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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거세지는 호르무즈 해협

파도 거세지는 호르무즈 해협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해상 원유 루트 … 미국의 원유 수출 차단 제재에 맞서 이란이 봉쇄할까
“미국을 위협하면 역대급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로하니 이란 대통령 (오른쪽 사진)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으로 맞섰다. / 사진:AP-NEWSIS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란 핵합의 탈퇴에 따라 미국은 지난 8월 6일 이란의 제조업, 항공·자동차 산업을 제한하는 1단계 대이란 제재를 재개한 데 이어 오는 11월 4일부터 이란산 원유 거래 차단을 포함한 2단계 제재까지 예고했다. 미국이 이처럼 이란의 원유 수출을 막으려 하자 이란은 세계에서 가장 번잡한 해상 원유 루트를 봉쇄할 수 있다고 맞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미국을 위협하면 역대급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며 이란 경제의 생명줄이나 마찬가지인 원유 수출을 ‘제로’로 만들기 위해 전 세계 각국의 협조를 요청했다. 이에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사자의 꼬리를 갖고 놀지 말라”고 격분하며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위협했다.‘대추야자’라는 뜻의 호르무즈 해협은 가장 좁은 구간의 폭이 54㎞에 불과하며 경제·군사적으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다. 오만 만과 페르시아 만을 잇는 바닷길로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이라크·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중동 주요 산유국이 아시아·유럽 쪽에 원유를 수출하는 길목으로 전 세계 원유 해상 물동량의 30%를 차지한다. 원유 통과 5대 전략 지점(호르무즈, 바브알 만데브 해협, 말라카 해협, 수에즈 운하, 파나마 운하) 중 가장 중요한 지점으로 꼽힌다. 이란은 미국과 갈등을 빚을 때마다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수 있다고 위협하곤 했지만 실행한 적은 없다. 이번에도 이란이 실제 그 경고를 실행에 옮기려 한다는 조짐은 아직 없다. 그러나 만약의 사태가 발생해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다면 이 지역에 재앙이 닥칠 가능성이 클 뿐 아니라 세계의 에너지 가격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2015년 이란 혁명수비대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미국 항공모함 모형 폭파 훈련도 했다. / 사진:JOONGANG PHOTO
미국과 이란 정부 사이의 상호 위협 공방전이 벌어지는 와중에 이란 정예군 혁명수비대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도에 따르면 이란 해군과 공군의 합동 훈련에서 ‘파테-110’ 단거리 탄도미사일도 시험발사됐다. 로하니 대통령이 해상 봉쇄를 시사하자 혁명수비대는 적극적으로 그 방향으로 팔을 걷어부치고 나선 모습이다.이처럼 미국과 이란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지만 미국의 전략 전문가들은 이란이 실제로 전 세계 원유 무역의 생명선인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할 정도로 무모하진 않을 것으로 믿는다. 미국 텍사스 주 소재 싱크탱크 ‘지정학의 미래(Geopolitical Futures)’에서 분석 담당 국장을 맡고 있는 제이컵 섀피로는 뉴스위크에 “이란이 그런 무리수를 둘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만약 사태가 그쪽으로 진행될 경우 그 결과는 아주 끔찍할 것”이라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촬영한 호르무즈 해협과 지도. 호르무즈 해협은 경제·군사적으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다. / 사진:AP-NEWSIS
섀피로 국장은 “만에 하나 미국의 제재가 실제로 이란의 원유 수출을 완전히 가로막아 이란이 더 잃을 게 없다고 판단하거나 무엇보다 국내에서 정부의 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경우 호르무즈 해협을 실제로 봉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그럴 경우 유가가 단기적으로 크게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해상으로 운송되는 원유 전체의 약 3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심해야 할 중요한 사항은 그것이 일시적인 현상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조만간, 아마 생각보다 더 빨리 호르무즈 해협의 문은 다시 열릴 것이다. 미국의 셰일석유·가스 생산업체들이 증산할 게 분명하고 러시아도 원유 생산을 늘려 고갈된 국고를 채우고 싶어 한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의 가장 중요한 결과는 엉뚱하게도 경제난에 시달리는 러시아에 현금을 수혈해주게 될 전망이다.”

