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의학으로 암 잡는다
정밀의학으로 암 잡는다
유전 정보를 토대로 환자 특유의 종양에 초점 맞춰 불치병 정복에 한 발 다가섰다. 하지만 대중화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정밀의학이 암환자 수만 명의 삶을 바꿔놓고 있다. 일례로 에너지 넘치는 작업치료사(일상생활 동작 훈련을 통한 재활훈련 지도) 린다 보예드는 하와이로 가족 휴가를 떠나 한껏 들떠 있었다. 바닷물에 뛰어들고 장시간 산책을 즐겼다. 하지만 계속 피로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오하이오주 콜럼버스 인근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피부가 노랗게 변해 있었다. 담당의는 그녀를 암 전문의에게 보냈고 그에게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해 들었다. 간의 담관암이 이미 너무 많이 퍼져 화학요법이나 수술도 소용없다는 진단이었다. 의사는 삶의 마지막 남은 몇 달 동안 마음 편히 지내라고 권유했다.
보예드의 남편은 진단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오하이오주 암센터에서 소화관암에 대한 실험적 약제의 연구를 하던 의사를 찾아냈다. 보예드는 그의 임상시험에 등록했다. 그녀의 종양에 대한 유전자 검사 결과 FGFR(섬유아세포성장인자수용체)이라는 유전자에서 돌연변이가 나타났다. 그것이 암의 성장을 촉진할 가능성이 컸다. 의사는 FGFR 돌연변이의 활동을 억제하기 위해 그녀에게 BGJ398이라는 실험 약제를 투약했다. 그랬더니 증상이 말끔히 사라지고 종양의 성장이 멈추면서 빠졌던 체중이 되돌아왔다.
3년 전 일이다. 요즘 보예드는 그 이야기를 할 때면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지금은 기본적으로 정상적인 삶을 산다. 최근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암에 걸리기 전보다 오히려 지난해 일을 더 많이 한 것 같다.”실험실에서 새로운 암치료제가 등장하고 임상시험에 돌입하면서 보예드 같은 스토리가 미국 각지에서 펼쳐진다. 암환자들이 천편일률적인 화학요법과 방사선 처방을 받던 시절은 곧 과거지사가 될지 모른다. 대신 의사들은 환자와 암에 따라 각각 어떤 약과 치료법이 주효할지에 더 초점을 맞춘다. 이 같은 이른바 정밀의학 또는 개인 맞춤형 의학은 궁극적으로 의사가 (환자와 종양 모두의) 유전자 검사를 통해 주효할 확률이 가장 높은 약제나 치료법을 찾아낸다는 구상이다.
현재 많은 질병에 정밀의학 기법을 적용하지만 암치료에서 그 영향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연구원들은 종양에 나타나는 유전자와 유전적 돌연변이 리스트를 늘려가면서 그 성장을 멈출 수 있는 약제와 연결 짓는다. 치료제로 겨냥할 수 있는 암유전자가 현재 수십 종에 달하며 과학자들이 수백 가지를 더 열성적으로 추적한다. 한때 사실상의 사망선고로 간주하던 몇몇 암의 경우 전망이 밝아졌다. 폐암 환자의 절반가량이 새로운 유전자 기반 치료법에 좋은 반응을 보이며 그중 절반은 암이 재발하지 않는다. 보예드를 살린 FGFR 억제제는 담관암뿐 아니라 몇몇 유형의 방광·폐·유방·자궁 암에서도 가능성을 보여줬다. 보예드의 목숨을 구한 암전문의 사미크 로이초우두리는 “FGFR 억제제 대상으로만 6건의 시험이 지금 진행 중”이라며 “올해 말에는 20건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십 년간 단속적으로 진행하던 암연구 분야에서 정밀의학의 발전은 정말로 반가운 뉴스다. 그러나 오해는 말자. ‘치료제’는 아직 없다. 의학이 암을 정복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진행암 진단을 받은 환자(암이 전이된 환자)의 경우 신약이 암에 작용하도록 만드는 것으로 알려진 유전자를 지닌 사람은 10명 중 1명에 불과하다. 로이초우두리 박사는 “유전체 검사에 기초한 새로운 치료법을 모든 환자에게 제공하는 것이 목표지만 우리가 실시하는 유전체 검사 10건 중 9건의 결과에 대한 맞춤 치료를 어떻게 제공할지 모른다”고 말했다.대다수 환자는 그런 10%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많은 의사가 아직 그 분야의 노하우가 부족해 정밀의학 치료의 빗장을 열 수 있는 유전자 검사를 하지 못한다. 비용 또한 걸림돌이다. 보험사들이 검사 비용을 제대로 환급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유전자 검사를 받는 암 환자는 전체의 10%에 불과하다. 정밀의학은 미국에서 매년 암 진단을 받는 약 200만 명 중 기껏해야 몇 %에만 도움을 준다. 그리고 전 세계 1700만 명의 암 환자 중에서는 그 비율이 훨씬 줄어든다.
의사들은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치료 대상 환자 수를 늘리려 한다. 유전자 검사가 쏟아내는 데이터가 너무 많아 박사 부대가 와도 그것을 모두 파악하지 못한다. 인공지능은 그렇게 많은 데이터를 마이너스 요인에서 플러스 요인으로 바꿔놓는다. 과학자들은 요즘 암 종양의 약점을 찾아내는 과업을 ‘딥러닝’(사람처럼 스스로 학습하도록 하는 신경망 기반 기계학습법) 소프트웨어에 넘겨 수백만 건의 유전자 검사 결과와 환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종양 유전자, 암의 성장, 특정 약제 간의 관계를 찾아낼 수 있다.
