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오르가슴을 느낀다고?
뇌가 오르가슴을 느낀다고?
부드럽게 속삭이는 동영상 통해 두뇌 자극 받으며 스트레스 푸는 ASMR(자율감각쾌락반응)이 새 트렌드로 떠올라 크레이그 리처드는 밥 로스의 그림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로스의 TV 프로그램 ‘그림을 그립시다(The Joy of Painting)’가 미국 공영방송 PBS에서 방송되기 시작한 1983년이었다. 당시 매사추세츠주에서 살던 십대 초반의 리처드는 방과 후 귀가해 TV 앞에 앉아 화가 밥 로스가 캔버스 위에서 구름, 산, “아름다운 작은 나무들”에 생명을 불어넣는 모습에 매료됐다.
로스는 자장가를 부르는 듯한 목소리로 자신의 창작 과정을 설명하기로 유명했다. 리처드는 “최면을 걸듯 마음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었다”고 돌이켰다. “나는 바닥에 베개를 내려놓고 그가 그림을 그리는 도중에 잠에 빠져들곤 했다. 그가 그림을 완성할 때까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도중 리처드는 종종 머리와 상체에서 감전된 듯 저릿저릿한 느낌(팅글)을 받곤 했다. 여동생이 글을 배울 때 책 읽는 소리를 들으면서 수수께끼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던 행복감을 연상케 했다. “동생이 부드럽고 작은 목소리로 책을 읽으면 잠에 빠져들곤 했다.”
30년이 지난 뒤에야 리처드는 이런 느낌을 가리키는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훗날 박사 학위를 취득해 버지니아주 셰넌도어대학의 생물약제학 교수가 됐다. 그 뒤 2013년께 한 팟캐스트를 듣던 중 진행자가 ‘자율감각쾌락반응(ASMR)’이라는 현상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밥 로스를 정말 좋아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그들은 머리 속에서 저릿저릿한 느낌을 받았다”는 진행자의 설명을 리처드 교수는 회상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이 무엇보다 반가웠다.”
많은 사람이 경험하지만 거의 알려지지 않은 ASMR은 그런 도취감을 가리킨다. 이 ‘자율감각쾌락반응(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은 여러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다. 소리나 촉감 또는 두 가지 모두가 그런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 뉴저지주에서 ‘통합 힐링 터치 테라피 센터’를 운영하는 카렌 슈웨이거는 “내 경우 책장 넘기는 소리, 연필로 종이에 필기하는 소리, 또는 어떤 부드러운 바스락거리는 소리처럼 위안을 주는 사운드가 그런 반응을 유발한다”고 말했다. 친밀하고 부드러운 관심을 받는 상황에서도 그런 느낌이 일어날 수 있다. 슈웨이거는 “누가 내 머리를 감아주거나 빗겨줄 때, 메이크업 브러시로 얼굴을 쓰다듬는 느낌 그리고 고양이가 내 몸에 기대 가르랑거리는 소리가 몇몇 사례”라고 말했다.
대략 2010년부터 인터넷 커뮤니티와 위스퍼(속삭임) 테마의 유튜브 채널에서 ASMR 마니아 층이 형성됐다. 당시 ASMR 테마의 페이스북 그룹을 처음 만든 제니퍼 앨런이라는 헬스케어 관리자가 그 용어를 처음 만들어냈다. 현재 리처드 교수가 가장 열성적인 기록자로 떠오르고 있다. 2014년 그는 2만 명 이상을 조사한 ASMR 리서치 프로젝트뿐 아니라 관련 연구를 철두철미하게 추적하는 웹사이트 ASMRUniversity.com을 출범시켰다.그의 신저 ‘뇌 팅글(Brain Tingles)’은 그 현상의 역사서이자 다른 사람들의 ASMR 유발을 위한 최초의 장편 입문서다. ASMR 유발 방안은 무한히 많다. 뇌신경 검사원의 역할 연기, 섬유 샘플 긁는 소음 내기, 애플 휴대전화의 iOS 운영체제 설정 설명하기 등이다. 모두 한마디로 바꿔 말하면 ‘따분한’ 일들이다. 흥분이 ASMR 체험과는 상극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책의 처방은 희한한 듯하지만 타이밍은 분명 완벽하다. ASMR이 인터넷의 변방에서 주류로 비상하면서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현재 유튜브에 1300만 개 이상의 ASMR 동영상이 올라 있다. ‘헤더 페더(Heather Feather)’ ‘코즈믹 팅글스(Cosmic Tingles)’ 같은 제작자는 그 세계의 셀렙으로 떠올랐다. 이케아 같은 대형 브랜드도 ASMR 테마의 광고를 제작했다. 식당 체인 애플비즈는 지난 5월 고기를 지글지글 굽는 60분짜리 동영상을 공개했다(팅글 반응을 유발하기에는 좋지 않다고 리처드 교수는 말한다). W 매거진은 배우 셀마 헤이엑과 제이크 질렌할을 설득해 붓과 뽁뽁이(에어캡) 같은 소품들이 잔뜩 등장하는 위스퍼 동영상을 직접 제작하도록 했다.
