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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돌보미는 누가 돌봐주나

가족 돌보미는 누가 돌봐주나

배우 롭 로우는 유방암 진단 받은 어머니 도우면서 노부모 간병에 따르는 스트레스 직접 경험했다
롭 로우는 동생 채드(오른쪽)와 함께 유방암 4기 진단을 받은 어머니 바바라 헬퍼를 200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돌봤다(2001년 사진). / 사진:PINTEREST
미국인 약 4350만 명이 자신의 시간과 돈, 때로는 경력과 건강까지 희생해가며 고령의 병든 부모나 친척을 돌본다. 그들은 수년의 훈련이 필요한 전문 간병인의 일을 대신한다.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이 되면서 가족 돌보미의 수요가 크게 늘었다. 한편 가족 규모가 작아지는 동시에 이혼률이 높아지고 일자리에서 맡는 업무가 갈수록 힘들어지면서 고령의 부모를 보살필 수 있는 가족은 더욱 줄어드는 추세다. 현재 미국의 경우 투병하는 노부모를 돌보는 가족 중 25%가 18~34세다. 그들의 비율이 늘어난다.

요즘 미국에서 유일한 초당적 이슈는 고령자 보살핌이다. 올해 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가족돌보미지원법(상원에서 태미 볼드윈 민주당 의원과 함께 수전 콜린스 공화당 의원이 발의했다)에 서명했다. 알렉스 아자르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18개월 안에 가족돌보미를 지원하는 전략을 세우도록 요구한 법이다. 10개월이 지난 지금 진척이 상당히 더뎌 발의 의원들이 좌절하고 있다. 지난 9월에야 의회는 정책적 해결책을 찾는 가족돌보미자문위원회 설립을 위해 예산 30만 달러를 배정했다.

그 외에도 36개 주가 간병인 자문·기록·지원법을 통과시켰다. 병원이 환자의 간병인이 누구인지 확인하고 그들에게 필요한 정보와 의료적인 기본 훈련을 제공하도록 의무화한 법이다. 지난해 제약사 EMD 세로노가 설립한 ‘임브레이싱 케어러스(Embracing Carers)’는 인정 받지 못하고 늘 과로에 시달리는 가족 돌보미를 돕는 세계적인 지원단체다. 이 단체에 따르면 지난해 조사에 응한 무급 간병인 3516명 중 거의 4분의 1이 가족을 돌보느라 경력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미국 가족돌보미의 달(11월)을 맞아 배우 롭 로우(영화 ‘세인트 엘모어의 열정’과 드라마 ‘팍스 앤 레크리에이션’ 등)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경험을 나누며 투병하는 부모를 돌보느라 헌신하는 수많은 사람에게 격려를 보냈다.

나는 상당히 이른 나이에 ‘무급 간병’을 목격했다. 아버지 찰스가 50세에 림프종 진단을 받았을 때였다. 당시 난 26세였다. 다행히도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풍족했고 사랑하는 아내(나의 의붓어머니)가 있었다. 힘든 간병이었지만 그녀는 아버지 곁을 꿋꿋이 지켰다. 아버지는 투병을 잘 견뎌내 거의 완치됐다.

하지만 2년 뒤 아버지는 이혼했다. 나는 의붓어머니가 아버지를 간병하느라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30대 후반이 됐을 때 어머니 바바라 헬퍼가 유방암 4기 진단을 받았다. 그러면서 나는 수많은 사람이 겪는 가족 돌봄의 최전선에 서게 됐다. 어머니는 남편도 없고 애인도 없었다. 그래서 내가 두 동생과 함께 어머니의 첫 진단부터 의사 물색, 치료 선택, 통원,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양원 간병과 임종까지 모든 일을 떠맡아야 했다. 당연히 너무도 힘든 일이었다.그때 나는 드라마 ‘라이언스 덴(The Lyon’s Den)’의 주연과 제작을 맡고 있었다. 시청률이 저조해 고전하던 드라마였다. 내가 빠지면 드라마가 종영될 게 뻔했다. 난 제작진 150명을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어머니 간병과 드라마 제작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나는 ‘드라마 구하기’와 ‘어머니 구하기’에 내 시간을 똑같이 나눠 할애했다. 일을 그만둬야 하는 것과 그만둘 수 없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괴로운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그 드라마는 결국 도중에 종영됐다).

다행히도 나는 배턴을 넘겨줄 동생들이 있었다. 또 우리 집은 형편도 괜찮은 편이라 도우미를 부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럴 형편이 못 되는 경우는 얼마나 힘들지 난 상상도 할 수 없다. 헌신적인 간병인은 사소한 일로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사랑하는 가족이 병마를 딛고 일어설 확률을 크게 높일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심각한 질병을 앓는 환자에겐 의사를 만날 때 곁에 누군가 있어 주는 것만해도 매우 중요하다.

2002년 나는 새로 개발된 항암제의 인식제고 캠페인 홍보에 참여했다. 그때 매우 놀라운 통계를 접했다. 대개 환자는 제공되는 정보의 10%만 기억한다는 사실이다. 10%밖에 안 된다니! 그 외에 환자로선 보험 적용과 관련된 협상도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전화 통화를 해야 하고 성가시고 힘든 서류 작업도 해야 하며 보험회사와 의사에게 상담도 받아야 한다. 만약 내가 병에 걸려 이 모든 일을 직접해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난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할 것 같은데 말이다.

지금 내가 말하는 간병인은 대가 없이 가족이나 친구로서 그처럼 아주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사랑하는 가족이 투병 생활을 하고 어쩌면 죽음으로 생을 마감하는 일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힘들고 비통하다. 게다가 재정적·업무적 부담까지 겹치면 가족 돌보미는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지 모른다.

난 그들에게 ‘자기 자신을 잊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비행기를 타면 승무원이 ‘위급시 다른 사람을 돕기 전에 자신의 산소 마스크를 먼저 챙기세요’라고 말한다. 왜 그럴까? 자신을 먼저 돌보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돌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간병이란 사실 두려운 일이다. 정해진 방식도 없다. 따라서 완벽할 필요가 없다. 또 모든 답을 알아야 할 필요도 없다. 실수도 할 수 있다. 그래도 괜찮다. 다만 자신이 제공하는 간병이 삶에서 가장 보상이 큰 행동 중 하나일 수 있다는 사실만 기억하라.

나에게도 어머니를 돌보는 일은 두렵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동시에 다른 상황에선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어머니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머니는 2003년 돌아가셨다. 그때 나는 어머니와 내가 서로에게 필요한 대화를 충분히 했고 함께해야 할 시간을 함께 보냈다고 느낄 수 있었다. 부모의 임종을 겪고 난 뒤 후회하는 친구들을 자주 본다. “부모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말할 수 있었더라면, 또 이런 일 저런 일을 해줄 수 있었더라면...” 가족 돌보미에게 주어지는 숨겨진 선물 중 하나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때 모든 일을 해줄 수 있고 모든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 기회를 충분히 살리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는다. 또 필요하면 주저 없이 도움을 청해야 한다. EMD 세로노·임브레이싱 케어러스를 내가 후원하는 이유다. 가족 돌보미와 관련해 현재 겪고 있고 앞으로 겪게 될 모든 일에 관한 정보를 거기서 찾을 수 있다.

- 롭 로우 / 정리: 애나 멘타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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