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재가 만난 사람(20)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 톱다운 방식으로 기업을 혁신하라
[이필재가 만난 사람(20)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 톱다운 방식으로 기업을 혁신하라
리스크 크고 장애물 많아 힘 실어줘야... 창업 오너는 혁신, 전문경영인은 효율 추구 “시장에서의 성공은 오직 혁신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습니다. 성장이야 모방을 통해서도 할 수 있죠. 우리나라가 바로 모방을 통한 성장의 모범생이었죠.”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은 “모방을 통해서는 2등만 가능하다”고 단언했다. “혁신은 지금 시장에 없는 니즈, 없는 산업을 창출하는 겁니다. 미래의 시장을 앞당겨 눈앞에 실현하는 거예요. 그렇기에 혁신을 하면 시장 1등이 가능합니다.”
그는 글로벌 1위가 되기 위해 창업을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주성엔지니어링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태양전지 제조장비 분야에서 18개의 제품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세미배치형 ALD(원자층증착기)(2004년), LCD용 PE CVD(화학기상증착장비)(2005년)가 세계 일류 상품에 선정됐고, 세미배치형 사이클론 플러스(2006년), 세계 최고 효율의 박막태양전지(2009년)는 대한민국 10대 신기술에 선정됐다. “창업 초기부터 모방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혁신에 ‘몰빵’했어요.” 주성엔지니어링의 핵심 역량도 혁신이다. 구성원의 DNA 역시 혁신 마인드다. 이들의 명함 뒷면엔 ‘세계 1위 기술, 세계 유일의 혁신’이라고 영어로 적혀 있다. ‘혁신 전도사’라는 별명으로 통하는 황 회장은 구성원들을 ‘선수’라고 호칭했다. “발상은 세계 최초로, 일은 세계 1등으로 하라고 선수들에게 아침마다 강조합니다. 그런데 혁신은 마음먹으면 할 수 있어도 혁신으로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는 건 맘대로 안 돼요. 경쟁사보다 성공의 기회가 더 많을 뿐이죠. 우리의 혁신이 고객의 신뢰와 만나야 시장에서의 성공을 이룰 수 있습니다.”
혁신을 하는 주체는 생산자이지만 해당 혁신에 보내는 신뢰의 주체는 고객사이기 때문이다. 그가 창업 4년 만에 반도체 전공정 장비를 개발했을 때의 일이다. 한국에서 만든 건 나사못도 반도체 장비에 쓸 수 없다는 게 당시 업계 분위기였다. 무명의 주성이 삼성에 납품을 한다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그는 글로벌 시장점유율 1위였다가 경쟁사에 시장을 빼앗긴 미국 회사를 찾아갔다. “우리가 개발한 제품과 당신네 회사의 기술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그 회사가 주성의 기술을 평가한 후 자금을 대줬다. 마침내 삼성의 반도체 양산라인에 그 회사 이름으로 제품을 공급할 기회가 왔다. 그런데 주성 제품 탓에 높아진 단가가 변수가 됐다. 삼성 측은 “아직은 이 제품을 받을 때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한 달만 시간을 달라고 말했다. 그 후 다른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제품을 개조했다. 그로부터 한 달, 당시 디램 업계에서 가장 필요로 한 고난도의 기술을 현장에서 보여줬다. 가장 중요한 공정에서 최선의 결과를 시연했다. 그 기술이면 생산성을 2~3배 높일 수 있었다. “미국 회사의 이름으로 들어가, 단가를 낮춘 게 아니라 되레 성과를 보여줘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킨 셈이죠. 그 후 삼성에 이어 LG와 현대에도 수요량의 100%를 공급했어요. 주성의 기술 혁신과 미국 회사가 쌓은 신뢰가 융합해 이룩한 결과입니다.”
당시 한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고 세계가 놀랐다. 황 회장은 지금까지 세상에 없던 혁신적인 제품에 대해 현재 주요 고객이 누구냐고 묻고 시뮬레이션 결과를 요구하는 건 넌센스라고 말했다. “뭘 믿고 혁신적인 제품을 사느냐고 하는데, 회사의 규모를 떠나 혁신을 통해 성공을 거둔 기업은 그런 요구를 하지 않습니다. 혁신은 말 그대로 없던 것이 새로 태어나는 거예요. 혁신은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떨어지고 반대로 혁신적 기술·제품에 대한 신뢰는 높아지죠. 혁신과 신뢰는 이렇게 같은 시공에 머물 수가 없어요. 혁신의 또 다른 리스크죠.”
