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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대선 ‘대통령보다 코미디언’

우크라이나 대선 ‘대통령보다 코미디언’

1차 투표에서 압도적 1위 차지한 TV 스타 젤렌스키, 포로셴코 대통령과 결선에서 맞붙는다
코미디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후보(왼쪽 사진)가 4월 21일 결선 투표에서 페트로 포로셴코 현 대통령과 대결한다. / 사진:REUTERS/YONHAP, AP/YONHAP
지난 3월 31일 실시된 우크라이나 대통령선거 1차 투표에서 정치 신인이 돌풍을 일으켰다. 출구조사에 따르면 정치 경험이라곤 TV 드라마에서 대통령을 연기한 것밖에 없는 코미디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41) 후보가 페트로 포로셴코 현 대통령과 율리아 티모셴코 전 총리를 큰 격차로 따돌리고 득표율 30.4%로 1위를 차지했다. 포로셴코 대통령이 17.8%로 2위, 티모셴코 전 총리가 14.2%를 얻어 3위를 차지했다.

우크라이나 선거법에 따르면 1차 투표에서 50% 이상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상위 득표자 2명이 2차 결선투표를 치러 다수 득표자가 당선된다. 이에 따라 젤렌스키 후보는 포로셴코 대통령과 함께 오는 4월 21일 치러지는 결선 투표에서 맞붙는다.

젤렌스키 후보는 지지자들에게 “매우 기쁘다”며 투표 결과에 만족을 표하면서도 결선 투표 때까지 선거전은 계속될 것이라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1차 투표는 위대한 승리로 가는 첫 단계일 뿐이다.” 한편 포로셴코 대통령은 이 결과를 두고 “매서운 교훈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이번 투표는 2014년 친러시아 대통령 빅토르 야누코비치를 축출함으로써 우크라이나의 진로를 바꾼 친서방 운동 이래 처음 치러지는 대통령선거다. 당시 유로마이단 혁명(유럽과의 통합을 주장한 반정부 시위)으로 포로셴코가 대통령에 올랐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일부 국민은 정부의 부패가 여전하다는 인식에다 지켜지지 않은 약속으로 환멸을 느낀다.

최근 포로셴코 대통령의 측근인 국방위원회 부의장의 아들이 러시아에서 밀수한 부품을 우크라이나 방산 업체에 매우 비싼 가격에 판매한 혐의로 고발된 스캔들까지 터지면서 만연한 부패에 대한 국민의 우려는 더 커졌다. 또 우크라이나는 현재 러시아와 전쟁 중이다. 러시아는 ‘돈바스’로 알려진 우크라니아 동부 지역에서 친러시아 분리주의 세력을 지원한다. 이 내전으로 지금까지 약 1만3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게다가 이번 선거에 러시아가 개입하려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올렉산드르 본다렌코(28)는 알자지라 방송에 자신은 이번 투표에서 티모셴코 전 총리를 찍었다며 “포로셴코 대통령을 하야시켜야 하기 때문에 이번 선거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정책으로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특히 부패가 큰 문제다.”

그러나 현 대통령 지지를 고수해야 한다는 유권자도 있다. 테티아나 보리아크(37)는 알자지라 방송에 “다른 후보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협상을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러시아에 저항할 수 있는 후보는 포로셴코 대통령뿐이다.”

일부 유권자는 젤렌스키 후보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고 푸념했다. 이번에 처음 투표한 18세 청년은 미국의 온라인 뉴스매체 폴리티코에 “젤렌스키 후보는 광대일 뿐”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진정으로 생각해보면 포로셴코 대통령만이 우크라이나에 안정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본다.”

이번 선거의 승자는 많은 난제와 씨름해야 한다. 우선 동부에서 지속되는 내전에서 분리주의 반군을 지원하는 러시아에 맞서야 한다. 또 다수의 우크라이나인이 개선을 원하는 유럽연합(EU)·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의 미래 관계도 이끌어야 한다. 경제 문제도 심각하다.

미국 워싱턴 D.C. 소재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우크라이나 전문가 멜린다 헤어링 연구원은 이번 선거가 우크라이나 경제의 미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크라이나는 경제성장률이 2~3%다. 성장하고는 있지만 상당히 느리다. 우크라이나 경제가 폴란드 수준에 이르려면 이 속도로 50년이 걸릴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임금이 너무 낮다는 우려가 많고 일상적인 생활수준이 나아질 수 있는지 걱정도 크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다.”헤어링 연구원은 신임 대통령이 가장 먼저 당면할 문제가 국제통화기금(IMF)과 다시 협상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는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 시절 받은 막대한 차관을 상환할 시점에 이르렀다. 또 IMF의 더 많은 차관이 필요하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해리먼연구소의 동유럽 전문가인 엘리스 줄리아노 교수는 우크라니아 유권자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낮은 생활수준과 부패라고 설명했다. “포로셴코 대통령이 2014년 유로마이단 혁명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부패 척결에 실패했다는 실망이 우크라이나 국민 사이에서 매우 크다. 그래서 1차 투표 결과 포로셴코 대통령의 득표율이 젤렌스키 후보보다 크게 뒤졌다. 젤렌스키 후보는 정치 경험이 전혀 없고 코미디언인데도 말이다.” 줄리아노 교수는 또 “젤렌스키 후보의 정치 프로그램은 모호하지만 적어도 그는 유권자에게 비현실적인 약속은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젤렌스키 후보를 정치 신예로 만든 것은 TV 드라마 ‘국민의 종(Servant of the People)’이었다. 평범한 역사 교사에서 정부의 비리에 염증을 느끼고 정직한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과정을 그린 이 드라마는 정부와 정치에 대한 신랄한 풍자로 큰 인기를 끌었다. ‘국민의 종’은 2015년 첫 방송 이후 무려 5년째 새로운 시리즈가 나오는 우크라이나 국민 드라마다.

그러나 일각에선 젤렌스키 후보가 이스라엘에 망명 중인 반정부 성향의 우크라이나 신흥재벌 이호르 콜로모이스키와 너무 긴밀한 관계라고 비판한다. 콜로모이스키는 그의 드라마를 방송하는 TV 채널 ‘1+1’을 소유한다. 그래서 젤렌스키를 콜로모이스키가 내세운 후보라고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실제로 젤렌스키는 채널 ‘1+1’을 통해 지난해 12월 31일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미국에서 우크라이나에 관한 책과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안드레아 찰루파는 “TV 스타가 차기 대통령에 선출된다면 콜로모이스키가 그를 이용하거나 거꾸로 젤렌스키가 콜로모이스키를 이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린 지금 미국에서 정치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TV 스타가 국내외적으로 미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너무나 잘 보고 있다. 게다가 최근 우크라이나 탐사보도 언론인들은 젤렌스키 후보가 러시아 신흥재벌에게 인기 있는 이탈리아 휴양지에 방 15개짜리 빌라를 소유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렇다면 그는 TV에서 자신이 연기하는 서민의 영웅과는 거리가 아주 멀다.”

한편 포로셴코 대통령은 제과회사 로셴의 성공을 발판으로 사업 영역을 자동차 생산, 조선, 미디어 등으로 넓혀 억만장자 대열에 오른 인물이다. 로셴이 동유럽 최대 제과회사로 성장하면서 ‘초콜릿 왕’이라는 별명도 얻은 그는 우크라이나를 친서방의 길로 이끌었으며 최근엔 EU와 나토의 회원국으로 가입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 제이슨 레몬, 크리스티나 마자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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