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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만 웃는 ‘긱 이코노미’

기업만 웃는 ‘긱 이코노미’

노동자는 소득 불확실하고, 임금도 정규직에 비해 낮으며, 피고용자 위한 노동 보호도 받지 못해
미국 노동자는 거의 4분의 1이 긱 근로자다. / 사진:AP/YONHAP
세계 최대의 차량공유업체 우버는 지난 5월 30일 기업공개(IPO) 후 처음으로 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10억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지만 대체로 시장의 기대에 부응했고 앞으로 손실이 줄어들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큰 걱정이 없을 듯하다.

그러나 우버 운전기사들은 상황이 좋지 않다. 조사에 따르면 뉴욕시의 우버 기사 중 약 절반은 자녀를 포함한 가족을 부양한다. 하지만 40%는 저소득층 의료보장제도인 메디케이드, 18%는 식비 보조제도인 푸드 스탬프의 혜택을 받을 정도로 가계 재정 상태가 열악하다.

새로운 미국 경제에서는 그외 다른 부분도 사정이 비슷하다. 얼마 전 뉴욕타임스는 구글에서 일하는 사람 중 정규 상근(풀타임) 직원은 절반 미만이라고 보도했다. 대다수는 임시직과 도급계약직으로 임금과 수당이 정규 직원과 비교가 되지 않으며 고용 보장도 받지 못한다.

미국 전역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새로운 일자리는 긱(gig)이다. 도급계약, 파트타임, 임시직, 자영업, 프리랜스 등 독립형 일자리를 말한다. 긱 일자리를 찾아주는 인력파견 업체에 소속된 사람도 늘고 있다. 그래서 새로운 미국 경제를 긱 경제(gig economy)라고 부른다. 긱 경제는 기업이 수요에 따라 계약직 또는 임시직으로 사람을 고용하는 경제 형태다. 우버, 포스트메이츠, 아마존 플렉스 등이 대표적인 긱 경제 기업이다. 직접 직원을 고용해서 사업이나 서비스를 운영하지 않고 계약직이나 임시직을 한시적으로 고용해 서비스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추정 통계가 차이 날 수 있지만 미국 노동자의 거의 4분의 1이 긱 근로자(gig worker)다. 실업률과 소득 등 표준 경제지표가 미국인이 피부로 느끼는 것보다 더 나아 보이는 것도 부분적으로는 그 때문이다.

오늘날의 일자리 문제는 인상되지 않는 임금에 국한되지 않는다. 불확실한 소득도 그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다. 수요가 감소하거나 소비자 선호도가 변하거나, 또는 노동자가 상해를 입거나 병에 걸리면 그의 향후 임금이 사라질 수 있다. 더구나 미국인의 약 80%는 모아 둔 자산 없이 그때 그때 받은 급여로 살아가는 형편이다.

조사에 따르면 미국 노동자 중에서 앞으로 생계를 꾸리기가 힘들지 않을까 걱정하는 비율이 약 25%에 이른다. 10년 전에는 15%였다. 그런 두려움이 미국을 비롯해 안정된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는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노동계층의 불만을 부채질한다.
지난 5월 8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의 우버 본부 앞에서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는 우버·리프트의 운전기사들. / 사진:AP/YONHAP
긱 경제는 또 미국에서 85년에 걸쳐 어렵게 쟁취한 피고용자를 위한 노동 보호장치도 없애버린다.

긱 일자리가 성장하는 속도를 보면 향후 세대는 최저임금과 실업보험, 산재보험, 퇴직연금, 초과근무 수당, 유급 육아휴직, 병가, 장애보험, 노조결성·단체협상 권리를 보장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날까? 정규 직원보다 긱 근로자를 사용하는 것이 기업에 큰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긱 근로자의 임금은 정규직에 비해 약 30% 낮다. 회사가 필요할 때만 사용하고, 사용한 기간 만큼만 임금을 지급하며, 앞에서 말한 피고용자를 위한 노동 보호에 지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기업은 회사의 경쟁력을 책임지는 혁신 전문가와 전략가 등 소수 ‘인재’만 필요로 할 것이다.

다른 노동자는 대체가 가능한 인력이다. 그들은 신뢰성과 저비용을 기준으로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일할 것이다.

우버나 구글 같은 회사로서는 아주 좋은 조건이다. 그들 회사가 급여와 근무조건을 마음대로 정하고 직원을 도급업자처럼 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그런 일이 임금 절도에 해당한다.

미국 정부에 ‘진정한’ 노동부가 존재한다면 이런 추세를 막기 위한 범국가적인 기준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노동부는 완전히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간다. 최근에는 대기업이 임시직과 인력파견 회사를 활용하거나 완료된 작업에 대해 계약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등 회사가 법을 위반할 때도 책임을 면하기가 더 쉽도록 하는 규정을 제안했다. 노동부가 아니라 ‘반(反)노동부’라고 부를 만하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주는 다른 문제에서도 그렇지만 이 사안과 관련해서도 트럼프 정부에 반기를 들었다.

최근 캘리포니아 주 하원은 주 대법원의 중요한 판결을 입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캘리포니아 주 대법원은 배송업체 다이나멕스와 관련해 내린 판결에서 피고용자를 독립 계약자로 분류하려면 고용주는 피고용자가 회사의 지시를 받지 않는다는 점, 업무 성격이 회사의 핵심업무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 피고용자가 독자적으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점 등을 입증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런 요건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피고용자를 독립 계약자로 분류할 경우 고용주는 적절한 임금 지급을 회피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주 대법원은 밝혔다. 회사가 수요에 따라 계약직 또는 임시직으로 고용한 직원이더라도 위에서 제시한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정규 직원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법안이 효력을 발휘하려면 캘리포니아 주 상원을 통과한 뒤 주지사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현재 업계는 그 법안에서 우버 같은 승차공유 운전기사와 IT 도급 계약직 노동자 등 많은 예외 조항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긱 근로자를 규정하는 범국가적인 규정이 마련되더라도 안정적인 정규직 고용이 표준인 경우와는 완전히 다른 사회보험 시스템이 필요할 것이다.

- 로버트 라이시



※ [필자는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공공정책대학원 교수이며,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장관을 지냈다. 이 기사의 내용은 필자 개인의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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