코미디언 브랜든 워델은 지난 6월 세계 최초로 ASMR 코미디 앨범(음원 스트리밍 사이트 스포티파이에 올라 있음)을 공개했다. 모든 조크를 속삭이듯 말한다. 그는 “약에 취해 이 동영상 시청하는 걸 좋아한다”며 “대마초와 ASMR을 동시에 즐긴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무엇보다도 현재 ASMR의 의미와 쓰임새를 알아내려는 몇몇 연구가 진행 중이다. 지난 6월 영국 셰필드대학과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 대학 연구팀은 심장 박동수 감소를 포함해 ASMR 체험의 생리적 영향을 뒷받침하는 최초의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 공동작성자 중 한 명인 줄리아 포에리오는 “우리 연구는 ASMR이 인간적 유대감을 확대하며 긴장과 흥분을 가라앉히는 감각임을 일관되게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결과는 불안이나 불면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궁극적으로 ASMR 유발인자를 처방할 수 있다고 보는 과학자들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크레이그 리처드 교수는 ASMR 분야의 비공식 지도자로 적격인 인물이다. 48세의 리처드는 밥 로스와 아주 비슷하게(머리카락이 없다는 점만은 다르다) 부드럽고 위안을 주는 어조로 말한다. 그는 ASMR을 정의하려는 공개적인 시도가 처음 시작된 날을 기억한다. 2007년 10월 29일이다. 온라인 건강 포럼 SteadyHealth.com의 한 회원이 ‘기이한 감각이 좋은 느낌을 준다’는 제목으로 온라인 토론장을 개설한 날이다. 수백 건의 답글이 달렸다. ‘머리 오르가슴’이라는 용어를 제안한 이용자도 있었다.알고 보니 로스에 매료됐던 사람이 많았다. 슈웨이거는 “그 프로그램을 몇 번이나 보고 또 봤다”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리는 모습을 보고 캔버스 위를 오가는 붓질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상당히 차분해졌다. 평생 동안 불안이 내 곁을 떠나지 않았는데 이런 도피처를 만난 건 하늘이 보내준 선물이었다.”
로스는 1995년 세상을 등졌지만 놀라운 사후세계가 열렸다. 밥로스사의 조앤 코왈스키 사장은 “그는 말하자면 ASMR의 대부 격”이라며 “ASMR이 존재하기 전부터 사람들은 ASMR과 관련된 이유로 그에 빠져 있었다”고 말했다. 로스는 자신의 프로그램이 시청자를 잠들게 한다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고 그녀는 주장한다. “사람들이 그에게 ‘기분 상하게 할 생각은 없지만 당신의 쇼를 끝까지 본 적이 없다. 10분만 지나면 잠들어 버린다’고 말하곤 했다. 그는 그것이 포인트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적극 활용했다.”
지금도 여전히 로스의 쇼가 왜 그렇게 인기를 끌었는지 기본적인 추측만 있을 뿐이다. 리처드 교수는 ASMR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이건 생리 반응이고 나는 생리학자다. 지금 당장 관련된 연구를 모두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인터넷 검색을 했지만 어떤 결과도 얻지 못했다. “출판물도, 전문가 검증을 거친 연구 논문도 없었다.” ASMR이 강한 만족감을 줄 수 있다는 한 가지 사실은 알려졌다. 또한 ‘두뇌 오르가슴’ 같은 용어에도 불구하고 성적인, 말하자면 본질적으로 성적인 경험은 아니다. 인터넷 상의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성적인 대상으로 만들 수는 있다고 리처드 교수는 말한다(‘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인터넷 포르노가 있다’는 인터넷의 유명한 격언을 기억하는가).
위스퍼롯지라는 몰입형 ‘ASMR 스파’의 공동 창업자 멜린다 라우는 “구글에서 ‘ASMR 에로물’을 검색하거나 또는 어떤 포르노 사이트에 가도 성적인 위스퍼 동영상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라우는 그런 콘텐트에서 성적인 만족감을 구하는 사람을 두고 이러쿵저러쿵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이용해 어떻게 흥분하느냐보다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본다.”
