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무중 e커머스 대전(大戰) 향배는] 누가 ‘30% 점유율 달성’ 깃발 먼저 꽂나
[오리무중 e커머스 대전(大戰) 향배는] 누가 ‘30% 점유율 달성’ 깃발 먼저 꽂나
쿠팡 등 선점 경쟁에 롯데·신세계까지 가세… 강력한 차별화에 성공하느냐가 열쇠 될 듯
온라인 네트워크로 상품과 서비스를 사고파는 ‘e커머스(electronic commerce)’ 시장이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e커머스 업계 3위 기업인 쿠팡은 지난해 1조원대의 기록적인 영업손실을 냈지만 개의치 않고 공격적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계획된 적자’를 내세우며 업계 1·2위를 추격한 상황에서 승산이 있다고 봐서다. 경쟁사들도 출혈경쟁에 가세해 주도권 싸움이 한창이다. 장기전에서 이기려면 당장의 손실은 감수할 수 있다는 전략이다. 과연 옳은 전술일까.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까. 사상 최대 매출, 그리고 사상 최악의 적자. 명암이 이보다 더 극적으로 엇갈리기도 어렵다. 로켓처럼 빠른 배송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로켓 배송’으로 시장에 숱한 화제를 낳은 e커머스 업계 3위(지난해 거래액 기준) 기업 쿠팡 얘기다. 지난 4월 1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쿠팡은 지난해 4조4227억원의 매출을 달성, 국내 e커머스 역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회사의 2017년 매출은 2조6846억원. 1년 만에 매출이 65%나 급증한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지난해 온라인 유통업계 평균 매출 신장률이 15.9%였음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로켓 성장’이다.
놀라운 숫자는 또 있었다. 쿠팡은 지난해만 영업손실이 전년 대비 71.7% 늘어난 1조970억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또한 영업손실로는 역대 최대치다. 쿠팡 관계자는 “지난해 전국 12개 지역에서 물류 거점을 24곳으로 늘렸고 2만4000명을 직간접 고용한 결과 적자폭이 늘어난 것”이라며 수익성 악화가 미래를 위한 고강도 선제 투자의 결과임을 강조했다. 실제 이 회사의 지난해 인건비는 9866억원으로 전년(6555억원)보다 3000억원 넘게 증가했다. 운반비와 임차료에도 전년 대비 60%가량 증가한 2367억원을 썼다. 광고·선전비로도 2017년 538억원의 3배 수준인 1548억원을 투입했다. 눈앞의 대규모 적자에도 개의치 않는다는 분위기다. 김범석 쿠팡 대표는 최근 “앞으로도 기술과 인프라에 공격적으로 투자할 것”이라며 올해 시장이 또 한 번 놀랄 수 있음을 암시했다. 쿠팡의 이런 사례는 미래 성장성 확보를 담보로 극도의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국내 e커머스 시장의 오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업들이 ‘당장에 손해를 보더라도, 과감한 선제 투자로 승기를 잡으려는’ 전략을 취하면서 점입가경의 출혈경쟁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무료 배송과 특가 서비스 등으로 소비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려면 많은 돈이 들 수밖에 없다. 지난해 주요 e커머스 기업 가운데 흑자를 낸 곳은 거래액 기준 1위 업체인 이베이코리아 정도였다. 옥션과 지마켓 등 알짜 플랫폼을 보유한 이베이코리아는 48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이마저도 전년(623억원) 대비 22% 줄어든 수치다. 이베이코리아 관계자는 “물류 센터와 인력 확충으로 수익성이 감소했다”고 했다.
2위인 11번가(-678억원)나, 쿠팡을 추격 중인 티몬(-1255억원)과 위메프(-390억원)는 나란히 적자를 냈다. 티몬은 전년 대비 영업손실이 7.3% 늘면서 3년 간 누적 4000억원대의 적자가 발생했다. 돈을 많이 투입해서라도 매출이 늘면 성공이다. 티몬은 적자폭이 늘고도 지난해 매출이 4972억원으로 전년보다 39.6% 증가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티몬 측은 내년에 월 단위 흑자 전환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위메프는 전년 대비 9.2% 감소한 4294억원의 매출로 티몬에 뒤처지면서 비상이 걸렸다. 다만 영업손실은 전년 대비 6%가량 감소한 수치라 손익 구조는 개선했다는 평가다.