로스앤젤레스 교외의 ‘시티 오브 호프 내셔널 메디컬 센터’(이하 시티 오브 호프)는 2년 이내에 미국 대형병원 최초로 센터를 찾는 연간 9000명의 암 환자 모두에게 일일이 종양에 대한 유전체 검사를 할 계획이다. 내원하는 암 환자에게 치료 옵션을 제공하는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외과의사인 시티 오브 호프 원장 마이클 칼리규리는 “현미경으로는 똑같아 보이는 종양도 유전체 관점에선 전혀 달라 보인다”며 “다르게 취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다른 병원들도 그 뒤를 따르면 많은 양의 데이터가 쏟아져 나온다. 인공지능에 입력되는 원료다. 전형적인 인간 유전체의 2만 개 유전자는 30억 개의 DNA 뉴클레오티드 즉 정보조각을 포함한다. 이 중 어느 것이든 무수한 방식으로 변이를 일으키거나 중복되거나 이동해 암을 유발할 수 있다. 인체의 수십억 개 세포마다 나름의 유전체를 갖고 있으며 저마다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DNA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DNA는 청사진이지만 우리 세포의 진짜 일꾼은 단백질이다. 우리 생체활동의 거의 모두를 통제하는 복잡한 분자다. 단백질은 종양의 성장 그리고 그와 싸우는 면역체계의 작용을 모두 관리한다. 무려 600만 개의 염기성 단백질과 그 변형이 있으며 과학자들은 현재 암 조직 샘플에서 그중 수천 개를 직접 측정해 그 정보를 딥러닝 프로그램에 입력한다.
텍사스주 어빙 소재 캐리스 라이프 사이언스(이하 캐리스)의 데이비드 스페츨러 최고과학책임자(CSO)는 “약물이 유전자가 아니라 단백질을 겨냥한다”며 “바로 거기서 암을 이해하는 데 가장 큰 발전이 이뤄지며 향후 5년 사이 우리가 수집하는 가장 유용한 정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밴더빌트대학 메디컬센터를 이끄는 외과의사 제프리 밸서 박사는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심층 지식이 테이블에 올라온다”고 말했다.
딥러닝 알고리즘의 작동방식은 과학자들과 다르다. 자신들이 분석하는 암의 바탕을 이루는 생체작용의 ‘이해’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 특정 유형 암 환자의 조직 샘플에서 다량의 정보를 흡수해 그 환자들의 궁극적인 운명(누가 어떤 치료법에 반응하고 반응하지 않는지)과 그 정보의 상관관계를 찾는다. 일종의 모 아니면 도 식의 연관 짓기 작업이지만 많은 양의 데이터를 토대로 수천 회를 반복적으로 실시한다. 컴퓨터가 그 데이터에서 인간은 못 보는 패턴을 잡아내 가령 FGFR 유전자의 존재를 담관의 특정암과 연결 지을 수 있다.
예컨대 스페츨러 CSO의 회사 캐리스는 딥러닝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단백질에 초점을 맞춘 데이터 분석을 전문으로 한다. 활용 가능한 암 환자 17만 명의 데이터에서 유용한 정보를 뽑아내기 위해 캐리스는 각종 딥러닝 알고리즘 수백 개를 동원한다. 이 프로그램들은 기본적으로 서로 경쟁하며 어떤 환자에게 어떤 약이 가장 효과적일지 보여주는 패턴을 데이터에서 찾아낸다. 스페츨러 CSO는 “알고리즘마다 놓치는 환자가 있겠지만 함께 작업하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인공지능은 생검으로 채취한 조직 샘플의 슬라이드 읽는 법을 학습함으로써 환자를 신약과 짝 지우는 방법에 대한 또 다른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그 슬라이드는 원래 병리학자들이 현미경으로 판독하면서 세포의 생김새를 토대로 암을 진단해왔다. 이른바 ‘머신러닝’(기계의 자율적인 학습과 성능향상 과정) 프로그램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뉴클리아이(Nucleai)라는 이스라엘 회사는 2000만 개의 디지털화된 생검 슬라이드로 소프트웨어를 훈련시켜 암을 인식하도록 했다. 암 진단에서 97%의 정확도를 나타낸다.
암 진단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뉴클리아이 CEO 애비 바이드만은 말한다. 이젠 인공지능을 이용해 슬라이드에서 병리학자가 할 때보다 더 많은 정보를 추출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환자를 신약과 연결 지을 수 있는 정보다. 이스라엘 첩보부대 소속으로 20년간 위성 이미지에서 미사일 기지와 테러 활동을 인식하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다가 3년 전 암으로 관심을 돌린 바이드만 CEO는 “의사나 소프트웨어가 효과적인 치료법을 예측하려 할 때는 그 세포 조직의 정보를 대부분 이용하지 않는다”며 “인공지능은 이미지 속의 다양한 특징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분석해 숨겨진 패턴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환자의 암세포와 면역체계 세포 간 싸움의 미묘한 흔적을 소프트웨어가 잡아낼 수 있다고 그는 설명한다. 여러 가지 면역요법 신약 중 하나에 암이 약점을 드러낼지 그 신호가 기본적인 단서를 줄 수 있다. 말하자면 암과 직접 싸워 치료하는 약이 아니라 환자의 면역체계를 강화해 종양을 공격할 수 있도록 하는 약이다.
한국의 루닛이라는 회사가 병리를 분석해 예컨대 면역 관문 억제제(checkpoint inhibitors)라는 비교적 신종 암 치료제에 어떤 환자가 반응할지 예측할 수 있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면역 관문 억제제는 암세포가 환자의 면역세포를 차단하지 못 하게 할 수 있는 약제다. 루닛은 이 소프트웨어가 유전자 데이터만 사용하는 검사보다 50% 더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외과의사인 서범석 CEO는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며 “이 소프트웨어는 사람이 인지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면서 생물학적 의미를 지닌 패턴을 찾아낸다”고 말했다.X선, 자기공명영상(MRI) 그리고 기타 이미지 데이터를 판독하는 인공지능 기반 시스템에서도 비슷한 발전이 일어나고 있다. 휴스턴 소재 MD 앤더슨 암센터의 병리학자 지영옥은 “고도로 숙달된 방사선과 의사만큼 유방 X선 사진을, 피부과 의사만큼 피부암을 능숙하게 판독하는 알고리즘이 존재한다”며 “경이적인 발전”이라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그 이미지들은 또한 인공지능 시스템이 암진단을 뛰어넘어 환자 특유의 암이 가진 취약성의 힌트를 찾아내도록 도울 수 있다.
