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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한국경제와 함께해 온 ‘이코노미스트’ 40년

노벨 경제학상 새뮤얼슨, 1984년 창간호서 “이코노미스트 성공 기원”
1997년 태국 위기 진단 先보도, 결국 IMF 구제 신청 나와
2022년 6월, KG그룹 인수 뒤 새출발 알려

[이코노미스트 이용우 기자] “나는 한국의 새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의 성공을 마음속 깊이 빈다. 제명(題名)에서 보는 것처럼 새로운 전통을 창조하길 바란다. 지금은 경제저널리즘의 새 장을 여는 데 정열을 쏟을 아주 좋을 때다. 성공을 빈다.” 

이코노미스트는 격동의 한국경제와 함께 했다. 역사의 과정을 기록했고, 그 기록들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예고하고 있다. 그 시작점에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앤서니 새뮤얼슨이 위와 같은 한 편의 글을 전달했다. 1984년, 한국 이코노미스트 창간을 기념한 그는 이 창간을 ‘경제 저널리즘의 새 장을 여는 것’이라고 지칭했고, 성공을 기원한다고 했다. 이렇게 시작한 이코노미스트에는 한국경제의 역사가 차곡차곡 담기고 있다. 

▲ 이코노미스트 창간 40주년 축사



“경제현상·이론도 재미있게 전달할 것”

2024년 4월 22일 자 이코노미스트(왼쪽)와 1984년 4월 5일 자 이코노미스트 표지. [사진 이용우 기자/ 자료 국회도서관]

창간사에는 의외의 단어가 등장한다. ‘즐거움’이다. 당시 이코노미스트는 ‘창간에 즈음하여’ 제목의 창간사에서 “이코노미스트는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라고 밝혔다. 오직 국가번영과 경제발전을 이야기하던 당시의 무거운 시대상에서 ‘재미’를 찾아 전달하겠다는 것은 새로운 시도였음에 틀림없다. 당시 창간사에 다음과 같이 적혔다.

“흔히 경제하면 이해하기 어렵고 경제기사 하면 딱딱하다고 여깁니다. 때문에 경제 소식을 알고 싶어 하는 국민도 이를 외면하는 수가 허다합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 같은 폐단을 불식하고 아무리 복잡한 경제 현상이나 경제이론이라도 쉽고 재미있게 풀이해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교양을 쌓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외국에서 새뮤얼슨이 기고문을 전달했다면, 국내에선 최창락 15대 한국은행 총재가 인터뷰에 나섰다. 그는 전두환 정권에서 통화정책의 집행 권한을 정부가 아닌 한은으로 가져오자고 주장하며 역사의 한 면을 장식한 인물이다. 그는 창간 인터뷰 말미에 “중앙은행의 감독 기능도 중요하지만 자율적 책임경영을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최 전 총재는 이코노미스트를 통해 한은의 자율성, 즉 독립적 통화정책의 시작을 알렸다. 

한발 앞서 외환위기 예고

이코노미스트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에서도 빛을 발했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은 1997년 11월 10일에 이뤄진 강경식 경제부총리와의 통화 이전까지도 닥쳐올 외환위기의 심각성을 몰랐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코노미스트는 이미 11월 4일 “태국의 경제회생대책 ‘약효’ 의문” 제목의 기사를 독점 게재했다. 태국 정부의 경제 회생을 위한 종합대책이 미흡하다는 내용이다. 태국의 외환 반출 등 위기가 여전하다는 것을 전했고, 그렇게 태국에서 발원한 금융위기 태풍은 동남아 국가들을 거쳐 한국을 강타했다. 정부는 1997년 12월 3일 IMF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IMF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중요 내용도 이코노미스트에 담겼다. 당시 이코노미스트는 한 재벌그룹 관계자의 전언이라며 “김(대중) 대통령은 경제회생이 절대적 과제지만 재벌기업에 대한 지원으로 이를 달성할 생각은 전혀 없다. 즉 재벌기업을 특혜 지원해 수출을 늘려 달러를 벌어들여야 하는 방안과 외국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해 생산과 고용을 창출하는 것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면 후자를 택한다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재벌 특혜는 없고 정부가 재벌 문제에 ‘관여’하고 ‘시정’할 것이란 분석이다. 이렇게 IMF 이후 재벌 중심의 사회는 오히려 다소나마 약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1984년 5월 5일 자 이코노미스트에 담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인터뷰. [사진 이용우 기자/ 자료 국회도서관]
1999년 11월 30일 자 이코노미스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고별서한. [사진 이용우 기자/ 자료 국회도서관]

한 획을 긋고 사라진 기업인도 있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그런 인물이다. 김 회장은 1984년 이코노미스트 제5호 ‘커버스토리’ 인터뷰에서 “나는 없어지더라도 대우재단의 이름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김 회장은 한국 최대의 종합무역상사를 비롯, 자동차·중공업·전자 등 25개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 총수였고 나이는 48세에 불과했다. 

잘 나가던 대우는 급작스러운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이코노미스트는 김 회장의 퇴진과 관련해 1999년 8월 3일 “대우의 위기는 ‘김우중의 실패’”라고 명명했다. 또 대우그룹 여신만 당시 기준으로 49조3000억원, 담보부족액은 7조5000억원에 달했다고 전하면서 “언제 은행들이 대우의 재무제표를 보고 돈을 빌려줬냐”라는 김 회장의 말에 주목했다. 이 말이 ‘제2의 금융위기’ 불안감을 키운, 잘 알려지지 않은 대우사태의 또 다른 진원지였던 것이다. 그렇게 샐러리맨의 우상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곽재선 KG그룹 회장 “세상을 올바르고 따뜻하게”

2022년 6월 13일 이데일리M으로 새 출발을 알린 이코노미스트와 일간스포츠. [사진 김민규 기자]

이코노미스트는 창간 후 격주로 발행됐다. 1994년 10월 5일부터는 주 단위로 발행하며 주간지 면모를 갖췄다. 이후 큰 변화 없이 경제주간지로 운영된 뒤 2021년 3월 말 온라인 전환에 나섰다. 주간지를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매일 기사를 제공하는 온라인 체계를 갖추게 됐다. 더 이상 종이 매체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는 언론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그 결과 지금은 국내 주요 포털사이트인 네이버의 뉴스콘텐츠 제공(CP)사로 100만 구독자를 확보한 온오프라인 경제 미디어로 성장했다.

이코노미스트는 2022년 6월 13일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중앙그룹으로부터 KG그룹에 인수되며 이데일리 자매사 이데일리M에 ‘일간스포츠’와 함께 편입됐다. 곽재선 KG그룹 회장은 이날 이데일리M 출범식에서 “성냥 하나라도 켜는 것이 언론계 종사자들의 제 역할이다. 세상을 올바르게 세상을 따뜻하게 만들어가자”고 했다.

이코노미스트는 2023년부터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CEO가 머무는 공간을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CEO의 방’이라는 의미의 ‘C-스위트’(C-SUITE)는 업무를 보는 집무실이라는 의미를 넘어 영감을 얻고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경영자의 창의적 공간을 말한다. 2023년엔 윤동한 한국콜마 회장, 윤홍근 제너시스BBQ 회장, 허연수 GS리테일 부회장 등 CEO 44인의 인터뷰를 진행했으며, 올해 창간 40주년을 맞아 ‘CEO의 방’을 책으로 출간했다. 

이코노미스트 1734호 표지. [사진 김현준 디자이너]

▲ 이코노미스트 창간 40주년 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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