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렌털산업 역사는] 렌터카로 싹 트고 정수기로 꽃 피워
[국내 렌털산업 역사는] 렌터카로 싹 트고 정수기로 꽃 피워
웅진그룹, 국내 최초로 가전 렌털 서비스 도입...지난해 국내 총 렌털 계정 1000만개 넘어 경제·산업적으로 렌털의 개념은 아주 오래 전부터 국내에 존재했다. 부동산 전·월세나 책·DVD 대여점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조금 더 산업적인 관점에서 짚어보려면 개별 기업과 사회 전반의 변화상을 고루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기업 한두 곳보다는 사회 전반의 변화상이 시장 확대의 결정적 계기였던 사례로 렌터카가 있다. 1975년 ‘대한렌터카’라는 업체가 국내 최초로 서울에서 렌터카 사업을 시작했지만, 본격적으로 렌터카 업종이 도입된 것은 그로부터 13년이나 지난 1988년부터였다.
당시 하계올림픽이 서울에서 열리면서 유례없을 정도로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몰려들었고, 기업들은 이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장기적인 수익 모델도 발굴하기 위해 렌터카 도입에 적극 나섰다. 이렇게 막 렌터카 시장이 형성됐던 초창기만 해도 곳곳에서 웃지 못할 해프닝이 생겨났다. 당시만 해도 자동차를 사고파는 데만 익숙해 ‘빌린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던’ 소비자들이 종종 차를 빌리고도 반납해야 하는 날짜를 착각해 지키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업체들은 일일이 전화를 걸어 대여기간이 지났음을 알리면서 ‘수거’에 나서야만 했다. 심지어 소비자가 렌터카를 갖고 도망쳐 경찰에 신고 접수되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했다. 이후 시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진 것과 비례해 렌터카의 국내 정착도 점차 순조로워졌다. 그런가 하면 한 기업이 ‘퍼스트 무버(선도자)’로서 렌털 개념을 대대적으로 도입해 소비시장 판도를 송두리째 바꿨던 사례도 있다. 웅진그룹이다. 웅진은 창업주인 윤석금 회장이 1980년 세운 ‘헤임인터내셔널(현 웅진씽크빅)’이라는 출판사가 그룹의 모태다. 이 회사는 학습지와 전집 등을 발행하면서 돈을 벌었다. 애초 윤 회장은 1971년부터 창업 직전까지 백과사전을 발행하는 영국 기업 ‘브리태니커’의 국내 지사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면서 창업 자금을 마련했다. 그는 브리태니커 입사 1년 만에 54개국 영업사원을 통틀어 판매 1위를 기록할 만큼 방문판매 수완이 빼어났다.
창업하고서도 출판업으로 목돈을 모은 윤 회장은 9년 만인 1989년 웅진코웨이(현 코웨이)를 설립했다. 정수기 판매가 본업이던 웅진코웨이는 국내 가전 업계에서 최초로 렌털 사업을 도입하면서 동종 업계는 물론 소비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1998년 4월의 일이다. 소비자가 매월 2만6000~5만1000원을 내면 고가 정수기를 빌려주고 정기적으로 관리해줄 테니 굳이 사서 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윤 회장이 직접 낸 아이디어였지만 사내에선 “고가 가전을 사람들이 빌려서 쓰겠느냐”며 회의를 품는 임직원이 다수였다.
윤 회장은 자서전 [긍정이 걸작을 만든다]에서 렌털 사업을 결심했던 배경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소비시장이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정수기 같은 고가 상품은 매출이 뚝 떨어졌다. 궁여지책으로 무이자 할부 행사를 진행해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어 어느 순간 정수기 매출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회사를 되살릴 묘안을 찾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다. 시장은 침체기였지만 건강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은 많았으므로 분명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어 그는 렌털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래! 비싸니까 팔지 말고 빌려주자!’ 젊은 시절 방문판매 현장에서 수많은 소비자들을 만나 반응을 살피고 여러 얘기를 들었던 생생한 순간들이 뇌리를 스쳤다.
그의 생각은 이랬다. 냉장고나 세탁기 같은 주요 생활가전은 제품 불량이 아닌 이상 그 수명이 다할 때까지 소비자의 특별한 관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정수기나 공기청정기는 다르다. 필터 교환 등 정기적인 관리가 필요하며, 이런 관리에 소홀했을 땐 아무리 잘 만든 첨단 제품이더라도 소비자 건강에 해가 된다. 따라서 빌려주되 관리까지 기업이 책임진다면 소비자 입장에선 부담 없는 비용으로 보다 편리하게 제품을 쓸 수 있게 된다. ‘게다가 팔지 않고 빌려주니 제품 소유주는 여전히 기업이고, 그런 만큼 기업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제품에 대한 관리를 꾸준히 할 수밖에 없다. 이를 소비자들에게 인식시키기만 하면 제품에 대한 성의 있는 관리와 그 지속성을 신뢰할 것이다.’