산업이 어려워지고 이익률이 급락할 때 그래서 기득권이 위협받을 때에 오히려 혁신이 빛을 발하는 배경이다. 위기의 기업으로서는 혁신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자멸할 것인가 기로에 서기 때문이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지난해 매출액(2640억원, 영업이익 414억원)의 18.5%를 연구·개발(R&D)에 썼다. 경기가 안 좋아 매출액보다 많은 돈을 R&D에 쏟아부은 해도 있다. 혁신은 R&D에서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회사는 2000여 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R&D 종사 인력은 전 구성원의 45%를 차지한다.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회사 건물 여덟 동 중 여섯 동이 R&D 팹이다. 나머지 두 개의 생산 동도 절반은 R&D용 공간으로 쓴다. 연구동을 현재 신갈에 짓고 있는 R&D센터로 옮기려는 것도 R&D 기능을 집결하기 위해서다.
황 회장은 “우리나라가 모방을 통한 성장의 한계에 봉착했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추격형 경제로 1인당 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진입한 겁니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쓰러지는 외발자전거의 페달을 열심히 밟아 패스트 팔로우어로서 넘어지지 않고 여기까지 왔어요. 그런데 이제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으면 5만 달러 시대를 절대 열 수 없습니다. 페달을 더 빨리 밟을 게 아니라 승용차든, 경비행기든 갈아타야 합니다. 혁신을 발판으로 퍼스트 무버가 돼야죠.” 그는 혁신이란 완벽한 게 아니라고 말했다. 기술은 물론 지식도, 아니 사람도 미완의 존재라고 주장했다. “혁신은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일 뿐입니다. 어느 시점의 특정한 환경에서 이기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거죠. 완벽한 게 아니니 리스크가 따릅니다. 완성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알 수 없죠. 그래서도 ‘신뢰할 만한 혁신’이란 일종의 형용모순이라고 할 수 있어요. 특히 벤처캐피털은 신뢰를 요구해선 안 됩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창업 오너들이 혁신에 강할 수밖에 없다. 창업 오너가 경영하는 회사들도 몸집이 커지면 혁신이 일어나기 어렵다. 기득권이 혁신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혁신은 기본에서 출발한다. 탄탄한 기본이야말로 혁신의 원천이다. 반도체 장비로 시작한 주성은 반도체 원천 기술로 디스플레이에 도전했다. 이어서 태양광 사업에 진출했다. 디스플레이는 전기를 빛으로, 태양광은 빛을 전기로 바꾸는 기술이다. 황 회장은 “결국 뒤집으면 이 둘은 같은 기술”이라고 말했다. “바로 이 사소한 착안에서 우리 회사의 혁신이 시작됐습니다. 어쨌거나 뒤집으면 된다는 건 알아야 그래야 뒤집을 생각도 하게 되죠.”
그는 혁신이 성공하려면 구성원들의 공감과 협력, 참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혁신의 효과와 필요성에 대해 구성원들에게 반복해서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혁신의 마인드로 구성원들을 무장시켜야 한다고 했다. “혁신도, 성공도 어쩌면 행복감도 찰나적인 것이라고 봅니다. 혁신의 효과는 영속하지 않습니다. 성공처럼, 일시적인 차별화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성공의 과실이 그렇듯이 시간이 흐르면 물거품처럼 사라지죠. 성공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표를 세운 후 목표 달성을 위해 고통을 감내해야 하죠. 성공의 확률은 그 고통의 크기에 비례합니다. 그런데 막상 성공을 하고 나면 그때부터 성공의 그늘에 안주하게 됩니다. 기득권과 고정관념이 생기고 이들이 혁신을 가로막죠. 성공의 저주라고 할까요?”
그는 혁신은 톱다운 방식으로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힘들고 무엇보다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또 머리 좋고 스펙도 좋은 전문경영인보다는 창업 오너가 하기에 적합하다. “경영 자체가 이익은 극대화하고 손해는 최소화하는 활동입니다. 반면 창업은 계산기 두드려 보고 하는 게 아닙니다. 결과도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둘 중 하나죠.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현대의 정주영, 포스코의 박태준 같은 창업주들은 계산을 하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창업은 망할 각오로 성공하려 하는 거고 경영은 이익을 극대화하는 거예요.”