딥러닝 알고리즘은 머신러닝 프로그램보다 더 많은 데이터를 보고 더 철저히 분석한다. 이들은 영화 ‘흡혈 식물 대소동’에서 식욕이 무한 증가하는 굶주린 식물 시모어를 다소 닮았다. 연구원과 임상의들은 현재 무려 25만 명의 암 환자에서 수집한 정보가 담긴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그것으로는 한참 부족하다.
환자 유전체 내 수천 개의 다양한 돌연변이가 암이 어떻게 발생할지, 어떤 치료제가 효과적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 각 암세포는 움직이는 표적이다. 계속 새로운 돌연변이를 일으켜 면역세포를 피하고 강력한 암 치료제를 이겨낼 수 있게 한다.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특정 패턴을 인식할 수 있으려면 수천 건의 예제가 필요하다. 그리고 특정 돌연변이 패턴은 불과 수천 명의 환자에게서만 발생할지 모른다. 따라서 소프트웨어가 환자 수백만 명의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어야 더 빠른 발전을 이를 공산이 크다. 캘리포니아대학(로스앤젤레스) 존슨 종합 암센터에서 암 데이터 연구팀을 이끄는 외과의사 폴 부트로스 박사는 “지금은 종양이 어떻게 발전할지 그리고 어떤 치료법이 효과적일지 예측할 수 있지만 현재로선 그런 예측의 상당 부분이 빗나간다”고 말했다.리서치센터와 병원 간에 국제암유전체컨소시엄, 종양학연구정보교환네트워크, 실행가능한유전체컨소시엄 같은 이름의 협력사업이 다수 생겨나 환자 정보를 공유한다. 환자의 허가를 받아 수집한 뒤 개인 식별 정보를 삭제한 이 데이터는 궁극적으로 과학자들이 필요한 정보의 최소 필요수준을 충족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시티 오브 호프의 칼리규리 원장은 “이 모든 다양한 데이터 네트워크가 서로 연결돼 네트워크의 네트워크가 되는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고 말했다. 임상의들도 자신들이 치료하는 환자와 비슷한 환자를 찾아 무엇이 효과적인지 확인하기 위해 그 데이터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는 “컴퓨터에 환자의 암 관련 정보를 입력하면 분자 수준에서 전 세계의 비슷한 사례 50가지가 화면에 뜰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환자들이 접근하지 못하면 의학은 소용없다. 연구원들은 신약 출시를 앞당기려고 인공지능을 이용해 신약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임상시험 참가자를 모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신약시험 지연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다. 신약을 시험할 그룹뿐 아니라 비교 목적으로 표준 치료를 받을 또 다른 ‘대조군’도 필요하다. 새로운 정밀 약제가 유망하더라도 신약이 특정한 환자 그룹에 실제로 효과가 있음을 증명하는 데 여러 해가 걸릴 수 있다.연구원들은 시간 단축을 위해 아예 대조군을 모집하지 않아도 되도록 고성능 통계·컴퓨터 모델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대신 과거 연구에서 생성된 데이터를 조합해 실제 대조군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측한다. 그 통계 툴을 설계한 메디데이터 솔루션스의 글렌 드 브리스 사장은 “인공 대조군에서 얻는 결과는 시험에 실제로 대조군 환자들을 모집해 같은 의사와 조건을 적용한 것처럼 신뢰성이 높다”고 말했다.
임상의와 연구원들이 치명적이고 가장 침습성 강한 암에 대한 정밀 치료법을 찾으려 애쓰면서 겪는 시험 병목현상을 완화하기에는 그 정도론 부족하다. 예컨대 뇌종양인 교모세포종은 진단 후 생존 기간 중앙값이 15개월로 모든 주요 암 중 가장 낮다. 혈액-뇌장벽(blood-brain barrier)을 통과해 교모세포종에 도달할 수 있는 약을 개발하기만도 까다로운 일이다. 이 병은 진행 속도가 대단히 빨라 실험약이 효과적인지 아닌지 확인할 만한 시간도 거의 없을 정도다.
