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 것”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 것”
배우 리나 웨이스가 본 가수 비욘세와 그녀의 음악… “우리 목소리가 크든 작든 조상들이 그랬듯이 당당하게 일어서야 한다”
비욘세를 좋아하든 안 하든 그녀의 압도적인 영향력은 부정할 수 없다. 적어도 최근 베로니카 체임버스가 펴낸 ‘퀸 비: 비욘세 놀스-카터의 파워와 창조성에 대한 찬양’(QUEEN BEY: A Celebration of the Power and Creativity of Beyoncé Knowles-Carter)’(세인트 마틴스 프레스 펴냄)에서는 그렇게 주장한다. 다음은 에미상을 받은 대본 작가이자 프로듀서 겸 배우인 리나 웨이스가 비욘세의 음악이 자신의 인생에 미친 영향을 기술한 글이다. 내가 중학교 때 데스티니 차일드(비욘세가 속했던 걸그룹)가 첫 뮤직 비디오 ‘No, No, No’를 발표했다. 난 친구들(모두 흑인 소녀)과 함께 이 색다른 흑인 소녀(비욘세)를 보며 신기해하던 기억이 난다.
그들은 모두 우리와 비슷해 보였지만 비욘세는 처음부터 어딘지 다이애나 로스를 연상시키는 데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녀에게 특히 눈길이 갔다.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목소리 때문만은 아닌 게 분명했다. 난 그들 모두에게 마음이 끌렸다. 그들이 나처럼, 우리처럼 느껴졌다. 그들 안에서, 그녀 안에서 나를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우리 세대였다.
비욘세는 블랙 퀸이었다. 그녀에게서는 다이애나 로스뿐 아니라 리나 혼의 모습도 보였다. 난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 거야’라고 생각했다. 난 비욘세를 보호하고 싶었다. 마치 그녀가 내 단짝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몇 년 후 시카고 하우스 오브 블루스에서 비욘세의 라이브 공연을 처음 봤다. 그녀가 첫 솔로 앨범을 냈을 때 ‘이 음반이 정말 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게 기억난다. 난 데스티니 차일드를 정말 좋아했기 때문에 비욘세가 솔로 활동을 시작했을 때 마음을 졸였다. 데스티니 차일드의 성공과 영향력이 손상되는 걸 원치 않아서다. 물론 그렇게 되진 않았다. 그들의 영향력은 오히려 더 커졌다.
어떤 면에서 우리 모두는 인생의 여정을 비욘세와 함께한다. 우린 그녀가 자신감을 얻고 소녀에서 여인이 돼가는 과정을 지켜봤다. 난 20대에 로스앤젤레스(LA)로 이주해 자신감을 키우고 성숙한 여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때 비욘세의 음악을 많이 들으며 여자로서, 인간으로서, 또 흑인 여성으로서 나는 누구인가를 열심히 생각했다. 지금은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 내 위치가 어디쯤인지를 파악하려고 애쓴다. 비욘세를 보면서 스스로를 물로 축성하고 새로운 여성으로 거듭나는 세례식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럴 때에만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난 또 그 앞길이 결코 투명하지 않다는 걸 그녀가 안다는 게 고맙다. 그 길은 늘 평탄하지도 곧게 뻗어 있지도 않다. 때로는 후회할 일도 생기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앞으로 나갈 때도 있다. 난 내 인생에서 힘든 일을 헤쳐나가면서 그녀가 그녀의 생에서 그렇게 하는 걸 지켜봤다. 비욘세는 살면서 약간 비틀거리더라도 거기서 뭔가 아름다운 걸 만들어내면 된다는 걸 보여줬다. 또 세상이 우리에게 어떤 시련을 안겨도 불사조처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난 비욘세의 앨범 ‘Beyoncé’(2013)가 히트했을 때 지금의 약혼자와 사랑에 빠졌다. 난 그녀의 앨범에서 말하는 것들이 실제로 일어나기를 바랐다. 누군가를 향한 그 대단한 열정과 유대감을 느끼고 싶었다. ‘Lemonade’(2016)는 우리 모두에게 힘을 준다. 그녀는 찢어질 듯 아픈 가슴과 배신을 견뎌내고 살아남는 것에 관해 이야기한다. 매우 인간적이고 용감한 정신이 느껴진다. 이 앨범은 또 세레나 윌리엄스(테니스 선수) 등 그녀가 존경하는 모든 여성을 포함하는 커뮤니티를 대표한다.
