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로 줄줄이 넘어가는 케이블TV, 왜?] 울타리 규제 믿고 안주하다 자생력 잃어
[통신사로 줄줄이 넘어가는 케이블TV, 왜?] 울타리 규제 믿고 안주하다 자생력 잃어
통신사의 ‘통신+인터넷+TV 결합상품’에 밀려... 케이블TV 업계 ‘지역 공공성 보호’ 내세워 전국 3200만 가입 세대(중복 가입 포함)에 이르는 유료방송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LG유플러스가 국내 최대 케이블TV 업체인 CJ헬로를 인수하면서 현재 시장 1·2위인 KT와 SK텔레콤까지 다른 케이블TV 업체 인수에 적극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유료방송 시장을 장악했던 케이블TV(SO·종합유선방송)를 통신 업계의 ‘빅3’가 완전히 장악하는 것이다. 업계 강자가 모두 통신사에 팔려갈 확률이 높아지면서 수십년 간 국내 유료방송을 떠받치던 케이블TV 산업은 한 순간에 역사 속으로 사라질 상황을 맞았다. LG유플러스는 2월 14일 CJ ENM이 보유하고 있는 CJ헬로 지분 53.92% 중 ‘50%+1주’를 8000억원에 인수키로 했다. 유료방송시장 점유율은 현재 LG유플러스가 11.4%, CJ헬로가 13%. CJ헬로의 인수로 가입자 수가 781만명(24.4%)으로 불어난 LG유플러스는 1위 사업자인 KT(661만명, 20.7%)를 훌쩍 뛰어넘었다. KT와 KT스카이라이프를 합친 KT 계열 전체 가입자(986만명, 30.9%)엔 아직 못 미치지만 ‘인수 효과’를 무기로 유치전을 강화하면 KT 계열을 충분히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그러자 SK텔레콤은 2월 21일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 간 합병을 추진하기 위해 티브로드의 최대 주주인 태광산업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티브로드는 서울·경기·부산·대구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다. 가입자 수가 지난해 6월 말 기준 314만 명으로, 국내 종합유선방송(SO) 시장점유율 2위(9.86%)다. IPTV를 제공하는 SK브로드밴드는 유료방송 시장에서 점유율 13.97%(454만 명)를 차지하고 있다. 두 회사가 한몸이 되면 가입자는 768만 명으로, 시장점유율이 23.8%로 늘어난다.
SK텔레콤이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 합병을 추진키로 한 것은 LG유플러스가 CJ헬로를 인수하면서 유료방송 시장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데 따른 대응 전략이란 분석이다. 현재 KT 계열이 30.7% 점유율로 1위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CJ헬로를 인수한 LG유플러스는 24.43%, SK텔레콤은 23.8%로 올라선다. 업계에서는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추가 M&A를 통해 2강 체제 전복을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맞서 KT는 206만 명(점유율 6.45%)을 보유한 케이블TV 3위 업체 딜라이브를 인수해 ‘1강 2중’ 구도를 굳힐 심산이다. 최근 국회에 “KT스카이라이프를 통한 우회 인수를 중단한다”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직접 인수하는 방안은 여전히 열어둔 것으로 전해졌다. 2월 25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막한 ‘MWC 2019’에 참석한 황창규 KT 회장은 케이블 업체 인수를 검토하고 있는지 묻는 질문에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은 몸집이 중요한 건데 전혀 검토를 하고 있지 않은 건 아니다”라고 답했다.
