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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과 슈퍼히어로의 만남

힙합과 슈퍼히어로의 만남

마블 만화의 흑인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최초의 TV 드라마 시리즈 ‘마블 루크 케이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 ‘마블 루크 케이지’ 시즌2의 한 장면. 마이크 콜터가 주인공 케이지를 연기했다. / 사진:DAVID LEE/NETFLIX
‘마블 루크 케이지’ 시즌2가 공개됐다. 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는 미국 사회의 시대상을 시의적절하게 대변한 작품으로 2016년 첫선을 보였다. 마블 만화의 흑인 슈퍼히어로가 TV 드라마의 제목을 장식한 최초의 작품이었다. 특히 주인공 케이지는 총알 구멍이 숭숭 뚫린 후드티를 입는다. 2012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히스패닉 자경단원의 권총에 맞아 사망한 비무장 흑인 소년 트레이본 마틴의 치명적인 상처를 떠올린다. ‘공권력에 의한 흑인 소년의 희생’이라는 감정적 양극화를 불러온 미국 사회의 문제를 만화의 현실도피주의와 결합시킨 것은 드라마로서 대담한 시도로 평가 받는다.

하지만 이 작품의 제작·연출을 총괄하는 체오 호다리 코커는 흑인 청소년이 경찰의 총격을 받아 숨지는 미국 사회의 기이한 현상을 강조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오히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언젠가 미국의 흑인이 그런 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온다는 희망을 주고 싶다고 밝혔다.

케이지는 1972년 마블 만화에 처음 등장했다. 그는 전과자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던 중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다. 케이지가 초능력을 얻게 된 과정은 또 다른 마블 캐릭터 제시카 존스의 경우와 흡사하다. 그는 원치 않는 의료 실험 도중 일어난 사고로 총알도 뚫지 못하는 강철 피부를 갖게 된다. 이후 도망자가 된 케이지는 자신의 능력을 숨기고 사람들의 관심을 피해 살고자 하지만 얼마 못 가 뉴욕 할렘을 지키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는 현실에 맞닥뜨린다. 마지못해 슈퍼히어로가 된 것이다. 그러면서 케이지는 초능력자로서의 심리적인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시즌1은 ‘강철 피부를 가진 흑인 남자’가 자신의 능력을 받아들이고 할렘을 보호하는 사명을 떠안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최근 공개된 시즌2에선 케이지가 혼자서 모든 사람을 구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한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한다는 사실로 인해 심한 갈등을 겪는다.

음악 전문기자에서 드라마 대본작가로 방향을 바꾼 코커는 실제 자신의 영웅이었던 힙합의 전설 투팍 샤커에게 영감을 얻어 케이지의 캐릭터를 발전시켰다고 말했다. 1990년대 미국 서부를 대표하는 ‘갱스터 래퍼’로서 흑인 빈민가의 폭력과 사회적 문제 등을 노래로 표현한 샤커도 드라마 같은 격동의 삶을 살았다. 그는 1996년 라스베이거스에서 괴한의 총격을 받아 25세에 사망했다. 서부 힙합을 대표하던 그와 ‘동부 힙합의 전설’로 꼽히는 노토리어스 비아이지 사이의 갈등이 초래한 총격 사건으로 추정됐다. 비아이지 역시 이듬해인 1997년 24세의 나이로 총에 맞아 숨졌다.

