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전염병 대유행에 대비하려면…
새로운 전염병 대유행에 대비하려면…
항생제 오남용 막고, 글로벌 공급망의 지속성 확보하며, 세계 보건정책의 리더십 강화해야 한다 1918년 스페인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퍼진 인플루엔자 대유행으로 500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100년이 지난 지금 세계 보건 정책은 리더 없이 표류하는 상황이다. 보건 분야에서 국제협력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인 데도 미국은 고립주의 정책에 더욱 매달린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텍사스 A&M대학 산하 스코크로프트 국제문제연구소의 2차 연례 백서는 세계적인 전염병 유행 대비 태세를 점검하면서 인류를 보호하는 데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 살폈다.
전염병 유행 대응 정책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우리는 미국과 세계를 차기 전염병 대유행에 효과적으로 대비하도록 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믿는다. 전염병 대유행은 시간 문제일 뿐 반드시 닥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닥치면 세계는 치명적인 피해를 감수하는 비싼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더 나은 준비 태세와 대응 능력을 갖추기 위해 국가 지도자들이 다뤄야 할 문제는 아주 많다. 하지만 우리는 그중 세 가지가 가장 시급하다고 본다. 항생제 오남용으로 비롯된 내성 확대를 막고, 글로벌 공급망의 지속성을 확보하며, 세계 보건정책의 리더십을 강화하는 문제다. 1928년 알렉산더 플레밍이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을 발견하기 전엔 아주 작은 상처도 치명적일 수 있었다. 그런 페니실린의 등장으로 ‘인간이 질병을 정복했다는 자만심이 커졌다. 그러나 플레밍은 1945년 노벨상을 받으면서 “의사가 아무 생각 없이 페니실린 처방을 남발하면 그 내성을 가진 병원균에 감염된 사람의 죽음에 도덕적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페니실린이 발견된 지 70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바로 그런 현실의 벼랑 끝으로 달려가는 중이다.
항생제 오남용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문제다. 미국의 경우 모든 항생제 사용의 80%는 농업 부문에서 발생하며 이런 사용의 대부분은 치료 목적이 아니다. 다시 말해 의학적으로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 의료 부문에서도 항생제 오남용은 아주 빈번하게 발생한다. 영국 항생제내성 대책위원회는 기존 항생제로 제거할 수 없는 슈퍼박테리아의 감염으로 인한 전 세계 사망자는 2050년이 되면 연간 1000만 명에 육박해, 암으로 인한 사망자 820만 명을 앞질러 인류를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적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공중보건 위협이 그 같은 재앙 수준까지 가지 않도록 우리는 다음 네 가지 조치를 권고한다.
첫째, 미국의 연방정부와 민간부문이 새로운 항생제 연구·개발·생산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 2014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새로운 항생제 개발에 더 많은 투자를 촉구했지만 지난 50년 동안 새로 발견된 항생제는 한 클래스뿐이다.
둘째, 세계 각국 정부는 농업 생산과 가축 사육 부문의 항생제 사용에 관해 국제적으로 조율된 규제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선 의사나 수의사(농업 부문)의 처방 없이는 항생제를 구입할 수 없다. 그러나 항생제 사용을 감독하고 규제하는 장치가 없는 개도국도 있다. 특히 아프리카 국가의 경우 항생제를 약국에서 일반 의약품으로 구입할 수 있다.
셋째, 바이러스 감염에는 항생제를 사용해선 안 된다. 병원에 갔지만 의사가 항생제를 처방해주지 않은 경우를 경험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처럼 의료진과 소비자는 박테리아 감염에만 항생제를 처방하고 사용함으로써 오남용을 막아야 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이와 관련한 지침을 발표했다.
넷째, 세계 각국 정부는 항생제 내성을 줄이기 위해선 사람-동물-환경의 건강 사이에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원 헬스(One Health)’로 알려진 이 개념은 이 세 분야의 전문가들을 규합해 질병 관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표다. 많은 재정과 시간의 투자가 필요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런 조치 없이는 우리 사회가 ‘포스트 항생제(post-antibiotics)’ 시대를 맞게 된다. 항생제가 더는 소용 없는 세계가 된다는 뜻이다. 마거릿 챈 WHO 전 사무총장은 2012년 “포스트 항생제 시대는 사실상 우리가 알고 있던 현대의학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선언했다. “패혈성 인두염이나 어린이 무릎 찰과상처럼 흔한 문제로도 사람들이 또다시 죽음에 이를 수 있다.” 현대 사회가 잘 돌아갈 수 있는 것은 대부분 부품과 장비, 물자를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운송해주는 세계적인 공급망 덕분이다. 이런 효율적인 유통으로 기업은 필요한 재료나 부품을 주문하고 신속히 공급 받아 생산 비용을 낮출 수 있다. 상대적인 이점에 따른 생산 특화로 구축된 세계적인 공급망은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하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특히 재고가 쌓이지 않도록 하는 ‘적시 생산·조달’ 구조는 약간만 시간이 틀어져도 큰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 생명유지장치에 필요한 부품이나 당뇨 환자를 위한 인슐린 같은 필수적인 의료 인프라 구성요소가 재고 없이 언제나 운송 중에 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한 지역에서만 질병이 발생해도 다른 곳의 환자들은 필요한 의료 물자를 공급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공기를 통해 전파되는 미생물의 전파와 감염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호흡기구 N95 마스크가 생산되는 아시아의 한 도시에서 전염병이 발생할 경우 다른 지역으로 그 마스크를 보낼 수 없는 상황이 닥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은 그런 공급망 붕괴를 겪었다. 지난해 9월 잇따른 대형 허리케인의 피해로 주사용 수액 주머니 생산업체인 백스터 인터내셔널이 푸에르토리코에 있는 공장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해 미국 전역의 병원이 주사용 수액 부족으로 몸살을 앓았다.