ASMR이 정확히 어떻게 사람을 평온하게 하는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생식학을 전공한 리처드 교수는 저서에서 그런 반응에는 생물학적 근거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장르에서 그가 선호하는 스타 중 한 명인 ‘젠틀위스퍼링’(일명 마리아, 안전상의 이유로 성은 공개하지 않는다)의 동영상을 시청하다가 이 같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엄마들이 아기를 달래려 할 때 어떤 식으로 말하는지를 그녀에게서 떠올렸다. 리처드 교수는 “우리가 선천적으로 반응하도록 타고난 뭔가를 이 동영상들이 건드리는 건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누군가 상냥하게 말을 걸 때, 누군가 부드럽게 쓰다듬거나 보살피는 눈길로 바라볼 때 우리 뇌는 그 사람이 우리를 도우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도록 훈련됐다. 그리고 안전하게 느끼기 때문에 마음을 놓을 수 있다.”
그런 추측을 뒷받침할 결정적인 연구는 없지만 로스를 제외하고 유튜브의 ASMR 스타 대다수가 여성인 이유는 그것으로 설명된다. 리처드 교수는 영장류가 서로 털을 골라줄 때 경험하는 강한 만족감과 ASMR 간에 연관성이 있다는 이론을 처음 제시한 2012년 온라인 매체 버즈피드 기사에 흥미를 느꼈다. 두뇌 속에 (때때로 ‘사랑 호르몬’으로 불리는) 옥시토신과 엔돌핀의 증가처럼 생리적인 영향이 비슷할 수 있다.
붉은털원숭이의 어미와 새끼 간 유대감을 연구하는 영장류 신경학자 아만다 데트머를 인터뷰했을 때 그녀도 유사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털을 골라줄 때 ‘늘어진 면발’처럼 변하는 원숭이를 수없이 많이 봤다”며 대다 수가 “한동안 잠에 빠진다”고 리처드 교수에게 말했다.
ASMR은 상당수 반응·감정과 마찬가지로 특정 스펙트럼에서 발생하는 듯하다. 일부에게선 속삭이거나 부드럽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칠판을 못으로 긁는 소리와 같은 느낌을 줘 안정보다 긴장을 유발한다. 뚜렷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대체로 “그것을 어떻게 테스트할지도 아직 모르기 때문”이라고 리처드 교수는 말한다. 그는 전체 인구의 약 40%에선 ASMR이 다소 긴장완화 효과를 유발하는 한편 20%에선 행복감을 유발하지만 “잡음 많은 뇌 팅글”을 경험한다고 추측한다.
영국 배스 스파 대학 심리학과의 아그니에스카 자닉 매컬린 전임강사는 “앞으로의 연구는 필시 객관적인 테스트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지난해 ASMR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차이를 조사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 결론 중 하나는 ASMR을 경험하는 사람의 성격특성이 공감각(synesthesia, 소리나 숫자에서 특정한 색상을 연상하는 감각 현상)을 경험하는 사람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앞으로 ASMR의 잠재적인 치료 효과를 체계적으로 조사하는 연구가 실시될 것”이라고 덧붙였다.밥로스사의 코왈스키 사장은 몇몇 의사로부터 이미 ‘그림을 그립시다’ 동영상을 처방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녀는 “의사들이 작은 처방전에 그 동영상을 처방하는 모습을 그린다”며 미소 짓는다. 자가 처방하는 사람은 더 많다.
슈웨이거는 자신의 회사 ‘인 유어 암스사(In Your Arms LLC)’를 “안아주기 치료와 자연 걷기 명상을 포함하는 심신일체의 통합적 힐링 터치 요법 센터”로 설명한다. 한 고객이 안아주기 테라피에 ASMR의 도입을 요청했을 때 확신을 얻었다. 올가을 자신의 센터에 터치를 매개로 한 치료를 통합할 계획이다.
‘ASMR리퀘스트’라는 이름의 유튜브 제작자 앨리 매큐(28)는 따르는 회원이 50만 명에 육박하며 현재 동영상 제작을 생업으로 한다. 매큐는 트라우마 피해자로부터 수많은 메시지를 받는다. 그중 “해외 파병에서 돌아온 참전 군인은 내 동영상을 보며 위안을 얻거나 몇 주 동안의 불면에서 벗어난다.” 라우는 “처음 ASMR이 막대한 틈새 커뮤니티가 되리라는 느낌은 받았지만 정말 급속도로 성장하는 듯하다”며 “ASMR이 명상처럼 더 큰 트렌드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말했다.