창업 오너는 혁신을, 전문경영인은 아무래도 효율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는 창업의 3요소로 절박함, 기업가정신, 장인정신을 꼽았다. 기업가정신이 퇴색한 건 희망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거대 기업의 경우 3, 4세 시대가 열린 것과도 관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기업가정신은 시대에 따라 달라져야 합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신경영은 혁신의 좋은 예죠. 혁신은 절실한 열망에서 나오는 몰입이고 집중입니다. 무엇보다 스피드가 중요하죠. 가장 먼저 하면 혁신이지만 2위부터는 모방입니다.”
그는 리더란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제대로 결정하기 위해 그는 결재의 80%는 현장에서 한다. 주성도 2013년 중국의 태양광 시장에 진출했다 연간 1500억원의 적자를 냈다. 그때 집까지 담보로 제공하고 유상증자를 해 위기를 넘겼다. “기술력은 자신이 있었기에 회사를 매각하지 않았습니다.”
정부의 역할은 무엇일까? 그는 대기업은 감시하고 중소기업은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혁신이 활발하게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대기업의 기술 탈취는 징벌적인 페널티를 물려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은 집안의 큰아들 같은 존재입니다. 정경유착 등 나쁜 짓만 하지 않는다면 푸시하거나 팔을 비틀 필요 없죠.”
사실 혁신은 기업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기술도 교육도 정치, 나아가 예술도 혁신을 필요로 한다. “국토가 전 세계의 0.07%, 인구가 0.7%에 불과한 우리나라는 지하자원도 별로 없지만 기득권이 없습니다. 그러니 부지런히 혁신을 해야죠. 전 사회적으로 혁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지속적으로 일어나도록 혁신을 보호해야 합니다. 글로벌 1위는 개인이나 일개 기업이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국가의 몫이에요. 1등이 독식하는 시대 정부가 이런 고민을 좀 해야 합니다. 산업별로 초기 시장을 선점하면 무한대에 가까운 이익을 노릴 수 있어요.” 그는 구체적으로 규제를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바꾸고 규제의 필요성 내지는 효과가 불확실할 땐 기업이 공탁금을 걸고 나중에 그 돈으로 피해를 보상토록 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나라가 뒤처지지 않으려면 전 사회적으로 혁신이 활발히 일어나는 한편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축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혁신과 신뢰를 바탕으로 전 산업에 걸쳐 융합과 협력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는 10년 후 시장을 내다보고 기술을 개발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LG 등을 쫓아가는 게 아니라 먼저 개발한다. 그런데도 주성은 글로벌 플레이어에 비해, 기술력은 뒤지지 않지만 시장점유율은 많이 떨어진다. 어떻게 해야 격차를 줄일 수 있을까? “혁신이 시장에서 작동할 때까지 기다리는 중입니다. 어쩌면 산업 내에서 기득권이 사라지는 세대교체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몰라요.”
주성은 해외 공장이 없다. 그는 기술력을 높게 유지하면 코스트 경쟁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코스트 경쟁을 하느라 유목민 캠프처럼 생산기지를 옮기는 겁니다. 기술 우위를 점하고 있으면 나갈 필요 없어요. 그러나 언젠가 우리도 시장을 보고 나갈 수는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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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글로벌 1위가 되기 위해 창업을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주성엔지니어링은 반도체, 디스플레이, 태양전지 제조장비 분야에서 18개의 제품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세미배치형 ALD(원자층증착기)(2004년), LCD용 PE CVD(화학기상증착장비)(2005년)가 세계 일류 상품에 선정됐고, 세미배치형 사이클론 플러스(2006년), 세계 최고 효율의 박막태양전지(2009년)는 대한민국 10대 신기술에 선정됐다. “창업 초기부터 모방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부터 혁신에 ‘몰빵’했어요.”