세계 경제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고 의료 공급망이 방대해지면서 어느 한 곳에서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 피해는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그런 재난을 막기 위해 미국 연방정부는 미국의 필수 공급망을 철저히 이해해야 한다. 민간부문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어느 곳이 취약한지 정확히 파악해둘 필요가 있다.
그다음 미국은 생산과 운송을 다각화하기 위한 민간 부문 혁신을 촉진하는 새로운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생산과 운송의 다각화란 주요 물자의 생산처를 여러 곳으로 분산시킨다는 뜻이다. 그러면 한 곳에서 시스템이 와해되더라도 전체 공급망이 중단되는 사태는 피할 수 있다. 질병은 국경을 무시한다. 그런 점에서 전염병은 세계적인 위협이다. 따라서 미국은 세계의 모든 나라와 협력을 통해 전염병의 위협을 막는 데 전념해야 한다. WHO와 유엔 안보리, 유니세프(유엔 아동기금) 등의 다자간 국제기구와도 협력을 강화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인플루엔자 대응을 위한 영구 기금을 마련하고 전염병 전파를 막는 국제적 협력에 투자하는 것이 미국 국민을 보호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아울러 미국은 백악관에 권위 있는 기구를 설립해 전염병 대응 태세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 기구는 모든 정부 부처를 아우를 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 하며 전염병을 국가안보와 직결된 실존적 위협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처럼 정부 최상위 차원에서 막강한 권한을 가진 의사결정·감독 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전염병이 유행하면 신속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관건이다. 정부 부서를 초월하는 권한을 가진 리더십이 없으면 신속한 의사결정이 불가능하다. 전염병 유행의 위협을 해소하려면 최고위 리더십과 부처간의 협력, 새로운 전략이 필수적이지만 그런 기본적인 대비 태세의 허점은 지금도 메워지지 않고 있다.
세계적인 전염병 대유행은 언제든 닥칠 수 있다. 진짜 문제는 ‘그런 상황이 닥칠 때 우리가 제대로 대응해 피해를 최소화할 준비가 됐을까?’이다. 현재로선 그 답은 ‘아니다’로 귀결된다. 위에서 우리가 제시한 충분한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과 세계가 전염병 유행 대응과 생물안보 문제를 국가안보의 최우선으로 인식한다면 제대로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전염병 발생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조치를 취해 적절한 대응 태세를 갖춘다면 전염병의 세계적인 대유행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 크리스틴 크루도 블랙번, 앤드루 낫시오스, 제럴드 W. 파커
※ [필자 블랙번은 텍사스 A&M대학 행정·공공서비스 대학원 산하 스코크로프트 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 낫시오스는 스코크로프트 국제문제연구소 소장, 파커는 스코크로프트 국제문제연구소 전염병 대유행·생물안보 정책 프로그램 국장이다. 이 글은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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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유행 대응 정책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우리는 미국과 세계를 차기 전염병 대유행에 효과적으로 대비하도록 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믿는다. 전염병 대유행은 시간 문제일 뿐 반드시 닥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닥치면 세계는 치명적인 피해를 감수하는 비싼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더 나은 준비 태세와 대응 능력을 갖추기 위해 국가 지도자들이 다뤄야 할 문제는 아주 많다. 하지만 우리는 그중 세 가지가 가장 시급하다고 본다. 항생제 오남용으로 비롯된 내성 확대를 막고, 글로벌 공급망의 지속성을 확보하며, 세계 보건정책의 리더십을 강화하는 문제다.
기적의 약 오남용 막아야
항생제 오남용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문제다. 미국의 경우 모든 항생제 사용의 80%는 농업 부문에서 발생하며 이런 사용의 대부분은 치료 목적이 아니다. 다시 말해 의학적으로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러나 실제 의료 부문에서도 항생제 오남용은 아주 빈번하게 발생한다. 영국 항생제내성 대책위원회는 기존 항생제로 제거할 수 없는 슈퍼박테리아의 감염으로 인한 전 세계 사망자는 2050년이 되면 연간 1000만 명에 육박해, 암으로 인한 사망자 820만 명을 앞질러 인류를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적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런 공중보건 위협이 그 같은 재앙 수준까지 가지 않도록 우리는 다음 네 가지 조치를 권고한다.