e커머스 기업들이 앞다퉈 치킨게임에 가세한 기본적인 이유는 나날이 급증하는 수요를 등에 업고 국내 e커머스 시장이 그만큼 고속성장 중이어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온라인 쇼핑 총 거래액은 111조8939억원으로 2017년 91조3000억원 대비 22.6% 증가했다. e커머스 거래액이 연간 100조원을 넘어선 것은 처음이다. 스마트폰 대중화로 온라인 쇼핑에 익숙해진 기성세대가 급증한 데다, 10대 등 쇼핑 시장에 신규 진입하는 소비층이 고스란히 e커머스 쪽으로 발걸음을 향한 결과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이 숫자가 2022년 189조8000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기업들로선 투자를 아끼지 않은 끝에 최대한 많은 소비자를 선점했을 때, 향후 시장에서 나눠 갖게 될 ‘황금알’ 역시 비례해서 늘어난다고 낙관할 수밖에 없다.
e커머스가 소비자에게 간편하고 저렴한 쇼핑 경험을 제공하면서 갈수록 위세를 떨치는 사이, 기존의 오프라인 유통 시장은 매년 역성장하고 있다. 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오프라인 마트 업계의 매출은 전년 대비 2.3% 감소했다. 2015년 -3.2%, 2016년 -1.4%, 2017년 -0.1% 등으로 수년 간 지속적인 감소세다. 백화점 쪽도 사정이 썩 좋지 못하다. 이에 기성 유통 업체들도 오프라인 의존도를 낮추고 e커머스 사업을 키우는 쪽으로 전략을 선회하고 있다. 양대 유통 공룡으로 군림해온 롯데그룹과 신세계그룹이 대표적이다.
신세계그룹은 정용진 부회장의 주도 하에 지난 3월부터 ‘에스에스지닷컴(SSG.COM, 이하 쓱닷컴)’을 온라인 통합 법인으로 새롭게 출범시켰다. 온라인 소비자 편의성을 강화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온라인 부문 매출을 전년 대비 30%가량 증가한 3조원 규모로 키운다는 목표다. 그룹 내에서 e커머스 사업의 선봉장 역할을 해온 쓱닷컴은 2014년 매출 1조원을 돌파한 이후 2017년엔 2조원을 넘어설 만큼 성장세가 뚜렷하다. 연내에 전용 물류센터를 추가로 구축해 주요 지역 배송 효율을 높여 내년까지 지난해 대비 전체 배송처리 물량을 배로 늘릴 계획이다. 맞수인 롯데그룹도 지난해 8월 e커머스 사업본부를 신설하고 계열사별로 운영하던 온라인 쇼핑몰 8개를 내년까지 통합, 본격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5년 간 3조원을 투입해 e커머스 사업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2022년까지 온라인 매출을 20조원 규모까지 키운다는 목표다. 현대백화점그룹과 홈플러스 등도 온라인 부문 강화로 다크호스 등극을 노리고 있다.
오프라인에서 수십년 간 검증된 강자들의 이 같은 e커머스 도전에, 온라인 기반의 업계 터줏대감들은 한층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껏 어렵게 쌓아올린 지위나 시장점유율이 자칫하면 사상누각(砂上樓閣)처럼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기업들 사이에서 확산됐다”며 “트렌드에 민감한 e커머스 이용자들이 어느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몰리는 건 그야말로 한순간임을 경험상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기존 유통 강자들의 경우 초기 손실에도 더 과감해질 수 있을 만큼 풍부한 자금력을 갖추고 있다. 이들의 온라인 경쟁력이 그나마 덜 무르익었을 때 조금이라도 더 시장을 선점해 우위를 지킬 필요성이 커졌다. 업계 전반의 치킨게임이 심화한 또 다른 배경이다.
보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쿠팡이나 11번가처럼 대규모 외부 투자를 유치하는 경우다. SK텔레콤의 자회사인 11번가는 지난해 5000억원 규모 외부 투자 유치에 성공하면서 한시름을 덜었다. 올해는 흑자 전환을 향해 달린다는 목표다. 쿠팡은 지난 2015년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으로부터 10억 달러(약 1조원) 규모 투자를 받아 화제가 됐다. 그룹을 이끌고 있는 손정의 회장이 쿠팡의 성장성을 낙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프트뱅크는 지난해 11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 등과 함께 비전펀드를 구성하고 20억 달러(약 2조원)를 추가로 쿠팡에 투자했다. 쿠팡이 적자 규모가 늘어날 때마다 “계획된 적자”라고 주장하면서 투자를 늘린 배경엔 지원군들의 물밑 지원이 있었다는 얘기다. 이 정도 지원 규모라면 산술적으로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다. 문제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느냐다. 쿠팡이 소프트뱅크로부터 받은 첫 1조원은 2년 만에 소진됐다. 수년 간 더 치킨게임이 이어질 경우 쿠팡으로선 상장이나 지분 매각 등의 다른 수단을 강구해야 할 수도 있다.
