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러시아가 서로 싸우는 사이에
미국·유럽·러시아가 서로 싸우는 사이에
중국은 무역·투자·안보·관광 같은 수단 동원해 50년에 걸친 시간표에 따라 영토 확보에 나선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국 수도 워싱턴 D.C.를 지도에서 없애버릴 수도 있다는 식으로 위협하는 연설을 들으면 섬뜩한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특히 모스크바에서 그런 연설을 들으면 더욱 무시무시하다. 최근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신형 미사일을 자랑스럽게 공개하며 필요하다면 그 미사일을 사용하겠다고 선언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2월 20일 의회 국정연설에서 미국이 1987년 체결된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파기하고 유럽에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배치할 가능성을 개탄했다. 그는 그 미사일이 유럽에 배치되면 모스크바나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휴양지 소치 같은 표적까지 도달하는데 5~7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미국보다 먼저 신형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유럽에 배치할 의사는 없다고 말했지만 미국이 INF 조약을 파기하고 그 이전의 핵 태세(냉전 당시 미국은 서독에 배치된 퍼싱2 미사일로 크렘린을 겨냥했다)로 돌아갈 경우 신속하게 보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게다가 러시아는 보복 수단도 확대하는 중이다. 푸틴 대통령은 현대화된 미사일 병기고를 자랑했다. Kh-47M2 킨잘 공대지 극초음속 탄도미사일(‘대거’), 사르마트 대륙간 탄도미사일(‘SS-X-30 사탄2’), 9M730 부레베스트니크 핵추진 순항미사일(‘SSC-X-9 스카이폴’), 극초음속 활강체 핵탄두(‘아방가르드’) 등이다. 이런 무기의 성능이 러시아 당국의 선전 그대로라면 미국이나 우방국 표적을 향해 발사됐을 때 요격하기가 아주 어려울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푸틴 대통령은 원자력 엔진을 장착한 수중 드론 ‘포세이돈’ 테스트가 성공적이며 포세이돈으로 무장한 첫 핵잠수함을 올봄에 진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포세이돈은 너비 2m, 길이 20m이며, 항속거리가 1만㎞이고, 해저 1000m에서 최대 100노트(시속 200㎞)의 속력으로 이동할 수 있다. 또 앞부분에 재래식 탄두는 물론 100메가톤의 핵탄두 탑재가 가능하다. 100메가톤이라면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비해 폭발력이 5000배나 강하다는 뜻이다. 뉴욕 같은 미국의 해안 주 전체를 초토화할 수 있는 위력이다.
푸틴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이전처럼 미국을 러시아의 ‘주적’으로 부르며 맹비난했다. 또 미국의 동맹국들을 돼지처럼 꿀꿀거리는 위성국이라고 조롱하며 러시아가 공격받을 경우 원점 타격만이 아니라 미사일 발사 결정을 내리는 센터(지휘부)가 위치한 지역도 공격하겠다고 경고했다. 워싱턴 D.C., 벨기에 브뤼셀, 영국 런던, 폴란드 바르샤바 등 미국과 동맹국의 수도를 완전히 파괴하겠다는 뜻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정학적인 적들을 두고 이렇게 반복했다. “그들은 계산을 잘할 수 있다. 합리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런 극초음속 무기가 미국의 영해 밖에서 발사돼 표적에 도달하는데 얼마나 걸릴지 잘 계산해보라. 가상적인 미국 미사일이 모스크바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훨씬 짧을 것이다.”
푸틴 대통령의 이런 격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INF를 파기하기로 결정하면서 촉발됐다. INF는 냉전이 한창이던 1987년 12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체결해 이듬해 6월 발효했다. 사거리 500∼1000㎞인 단거리와 1000∼5500㎞인 중거리 지상 발사 탄도·순항미사일의 생산과 테스트, 실전 배치를 전면 금지한 조약으로, 냉전 시대 미소 군비 경쟁을 종식하는 토대가 된 조약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가 INF에서 금지한 사거리의 신형 미사일을 배치함으로써 조약을 위반한다고 지적하며 탈퇴를 발표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지난 2월 중순 개최된 뮌헨안보회의에서 “러시아가 조약을 위반한 것은 명백하다”면서 “그러나 미국의 탈퇴가 발효될 때까지 6개월 동안 대화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미국의 INF 탈퇴 선언은 메르켈 총리가 지지한 몇 안 되는 미국 정책 중 하나였다. 기민당 대표직을 사임했고 2021년 총리직에서도 물러나는 메르켈 총리는 그 회의에서 미국의 INF 탈퇴 결정은 지지하면서도 미국의 다른 외교정책은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녀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협정에서 탈퇴했고, 독일 자동차를 대상으로 고율의 관세 부과를 위협하고 있으며, 아프가니스탄·시리아에서 미군 철수를 갑작스럽게 발표했다고 조목조목 맹비난함으로써 참석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회의장을 ‘트럼프 대통령 성토장’으로 만들었다.
