수익으로 구성된다. 예술가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관람하거나 실제 작업 체험을 하려면 돈을 내야 한다. 매년 열리는 정기 전시회 등이 주목받으며 이곳은 핀란드에서 가장 주목받는 문화 관광지로 성장했다. 철강산업의 쇠퇴와 피스카스 본사 이전으로 한때 위기를 맞았던 피스카스 마을은 이제 매년 15만 명의 방문객이 찾는 예술 중심지로 탈바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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