낯선 사람이 내 아파트에서 메이크업 브러시로 내 얼굴을 간질이고 있다. 책상 위에서 배경음악이 흘러나오는 동안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신이 어떤 자극을 이용하는지 설명한다. 그녀가 오징어 비슷하게 생긴 도구로 내 두피를 마사지하기 시작할 즈음 내 몸은 구름 속을 둥둥 떠다닌다.
그 여성은 라우가 앤드류 회프너와 공동 창업한 위스퍼롯지에 소속된 치아린 쿠아다. 위스퍼롯지는 셰익스피어 비극보다는 ASMR 유발에 더 초점을 맞추지만 “친밀한 규모의 몰입형 극장 공연”을 자랑한다. 위스퍼롯지의 통상적인 이벤트(반응 유발 사운드의 “이야기 심포니”)는 10명 이하의 소그룹을 대상으로 실시된다(아직은 뉴욕·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로 한정된다). 그러나 1대 1 환경에서 팅글을 유도하는 프리미엄 서비스 ‘주문형 위스퍼(Whispers on Demand)’도 있다. 시간 당 비용은 고급 마사지 비용과 비슷한 100달러이며 적어도 내 경우 똑같이 스트레스가 씻겨나가는 경험을 했다(물론 나도 ASMR을 경험하며 어릴 때부터 그래왔다).
위스퍼롯지는 어쩌면 ASMR 붐에서 파생된 가장 독창적인 벤처 비즈니스인지도 모른다. 싱가포르계 미술가이자 큐레이터인 26세의 라우는 십대 시절 기이한 유튜브 동영상들을 강박적으로 시청했다. 그녀는 “다수의 교육용 마사지 동영상을 보다가 우연히 다른 ASMR 동영상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학교 공부를 강조하는 엄격한 가정에서 자란 라우는 부모 몰래 동영상을 시청하며 긴장을 풀었다. “마사지 동영상을 보는 게 창피”했던 그녀는 어느 날 유튜브에서 이 동영상이 마음에 들면 구글에서 ‘ASMR’을 검색해보라는 글을 봤다. “나와 똑같은 느낌을 가진 사람이 대단히 많았다. 내가 괴상한 인간이 아니구나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대학에서 그녀는 시각미술을 공부하고 ASMR에 관한 논문을 썼다. 그녀는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기가 정말 어려웠다”고 말했다. 리처드 교수는 “모든 기록을 저장해온 사람이다.”그녀는 몰입형 극장에 매료된 뒤 위스퍼롯지의 파트너 회프너를 소개 받았다. ASMR에 관해서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몰입형 쇼 ‘하우스월드’가 의도치 않게 일부 관람객에게서 ASMR을 유발했다. 두 사람은 2016년 회사를 설립했다.
‘주문형 위스퍼’를 받으려면 내가 옷을 벗지 않으며 ‘모든 속삭임과 접촉은 전문적이고 섹스와 무관한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확인하는 각서에 서명해야 한다(테라피가 ‘치료행위를 대신하지 않는다’는 점도 다시 확인했다). 상냥하고 조용한 태도(연기자에게 필수적인 특성)의 콰가 자신의 도구가 담긴 작은 주머니를 들고 들어온다. 그녀는 내 소파 옆 작은 테이블 위에 빗, 메이크업 브러시, 그리고 오징어 마사지기를 올려놓는다. 마사지기는 드라마 속의 복선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 소품들을 보는 순간 ASMR 테라피의 자극에 대한 기대감이 피어오른다.
시작하기 전 콰는 몸에서 트림이나 꾸르륵 하는 소리가 날 수 있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설명했다. 그 뒤 브라이언 이노의 배경 음악과 속삭임이 시작되자마자 방의 분자 구조가 바뀌는 듯하다. 처음의 어색함이 물결처럼 빠져나가고 차분하고 안전하게 느껴진다. 콰가 내 얼굴 가까이서 신문과 주름종이(crepe paper)를 부드럽게 구기는 소리가 들린다.
팅글은 가볍지만 콰가 촉각 자극으로 넘어가자 더 강도가 높아진다. 몸의 반응이 극에 달한다. 메이크업 브러시의 부드러운 촉감이 짜릿함을 안겨준다. 두피를 가로지르는 빗은 어렴풋한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털 고르기를 할 때 영장류들이 이런 느낌을 받는다면 나도 원숭이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시간 감각이 사라진다.