그 회의에 참석한 미국의 전직 고위 정책입안자들 사이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조약 5조(‘한 회원국에 대한 공격은 나토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집단방위권 발동 규정)를 준수하지 않거나 나토에서 탈퇴할 수도 있다는 추측도 나왔다. 현실이 아니라 정당 정치에서 나온 이야기였기를 바랄 뿐이다.
뮌헨안보회의 직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미국 주도의 중동 평화·안보회의에서도 유럽과 미국 사이의 깊어가는 갈등이 확연히 드러났다. 미국 대표로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참석했지만 프랑스·독일·이탈리아는 차관급 인사만 나왔다. 미국이 이 회의에서 이란을 고립시키려다가 스스로 고립당한 듯한 모습이었다. 한편 유럽도 공동 방위를 위한 비용은 충분히 대지 않으면서도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에 관여하려고 하면서 대서양 양안 관계는 더욱 경색되고 있다. 뮌헨안보회의장이 ‘트럼프 대통령 성토장’이 되면서 벌어진 미국과 유럽 동맹국 사이의 설전은 상당히 좋지 않은 시기에 터져나왔다. 러시아는 특정 상황이 되면 미국 수도 워싱턴 D.C.를 핵공격하겠다고 위협했을 뿐 아니라 내부의 반체제 세력도 미국의 ‘제5열’로 본다. 또 푸틴 대통령은 서방이 인터넷을 샅샅이 뒤지면서 러시아의 상황을 정탐한다고 비난한다. 러시아 하원은 월드와이드웹에서 벗어나 러시아의 독자적인 인터넷을 구축하기 위한 법 제정을 준비 중이다.
다른 한편으로 미국과 러시아, 유럽연합(EU)과 독일이 모두 무시하고 싶어 하는 전략적·시스템적 공동 위협도 커지고 있다. 중국의 부상을 말한다. 중국은 최근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실패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을지 모른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미국을 상대할 때 북한을 내세워 공격하면서도 그럴 듯한 구실을 내세워 그런 사실을 부인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북미 정상회담이 잘 되지 않으리라고 예측했다. 고통스러운 무역전쟁에 휘말린 중국이 트럼프 정부에 승리를 쉽게 넘겨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잇따른 만남과 중국이 북한을 상대로 경제력을 당근과 채찍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중국이 북한을 일종의 ‘제후국’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미중 관계의 현황을 감안할 때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만족스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면 너무 순진한 생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바로 이런 순진함 덕분에 중국은 미국의 충분한 견제 없이 전 세계로 영향력을 확산할 수 있다.
지난 2월 초 싱가포르국립대학 중동연구소 컨퍼런스에서 전문가들은 미얀마·스리랑카부터 지부티·두바이까지 넓은 지역에서 전략적 영향력을 확립하려는 중국의 원대한 계획을 분석했다. 중국의 대규모 항만·철도 건설 프로젝트의 표적은 파키스탄의 항구도시 과다르(중국 북서부 신장 위구르자치구와 과다르항을 철도·도로·송유관 등으로 연결할 계획이다)만이 아니라 이집트·이스라엘·그리스·체코도 포함한다. 중국 정부의 신(新)실크로드 전략 구상인 ‘일대일로’는 우리가 아는 기존의 세계를 새롭게 뜯어고칠 태세다. 중국은 아프리카의 최대 무역 파트너다. 또한 페르시아만 지역의 최대 투자국으로서 아랍에미리트를 대체했다. 중동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줄어들면서 에너지에 굶주린 중국이 그 공백을 메우고 있다. 아울러 대영제국과 미국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상인’의 뒤를 ‘군인’이 따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대판 제국이 탄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은 무역·투자·금융·안보·인프라·관광 등 국가의 모든 수단을 총동원한다. 흔히 비유되듯이 중국은 ‘바둑을 둔다’고 말할 수 있다. 비교적 단선적이며 간단한 전술적인 사고가 필요한 체스와 달리 바둑은 인내심을 갖고 오랜 시간에 걸쳐 최대한의 영토를 확보하는 복잡한 전략 게임이다. 중국 공산당 정부는 적어도 50년에 걸친 시간표에 따라 차근차근 행동하고 있다. 반면 미국 정부는 각각 동상이몽을 가진 일본-호주-대만(어쩌면 인도도 포함)의 임시적인 연합을 구축하려는 연약한 시도로 대응한다. 기껏해야 중국을 짜증나게 만드는 산발적인 군사적 대응이 대부분이다.