첫째, 미국의 연방정부와 민간부문이 새로운 항생제 연구·개발·생산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 2014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새로운 항생제 개발에 더 많은 투자를 촉구했지만 지난 50년 동안 새로 발견된 항생제는 한 클래스뿐이다.
둘째, 세계 각국 정부는 농업 생산과 가축 사육 부문의 항생제 사용에 관해 국제적으로 조율된 규제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선 의사나 수의사(농업 부문)의 처방 없이는 항생제를 구입할 수 없다. 그러나 항생제 사용을 감독하고 규제하는 장치가 없는 개도국도 있다. 특히 아프리카 국가의 경우 항생제를 약국에서 일반 의약품으로 구입할 수 있다.
셋째, 바이러스 감염에는 항생제를 사용해선 안 된다. 병원에 갔지만 의사가 항생제를 처방해주지 않은 경우를 경험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처럼 의료진과 소비자는 박테리아 감염에만 항생제를 처방하고 사용함으로써 오남용을 막아야 한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이와 관련한 지침을 발표했다.
넷째, 세계 각국 정부는 항생제 내성을 줄이기 위해선 사람-동물-환경의 건강 사이에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원 헬스(One Health)’로 알려진 이 개념은 이 세 분야의 전문가들을 규합해 질병 관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표다. 많은 재정과 시간의 투자가 필요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런 조치 없이는 우리 사회가 ‘포스트 항생제(post-antibiotics)’ 시대를 맞게 된다. 항생제가 더는 소용 없는 세계가 된다는 뜻이다. 마거릿 챈 WHO 전 사무총장은 2012년 “포스트 항생제 시대는 사실상 우리가 알고 있던 현대의학의 종말을 의미한다”고 선언했다. “패혈성 인두염이나 어린이 무릎 찰과상처럼 흔한 문제로도 사람들이 또다시 죽음에 이를 수 있다.”
세계의 공급망이 붕괴할 것인가
그에 따라 한 지역에서만 질병이 발생해도 다른 곳의 환자들은 필요한 의료 물자를 공급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공기를 통해 전파되는 미생물의 전파와 감염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호흡기구 N95 마스크가 생산되는 아시아의 한 도시에서 전염병이 발생할 경우 다른 지역으로 그 마스크를 보낼 수 없는 상황이 닥칠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은 그런 공급망 붕괴를 겪었다. 지난해 9월 잇따른 대형 허리케인의 피해로 주사용 수액 주머니 생산업체인 백스터 인터내셔널이 푸에르토리코에 있는 공장을 제대로 가동하지 못해 미국 전역의 병원이 주사용 수액 부족으로 몸살을 앓았다.
세계 경제가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고 의료 공급망이 방대해지면서 어느 한 곳에서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 피해는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그런 재난을 막기 위해 미국 연방정부는 미국의 필수 공급망을 철저히 이해해야 한다. 민간부문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어느 곳이 취약한지 정확히 파악해둘 필요가 있다.
그다음 미국은 생산과 운송을 다각화하기 위한 민간 부문 혁신을 촉진하는 새로운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생산과 운송의 다각화란 주요 물자의 생산처를 여러 곳으로 분산시킨다는 뜻이다. 그러면 한 곳에서 시스템이 와해되더라도 전체 공급망이 중단되는 사태는 피할 수 있다.
권위와 책임 의식 갖춘 리더십
아울러 미국은 백악관에 권위 있는 기구를 설립해 전염병 대응 태세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 기구는 모든 정부 부처를 아우를 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 하며 전염병을 국가안보와 직결된 실존적 위협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처럼 정부 최상위 차원에서 막강한 권한을 가진 의사결정·감독 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전염병이 유행하면 신속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관건이다. 정부 부서를 초월하는 권한을 가진 리더십이 없으면 신속한 의사결정이 불가능하다. 전염병 유행의 위협을 해소하려면 최고위 리더십과 부처간의 협력, 새로운 전략이 필수적이지만 그런 기본적인 대비 태세의 허점은 지금도 메워지지 않고 있다.
세계적인 전염병 대유행은 언제든 닥칠 수 있다. 진짜 문제는 ‘그런 상황이 닥칠 때 우리가 제대로 대응해 피해를 최소화할 준비가 됐을까?’이다. 현재로선 그 답은 ‘아니다’로 귀결된다. 위에서 우리가 제시한 충분한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과 세계가 전염병 유행 대응과 생물안보 문제를 국가안보의 최우선으로 인식한다면 제대로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전염병 발생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조치를 취해 적절한 대응 태세를 갖춘다면 전염병의 세계적인 대유행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 크리스틴 크루도 블랙번, 앤드루 낫시오스, 제럴드 W. 파커
※ [필자 블랙번은 텍사스 A&M대학 행정·공공서비스 대학원 산하 스코크로프트 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 낫시오스는 스코크로프트 국제문제연구소 소장, 파커는 스코크로프트 국제문제연구소 전염병 대유행·생물안보 정책 프로그램 국장이다. 이 글은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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