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와인’에는 오렌지가 없다?
‘오렌지 와인’에는 오렌지가 없다?
포도 과육을 껍질과 함께 발효시켜 특유의 황금빛 … 깊은 풍미와 톡 쏘는 맛으로 와인업계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 요즘 와인업계에서 ‘오렌지 와인’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와인 전문가나 애호가의 마음 속에서 로제(엷은 붉은색을 띠는 와인)가 머물던 자리를 이제 오렌지 와인이 차지했다.
오렌지 와인이라고 해서 오렌지로 만들었다는 뜻은 아니다. 독특한 양조 과정에서 생겨나는 고유한 황금색 빛깔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화이트 와인 포도 품종을 사용하되 레드 와인의 양조법을 따르는 매우 독특한 와인이다. 오렌지 와인은 포도 과육과 껍질이 접촉한다는 뜻으로 ‘스킨 컨택트(skin-contact)’ 또는 ‘스킨 매서레이티드(skin-macerated)’ 와인으로도 불린다.
화이트 와인은 껍질을 제거하고 과육으로만 만들지만 오렌지 와인은 몇 주 또는 몇 달 동안 과육과 껍질을 접촉시키는 ‘침용’ 과정을 거친다. 이를 통해 와인의 풍미가 더해지고 색소와 타닌산이 우러나면서 독특한 황금색을 띄게 된다. 이런 ‘스킨 컨택트’ 와인은 새로 등장한 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방식 중 하나다. 사료에 따르면 약 8000년 전부터 만들어졌다.
오렌지 와인은 특히 유럽에서 인기가 높다. 슈퍼마켓 체인 알디는 1병에 8달러(약 9000원) 아래 가격으로 판매한다. 미국에서도 서서히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와인 바이블(The Wine Bible)’의 저자인 캐런 맥닐은 “약 10년 전 오렌지 와인이 미국에 처음 진출했을 때 주로 뉴욕 같은 대도시의 아방가르드 소믈리에들이 깊은 관심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아직도 미국에선 그처럼 소수층만이 오렌지 와인을 즐긴다.”
하지만 선견지명 있는 고급 음식점의 오렌지 와인 열풍은 사뭇 뜨겁다. 뉴욕타임스는 ‘집착’이라고까지 표현했다.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레스토랑 겸 와인바 ‘포호스멘’이 대표적이다(록밴드 LCD 사운드시스템의 리더 제임스 머피가 공동 소유주다). 그곳은 최대 40가지의 오렌지 와인을 제공한다. 포 호스멘의 와인 디렉터 저스틴 치어노는 “오렌지 와인이 손님들 사이에서 인기”라고 말했다. 아직 공식 매출은 집계되지 않았지만 미국의 와인시장 규모가 618억 달러를 웃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오렌지 와인이 그중 아주 작은 비율을 차지한다고 해도 결코 무시 못할 규모다. 상당히 독특하다. 포도 껍질이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풍미를 더해준다. ‘스킨 컨택트’ 와인은 맥주와 약간 비슷하게 톡 쏘는 맛이 강하다. 멜론이나 허브 또는 견과류의 맛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과육을 껍질과 함께 얼마나 오래 발효시켰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과육이 껍질과 오래 접촉할수록 맛이 더 풍부하고 깊어진다. 그런 강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과육을 껍질과 접촉시키는 기간을 몇 주 내로 줄여 화이트 와인에 가까운 맛을 즐기는 애호가도 있다. 치어노는 “스킨 컨택트 와인의 맛은 매우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사용하는 포도에 따라 상당히 다르다. 오렌지 와인은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포도 품종으로 만들어진다.” 오렌지 와인은 조지아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수천 년 동안 와인을 빚어온 동유럽의 산악지대다(와인의 화학적 잔여물이 묻어 있고 포도 무늬로 장식된 도기 조각이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 부근에서 발견됐는데 약 8000년 전의 유물로 추정됐다).