쿠팡의 계획된 적자는 미국 아마존을 벤치마킹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임일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쿠팡은 아마존을 롤모델로 삼아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며 “단, 아마존과 쿠팡의 차이점에 대해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임 교수에 따르면 아마존은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와 ‘네트워크 효과’를 실현하는 데 성공, 미국을 장악하고 세계로 뻗은 e커머스 기업으로 우뚝 섰지만 쿠팡은 아직 국내에서 그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규모의 경제란 생산 규모를 늘릴수록 생산비 절감이 가능해지고, 그로써 수익이 향상되는 것을 가리킨다. 외신은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 최고경영자(CEO)가 일찌감치 그 중요성을 간파하고 있었다고 전한다.
미국 CNBC방송의 1999년 한 인터뷰 영상에서 베조스는 “이 (e커머스) 업계에선 규모가 중요하다”고 단언했다. 진행자가 아마존이 인프라에 막대한 투자를 지속하고 있는 데 대해 다소 비판적인 뉘앙스로 묻자(아마존은 창립 이후 이 무렵까지 십수억 달러의 영업손실을 기록), 그는 개의치 않고 “3000명 이상의 직원, 400만 제곱피트 규모 물류 센터를 구축하고 있음”을 강점으로 확언한다. 고객들이 주문한 상품을 더 빨리 받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췄기에 투자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언론에서 반신반의했던 아마존의 구상은 네트워크 효과(많이 팔리는 물건이나 많이 찾는 쇼핑몰에 소비자가 몰리는 현상)로 완성되면서 규모의 경제 실현에도 어려움이 없게 됐다.
여기엔 ‘아마존 프라임 멤버십’ 같은 차별화한 서비스 제공에 나선 것도 주효했다. 일정 연회비로 이용 가능한 이 서비스엔 현재 미국 가구의 약 63%가 가입했으며, 이들은 일반 회원에 비해 아마존에서 2.3배 더 구매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멤버십 서비스만의 2일 무료 배송 혜택에 열광해서다. 미국 온라인 소비재 유통 업체 CGETC의 데이비드 비언 대표는 코트라 보고서에서 “미국에선 ‘온라인 쇼핑=아마존’이라는 공식이 소비자들 사이에 성립돼 있을 만큼 아마존을 거치지 않는 거래 품목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전했다. 아마존의 미국 내 온라인 쇼핑 점유율은 48%가량으로, 2위인 이베이(약 7%)를 압도하고 있다.
한국에서 아마존처럼 규모의 경제와 네트워크 효과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어느 정도로 성장해야 할까. 업계는 30% 이상의 국내 점유율을 확보해야 압도적인 업계 1위 자리를 굳히면서 둘 모두 실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쿠팡의 e커머스 점유율은 7.1% 정도로, 1위인 이베이코리아(14.2%)의 절반 수준이었다. 지난해 국내 온라인 쇼핑 거래액(111조8939억원)에서 쿠팡의 거래액(약 8조원)과 이베이코리아의 거래액(약 16조원)을 각각 나눠 환산한 수치다. 이것만 보면 현재로선 오히려 이베이코리아가 더 승산이 있어 보인다. 30% 점유율을 달성하려면 이베이코리아는 지금보다 최소 배로, 쿠팡은 4배로 거래액이 증대돼야 한다. 하지만 이베이코리아의 지난해 점유율은 전년(15.3%) 대비 1%포인트가량 외려 줄었다. 경쟁 격화로 경쟁사들에 점유율을 일부 뺏긴 것이다.