마침내 아득히 먼 곳에서 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테라피가 거의 끝나가요. 상쾌한 로즈매리 미스트를 뿌려드릴까요?” 예, 예, 그렇게 해주세요.
- 잭 숀펠드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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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는 자장가를 부르는 듯한 목소리로 자신의 창작 과정을 설명하기로 유명했다. 리처드는 “최면을 걸듯 마음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었다”고 돌이켰다. “나는 바닥에 베개를 내려놓고 그가 그림을 그리는 도중에 잠에 빠져들곤 했다. 그가 그림을 완성할 때까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도중 리처드는 종종 머리와 상체에서 감전된 듯 저릿저릿한 느낌(팅글)을 받곤 했다. 여동생이 글을 배울 때 책 읽는 소리를 들으면서 수수께끼처럼 마음이 편안해지던 행복감을 연상케 했다. “동생이 부드럽고 작은 목소리로 책을 읽으면 잠에 빠져들곤 했다.”
30년이 지난 뒤에야 리처드는 이런 느낌을 가리키는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훗날 박사 학위를 취득해 버지니아주 셰넌도어대학의 생물약제학 교수가 됐다. 그 뒤 2013년께 한 팟캐스트를 듣던 중 진행자가 ‘자율감각쾌락반응(ASMR)’이라는 현상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밥 로스를 정말 좋아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그들은 머리 속에서 저릿저릿한 느낌을 받았다”는 진행자의 설명을 리처드 교수는 회상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사실이 무엇보다 반가웠다.”
많은 사람이 경험하지만 거의 알려지지 않은 ASMR은 그런 도취감을 가리킨다. 이 ‘자율감각쾌락반응(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은 여러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다. 소리나 촉감 또는 두 가지 모두가 그런 반응을 유발할 수 있다. 뉴저지주에서 ‘통합 힐링 터치 테라피 센터’를 운영하는 카렌 슈웨이거는 “내 경우 책장 넘기는 소리, 연필로 종이에 필기하는 소리, 또는 어떤 부드러운 바스락거리는 소리처럼 위안을 주는 사운드가 그런 반응을 유발한다”고 말했다. 친밀하고 부드러운 관심을 받는 상황에서도 그런 느낌이 일어날 수 있다. 슈웨이거는 “누가 내 머리를 감아주거나 빗겨줄 때, 메이크업 브러시로 얼굴을 쓰다듬는 느낌 그리고 고양이가 내 몸에 기대 가르랑거리는 소리가 몇몇 사례”라고 말했다.
대략 2010년부터 인터넷 커뮤니티와 위스퍼(속삭임) 테마의 유튜브 채널에서 ASMR 마니아 층이 형성됐다. 당시 ASMR 테마의 페이스북 그룹을 처음 만든 제니퍼 앨런이라는 헬스케어 관리자가 그 용어를 처음 만들어냈다. 현재 리처드 교수가 가장 열성적인 기록자로 떠오르고 있다. 2014년 그는 2만 명 이상을 조사한 ASMR 리서치 프로젝트뿐 아니라 관련 연구를 철두철미하게 추적하는 웹사이트 ASMRUniversity.com을 출범시켰다.그의 신저 ‘뇌 팅글(Brain Tingles)’은 그 현상의 역사서이자 다른 사람들의 ASMR 유발을 위한 최초의 장편 입문서다. ASMR 유발 방안은 무한히 많다. 뇌신경 검사원의 역할 연기, 섬유 샘플 긁는 소음 내기, 애플 휴대전화의 iOS 운영체제 설정 설명하기 등이다. 모두 한마디로 바꿔 말하면 ‘따분한’ 일들이다. 흥분이 ASMR 체험과는 상극이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책의 처방은 희한한 듯하지만 타이밍은 분명 완벽하다. ASMR이 인터넷의 변방에서 주류로 비상하면서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현재 유튜브에 1300만 개 이상의 ASMR 동영상이 올라 있다. ‘헤더 페더(Heather Feather)’ ‘코즈믹 팅글스(Cosmic Tingles)’ 같은 제작자는 그 세계의 셀렙으로 떠올랐다. 이케아 같은 대형 브랜드도 ASMR 테마의 광고를 제작했다. 식당 체인 애플비즈는 지난 5월 고기를 지글지글 굽는 60분짜리 동영상을 공개했다(팅글 반응을 유발하기에는 좋지 않다고 리처드 교수는 말한다). W 매거진은 배우 셀마 헤이엑과 제이크 질렌할을 설득해 붓과 뽁뽁이(에어캡) 같은 소품들이 잔뜩 등장하는 위스퍼 동영상을 직접 제작하도록 했다.
