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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표 문화가 다양성 해친다

꼬리표 문화가 다양성 해친다

캐나다 국적의 무슬림 반체제 여성 작가 이르샤드 만지, “망신주기와 탓하기 그만두고 상대방의 말 경청하라”
ILLUSTRATION BY ALEXFINE
백인 남자가 술집에 들어선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운동 슬로건)’라고 적힌 야구모자를 썼거나 프로야구팀 보스턴 레드 삭스의 티셔츠를 입었거나 십자가상 목걸이를 찼을 수 있다. 어쩌면 팔 전체에 문신을 했거나 코걸이를 걸었거나 야물커(유대인 남자가 머리 정수리 부분에 쓰는 동글납작한 모자)를 썼을지도 모른다. 어떻게 꾸몄든 그 술집에 먼저 와 있던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또는 잠재의식적으로 그가 자신들의 편인지 아닌지 판단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단상이다.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본능적으로 부족주의(tribalism)를 추구한다. 소속된 부족(집단)의 이익을 맹목적으로 추구하는 현상이다. 미국 건국 이래 그런 부족주의를 감내해야 했던 쪽은 당연히 그 사회에서 처음 와서 뿌리를 내려야 하는 서러운 소수민족이었다. 그러나 캐나다 국적의 무슬림 여성 이르샤드 만지는 신저 ‘나에게 꼬리표를 달지 마(Don’t Label Me)’에서 자신과는 다른 사람에게 꼬리표를 붙이는 건 ‘혐오스러운 백인 남성’만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사실 우리 모두가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꼬리표를 붙인다. 만지처럼 다양성을 주창하고 옹호하는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만지는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하기 훨씬 전부터 소위 ‘진보파’는 많은 미국인을 인종차별주의자니 레드넥(rednecks, 교육 수준이 낮고 보수적인 미국 시골 주민을 비하하는 표현)이니 하며 꼬리표를 달았다”고 말했다. “진보파의 조롱을 받은 그들 대다수가 그에 대한 보복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한다.”

만지는 자신이 말하는 ‘정직한 다양성’을 주창하기에 적합한 인물이다.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만든 ‘후츠파 어워드(Chutzpah Award, 용기와 신념이 투철한 여성에게 매년 주는 상)’를 받았고, ‘도덕적 용기 프로젝트(moral Courage Project)’라는 단체를 설립했다. 무슬림이자 레즈비언이고, 진보적 이슬람 옹호자로서 주류 이슬람의 코란 해석을 강도 높게 비판한다[그녀의 베스트셀러 ‘오늘날 이슬람의 문제(The Trouble With Islam Today)가 대표적인 예다].

그녀는 지난 30여 년 동안 늘 자신에게 붙은 꼬리표를 떼어내려고 발버둥쳤다. 경직된 정체성에 매몰된 사람들과 논쟁을 벌였고, 다른 사람에게 도덕적 용기를 내라고 지도했으며(“두려움 앞에서도 옳은 일을 하라”), 트럼프 대통령의 선출로 드러난 미국 사회의 부족주의 고조를 비판했다. 하지만 결국 얻은 건 실망이었다. 만지는 ‘나에게 꼬리표를 달지 마’에서 “나 자신의 부족 울타리에서 벗어나려다가 오히려 내가 비관주의에 빠져버렸다”고 털어놓았다.

다행히 실명한 늙은 구조견 릴리(만지는 “나의 멘토이자 고문자였다”고 말했다)가 그녀에게 탈출구를 열어줬다. ‘나에게 꼬리표를 달지 마’는 그 둘 사이의 가상 대화로 ‘부정직한 다양성(백인·흑인·남성·여성·성소수자·정상인 등 생물학적인 특징에 집착하는 분류를 일컫는다)’과 그에 따르는 호전적인 문화(약간만 잘못된 질문을 하면 완전히 매도당하는 현상)를 거부하는 열정적이고 때로는 재미있으며 설득력 있는 주장을 담았다.
만지가 ‘나에게 꼬리표를 달지 마’를 집필하는 동안 릴리는 저 세상으로 갔다. / 사진:COURTESY OF IRSHAD MANJI
뉴스위크는 ‘꼬리표’ 문화와 관련해 만지를 인터뷰했다.

사진:AMAZON.COM


‘나에게 꼬리표를 달지 마’를 집필한 계기는?


지금까지 나는 늘 다문화주의를 표방하는 상징으로 인식됐다. 그래서 사회에서 실제로 다양성이 어떻게 실행되는지 지켜볼 수 있었다. 그런데 갈수록 다양성을 수용하는 행위가 꼬리표 달기로 변질돼 갔다. 큰 걱정이다. 초기 미국 정착민이 한 행동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개인을 집단으로 묶어 분류하고 그 집단을 계급으로 나눠 가치를 매겼다. 과연 그런 사고방식의 부활을 사회의 발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책에서 왜 구조견 릴리와의 대화라는 방식을 도입했나?


