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홍진기 창조인상 시상식] 한국인의 창조성 빛낸 영광의 3인
[제10회 홍진기 창조인상 시상식] 한국인의 창조성 빛낸 영광의 3인
박은정 경희대 교수, 최장욱 서울대 교수, 손열음 피아니스트 영예 안아 “이 상이 선물해준 기적이 전 인류의 희망이 되도록, 제게 주어진 숙제를 최선을 다해 수행하겠습니다.” 5월 8일 서울 중구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제10회 홍진기 창조인상 시상식에서 사회 부문 상을 받은 박은정(52)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 융합건강과학과 교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수상 소감을 밝혔다. 박 교수는 여성·흙수저·경력단절·만학·비정규직 등 몇 겹의 ‘유리천장’을 잇따라 뚫어낸 인물이다. 그는 2016년부터 3년 연속으로 글로벌 정보분석기업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옛 톰슨 로이터)가 선정한 ‘연구성과 세계 상위 1% 연구자(HCR)’에 선정됐고 그 결과 50세에 정규직 교수가 됐다. 박 교수는 “과학자에게 사회 분야의 상을 준 건 내 이웃의 행복에 기여할 수 있는 연구를 해야 한다는 의미”라며 “연구자, 사회인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나가겠다”고 말했다.
홍진기 창조인상은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 발전기에 정부·기업·언론 분야에서 창조적인 삶을 실천하는 데 힘을 쏟았던 유민(維民) 홍진기(1917~86) 전 중앙일보 회장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2010년 제정됐다. 과학기술, 사회, 문화예술의 3개 부문으로 나눠 시상하고 있다.
과학기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최장욱(44) 서울대 화학생명공학부 교수는 2차전지 분야에서 연구 결과를 속속 내놓고 있는 젊은 과학자다. 특히 전기차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 수 있는 알루미늄 기반의 차세대 2차전지 시스템을 개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최 교수는 “기초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창조력을 발휘해 2차전지와 관련된 더 좋은 아이디어가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정진하겠다”고 말했다.
문화예술 부문 수상자인 손열음(33) 피아니스트는 클래식 음악계의 인기 스타다. 5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2011년 차이콥스키 국제피아노콩쿠르 준우승 등 주요 상을 휩쓸었다. 지난해에는 국내 대표 클래식 음악제인 평창 대관령음악제의 최연소 예술감독으로 취임해 기획·섭외·해설·연주의 1인 4역을 도맡아 하면서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그는 “남들이 만든 무대에만 서다가 직접 무대를 만드는 창조적 작업을 했는데 힘들었지만, 매우 신났다. 믿고 지지해준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창조인상 심사위원장인 이홍구 유민문화재단 이사장은 환영사에서 “수상자들이 미래를 밝혀줄 희망의 등불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창조인상은 초심을 지켜가며 한국인의 창조성을 북돋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업적을 쌓은 촉망받는 젊은이들의 창조력을 인정해 상을 주자는 취지로 제정한 상이 어느덧 10회째를 맞았다”며 “앞으로 창조인상이 50회, 100회까지 이어져 수상자 중에 노벨상 수상자, 세계 문화계의 리더, 대한민국을 일류국가로 이끌어줄 지도자들이 나오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은정 교수는 나노물질의 독성 분야에서 뛰어난 과학자다. 글로벌 정보분석기업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옛 톰슨 로이터)가 선정한 ‘연구성과 세계 상위 1% 연구자(HCR)’에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으로 올랐다. 박 교수의 총 논문 수는 국제 과학논문 색인(SCI)급만 74건, 국내 저널을 합치면 94건에 이른다. 2011년에는 한국연구재단이 주관하는‘대통령 포스닥 펠로우십’에 처음으로 선정됐다. 연구 역량이 최고조에 달한 비정규적 과학자들에게 초기 일자리와 연구비를 지원해주기 위해 정부가 추진한 사업이다. 2015년에는 지식창조 대상을 받기도 했다. 당시 김빛내리 서울대 교수에 이어 두번째 여성과학자였으며, 비정규직 연구자로서는 최초였다.
이쯤되면 나노독성 분야의 대표적 석학이자 고참 교수처럼 보이지만, 2017년 말까지만 하더라도 경기도 한 4년제 대학의 ‘무급 연구강사’ 신분이었다. 말이 강사이지, 해당 대학 교수의 실험실 귀퉁이를 빌려 쓰는 셋방살이 신세였다. 그것도 실험 재료비를 직접 부담하는 조건이었다. 연구비는 한국연구재단에서 나오는 연간 5000만원이 전부였다. 세계 상위 1% 연구자나, 대통령 포스닥 펠로우십이라는 성과와 경력에도 어느 대학에서도 그를 정식 교수로 부르지 않았다.