업계에선 IPTV 회사와 케이블 TV 회사 간 결합은 불가피한 흐름으로 보고 있다. 두 진영이 처한 영업환경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통신사에겐 IPTV 시장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는 데 비해 케이블 TV 회사의 성장세는 둔화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17년 IPTV 매출은 2조9251억원으로 전년 대비 20.5% 증가했다. 통신사 입장에서 케이블TV 인수는 IPTV 부문에서 출혈경쟁을 줄이면서 성장을 노릴 수 있는 전략이기도 하다. 사실 IPTV는 폭발적으로 성장하기는 했지만 방송 3사의 출혈경쟁으로 커왔기 때문에 이익률은 높지 않았다. 그러나 케이블TV를 인수해 가입자가 증가하면 영업이익률 증대로 이어질 수 있다. IPTV 사업자가 다수의 가입자를 내세워 콘텐트 구매와 홈쇼핑 수수료 협상 등에서 유리한 조건으로 진행할 수 있는 데다, 저렴하게 구매한 콘텐트를 더 많은 가입자에게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신사의 매출 중 통신 비중이 줄고 있는 점도 케이블TV 인수를 부추기고 있다. 통신 업계 관계자는 “25% 선택 약정 할인 요금제 등으로 이동통신 매출은 줄고 있고 5세대(G) 서비스로 수익을 내는 것도 몇 년 후에나 가능할 것”이라며 “IPTV 등 미디어 분야 매출을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통신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현재 무선 사업에서 수익성이 약화되고 있는 만큼 통신 3사의 눈이 유료방송 쪽으로 몰린 상태”라며 “최근 IPTV 사업의 성장세가 눈에 띄는 만큼, 인수합병을 통해 수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했다.
IPTV 가입자 확보를 위한 전략만이 전부가 아니다. 통신사 관계자는 “통신 3사간 무선 시장이 포화상태에 달한 데다 3사의 무선 분야 경쟁력이 큰 차이가 없다”며 “미디어 분야에서 서비스 경쟁력을 키워 무선과의 결합을 추진하는 전략이 고객을 유인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른바 ‘웩더 독(Wag the Dog) 전략’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뜻으로 최근엔 본 제품보다 부가적인 서비스가 구매를 좌우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통신사 입장에선 IPTV의 경쟁력을 키워 결합상품을 통한 무선 가입자 수를 늘리는 전략이 효과적일 수 있다.
글로벌 미디어 환경의 급변도 유료방송시장의 인수합병을 부채질하고 있다. 글로벌 방송시장은 최근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기업의 등장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는 중이다. 특히 넷플릭스는 190개국 1억3000만 명이 넘는 구독자 수에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양질의 콘텐트를 제공하면서 고객을 빨아들이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유료방송 업계도 인수합병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이를 통해 콘텐트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려 한다는 것이다.
CJ헬로와 티브로드, 딜라이브는 종합유선방송사업(MSO) 시장의 상위 3개 사업자다. MSO는 쉽게 말해 케이블TV 사업자다. 앞에 ‘종합’이 붙는 이유는 복수의 유선방송사업자(SO)를 거느리기 때문이다. MSO 사업자는 방송권역별로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치열히 경쟁하는 사이는 아니다. 오히려 엄밀한 의미에서 경쟁자는 IPTV를 발판으로 방송시장에 진출한 통신사업자다. IPTV 서비스 제공이 시작된 지 7년 만에 업계 1~3위 사업자가 사업을 포기한다는 것은 IPTV와의 경쟁에 밀려 시장을 잠식당하고 있는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런 흐름이라면 조만간 국내 케이블TV가 시장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실제로 케이블 TV는 통신사의 브랜드와 자금력을 등에 업은 IPTV와의 경쟁에서 계속 밀리고 있고 수익률도 감소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17년 케이블TV의 매출액은 2조1307억원으로 전년 대비 1.8% 하락했다. 지난 2013년을 정점(2조3791억원)으로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국내 SO사업자의 가입자당 매출액(ARPU)은 2014년 8115원에서 2015년 7871원, 2016년 7598원으로 계속 감소했다. 이는 IPTV 가입자당 매출액의 절반 수준이다. 2017년 11월 인터넷TV에 전체 가입자 수에서 역전된 후에는 격차도 매년 벌어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케이블TV의 영향력은 크게 축소됐다. 2010년 말 유료방송시장 내 케이블TV 가입자 비중은 72%였으나, 2017년 말은 45% 안팎이다.
지난 1995년 출범한 케이블TV는 국내 처음으로 유료방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과거 지상파 3사 위주의 방송 콘텐트 독점 구조를 깨면서 수십개의 채널시장을 만드는 역할을 했다. 현재 TV나 옥상에 있는 안테나를 통해 공중파 주파수를 직접 수신하는 식으로 지상파 채널만 보는 가구는 5%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2000년대 케이블TV 업체들은 1000만 가입 세대를 돌파하며, TV에는 케이블 셋톱박스가 필요하다는 공식을 만들어냈다. 케이블TV 가입자 수 확대에 따라, 홈쇼핑 업체들이 성장했고 그 뒤를 이어 투니버스·CGV·tvN 등으로 이어지는 방송 채널들이 지상파 못지않은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케이블TV의 전체 가입자는 2008년 말 IPTV가 출범한 직후부터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다.