나는 자라면서 개를 아주 무서워했다. 릴리를 분양 받아 마침내 그 두려움과 마주하면서 나는 두려워할 합당한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완전히 쓸데없는 두려움이었다. 우리가 자신과 다른 사람을 두려워할 때도 그렇다.

릴리는 독립심이 아주 강하다. 바람이 부는 쪽으로 마냥 코를 대고 내가 따라오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늙은이’나 ‘장님’ 같은 꼬리표는 릴리를 정확히 묘사하는 단어가 아니라는 또 다른 교훈이다. 릴리와 가까워지면서 나는 틈만 나면 릴리에게 인간에 대한 환상이 깨진 것에 관해 말했다. 그럴 때마다 릴리는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느냐고 묻는 듯 머리를 갸우뚱했다. 그런 릴리를 보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좀 더 깊이 생각하게 됐다. 때로는 내 말을 반박하는 것 같기도 했다. 미국의 복고적인 정치 분위기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게 바로 그런 숙고다.

요즘 뉴스는 모든 측면에서 상대방에게 망신을 주고 상대방을 탓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사사건건 승강이를 벌이는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이 그렇다. 일한 오마르(지난해 중간선거에서 연방하원에 입성한 최초의 무슬림 여성 민주당 의원으로 미국 정치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유대인 단체를 비난했다)와 이스라엘이 그렇다. 또 버지니아주 정치인들과 흑인들이 그렇다(버지니아주 주지사 등 몇몇 정계 인사들이 과거에 흑인분장을 하고 찍은 사진이 공개되면서 비난 받았다). 또 “흑인을 죽이고 싶었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할리우드 배우 리암 니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국 사회가 이런 비판과 비방을 넘어 건설적으로 어떻게 나아갈 수 있다고 보나?


상황에 따라 반응도 달라야 한다. 하지만 망신주기와 탓하기가 자동적인 첫 반응이 돼선 안 된다. 역풍을 일으킬 뿐이기 때문이다. 망신주기는 상대방을 비하하는 행위다. 망신주기로는 상대방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 오히려 상대방을 격분시켜 복수를 부추긴다.

우리가 얻은 사회적 이득이 오래가려면 우리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수용해야 한다. 우리 입장을 지키면서도 공통점을 찾아야 한다. 반대 견해를 경청하고 진지하게 질문해야 한다. 상대방이 왜 나와 다르게 생각할까? 어떤 경험에서 나온 견해일까? 자신의 말을 상대방이 들어주길 원한다면 먼저 상대방의 말을 들어야 한다. 그것이 인간 심리의 기본 원칙이다.

지난 1월 켄터키주 코빙턴 가톨릭고교에 다니는 백인 학생(트럼프 대통령이 즐겨 쓰는 붉은색 MAGA 모자를 썼다)이 미국 원주민 운동가 앞에 서서 한참 동안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짓는 동영상이 소셜미디어에 퍼지면서 그 학생이 백인우월주의자로 비난 받은 사건을 잘 알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양측 모두에게 잘못이 있는 사건의 한 장면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진보 진영은 그런 맥락이 밝혀지기도 전에 무조건 그 학생을 맹렬히 비난했다.

우리 주변에서 늘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사건이다. 인간은 생물학의 지배를 받는다. 난 뇌가 우리를 조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인간에게 연민을 느끼게 됐다. 책에서 나는 릴리에게 사람이 아니라 개로 태어났기 때문에 총격을 받지 않는 행운을 누린다고 말해준다. [웃음] 하지만 소셜미디어의 악성 댓글은 용서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 꼬리표를 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의 선택이다. 코빙턴 가톨릭고교생의 경우 진보 진영은 전후 맥락을 모르면서 한 장면만 보고 SNS를 통해 무조건 그 학생을 인종차별주의자로 몰아붙였다. 하지만 그렇게 꼬리표를 달아야 할지 말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그 선택은 그의 피부색이나 성별, 또는 그가 쓴 모자를 근거로 이뤄진다. 그건 진보 진영이 다양성을 위해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자멸적인 행동일 뿐이다.



‘부정직한 다양성’이 백인을 비하한다고 지적했는데.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예를 들어 나는 미국 중서부에서 출판홍보 투어를 한 뒤 뉴욕으로 돌아가 대학에 있는 동료와 중서부 독자들의 질문에 관해 얘기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그들의 질문에 관해선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이 이슬라모포비아(Islamophobia, 이슬람 공포증)를 얼마나 자주 겪었는지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겪었는지 안 겪었는지 여부가 아니라 오로지 얼마나 자주 겪었는지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는 중서부 미국인(주로 백인을 가리킨다)을 이슬람 혐오주의자로 묘사함으로써 자신이 다양성을 지지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고방식이 오히려 다양성을 해친다고 내가 설명하자 그도 자신의 편견을 인정했다.