이유가 있었다. 박 교수는 명문대 출신도, 해외 유학파도 아니었다. 더구나 ‘경력단절’ 여성 과학자였다. 모교 동덕여대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박사학위를 받은 건 마흔이 돼서였다. 그 사이 취직과 결혼·육아, 양가 부모님 병간호 등으로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박사학위를 마칠 때 SCI급 해외 저널에 5편의 논문을 싣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이후에도 불러주는 곳이 없어 이곳저곳 비정규직 연구자 신세를 거쳐야 했다.
‘기적 아닌 기적’은 2017년 11월 일어났다. 중앙일보가 ‘5겹 유리천장에 갇혔지만, 세계 1% 논문 쓴 경단녀 박사’라는 기사를 보도하면서였다. KAIST를 비롯한 국내 주요 대학들 사이에 교수 영입 경쟁이 벌어졌다. 결국 박 교수가 선택한 곳은 경희대 동서의학전문대학원이었다. 경희대는 박 교수를 테뉴어 정교수로 모셨다.
박 교수는 요즘 연구자 외에 다른 일이 생겨 더 바빠졌다. 자신처럼 경력 단절과 여성 차별 속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멘토 활동이 대표적이다. 고려대 이공계 여학생 네트워크 등 대학생들을 위한 특강과 행정안전부 주관 실패박람회의 홍보대사, EBS ‘질문있는 특강쇼- 빅뱅’ 출연, 차세대 융합기술원 융함문화콘서트 참여 등의 활동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있다.
박 교수는 “절망의 끝에서 포기할 즈음에 기적처럼 교수가 돼 나만의 랩을 가지고 학생들과 함께 연구를 할 수 있게 됐다”며 “결혼·육아 등으로 경력단절이 된 연구자들에겐 포기하지 말라고 얘기해주고 싶기도 하지만, 그와 함께 실력있는 연구자들을 배경만 가지고 판단하지 않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전기차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배터리가 ‘제2의 반도체’로 주목받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전기차 시장 규모는 올해 200만대에서 2025년 1100만대로 5배 이상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은 13억 거대 내수시장을 가진 중국 업체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삼성SDI와 LG화학 등 국내 업체들도 사활을 건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최장욱(44) 서울대 화학생명공학부 교수는 이런 세계 배터리 경쟁의 최선두에 서 있는 과학기술인이다. 그는 노벨 화학상 수상자(2016년)인 미국 노스웨스턴대 프레이저 스토다트 교수와 공동 연구로, 지난해 알루미늄 기반의 차세대 2차전지 시스템을 개발해 국제 학술지 ‘네이처 에너지’에 논문을 게재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현재 상용화된 리튬이온 전지는 가격이 비싸다. 전기차값의 절반이 배터리 가격이다. 최 교수는 가격이 저렴하고 전기 발생 능력은 뛰어난 알루미늄에 주목했다. 내구성이 떨어지는 알루미늄 전지 전극 소재의 결정적 단점은 삼각형 모양의 유기 분자 구조를 만들어 극복했다. 최 교수의 연구가 상용화되면 현재 400㎞를 달릴 수 있는 배터리 주행거리가 600~800㎞로 늘어날 수 있다.