코미디언 브랜든 워델은 지난 6월 세계 최초로 ASMR 코미디 앨범(음원 스트리밍 사이트 스포티파이에 올라 있음)을 공개했다. 모든 조크를 속삭이듯 말한다. 그는 “약에 취해 이 동영상 시청하는 걸 좋아한다”며 “대마초와 ASMR을 동시에 즐긴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무엇보다도 현재 ASMR의 의미와 쓰임새를 알아내려는 몇몇 연구가 진행 중이다. 지난 6월 영국 셰필드대학과 맨체스터 메트로폴리탄 대학 연구팀은 심장 박동수 감소를 포함해 ASMR 체험의 생리적 영향을 뒷받침하는 최초의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 공동작성자 중 한 명인 줄리아 포에리오는 “우리 연구는 ASMR이 인간적 유대감을 확대하며 긴장과 흥분을 가라앉히는 감각임을 일관되게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결과는 불안이나 불면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궁극적으로 ASMR 유발인자를 처방할 수 있다고 보는 과학자들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소식이다.
크레이그 리처드 교수는 ASMR 분야의 비공식 지도자로 적격인 인물이다. 48세의 리처드는 밥 로스와 아주 비슷하게(머리카락이 없다는 점만은 다르다) 부드럽고 위안을 주는 어조로 말한다. 그는 ASMR을 정의하려는 공개적인 시도가 처음 시작된 날을 기억한다. 2007년 10월 29일이다. 온라인 건강 포럼 SteadyHealth.com의 한 회원이 ‘기이한 감각이 좋은 느낌을 준다’는 제목으로 온라인 토론장을 개설한 날이다. 수백 건의 답글이 달렸다. ‘머리 오르가슴’이라는 용어를 제안한 이용자도 있었다.알고 보니 로스에 매료됐던 사람이 많았다. 슈웨이거는 “그 프로그램을 몇 번이나 보고 또 봤다”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리는 모습을 보고 캔버스 위를 오가는 붓질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상당히 차분해졌다. 평생 동안 불안이 내 곁을 떠나지 않았는데 이런 도피처를 만난 건 하늘이 보내준 선물이었다.”
로스는 1995년 세상을 등졌지만 놀라운 사후세계가 열렸다. 밥로스사의 조앤 코왈스키 사장은 “그는 말하자면 ASMR의 대부 격”이라며 “ASMR이 존재하기 전부터 사람들은 ASMR과 관련된 이유로 그에 빠져 있었다”고 말했다. 로스는 자신의 프로그램이 시청자를 잠들게 한다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고 그녀는 주장한다. “사람들이 그에게 ‘기분 상하게 할 생각은 없지만 당신의 쇼를 끝까지 본 적이 없다. 10분만 지나면 잠들어 버린다’고 말하곤 했다. 그는 그것이 포인트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적극 활용했다.”
지금도 여전히 로스의 쇼가 왜 그렇게 인기를 끌었는지 기본적인 추측만 있을 뿐이다. 리처드 교수는 ASMR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이건 생리 반응이고 나는 생리학자다. 지금 당장 관련된 연구를 모두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인터넷 검색을 했지만 어떤 결과도 얻지 못했다. “출판물도, 전문가 검증을 거친 연구 논문도 없었다.” ASMR이 강한 만족감을 줄 수 있다는 한 가지 사실은 알려졌다. 또한 ‘두뇌 오르가슴’ 같은 용어에도 불구하고 성적인, 말하자면 본질적으로 성적인 경험은 아니다. 인터넷 상의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성적인 대상으로 만들 수는 있다고 리처드 교수는 말한다(‘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인터넷 포르노가 있다’는 인터넷의 유명한 격언을 기억하는가).
위스퍼롯지라는 몰입형 ‘ASMR 스파’의 공동 창업자 멜린다 라우는 “구글에서 ‘ASMR 에로물’을 검색하거나 또는 어떤 포르노 사이트에 가도 성적인 위스퍼 동영상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라우는 그런 콘텐트에서 성적인 만족감을 구하는 사람을 두고 이러쿵저러쿵하지는 않지만 “그것을 이용해 어떻게 흥분하느냐보다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본다.”