모방만으로는 2등까지만 가능
혁신을 하는 주체는 생산자이지만 해당 혁신에 보내는 신뢰의 주체는 고객사이기 때문이다. 그가 창업 4년 만에 반도체 전공정 장비를 개발했을 때의 일이다. 한국에서 만든 건 나사못도 반도체 장비에 쓸 수 없다는 게 당시 업계 분위기였다. 무명의 주성이 삼성에 납품을 한다는 건 언감생심이었다. 그는 글로벌 시장점유율 1위였다가 경쟁사에 시장을 빼앗긴 미국 회사를 찾아갔다. “우리가 개발한 제품과 당신네 회사의 기술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 그 회사가 주성의 기술을 평가한 후 자금을 대줬다. 마침내 삼성의 반도체 양산라인에 그 회사 이름으로 제품을 공급할 기회가 왔다. 그런데 주성 제품 탓에 높아진 단가가 변수가 됐다. 삼성 측은 “아직은 이 제품을 받을 때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는 한 달만 시간을 달라고 말했다. 그 후 다른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제품을 개조했다. 그로부터 한 달, 당시 디램 업계에서 가장 필요로 한 고난도의 기술을 현장에서 보여줬다. 가장 중요한 공정에서 최선의 결과를 시연했다. 그 기술이면 생산성을 2~3배 높일 수 있었다. “미국 회사의 이름으로 들어가, 단가를 낮춘 게 아니라 되레 성과를 보여줘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킨 셈이죠. 그 후 삼성에 이어 LG와 현대에도 수요량의 100%를 공급했어요. 주성의 기술 혁신과 미국 회사가 쌓은 신뢰가 융합해 이룩한 결과입니다.”
당시 한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고 세계가 놀랐다. 황 회장은 지금까지 세상에 없던 혁신적인 제품에 대해 현재 주요 고객이 누구냐고 묻고 시뮬레이션 결과를 요구하는 건 넌센스라고 말했다. “뭘 믿고 혁신적인 제품을 사느냐고 하는데, 회사의 규모를 떠나 혁신을 통해 성공을 거둔 기업은 그런 요구를 하지 않습니다. 혁신은 말 그대로 없던 것이 새로 태어나는 거예요. 혁신은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떨어지고 반대로 혁신적 기술·제품에 대한 신뢰는 높아지죠. 혁신과 신뢰는 이렇게 같은 시공에 머물 수가 없어요. 혁신의 또 다른 리스크죠.”
산업이 어려워지고 이익률이 급락할 때 그래서 기득권이 위협받을 때에 오히려 혁신이 빛을 발하는 배경이다. 위기의 기업으로서는 혁신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자멸할 것인가 기로에 서기 때문이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지난해 매출액(2640억원, 영업이익 414억원)의 18.5%를 연구·개발(R&D)에 썼다. 경기가 안 좋아 매출액보다 많은 돈을 R&D에 쏟아부은 해도 있다. 혁신은 R&D에서 나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회사는 2000여 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R&D 종사 인력은 전 구성원의 45%를 차지한다. 경기도 광주시에 있는 회사 건물 여덟 동 중 여섯 동이 R&D 팹이다. 나머지 두 개의 생산 동도 절반은 R&D용 공간으로 쓴다. 연구동을 현재 신갈에 짓고 있는 R&D센터로 옮기려는 것도 R&D 기능을 집결하기 위해서다.
황 회장은 “우리나라가 모방을 통한 성장의 한계에 봉착했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추격형 경제로 1인당 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진입한 겁니다. 앞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쓰러지는 외발자전거의 페달을 열심히 밟아 패스트 팔로우어로서 넘어지지 않고 여기까지 왔어요. 그런데 이제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으면 5만 달러 시대를 절대 열 수 없습니다. 페달을 더 빨리 밟을 게 아니라 승용차든, 경비행기든 갈아타야 합니다. 혁신을 발판으로 퍼스트 무버가 돼야죠.”
R&D 종사 인력이 전체의 45% 차지
이런 환경에서는 창업 오너들이 혁신에 강할 수밖에 없다. 창업 오너가 경영하는 회사들도 몸집이 커지면 혁신이 일어나기 어렵다. 기득권이 혁신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혁신은 기본에서 출발한다. 탄탄한 기본이야말로 혁신의 원천이다. 반도체 장비로 시작한 주성은 반도체 원천 기술로 디스플레이에 도전했다. 이어서 태양광 사업에 진출했다. 디스플레이는 전기를 빛으로, 태양광은 빛을 전기로 바꾸는 기술이다. 황 회장은 “결국 뒤집으면 이 둘은 같은 기술”이라고 말했다. “바로 이 사소한 착안에서 우리 회사의 혁신이 시작됐습니다. 어쨌거나 뒤집으면 된다는 건 알아야 그래야 뒤집을 생각도 하게 되죠.”