서울대 제2 공학관 연구실에서 만난 최 교수는 “전기차 시대의 핵심은 배터리에 있다”며 “배터리의 효율을 높여 주행거리를 연장할 수 있는 새로운 핵심 재료를 가진 사람이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배터리 부분의 핵심 특허 확보와 공정 노하우, 이를 통한 수율 확보에 기여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에서 화학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토다트 교수는 박사 과정 시절 지도교수이기도 하다. 최 교수의 박사 논문은 스승의 전공 분야인 분자기계를 메모리 디바이스에 적용한 것이었다. 이후 시카고대와 스탠퍼드대 박사후연구원 등을 거쳐 2010년 귀국했다. KAIST 교수가 된 그는 스승 스토다트 교수와 함께 분자 구조로 새로운 배터리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고안했다. 분자기계의 일종인 도르래 고분자 소재를 2차전지에 적용해 2017년에는 세계적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에 논문을 게재하기도 했다. 2차전지 분야에서는 매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구현한 연구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최 교수에겐 연구과제가 넘쳐난다. 차세대 배터리 연구를 위한 국가 연구개발(R&D) 과제뿐 아니라, 삼성SDI·LG화학 등 2차전지 관련 국내외 기업들도 최 교수를 찾아와 공동연구를 의뢰한다. 최 교수는 “스승인 스토다트 교수가 세계적 석학이지만 2016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을지는 몰랐는데 정말 놀랐다”며 “스승의 분자기계 연구가 새로운 배터리 소재 연구에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프랑스·스위스·터키·미국…. 최근 1년간 피아니스트 손열음(33)이 연주 여행을 다닌 곳들이다. 그가 세계적인 연주자일 뿐만 아니라 음악제 기획자, TV프로그램 진행자, 문필가이기도 하다는 것을 생각하면 하루 24시간도 충분할까 싶다. 잠자는 시간도 줄이고 있다는 그는 유민 홍진기 창조인상 수상 소식에, 간신히 시간을 쪼개 잠시 귀국했다.
“창조성을 잃지 않고 자랄 수 있게 도와주신 부모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는 귀국 전 독일 하노버에서 보낸 e메일에서 이렇게 수상 소감을 전했다. 성장 과정에서 창조의 영감을 얻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그가 지난해 대관령 음악제 최연소 예술감독이 되어 가장 먼저 손을 본 곳도 학생을 위한 아카데미였으리라. 거장으로부터 레슨을 받는 기존의 마스터클래스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문학 교실을 만들어 학생들이 음악가로서 균형 있게 성장하도록 한 것이다.
물론 손열음의 본업은 피아니스트다. 그는 5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2009년 반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준우승하고 2011년 차이콥스키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준우승과 함께 주요 상들을 휩쓸어 주목을 받았다. 생기 넘치고 힘찬 연주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창조인으로서의 진가가 더욱 드러난 것은 지난해 3월 정명화·정경화에 이어 평창 대관령 음악제의 예술감독이 되면서였다. 어린 나이에 무거운 직책을 맡아 주변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 하지만 지난 1년간 여름과 겨울 대관령 음악제를 치르고 나니, 대한민국에 필요한 젊고 신선한 대표 클래식 콘서트로 자리매김했다는 평이다. 그를 추천한 인사들은 “풍부한 인문학 소양과 모험심으로 클래식 음악과 예술의 지평을 넓혔다”고 평가했다.
손열음은 예술감독으로서 프로그램 기획과 예술가 섭외는 물론, 피아니스트로서 직접 연주도 하고 프로그램북에 들어갈 곡 해설도 직접 써서 관객들에게서 “소장하고 싶은 프로그램북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실 글쓰기는 손 감독이 “손으로 하는 일 중에 피아노 치는 것 다음으로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음악은 예술 분야에서 가장 추상적인 개념이고 반대로 글은 가장 이성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는 분야여서 상호보완이 많이 되는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손 감독은 지난해 7월부터 MBC TV 의 ‘TV 예술 무대’의 진행자도 맡았다. 앞서 6월에는 세계적 권위의 이탈리아 ‘제62회 부조니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선 심사위원장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것이 음악제를 더 창의적으로 기획하고 홍보하기 위해 하는 일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는 “음악제의 지향점은 한 예술가의 그것과도 닮아 있다”며 “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더 좋고 나쁘고를 떠나 유일무이한 고유의 색깔을 자리 잡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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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기 창조인상은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 발전기에 정부·기업·언론 분야에서 창조적인 삶을 실천하는 데 힘을 쏟았던 유민(維民) 홍진기(1917~86) 전 중앙일보 회장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2010년 제정됐다. 과학기술, 사회, 문화예술의 3개 부문으로 나눠 시상하고 있다.
과학기술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최장욱(44) 서울대 화학생명공학부 교수는 2차전지 분야에서 연구 결과를 속속 내놓고 있는 젊은 과학자다. 특히 전기차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 수 있는 알루미늄 기반의 차세대 2차전지 시스템을 개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최 교수는 “기초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창조력을 발휘해 2차전지와 관련된 더 좋은 아이디어가 현실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정진하겠다”고 말했다.