비욘세는 흑인 여성으로서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녀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같은 흑인 여성 중에 본받을 만한 누군가를 찾아내 ‘괜찮아. 나도 그녀처럼 강해질 수 있어’라고 스스로를 격려했다.
‘Sorry’라는 노래를 처음 들을 때 우리는 와산 샤이어(소말리아계 영국인 시인)의 시에 감동한다. 비욘세는 우리가 몰랐거나 관심을 갖지 않던 사람들을 주목 받게 만드는 힘이 있다. 비욘세가 샤이어의 시를 노래 속에 집어넣자 갑자기 이 갈색 피부의 여성 시인과 그녀의 시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비욘세는 ‘Lemonade’ 앨범을 통해 사람들이 그녀 자신뿐 아니라 유색인종 여성 커뮤니티에 관심을 갖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그들의 여정에 동참하도록 만들었다.‘Lemonade’는 그래미 최우수 앨범상을 받진 못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이 앨범을 사랑한다. 마찬가지로 내가 만약 ‘마스터 오브 넌’(넷플릭스 드라마)의 추수감사절 에피소드로 에미상을 받지 못 했다고 해도 그 드라마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흑인 여성은 늘 모든 것의 근간이 돼 왔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가만히 앉아 방관하지 않는다.
비욘세는 우리의 근본이 같으며 우리 모두가 한배를 탔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녀는 늘 “난 어머니이자 아내이며 운동가이고 딸이며 친구”라고 말한다. 우리가 비록 서로 다르더라도 이 생에서 우리 모두는 친구다. 그리고 그녀는 우리 목소리가 크든 작든 조상들이 그랬듯이 당당하게 일어서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우리가 누구든, 어디서 왔든, 돈이 많든 적든, 그런 건 문제되지 않는다.
비욘세는 그녀가 나고 자란 휴스턴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사랑한다. 난 시카고 출신인데 두 도시 모두 나름의 문제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얕볼 수도 있는 이들 도시에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안다. 휴스턴을 비욘세와 결부시킬 때 사람들은 그 도시를 특별한 곳으로 여기게 된다.
동성애자들에게 비욘세는 ‘터널 끝의 빛’과 같은 존재다. 비욘세는 동성애자가 아니지만 셰어나 마돈나처럼 동성애자 옹호론자이자 그 사회의 상징이다. 그녀는 남과 다르다는 것, 또 그 사실을 두려움 없이 밝힌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세계 곳곳의 동성애자, 이성애자, 트랜스젠더, 흑인, 백인들과 교감한다. 그 모든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휘트니 휴스턴과 마이클 잭슨의 후예다. 휴스턴과 잭슨은 흑인 청중과 끊임없이 교감한 자랑스러운 흑인이다. 하지만 그들에겐 매우 순수하고 특별한 뭔가가 있었기에 그들의 음악은 흑인 사회를 뛰어넘어 광범위한 청중에게 스며들었다. 또한 비욘세의 음악에는 그녀만의 특별함이 녹아 있다.
나 자신의 삶에 관한 글을 쓰는 작가로서 난 더 넓은 독자층에 다가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그 특별함이라는 걸 잘 안다. 더 특별할수록 더 흉금을 터놓게 되고 더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는다. 그들은 마치 당신을 잘 아는 것처럼 느끼며 응원한다. 그럴 때 예술가로서 한 단계 도약하게 된다. 비욘세는 그런 도약을 여러 차례 이뤄냈다.
난 휴스턴과 잭슨, 프린스를 보며 자랐다. 우린 이제 그들을 잃었지만 비욘세가 그들의 재능과 영향력을 이어받았다. 난 휴스턴이 남편 바비 브라운과 함께 출연한 리얼리티 쇼에서 비욘세에 관해 이야기하던 것을 기억한다. 어떻게 보면 휴스턴은 비욘세에게 (자신의 뒤를 이어도 좋다는) 승인 도장을 찍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부턴 비욘세에게 달렸다”고 그녀는 말했다. 난 비욘세를 볼 때마다 그 말이 생각난다. 휴스턴이“(이제 내 할 일은 다 했으니) 지금부터는 네가 알아서 잘 해보라”고 비욘세를 격려해준 게 아닐까?