섀피로 국장은 이란의 입장에서도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지속 불가능한 전략이라고 주장했다. “외국의 군사적 개입이 이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쿠웨이트·사우디·카타르·UAE 같은 수니파 무슬림 군주국가를 위해 미국이 나설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럴 경우 이란의 군사력은 그에 비할 바가 못된다.

그럼에도 최근 호르무즈 해협에서 실시된 이란 혁명 수비대의 훈련은 미국 국방부 지휘부의 주목을 끌었다. 미군 중부사령부 사령관 조셉 보텔 대장은 지난 8월 8일 미국 국방부에서 “우리의 제재가 시작되면서 그들(이란)이 자신도 군사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고자 군사훈련을 이용하려 한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긴장 높은 이 해역에서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사소한 충돌은 빈번할 수 있지만 보텔 사령관은 이란 측의 군함 약 100척이 동원된 이번 훈련은 그런 충돌과는 상관없었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이란군이 매년 진행해온 연례 훈련으로 이례적인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었다. “물론 호르무즈 해협 부근에서 이란은 어느 정도 군사적 역량을 갖고 있다. 기뢰, 자살폭탄 보트, 해안 방어 미사일과 레이더 등이 거기에 포함된다. 따라서 그들은 분명히 군사적 능력이 있다. 하지만 우리도 그 정도는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 해역에서 기뢰 제거 훈련을 자주 실시하며 전투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 지역의 우리 동맹국들도 유사시 대처할 수 있는 훈련과 준비가 잘 돼 있다.”이란의 경우 만약 군사적인 충돌이 발생할 경우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국내 요인도 복잡하다. 이란은 대부분 시아파 무슬림 운동을 지원함으로써 중동 지역의 영향력을 확대했다(그런 지원으로 이라크와 시리아는 반군과 저항세력을 물리칠 수 있었다). 또 이란은 독자적인 탄도미사일 능력도 개발했다. 그러나 이런 값비싼 노력은 경제에 큰 손실을 끼쳤다. 트럼프 정부가 이란 핵합의에서 탈퇴하고 제재를 다시 부과하면서 이란 통화인 리알의 가치가 크게 떨어져 큰 혼란이 이어지고 주요 이란 도시에서 보기 드문 시위마저 벌어졌다.

사진:JOONGANG PHOTO
이란의 국제적인 평판도 손상될 수 있다. 중국과 이라크(어쩌면 인도도 포함) 등 여전히 이란과 거래를 하고 싶어 하는 나라들도 호르무즈 해협의 개방에 상당한 이익이 걸려 있기 때문에 이 해협이 봉쇄될 경우 이란에 등을 돌릴 수 있다. 지금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이란 정책과 관련해 미국이 국제적으로 고립된 아주 드문 시점이다. 따라서 이란이 충분히 이용할 수 있지만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이란에 호의적이던 나라들마저 돌아서게 되면 이란은 뒷감당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핵합의가 이란의 해외 테러단체 지원과 장기적인 핵 야망을 막지 못했다고 주장하며 탈퇴했다. 그러나 그 합의에 서명한 다른 나라들(중국·프랑스·독일·러시아·영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탈퇴 이유를 한목소리로 비판했다. 심지어 유럽연합(EU)은 일방적인 미국의 조치를 따르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보복 제재를 가하겠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그런 상황에 고무된 이란은 계속 도전적인 반응을 보였다. 무함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지난 8월 8일 국영 언론에 “이제 아무도 더는 미국을 믿지 않는다”며 “호르무즈 해협과 관련된 로하니 대통령의 경고는 심리전을 펴고 있는 미국에 대한 따끔한 경고”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미르 하타미 이란 국방장관도 같은 날 미국의 호전적 움직임을 주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란 국영 IRNA통신에 따르면 그는 이날 연설을 통해 미국이 이란 핵합의 탈퇴로 신의를 저버렸다며 미국의 호전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엔까지 지지한 국제적 합의를 존중하지 않는 것은 국제무대에서 ‘거대한 악마’처럼 굴고 있는 미국의 무책임한 행동이다. 우리의 적은 이란의 이슬람 체계를 향해 정치와 경제, 문화, 심리 등 다양한 방면에서 전면전을 벌이고 있다. 이란은 단결해서 이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 톰 오코너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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