문화예술 부문 수상자인 손열음(33) 피아니스트는 클래식 음악계의 인기 스타다. 5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2011년 차이콥스키 국제피아노콩쿠르 준우승 등 주요 상을 휩쓸었다. 지난해에는 국내 대표 클래식 음악제인 평창 대관령음악제의 최연소 예술감독으로 취임해 기획·섭외·해설·연주의 1인 4역을 도맡아 하면서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그는 “남들이 만든 무대에만 서다가 직접 무대를 만드는 창조적 작업을 했는데 힘들었지만, 매우 신났다. 믿고 지지해준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창조인상 심사위원장인 이홍구 유민문화재단 이사장은 환영사에서 “수상자들이 미래를 밝혀줄 희망의 등불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창조인상은 초심을 지켜가며 한국인의 창조성을 북돋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업적을 쌓은 촉망받는 젊은이들의 창조력을 인정해 상을 주자는 취지로 제정한 상이 어느덧 10회째를 맞았다”며 “앞으로 창조인상이 50회, 100회까지 이어져 수상자 중에 노벨상 수상자, 세계 문화계의 리더, 대한민국을 일류국가로 이끌어줄 지도자들이 나오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사회 부문 박은정 경희대 교수 | 경단녀 박사, 세계1% 논문 쓰다
이쯤되면 나노독성 분야의 대표적 석학이자 고참 교수처럼 보이지만, 2017년 말까지만 하더라도 경기도 한 4년제 대학의 ‘무급 연구강사’ 신분이었다. 말이 강사이지, 해당 대학 교수의 실험실 귀퉁이를 빌려 쓰는 셋방살이 신세였다. 그것도 실험 재료비를 직접 부담하는 조건이었다. 연구비는 한국연구재단에서 나오는 연간 5000만원이 전부였다. 세계 상위 1% 연구자나, 대통령 포스닥 펠로우십이라는 성과와 경력에도 어느 대학에서도 그를 정식 교수로 부르지 않았다.
이유가 있었다. 박 교수는 명문대 출신도, 해외 유학파도 아니었다. 더구나 ‘경력단절’ 여성 과학자였다. 모교 동덕여대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박사학위를 받은 건 마흔이 돼서였다. 그 사이 취직과 결혼·육아, 양가 부모님 병간호 등으로 학교를 제대로 다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박사학위를 마칠 때 SCI급 해외 저널에 5편의 논문을 싣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이후에도 불러주는 곳이 없어 이곳저곳 비정규직 연구자 신세를 거쳐야 했다.
‘기적 아닌 기적’은 2017년 11월 일어났다. 중앙일보가 ‘5겹 유리천장에 갇혔지만, 세계 1% 논문 쓴 경단녀 박사’라는 기사를 보도하면서였다. KAIST를 비롯한 국내 주요 대학들 사이에 교수 영입 경쟁이 벌어졌다. 결국 박 교수가 선택한 곳은 경희대 동서의학전문대학원이었다. 경희대는 박 교수를 테뉴어 정교수로 모셨다.
박 교수는 요즘 연구자 외에 다른 일이 생겨 더 바빠졌다. 자신처럼 경력 단절과 여성 차별 속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멘토 활동이 대표적이다. 고려대 이공계 여학생 네트워크 등 대학생들을 위한 특강과 행정안전부 주관 실패박람회의 홍보대사, EBS ‘질문있는 특강쇼- 빅뱅’ 출연, 차세대 융합기술원 융함문화콘서트 참여 등의 활동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있다.
박 교수는 “절망의 끝에서 포기할 즈음에 기적처럼 교수가 돼 나만의 랩을 가지고 학생들과 함께 연구를 할 수 있게 됐다”며 “결혼·육아 등으로 경력단절이 된 연구자들에겐 포기하지 말라고 얘기해주고 싶기도 하지만, 그와 함께 실력있는 연구자들을 배경만 가지고 판단하지 않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과학기술 부문 최장욱 서울대 교수 | 차세대 차 배터리 기술, 알루미늄서 찾다
최장욱(44) 서울대 화학생명공학부 교수는 이런 세계 배터리 경쟁의 최선두에 서 있는 과학기술인이다. 그는 노벨 화학상 수상자(2016년)인 미국 노스웨스턴대 프레이저 스토다트 교수와 공동 연구로, 지난해 알루미늄 기반의 차세대 2차전지 시스템을 개발해 국제 학술지 ‘네이처 에너지’에 논문을 게재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현재 상용화된 리튬이온 전지는 가격이 비싸다. 전기차값의 절반이 배터리 가격이다. 최 교수는 가격이 저렴하고 전기 발생 능력은 뛰어난 알루미늄에 주목했다. 내구성이 떨어지는 알루미늄 전지 전극 소재의 결정적 단점은 삼각형 모양의 유기 분자 구조를 만들어 극복했다. 최 교수의 연구가 상용화되면 현재 400㎞를 달릴 수 있는 배터리 주행거리가 600~800㎞로 늘어날 수 있다.
