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호킹 박사는 시간여행의 가능성 배제할 수 없다고 신중한 낙관론 폈지만 실제는 불가능할 듯 질량이 충분하면 시공간이 과도하게 휘어 빛도 중력을 피할 수 없는 블랙홀이 형성된다 / 사진:GETTY IMAGES BANK지난 3월 타계한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의 유고집 ‘어려운 질문에 대한 간략한 답변(Brief Answer to the Big Question)’이 최근 발간됐다. 이 책에서 호킹 박사는 ‘시간여행을 연구하겠다고 보조금을 신청한다면 당장 퇴짜 맞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옳은 말이다. 하지만 그는 또 이렇게도 말했다. 그럼에도 시간여행이 가능한지 묻는 것은 여전히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아주 진지한 의문’이라고. 그 역시 옳은 얘기다.
“현재의 이해 정도를 근거로 볼 때, 과거로의 시간여행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그의 주장은 신중한 낙관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실제 시간여행의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현재로선 우리가 타임머신을 만들 수 없지만 미래엔 가능할까?
먼저 우리의 일상 경험에서 시작해보자. 우리는 친구와 가족이 세계 어디에 있든 전화를 걸어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물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건 실제론 우리가 결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의 목소리와 영상을 담은 신호가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는 속도로 신속히 이동하지만 그 신호가 우리에게 도착하려면 여전히 실질적으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의 ‘지금 이 순간’에 우리는 결코 접근할 수 없다는 것이 아인슈타인의 시간과 공간 이론에서 핵심을 이룬다.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이 4차원의 세계인 ‘시공간’이라는 하나를 이루는 각각의 부분이기 때문에 시간상의 거리도 공간상의 거리처럼 생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들리지만 한번 이렇게 생각해보라. 누군가가 예를 들어 “버밍엄이 런던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지?”라고 물으면 우리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약 두 시간 반 거리”라고 대답한다. 그 답변은 차를 타고 평균 시속 80㎞로 달리면 런던에서 버임엄까지 가는 데 그 정도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다.
시간여행을 하며 개인의 역사를 바꾸는 영화 ‘백 투 더 퓨처’는 비디오게임으로도 나왔다. / 사진:MICROSOFT수학적으로 그 말은 버밍엄이 런던에서 약 200㎞ 떨어져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물리학자 브라이언 콕스와 제프 포셔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E=mc² 이야기(Why Does E=mc²?)’에서 “시간과 거리는 속도라는 ‘통화’를 가진 무엇을 사용해 서로 맞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인슈타인은 시공간에서 시간을 거리로 전환하는 ‘환율’은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똑같은 빛의 속도라고 생각했다.
빛의 속도는 이동할 수 있는 신호 중 가장 빠르다. 하지만 아무리 빨라도 이동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우주의 다른 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가 얼마나 빨리 알 수 있는지에 근본적인 제한이 생긴다. 여기서 ‘인과성(causality)’이 나온다. 반드시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다는 법칙이다. 결과는 반드시 원인 다음에 온다는 뜻이다. 시간여행 주창자로선 이것이 이론상의 최대 난제다. 내가 과거로 돌아가서 나의 출생을 막는 것은 결과(나)를 원인(나의 출생) 앞에 두는 것으로 법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빛의 속도가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똑같다면 우리가 아무리 빨리 이동해도 빛의 속도는 똑같아야 한다(빛의 속도는 진공상태에서 시속 2억9979만2458m다). 아인슈타인은 빛의 속도가 절대적이라면 공간과 시간은 절대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에 따라 작동하는 시계가 정지된 시계보다 더 늦게 가야 마땅하다.우리가 더 빨리 이동할수록 우리가 갖고 있는 시계는 우리가 이동하며 지나치는 다른 시계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늦게 간다. 여기서 ‘상대적’이라는 용어가 열쇠다. 우리에겐 시간이 정상적으로 흘러가는 듯 보인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지해 있는 사람에겐 빨리 움직이는 우리가 슬로모션으로 보일 것이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이동한다면 시간 속에 얼어붙은 듯이, 우리의 시간이 정지된 듯이 보일 것이다. 또 우리의 눈에는 다른 사람들이 빨리감기를 하는 비디오 테이프의 장면처럼 보일 것이다.
