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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탄력근로제 확대 안착할까] 사회적 대타협 첫걸음 뗐지만…

[논란의 탄력근로제 확대 안착할까] 사회적 대타협 첫걸음 뗐지만…

여야 대립으로 국회 입법 진통 예상… “단위 기간 확대 만만치 않을 것” 전망도
2월 19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현행 최대 3개월에서 최대 6개월로 연장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 사진:연합뉴스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가 2월 19일 현행 최장 3개월인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6개월로 확대한다는 노·사·정 합의를 도출했다. 이에 따라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을 위한 관련법 개정이 힘을 얻게 됐다. 지난해 7월 노동시간 단축 이후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확대해달라는 경영계의 줄기찬 요구가 받아들여질 길이 열린 것이다. 그러나 3개월 초과 탄력근로제에 대해 노동시간을 주 단위로 정하고,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가 있으면 노동자의 연속휴식 시간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점 등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아 논란이 예상된다. 노동시간 단축을 시행 중인 상황에서 정유·화학·정보통신기술(ICT) 등 일정 기간 집중 노동을 해야 하는 업종은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늘리지 않으면 경영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게 경영계의 입장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월 20일 경사노위가 탄력근로제 확대에 합의한 것에 대해 “노사정 사회적 대타협 자체로 귀중한 첫걸음”이라고 평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참모들과의 차담회(茶談會)에서 “경사노위의 탄력근로제 합의는 아주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며 “우선 합의된 내용 자체가 지금의 경제 상황에서 꼭 필요한 내용이고 과정을 봐도 서로 이해관계가 대치될 수 있는 문제를 서로 타협하면서 합의를 이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회를 향해 “이렇게 어렵게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 만큼 신속하게 후속 입법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탄력근로제 확대는 더불어민주당뿐만 아니라 자유한국당 등 원내 야당들이 찬성하는 사안이다. 다만, 정의당은 탄력근로제 확대가 과로사를 합법화하는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전격 합의한 내용은:
탄력근로제는 일정 단위 기간 중 일이 많은 주의 노동시간을 늘리는 대신, 다른 주의 노동시간을 줄여 평균치를 법정 한도 내로 맞추는 것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2주 이내 혹은 3개월 이내로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업주가 단위 기간 2주 이내의 탄력근로제를 도입할 경우 취업규칙 변경만으로 가능하지만, 단위 기간이 그 이상이면 노동자 대표와 서면 합의가 필요하다. 경사노위 합의가 법 개정으로 이어지면 사업주는 단위 기간 6개월 이내의 탄력근로제도 도입할 수 있게 된다. 경영계 요구에 따라 지난해 말까지 계도기간을 둬 노동시간 단축 위반에 대한 처벌을 유예한 정부는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연장이 필요한 기업에 대해서는 단위 기간 연장을 위한 법 개정이 완료될 때까지 계도기간을 연장한 상태다. 경사노위 산하 노동시간 제도 개선위원회의 이철수 위원장은 브리핑에서 “(앞으로) 3가지 탄력근로제가 존재한다고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기존 2주 이내와 3개월 이내 단위 기간의 탄력근로제는 현행 방식으로 계속 운영된다. 경사노위 합의는 주로 3개월을 초과하는 단위 기간의 탄력근로제 운영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우선, 단위 기간이 3개월을 넘는 탄력근로제를 도입할 경우 사업주는 노동자 대표와 서면 합의를 해야 한다. 노동자의 동의를 받도록 해서 도입 요건을 엄격하게 했다. 노동자 대표는 현행법상 과반수 노조나 노동자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를 가리킨다. 대규모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는 3개월 초과 탄력근로제 도입이 어려울 수 있다. 이와 달리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는 3개월 초과 탄력근로제가 남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철수 위원장은 “노조가 없는 곳에서 (탄력근로제가) 남용되는 것을 가장 고민했다”며 고용노동부의 관리·감독으로 해결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탄력근로제를 도입한 사업장은 노동일과 노동시간을 미리 정해야 한다. 현행법상 3개월 이내 탄력근로제는 노동일과 노동시간을 노동자 대표와 서면 합의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경사노위 합의는 3개월 초과 탄력근로제에 대해서는 노동일과 노동시간을 미리 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노동시간을 주별로 정하도록 하고 서면 합의 대신 시행 2주 전 통보로 가능하도록 했다. 사업주의 재량권을 상당 부분 인정한 셈이지만 노동계의 반발을 살 수 있는 대목이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1주 범위 안에서) 사용자의 판단과 재량에 따라 노동시간을 달리 정할 수 있다”며 “노동자가 언제 야근을 할지, 정상근무를 할지, 조기 퇴근을 할지 모른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은 국회로 넘어 가:
경사노위가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을 6개월로 확대하는 데 합의함에 따라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오게 됐다. 정의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은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 필요성에 공감해왔기 때문에 경사노위 합의안을 반영한 법안 통과 자체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문제는 여야 대립으로 국회가 개점휴업 상태라는 점이다. 여야 5당 원내대표는 2월 19일 문희상 국회의장이 주재한 회동에서 국회 정상화 방안을 논의했지만 진통만 거듭해 2월 임시국회 개최 합의는 또다시 불발됐다.