도입 초기에만 해도 IPTV가 케이블TV를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MSO는 권역별로 독점적 지위를 보장받고 있었지만, IPTV는 울타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신 3사는 장기간의 업력을 바탕으로 높은 브랜드 인지도와 기존 고객의 네트워크를 활용한 결합상품을 성장의 강력한 동력으로 활용했다. 케이블TV 업체 관계자는 “통신 업계의 인터넷TV는 200개가 넘는 TV채널과 VOD(주문형비디오)를 앞세운 데다 여기에 자신들의 강점인 이동통신·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인터넷TV와 묶어 싸게 팔면서 시장을 잠식했다”며 “자본력에서 밀린 케이블TV로서는 통신 업체의 후려치기 마케팅에 견딜 수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결합상품 마케팅의 파괴력은 막강했다. 결합을 통한 할인으로 최초 고객 유치를 하는 동시에, 개별상품 변경 때 위약금 조항 등으로 고객 이탈을 막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체 유료방송 가입자 중 ‘방송+통신’ 결합가입자 비중은 2015년 기준으로 이미 40%를 넘었다. 2008년 말 기준 통신 3사의 초고속인터넷 가입자는 각각 KT 671만 명, SKB 354만 명, LG유플러스 221만 명이었다. 이 수치는 최근 통신 3사의 IPTV 가입자 수와 유사하다. 기존에 보유하던 고객 수가 IPTV 가입자 확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반면, MSO 사업자들은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한 채 자생력을 잃었다. IPTV가 결합상품으로 마케팅 공세를 펴는 동안 MSO는 자체적으로 결합상품을 구성하기 위한 사업 기반을 갖추지 못했다. 최근에야 타사 무선서비스 등을 결합한 동등 결합상품을 2017년부터 출시하고 있지만, 때가 늦었다. 규제의 역설도 작용했다. 규제를 통한 진입장벽으로 성장했지만, 우물 안에서 보호를 받는 동안 경쟁력이 점차 저하됐다는 지적이다. 지역성을 보호하고 과도한 경쟁을 방지한다는 취지에서 MSO는 권역 내 독점적 지위가 보장됐다, 물론 다른 권역으로의 진출은 막혀 있었다. 통신 업계 관계자는 “케이블TV 업체들은 제대로 된 케이블망 투자도 하지 않고, 영업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해 스스로 경쟁력을 깎아먹은 측면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IPTV라는 새 경쟁자의 등장하자 속수무책으로 잠식당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IPTV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면서 기존에 케이블TV가 맡고 있던 지역성·공공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방송법에 따르면 SO는 지역사업권에 따라 일정한 권역에서 사업 운영 권리를 받는 대신, 방송의 지역성을 구현할 의무를 지게 된다. 방송의 지역성 보장을 통해 지역분권화,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 보호, 지역 경제발전 등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지방선거 때는 그 지역 후보들에 대한 정보를 촘촘히 전하는 선거방송으로서의 몫도 있다. 과거 케이블 TV 업계가 통신사의 진입을 방어하기 위해 합산규제 일몰 전에 강조했던 논리 중 하나도 ‘케이블TV가 무너지면 지역 방송 콘텐트라는 미디어 다양성도 훼손된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케이블TV 업계에서는 통신사가 SO를 흡수할 경우 ‘지역성 구현’을 놓고 문제 발생 여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는 2월 14일 성명서를 내고 “케이블TV는 지역정보 제공뿐만 아니라 재난방송과 선거방송 측면에서는 지상파방송보다 지역단위로 촘촘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며 “(통신사의 인수 후) 지역사업권이 무력화된다면 해당 지역은 케이블TV가 제공하는 다양한 지역서비스가 사라져 주민들이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협회는 또 “케이블TV가 지역성 구현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역사업권을 유지해야 한다”며 케이블TV 고유 영역인 지역 사업권 유지를 강조했다.
