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 경제고통지수로 보는 국가 실패 보고서] 세계 최악의 경제 실패 국가는 베네수엘라
[블룸버그 경제고통지수로 보는 국가 실패 보고서] 세계 최악의 경제 실패 국가는 베네수엘라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합친 수치... 미국 역대 대통령, 경제고통지수 좋은 경우 재선 성공 경제지표 가운데 흥미로운 것이 ‘경제고통지수(Misery Index)’다. ‘비참하다’는 의미의 미저리(Misery)라는 원어를 그대로 적용할 경우 ‘비참지수’로도 쓸 수 있겠다. 하지만 국민의 경제적 고통을 알려준다는 의미에서 통상 ‘경제고통지수’로 번역한다. 이 지수를 계산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을 단순히 합친 수치이기 때문이다. 예로 실업률이 3.8%이고 인플레이션이 5.9%라면 경제고통지수는 9.7이된다. 해당 국가의 국민이 직접적으로 겪는 물가 상승과 실업률을 알려주기 때문에 경제적 고통을 파악하기에 용이하다.
미국 예일대 경제학 교수였던 아서 오쿤(1928~1980년)이 만든 지표다. 오쿤은 존 F 케네디 대통령 재임시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에서 경제학자로 일하기 시작해 린든 존슨 대통령 시절 자문위원(1964~1968년)과 자문위원장(1968~1969년)을 맡았던 인물이다.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도 일했다. 오쿤은 1962년 ‘오쿤의 법칙’을 발표해 명성을 얻었다. 실업률과 국내총생산(GDP) 데이터를 장기 추적 조사해 상관 관계를 밝혀냈다. 요약하면 실업률이 1% 오를 때마다 잠재 국내총생산(GDP)은 약 2% 떨어진다는 내용이다. ‘고용 없는 성장’을 설명할 때 인용되는 법칙이다.
미국의 블룸버그 통신은 5년 전부터 매년 62개국을 대상으로 국가별 경제고통지수를 발표해왔다. 불룸버그가 4월 18일 인터넷에 올린 지난해 지수와 올해 전망치를 보면 베네수엘라가 확 눈에 띈다. 베네수엘라의 경제고통지수는 지난해 92만9824.5이었으나 올해는 800만11.4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한마디로 경제적으로 비참한 상황이다. 베네수엘라는 지난해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으로 화폐 가치가 폭락하고 경제가 파탄 상태에 이르렀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1위인 3022억 배럴(석유수출국기구(OPEC) 2016년 연말 통계 기준)의 원유매장량을 자랑하는 남미의 대표적인 산유국이다. 하지만 2014년 이후 고질적인 구조적 문제에다 국제유가 하락이 겹치면서 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경제성장률이 2014년 -3.9%, 2015년 -6.2%, 2016년 -16.5%, 2017년 -14.5%, 2018년 -18%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떨어졌다. 실업률은 2018년 34.3%에 이른다. 물가도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다. 빈곤선 이하로 생활하는 국민의 비중은 2015년 추정치가 19.7%였으나 2017년에는 87.4%에 이른다. 석유가 무진장 매장돼 있어도 대부분의 국민은 먹고 살기가 힘든 상황인 것이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에게 사실상 권력을 물려줬던 전임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핵심 경제정책이 ‘빈곤 추방’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차베스는 시절 빈곤선 이하로 생활하는 국민의 비중은 취임 첫해인 1999년 50%에서 2011년 27%로 떨어졌다. 차베스는 석유산업을 국영화하고 거기서 얻은 수입으로 무상교육·무상의료를 실시하고 기초 식료품과 생필품을 무상이나 원가 이하의 가격으로 공급했다. 사실상 배급제나 다름없는 사회주의 시스템이었다. 석유 이익금으로 보건위생 등 ‘사회적 투자’를 늘려 상수도와 화장실을 늘렸다.