업계나 전문가들 사이에서 e커머스 시장의 치킨게임에 대한 회의론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지금까지의 e커머스 패러다임을 뒤흔들 만한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나타난다거나, 상위권 e커머스 업체 간 인수·합병(M&A) 같은 굵직한 이벤트가 나오지 않는 한 어느 업체도 30% 점유율을 달성하기 쉽지 않아 보여서다. 게임 체인저 전략을 구사하는 대표적 업체가 쿠팡이지만, 갈 길이 멀다. 임일 교수는 “쿠팡에선 로켓 배송이 시장 판도를 뒤집을 혁신요소로도, 수익성 악화의 주범으로도 동시 거론되는데 이 상황이 지속돼선 쿠팡도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쿠팡맨의 택배 단가는 한때 5000~6000원에 달해 지금껏 적자폭 확대를 주도한 것으로 분석됐다. 쿠팡 측은 현재 택배 단가가 문제가 되지 않는 선까지 내려왔다고 밝히고 있으나, 회사 규모와 역량에 비해 로켓 배송을 위한 인건비와 물류비가 과도하게 들고 있다는 시장의 의구심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한국의 아마존을 노린다지만 미국과 달리 협소한 내수시장, 그에 비해 지나치게 많고 비슷한 경쟁상대, e커머스에서 부침을 겪더라도 아마존처럼 믿을 만한 ‘캐시카우(cash cow, 수익 창출원)’가 없어 아마존과 처한 상황이 다르다는 점은 쿠팡뿐 아니라 국내 모든 e커머스 기업들에 공통적인 고민을 안기고 있다. 아마존은 2006년 설립한 자회사인 아마존웹서비스가 세계 클라우드 시장에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면서 기업 전체에 활력을 주고 있다.
결국 기업들로선 얼마나 강력한 게임 체인저를 확보하느냐가 최대 과제다. 온라인 포털 업계에서 네이버가 ‘지식인(iN)’ 같은 신개념 서비스를 내세워 2000년대 초반 난립하던 경쟁상대를 누르고 독보적 1위 자리에 오른 것처럼, 강력한 차별화에 성공해야 미래를 거머쥘 수 있다. 이에 기업들은 규모의 경제와 네트워크 효과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차별화한 서비스 제공을 시도하는 데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이베이코리아는 2017년 국내 e커머스 기업 중 최초로 유료 멤버십 제도인 ‘스마일 클럽’을 도입, 아마존처럼 일정 연회비를 받고 다양한 할인 혜택과 차별화 콘텐트를 제공 중이다. 기존 회원 고객의 추가 구매를 지속적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수익모델로 떠올랐다. 이에 경쟁사들도 각각 조금씩 다른 내용의 유료 멤버십 서비스를 출시(티몬 ‘슈퍼세이브’, 위메프 ‘특가 클럽’ 등), 호응을 얻고 있다. 기업들은 이보다 신개념의 서비스도 속속 선보였다. 쿠팡은 자정까지 주문한 신선식품을 오전 7시 전까지 배송해주는 ‘로켓 프레시’와 내 집 근처 일반인으로부터 택배를 받는 ‘쿠팡 플렉스’로, 위메프는 배달 개념과 연계한 오프라인 매장 픽업 서비스 ‘위메프오’로 주목받고 있다. 그렇다 해도 지금으로선 회의론이 더 많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출혈경쟁이 심해 업계 전반의 적자 규모가 쉽게 개선되긴 힘들다”며 “자금 조달에 실패하거나 적자가 누적돼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기업은 도태될 것”으로 우려했다. 적자가 나도 버티면 살아남지만, 현 시점에서 그때까지 버티는 게 가능할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수많은 기업이 e커머스의 황금알을 기대하며 성장을 외치고 있지만, 늘 그랬듯 치킨게임에서 누군가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수년 내로 아마존이나 중국의 알리바바처럼 압도적인 1위 기업이 탄생하면서 이를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정연승 단국대 경영학부 교수는 “2~3년 내로 M&A나 상장과 같은 큰 변화가 일어나 (업계에) 영향을 미치면서 시장 판도가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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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네트워크로 상품과 서비스를 사고파는 ‘e커머스(electronic commerce)’ 시장이 치킨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e커머스 업계 3위 기업인 쿠팡은 지난해 1조원대의 기록적인 영업손실을 냈지만 개의치 않고 공격적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계획된 적자’를 내세우며 업계 1·2위를 추격한 상황에서 승산이 있다고 봐서다. 경쟁사들도 출혈경쟁에 가세해 주도권 싸움이 한창이다. 장기전에서 이기려면 당장의 손실은 감수할 수 있다는 전략이다. 과연 옳은 전술일까.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까. 사상 최대 매출, 그리고 사상 최악의 적자. 명암이 이보다 더 극적으로 엇갈리기도 어렵다. 로켓처럼 빠른 배송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로켓 배송’으로 시장에 숱한 화제를 낳은 e커머스 업계 3위(지난해 거래액 기준) 기업 쿠팡 얘기다. 지난 4월 1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쿠팡은 지난해 4조4227억원의 매출을 달성, 국내 e커머스 역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 회사의 2017년 매출은 2조6846억원. 1년 만에 매출이 65%나 급증한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지난해 온라인 유통업계 평균 매출 신장률이 15.9%였음을 고려하면 그야말로 ‘로켓 성장’이다.