민주당은 탄력근로제 확대 법안(근로기준법 개정안)만큼은 2∼3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방침이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경사노위 합의 소식이 전해지자 즉각 환영 입장을 밝히며 법안의 조속한 통과 의지를 밝혔다. 홍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회는 경제계와 노동계가 동의한 경사노위의 탄력근로제 확대 합의안을 존중해서 이른 시일 안에 관련법을 통과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은 경사노위 합의를 존중한다면서도 단위 기간을 현행 최장 3개월에서 6개월로 소폭 확대한 데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특히 경사노위 합의안이 법적 구속력 없는 참고안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한편 관련 입법을 위해 국회 정상화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해 법안 처리의 진통을 예고했다. 정용기 정책위의장은 “탄력근로 확대 입법은 국회 정상화와 함께 논의될 문제”라면서 “여당이 손혜원 국정조사 요구를 수용해 국회를 열면 한국당이 같이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소관 상임위인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인 김학용 의원은 입장문에서 “노동계의 한 축인 민주노총이 논의에서 빠졌고, 단위 기간 1년을 요구해온 경영계 입장이 반영되지 못하는 등 반쪽짜리 탄력근로제가 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공이 국회로 넘어온 이상 경사노위의 합의를 최대한 존중하되 국회 고유 권한인 입법권은 확실하게 지키겠다”고 덧붙였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은 경사노위 합의를 계기로 탄력근로제 확대 입법에 국회가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와 달리 탄력근로제 확대를 개악(改惡)이라고 주장해온 정의당은 경사노위 합의안을 강력 비판하면서 국회의 입법 추진을 막아서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남은 문제는:
경사노위 합의는 노동계 요구를 받아들여 탄력근로제 단위 기간 확대에 따른 노동자 건강권 침해와 임금 감소를 방지할 장치도 마련했다. 노동자의 과로를 예방하기 위해 노동일 간 11시간 연속 휴식시간을 의무화하도록 했다. 노동일 간 11시간 연속 휴식 보장은 노동시간 개선위에서 노동계가 요구해온 사항이었다. 단위 기간 6개월의 탄력근로제를 연속 시행하면 이론적으로는 앞뒤로 3개월씩 최장 6개월 동안 연속 집중노동이 가능해져 과로 위험이 커지는데, 이 또한 11시간 연속 휴식시간 보장으로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노동시간 개선위 측은 보고 있다.