뮌헨안보회의의 미국-독일 로이자흐 그룹 전략 미팅에서 유럽이 미국 편에 설지 그 반대편에 설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현재로선 트럼프 대통령은 프랑스와 독일이 미국의 동맹국인지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미국과 유럽은 협력을 한층 더 강화하는 동시에 양측 모두 중국의 도전에 적극 맞설 필요가 있다. 러시아는 서방과 연합전선을 펼칠지, 독자적으로 중국에 맞설지 선택해야 한다. 중국보다 인구가 9배나 적고 국내총생산(GDP)이 10배나 적으며 4200㎞의 국경을 중국과 맞대고 있는 러시아로선 중국을 혼자서 감당하긴 벅찰지 모른다. 게다가 푸틴 대통령은 미국 혐오증에 사로잡힌 나머지 터무니없게도 자원에 굶주린 이웃나라 중국에 러시아를 기꺼이 넘겨줄 생각인 듯하다.
미국과 유럽의 공동 위협 평가와 전략 조정, 정치적·군사적 협력이 없다면 중국은 21세기 하반기의 세계 최 강대국이 될 것이다. 너무나 뻔한 일이라 미국과 유럽의 정치인과 지도자들은 사후에 그렇게 될 줄 몰랐다고 발뺌할 여지가 없다.
- 에어리얼 코언
※ [필자는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선임연구원이며 국제조세투자센터(ITIC) 에너지·성장·안보 프로그램 국장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푸틴 대통령은 지난 2월 20일 의회 국정연설에서 미국이 1987년 체결된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을 파기하고 유럽에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배치할 가능성을 개탄했다. 그는 그 미사일이 유럽에 배치되면 모스크바나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휴양지 소치 같은 표적까지 도달하는데 5~7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가 미국보다 먼저 신형 중거리 탄도미사일을 유럽에 배치할 의사는 없다고 말했지만 미국이 INF 조약을 파기하고 그 이전의 핵 태세(냉전 당시 미국은 서독에 배치된 퍼싱2 미사일로 크렘린을 겨냥했다)로 돌아갈 경우 신속하게 보복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게다가 러시아는 보복 수단도 확대하는 중이다. 푸틴 대통령은 현대화된 미사일 병기고를 자랑했다. Kh-47M2 킨잘 공대지 극초음속 탄도미사일(‘대거’), 사르마트 대륙간 탄도미사일(‘SS-X-30 사탄2’), 9M730 부레베스트니크 핵추진 순항미사일(‘SSC-X-9 스카이폴’), 극초음속 활강체 핵탄두(‘아방가르드’) 등이다. 이런 무기의 성능이 러시아 당국의 선전 그대로라면 미국이나 우방국 표적을 향해 발사됐을 때 요격하기가 아주 어려울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푸틴 대통령은 원자력 엔진을 장착한 수중 드론 ‘포세이돈’ 테스트가 성공적이며 포세이돈으로 무장한 첫 핵잠수함을 올봄에 진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포세이돈은 너비 2m, 길이 20m이며, 항속거리가 1만㎞이고, 해저 1000m에서 최대 100노트(시속 200㎞)의 속력으로 이동할 수 있다. 또 앞부분에 재래식 탄두는 물론 100메가톤의 핵탄두 탑재가 가능하다. 100메가톤이라면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비해 폭발력이 5000배나 강하다는 뜻이다. 뉴욕 같은 미국의 해안 주 전체를 초토화할 수 있는 위력이다.
푸틴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이전처럼 미국을 러시아의 ‘주적’으로 부르며 맹비난했다. 또 미국의 동맹국들을 돼지처럼 꿀꿀거리는 위성국이라고 조롱하며 러시아가 공격받을 경우 원점 타격만이 아니라 미사일 발사 결정을 내리는 센터(지휘부)가 위치한 지역도 공격하겠다고 경고했다. 워싱턴 D.C., 벨기에 브뤼셀, 영국 런던, 폴란드 바르샤바 등 미국과 동맹국의 수도를 완전히 파괴하겠다는 뜻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정학적인 적들을 두고 이렇게 반복했다. “그들은 계산을 잘할 수 있다. 합리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런 극초음속 무기가 미국의 영해 밖에서 발사돼 표적에 도달하는데 얼마나 걸릴지 잘 계산해보라. 가상적인 미국 미사일이 모스크바에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훨씬 짧을 것이다.”