예측은 들어맞았고 렌털 사업은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였다. 웅진코웨이는 렌털 서비스 제도를 도입한 지 4년 만인 2002년 렌털 서비스 가입 계정 100만개 돌파에 성공해 가전업계를 놀라게 했다. 2010년엔 500만개를 넘어섰다. 웅진그룹은 이를 바탕으로 2011년 한때 재계 32위(자산 규모 기준)에 오를 만큼 나날이 사세가 확장됐다. 윤 회장은 “만일 IMF 사태로 위기를 맞지 않았다면 정수기 렌털 제도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가끔은 위기가 좋은 약이 된다”고 회고했다(자서전 [사람의 힘]). 웅진그룹은 이처럼 잘나가던 때 극동건설 인수 등 무리한 사업 확장에 나섰던 게 화근으로 작용, 경영난에 처한 뒤 법정관리를 받고 웅진코웨이마저 떠나보내야 했다(2013년 국내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에 매각). 현재 윤 회장은 코웨이 인수를 노리면서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 웅진코웨이의 성공 이후 다양한 후발주자들이 등장해 지금은 청호나이스·SK매직·쿠쿠홈시스·LG전자·교원 같은 기업들이 가전 업계에서 렌털 시장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인기 렌털 품목인 정수기·공기청정기 외에도 청호나이스는 비데와 연수기, SK매직은 전기레인지·의류건조기·식기세척기·안마의자, 쿠쿠홈시스는 제습기와 매트리스 등을 각각 비슷한 방식으로 대여해준다. 특히 자금력을 앞세운 대기업들의 도전이 거세다. SK매직이 지난해 렌털 계정 125만개로 청호나이스(113만개)를 제치고 국내 2위 자리를 지켰다. 2015년엔 4위였지만 공격적인 영업으로 2016년부터 2위가 됐다. 국내 생활가전의 요람으로 통하지만 렌털에 있어선 후발주자(2008년 처음 진출)인 LG전자도 2015년 23만개에서 지난해 76만개로 짧은 기간 렌털 계정이 대폭 증가했다.
쿠쿠홈시스까지 포함하면 4개 기업이 지난해 렌털 계정 각각 100만개를 돌파할 만큼 경쟁이 한층 치열해졌다. 2016년만 해도 렌털 계정 100만개 이상인 기업은 코웨이뿐이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총 렌털 계정 수는 1070만개였다. 2015년 880만개, 2016년 938만개 등으로 계속 늘어나며 사상 첫 1000만 계정을 돌파했다. 국내 전체 인구를 약 5000만 명, 가구 하나당 4인의 구성원이 있다고 봤을 때 가구당 1개 이상의 렌털 제품을 이용 중이라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인구 대비 렌털 수요가 그만큼 많으며 증가세도 탄탄하다고 볼 수 있다”며 “경쟁 격화로 기업들의 긴장도는 높겠지만 소비자 권익은 계속해서 증진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시 하계올림픽이 서울에서 열리면서 유례없을 정도로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몰려들었고, 기업들은 이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장기적인 수익 모델도 발굴하기 위해 렌터카 도입에 적극 나섰다. 이렇게 막 렌터카 시장이 형성됐던 초창기만 해도 곳곳에서 웃지 못할 해프닝이 생겨났다. 당시만 해도 자동차를 사고파는 데만 익숙해 ‘빌린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던’ 소비자들이 종종 차를 빌리고도 반납해야 하는 날짜를 착각해 지키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업체들은 일일이 전화를 걸어 대여기간이 지났음을 알리면서 ‘수거’에 나서야만 했다. 심지어 소비자가 렌터카를 갖고 도망쳐 경찰에 신고 접수되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했다. 이후 시민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진 것과 비례해 렌터카의 국내 정착도 점차 순조로워졌다.
렌터카, 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본격 도입
창업하고서도 출판업으로 목돈을 모은 윤 회장은 9년 만인 1989년 웅진코웨이(현 코웨이)를 설립했다. 정수기 판매가 본업이던 웅진코웨이는 국내 가전 업계에서 최초로 렌털 사업을 도입하면서 동종 업계는 물론 소비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1998년 4월의 일이다. 소비자가 매월 2만6000~5만1000원을 내면 고가 정수기를 빌려주고 정기적으로 관리해줄 테니 굳이 사서 쓰지 말라는 것이었다. 윤 회장이 직접 낸 아이디어였지만 사내에선 “고가 가전을 사람들이 빌려서 쓰겠느냐”며 회의를 품는 임직원이 다수였다.