피닉스 소재 배로 신경학 연구소에 신설된 아이비 뇌종양 센터는 뇌종양 환자 대상의 ‘가속 시험(accelerated trials)’을 개발했다. 교모세포종을 겨냥한 실험적 정밀약물의 효과를 더 많이 테스트하기 위해서다. 새로 진단을 받은 환자에게 먼저 실험적 정밀 약제 일회분을 투여한다. 투약 분량은 환자에게 해를 입히지 않을 만큼 적지만(신약에 항상 따르는 위험인 독성이 나타날 경우에 대비해) 종양에 도달하기에는 충분하다. 수술 후 의사들은 종양을 검사해 약효를 확인한다. 효과가 있을 경우는 투약 분량을 계속 늘려가고 없을 경우엔 또 다른 치료절차를 택할 시점을 찾는다. 아이비 센터의 네이더 사나이 국장은 “효과적인 약물을 찾는 데는 속도가 열쇠”라고 말했다. 이 같은 접근방식에서 개인 맞춤치료가 탄생해 악성 수막종이라는 일종의 뇌종양을 이겨낸 환자도 있다.이 모든 접근법을 조합하면 정밀의료가 대다수 암을 정복하는 날이 가까워졌나 싶겠지만 조만간 그날이 오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개인맞춤 치료로의 전환은 주효할 확률이 거의 없는 치료의 고통을 면케 해줌으로써 거의 모든 암 환자에게 혜택을 준다. 듀크대학 암센터 진단병리학과 스탠리 로보이 부학과장은 “유전체나 기타 검사 결과를 보고 환자의 종양이 치료에 반응할지 않을지 미리 알 수 있다면 100명의 환자 중 한 명만 반응하더라도 99명의 환자에게 불필요한 합병증과 비용을 면해준 셈”이라며 “이들 약값이 최대 10만 달러에 달해 가정의 파산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 대다수 진행암 환자들은 그런 사소한 혜택조차 받지 못한다. 건강보험 회사들은 비용이 최대 1만 달러에 달할 수 있는 유전자 검사는 어떻게든 보험대상에서 제외하려 한다. 로이초우두리 박사는 “메디케어(고령자 대상 의료보험)와 몇몇 보험사가 보험을 일부 적용하기 시작했다”며 “하지만 검사비를 환급받는 과정이 상당히 번거로우며 그 첨단 검사를 보험에 포함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거의 모든 전문가가 어디서나 그것이 암의 표준 진료가 돼야 한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미국의 대다수 일류 암센터에서 모든 환자에게 그 검사를 통상적으로 제공하지 않는 한 가지 이유다.어떤 환자가 종양 검사를 통해 유망한 정밀 신약과 궁합이 맞는 결과가 나왔을 때도 보험사들이 종종 약값을 지불하지 않는다고 로이초우두리 박사는 말한다. 보험사들은 장기간의 시험 후 표준 치료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약에만 보험을 적용한다. 보예드와 그 밖에 다수의 목숨을 구한 유의 FGFR 억제제는 여전히 환급받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 보예드의 경우처럼 공식 신약시험에 참가한 환자는 보통 약을 무료로 받는다. 그러나 몇몇 경우 악성 진행성 암 환자들(실험 약제가 가장 필요한 사람들)은 시험에서 배제된다. 제약회사와 심지어 의학자들도 결과를 실패 쪽으로 몰아갈까 우려해 심한 중증 환자는 시험에 포함하려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치료의 걸림돌은 비용뿐이 아니다. 미국 암 환자의 약 85%가 커뮤니티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암전문의가 아주 다양한 유형의 암을 상대하는 곳이다. 그런 일반의들은 통상적으로 최신 검사나 치료법에 밝지 않다고 칼리규리 원장은 말한다. 병원 측에선 그들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그런 트렌드를 따라가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높은 평가를 받는 암센터에선 환자 중 최대 25%까지 새로 나온 정밀 약품을 처방하지만 대다수 커뮤니티 병원에선 그 비율이 제로에 가깝다.환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칼리규리 원장은 “막 암 진단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 내가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중요한 말은 자신에게 생긴 암 유형의 전문의에게 한 번 더 진단받은 다음에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첫 번째 치료가 맞지 않을 경우 종양에 다제내성이 생겨 그 치료제뿐 아니라 먼저 복용했다면 효과가 있었을지 모르는 다른 치료제도 무용지물이 된다.” 커뮤니티 병원의 암전문의들에게 다른 치료방안을 물으면 치료부터 먼저 시작하는 게 최선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잠시만 치료를 미루면 오히려 목숨을 구할 수 있는 데도 그러다가 회복확률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환자의 우려를 이용하는 의사도 있다.
밴더빌트대학의 암센터는 정밀의학 프로그램에 커뮤니티 병원 암전문의들의 참여를 확대함으로써 이 문제의 해결에 힘쓴다. ‘Its My Cancer Genome’이라는 웹사이트는 특정 암 환자에 맞는 새로운 치료제와 시험이 있는지 의사와 환자들이 알아보도록 정보를 제공한다. 4000건의 임상시험이 리스트에 올라 있다. 밴터빌트 센터의 발서 박사는 “도움이 되지 않는 치료제를 복용한 환자들이 우리를 찾아오면 마음이 아프다”며 “그 시점에선 환자가 진퇴양난에 처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뒷수습뿐”이라고 말했다. 다른 많은 일류 암센터와 마찬가지로 밴더빌트 센터도 지역의 커뮤니티 병원들과 제휴를 맺고 정밀의료 노하우, 유전자 검사, 신약 시험을 활용할 수 있도록 병원들을 후원한다. 밴더빌트 센터는 5개 주의 70개 가까운 병원과 그런 관계를 구축했다.갈수록 늘어나는 정밀의학 접근방식도 암이 애당초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막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양전자방출 단층촬영(PET scans)과 같은 일부 영상 기법의 감도와 해상도가 높아져 새로 생긴 극히 작은 암세포 군집을 포착할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방사선을 집중 주사할 경우 즉석에서 날려버릴 정도로 작은 암세포 군집들이다. 그런 치료법은 편리할 뿐 아니라 합병증도 적을 것이다.
유전 정보를 보기 위해 암에 걸릴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 모두가 일상적으로 유전자검사를 받아 어떤 암에 걸릴 위험이 큰지 확인하면 비용이 7000달러가 넘을 수 있는 PET 스캔 같은 검사를 선택적으로 받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유전자 검사 자체는 너무 비싸거나 23앤드미 같은 일반 소비자 대상 유전자검사 기업의 경우 전 국민에게 확대하자고 하기에는 너무 허술하다. 그러나 연구원과 바이오테크 기업들이 유전자 검사 비용을 줄이고 정확도를 높이는 데 힘쓴다. 칼리규리 원장은 “우리가 어떤 암의 발생 위험이 큰지 알 수 있다면 3년마다 받는 검사로 인생이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암에 걸릴 경우 정밀의학이 안성맞춤 치료제를 찾아주리라고 생각하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암 환자는 인생 말년에 단순히 마음 편히 지내는 것보다 앞날을 더 많이 기대할 수 있다. 보예드가 그런 진단을 받아서 인생역전을 하지 않았던가?
