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nt

진정한 ‘캘리포니아 요리’는 이곳에서

진정한 ‘캘리포니아 요리’는 이곳에서

젊음과 에너지 넘치는 캘리포니아 음식 문화 대표하는 레스토랑 8곳과 요리사들미국 캘리포니아의 음식 문화는 내가 자라고 교육받은 유럽의 전통과 판이해서 마음에 든다. 유럽에서는 규칙을 따르라고 배웠지만 캘리포니아에서는 음식이 보기 좋고 맛있기만 하면 규칙은 별로 따지지 않는다. 요리사가 얼마든지 재미있고도 역동적으로 재량을 펼칠 수 있다.

난 각양각색의 음식을 자유롭게 혼합하는 그들의 과감성을 존경한다. 캘리포니아처럼 다양한 민족이 섞여 살아가는 곳에서만 꽃필 수 있는 문화가 아닐까 생각한다. 또 플레이팅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지역에서 생산하는 제철 과일과 채소를 중시한다는 점도 좋다.

캘리포니아 음식 문화에는 요리의 전통과 역사가 깊은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젊음과 에너지가 있다. 이곳의 요리가 세계 무대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건 50년 정도밖에 안 됐다. 그 이전 캘리포니아 요리는 외국인에겐 대체로 햄버거와 싸구려 식당 음식으로 인식되는 ‘미국 요리’라는 큰 테두리로 분류됐다. 당시 캘리포니아 요리사들은 주로 외국 음식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하지만 오늘날 캘리포니아 요리는 매우 독창적이고 역동적이다. 캘리포니아 요리의 얼굴을 바꿔놓은 레스토랑 8곳과 그 대표 요리사들을 소개한다.
 셰 파니스(CHEZ PANISSE)
셰 파니스는 캘리포니아 요리의 탄생지로 널리 인정받는다. 이 레스토랑의 창업자인 앨리스 워터스(사진)는 국제 요리계에서 영향력이 큰 인물이다. 그녀는 1971년 8월 버클리에 셰 파니스를 열었다. 좋은 재료로 만든 단순한 지중해식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이 레스토랑은 처음엔 소박하게 시작했지만 캘리포니아 음식 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음식에 좋은 재료를 쓰려는 워터스의 열정과 노력은 캘리포니아의 농장 네트워크를 활성화시켰다. 캘리포니아의 농장들은 지난 50년 동안 번창해 요즘 이 지역의 요리사들은 신선한 농산물을 풍부하게 공급받는다.

워터스가 없었다면 ‘농장에서 식탁까지’ 운동도 없었을 것이다. 또 캘리포니아의 훌륭한 요리사 다수가 셰 파니스에서 그녀의 가르침을 받았다. 셰 파니스는 요즘도 캘리포니아와 지중해식을 혼합한 요리로 인기가 높다. 아래층엔 고급 레스토랑이, 위층엔 캐주얼한 스타일의 카페가 자리 잡고 있다.
 주니 카페(ZUNI CAFE)
주니 카페는 창업 40주년을 맞은 샌프란시스코의 또 다른 유서 깊은 식당이다. 이 식당을 1980년대 샌프란시스코 요식업계의 대표주자로 자리 잡게 만든 사람은 2013년 작고한 요리사 주디 로저스(사진)다. 그녀가 셰 파니스 출신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하다. 그녀의 요리 스타일은 셰 파니스의 제철 재료를 이용한 단순한 지중해식을 기본으로 하지만 캘리포니아의 특징이 확연히 드러난다.