- 리나 웨이스
※ [Copyright@2019 by the author and reprinted by permission of St. Martin’s Pres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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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세를 좋아하든 안 하든 그녀의 압도적인 영향력은 부정할 수 없다. 적어도 최근 베로니카 체임버스가 펴낸 ‘퀸 비: 비욘세 놀스-카터의 파워와 창조성에 대한 찬양’(QUEEN BEY: A Celebration of the Power and Creativity of Beyoncé Knowles-Carter)’(세인트 마틴스 프레스 펴냄)에서는 그렇게 주장한다. 다음은 에미상을 받은 대본 작가이자 프로듀서 겸 배우인 리나 웨이스가 비욘세의 음악이 자신의 인생에 미친 영향을 기술한 글이다. 내가 중학교 때 데스티니 차일드(비욘세가 속했던 걸그룹)가 첫 뮤직 비디오 ‘No, No, No’를 발표했다. 난 친구들(모두 흑인 소녀)과 함께 이 색다른 흑인 소녀(비욘세)를 보며 신기해하던 기억이 난다.
그들은 모두 우리와 비슷해 보였지만 비욘세는 처음부터 어딘지 다이애나 로스를 연상시키는 데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녀에게 특히 눈길이 갔다.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목소리 때문만은 아닌 게 분명했다. 난 그들 모두에게 마음이 끌렸다. 그들이 나처럼, 우리처럼 느껴졌다. 그들 안에서, 그녀 안에서 나를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우리 세대였다.
비욘세는 블랙 퀸이었다. 그녀에게서는 다이애나 로스뿐 아니라 리나 혼의 모습도 보였다. 난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 거야’라고 생각했다. 난 비욘세를 보호하고 싶었다. 마치 그녀가 내 단짝친구라도 되는 것처럼.
몇 년 후 시카고 하우스 오브 블루스에서 비욘세의 라이브 공연을 처음 봤다. 그녀가 첫 솔로 앨범을 냈을 때 ‘이 음반이 정말 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게 기억난다. 난 데스티니 차일드를 정말 좋아했기 때문에 비욘세가 솔로 활동을 시작했을 때 마음을 졸였다. 데스티니 차일드의 성공과 영향력이 손상되는 걸 원치 않아서다. 물론 그렇게 되진 않았다. 그들의 영향력은 오히려 더 커졌다.
어떤 면에서 우리 모두는 인생의 여정을 비욘세와 함께한다. 우린 그녀가 자신감을 얻고 소녀에서 여인이 돼가는 과정을 지켜봤다. 난 20대에 로스앤젤레스(LA)로 이주해 자신감을 키우고 성숙한 여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때 비욘세의 음악을 많이 들으며 여자로서, 인간으로서, 또 흑인 여성으로서 나는 누구인가를 열심히 생각했다. 지금은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 내 위치가 어디쯤인지를 파악하려고 애쓴다. 비욘세를 보면서 스스로를 물로 축성하고 새로운 여성으로 거듭나는 세례식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럴 때에만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난 또 그 앞길이 결코 투명하지 않다는 걸 그녀가 안다는 게 고맙다. 그 길은 늘 평탄하지도 곧게 뻗어 있지도 않다. 때로는 후회할 일도 생기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앞으로 나갈 때도 있다. 난 내 인생에서 힘든 일을 헤쳐나가면서 그녀가 그녀의 생에서 그렇게 하는 걸 지켜봤다. 비욘세는 살면서 약간 비틀거리더라도 거기서 뭔가 아름다운 걸 만들어내면 된다는 걸 보여줬다. 또 세상이 우리에게 어떤 시련을 안겨도 불사조처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난 비욘세의 앨범 ‘Beyoncé’(2013)가 히트했을 때 지금의 약혼자와 사랑에 빠졌다. 난 그녀의 앨범에서 말하는 것들이 실제로 일어나기를 바랐다. 누군가를 향한 그 대단한 열정과 유대감을 느끼고 싶었다. ‘Lemonade’(2016)는 우리 모두에게 힘을 준다. 그녀는 찢어질 듯 아픈 가슴과 배신을 견뎌내고 살아남는 것에 관해 이야기한다. 매우 인간적이고 용감한 정신이 느껴진다. 이 앨범은 또 세레나 윌리엄스(테니스 선수) 등 그녀가 존경하는 모든 여성을 포함하는 커뮤니티를 대표한다.