놀라운 숫자는 또 있었다. 쿠팡은 지난해만 영업손실이 전년 대비 71.7% 늘어난 1조970억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 또한 영업손실로는 역대 최대치다. 쿠팡 관계자는 “지난해 전국 12개 지역에서 물류 거점을 24곳으로 늘렸고 2만4000명을 직간접 고용한 결과 적자폭이 늘어난 것”이라며 수익성 악화가 미래를 위한 고강도 선제 투자의 결과임을 강조했다. 실제 이 회사의 지난해 인건비는 9866억원으로 전년(6555억원)보다 3000억원 넘게 증가했다. 운반비와 임차료에도 전년 대비 60%가량 증가한 2367억원을 썼다. 광고·선전비로도 2017년 538억원의 3배 수준인 1548억원을 투입했다. 눈앞의 대규모 적자에도 개의치 않는다는 분위기다. 김범석 쿠팡 대표는 최근 “앞으로도 기술과 인프라에 공격적으로 투자할 것”이라며 올해 시장이 또 한 번 놀랄 수 있음을 암시했다.
11번가·티몬·위메프 나란히 적자
2위인 11번가(-678억원)나, 쿠팡을 추격 중인 티몬(-1255억원)과 위메프(-390억원)는 나란히 적자를 냈다. 티몬은 전년 대비 영업손실이 7.3% 늘면서 3년 간 누적 4000억원대의 적자가 발생했다. 돈을 많이 투입해서라도 매출이 늘면 성공이다. 티몬은 적자폭이 늘고도 지난해 매출이 4972억원으로 전년보다 39.6% 증가하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티몬 측은 내년에 월 단위 흑자 전환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위메프는 전년 대비 9.2% 감소한 4294억원의 매출로 티몬에 뒤처지면서 비상이 걸렸다. 다만 영업손실은 전년 대비 6%가량 감소한 수치라 손익 구조는 개선했다는 평가다.
e커머스 기업들이 앞다퉈 치킨게임에 가세한 기본적인 이유는 나날이 급증하는 수요를 등에 업고 국내 e커머스 시장이 그만큼 고속성장 중이어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온라인 쇼핑 총 거래액은 111조8939억원으로 2017년 91조3000억원 대비 22.6% 증가했다. e커머스 거래액이 연간 100조원을 넘어선 것은 처음이다. 스마트폰 대중화로 온라인 쇼핑에 익숙해진 기성세대가 급증한 데다, 10대 등 쇼핑 시장에 신규 진입하는 소비층이 고스란히 e커머스 쪽으로 발걸음을 향한 결과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이 숫자가 2022년 189조8000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기업들로선 투자를 아끼지 않은 끝에 최대한 많은 소비자를 선점했을 때, 향후 시장에서 나눠 갖게 될 ‘황금알’ 역시 비례해서 늘어난다고 낙관할 수밖에 없다.
e커머스가 소비자에게 간편하고 저렴한 쇼핑 경험을 제공하면서 갈수록 위세를 떨치는 사이, 기존의 오프라인 유통 시장은 매년 역성장하고 있다. 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오프라인 마트 업계의 매출은 전년 대비 2.3% 감소했다. 2015년 -3.2%, 2016년 -1.4%, 2017년 -0.1% 등으로 수년 간 지속적인 감소세다. 백화점 쪽도 사정이 썩 좋지 못하다. 이에 기성 유통 업체들도 오프라인 의존도를 낮추고 e커머스 사업을 키우는 쪽으로 전략을 선회하고 있다. 양대 유통 공룡으로 군림해온 롯데그룹과 신세계그룹이 대표적이다.