샤커는 갱스터로서의 삶에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믿었다. 코커도 같은 생각이다. 그는 “샤커에 관해 매력적이면서도 좌절스러운 점은 그가 갱스터의 길을 걷는 것이 잘못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다”고 말했다. “흑표당(Black Panther Party, 급진적 흑인 인권운동 단체로 샤커의 어머니가 이 단체의 간부였다)은 갱스터의 에너지를 용감하고 긍정적인 힘으로 승화시키고자 했다. 샤커도 그처럼 흑인 청소년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힙합을 하면서 그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으려고 애썼다. 그들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시즌2의 초기 에피소드에서 케이지(마이크 콜터)는 새로운 악당 부시마스터(무스타파 샤키르)와 맞붙었다가 치욕스럽게 패한다. 케이지는 그동안 잔혹함을 경멸했지만 그 사건 이후 오히려 스스로 잔혹함을 드러내며 부시마스터에게 반격을 가한다. 당연히 그의 내면은 극심한 정체성의 위기를 겪는다. 코커는 그 과정을 설명하며 ‘핵주먹’으로 알려진 전설의 복서 마이크 타이슨의 말을 인용했다. “얼굴에 펀치를 얻어맞고 나면 그에 맞대응할 뿐 훌륭한 계획이고 뭐고 필요 없다.” 코커는 시청자가 최종회인 13편에 가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갖게 되기를 바랐다고 설명했다. “이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헷갈린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범죄를 막는 영웅이 동시에 범죄자인가? 초인적인 영웅이 너무도 인간적인 오류를 지니고 있어 그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왼쪽부터 시곗바늘 방향으로) 루크 케이지 캐릭터는 힙합의 전설로 불리는 투팍 샤커를 모델로 했다. 그 외에 재즈 음악가이자 베이스 연주자인 에스페란자 스폴딩, 힙합의 선구자 디제이 쿨 허크, 재즈 가수 니나 시몬도 드라마 제작 총책임자 코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 사진:BAP-NEWSIS(2), YOUTUBE, AP-NEWSIS
코커는 이 드라마를 ‘트로이의 목마’라고 생각한다. 상대 진영에 몰래 침투해 문을 열어젖힘으로써 대화와 새로운 식견을 전파하는 역할을 떠맡는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그는 “만화책 팬으로선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던 모든 다양한 문화에 시청자가 깊이 빠져들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코커에겐 그 문을 열어젖히는 ‘비언어적인 열쇠’가 음악이다. 그는 이 드라마에서 음악을 스토리텔링의 일부로 사용한다. 코커는 “할리우드의 거장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청소년 시절 로큰롤에 빠졌듯이 난 갱스터 랩에 매혹됐다”고 말했다. “스콜세지 감독은 로큰롤에서 창의적인 자신감을 얻었다. 1990년대 내가 젊었을 때는 카하트 재킷과 팀버랜드 부츠로 상징되는 갱스터 랩이 유행했다. 그게 나의 ‘로큰롤’인 셈이었다.” 음악과 관련해 코커는 ‘마블 루크 케이지’ 시즌1을 “마블 만화 세계의 우탱클랜화’로 묘사했다(우탱클랜은 힙합계의 유명한 흑인 그룹이다). 백인 일색인 세계에 처음으로 흑인 히어로를 선보였다는 뜻이다(또 다른 마블의 흑인 주인공 드라마 ‘블랙 팬서’는 그로부터 1년 뒤인 지난해 첫 시즌을 시작했다).‘마블 루크 케이지’ 시즌2는 랩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코커는 “힙합의 뿌리엔 R&B, 펑크, 레게 음악이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초의 힙합 스타 DJ는 ‘디제이 쿨 허크’였다. 자메이카에서 태어나 십대 시절 뉴욕 브롱크스로 이주한 쿨 허크는 1950년대 킹스턴에서 시작된 자메이카 전통 ‘사운드 시스템’을 선보였다. DJ와 MC가 거대한 스피커를 설치하고 거리 파티를 열어 턴테이블에서 직접 샘플링과 믹싱을 하면서 중간중간 애드립으로 말을 추가하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마블 루크 케이지’ 시청자는 시즌2에서 아주 다양한 카리브해 문화를 접하게 된다. 부시마스터가 그 안내자다. 부시마스터는 할렘의 이야기를 자신이 사는 브루클린 크라운 하이츠로 가져간다. 카리브해 출신 이민자가 집단으로 거주하는 그곳에 실제로 있는 식당 글래디스(자메이카 전통 음식인 염소고기 커리, 저크 치킨, 페퍼드 슈림프로 유명하며 극중에선 식당 이름이 ‘그웬스’로 나온다)가 그의 아지트다. 거기서 부시마스터는 자메이카 음악을 들으며 할렘을 자신의 왕국에 합병할 음모를 꾸민다.

코커는 1990년대 자신이 그랬듯이 시청자도 레게 음악의 에너지와 리듬에 푹 빠지기를 기대한다. “파티에 가면 흥이 오를 때 갑자기 레게 음악이 울려 퍼졌다. 그러면 모두 신나서 몸을 흔들었다. 그런 문화를 몰랐다면 처음엔 이해하기 어렵지만 자꾸 접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빠지게 된다.”코커는 요즘의 드라마 ‘몰아보기’ 추세를 자신의 십대 시절 음악 듣던 방식에 견줬다. “프린스가 앨범을 내면, 예를 들어 ‘Sign ‘O’ the Times’나 ‘Lovesexy’가 시판되면 그 즉시 CD나 카세트를 구입해 집에 가서 앨범 전체를 연거푸 두 번씩 들었다. 앨범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기 위해 불도 껐다. 그런 다음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몇 시간 동안 그 앨범에 관해 이야기했다.”

코커가 음악 전문기자가 된 것은 ‘A&R 맨’이 꿈이었기 때문이다. 음반회사에서 아티스트의 발굴, 앨범 기획·제작, 곡목 관리 등을 전담하는 간부를 말한다. 그는 “이제 드디어 TV 드라마 제작 총책임자가 됐으니 그 꿈을 이룬 셈”이라고 말했다. 코커는 마치 앨범을 제작하듯이 ‘마블 루크 케이지’ 제작 계획을 세웠다. 예를 들어 각 에피소드의 명칭에 사운드트랙에 사용되는 음악 제목을 사용했다. 니나 시몬(그의 어머니가 좋아하는 가수다), 라킴, 페이스 에번스, 고스트페이스 킬라(우탱클랜 멤버) 등의 아티스트가 만든 음악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그의 드라마는 비욘세의 콘셉트 앨범(한 가지 주제를 기준으로 음악을 선별해 담은 앨범)과 비슷하다. “비욘세는 6집 앨범 ‘Lemonade’를 내면서 비디오도 함께 출시했다”고 코커는 설명했다. “음악과 함께 스토리라인, 연기, 분위기에 동시에 몰두할 수 있는 신나는 경험이었다. ‘마블 루크 케이지’에서도 그런 경험을 제공하고 싶다. 강철 피부의 ‘방탄 레모네이드’라고 할까?”

- 오텀 노엘 켈리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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