- 데이비드 H. 프리드먼 뉴스위크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보예드의 남편은 진단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오하이오주 암센터에서 소화관암에 대한 실험적 약제의 연구를 하던 의사를 찾아냈다. 보예드는 그의 임상시험에 등록했다. 그녀의 종양에 대한 유전자 검사 결과 FGFR(섬유아세포성장인자수용체)이라는 유전자에서 돌연변이가 나타났다. 그것이 암의 성장을 촉진할 가능성이 컸다. 의사는 FGFR 돌연변이의 활동을 억제하기 위해 그녀에게 BGJ398이라는 실험 약제를 투약했다. 그랬더니 증상이 말끔히 사라지고 종양의 성장이 멈추면서 빠졌던 체중이 되돌아왔다.
3년 전 일이다. 요즘 보예드는 그 이야기를 할 때면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지금은 기본적으로 정상적인 삶을 산다. 최근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암에 걸리기 전보다 오히려 지난해 일을 더 많이 한 것 같다.”실험실에서 새로운 암치료제가 등장하고 임상시험에 돌입하면서 보예드 같은 스토리가 미국 각지에서 펼쳐진다. 암환자들이 천편일률적인 화학요법과 방사선 처방을 받던 시절은 곧 과거지사가 될지 모른다. 대신 의사들은 환자와 암에 따라 각각 어떤 약과 치료법이 주효할지에 더 초점을 맞춘다. 이 같은 이른바 정밀의학 또는 개인 맞춤형 의학은 궁극적으로 의사가 (환자와 종양 모두의) 유전자 검사를 통해 주효할 확률이 가장 높은 약제나 치료법을 찾아낸다는 구상이다.
현재 많은 질병에 정밀의학 기법을 적용하지만 암치료에서 그 영향이 가장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연구원들은 종양에 나타나는 유전자와 유전적 돌연변이 리스트를 늘려가면서 그 성장을 멈출 수 있는 약제와 연결 짓는다. 치료제로 겨냥할 수 있는 암유전자가 현재 수십 종에 달하며 과학자들이 수백 가지를 더 열성적으로 추적한다. 한때 사실상의 사망선고로 간주하던 몇몇 암의 경우 전망이 밝아졌다. 폐암 환자의 절반가량이 새로운 유전자 기반 치료법에 좋은 반응을 보이며 그중 절반은 암이 재발하지 않는다. 보예드를 살린 FGFR 억제제는 담관암뿐 아니라 몇몇 유형의 방광·폐·유방·자궁 암에서도 가능성을 보여줬다. 보예드의 목숨을 구한 암전문의 사미크 로이초우두리는 “FGFR 억제제 대상으로만 6건의 시험이 지금 진행 중”이라며 “올해 말에는 20건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십 년간 단속적으로 진행하던 암연구 분야에서 정밀의학의 발전은 정말로 반가운 뉴스다. 그러나 오해는 말자. ‘치료제’는 아직 없다. 의학이 암을 정복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진행암 진단을 받은 환자(암이 전이된 환자)의 경우 신약이 암에 작용하도록 만드는 것으로 알려진 유전자를 지닌 사람은 10명 중 1명에 불과하다. 로이초우두리 박사는 “유전체 검사에 기초한 새로운 치료법을 모든 환자에게 제공하는 것이 목표지만 우리가 실시하는 유전체 검사 10건 중 9건의 결과에 대한 맞춤 치료를 어떻게 제공할지 모른다”고 말했다.대다수 환자는 그런 10%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 많은 의사가 아직 그 분야의 노하우가 부족해 정밀의학 치료의 빗장을 열 수 있는 유전자 검사를 하지 못한다. 비용 또한 걸림돌이다. 보험사들이 검사 비용을 제대로 환급하지 않는다. 이런 까닭에 유전자 검사를 받는 암 환자는 전체의 10%에 불과하다. 정밀의학은 미국에서 매년 암 진단을 받는 약 200만 명 중 기껏해야 몇 %에만 도움을 준다. 그리고 전 세계 1700만 명의 암 환자 중에서는 그 비율이 훨씬 줄어든다.
의사들은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치료 대상 환자 수를 늘리려 한다. 유전자 검사가 쏟아내는 데이터가 너무 많아 박사 부대가 와도 그것을 모두 파악하지 못한다. 인공지능은 그렇게 많은 데이터를 마이너스 요인에서 플러스 요인으로 바꿔놓는다. 과학자들은 요즘 암 종양의 약점을 찾아내는 과업을 ‘딥러닝’(사람처럼 스스로 학습하도록 하는 신경망 기반 기계학습법) 소프트웨어에 넘겨 수백만 건의 유전자 검사 결과와 환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종양 유전자, 암의 성장, 특정 약제 간의 관계를 찾아낼 수 있다.
로스앤젤레스 교외의 ‘시티 오브 호프 내셔널 메디컬 센터’(이하 시티 오브 호프)는 2년 이내에 미국 대형병원 최초로 센터를 찾는 연간 9000명의 암 환자 모두에게 일일이 종양에 대한 유전체 검사를 할 계획이다. 내원하는 암 환자에게 치료 옵션을 제공하는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외과의사인 시티 오브 호프 원장 마이클 칼리규리는 “현미경으로는 똑같아 보이는 종양도 유전체 관점에선 전혀 달라 보인다”며 “다르게 취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다른 병원들도 그 뒤를 따르면 많은 양의 데이터가 쏟아져 나온다. 인공지능에 입력되는 원료다. 전형적인 인간 유전체의 2만 개 유전자는 30억 개의 DNA 뉴클레오티드 즉 정보조각을 포함한다. 이 중 어느 것이든 무수한 방식으로 변이를 일으키거나 중복되거나 이동해 암을 유발할 수 있다. 인체의 수십억 개 세포마다 나름의 유전체를 갖고 있으며 저마다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DNA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DNA는 청사진이지만 우리 세포의 진짜 일꾼은 단백질이다. 우리 생체활동의 거의 모두를 통제하는 복잡한 분자다. 단백질은 종양의 성장 그리고 그와 싸우는 면역체계의 작용을 모두 관리한다. 무려 600만 개의 염기성 단백질과 그 변형이 있으며 과학자들은 현재 암 조직 샘플에서 그중 수천 개를 직접 측정해 그 정보를 딥러닝 프로그램에 입력한다.