베네수엘라의 이런 시스템은 ‘21세기 사회주의의 모범사례’로도 불리며 칭송 받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사회주의 ‘공짜’ 시스템에서 불거졌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무시하고 식료품과 생필품을 무료 또는 거저나 다름없는 낮은 가격으로 제공하는 정책은 시장질서를 흔들었다. 수요과 공급 법칙에 따르면 가격이 정상 이하로 떨어지면 가수요가 발생하며 이에 따라 시장에서 물자 부족 현상이 발생한다. 과거 소련 말기였던 1980년대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상점 앞에 끝도 없이 줄을 서는 모습이 떠올리면 된다. 당시 소련 사람들은 국영상점에서 파는 물건이 뭔지 몰라도 무조건 줄을 섰다. 불필요한 물건도 일단 구입했다가 필요한 물건과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심정책의 재원을 대부분 석유산업에 의존했던 것도 문제였다. 베네수엘라는 GDP의 40%를 석유에 의존했다. 석유로 벌어들인 재원으로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는 데는 무관심했고 넘치는 오일달러로 선심정책을 펴고 정치적인 지지를 얻기에 급급했다. 이런 시스템은 오래 가지 못했다. 차베스 사망 이듬해인 2014년 이후 저유가 시대가 계속되자 이런 시스템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사상누각이었던 셈이다. 여기에 부패와 정권의 무능도 한몫했다는 평가다.
그 밖에 아르헨티나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경제고통지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올해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아르헨티나는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로부터 57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을 정도로 경제위기가 심각하다. 남아공도 27%의 높은 실업률, 마이너스 성장, 랜드화의 지속적인 약체화로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르 에르도안 대통령의 철권 통치로 유럽연합(EU) 등의 제재를 받고 있는 터키와 오랫동안 경제가 좋지 않은 그리스, 그리고 러시아 개입으로 동부지역에서 내란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도 경제고통지수가 높다. 극우정당인 복스, 급진좌파 정당인 포데모스가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스페인도 경제고통지수 상위권 국가다. 극우 성향의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해 올해 1월1일 취임한 브라질도 이 지수가 높다.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경제고통지수가 낮은 나라는 태국(2018년 2.1, 2019년 전망치 2.1), 싱가포르(2.5, 3.3), 일본(3.4, 3.3), 스위스(3.6, 3.1), 덴마크(4.0, 4.7), 말레이시아(4.3, 5.0), 이스라엘(4.8, 5.3), 대만(5.0, 4.7)의 순이었다. 한국은 2019년 이스라엘과 같은 5.3으로 전망됐다. 경제고통지수가 실제 국민이 느끼는 고통 수준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경제는 다양한 변수가 있으며 국민이 심리적으로 느끼는 것과 실제 경제와 괴리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역대 미국 대통령의 재임 중 경제고통지수 변화다. 미국 대통령 경제고통지수 사이트(www.miseryindex.us/indexbyPresident.aspx)를 살펴보면 지수 자체보다 재임 중 변화가 대통령의 명성이나 정치적인 능력과 비례하는 경우가 많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취임한 미국 대통령 13명 가운데 리처드 닉슨, 지미 카터,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린든 존슨, 조지 HW 부시 등 5명이 재임 중 지수가 증가했고 나머지는 감소했다. 이 가운데 카터와 조지 HW 부시는 재선에 실패했고, 닉슨은 재선에는 성공했지만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중도 사임했다. 베트남전에 휩쓸렸던 존슨은 재선 출마를 포기했다.
조지 HW 부시의 경우 취임시 10.07이던 지수가 물러날 때는 10.30으로 0.23의 소폭 늘었으며 평균은 10.68이었다. 경제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셈이다. 그가 걸프전의 승리에도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The economy, stupid)”라는 선거 슬로건을 들고 나온 빌 클린턴에 밀려 재선에 실패했다. 경제고통지수를 보면 재선 실패의 주요 원인이 경제 문제임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출마 당시 전국적으론 무명의 아칸소주 주지사였던 클린턴과 그의 선거 참모들은 경제 문제가 조지 HW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임을 간파하고 이 부분을 집중 공략했다. 그 덕분에 현직 대통령, 그것도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 인물을 누르고 민주당의 정권 탈환에 성공했다.