신세계그룹은 정용진 부회장의 주도 하에 지난 3월부터 ‘에스에스지닷컴(SSG.COM, 이하 쓱닷컴)’을 온라인 통합 법인으로 새롭게 출범시켰다. 온라인 소비자 편의성을 강화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온라인 부문 매출을 전년 대비 30%가량 증가한 3조원 규모로 키운다는 목표다. 그룹 내에서 e커머스 사업의 선봉장 역할을 해온 쓱닷컴은 2014년 매출 1조원을 돌파한 이후 2017년엔 2조원을 넘어설 만큼 성장세가 뚜렷하다. 연내에 전용 물류센터를 추가로 구축해 주요 지역 배송 효율을 높여 내년까지 지난해 대비 전체 배송처리 물량을 배로 늘릴 계획이다. 맞수인 롯데그룹도 지난해 8월 e커머스 사업본부를 신설하고 계열사별로 운영하던 온라인 쇼핑몰 8개를 내년까지 통합, 본격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5년 간 3조원을 투입해 e커머스 사업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2022년까지 온라인 매출을 20조원 규모까지 키운다는 목표다. 현대백화점그룹과 홈플러스 등도 온라인 부문 강화로 다크호스 등극을 노리고 있다.
오프라인에서 수십년 간 검증된 강자들의 이 같은 e커머스 도전에, 온라인 기반의 업계 터줏대감들은 한층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껏 어렵게 쌓아올린 지위나 시장점유율이 자칫하면 사상누각(砂上樓閣)처럼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기업들 사이에서 확산됐다”며 “트렌드에 민감한 e커머스 이용자들이 어느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몰리는 건 그야말로 한순간임을 경험상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기존 유통 강자들의 경우 초기 손실에도 더 과감해질 수 있을 만큼 풍부한 자금력을 갖추고 있다. 이들의 온라인 경쟁력이 그나마 덜 무르익었을 때 조금이라도 더 시장을 선점해 우위를 지킬 필요성이 커졌다. 업계 전반의 치킨게임이 심화한 또 다른 배경이다.
‘규모의 경제’ 염두에 둔 계획된 적자?
쿠팡의 계획된 적자는 미국 아마존을 벤치마킹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임일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쿠팡은 아마존을 롤모델로 삼아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며 “단, 아마존과 쿠팡의 차이점에 대해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임 교수에 따르면 아마존은 ‘규모의 경제(economy of scale)’와 ‘네트워크 효과’를 실현하는 데 성공, 미국을 장악하고 세계로 뻗은 e커머스 기업으로 우뚝 섰지만 쿠팡은 아직 국내에서 그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규모의 경제란 생산 규모를 늘릴수록 생산비 절감이 가능해지고, 그로써 수익이 향상되는 것을 가리킨다. 외신은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 최고경영자(CEO)가 일찌감치 그 중요성을 간파하고 있었다고 전한다.
미국 CNBC방송의 1999년 한 인터뷰 영상에서 베조스는 “이 (e커머스) 업계에선 규모가 중요하다”고 단언했다. 진행자가 아마존이 인프라에 막대한 투자를 지속하고 있는 데 대해 다소 비판적인 뉘앙스로 묻자(아마존은 창립 이후 이 무렵까지 십수억 달러의 영업손실을 기록), 그는 개의치 않고 “3000명 이상의 직원, 400만 제곱피트 규모 물류 센터를 구축하고 있음”을 강점으로 확언한다. 고객들이 주문한 상품을 더 빨리 받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췄기에 투자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당시만 해도 언론에서 반신반의했던 아마존의 구상은 네트워크 효과(많이 팔리는 물건이나 많이 찾는 쇼핑몰에 소비자가 몰리는 현상)로 완성되면서 규모의 경제 실현에도 어려움이 없게 됐다.
여기엔 ‘아마존 프라임 멤버십’ 같은 차별화한 서비스 제공에 나선 것도 주효했다. 일정 연회비로 이용 가능한 이 서비스엔 현재 미국 가구의 약 63%가 가입했으며, 이들은 일반 회원에 비해 아마존에서 2.3배 더 구매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멤버십 서비스만의 2일 무료 배송 혜택에 열광해서다. 미국 온라인 소비재 유통 업체 CGETC의 데이비드 비언 대표는 코트라 보고서에서 “미국에선 ‘온라인 쇼핑=아마존’이라는 공식이 소비자들 사이에 성립돼 있을 만큼 아마존을 거치지 않는 거래 품목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전했다. 아마존의 미국 내 온라인 쇼핑 점유율은 48%가량으로, 2위인 이베이(약 7%)를 압도하고 있다.