텍사스주 어빙 소재 캐리스 라이프 사이언스(이하 캐리스)의 데이비드 스페츨러 최고과학책임자(CSO)는 “약물이 유전자가 아니라 단백질을 겨냥한다”며 “바로 거기서 암을 이해하는 데 가장 큰 발전이 이뤄지며 향후 5년 사이 우리가 수집하는 가장 유용한 정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밴더빌트대학 메디컬센터를 이끄는 외과의사 제프리 밸서 박사는 “믿기지 않을 만큼 많은 심층 지식이 테이블에 올라온다”고 말했다.
딥러닝 알고리즘의 작동방식은 과학자들과 다르다. 자신들이 분석하는 암의 바탕을 이루는 생체작용의 ‘이해’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 특정 유형 암 환자의 조직 샘플에서 다량의 정보를 흡수해 그 환자들의 궁극적인 운명(누가 어떤 치료법에 반응하고 반응하지 않는지)과 그 정보의 상관관계를 찾는다. 일종의 모 아니면 도 식의 연관 짓기 작업이지만 많은 양의 데이터를 토대로 수천 회를 반복적으로 실시한다. 컴퓨터가 그 데이터에서 인간은 못 보는 패턴을 잡아내 가령 FGFR 유전자의 존재를 담관의 특정암과 연결 지을 수 있다.
예컨대 스페츨러 CSO의 회사 캐리스는 딥러닝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단백질에 초점을 맞춘 데이터 분석을 전문으로 한다. 활용 가능한 암 환자 17만 명의 데이터에서 유용한 정보를 뽑아내기 위해 캐리스는 각종 딥러닝 알고리즘 수백 개를 동원한다. 이 프로그램들은 기본적으로 서로 경쟁하며 어떤 환자에게 어떤 약이 가장 효과적일지 보여주는 패턴을 데이터에서 찾아낸다. 스페츨러 CSO는 “알고리즘마다 놓치는 환자가 있겠지만 함께 작업하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인공지능은 생검으로 채취한 조직 샘플의 슬라이드 읽는 법을 학습함으로써 환자를 신약과 짝 지우는 방법에 대한 또 다른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그 슬라이드는 원래 병리학자들이 현미경으로 판독하면서 세포의 생김새를 토대로 암을 진단해왔다. 이른바 ‘머신러닝’(기계의 자율적인 학습과 성능향상 과정) 프로그램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뉴클리아이(Nucleai)라는 이스라엘 회사는 2000만 개의 디지털화된 생검 슬라이드로 소프트웨어를 훈련시켜 암을 인식하도록 했다. 암 진단에서 97%의 정확도를 나타낸다.
암 진단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뉴클리아이 CEO 애비 바이드만은 말한다. 이젠 인공지능을 이용해 슬라이드에서 병리학자가 할 때보다 더 많은 정보를 추출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환자를 신약과 연결 지을 수 있는 정보다. 이스라엘 첩보부대 소속으로 20년간 위성 이미지에서 미사일 기지와 테러 활동을 인식하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다가 3년 전 암으로 관심을 돌린 바이드만 CEO는 “의사나 소프트웨어가 효과적인 치료법을 예측하려 할 때는 그 세포 조직의 정보를 대부분 이용하지 않는다”며 “인공지능은 이미지 속의 다양한 특징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분석해 숨겨진 패턴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환자의 암세포와 면역체계 세포 간 싸움의 미묘한 흔적을 소프트웨어가 잡아낼 수 있다고 그는 설명한다. 여러 가지 면역요법 신약 중 하나에 암이 약점을 드러낼지 그 신호가 기본적인 단서를 줄 수 있다. 말하자면 암과 직접 싸워 치료하는 약이 아니라 환자의 면역체계를 강화해 종양을 공격할 수 있도록 하는 약이다.
한국의 루닛이라는 회사가 병리를 분석해 예컨대 면역 관문 억제제(checkpoint inhibitors)라는 비교적 신종 암 치료제에 어떤 환자가 반응할지 예측할 수 있는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 면역 관문 억제제는 암세포가 환자의 면역세포를 차단하지 못 하게 할 수 있는 약제다. 루닛은 이 소프트웨어가 유전자 데이터만 사용하는 검사보다 50% 더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외과의사인 서범석 CEO는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며 “이 소프트웨어는 사람이 인지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면서 생물학적 의미를 지닌 패턴을 찾아낸다”고 말했다.X선, 자기공명영상(MRI) 그리고 기타 이미지 데이터를 판독하는 인공지능 기반 시스템에서도 비슷한 발전이 일어나고 있다. 휴스턴 소재 MD 앤더슨 암센터의 병리학자 지영옥은 “고도로 숙달된 방사선과 의사만큼 유방 X선 사진을, 피부과 의사만큼 피부암을 능숙하게 판독하는 알고리즘이 존재한다”며 “경이적인 발전”이라고 말했다. 궁극적으로 그 이미지들은 또한 인공지능 시스템이 암진단을 뛰어넘어 환자 특유의 암이 가진 취약성의 힌트를 찾아내도록 도울 수 있다.
딥러닝 알고리즘은 머신러닝 프로그램보다 더 많은 데이터를 보고 더 철저히 분석한다. 이들은 영화 ‘흡혈 식물 대소동’에서 식욕이 무한 증가하는 굶주린 식물 시모어를 다소 닮았다. 연구원과 임상의들은 현재 무려 25만 명의 암 환자에서 수집한 정보가 담긴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그것으로는 한참 부족하다.