주니 카페의 로스트 치킨과 겨자잎·커런트·잣을 넣은 웜브레드 샐러드는 먼 곳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유명하다. 벽돌 오븐에 나무를 때서 구워 껍질이 바삭바삭한 닭도 맛이 기막히지만 그 육즙에 빵을 흠뻑 적셔 먹는 맛이 일품이다. 거기에 짭짤하면서도 달콤쌉쌀한 샐러드를 곁들이면 금상첨화다.
 스파고(SPAGO)
워터스와 로저스가 샌프란시스코의 음식 문화를 바꿔놓는 동안 볼프강 퍽(사진)은 로스앤젤레스(LA)에서 음식 혁신을 일으켰다. 오스트리아 태생인 퍽은 프랑스에서 요리를 배웠지만 캘리포니아식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스타일의 요리를 개발한 선두주자 중 한 명이다. 그는 프랑스 전통 스타일을 중시하지만 그의 음식에선 미국 서해안의 편안함이 느껴진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최상의 재료만을 사용하고 유럽식 요리에 아시아와 남미의 맛을 과감하게 혼합했다. 다양한 민족이 섞여서 살아가는 LA의 분위기에서 영향을 받은 게 분명하다.

1980년대 초반 문을 연 스파고는 곧 LA에서 가장 인기 있는 레스토랑으로 떠올랐다. 요즘도 캘리포니아 피자(퍽이 개발한 요리 중 가장 잘 알려졌다)와 이탈리아 전통 피자 베이스에 훈제연어, 크렘 프레슈, 캐비어, 케이퍼, 딜 등 색다른 토핑을 얹은 피자로 큰 사랑을 받는다.
 고기 바비큐 타코 트럭(KOGI BBQ TACO TRUCK)
고기 바비큐 타코 트럭의 인기는 LA의 음식 문화가 얼마나 진취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야기는 2008년 한국 태생 요리사 로이 최(한국명 최성문, 사진)와 기막히게 맛 좋은 그의 한국식 갈비 타코에서 시작된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두 음식의 결합은 LA였기에 가능했을 듯하다. 서울에서 나고 LA에서 자란 로이 최는 한국의 불고기와 갈비에 어린 시절 LA 길거리에서 사 먹던 멕시코 음식 타코를 어떻게 결합하면 좋을지를 본능적으로 알았다.

로이 최의 그다음 천재적 발상은 그 타코를 푸드 트럭에서 팔기로 하고, 당시만 해도 잘 안 알려졌던 소셜미디어 앱 트위터로 그 위치를 홍보한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고기 바비큐 타코 트럭은 곧 큰 인기를 끌면서 LA 음식에 돌풍을 일으켰다. 이 길거리 식당은 한국과 멕시코 음식의 퓨전 열풍을 이끌었을 뿐 아니라 푸드 트럭 보편화의 길잡이가 됐다. 고기 바비큐 타코 트럭의 등장 이후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세계 곳곳에서 속속 생겨나는 푸드 트럭이 세계인의 외식 문화에 극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걸 목격했다.
 타르틴 베이커리(TARTINE BAKERY)
샌프란시스코의 안개 속엔 야생 효모가 떠다녀 이 도시에서 만드는 빵이 독특한 맛을 낸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이 사실이든 아니든 샌프란시스코식 사워도우(시큼한 맛이 나는 반죽, 또는 그것으로 만든 빵)는 세계적으로 이름이 높다. 타르틴 베이커리의 채드 로버트슨(사진)은 현대의 샌프란시스코 사워도우 대부로 인정받는다. 그는 2002년 샌프란시스코 미션 지역에 타르틴 베이커리 1호점을 연 뒤 근처에 타르틴 매뉴팩토리(카페 겸 레스토랑 겸 베이커리)를 개점했다. LA에 타르틴 베이커리 2호점도 문을 열었다.