조지아인은 예로부터 ‘크베브리’라는 커다란 달걀 형태의 적갈색 점토항아리에서 스킨 컨택트 와인을 만들었다. 항아리 목까지 땅속에 묻고 여기에 으깬 포도를 껍질과 함께 넣어 며칠부터 최대 6개월 동안 발효시킨다. 60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와인 양조법을 통해 조지아인은 ‘앰버(amber, 호박색 또는 황색이라는 뜻) 와인’을 만들었다. 이 와인을 2000년대 초 영국의 한 수입업자가 ‘오렌지 와인’이라고 부르면서 별로 낭만적이지 않은 그 이름이 굳어졌다.
아직도 조지아의 여러 와이너리는 크베브리를 사용해 오렌지 와인을 양조한다. 카카 초티아슈빌리는 조지아 동부 카케티 지역에서 오랜 전통을 지닌 장인 와이너리 가문 출신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포도를 수확하고 크베브리를 세척하면서 아버지와 할아버지로부터 와인 양조 기술을 배웠다. 그러다가 아버지로부터 초티아슈빌리(Tchotiashvili) 포도원을 물려받았다. 조지아의 ‘앰버 와인’ 전통에 자부심이 강한 그는 약 50종에 이르는 조지아 포도를 재배한다.
그는 와인을 만들기 위해 포도를 으깬 뒤 줄기만 제거하고 과육을 껍질과 함께 크베브리에 넣고 6~7개월 동안 발효시킨다. 크베브리의 형태 때문에 자연적인 여과 작용이 일어난다. 그 다음 참나무통이나 스테인리스강 탱크로 옮겨 숙성시킨다. 와인을 크베브리에서 직접 병에 담아 출시하기도 한다.
초티아슈빌리는 포도 재배나 와인 양조 과정에서 첨가제나 화학물질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이처럼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하면서도 양조 과정과 포도에 관한 깊은 지식으로 와인의 품질과 맛을 유지한다. 따라서 숙련되지 않은 사람은 와인의 품질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다.
조지아 국립와인청에 따르면 요즘 조지아 와인은 호황을 구가한다. 2017년에만 수출이 54%나 증가했다(대부분이 러시아와 동유럽으로 팔려나갔다). 하지만 오렌지 와인이 조지아에서만 생산되는 건 아니다. 이탈리아와 슬로베니아에서도 과육을 껍질과 함께 발효시키는 것이 하나의 전통적인 와인 양조 방식이다. 그곳에서도 요즘 훌륭한 오렌지 와인이 많이 생산된다.
슬로베니아의 와인 전문 저술가이자 언론인인 사소드라비네치는 유럽의 오렌지 와인 부흥을 지켜보며 매우 기뻤다고 돌이켰다. 그는 항구도시 코페르에서 성장하면서 현지 농민이 스킨 컨택트 와인을 만드는 걸 가까이서 봐 왔다. 드라비네치는 “안타깝게도 당시엔 저장 기술이 부족해서 와인이 산화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하지만 그중 잘 보관된 오렌지 와인의 맛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오렌지 와인은 과거 슬로베니아에서 인기를 누렸지만 1970년대부터 화이트 와인에 서서히 밀려났다. 그러다가 약 10년 전 슬로베니아의 와이너리들이 전통적인 스킨 컨택트 양조 방식을 부활시켰다. 저장 기술도 발전해 예전에 비해 품질도 훨씬 나아졌다. 드라비네치와 한 동료는 이 새로운 맛에 영감을 받아 오렌지 와인 시음회를 개최했다. 이 시음회는 2012년 슬로베니아 최초의 오렌지 와인 축제로 발전했다. 그해 가을 오스트리아 빈에서도 비슷한 축제가 열렸다. 두 행사 모두 성황을 이뤘다.