그의 아들인 조지 W 부시(2001~2008년)는 지수가 취임 첫 달 7.93에서 임기 마지막인 2008년 12월 7.39로 0.54의 소폭이 줄었으며 평균은 8.11이었다. 그는 임기 내내 경제가 그런대로 좋았으며 약간 나아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첫 임기 때 9.11테러와 아프가니스탄전, 이라크전을 겪었던 조지 W 부시는 무난히 재선에 성공했다. 재임 중 지수가 가장 향상된 대통령은 해리 트루먼(1948~1952년)으로 둘째 임기 취임 당시 지수가 13.68이었으며 임기를 마칠 때는 3.45로 무려 10.18이나 줄었다. 평균도 7.88이었다. 재임 중 경제고통지수 평균치가 가장 높았던 대통령은 지미 카터(77~80년)로 16.26이었다. 카터는 취임시 12.72로 시작해 퇴임시 19.72로 마쳤으며 재임 중 7.00이 늘었다. 재임 중 증가 폭도 2위였다. 카터는 인권외교로 유명하지만 임기 말인 1979년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면서 테헤란의 미국대사관이 이란 대학생들에게 점거되고 직원이 억류되는 사건을 겪었다. 이 사건을 해결하려고 특공대를 투입하려고 했지만 사막에서 헬기가 추락하는 바람에 실패했다. 이는 카터가 재선에 실패한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된다. 하지만 경제고통지수의 변화를 살펴보면 카터 시절은 경제 성적표도 신통치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란의 이슬람 혁명 사태가 아니더라도 카터의 재선이 어려웠을지 모른다. 재임 중 경제고통지수가 가장 많이 증가한 대통령은 리처드 닉슨(1969~74년 재임)이다. 취임초 7.80이었으나 물러날 때는 17.01로 9.21이 증가했다. 재임 중 평균은 10.57으로 중간 정도였다. 경제고통지수는 한 나라의 상황을 파악하고, 한 정권의 경제 성적과 정치적 전망을 내다보는 데도 유용할 수 있기에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예루살렘=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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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예일대 경제학 교수였던 아서 오쿤(1928~1980년)이 만든 지표다. 오쿤은 존 F 케네디 대통령 재임시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에서 경제학자로 일하기 시작해 린든 존슨 대통령 시절 자문위원(1964~1968년)과 자문위원장(1968~1969년)을 맡았던 인물이다. 브루킹스 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도 일했다. 오쿤은 1962년 ‘오쿤의 법칙’을 발표해 명성을 얻었다. 실업률과 국내총생산(GDP) 데이터를 장기 추적 조사해 상관 관계를 밝혀냈다. 요약하면 실업률이 1% 오를 때마다 잠재 국내총생산(GDP)은 약 2% 떨어진다는 내용이다. ‘고용 없는 성장’을 설명할 때 인용되는 법칙이다.
미국의 블룸버그 통신은 5년 전부터 매년 62개국을 대상으로 국가별 경제고통지수를 발표해왔다. 불룸버그가 4월 18일 인터넷에 올린 지난해 지수와 올해 전망치를 보면 베네수엘라가 확 눈에 띈다. 베네수엘라의 경제고통지수는 지난해 92만9824.5이었으나 올해는 800만11.4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한마디로 경제적으로 비참한 상황이다.
