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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 주권을 선언하라

데이터 주권을 선언하라

개인 정보 공개 여부를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좌지우지하지 않도록 정부가 규제에 나서야
IT 대기업들이 우리가 그들에게 선물하는 데이터의 안전과 비밀을 지켜주리라는 신뢰가 깨졌다. / 사진:JEFF CHIU-AP-NEWSIS
지난 연말 페이스북이 일부 사적인 메시지를 포함해 이용자들의 비공개 데이터를 150개 파트너·플랫폼과 공유해 자체 프라이버시 정책을 위반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이런 서비스는 자신들이 판매하는 데이터를 안전하게 지키지 못한다. 2018년 12월 중순 이용자 약 700만 명의 사진이 해킹당했을 때 페이스북은 “미안하다”고 말했다. “미안하다”는 말로 끝날 일이 아니다.

우리의 디지털 주권을 중시한다면 도움이 될지 모른다. 우리 모두 이메일·문자메시지·건강기록·금융기록·여행기록·사진·동영상·웹검색 그리고 그 밖의 다른 기록 등 우리 자신의 사적인 데이터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자신이 그 데이터의 브로커가 돼야지 소셜미디어와 IT 대기업, 금융기관, 다른 중개업체들의 통제 아래 넘겨줘선 안 된다. 우리가 사람들과 나눈 사적인 대화는 말 그대로 사적인 대화다. 이들 개인적 데이터 보고에 대한 주권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

세상에서 가장 잘못 알려진 단어 중 하나인 ‘주권(sovereignty)’은 군주가 처음 사용했다. 왕국, 식민지 제국과 종교 등 영토에 대해 군주가 가진 통제권을 말했다. 그런 주권은 신권을 토대로 했다. 프랑스 루이 14세가 남긴 “짐이 곧 국가다(L’état, c’est moi)”는 말은 널리 알려졌다. 17~18세기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한 명의 왕이나 여왕이 아니라 새로 형성되는 국가로 이런 주권을 확대한 새로운 이론을 제시했다. 국가는 도시국가든, 공국이든, 교황청이든 다수의 권리를 보유했다. 예컨대 군대를 일으키고 세금을 거둘 권리를 가졌지만 거기에는 선정을 베풀고 안보와 안정을 보장하는 의무가 따랐다.

20세기 후반 민족해방단체, 국제 테러단체, 인터넷, 상시 글로벌 케이블 연결 같은 새로운 도전과 함께 국가가 해체돼 ‘공동화’하기 시작했다. 국가가 물러나면서 남긴 공백을 비국가 주체들이 채웠다. 개인들이 인권침해 신고 메커니즘과 기타 대(對) 국가 소송을 통해 더 많은 권력을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비정부 기구들이 국가와 국제기구들의 업무를 수행하면서 정부 활동이 민영화되고 초국가적 기업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그런 민영화와 함께 새로운 IT 기업이 탄생해 이 같은 데이터·산업 복합체를 통해 이득을 취했다. 우리 데이터를 팔아 경제적 이익을 올리고 우리의 정치적 견해를 좌우하고, 우리의 소비를 유도했다. 죄책감은 없었다. 그들은 우리 데이터로 돈을 벌면서 최고 입찰자들에게 판매한다. 우리 의견과 투표를 조작해 우리를 해치려는 외국 스파이들도 그중에 포함된다.

이들 IT 대기업이 우리가 그들에게 선물하는 데이터의 안전과 비밀을 지켜주리라는 신뢰는 깨졌다. 구글이 해킹당했다.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보안 결함으로 제3자 개발자들이 이용자 프로필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게 된 뒤 구글 플러스를 폐쇄해야 했다. 3월에 문제를 해결하고는 10월에 세상에 알렸다. 11월에는 매리엇 호텔이 해킹당해 고객 5억 명의 여권정보·전화번호·출생일자·여행일정이 유출됐다. 중국 첩보기관들이 이 공격의 배후로 여겨진다.
2018년 11월에는 매리엇 호텔이 해킹당해 고객 5억 명의 여권정보·전화번호· 출생일자 등이 유출됐다. / 사진:DANNY JOHNSTON-AP-NEWSIS
우리 삶을 거래하는 과정에 여과장치와 신뢰할 만한 파트너가 필요하다. 이런 스캔들이 노출되고 프라이버시 보호를 의무화하는 규제를 신설하려는 새로운 움직임이 전개되는 현 시점이 우리의 디지털 주권을 정의할 호기다. 우리의 어떤 개인 정보를 세상에 공개할지 선택할 권리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정보로 이익을 취하는 소셜미디어 기업들이 그 법안을 좌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IT 대기업들을 규제하지 않는다면 업계가 그 일을 대신할 것이다. 자율규제 단체들의 비중이 커지면서 업계 표준을 설정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변화의 의미가 무엇인지 소비자가 교육을 받게 된다. 복잡한 URL을 찾아 다니며 옵트아웃(직접 거부 의사 밝혀야만 개인정보 이용 중단)하기보다 옵트인(사전 동의 필요)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디지털 주권의 시대에는 블록체인과 기타 탈중앙화 기술이 우리의 거래 상대편과의 신뢰를 보장할 수 있다. 플랫폼들이 스마트계약(계약이 자동 이행되도록 전자화하는 기술)뿐 아니라 금융·소비자보호·분쟁해결·보험솔루션까지 제공하게 된다. 디지털 신탁 시스템이 등장해 세상을 구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텔레마케팅, 온라인 타깃 광고, 인공지능의 예측할 수 없는 공세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줄 수도 있다.

디지털 주권을 갖게 되면 개인이 많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우리의 시민·정치·사회·문화·경제적 권리를 포기하지 않고 안전하고 냉철하게 현대 세계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다국적기업들이 우리 데이터를 거둬가지 못하도록 막는 시도는 할 수 있다.

- 제임스 쿠퍼



※ [필자는 캘리포니아 웨스턴 법과대학원 교수 겸 국제법률연구 프로그램 소장이며 원월드블록체인연맹(One World Blockchain Alliance)과 디지털주권공동체(Digital Sovereignty Collective)의 공동창설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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