이에 대해 통신사 측은 ‘각자 경영’ 카드로 이런 우려를 불식 시키려는 모습이다.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은 2월 26일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CJ헬로와 협상을 하며 53.92% 타협이 이뤄져 나머지 지분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았다”며 “아울러 케이블이라는 것이 지역 공공성이 요구되는 사업이다. 서로의 영역에서 경쟁을 이뤄나가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업계는 과기부와 방통위 인수 심사에서 ‘지역성 구현’을 놓고 문제 발생 소지가 있어 이 같은 결정을 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합산규제 등 유료방송 시장의 재편에 정부 정책이 핵심 역할을 하는 만큼 정부가 방향성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영주 서울과학기술대학교 IT정책대학원 교수는 ‘1위 케이블 사업자가 떠나는 유료방송시장의 문제와 정책 당국의 과제’ 보고서에서 “케이블 사업자가 모두 빠져나가고 방송시장마저 통신 3사를 중심으로 재편되도록 할 것인지 아니면 SO가 유료방송시장에서 대등한 경쟁력을 가지고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 정책적 결정을 내려야 한다”며 “케이블 SO의 서비스를 유지한다면 어떤 시장 조건을 만들어야 경쟁이 활성화될 수 있는지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케이블TV 업계가 지역성 훼손을 지적하기에 앞서 방송의 공공성 회복과 자구책 마련이 우선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외력에 따른 변화나 정부 규제에 기대는 방식보다는 자생력을 갖추는 것이 케이블TV 업계 전체에 이익이라는 것이다. 특히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모바일 서비스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온다. 스마트폰 등으로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방송을 시청하는 수요를 잡기 위해서 필수적이다. 아울러 지역 미디어로서 케이블TV의 정체성을 살리고 콘텐트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지역 문화에 더욱 밀착한 콘텐트 발굴이 절실하다는 설명이다.
-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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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 3사가 ‘케이블 톱3’ 인수 추진
그러자 SK텔레콤은 2월 21일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 간 합병을 추진하기 위해 티브로드의 최대 주주인 태광산업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티브로드는 서울·경기·부산·대구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다. 가입자 수가 지난해 6월 말 기준 314만 명으로, 국내 종합유선방송(SO) 시장점유율 2위(9.86%)다. IPTV를 제공하는 SK브로드밴드는 유료방송 시장에서 점유율 13.97%(454만 명)를 차지하고 있다. 두 회사가 한몸이 되면 가입자는 768만 명으로, 시장점유율이 23.8%로 늘어난다.
SK텔레콤이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 합병을 추진키로 한 것은 LG유플러스가 CJ헬로를 인수하면서 유료방송 시장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데 따른 대응 전략이란 분석이다. 현재 KT 계열이 30.7% 점유율로 1위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CJ헬로를 인수한 LG유플러스는 24.43%, SK텔레콤은 23.8%로 올라선다. 업계에서는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가 추가 M&A를 통해 2강 체제 전복을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이에 맞서 KT는 206만 명(점유율 6.45%)을 보유한 케이블TV 3위 업체 딜라이브를 인수해 ‘1강 2중’ 구도를 굳힐 심산이다. 최근 국회에 “KT스카이라이프를 통한 우회 인수를 중단한다”는 의사를 전달했지만 직접 인수하는 방안은 여전히 열어둔 것으로 전해졌다. 2월 25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막한 ‘MWC 2019’에 참석한 황창규 KT 회장은 케이블 업체 인수를 검토하고 있는지 묻는 질문에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은 몸집이 중요한 건데 전혀 검토를 하고 있지 않은 건 아니다”라고 답했다.
업계에선 IPTV 회사와 케이블 TV 회사 간 결합은 불가피한 흐름으로 보고 있다. 두 진영이 처한 영업환경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통신사에겐 IPTV 시장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는 데 비해 케이블 TV 회사의 성장세는 둔화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17년 IPTV 매출은 2조9251억원으로 전년 대비 20.5% 증가했다.
통신사의 케이블 인수는 ‘웩더독’ 전략
통신사의 매출 중 통신 비중이 줄고 있는 점도 케이블TV 인수를 부추기고 있다. 통신 업계 관계자는 “25% 선택 약정 할인 요금제 등으로 이동통신 매출은 줄고 있고 5세대(G) 서비스로 수익을 내는 것도 몇 년 후에나 가능할 것”이라며 “IPTV 등 미디어 분야 매출을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통신 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현재 무선 사업에서 수익성이 약화되고 있는 만큼 통신 3사의 눈이 유료방송 쪽으로 몰린 상태”라며 “최근 IPTV 사업의 성장세가 눈에 띄는 만큼, 인수합병을 통해 수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갈 것으로 전망된다”고 전했다.