ASMR이 정확히 어떻게 사람을 평온하게 하는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생식학을 전공한 리처드 교수는 저서에서 그런 반응에는 생물학적 근거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장르에서 그가 선호하는 스타 중 한 명인 ‘젠틀위스퍼링’(일명 마리아, 안전상의 이유로 성은 공개하지 않는다)의 동영상을 시청하다가 이 같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엄마들이 아기를 달래려 할 때 어떤 식으로 말하는지를 그녀에게서 떠올렸다. 리처드 교수는 “우리가 선천적으로 반응하도록 타고난 뭔가를 이 동영상들이 건드리는 건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누군가 상냥하게 말을 걸 때, 누군가 부드럽게 쓰다듬거나 보살피는 눈길로 바라볼 때 우리 뇌는 그 사람이 우리를 도우려 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도록 훈련됐다. 그리고 안전하게 느끼기 때문에 마음을 놓을 수 있다.”
그런 추측을 뒷받침할 결정적인 연구는 없지만 로스를 제외하고 유튜브의 ASMR 스타 대다수가 여성인 이유는 그것으로 설명된다. 리처드 교수는 영장류가 서로 털을 골라줄 때 경험하는 강한 만족감과 ASMR 간에 연관성이 있다는 이론을 처음 제시한 2012년 온라인 매체 버즈피드 기사에 흥미를 느꼈다. 두뇌 속에 (때때로 ‘사랑 호르몬’으로 불리는) 옥시토신과 엔돌핀의 증가처럼 생리적인 영향이 비슷할 수 있다.
붉은털원숭이의 어미와 새끼 간 유대감을 연구하는 영장류 신경학자 아만다 데트머를 인터뷰했을 때 그녀도 유사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털을 골라줄 때 ‘늘어진 면발’처럼 변하는 원숭이를 수없이 많이 봤다”며 대다 수가 “한동안 잠에 빠진다”고 리처드 교수에게 말했다.
ASMR은 상당수 반응·감정과 마찬가지로 특정 스펙트럼에서 발생하는 듯하다. 일부에게선 속삭이거나 부드럽게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칠판을 못으로 긁는 소리와 같은 느낌을 줘 안정보다 긴장을 유발한다. 뚜렷한 이유는 알 수 없다. 대체로 “그것을 어떻게 테스트할지도 아직 모르기 때문”이라고 리처드 교수는 말한다. 그는 전체 인구의 약 40%에선 ASMR이 다소 긴장완화 효과를 유발하는 한편 20%에선 행복감을 유발하지만 “잡음 많은 뇌 팅글”을 경험한다고 추측한다.
영국 배스 스파 대학 심리학과의 아그니에스카 자닉 매컬린 전임강사는 “앞으로의 연구는 필시 객관적인 테스트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지난해 ASMR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차이를 조사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 결론 중 하나는 ASMR을 경험하는 사람의 성격특성이 공감각(synesthesia, 소리나 숫자에서 특정한 색상을 연상하는 감각 현상)을 경험하는 사람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녀는 “앞으로 ASMR의 잠재적인 치료 효과를 체계적으로 조사하는 연구가 실시될 것”이라고 덧붙였다.밥로스사의 코왈스키 사장은 몇몇 의사로부터 이미 ‘그림을 그립시다’ 동영상을 처방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녀는 “의사들이 작은 처방전에 그 동영상을 처방하는 모습을 그린다”며 미소 짓는다. 자가 처방하는 사람은 더 많다.
슈웨이거는 자신의 회사 ‘인 유어 암스사(In Your Arms LLC)’를 “안아주기 치료와 자연 걷기 명상을 포함하는 심신일체의 통합적 힐링 터치 요법 센터”로 설명한다. 한 고객이 안아주기 테라피에 ASMR의 도입을 요청했을 때 확신을 얻었다. 올가을 자신의 센터에 터치를 매개로 한 치료를 통합할 계획이다.
‘ASMR리퀘스트’라는 이름의 유튜브 제작자 앨리 매큐(28)는 따르는 회원이 50만 명에 육박하며 현재 동영상 제작을 생업으로 한다. 매큐는 트라우마 피해자로부터 수많은 메시지를 받는다. 그중 “해외 파병에서 돌아온 참전 군인은 내 동영상을 보며 위안을 얻거나 몇 주 동안의 불면에서 벗어난다.” 라우는 “처음 ASMR이 막대한 틈새 커뮤니티가 되리라는 느낌은 받았지만 정말 급속도로 성장하는 듯하다”며 “ASMR이 명상처럼 더 큰 트렌드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말했다.