드라비네치는 “좀 더 지속가능하고 환경친화적으로 만든 상품이 그렇듯이 오렌지 와인의 관심도 급속도로 높아졌다”고 말했다. “우리가 축제를 개최하기 시작했을 때만해도 상당히 많은 와인 애호가가 회의적이거나 단지 호기심만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다수가 곧바로 오렌지 와인의 팬이 됐다.”
특히 전통 방식의 재발견에 관심이 많은 밀레니엄 세대 사이에서 오렌지 와인이 인기다. 드라비네치는 “와인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는 젊은이 다수가 오렌지 와인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자연과 공존한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하는 양조 방식 때문인 듯하다. 오렌지 와인은 대부분 소규모 와이너리에서 생산한다. 요즘 글로벌 브랜드에서 필수적인 특징인 차별성이 강하다는 뜻이다.”
스페인부터 남아공까지 세계 도처의 포도원이 오렌지 와인 생산에 뛰어들면서 미국에서도 이 추세가 뿌리 내리고 있다. 각 포도원은 독특한 특징을 첨가한 와인을 선보인다. 미국 동부 햄튼스의 소규모 와이너리인 채닝 도터스(Channing Daughters)는 최대 20일까지만 포도 과육을 껍질과 함께 발효시키는 ‘약한’ 오렌지 와인을 다양한 종류로 생산한다. 버지니아주의 킹패밀리(King Family) 포도원은 참나무통을 사용해 호평 받는 오렌지 와인 비오니어(Viognier)를 만든다. 미국 서부 나파 밸리에선 내추럴 와인 양조장 포어론 호프(Forlorn Hope)가 소비뇽 블랑 품종으로 오렌지 와인을 생산한다. 오렌지 와인은 유구한 역사와 톡 쏘는 맛 덕분에 흔히 내추럴 와인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오렌지 와인이라고 반드시 내추럴 와인은 아니다. 내추럴 와인 운동은 1990년대 프랑스에서 마르셀 라피에가 살충제를 쓰지 않고 재배한 포도를 사용하고, 방부제로 흔히 첨가되는 이산화황을 넣지 않고 자연 효모로 발효시킨 와인을 생산하면서 시작됐다.
아직도 내추럴 와인의 정의는 모호하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포도 재배나 발효 과정에서 화학적·기술적 개입을 최소화한 와인을 의미한다. 최근 들어 모든 상품에서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는 전통적인 생산 방식이 인기를 얻으면서 특히 신세대가 내추럴 와인을 선호한다. 요즘의 여러 오렌지 와인 생산업체는 전통 방식대로 야생 효모를 사용하고 화학물질을 첨가하지 않으며, 때로는 여과하지 않은 와인을 병에 담는다. 그래서 아직도 오렌지 와인이 내추럴 와인 세계의 총아로 인식된다.
드라비네치는 “오렌지 와인은 소규모 장인 방식으로 양조되며 차별성이 강하고 양조업자와 소비자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산업화로 대량생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대기업이 이 틈새 시장을 비집고 들어오려고 하겠지만 오렌지 와인의 생산자나 소비자는 그런 개인적인 차별성 요소를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춰 글로벌 브랜드가 현지 시장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방어를 강화할 것이다.”
일부 와인 순수주의자는 바로 그 이유에서 오렌지 와인을 외면한다. 내추럴 오렌지 와인은 발효 과정에서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하기 때문에 맛을 조절하기가 더 어렵다는 것이다. 숙련되지 않은 손으로 양조하면 산화로 인해 과일향이 사라지고 식초 맛이 나기 쉽다. 하지만 그런 와인을 한번 맛봤다고 해서 손사래를 칠 필요는 없다. 아주 멋진 내추럴 오렌지 와인이 많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양하고 독특한 풍미를 지닌 오렌지 와인에 어울리는 음식을 고르기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조지아의 초티아슈빌리 포도원에서 수출 책임자로 일하는 주라브 그비니아슈빌리는 그곳에서 생산되는 므츠바네(Mtsvane, 허브향이 강한 꿀색 와인)에 맞는 음식으로 생선 요리를 추천한다. “그 외에도 견과류를 얹은 가지 샐러드와도 잘 어울린다. 반면 드라이하고 꽃향기가 나는 키크비(Khikhvi)는 돼지고기, 쇠고기, 양고기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뉴욕 포 호스멘의 치어노는 오렌지 와인에 어울리는 음식으로 로스트 포크나 치즈 코스를 추천한다. “오렌지 와인은 다양한 음식과 잘 어울린다. 내 생각에는 모든 메뉴의 반주로 적합하다. 품질 좋은 오렌지 와인은 일류 화이트 와인의 신맛도 나지만 고급 레드 와인의 진한 풍미도 느낄 수 있다.”