푸틴 대통령의 이런 격분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INF를 파기하기로 결정하면서 촉발됐다. INF는 냉전이 한창이던 1987년 12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체결해 이듬해 6월 발효했다. 사거리 500∼1000㎞인 단거리와 1000∼5500㎞인 중거리 지상 발사 탄도·순항미사일의 생산과 테스트, 실전 배치를 전면 금지한 조약으로, 냉전 시대 미소 군비 경쟁을 종식하는 토대가 된 조약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가 INF에서 금지한 사거리의 신형 미사일을 배치함으로써 조약을 위반한다고 지적하며 탈퇴를 발표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지난 2월 중순 개최된 뮌헨안보회의에서 “러시아가 조약을 위반한 것은 명백하다”면서 “그러나 미국의 탈퇴가 발효될 때까지 6개월 동안 대화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미국의 INF 탈퇴 선언은 메르켈 총리가 지지한 몇 안 되는 미국 정책 중 하나였다. 기민당 대표직을 사임했고 2021년 총리직에서도 물러나는 메르켈 총리는 그 회의에서 미국의 INF 탈퇴 결정은 지지하면서도 미국의 다른 외교정책은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녀는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협정에서 탈퇴했고, 독일 자동차를 대상으로 고율의 관세 부과를 위협하고 있으며, 아프가니스탄·시리아에서 미군 철수를 갑작스럽게 발표했다고 조목조목 맹비난함으로써 참석자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회의장을 ‘트럼프 대통령 성토장’으로 만들었다.
그 회의에 참석한 미국의 전직 고위 정책입안자들 사이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조약 5조(‘한 회원국에 대한 공격은 나토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는 집단방위권 발동 규정)를 준수하지 않거나 나토에서 탈퇴할 수도 있다는 추측도 나왔다. 현실이 아니라 정당 정치에서 나온 이야기였기를 바랄 뿐이다.
뮌헨안보회의 직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열린 미국 주도의 중동 평화·안보회의에서도 유럽과 미국 사이의 깊어가는 갈등이 확연히 드러났다. 미국 대표로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참석했지만 프랑스·독일·이탈리아는 차관급 인사만 나왔다. 미국이 이 회의에서 이란을 고립시키려다가 스스로 고립당한 듯한 모습이었다. 한편 유럽도 공동 방위를 위한 비용은 충분히 대지 않으면서도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에 관여하려고 하면서 대서양 양안 관계는 더욱 경색되고 있다. 뮌헨안보회의장이 ‘트럼프 대통령 성토장’이 되면서 벌어진 미국과 유럽 동맹국 사이의 설전은 상당히 좋지 않은 시기에 터져나왔다. 러시아는 특정 상황이 되면 미국 수도 워싱턴 D.C.를 핵공격하겠다고 위협했을 뿐 아니라 내부의 반체제 세력도 미국의 ‘제5열’로 본다. 또 푸틴 대통령은 서방이 인터넷을 샅샅이 뒤지면서 러시아의 상황을 정탐한다고 비난한다. 러시아 하원은 월드와이드웹에서 벗어나 러시아의 독자적인 인터넷을 구축하기 위한 법 제정을 준비 중이다.
다른 한편으로 미국과 러시아, 유럽연합(EU)과 독일이 모두 무시하고 싶어 하는 전략적·시스템적 공동 위협도 커지고 있다. 중국의 부상을 말한다. 중국은 최근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의 실패에 어느 정도 책임이 있을지 모른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미국을 상대할 때 북한을 내세워 공격하면서도 그럴 듯한 구실을 내세워 그런 사실을 부인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래서 나는 처음부터 북미 정상회담이 잘 되지 않으리라고 예측했다. 고통스러운 무역전쟁에 휘말린 중국이 트럼프 정부에 승리를 쉽게 넘겨줄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의 잇따른 만남과 중국이 북한을 상대로 경제력을 당근과 채찍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중국이 북한을 일종의 ‘제후국’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미중 관계의 현황을 감안할 때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 문제를 만족스럽게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면 너무 순진한 생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바로 이런 순진함 덕분에 중국은 미국의 충분한 견제 없이 전 세계로 영향력을 확산할 수 있다.