캘리포니아 요리의 선구자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로버트슨도 프랑스에서 제빵 기술을 배웠지만 미국으로 돌아온 후엔 그 전통에 얽매이지 않았다. 반죽의 높은 수분 함량과 긴 발효 시간은 프랑스 전통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그의 빵은 현재 샌프란시스코 사워도우의 표준으로 인정받으며 깊고 시큼한 빵 맛이 아주 훌륭하다. 거무스름한 빵 껍질은 거의 숯처럼 보이지만 안쪽은 매우 촉촉하고 말랑말랑하다.
 스컬(SQIRL)
제시카 코슬로우(사진)의 소박한 이 카페는 2011년 문을 연 이후 캘리포니아 요리의 보루가 됐다. 카페 앞에는 차례를 기다리는 손님들이 거의 온종일 장사진을 친다. 오후 4시까지만 주문을 받는 브렉퍼스트 메뉴가 특히 인기다. 리코타 치즈와 잼을 올린 브리오슈 토스트에 달콤 짭짤한 포리지(마른 곡식에 물이나 우유를 부어 죽처럼 끓인 음식)를 곁들이는 식이다. 또 알록달록한 색깔의 각종 샐러드와 라이스 보울, 두툼한 샌드위치들도 꽤 맛있다. 음료 메뉴도 훌륭하고 카페 분위기가 편안하면서도 매력적이다.
 젤리나(GJELINA)
LA 주민에게 캘리포니아 요리를 맛보기에 가장 좋은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십중팔구 젤리나라고 답할 것이다. 이 멋진 레스토랑은 LA 웨스트사이드에서 가장 부르주아적인 거리로 꼽히는 베니스 비치의 애벗키니에 있다. 주방장 트래비스 레트(사진)는 처음부터 좋은 재료를 고집했고 그의 요리는 캘리포니아 남부의 우아한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다.

채소를 중심으로 한 건강한 메뉴는 식감과 맛의 균형을 절묘하게 맞추고 보기에도 아름다운 그의 독창적 요리로 가득하다. 그릴에 구운 케일에 민트 요거트와 헤이즐넛을 곁들인 요리, 로스팅한 회향에 블러드 오렌지와 꽃가루를 곁들인 요리, 쐐기풀과 고추, 폰티나 치즈를 얹은 화덕 피자 등등.
 플랜트 푸드와인(PLANT FOODWINE)
플랜트 푸드+와인은 역사는 짧지만 식물 기반 음식에 대한 캘리포니아 주민의 욕구가 얼마나 진화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베니스 비치 애벗키니 거리의 젤리나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있는 이 레스토랑은 분위기도 아주 멋지다. 메튜 케니(사진)를 비롯한 숙련된 요리사들이 더 세련된 식물 기반 요리를 선보이는 데 최선을 다한다. 그 멋지고 독창적인 요리들이 모두 식물 기반 재료로 만들어졌다는 게 놀랍다. 김치 만두(시금치 가루와 어린 코코넛 과육으로 만든 피로 감쌌다), 토마토와 주키니 호박으로 만든 라자냐 등이 눈길을 끌고 식물 기반 치즈도 다양하다.

- 엘리너 메이드먼트



※ [필자는 영국 런던에서 활동하는 음식 전문 작가 겸 스타일리스트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애플의 中 사랑?…팀 쿡, 올해만 세 번 방중

2 “네타냐후, 헤즈볼라와 휴전 ‘원칙적’ 승인”

3“무죄판결에도 무거운 책임감”…떨리는 목소리로 전한 이재용 최후진술은

4中 “엔비디아 중국에서 뿌리내리길”…美 반도체 규제 속 협력 강조

5충격의 중국 증시…‘5대 빅테크’ 시총 한 주 만에 57조원 증발

6이재용 ‘부당합병’ 2심도 징역 5년 구형…삼성 공식입장 ‘無’

7격화하는 한미사이언스 경영권 갈등…예화랑 계약 두고 형제·모녀 충돌

8“이번엔 진짜다”…24년 만에 예금자보호 1억원 상향 가닥

9로앤굿, 국내 최초 소송금융 세미나 ‘엘피나’ 성료

실시간 뉴스

1애플의 中 사랑?…팀 쿡, 올해만 세 번 방중

2 “네타냐후, 헤즈볼라와 휴전 ‘원칙적’ 승인”

3“무죄판결에도 무거운 책임감”…떨리는 목소리로 전한 이재용 최후진술은

4中 “엔비디아 중국에서 뿌리내리길”…美 반도체 규제 속 협력 강조

5충격의 중국 증시…‘5대 빅테크’ 시총 한 주 만에 57조원 증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