미슐랭 가이드에서 추천하는 뉴욕의 이탈리아 식당 파운도 오렌지 와인을 제공한다. 그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가 그리스에서 수입한 내추럴 스킨 컨택트 와인 팔레오케리시오(Paleokerisio)다. 약간의 탄산이 들어 있고 톡 쏘는 사과맛으로 유명하다. 파운의 소유주 데이비드 스톡웰은 “한때 거의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데비나 포도를 사용하는 와인은 그것 밖엔 없다”고 말했다. “이런 와인은 지금까지 우리가 맛본 적이 없다. 거품이 약간 있어 맥주 애호가들이 좋아하며 홍차 맛과 산화가 적절히 어우러져 내추럴 와인 애호가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는 곁들일 음식으로 치킨리버 무스나 파운의 브런치 메뉴인 프라이드 치킨 샌드위치를 추천했다. “약간 맵고 양파 피클이 많이 들어가는 샌드위치다.” 대부분의 오렌지 와인은 소규모 와이너리에서 소량 생산된다. 따라서 식료품점에서 구입하는 일반 와인보다 약간 비싸다. 또 오렌지 와인을 잘 모르는 사람은 리스트를 들고 고민하기 쉽다. 하지만 몇 가지 기본 사항만 알아두면 안전하게 고를 수 있다. 치어노는 “먼저 조지아에서 생산된 오렌지 와인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꿩의 눈물(Pheasant’s Tears)’이나 이아고(Iago) 와이너리에서 생산된 와인이 대표적이다. 그 다음으로 이탈리아의 다리오 프린치크(Dario Princic), 보디피베치(Vodipivec), 지다리치(Zidarich), 라스토파(La Stoppa) 와이너리의 와인을 추천할 만하다.”
드라비네치는 “초보자는 사전 지식 없이 바로 마셔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체험이 최고의 선생님이다. 오렌지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를 직접 찾아가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슬로베니아,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등 아드리아해 북부 지방에 가면 오렌지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가 많다.” 그런 와이너리를 방문하기가 어렵다면 소믈리에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도 된다.
고대의 전통과 최신 유행을 혼합한 오렌지 와인은 이제 지하에서 나와 전 세계의 식탁 위로 이동할 채비를 갖춘 듯하다. 오렌지 와인이 궁금하다면 지금 바로 마셔보라.
- 이브 워틀링 뉴스위크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렌지 와인이라고 해서 오렌지로 만들었다는 뜻은 아니다. 독특한 양조 과정에서 생겨나는 고유한 황금색 빛깔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화이트 와인 포도 품종을 사용하되 레드 와인의 양조법을 따르는 매우 독특한 와인이다. 오렌지 와인은 포도 과육과 껍질이 접촉한다는 뜻으로 ‘스킨 컨택트(skin-contact)’ 또는 ‘스킨 매서레이티드(skin-macerated)’ 와인으로도 불린다.
화이트 와인은 껍질을 제거하고 과육으로만 만들지만 오렌지 와인은 몇 주 또는 몇 달 동안 과육과 껍질을 접촉시키는 ‘침용’ 과정을 거친다. 이를 통해 와인의 풍미가 더해지고 색소와 타닌산이 우러나면서 독특한 황금색을 띄게 된다. 이런 ‘스킨 컨택트’ 와인은 새로 등장한 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방식 중 하나다. 사료에 따르면 약 8000년 전부터 만들어졌다.