낯선 사람이 내 아파트에서 메이크업 브러시로 내 얼굴을 간질이고 있다. 책상 위에서 배경음악이 흘러나오는 동안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신이 어떤 자극을 이용하는지 설명한다. 그녀가 오징어 비슷하게 생긴 도구로 내 두피를 마사지하기 시작할 즈음 내 몸은 구름 속을 둥둥 떠다닌다.
그 여성은 라우가 앤드류 회프너와 공동 창업한 위스퍼롯지에 소속된 치아린 쿠아다. 위스퍼롯지는 셰익스피어 비극보다는 ASMR 유발에 더 초점을 맞추지만 “친밀한 규모의 몰입형 극장 공연”을 자랑한다. 위스퍼롯지의 통상적인 이벤트(반응 유발 사운드의 “이야기 심포니”)는 10명 이하의 소그룹을 대상으로 실시된다(아직은 뉴욕·샌프란시스코·로스앤젤레스로 한정된다). 그러나 1대 1 환경에서 팅글을 유도하는 프리미엄 서비스 ‘주문형 위스퍼(Whispers on Demand)’도 있다. 시간 당 비용은 고급 마사지 비용과 비슷한 100달러이며 적어도 내 경우 똑같이 스트레스가 씻겨나가는 경험을 했다(물론 나도 ASMR을 경험하며 어릴 때부터 그래왔다).
위스퍼롯지는 어쩌면 ASMR 붐에서 파생된 가장 독창적인 벤처 비즈니스인지도 모른다. 싱가포르계 미술가이자 큐레이터인 26세의 라우는 십대 시절 기이한 유튜브 동영상들을 강박적으로 시청했다. 그녀는 “다수의 교육용 마사지 동영상을 보다가 우연히 다른 ASMR 동영상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학교 공부를 강조하는 엄격한 가정에서 자란 라우는 부모 몰래 동영상을 시청하며 긴장을 풀었다. “마사지 동영상을 보는 게 창피”했던 그녀는 어느 날 유튜브에서 이 동영상이 마음에 들면 구글에서 ‘ASMR’을 검색해보라는 글을 봤다. “나와 똑같은 느낌을 가진 사람이 대단히 많았다. 내가 괴상한 인간이 아니구나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대학에서 그녀는 시각미술을 공부하고 ASMR에 관한 논문을 썼다. 그녀는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기가 정말 어려웠다”고 말했다. 리처드 교수는 “모든 기록을 저장해온 사람이다.”그녀는 몰입형 극장에 매료된 뒤 위스퍼롯지의 파트너 회프너를 소개 받았다. ASMR에 관해서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몰입형 쇼 ‘하우스월드’가 의도치 않게 일부 관람객에게서 ASMR을 유발했다. 두 사람은 2016년 회사를 설립했다.
‘주문형 위스퍼’를 받으려면 내가 옷을 벗지 않으며 ‘모든 속삭임과 접촉은 전문적이고 섹스와 무관한 방식으로 이뤄진다’고 확인하는 각서에 서명해야 한다(테라피가 ‘치료행위를 대신하지 않는다’는 점도 다시 확인했다). 상냥하고 조용한 태도(연기자에게 필수적인 특성)의 콰가 자신의 도구가 담긴 작은 주머니를 들고 들어온다. 그녀는 내 소파 옆 작은 테이블 위에 빗, 메이크업 브러시, 그리고 오징어 마사지기를 올려놓는다. 마사지기는 드라마 속의 복선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 소품들을 보는 순간 ASMR 테라피의 자극에 대한 기대감이 피어오른다.
시작하기 전 콰는 몸에서 트림이나 꾸르륵 하는 소리가 날 수 있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설명했다. 그 뒤 브라이언 이노의 배경 음악과 속삭임이 시작되자마자 방의 분자 구조가 바뀌는 듯하다. 처음의 어색함이 물결처럼 빠져나가고 차분하고 안전하게 느껴진다. 콰가 내 얼굴 가까이서 신문과 주름종이(crepe paper)를 부드럽게 구기는 소리가 들린다.
팅글은 가볍지만 콰가 촉각 자극으로 넘어가자 더 강도가 높아진다. 몸의 반응이 극에 달한다. 메이크업 브러시의 부드러운 촉감이 짜릿함을 안겨준다. 두피를 가로지르는 빗은 어렴풋한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털 고르기를 할 때 영장류들이 이런 느낌을 받는다면 나도 원숭이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 시간 감각이 사라진다.
마침내 아득히 먼 곳에서 콰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테라피가 거의 끝나가요. 상쾌한 로즈매리 미스트를 뿌려드릴까요?” 예, 예, 그렇게 해주세요.
- 잭 숀펠드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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