책에서 지적한 젊은 흑인 남성 두 명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자. 그들은 경찰이 비무장 흑인들을 살해한 사건으로 촉발된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는 저항 운동 때문에 오히려 소외당한다고 느꼈다. 그들은 경찰과 대화함으로써 인종에 근거한 잔혹행위를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들의 견해는 현지 흑인 운동권 지도자에 의해 묵살됐다. 그 지도자는 경찰과 대화하는 것이 흑인사회를 배신하는 행위라고 판단했다.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에서 활동하는 운동가 중에는 백인과의 대화를 환영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그 외 다른 사람들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백인과 대화했다고 비판했다. 그들은 그가 존경 받을 수 있는 접근법을 취했지만 결국 암살당하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난 생각이 다르다. 흑인 민권운동이 도덕적 권위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킹 목사를 비롯해 당시 운동가들이 백인에게 존경심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존경 받은 게 아니라 상대를 존경했다는 뜻이다. 실제로 킹 목사는 많은 백인의 존경을 받지 못했다. 그는 증오의 대상이었다.

또 나는 민권운동이 적극적이지 못했다는 지적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킹 목사의 메시지가 정말 옳았다. 그는 모든 사람을 ‘우리’와 똑같이 대하도록 운동가들을 훈련했다.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으로 사람을 판단하라는 것이었다. 그런 도덕적 권위 덕분에 그 메시지가 결국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요즘은 갈수록 많은 사회운동가가 무조건 백인을 비난한다. 그래서 좋은 의도를 가진 많은 백인이 배신당하고 사기당했다고 느꼈다. 그들이 입 밖으로 내지 않은 질문이 이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내가 백인이라고 피부색으로만 판단 받는다면 구태여 대통령의 인격에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는 저항운동 시위. 만지는 젊은 운동가들이 백인을 비하하는 언행이 오히려 건전한 다양성을 해친다고 지적했다. / 사진:AP-NEWSIS


첨단기술이 사회의 분열과 미치광이 행동을 악화시킨다는 지적이 많지만 당신은 책임이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 말했는데.


내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우리 내면에 미치광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의 외부나 우리가 사용하는 기술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내면에 있다. 물론 기술업체는 수많은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를 동원해 우리가 균형 잡힌 사고를 하지 않도록 부추긴다. 그들은 알고리즘을 조작해 우리가 우리의 편파적인 생각과 일치하는 콘텐트만을 소비하도록 유도한다. 우리가 로그온하는 순간부터 알고리즘이 우리를 조종한다. 하지만 그들이 이용하는 것은 우리가 쉽게 얻을 수 있는 쾌락을 추구하려는 경향이다.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우리 견해를 인정하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둘러싸일 경우 승리감에 도취되기 쉽다. 하지만 그런 도취감은 금방 사라져 그런 경험을 더 많이 갈구하게 된다. 그러면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담을 쌓고 서로 비슷한 사람들 속에서 안주하면서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들을 물리치게 된다.

그렇다고 소셜미디어를 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로그온했을 때 자신의 의식 있는 정신을 콘텐트에 속박시키지 말아야 한다. 릴리가 책에서 나를 상기시키듯이 난 트위터의 ‘암캐’가 아니다. [웃음]



질문을 많이 하라고 장려하는데 그러면 인종차별주의자니 무식하다느니 위험하다느니 같은 꼬리표가 붙기 쉽지 않은가?


백인이 아닌 젊은이들과 대화할 때 그들은 흔히 ‘사람들이 내 삶에 관해 질문하기를 원치 않는다. 그들을 올바로 교육하는 게 내 일이 아니다’고 말한다. 그러면 난 그들에게 ‘변화를 원하는가?’라고 되묻는다. 그들은 당연히 원한다고 말한다. 난 ‘그렇다면 올바른 교육이 당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해준다. 사실이 그렇다. 질책만 하면 사람들이 공감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의 말을 더 잘 들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지만 스마트폰을 손에 달고 성장한 세대에게 전화기를 끄고 얼굴을 맞대며 대화하라고 어떻게 설득할 수 있겠는가?


난 그들에게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웃음] 그렇게 말하면 감정적인 방어벽만 높아질 뿐이다. 실제로 감정은 의사결정에서 우리 대다수가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역할을 한다. 따라서 난 그들에게 그런 직설적인 훈계를 하지 않고 그냥 소셜미디어가 어떤 느낌을 주는지 묻는다. 또 그들에게 기술업체가 하루 24시간 사용자를 추적하고 조종한다는 사실을 인식하도록 돕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렇게 조종당해도 좋은가?’라고 나는 묻는다.

사람들의 생각은 언제나 다를 것이다. 인간의 본성이 그렇다. 하지만 그런 견해차를 감싸안을 능력도 우리에게 있다. 요즘 많은 학교가 상대에게 공격적이지 않게 접근하는 법을 가르친다. 그와 마찬가지로 학교는 학생에게 상처 받지 않는 법도 가르쳐야 한다. 그래야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 내가 인간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란다면 그건 너무 적게 바라는 것이 더 나쁘기 때문이다.

- 메리 케이 실링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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