환자 유전체 내 수천 개의 다양한 돌연변이가 암이 어떻게 발생할지, 어떤 치료제가 효과적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 각 암세포는 움직이는 표적이다. 계속 새로운 돌연변이를 일으켜 면역세포를 피하고 강력한 암 치료제를 이겨낼 수 있게 한다. 인공지능 소프트웨어가 특정 패턴을 인식할 수 있으려면 수천 건의 예제가 필요하다. 그리고 특정 돌연변이 패턴은 불과 수천 명의 환자에게서만 발생할지 모른다. 따라서 소프트웨어가 환자 수백만 명의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어야 더 빠른 발전을 이를 공산이 크다. 캘리포니아대학(로스앤젤레스) 존슨 종합 암센터에서 암 데이터 연구팀을 이끄는 외과의사 폴 부트로스 박사는 “지금은 종양이 어떻게 발전할지 그리고 어떤 치료법이 효과적일지 예측할 수 있지만 현재로선 그런 예측의 상당 부분이 빗나간다”고 말했다.리서치센터와 병원 간에 국제암유전체컨소시엄, 종양학연구정보교환네트워크, 실행가능한유전체컨소시엄 같은 이름의 협력사업이 다수 생겨나 환자 정보를 공유한다. 환자의 허가를 받아 수집한 뒤 개인 식별 정보를 삭제한 이 데이터는 궁극적으로 과학자들이 필요한 정보의 최소 필요수준을 충족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시티 오브 호프의 칼리규리 원장은 “이 모든 다양한 데이터 네트워크가 서로 연결돼 네트워크의 네트워크가 되는 수준에 이르러야 한다”고 말했다. 임상의들도 자신들이 치료하는 환자와 비슷한 환자를 찾아 무엇이 효과적인지 확인하기 위해 그 데이터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는 “컴퓨터에 환자의 암 관련 정보를 입력하면 분자 수준에서 전 세계의 비슷한 사례 50가지가 화면에 뜰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환자들이 접근하지 못하면 의학은 소용없다. 연구원들은 신약 출시를 앞당기려고 인공지능을 이용해 신약개발에 박차를 가한다. 임상시험 참가자를 모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신약시험 지연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다. 신약을 시험할 그룹뿐 아니라 비교 목적으로 표준 치료를 받을 또 다른 ‘대조군’도 필요하다. 새로운 정밀 약제가 유망하더라도 신약이 특정한 환자 그룹에 실제로 효과가 있음을 증명하는 데 여러 해가 걸릴 수 있다.연구원들은 시간 단축을 위해 아예 대조군을 모집하지 않아도 되도록 고성능 통계·컴퓨터 모델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대신 과거 연구에서 생성된 데이터를 조합해 실제 대조군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측한다. 그 통계 툴을 설계한 메디데이터 솔루션스의 글렌 드 브리스 사장은 “인공 대조군에서 얻는 결과는 시험에 실제로 대조군 환자들을 모집해 같은 의사와 조건을 적용한 것처럼 신뢰성이 높다”고 말했다.
임상의와 연구원들이 치명적이고 가장 침습성 강한 암에 대한 정밀 치료법을 찾으려 애쓰면서 겪는 시험 병목현상을 완화하기에는 그 정도론 부족하다. 예컨대 뇌종양인 교모세포종은 진단 후 생존 기간 중앙값이 15개월로 모든 주요 암 중 가장 낮다. 혈액-뇌장벽(blood-brain barrier)을 통과해 교모세포종에 도달할 수 있는 약을 개발하기만도 까다로운 일이다. 이 병은 진행 속도가 대단히 빨라 실험약이 효과적인지 아닌지 확인할 만한 시간도 거의 없을 정도다.
피닉스 소재 배로 신경학 연구소에 신설된 아이비 뇌종양 센터는 뇌종양 환자 대상의 ‘가속 시험(accelerated trials)’을 개발했다. 교모세포종을 겨냥한 실험적 정밀약물의 효과를 더 많이 테스트하기 위해서다. 새로 진단을 받은 환자에게 먼저 실험적 정밀 약제 일회분을 투여한다. 투약 분량은 환자에게 해를 입히지 않을 만큼 적지만(신약에 항상 따르는 위험인 독성이 나타날 경우에 대비해) 종양에 도달하기에는 충분하다. 수술 후 의사들은 종양을 검사해 약효를 확인한다. 효과가 있을 경우는 투약 분량을 계속 늘려가고 없을 경우엔 또 다른 치료절차를 택할 시점을 찾는다. 아이비 센터의 네이더 사나이 국장은 “효과적인 약물을 찾는 데는 속도가 열쇠”라고 말했다. 이 같은 접근방식에서 개인 맞춤치료가 탄생해 악성 수막종이라는 일종의 뇌종양을 이겨낸 환자도 있다.이 모든 접근법을 조합하면 정밀의료가 대다수 암을 정복하는 날이 가까워졌나 싶겠지만 조만간 그날이 오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개인맞춤 치료로의 전환은 주효할 확률이 거의 없는 치료의 고통을 면케 해줌으로써 거의 모든 암 환자에게 혜택을 준다. 듀크대학 암센터 진단병리학과 스탠리 로보이 부학과장은 “유전체나 기타 검사 결과를 보고 환자의 종양이 치료에 반응할지 않을지 미리 알 수 있다면 100명의 환자 중 한 명만 반응하더라도 99명의 환자에게 불필요한 합병증과 비용을 면해준 셈”이라며 “이들 약값이 최대 10만 달러에 달해 가정의 파산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 대다수 진행암 환자들은 그런 사소한 혜택조차 받지 못한다. 건강보험 회사들은 비용이 최대 1만 달러에 달할 수 있는 유전자 검사는 어떻게든 보험대상에서 제외하려 한다. 로이초우두리 박사는 “메디케어(고령자 대상 의료보험)와 몇몇 보험사가 보험을 일부 적용하기 시작했다”며 “하지만 검사비를 환급받는 과정이 상당히 번거로우며 그 첨단 검사를 보험에 포함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거의 모든 전문가가 어디서나 그것이 암의 표준 진료가 돼야 한다는 데 동의하면서도 미국의 대다수 일류 암센터에서 모든 환자에게 그 검사를 통상적으로 제공하지 않는 한 가지 이유다.