지난 2월 초 싱가포르국립대학 중동연구소 컨퍼런스에서 전문가들은 미얀마·스리랑카부터 지부티·두바이까지 넓은 지역에서 전략적 영향력을 확립하려는 중국의 원대한 계획을 분석했다. 중국의 대규모 항만·철도 건설 프로젝트의 표적은 파키스탄의 항구도시 과다르(중국 북서부 신장 위구르자치구와 과다르항을 철도·도로·송유관 등으로 연결할 계획이다)만이 아니라 이집트·이스라엘·그리스·체코도 포함한다. 중국 정부의 신(新)실크로드 전략 구상인 ‘일대일로’는 우리가 아는 기존의 세계를 새롭게 뜯어고칠 태세다. 중국은 아프리카의 최대 무역 파트너다. 또한 페르시아만 지역의 최대 투자국으로서 아랍에미리트를 대체했다. 중동 석유와 천연가스에 대한 미국의 관심이 줄어들면서 에너지에 굶주린 중국이 그 공백을 메우고 있다. 아울러 대영제국과 미국의 역사를 돌이켜볼 때 ‘상인’의 뒤를 ‘군인’이 따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대판 제국이 탄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중국은 무역·투자·금융·안보·인프라·관광 등 국가의 모든 수단을 총동원한다. 흔히 비유되듯이 중국은 ‘바둑을 둔다’고 말할 수 있다. 비교적 단선적이며 간단한 전술적인 사고가 필요한 체스와 달리 바둑은 인내심을 갖고 오랜 시간에 걸쳐 최대한의 영토를 확보하는 복잡한 전략 게임이다. 중국 공산당 정부는 적어도 50년에 걸친 시간표에 따라 차근차근 행동하고 있다. 반면 미국 정부는 각각 동상이몽을 가진 일본-호주-대만(어쩌면 인도도 포함)의 임시적인 연합을 구축하려는 연약한 시도로 대응한다. 기껏해야 중국을 짜증나게 만드는 산발적인 군사적 대응이 대부분이다.
뮌헨안보회의의 미국-독일 로이자흐 그룹 전략 미팅에서 유럽이 미국 편에 설지 그 반대편에 설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현재로선 트럼프 대통령은 프랑스와 독일이 미국의 동맹국인지조차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미국과 유럽은 협력을 한층 더 강화하는 동시에 양측 모두 중국의 도전에 적극 맞설 필요가 있다. 러시아는 서방과 연합전선을 펼칠지, 독자적으로 중국에 맞설지 선택해야 한다. 중국보다 인구가 9배나 적고 국내총생산(GDP)이 10배나 적으며 4200㎞의 국경을 중국과 맞대고 있는 러시아로선 중국을 혼자서 감당하긴 벅찰지 모른다. 게다가 푸틴 대통령은 미국 혐오증에 사로잡힌 나머지 터무니없게도 자원에 굶주린 이웃나라 중국에 러시아를 기꺼이 넘겨줄 생각인 듯하다.
미국과 유럽의 공동 위협 평가와 전략 조정, 정치적·군사적 협력이 없다면 중국은 21세기 하반기의 세계 최 강대국이 될 것이다. 너무나 뻔한 일이라 미국과 유럽의 정치인과 지도자들은 사후에 그렇게 될 줄 몰랐다고 발뺌할 여지가 없다.
- 에어리얼 코언
※ [필자는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선임연구원이며 국제조세투자센터(ITIC) 에너지·성장·안보 프로그램 국장이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제조업 자동화’ 가늠자 ‘로봇 밀도’...세계 1위는 韓
2영풍, 고려아연에 배당금만 1조1300억 수령
3KT, 1.6테라 백본망 실증 성공...“국내 통신사 최초”
4'윤여정 자매' 윤여순 前CEO...과거 외계인 취급에도 '리더십' 증명
5‘살 빼는 약’의 반전...5명 중 1명 “효과 없다”
6서울 ‘마지막 판자촌’에 솟은 망루...세운 6명은 연행
7겨울철 효자 ‘외투 보관 서비스’...아시아나항공, 올해는 안 한다
8SK온, ‘국내 생산’ 수산화리튬 수급...원소재 조달 경쟁력↑
9‘국내산’으로 둔갑한 ‘중국산’...김치 원산지 속인 업체 대거 적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