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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물결 타고 두려움 넘어서자” (1)

“희망의 물결 타고 두려움 넘어서자” (1)

총기난사, 미투 운동, 밀입국자 부모-자녀 격리, 기후변화, 탄핵…. 어두운 세계가 갈수록 더 음울해지는 듯하다. 미국인의 스마트폰 화면에 쉴새없이 뜨는 긴급뉴스 알림과 페이스북 게시물을 보면 그렇게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그들은 화가 치밀고, 실망하고, 좌절하고, 옴츠러든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작가 이르샤드 만지는 “미디어에 종사하는 우리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클릭 수를 늘리고, 수익을 올려야 하기 때문에 치유의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는 주로 갈등의 이야기를 전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둘 다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뉴스위크는 저술가·예술가·사회운동가·정책 전문가 등으로부터 두려움을 넘어 지금 미국이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들어봤다.
사진:AP-NEWSIS
 스테이시 에이브럼스
무슨 일을 하든 나는 다음 세 가지 질문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 왜 원하는가? 어떻게 얻을 것인가? 나의 주된 목표는 빈곤 퇴치다. 빈곤은 부도덕하며 우리 사회의 오점이다. 그래서 나는 실망하거나 화가 났을 때 어떻게 하면 그 목표를 잘 달성할 수 있을지 심사숙고한 다음 행동에 나선다.

저술가로서 선출 공직자 출신으로서 나는 말의 힘을 믿는다. 우리는 말을 사용해 사람들을 포용하고 그들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 우리는 말을 사용해 압제와 증오를 물리칠 수 있다. 동시에 우리는 말을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우리는 지도자들에게 압력을 가하고 투표를 통해 진정한 변화를 일궈내야 한다.

차별을 부추기는 법은 우리를 두려움에 떨도록 하려는 세력을 더욱 대담하게 만들며, 피해를 입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에 떨 구체적인 이유를 제공한다. 우리는 ‘반 이민법’과 성소수자를 해치는 소위 ‘종교 자유의 법’을 폐지해야 한다. 행동하지 않는 것도 차별을 부추긴다. 조지아주의 경우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보장 제도) 확장을 거부하면서 농민과 비(非)백인, 여성에게 피해를 끼쳤다.

우리의 두려움은 다양성이 약점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다양성이 강점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미국이 부유하고 진취력 있는 국가가 된 것도 전부 다 다양성 덕분이다.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말할 때는 희망을 쌓아올릴 수 있는 공통점을 찾아야 한다. 나는 조지아 주의회의 민주당 대표로서 환경 관련 법에서 티파티(공화당 내 강경보수파)와 협력했다. 그처럼 우리는 마음만 먹으면 어떤 사람과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 [에이브럼스는 2018년 조지아주에서 미국 선거 사상 최초의 흑인 여성 주지사에 도전했지만 석패했다.]
 조 케네디 3세
사진:AP-NEWSIS
사람의 본성을 쉽게 바꿀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두려움이 동기를 유발하듯이 희망도 그렇다. 그런 생각을 늘 주창하는 사람이 미국 흑인민권운동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는 존 루이스 하원의원(민주당·조지아)이다. 그는 의회에서 가장 낙천적인 인물이다. 선출 공직자 중에서 그처럼 자주 사람들로부터 좌절을 겪은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그를 정확히 알지 못했고 그의 진심을 오해했다. 그는 40차례 이상 체포됐고 구타당했으며 살해될뻔한 일도 있다. 그럼에도 그는 살아남아 두 눈 부릅뜨고 미국의 변화와 더 완벽한 통합을 위해 피흘리며 싸웠다. 그 투쟁과 추구에서 우리는 진정한 가치를 찾을 수 있다.

루이스 의원은 2015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한 교회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의 희생자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는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은 뒤 일어나 용서에 관해 말했다. 그는 미국이라는 나라는 다른 사람을 용서할 줄 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21세 때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KKK(백인 우월주의 비밀결사단) 단원들에게 구타당한 일을 돌이켰다. 수년 뒤 한 남자가 아들과 함께 의원 사무실로 그를 찾아왔다고 그는 말했다. 그 남자는 당시 그를 구타한 KKK 단원 중 한 명이었다고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기 위해 아들과 함께 찾아왔다고 말했다. 그들은 서로 눈물을 흘리며 얼싸안았다.