서울대 제2 공학관 연구실에서 만난 최 교수는 “전기차 시대의 핵심은 배터리에 있다”며 “배터리의 효율을 높여 주행거리를 연장할 수 있는 새로운 핵심 재료를 가진 사람이 시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배터리 부분의 핵심 특허 확보와 공정 노하우, 이를 통한 수율 확보에 기여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에서 화학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토다트 교수는 박사 과정 시절 지도교수이기도 하다. 최 교수의 박사 논문은 스승의 전공 분야인 분자기계를 메모리 디바이스에 적용한 것이었다. 이후 시카고대와 스탠퍼드대 박사후연구원 등을 거쳐 2010년 귀국했다. KAIST 교수가 된 그는 스승 스토다트 교수와 함께 분자 구조로 새로운 배터리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고안했다. 분자기계의 일종인 도르래 고분자 소재를 2차전지에 적용해 2017년에는 세계적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에 논문을 게재하기도 했다. 2차전지 분야에서는 매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구현한 연구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이런 최 교수에겐 연구과제가 넘쳐난다. 차세대 배터리 연구를 위한 국가 연구개발(R&D) 과제뿐 아니라, 삼성SDI·LG화학 등 2차전지 관련 국내외 기업들도 최 교수를 찾아와 공동연구를 의뢰한다. 최 교수는 “스승인 스토다트 교수가 세계적 석학이지만 2016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을지는 몰랐는데 정말 놀랐다”며 “스승의 분자기계 연구가 새로운 배터리 소재 연구에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문화예술 부문 손열음 피아니스트 | “직접 무대 만드는 창조작업 신나”
“창조성을 잃지 않고 자랄 수 있게 도와주신 부모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는 귀국 전 독일 하노버에서 보낸 e메일에서 이렇게 수상 소감을 전했다. 성장 과정에서 창조의 영감을 얻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그가 지난해 대관령 음악제 최연소 예술감독이 되어 가장 먼저 손을 본 곳도 학생을 위한 아카데미였으리라. 거장으로부터 레슨을 받는 기존의 마스터클래스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문학 교실을 만들어 학생들이 음악가로서 균형 있게 성장하도록 한 것이다.
물론 손열음의 본업은 피아니스트다. 그는 5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2009년 반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준우승하고 2011년 차이콥스키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준우승과 함께 주요 상들을 휩쓸어 주목을 받았다. 생기 넘치고 힘찬 연주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창조인으로서의 진가가 더욱 드러난 것은 지난해 3월 정명화·정경화에 이어 평창 대관령 음악제의 예술감독이 되면서였다. 어린 나이에 무거운 직책을 맡아 주변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컸다. 하지만 지난 1년간 여름과 겨울 대관령 음악제를 치르고 나니, 대한민국에 필요한 젊고 신선한 대표 클래식 콘서트로 자리매김했다는 평이다. 그를 추천한 인사들은 “풍부한 인문학 소양과 모험심으로 클래식 음악과 예술의 지평을 넓혔다”고 평가했다.
손열음은 예술감독으로서 프로그램 기획과 예술가 섭외는 물론, 피아니스트로서 직접 연주도 하고 프로그램북에 들어갈 곡 해설도 직접 써서 관객들에게서 “소장하고 싶은 프로그램북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실 글쓰기는 손 감독이 “손으로 하는 일 중에 피아노 치는 것 다음으로 가장 좋아하는 일”이다. “음악은 예술 분야에서 가장 추상적인 개념이고 반대로 글은 가장 이성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는 분야여서 상호보완이 많이 되는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손 감독은 지난해 7월부터 MBC TV 의 ‘TV 예술 무대’의 진행자도 맡았다. 앞서 6월에는 세계적 권위의 이탈리아 ‘제62회 부조니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선 심사위원장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것이 음악제를 더 창의적으로 기획하고 홍보하기 위해 하는 일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그는 “음악제의 지향점은 한 예술가의 그것과도 닮아 있다”며 “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더 좋고 나쁘고를 떠나 유일무이한 고유의 색깔을 자리 잡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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