오렌지 와인은 특히 유럽에서 인기가 높다. 슈퍼마켓 체인 알디는 1병에 8달러(약 9000원) 아래 가격으로 판매한다. 미국에서도 서서히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와인 바이블(The Wine Bible)’의 저자인 캐런 맥닐은 “약 10년 전 오렌지 와인이 미국에 처음 진출했을 때 주로 뉴욕 같은 대도시의 아방가르드 소믈리에들이 깊은 관심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아직도 미국에선 그처럼 소수층만이 오렌지 와인을 즐긴다.”
하지만 선견지명 있는 고급 음식점의 오렌지 와인 열풍은 사뭇 뜨겁다. 뉴욕타임스는 ‘집착’이라고까지 표현했다.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레스토랑 겸 와인바 ‘포호스멘’이 대표적이다(록밴드 LCD 사운드시스템의 리더 제임스 머피가 공동 소유주다). 그곳은 최대 40가지의 오렌지 와인을 제공한다. 포 호스멘의 와인 디렉터 저스틴 치어노는 “오렌지 와인이 손님들 사이에서 인기”라고 말했다. 아직 공식 매출은 집계되지 않았지만 미국의 와인시장 규모가 618억 달러를 웃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오렌지 와인이 그중 아주 작은 비율을 차지한다고 해도 결코 무시 못할 규모다.
어떤 맛이 날까
6000여 년 전에 시작된 양조법
조지아인은 예로부터 ‘크베브리’라는 커다란 달걀 형태의 적갈색 점토항아리에서 스킨 컨택트 와인을 만들었다. 항아리 목까지 땅속에 묻고 여기에 으깬 포도를 껍질과 함께 넣어 며칠부터 최대 6개월 동안 발효시킨다. 60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이 와인 양조법을 통해 조지아인은 ‘앰버(amber, 호박색 또는 황색이라는 뜻) 와인’을 만들었다. 이 와인을 2000년대 초 영국의 한 수입업자가 ‘오렌지 와인’이라고 부르면서 별로 낭만적이지 않은 그 이름이 굳어졌다.
아직도 조지아의 여러 와이너리는 크베브리를 사용해 오렌지 와인을 양조한다. 카카 초티아슈빌리는 조지아 동부 카케티 지역에서 오랜 전통을 지닌 장인 와이너리 가문 출신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포도를 수확하고 크베브리를 세척하면서 아버지와 할아버지로부터 와인 양조 기술을 배웠다. 그러다가 아버지로부터 초티아슈빌리(Tchotiashvili) 포도원을 물려받았다. 조지아의 ‘앰버 와인’ 전통에 자부심이 강한 그는 약 50종에 이르는 조지아 포도를 재배한다.
그는 와인을 만들기 위해 포도를 으깬 뒤 줄기만 제거하고 과육을 껍질과 함께 크베브리에 넣고 6~7개월 동안 발효시킨다. 크베브리의 형태 때문에 자연적인 여과 작용이 일어난다. 그 다음 참나무통이나 스테인리스강 탱크로 옮겨 숙성시킨다. 와인을 크베브리에서 직접 병에 담아 출시하기도 한다.
초티아슈빌리는 포도 재배나 와인 양조 과정에서 첨가제나 화학물질을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이처럼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하면서도 양조 과정과 포도에 관한 깊은 지식으로 와인의 품질과 맛을 유지한다. 따라서 숙련되지 않은 사람은 와인의 품질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다.
조지아 국립와인청에 따르면 요즘 조지아 와인은 호황을 구가한다. 2017년에만 수출이 54%나 증가했다(대부분이 러시아와 동유럽으로 팔려나갔다). 하지만 오렌지 와인이 조지아에서만 생산되는 건 아니다. 이탈리아와 슬로베니아에서도 과육을 껍질과 함께 발효시키는 것이 하나의 전통적인 와인 양조 방식이다. 그곳에서도 요즘 훌륭한 오렌지 와인이 많이 생산된다.