그처럼 계속 싸우면서도 늘 ‘안녕, 형제여’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늘 실수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강해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우리는 살면서 시시각각 선택에 직면한다. 미국 역사를 보면 진정한 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는 언제나 담대하려고 애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고 선언했을 때 그 ‘모든 사람’은 부유한 백인 신교도였을 뿐 비(非)백인은 그에 해당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은 오랜 세월에 걸쳐 그 개념을 꾸준히 확대했다. 우리 가문이 처음 미국에 도착했을 때처럼 미국은 더 나은 삶을 찾으려고 건너온 가난한 이주자들을 돕고 환영했다.

두려워하는 사람에겐 ‘왜 그렇게 느끼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라. 그 대답을 듣고 논리의 오류를 지적하라. 그러면 그 저변에 깔린 두려움을 해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민자 문제를 솔직하게 대화한다면 사람들은 ‘우리가 더는 그들을 받아들일 수 없다’거나 ‘우리가 그들에게 밀려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면 그 이유를 계속 따져 물어라. 논의가 흐지부지되지 않도록 집요하게 반론을 제기하라.

대안적 현실을 팩트로서 반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민권운동을 성공시킨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나 참정권을 쟁취한 여성이 겪은 것만큼 어렵진 않다.



※ [조 케네디 3세는 로버트 F. 케네디 전 법무장관의 손자로 변호사이며 2013년 이래 매사추세츠주 4선거구를 대표하는 연방하원 의원이다.]
 버락 오바마
사진:AP-NEWSIS
고(故) 로버트 F. 케네디 전 법무장관은 희망이 무엇인지 잘 알았다. 반세기 전 그가 소속당의 현직 대통령에 맞서 대통령후보로 출마하고 국가의 양심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미래를 향한 희망, 사람에 대한 희망, 더 잘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에 대한 희망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척박한 철강공장 지대와 어수선한 주택 건설지, 바람 거센 아메리카 원주민 보호구역을 누비며 암살과 폭동, 시위와 증오로 만신창이가 된 채 휘청거리는 미국의 정신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는 야망과 도덕적 확신을 갖고 있었다. 분열 대신 통합, 불신 대신 온정, 불관용과 불평등 대신 정의를 주창했다. 자동차 뒷트렁크 위나 트럭 뒷칸 같은 임시 단상에 서서 작은 마이크에 대고 연설하는 그의 모습에서 당시 미국인은 공직에 출마한 많은 사람이 그렇듯 사전에 기획되거나 연출된 장면이 아니라 진정성과 열의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 시대의 사진이나 필름을 볼 때 그가 어디를 가든 수많은 사람의 손이 그를 에워싸는 장면이 돋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갖가지 모양과 색깔의 손, 어린이의 부드러운 손과 노인의 주름지고 닳은 손 등 수십, 수백, 수천 개의 손이 그를 중심으로 위를 향했다.

그가 주창한 것은 맹목적인 낙관주의가 아니었다. 그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희망이란 많은 사람이 고통당하는 어려움과 잔인함 또는 이처럼 불완전한 세계에서 진전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서 부닥치는 엄청난 도전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희망이란 선과 인간의 독창성,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 공감하고 우리 안에서 서로를 볼 수 있는 능력에 대한 믿음이다. 또 우리가 최선을 보여주면 다른 사람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기대다.

그가 암살된 지 50년이 지났다. 당시 나는 일곱 살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우리는 당시와 똑같은 문제와 씨름하고 여전히 빈곤과 불평등, 인종차별과 불의, 환경 악화와 무분별한 폭력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에 희망이란 ‘어리숙한 사람들을 속이는 꼼수’라는 냉소적인 믿음에 빠지기 쉽다.

더구나 미디어가 이념적으로 분열되고 지도자들이 자기 편리한대로 사실을 조작하고 현실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는 듯한 오늘날 많은 사람은 공통점이라는 개념조차 의심하게 됐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각자 자신의 진영에 방어진을 치고 우리와 약간이라도 다른 사람이 있으면 누구든 배척하려고 싸우는 것이다.

로버트 F. 케네디의 생애는 그런 냉소주의를 탈피하라고 우리를 일깨운다. 그가 영감을 준 사람들 때문에, 그가 만들어낸 희망의 물결 때문에, 또 수많은 노조 지도자와 민권 운동가, 평화 운동가, 학생 지도자의 인정 받지 못한 노력 때문에 우리의 삶이 나아졌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그의 죽음 이래 수많은 미국인이 빈곤에서 벗어났다. 세계 전역에서 극단적인 빈곤이 줄어들었고, 더 많은 여자아이가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또 수많은 미국인이 이전에 받지 못했던 건강보험의 혜택을 누리게 됐다.