경제적 고통 정도 파악에 용이
베네수엘라의 이런 시스템은 ‘21세기 사회주의의 모범사례’로도 불리며 칭송 받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사회주의 ‘공짜’ 시스템에서 불거졌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무시하고 식료품과 생필품을 무료 또는 거저나 다름없는 낮은 가격으로 제공하는 정책은 시장질서를 흔들었다. 수요과 공급 법칙에 따르면 가격이 정상 이하로 떨어지면 가수요가 발생하며 이에 따라 시장에서 물자 부족 현상이 발생한다. 과거 소련 말기였던 1980년대 모스크바 붉은 광장의 상점 앞에 끝도 없이 줄을 서는 모습이 떠올리면 된다. 당시 소련 사람들은 국영상점에서 파는 물건이 뭔지 몰라도 무조건 줄을 섰다. 불필요한 물건도 일단 구입했다가 필요한 물건과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심정책의 재원을 대부분 석유산업에 의존했던 것도 문제였다. 베네수엘라는 GDP의 40%를 석유에 의존했다. 석유로 벌어들인 재원으로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는 데는 무관심했고 넘치는 오일달러로 선심정책을 펴고 정치적인 지지를 얻기에 급급했다. 이런 시스템은 오래 가지 못했다. 차베스 사망 이듬해인 2014년 이후 저유가 시대가 계속되자 이런 시스템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사상누각이었던 셈이다. 여기에 부패와 정권의 무능도 한몫했다는 평가다.
그 밖에 아르헨티나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경제고통지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올해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아르헨티나는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로부터 57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을 정도로 경제위기가 심각하다. 남아공도 27%의 높은 실업률, 마이너스 성장, 랜드화의 지속적인 약체화로 경제위기를 겪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르 에르도안 대통령의 철권 통치로 유럽연합(EU) 등의 제재를 받고 있는 터키와 오랫동안 경제가 좋지 않은 그리스, 그리고 러시아 개입으로 동부지역에서 내란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도 경제고통지수가 높다. 극우정당인 복스, 급진좌파 정당인 포데모스가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스페인도 경제고통지수 상위권 국가다. 극우 성향의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해 올해 1월1일 취임한 브라질도 이 지수가 높다.
태국·싱가포르·일본 등은 고통지수 낮아
흥미로운 것은 역대 미국 대통령의 재임 중 경제고통지수 변화다. 미국 대통령 경제고통지수 사이트(www.miseryindex.us/indexbyPresident.aspx)를 살펴보면 지수 자체보다 재임 중 변화가 대통령의 명성이나 정치적인 능력과 비례하는 경우가 많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취임한 미국 대통령 13명 가운데 리처드 닉슨, 지미 카터,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린든 존슨, 조지 HW 부시 등 5명이 재임 중 지수가 증가했고 나머지는 감소했다. 이 가운데 카터와 조지 HW 부시는 재선에 실패했고, 닉슨은 재선에는 성공했지만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중도 사임했다. 베트남전에 휩쓸렸던 존슨은 재선 출마를 포기했다.
조지 HW 부시의 경우 취임시 10.07이던 지수가 물러날 때는 10.30으로 0.23의 소폭 늘었으며 평균은 10.68이었다. 경제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셈이다. 그가 걸프전의 승리에도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The economy, stupid)”라는 선거 슬로건을 들고 나온 빌 클린턴에 밀려 재선에 실패했다. 경제고통지수를 보면 재선 실패의 주요 원인이 경제 문제임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출마 당시 전국적으론 무명의 아칸소주 주지사였던 클린턴과 그의 선거 참모들은 경제 문제가 조지 HW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임을 간파하고 이 부분을 집중 공략했다. 그 덕분에 현직 대통령, 그것도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 인물을 누르고 민주당의 정권 탈환에 성공했다.
그의 아들인 조지 W 부시(2001~2008년)는 지수가 취임 첫 달 7.93에서 임기 마지막인 2008년 12월 7.39로 0.54의 소폭이 줄었으며 평균은 8.11이었다. 그는 임기 내내 경제가 그런대로 좋았으며 약간 나아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첫 임기 때 9.11테러와 아프가니스탄전, 이라크전을 겪었던 조지 W 부시는 무난히 재선에 성공했다. 재임 중 지수가 가장 향상된 대통령은 해리 트루먼(1948~1952년)으로 둘째 임기 취임 당시 지수가 13.68이었으며 임기를 마칠 때는 3.45로 무려 10.18이나 줄었다. 평균도 7.88이었다.
카터 재임 때 경제고통지수 높아
예루살렘=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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