IPTV 가입자 확보를 위한 전략만이 전부가 아니다. 통신사 관계자는 “통신 3사간 무선 시장이 포화상태에 달한 데다 3사의 무선 분야 경쟁력이 큰 차이가 없다”며 “미디어 분야에서 서비스 경쟁력을 키워 무선과의 결합을 추진하는 전략이 고객을 유인하는 데 훨씬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른바 ‘웩더 독(Wag the Dog) 전략’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는 뜻으로 최근엔 본 제품보다 부가적인 서비스가 구매를 좌우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통신사 입장에선 IPTV의 경쟁력을 키워 결합상품을 통한 무선 가입자 수를 늘리는 전략이 효과적일 수 있다.
글로벌 미디어 환경의 급변도 유료방송시장의 인수합병을 부채질하고 있다. 글로벌 방송시장은 최근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기업의 등장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는 중이다. 특히 넷플릭스는 190개국 1억3000만 명이 넘는 구독자 수에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양질의 콘텐트를 제공하면서 고객을 빨아들이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유료방송 업계도 인수합병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이를 통해 콘텐트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려 한다는 것이다.
CJ헬로와 티브로드, 딜라이브는 종합유선방송사업(MSO) 시장의 상위 3개 사업자다. MSO는 쉽게 말해 케이블TV 사업자다. 앞에 ‘종합’이 붙는 이유는 복수의 유선방송사업자(SO)를 거느리기 때문이다. MSO 사업자는 방송권역별로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치열히 경쟁하는 사이는 아니다. 오히려 엄밀한 의미에서 경쟁자는 IPTV를 발판으로 방송시장에 진출한 통신사업자다. IPTV 서비스 제공이 시작된 지 7년 만에 업계 1~3위 사업자가 사업을 포기한다는 것은 IPTV와의 경쟁에 밀려 시장을 잠식당하고 있는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런 흐름이라면 조만간 국내 케이블TV가 시장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IPTV 등장 이후 케이블TV 줄곧 내리막
지난 1995년 출범한 케이블TV는 국내 처음으로 유료방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과거 지상파 3사 위주의 방송 콘텐트 독점 구조를 깨면서 수십개의 채널시장을 만드는 역할을 했다. 현재 TV나 옥상에 있는 안테나를 통해 공중파 주파수를 직접 수신하는 식으로 지상파 채널만 보는 가구는 5%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추정된다. 2000년대 케이블TV 업체들은 1000만 가입 세대를 돌파하며, TV에는 케이블 셋톱박스가 필요하다는 공식을 만들어냈다. 케이블TV 가입자 수 확대에 따라, 홈쇼핑 업체들이 성장했고 그 뒤를 이어 투니버스·CGV·tvN 등으로 이어지는 방송 채널들이 지상파 못지않은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케이블TV의 전체 가입자는 2008년 말 IPTV가 출범한 직후부터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다.
도입 초기에만 해도 IPTV가 케이블TV를 따라잡기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MSO는 권역별로 독점적 지위를 보장받고 있었지만, IPTV는 울타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신 3사는 장기간의 업력을 바탕으로 높은 브랜드 인지도와 기존 고객의 네트워크를 활용한 결합상품을 성장의 강력한 동력으로 활용했다. 케이블TV 업체 관계자는 “통신 업계의 인터넷TV는 200개가 넘는 TV채널과 VOD(주문형비디오)를 앞세운 데다 여기에 자신들의 강점인 이동통신·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인터넷TV와 묶어 싸게 팔면서 시장을 잠식했다”며 “자본력에서 밀린 케이블TV로서는 통신 업체의 후려치기 마케팅에 견딜 수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결합상품 마케팅의 파괴력은 막강했다. 결합을 통한 할인으로 최초 고객 유치를 하는 동시에, 개별상품 변경 때 위약금 조항 등으로 고객 이탈을 막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체 유료방송 가입자 중 ‘방송+통신’ 결합가입자 비중은 2015년 기준으로 이미 40%를 넘었다. 2008년 말 기준 통신 3사의 초고속인터넷 가입자는 각각 KT 671만 명, SKB 354만 명, LG유플러스 221만 명이었다. 이 수치는 최근 통신 3사의 IPTV 가입자 수와 유사하다. 기존에 보유하던 고객 수가 IPTV 가입자 확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 가능하다.