윤 회장은 자서전 [긍정이 걸작을 만든다]에서 렌털 사업을 결심했던 배경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로 소비시장이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정수기 같은 고가 상품은 매출이 뚝 떨어졌다. 궁여지책으로 무이자 할부 행사를 진행해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어 어느 순간 정수기 매출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회사를 되살릴 묘안을 찾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다. 시장은 침체기였지만 건강에 대한 소비자의 관심은 많았으므로 분명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어 그는 렌털에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래! 비싸니까 팔지 말고 빌려주자!’ 젊은 시절 방문판매 현장에서 수많은 소비자들을 만나 반응을 살피고 여러 얘기를 들었던 생생한 순간들이 뇌리를 스쳤다.
그의 생각은 이랬다. 냉장고나 세탁기 같은 주요 생활가전은 제품 불량이 아닌 이상 그 수명이 다할 때까지 소비자의 특별한 관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정수기나 공기청정기는 다르다. 필터 교환 등 정기적인 관리가 필요하며, 이런 관리에 소홀했을 땐 아무리 잘 만든 첨단 제품이더라도 소비자 건강에 해가 된다. 따라서 빌려주되 관리까지 기업이 책임진다면 소비자 입장에선 부담 없는 비용으로 보다 편리하게 제품을 쓸 수 있게 된다. ‘게다가 팔지 않고 빌려주니 제품 소유주는 여전히 기업이고, 그런 만큼 기업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제품에 대한 관리를 꾸준히 할 수밖에 없다. 이를 소비자들에게 인식시키기만 하면 제품에 대한 성의 있는 관리와 그 지속성을 신뢰할 것이다.’
예측은 들어맞았고 렌털 사업은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였다. 웅진코웨이는 렌털 서비스 제도를 도입한 지 4년 만인 2002년 렌털 서비스 가입 계정 100만개 돌파에 성공해 가전업계를 놀라게 했다. 2010년엔 500만개를 넘어섰다. 웅진그룹은 이를 바탕으로 2011년 한때 재계 32위(자산 규모 기준)에 오를 만큼 나날이 사세가 확장됐다. 윤 회장은 “만일 IMF 사태로 위기를 맞지 않았다면 정수기 렌털 제도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가끔은 위기가 좋은 약이 된다”고 회고했다(자서전 [사람의 힘]). 웅진그룹은 이처럼 잘나가던 때 극동건설 인수 등 무리한 사업 확장에 나섰던 게 화근으로 작용, 경영난에 처한 뒤 법정관리를 받고 웅진코웨이마저 떠나보내야 했다(2013년 국내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에 매각). 현재 윤 회장은 코웨이 인수를 노리면서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
청호나이스·SK매직·쿠쿠홈시스도 100만 계정 돌파
쿠쿠홈시스까지 포함하면 4개 기업이 지난해 렌털 계정 각각 100만개를 돌파할 만큼 경쟁이 한층 치열해졌다. 2016년만 해도 렌털 계정 100만개 이상인 기업은 코웨이뿐이었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총 렌털 계정 수는 1070만개였다. 2015년 880만개, 2016년 938만개 등으로 계속 늘어나며 사상 첫 1000만 계정을 돌파했다. 국내 전체 인구를 약 5000만 명, 가구 하나당 4인의 구성원이 있다고 봤을 때 가구당 1개 이상의 렌털 제품을 이용 중이라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인구 대비 렌털 수요가 그만큼 많으며 증가세도 탄탄하다고 볼 수 있다”며 “경쟁 격화로 기업들의 긴장도는 높겠지만 소비자 권익은 계속해서 증진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1147회 로또 1등 ‘7, 11, 24, 26, 27, 37’…보너스 ‘32’
2러 루블, 달러 대비 가치 2년여 만에 최저…은행 제재 여파
3“또 올랐다고?”…주유소 기름값 6주 연속 상승
4 정부, 사도광산 추도식 불참키로…日대표 야스쿠니 참배이력 문제
5알렉스 웡 美안보부좌관 지명자, 알고 보니 ‘쿠팡 임원’이었다
61조4000억원짜리 에메랄드, ‘저주받은’ 꼬리표 떼고 23년 만에 고향으로
7“초저가 온라인 쇼핑 관리 태만”…中 정부에 쓴소리 뱉은 생수업체 회장
8美공화당 첫 성소수자 장관 탄생?…트럼프 2기 재무 베센트는 누구
9자본시장연구원 신임 원장에 김세완 이화여대 교수 내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