임금 보전을 위해서는 보전 수당과 할증을 포함한 방안을 마련해 노동부 장관에게 신고하도록 했다. 1일이나 1주를 단위로 일정 시간 이상 초과분의 노동에 대해 수당을 지급하는 방안을 마련하게 한 것이다. 사업주가 이를 신고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했다. 다만 과태료 부과가 노동자 임금 보전에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선언적 조항인 사업주의 임금 보전 의무에 처벌 조항을 추가해 강제하도록 해야 한다는 노동계 요구에서는 후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사노위 합의는 노동자의 건강권 침해와 임금 감소 예방 방안에 관한 별도의 서면 합의가 있을 경우 이를 우선하도록 했다. 이철수 위원장은 “노사가 정부의 지도나 감독 없이 자율적으로 하면 우선적으로 존중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노조가 없거나 약한 사업장에서 사업주 주도로 서면 합의가 만들어지면 노동자의 건강권과 임금 보호 장치도 무력해진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은 “탄력근로제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고 노동자 전반에 걸친 문제로, 앞으로 이 부분이 노동 분야의 중심 테마가 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설명했다. 김주영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은 탄력근로제를 도입한 사업장 비율이 3.2%이고 도입 계획이 있는 사업장도 3.8%에 불과한 노동부 실태조사 결과를 거론하고 “(서면 합의 등) 요건을 충족해 단위 기간을 확대하는 게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탄력근로제가) 그렇게 많이 확산하리라고는 보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박스기사] 탄력근로제 확대 두고 엇갈린 양대 노총 - ‘사회적 대화 vs 장외 투쟁’ 평행선
탄력근로제 확대 적용 문제을 두고 양대 노총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엇갈린 입장을 보였다. 민주노총은 2월 19일 성명에서 ’오늘 합의는 노동시간을 놓고 유연성은 대폭 늘렸고 임금 보전은 불분명하며 주도권은 사용자에게 넘겨버린 명백한 개악”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정부·경총·한국노총이 결국은 야합을 선택했다”며 노사정 3주체를 싸잡아 비난하기도 했다.

민주노총은 이번 합의가 노동시간에 대한 사용자의 재량권을 확대한 점을 특히 비판했다. 3개월이 넘는 단위 기간의 탄력근로제를 도입할 경우 1일이 아닌 1주 단위로 노동시간 계획을 세울 수 있게 하고 이를 노동자에게 통보하기만 하면 되도록 한 것은 노동시간에 대한 사용자의 재량권을 대폭 강화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와 달리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이날 경사노위에서 합의문 발표 직후 브리핑에서 “책임 있는 조직으로서 사회적으로 어려운 문제를 푸는 사회적 대화에 나섰다”며 “사회적 대화는 사실 투쟁보다 훨씬 어려운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양대 노총의 상반된 반응은 기본적으로 이번 합의를 어떻게 보느냐에 관한 것이지만, 사회적 대화에 대한 입장차와도 무관하지 않다는 게 노동계 안팎의 시각이다. 민주노총은 1월 말 정기 대의원대회에서 경사노위 참여 문제에 관한 결정을 내리지 못해 불참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민주노총이 당분간 경사노위에 합류할 가능성은 작은 것으로 노동계에서는 보고 있다. 민주노총은 장외에서 정부 정책을 비판하며 압박 강도를 높이는 투쟁 노선을 택했다. 3월 6일 하루 동안 총파업을 벌일 예정이다. 한국노총은 민주노총의 경사노위 참여가 무산된 직후 “경사노위를 이끌고 가겠다”며 노동계를 대표해 사회적 대화를 계속할 의지를 재확인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사회적 대화를 두고 엇갈린 길에 들어선 것은 이들이 경쟁적으로 조직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과도 맞물려 있다. 한국노총의 지난해 조합원 수는 100만 명을 돌파해 제1노총 지위를 지켰지만, 민주노총 조합원도 90만 명을 뛰어넘었다. 조합원 증가 속도는 민주노총이 더 빠르다. 한국노총이 경사노위에서 사회적 대화를 이어가고 민주노총은 장외 투쟁에 나선 상황에서 사회적 대화가 어떤 식으로 전개되느냐에 따라 양대 노총의 조직 확대 양상도 달라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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