반면, MSO 사업자들은 변화의 흐름을 읽지 못한 채 자생력을 잃었다. IPTV가 결합상품으로 마케팅 공세를 펴는 동안 MSO는 자체적으로 결합상품을 구성하기 위한 사업 기반을 갖추지 못했다. 최근에야 타사 무선서비스 등을 결합한 동등 결합상품을 2017년부터 출시하고 있지만, 때가 늦었다. 규제의 역설도 작용했다. 규제를 통한 진입장벽으로 성장했지만, 우물 안에서 보호를 받는 동안 경쟁력이 점차 저하됐다는 지적이다. 지역성을 보호하고 과도한 경쟁을 방지한다는 취지에서 MSO는 권역 내 독점적 지위가 보장됐다, 물론 다른 권역으로의 진출은 막혀 있었다. 통신 업계 관계자는 “케이블TV 업체들은 제대로 된 케이블망 투자도 하지 않고, 영업이익 챙기기에만 급급해 스스로 경쟁력을 깎아먹은 측면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IPTV라는 새 경쟁자의 등장하자 속수무책으로 잠식당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IPTV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면서 기존에 케이블TV가 맡고 있던 지역성·공공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방송법에 따르면 SO는 지역사업권에 따라 일정한 권역에서 사업 운영 권리를 받는 대신, 방송의 지역성을 구현할 의무를 지게 된다. 방송의 지역성 보장을 통해 지역분권화,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 보호, 지역 경제발전 등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지방선거 때는 그 지역 후보들에 대한 정보를 촘촘히 전하는 선거방송으로서의 몫도 있다. 과거 케이블 TV 업계가 통신사의 진입을 방어하기 위해 합산규제 일몰 전에 강조했던 논리 중 하나도 ‘케이블TV가 무너지면 지역 방송 콘텐트라는 미디어 다양성도 훼손된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케이블TV 업계에서는 통신사가 SO를 흡수할 경우 ‘지역성 구현’을 놓고 문제 발생 여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는 2월 14일 성명서를 내고 “케이블TV는 지역정보 제공뿐만 아니라 재난방송과 선거방송 측면에서는 지상파방송보다 지역단위로 촘촘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며 “(통신사의 인수 후) 지역사업권이 무력화된다면 해당 지역은 케이블TV가 제공하는 다양한 지역서비스가 사라져 주민들이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협회는 또 “케이블TV가 지역성 구현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지역사업권을 유지해야 한다”며 케이블TV 고유 영역인 지역 사업권 유지를 강조했다.
이에 대해 통신사 측은 ‘각자 경영’ 카드로 이런 우려를 불식 시키려는 모습이다. 하현회 LG유플러스 부회장은 2월 26일 스페인 바로셀로나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CJ헬로와 협상을 하며 53.92% 타협이 이뤄져 나머지 지분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았다”며 “아울러 케이블이라는 것이 지역 공공성이 요구되는 사업이다. 서로의 영역에서 경쟁을 이뤄나가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업계는 과기부와 방통위 인수 심사에서 ‘지역성 구현’을 놓고 문제 발생 소지가 있어 이 같은 결정을 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
‘통신사 중심 재편 vs 케이블TV 유지’ 방향 잡아야
케이블TV 업계가 지역성 훼손을 지적하기에 앞서 방송의 공공성 회복과 자구책 마련이 우선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외력에 따른 변화나 정부 규제에 기대는 방식보다는 자생력을 갖추는 것이 케이블TV 업계 전체에 이익이라는 것이다. 특히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모바일 서비스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온다. 스마트폰 등으로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방송을 시청하는 수요를 잡기 위해서 필수적이다. 아울러 지역 미디어로서 케이블TV의 정체성을 살리고 콘텐트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지역 문화에 더욱 밀착한 콘텐트 발굴이 절실하다는 설명이다.
-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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