슬로베니아의 와인 전문 저술가이자 언론인인 사소드라비네치는 유럽의 오렌지 와인 부흥을 지켜보며 매우 기뻤다고 돌이켰다. 그는 항구도시 코페르에서 성장하면서 현지 농민이 스킨 컨택트 와인을 만드는 걸 가까이서 봐 왔다. 드라비네치는 “안타깝게도 당시엔 저장 기술이 부족해서 와인이 산화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하지만 그중 잘 보관된 오렌지 와인의 맛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오렌지 와인은 과거 슬로베니아에서 인기를 누렸지만 1970년대부터 화이트 와인에 서서히 밀려났다. 그러다가 약 10년 전 슬로베니아의 와이너리들이 전통적인 스킨 컨택트 양조 방식을 부활시켰다. 저장 기술도 발전해 예전에 비해 품질도 훨씬 나아졌다. 드라비네치와 한 동료는 이 새로운 맛에 영감을 받아 오렌지 와인 시음회를 개최했다. 이 시음회는 2012년 슬로베니아 최초의 오렌지 와인 축제로 발전했다. 그해 가을 오스트리아 빈에서도 비슷한 축제가 열렸다. 두 행사 모두 성황을 이뤘다.
드라비네치는 “좀 더 지속가능하고 환경친화적으로 만든 상품이 그렇듯이 오렌지 와인의 관심도 급속도로 높아졌다”고 말했다. “우리가 축제를 개최하기 시작했을 때만해도 상당히 많은 와인 애호가가 회의적이거나 단지 호기심만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 다수가 곧바로 오렌지 와인의 팬이 됐다.”
특히 전통 방식의 재발견에 관심이 많은 밀레니엄 세대 사이에서 오렌지 와인이 인기다. 드라비네치는 “와인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는 젊은이 다수가 오렌지 와인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자연과 공존한다는 개념을 바탕으로 하는 양조 방식 때문인 듯하다. 오렌지 와인은 대부분 소규모 와이너리에서 생산한다. 요즘 글로벌 브랜드에서 필수적인 특징인 차별성이 강하다는 뜻이다.”
스페인부터 남아공까지 세계 도처의 포도원이 오렌지 와인 생산에 뛰어들면서 미국에서도 이 추세가 뿌리 내리고 있다. 각 포도원은 독특한 특징을 첨가한 와인을 선보인다. 미국 동부 햄튼스의 소규모 와이너리인 채닝 도터스(Channing Daughters)는 최대 20일까지만 포도 과육을 껍질과 함께 발효시키는 ‘약한’ 오렌지 와인을 다양한 종류로 생산한다. 버지니아주의 킹패밀리(King Family) 포도원은 참나무통을 사용해 호평 받는 오렌지 와인 비오니어(Viognier)를 만든다. 미국 서부 나파 밸리에선 내추럴 와인 양조장 포어론 호프(Forlorn Hope)가 소비뇽 블랑 품종으로 오렌지 와인을 생산한다.
내추럴 오렌지 와인
아직도 내추럴 와인의 정의는 모호하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포도 재배나 발효 과정에서 화학적·기술적 개입을 최소화한 와인을 의미한다. 최근 들어 모든 상품에서 화학물질을 사용하지 않는 전통적인 생산 방식이 인기를 얻으면서 특히 신세대가 내추럴 와인을 선호한다. 요즘의 여러 오렌지 와인 생산업체는 전통 방식대로 야생 효모를 사용하고 화학물질을 첨가하지 않으며, 때로는 여과하지 않은 와인을 병에 담는다. 그래서 아직도 오렌지 와인이 내추럴 와인 세계의 총아로 인식된다.