두려움이나 냉소주의가 아니라 희망이 그런 진전을 이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카리스마 강한 한 명의 지도자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늘 선의를 갖고 싸우는 각계각층의 꾸준한 노력이 진전을 이뤄낸다는 사실이다.

6년 전 루시 맥배스의 17세 아들이 주유소 주차장에서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차에 타고 있던 그와 친구들이 음악을 너무 크게 틀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맥배스는 아들을 잃은 비탄한 마음을 희망으로 바꿨고 그 희망의 물결을 타고 조지아주의 총기 로비에 분연히 맞서 엄격한 총기 규제를 약속하며 출마해 연방 하원의원에 선출됐다.

플로리다주 파클랜드의 고등학생들도 있다. 2018년 2월 그 학교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해 17명이 숨졌다. 그 학교 학생들은 곧바로 하나로 뭉쳐 플로리다주에서 총기를 구입할 수 있는 나이를 상향 조정토록 했고, 총기 구입 전 대기 기간을 늘렸다. 그로부터 몇 주 뒤 수십만 명이 수도 워싱턴과 미국 전역에서 총기규제를 강화하라고 외치며 행진시위를 벌였다. 물론 그들이 모든 전투에서 승리한 건 아니다. 그러나 온라인에서, 미디어에서, 거리에서, 대학 캠퍼스에서, 그들은 총기폭력에 반대하는 가장 효과적인 목소리가 됐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하다. 그들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희망의 물결. 그것이 로버트 F. 케네디의 유산이요 그가 50년 전 낡은 자동차 위에 올라서서 열변을 토했을 때 그를 이끌었던 정신이다. 그 희망의 물결을 이어가는 그들은 그가 유세할 때 그를 둘러싸고 하늘로 손을 뻗어 희망을 손에 잡으려 했던 그 수많은 사람들의 후손이다.



※ [제44대 미국 대통령을 지낸 버락 오바마는 2018년 12월 12일 로버트 F. 케네디 인권재단으로부터 ‘희망의 물결’ 상을 받았다. 이 글은 그의 연설문에서 발췌했다.]
 주디스 재미슨
사진:AP-NEWSIS
예술, 특히 무용의 가장 아름다운 점 중 하나는 배경과 인종, 종교를 뛰어넘어 모든 사람을 아우를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전설적인 안무가 앨빈 에일리는 “무용은 원래 사람의 것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되돌려 줘야 한다”고 말했다. 에일리는 영구하고 에너지가 가득찬 작품을 우리에게 보여줬다. 세계 어느 곳의 출신이든, 어떤 언어를 사용하든, 어떤 정당을 지지하든 관계 없이 우리 모두의 영혼과 핵심에 와닿는 작품이다.

인종이나 성별, 정치를 둘러싼 긴장이 극도로 고조된 시기엔 사람들이 간접 경험을 통해 일체감을 느낄 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 한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송가·의식·세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랐거나 남부에서 성장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자라난 사람은 그의 작품이 공연되는 무대를 바라보며 완전히 다른 관점을 경험할 수 있다. 또 그 역사를 몸으로 살아온 사람은 거기서 일체감을 느낄 수 있다.

1960년 에일리는 ‘계시(Revelations)’라는 무용 작품을 창작했다. 그의 무용단은 그 이래 그 작품을 계속 공연한다. 그가 가진 고뇌의 기억,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미국 남부에서 성장한 기억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당시 교회는 흑인 문명의 상징이었다. ‘계시’의 안무는 우리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는 인간으로서 기쁨과 고통을 경험한다는 뜻이다. 또 이 작품은 승리를 이야기한다. 흑인이 어떤 핍박을 받아도 굴하지 않고 극복한다는 뜻이다. 인종을 불문하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 [재미슨은 무용가이자 안무가로서 2018년 60주년을 맞은 앨빈 에일리 아메리칸 댄스 시어터에서 1989~2011년 예술감독을 지냈으며, 지금도 그 무용단의 명예 예술감독으로 활동한다.]
 러셀 무어
사진:AP-NEWSIS
지금 우리의 문화 생태계는 두려움이라는 독성 물질로 오염됐다. 그 두려움은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부족’으로부터 ‘추방’당할 수 있다는 불안과 초조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념적 방어망 속으로 은거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소셜미디어에서든 세계 정부 사이에서든 아무도 ‘적’과 내통한다는 비난을 받기는 원치 않는다.