한국에서 아마존처럼 규모의 경제와 네트워크 효과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면 어느 정도로 성장해야 할까. 업계는 30% 이상의 국내 점유율을 확보해야 압도적인 업계 1위 자리를 굳히면서 둘 모두 실현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쿠팡의 e커머스 점유율은 7.1% 정도로, 1위인 이베이코리아(14.2%)의 절반 수준이었다. 지난해 국내 온라인 쇼핑 거래액(111조8939억원)에서 쿠팡의 거래액(약 8조원)과 이베이코리아의 거래액(약 16조원)을 각각 나눠 환산한 수치다. 이것만 보면 현재로선 오히려 이베이코리아가 더 승산이 있어 보인다. 30% 점유율을 달성하려면 이베이코리아는 지금보다 최소 배로, 쿠팡은 4배로 거래액이 증대돼야 한다. 하지만 이베이코리아의 지난해 점유율은 전년(15.3%) 대비 1%포인트가량 외려 줄었다. 경쟁 격화로 경쟁사들에 점유율을 일부 뺏긴 것이다.
업계나 전문가들 사이에서 e커머스 시장의 치킨게임에 대한 회의론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지금까지의 e커머스 패러다임을 뒤흔들 만한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나타난다거나, 상위권 e커머스 업체 간 인수·합병(M&A) 같은 굵직한 이벤트가 나오지 않는 한 어느 업체도 30% 점유율을 달성하기 쉽지 않아 보여서다. 게임 체인저 전략을 구사하는 대표적 업체가 쿠팡이지만, 갈 길이 멀다. 임일 교수는 “쿠팡에선 로켓 배송이 시장 판도를 뒤집을 혁신요소로도, 수익성 악화의 주범으로도 동시 거론되는데 이 상황이 지속돼선 쿠팡도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쿠팡맨의 택배 단가는 한때 5000~6000원에 달해 지금껏 적자폭 확대를 주도한 것으로 분석됐다. 쿠팡 측은 현재 택배 단가가 문제가 되지 않는 선까지 내려왔다고 밝히고 있으나, 회사 규모와 역량에 비해 로켓 배송을 위한 인건비와 물류비가 과도하게 들고 있다는 시장의 의구심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한국의 아마존을 노린다지만 미국과 달리 협소한 내수시장, 그에 비해 지나치게 많고 비슷한 경쟁상대, e커머스에서 부침을 겪더라도 아마존처럼 믿을 만한 ‘캐시카우(cash cow, 수익 창출원)’가 없어 아마존과 처한 상황이 다르다는 점은 쿠팡뿐 아니라 국내 모든 e커머스 기업들에 공통적인 고민을 안기고 있다. 아마존은 2006년 설립한 자회사인 아마존웹서비스가 세계 클라우드 시장에서 막대한 돈을 벌어들이면서 기업 전체에 활력을 주고 있다.
결국 기업들로선 얼마나 강력한 게임 체인저를 확보하느냐가 최대 과제다. 온라인 포털 업계에서 네이버가 ‘지식인(iN)’ 같은 신개념 서비스를 내세워 2000년대 초반 난립하던 경쟁상대를 누르고 독보적 1위 자리에 오른 것처럼, 강력한 차별화에 성공해야 미래를 거머쥘 수 있다. 이에 기업들은 규모의 경제와 네트워크 효과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차별화한 서비스 제공을 시도하는 데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이베이코리아는 2017년 국내 e커머스 기업 중 최초로 유료 멤버십 제도인 ‘스마일 클럽’을 도입, 아마존처럼 일정 연회비를 받고 다양한 할인 혜택과 차별화 콘텐트를 제공 중이다. 기존 회원 고객의 추가 구매를 지속적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수익모델로 떠올랐다. 이에 경쟁사들도 각각 조금씩 다른 내용의 유료 멤버십 서비스를 출시(티몬 ‘슈퍼세이브’, 위메프 ‘특가 클럽’ 등), 호응을 얻고 있다. 기업들은 이보다 신개념의 서비스도 속속 선보였다. 쿠팡은 자정까지 주문한 신선식품을 오전 7시 전까지 배송해주는 ‘로켓 프레시’와 내 집 근처 일반인으로부터 택배를 받는 ‘쿠팡 플렉스’로, 위메프는 배달 개념과 연계한 오프라인 매장 픽업 서비스 ‘위메프오’로 주목받고 있다.
M&A나 상장 등 빅 이벤트 가능성 제기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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