그는 혁신이 성공하려면 구성원들의 공감과 협력, 참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혁신의 효과와 필요성에 대해 구성원들에게 반복해서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혁신의 마인드로 구성원들을 무장시켜야 한다고 했다. “혁신도, 성공도 어쩌면 행복감도 찰나적인 것이라고 봅니다. 혁신의 효과는 영속하지 않습니다. 성공처럼, 일시적인 차별화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성공의 과실이 그렇듯이 시간이 흐르면 물거품처럼 사라지죠. 성공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표를 세운 후 목표 달성을 위해 고통을 감내해야 하죠. 성공의 확률은 그 고통의 크기에 비례합니다. 그런데 막상 성공을 하고 나면 그때부터 성공의 그늘에 안주하게 됩니다. 기득권과 고정관념이 생기고 이들이 혁신을 가로막죠. 성공의 저주라고 할까요?”
그는 혁신은 톱다운 방식으로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힘들고 무엇보다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또 머리 좋고 스펙도 좋은 전문경영인보다는 창업 오너가 하기에 적합하다. “경영 자체가 이익은 극대화하고 손해는 최소화하는 활동입니다. 반면 창업은 계산기 두드려 보고 하는 게 아닙니다. 결과도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둘 중 하나죠. 삼성의 이병철, LG의 구인회, 현대의 정주영, 포스코의 박태준 같은 창업주들은 계산을 하지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창업은 망할 각오로 성공하려 하는 거고 경영은 이익을 극대화하는 거예요.”
창업 오너는 혁신을, 전문경영인은 아무래도 효율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는 창업의 3요소로 절박함, 기업가정신, 장인정신을 꼽았다. 기업가정신이 퇴색한 건 희망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거대 기업의 경우 3, 4세 시대가 열린 것과도 관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기업가정신은 시대에 따라 달라져야 합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의 신경영은 혁신의 좋은 예죠. 혁신은 절실한 열망에서 나오는 몰입이고 집중입니다. 무엇보다 스피드가 중요하죠. 가장 먼저 하면 혁신이지만 2위부터는 모방입니다.”
그는 리더란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제대로 결정하기 위해 그는 결재의 80%는 현장에서 한다. 주성도 2013년 중국의 태양광 시장에 진출했다 연간 1500억원의 적자를 냈다. 그때 집까지 담보로 제공하고 유상증자를 해 위기를 넘겼다. “기술력은 자신이 있었기에 회사를 매각하지 않았습니다.”
정부의 역할은 무엇일까? 그는 대기업은 감시하고 중소기업은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혁신이 활발하게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대기업의 기술 탈취는 징벌적인 페널티를 물려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은 집안의 큰아들 같은 존재입니다. 정경유착 등 나쁜 짓만 하지 않는다면 푸시하거나 팔을 비틀 필요 없죠.”
사실 혁신은 기업가의 전유물이 아니다. 기술도 교육도 정치, 나아가 예술도 혁신을 필요로 한다. “국토가 전 세계의 0.07%, 인구가 0.7%에 불과한 우리나라는 지하자원도 별로 없지만 기득권이 없습니다. 그러니 부지런히 혁신을 해야죠. 전 사회적으로 혁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지속적으로 일어나도록 혁신을 보호해야 합니다. 글로벌 1위는 개인이나 일개 기업이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국가의 몫이에요. 1등이 독식하는 시대 정부가 이런 고민을 좀 해야 합니다. 산업별로 초기 시장을 선점하면 무한대에 가까운 이익을 노릴 수 있어요.”
리더는 올바른 판단·결정 하는 사람
그는 10년 후 시장을 내다보고 기술을 개발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삼성·LG 등을 쫓아가는 게 아니라 먼저 개발한다. 그런데도 주성은 글로벌 플레이어에 비해, 기술력은 뒤지지 않지만 시장점유율은 많이 떨어진다. 어떻게 해야 격차를 줄일 수 있을까? “혁신이 시장에서 작동할 때까지 기다리는 중입니다. 어쩌면 산업 내에서 기득권이 사라지는 세대교체 때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몰라요.”
주성은 해외 공장이 없다. 그는 기술력을 높게 유지하면 코스트 경쟁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코스트 경쟁을 하느라 유목민 캠프처럼 생산기지를 옮기는 겁니다. 기술 우위를 점하고 있으면 나갈 필요 없어요. 그러나 언젠가 우리도 시장을 보고 나갈 수는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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