비욘세는 흑인 여성으로서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녀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같은 흑인 여성 중에 본받을 만한 누군가를 찾아내 ‘괜찮아. 나도 그녀처럼 강해질 수 있어’라고 스스로를 격려했다.
‘Sorry’라는 노래를 처음 들을 때 우리는 와산 샤이어(소말리아계 영국인 시인)의 시에 감동한다. 비욘세는 우리가 몰랐거나 관심을 갖지 않던 사람들을 주목 받게 만드는 힘이 있다. 비욘세가 샤이어의 시를 노래 속에 집어넣자 갑자기 이 갈색 피부의 여성 시인과 그녀의 시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비욘세는 ‘Lemonade’ 앨범을 통해 사람들이 그녀 자신뿐 아니라 유색인종 여성 커뮤니티에 관심을 갖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그들의 여정에 동참하도록 만들었다.‘Lemonade’는 그래미 최우수 앨범상을 받진 못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이 앨범을 사랑한다. 마찬가지로 내가 만약 ‘마스터 오브 넌’(넷플릭스 드라마)의 추수감사절 에피소드로 에미상을 받지 못 했다고 해도 그 드라마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흑인 여성은 늘 모든 것의 근간이 돼 왔다. 그들은 어떤 경우에도 가만히 앉아 방관하지 않는다.
비욘세는 우리의 근본이 같으며 우리 모두가 한배를 탔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녀는 늘 “난 어머니이자 아내이며 운동가이고 딸이며 친구”라고 말한다. 우리가 비록 서로 다르더라도 이 생에서 우리 모두는 친구다. 그리고 그녀는 우리 목소리가 크든 작든 조상들이 그랬듯이 당당하게 일어서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우리가 누구든, 어디서 왔든, 돈이 많든 적든, 그런 건 문제되지 않는다.
비욘세는 그녀가 나고 자란 휴스턴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사랑한다. 난 시카고 출신인데 두 도시 모두 나름의 문제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얕볼 수도 있는 이들 도시에 아름다움이 있다는 걸 안다. 휴스턴을 비욘세와 결부시킬 때 사람들은 그 도시를 특별한 곳으로 여기게 된다.
동성애자들에게 비욘세는 ‘터널 끝의 빛’과 같은 존재다. 비욘세는 동성애자가 아니지만 셰어나 마돈나처럼 동성애자 옹호론자이자 그 사회의 상징이다. 그녀는 남과 다르다는 것, 또 그 사실을 두려움 없이 밝힌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세계 곳곳의 동성애자, 이성애자, 트랜스젠더, 흑인, 백인들과 교감한다. 그 모든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휘트니 휴스턴과 마이클 잭슨의 후예다. 휴스턴과 잭슨은 흑인 청중과 끊임없이 교감한 자랑스러운 흑인이다. 하지만 그들에겐 매우 순수하고 특별한 뭔가가 있었기에 그들의 음악은 흑인 사회를 뛰어넘어 광범위한 청중에게 스며들었다. 또한 비욘세의 음악에는 그녀만의 특별함이 녹아 있다.
나 자신의 삶에 관한 글을 쓰는 작가로서 난 더 넓은 독자층에 다가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그 특별함이라는 걸 잘 안다. 더 특별할수록 더 흉금을 터놓게 되고 더 많은 독자에게 사랑받는다. 그들은 마치 당신을 잘 아는 것처럼 느끼며 응원한다. 그럴 때 예술가로서 한 단계 도약하게 된다. 비욘세는 그런 도약을 여러 차례 이뤄냈다.
난 휴스턴과 잭슨, 프린스를 보며 자랐다. 우린 이제 그들을 잃었지만 비욘세가 그들의 재능과 영향력을 이어받았다. 난 휴스턴이 남편 바비 브라운과 함께 출연한 리얼리티 쇼에서 비욘세에 관해 이야기하던 것을 기억한다. 어떻게 보면 휴스턴은 비욘세에게 (자신의 뒤를 이어도 좋다는) 승인 도장을 찍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부턴 비욘세에게 달렸다”고 그녀는 말했다. 난 비욘세를 볼 때마다 그 말이 생각난다. 휴스턴이“(이제 내 할 일은 다 했으니) 지금부터는 네가 알아서 잘 해보라”고 비욘세를 격려해준 게 아닐까?
- 리나 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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