드라비네치는 “오렌지 와인은 소규모 장인 방식으로 양조되며 차별성이 강하고 양조업자와 소비자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산업화로 대량생산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대기업이 이 틈새 시장을 비집고 들어오려고 하겠지만 오렌지 와인의 생산자나 소비자는 그런 개인적인 차별성 요소를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춰 글로벌 브랜드가 현지 시장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방어를 강화할 것이다.”
일부 와인 순수주의자는 바로 그 이유에서 오렌지 와인을 외면한다. 내추럴 오렌지 와인은 발효 과정에서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하기 때문에 맛을 조절하기가 더 어렵다는 것이다. 숙련되지 않은 손으로 양조하면 산화로 인해 과일향이 사라지고 식초 맛이 나기 쉽다. 하지만 그런 와인을 한번 맛봤다고 해서 손사래를 칠 필요는 없다. 아주 멋진 내추럴 오렌지 와인이 많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음식과 잘 어울릴까
뉴욕 포 호스멘의 치어노는 오렌지 와인에 어울리는 음식으로 로스트 포크나 치즈 코스를 추천한다. “오렌지 와인은 다양한 음식과 잘 어울린다. 내 생각에는 모든 메뉴의 반주로 적합하다. 품질 좋은 오렌지 와인은 일류 화이트 와인의 신맛도 나지만 고급 레드 와인의 진한 풍미도 느낄 수 있다.”
미슐랭 가이드에서 추천하는 뉴욕의 이탈리아 식당 파운도 오렌지 와인을 제공한다. 그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가 그리스에서 수입한 내추럴 스킨 컨택트 와인 팔레오케리시오(Paleokerisio)다. 약간의 탄산이 들어 있고 톡 쏘는 사과맛으로 유명하다. 파운의 소유주 데이비드 스톡웰은 “한때 거의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데비나 포도를 사용하는 와인은 그것 밖엔 없다”고 말했다. “이런 와인은 지금까지 우리가 맛본 적이 없다. 거품이 약간 있어 맥주 애호가들이 좋아하며 홍차 맛과 산화가 적절히 어우러져 내추럴 와인 애호가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는 곁들일 음식으로 치킨리버 무스나 파운의 브런치 메뉴인 프라이드 치킨 샌드위치를 추천했다. “약간 맵고 양파 피클이 많이 들어가는 샌드위치다.”
조지아에서 생산된 오렌지 와인부터 시작하라
드라비네치는 “초보자는 사전 지식 없이 바로 마셔보는 게 좋다”고 말했다. “체험이 최고의 선생님이다. 오렌지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를 직접 찾아가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슬로베니아,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등 아드리아해 북부 지방에 가면 오렌지 와인을 생산하는 와이너리가 많다.” 그런 와이너리를 방문하기가 어렵다면 소믈리에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도 된다.
고대의 전통과 최신 유행을 혼합한 오렌지 와인은 이제 지하에서 나와 전 세계의 식탁 위로 이동할 채비를 갖춘 듯하다. 오렌지 와인이 궁금하다면 지금 바로 마셔보라.
- 이브 워틀링 뉴스위크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고가시계 불법 반입' 양현석, 법정서 입 열었다
2연일 추락 코스피, 2,400선마저 하회…반등 여지 있나
3두나무, ‘업비트 D 컨퍼런스 2024’ 성료…현장 방문객만 1350명
4한화오션, 해외 軍 관계자 대거 맞이...‘오르카 프로젝트’ 수주 한걸음 더
5‘성과, 그리고 능력’...현대차그룹, ‘대표이사·사장단’ 인사 단행
6트럼프, 법무차관에 '성추문 입막음 돈 지금' 사건 변호인 지명
7휠라홀딩스, 주주환원에 ‘진심’...자사주 추가 취득·3년 연속 특별배당
8삼성전자 노사 10개월 만에 잠정합의안 도출...임금 5.1% 인상 안
9트럼프, 보훈장관에 '콜린스' 내정…첫 탄핵 변호한 '충성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