2009년 호킹 박사는 디스커버리 채널과 함께 ‘시간여행자를 위한 파티’(오른쪽 사진은 프로그램 소개 포스터)를 열었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 사진:AP-NEWSIS그렇다면 우리가 빛보다 더 빨리 이동한다면 어떻게 될까? 공상과학 소설이 말하듯이 시간이 거꾸로 갈까? 불행하게도 인간을 빛의 속도보다 더 빨리 이동하도록 만들기는커녕 빛의 속도와 똑같이 움직이도록 만들려고 해도 ‘무한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설사 그런 에너지를 제공할 수 있다고 해도 시간은 단순히 거꾸로 가지 않을 것이다. 그 상태가 되면 전진이나 후진을 말하는 것이 더는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럴 경우 인과성의 법칙이 무너져 원인과 결과라는 개념이 의미를 잃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질량에 의해 시간과 공간이 구부러지고 휘어지는 것을 중력이라고 설명했다. 공간의 한 영역에 더 많은 질량을 밀어넣으면 더 많은 시공간이 휘고, 인근의 시계는 더 느리게 움직이게 된다. 질량이 아주 많아지면 시공간이 과도하게 구부러져 빛마저도 중력의 끌어당김을 피할 수 없게 되면서 블랙홀이 형성된다. 블랙홀의 끝자리를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이라고 부른다. 어떤 지점에서 일어난 사건이 어느 영역 바깥쪽에 있는 관측자에게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때, 그 시 공간 영역의 경계를 가리킨다. 그곳에 다가가면 그곳의 시계는 멀리 떨어져 있는 시계에 비해 무한정 느려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시공간의 구부러짐을 적절히 조절해 과거로 여행할 수 있을까? 답은 ‘어쩌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구부러짐은 ‘통과할 수 있는 웜홀(wormhole)’이다. 웜홀은 우주에서 먼 거리를 가로질러 지름길로 여행할 수 있는 가설적 통로다. 일반상대론에서 이론적으로는 허용되나 안정성 등의 문제가 있어 우주에 실제 존재하거나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웜홀을 안정시키려면 ‘음의 에너지’ 밀도를 갖는 영역을 만들어야 한다. 19세기의 고전 물리학에선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현대의 양자역학 이론에선 가능할 수 있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빈 공간은 비어 있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진동하는 입자들의 쌍으로 가득 차 있다. 만약 우리가 다른 곳보다 더 적은 입자 쌍이 진동하는 영역을 만들 수 있다면 이 영역은 음의 에너지 밀도를 갖게 된다.그러나 양자역학을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중력이론)과 통합하는 이론을 찾는 것이 이론 물리학의 최대 난제 중 하나다. 어쩌면 ‘초끈이론(M이론)’이 다른 가능성을 제공할 수 있을지 모른다. 우주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를 끊임없이 진동하는 끈으로 보고 우주와 자연의 궁극적인 원리를 밝히려는 이론으로 상대성이론의 거시적 연속성과 양자역학의 미시적 불연속성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이론 후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M이론에 따르면 시공간은 11차원으로 이뤄졌다. 쉽게 말해 다중우주 이론이라 할 수 있다. 1차원의 시간과 우리가 움직이는 3차원의 공간에다 여분의 미세한 7차원의 공간이 보이지 않게 합쳐져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여분의 공간 차원을 사용해 공간과 시간을 가로지를 수 없을까? 호킹 박사는 적어도 그런 기대를 가졌다.
그렇다면 시간여행의 가능성이 실제로 있는 걸까? 호킹 박사의 말대로 현재의 이해 정도를 근거로 볼 때, 과거로의 시간여행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질문의 답은 아마도 ‘가능하지 않다’일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으로는 초미소 규모의 시공간 구조를 설명할 수 없다. 자연법칙은 종종 우리의 일상 경험과 완전히 배치될 수 있지만 언제나 일관성을 갖는다. 공상과학 소설이 시간여행을 다루면서 원인과 결과를 왜곡할 때 나타나는 모순들을 수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자연 법칙에는 없다.
호킹 박사는 장난끼 섞인 낙관주의를 피력하면서도 언젠가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대체할 새로운 물리학 법칙이 등장해 우리가 과거와 미래를 마음대로 오가지 못하게 막을지 모른다는 점을 인정했다. 시간여행을 금지하는 물리법칙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역사학자들을 위해 역사를 보호하려면 시간여행을 금지하는 ‘역사보호추론’ 같은 물리학 법칙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에 타임머신이 등장하든 않든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이미 시간여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면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평소 산에 오르거나 차를 타고 달릴 때 우리는 시간의 속도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12월 8일은 ‘시간여행자 흉내를 내는 날’이다. 하지만 우리는 흉내 내는 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시간여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우리가 예상하거나 기대하는 ‘시간여행’과는 다르지만 말이다.
- 피터 밀링턴
※ [필자는 영국 노팅엄대학 물리학·천문학대학원의 연구원이다. 이 글은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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