내 생각에 용기는 이처럼 독성이 가득한 시기에 주변에서 보이는 것을 초월하는 개인적 정체성과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사도 바울이 당시 알려진 세계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면서 폭도의 폭력부터 당국의 처형까지 모든 것의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런 정체성과 확신 때문이었다. 그는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라디아서 1장 10절)고 말했다.

우리는 성서에서든 세계사에서든 그런 사례를 끊임없이 접한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신념을 갖고 현재의 순간을 뛰어넘어 멀리 장기적으로 보는 것이다. 로저 윌리엄스(로드 아일랜드주를 건설한 청교도 신학자)는 미래의 공동체가 자유 속에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홀로 황야로 걸어나갔다. 미래의 번창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열쇠는 현재의 외로움을 견디는 것이다.



※ [무어는 미국 남침례회연맹의 윤리·종교자유위원회 위원장이다.]
 이르샤드 만지
사진:AP-NEWSIS
이건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미시시피주 빌록시 출신인 젊은 여성 힙합 아티스트는 미시시피 주기(州旗)에서 남부연합을 상징하는 별과 막대기를 포용적이고 통합적인 디자인으로 바꾸고 싶어 한다. 그녀는 남부연합기를 지지하는 남자를 집으로 초대해 그의 견해를 두고 논의했다. 그 후 그는 남부연합의 상징을 보존하는 것보다 그녀의 품위를 지켜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고 남부연합기 게양을 그만뒀다. 무엇이 그의 심경 변화를 일으켰을까? 존중이었다. 그녀는 남부연합기를 지지하는 그 남자를 비난하기보다 그의 견해를 경청하며 존중했다.

영어에서 존중을 뜻하는 ‘respect’라는 단어는 ‘돌아서서 다시 본다’는 의미의 라틴어에서 나왔다. 다른 사람을 내가 붙인 꼬리표로서만 바라본다면 다시 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본다는 것은 “내가 아직 모르는 이야기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 알려달라”고 말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먼저 경청함으로써 내가 대화의 문화와 분위기를 설정하고 대화를 이끌어 갈 수 있다.

지난 2년 동안 우리 중 더 많은 사람이 “나를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라”고 말했다. 내가 이런저런 부류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나를 안다고 가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보자. 다른 사람에게 꼬리표를 붙이는 것은 하나의 게임이다. 사람들을 ‘그들의 자리’에 갖다 놓음으로써 자신이 점수를 따는 게임을 말한다. 상대방을 부정직하게 조종하고 비하하고 궁극적으로 격분하게 만드는 게임이다.

소셜미디어에서 치욕을 주는 일은 다반사다. 각 ‘부족’은 자신에게 잘못된 꼬리표가 붙었다고 믿지만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쪽도 상대방에게 똑같은 식으로 꼬리표를 붙인다. 문화든 시스템이든 제도든 우리가 변하기 전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한번 붙은 꼬리표는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그 꼬리표를 결승선이 아니라 출발선으로 봐야 한다.

무엇의 출발점일까? 존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방에게 질문하는 출발점이라는 뜻이다. 우리가 습관으로 만들면 좋을 만한 ‘운동’이 있다. 상대방이 우리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을 때 상대방의 생각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묻지 말고 상대방에 관해 모르는 점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다.

대다수 젊은이는 이런 교훈을 배우지 않는다.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도록 하려면 먼저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기꺼이 들어야 한다는 교훈 말이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잘 듣는 것이 평생 성공하는 비결이다. 거기서 형성되는 진실된 관계는 오래 지속되는 사회적 진보를 이룰 수 있다.

우리의 미래는 정치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또 경제적으로 어느 때보다 더 불확실하다. 그러나 인간 심리학 덕분에 우리는 어떻게 하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부터 협력을 얻어낼 수 있는지 예측할 수 있다. 그 첫 단계가 다른 사람에게 꼬리표를 붙이지 말고 그의 말을 귀 기울여 경청하는 것이다.



※ [만지는 오프라 ‘후츠파’ 상을 받았으며 ‘도덕적 용기 아카데미’의 설립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다. 2019년 2월 그녀의 ‘나에게 꼬리표를 붙이지 마라: 분열된 시대의 놀라운 대화법(Don’t Label Me: An Incredible Conversation for Divided Times)’이 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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