어떤 환자가 종양 검사를 통해 유망한 정밀 신약과 궁합이 맞는 결과가 나왔을 때도 보험사들이 종종 약값을 지불하지 않는다고 로이초우두리 박사는 말한다. 보험사들은 장기간의 시험 후 표준 치료제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약에만 보험을 적용한다. 보예드와 그 밖에 다수의 목숨을 구한 유의 FGFR 억제제는 여전히 환급받지 못하는 일이 허다하다. 보예드의 경우처럼 공식 신약시험에 참가한 환자는 보통 약을 무료로 받는다. 그러나 몇몇 경우 악성 진행성 암 환자들(실험 약제가 가장 필요한 사람들)은 시험에서 배제된다. 제약회사와 심지어 의학자들도 결과를 실패 쪽으로 몰아갈까 우려해 심한 중증 환자는 시험에 포함하려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치료의 걸림돌은 비용뿐이 아니다. 미국 암 환자의 약 85%가 커뮤니티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암전문의가 아주 다양한 유형의 암을 상대하는 곳이다. 그런 일반의들은 통상적으로 최신 검사나 치료법에 밝지 않다고 칼리규리 원장은 말한다. 병원 측에선 그들이 시간과 비용을 들여 그런 트렌드를 따라가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높은 평가를 받는 암센터에선 환자 중 최대 25%까지 새로 나온 정밀 약품을 처방하지만 대다수 커뮤니티 병원에선 그 비율이 제로에 가깝다.환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칼리규리 원장은 “막 암 진단을 받은 모든 사람에게 내가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중요한 말은 자신에게 생긴 암 유형의 전문의에게 한 번 더 진단받은 다음에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첫 번째 치료가 맞지 않을 경우 종양에 다제내성이 생겨 그 치료제뿐 아니라 먼저 복용했다면 효과가 있었을지 모르는 다른 치료제도 무용지물이 된다.” 커뮤니티 병원의 암전문의들에게 다른 치료방안을 물으면 치료부터 먼저 시작하는 게 최선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잠시만 치료를 미루면 오히려 목숨을 구할 수 있는 데도 그러다가 회복확률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환자의 우려를 이용하는 의사도 있다.
밴더빌트대학의 암센터는 정밀의학 프로그램에 커뮤니티 병원 암전문의들의 참여를 확대함으로써 이 문제의 해결에 힘쓴다. ‘Its My Cancer Genome’이라는 웹사이트는 특정 암 환자에 맞는 새로운 치료제와 시험이 있는지 의사와 환자들이 알아보도록 정보를 제공한다. 4000건의 임상시험이 리스트에 올라 있다. 밴터빌트 센터의 발서 박사는 “도움이 되지 않는 치료제를 복용한 환자들이 우리를 찾아오면 마음이 아프다”며 “그 시점에선 환자가 진퇴양난에 처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뒷수습뿐”이라고 말했다. 다른 많은 일류 암센터와 마찬가지로 밴더빌트 센터도 지역의 커뮤니티 병원들과 제휴를 맺고 정밀의료 노하우, 유전자 검사, 신약 시험을 활용할 수 있도록 병원들을 후원한다. 밴더빌트 센터는 5개 주의 70개 가까운 병원과 그런 관계를 구축했다.갈수록 늘어나는 정밀의학 접근방식도 암이 애당초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막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양전자방출 단층촬영(PET scans)과 같은 일부 영상 기법의 감도와 해상도가 높아져 새로 생긴 극히 작은 암세포 군집을 포착할 수준에 근접하고 있다. 방사선을 집중 주사할 경우 즉석에서 날려버릴 정도로 작은 암세포 군집들이다. 그런 치료법은 편리할 뿐 아니라 합병증도 적을 것이다.
유전 정보를 보기 위해 암에 걸릴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을까? 모두가 일상적으로 유전자검사를 받아 어떤 암에 걸릴 위험이 큰지 확인하면 비용이 7000달러가 넘을 수 있는 PET 스캔 같은 검사를 선택적으로 받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유전자 검사 자체는 너무 비싸거나 23앤드미 같은 일반 소비자 대상 유전자검사 기업의 경우 전 국민에게 확대하자고 하기에는 너무 허술하다. 그러나 연구원과 바이오테크 기업들이 유전자 검사 비용을 줄이고 정확도를 높이는 데 힘쓴다. 칼리규리 원장은 “우리가 어떤 암의 발생 위험이 큰지 알 수 있다면 3년마다 받는 검사로 인생이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암에 걸릴 경우 정밀의학이 안성맞춤 치료제를 찾아주리라고 생각하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암 환자는 인생 말년에 단순히 마음 편히 지내는 것보다 앞날을 더 많이 기대할 수 있다. 보예드가 그런 진단을 받아서 인생역전을 하지 않았던가?
- 데이비드 H. 프리드먼 뉴스위크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3000억원대 횡령’ 경남은행 중징계….“기존 고객 피해 없어”
2수능 2개 틀려도 서울대 의대 어려워…만점자 10명 안팎 예상
3중부내륙철도 충주-문경 구간 개통..."문경서 수도권까지 90분 걸려"
4경북 서남권에 초대형 복합레저형 관광단지 들어서
5LIG넥스원, 경북 구미에 최첨단 소나 시험시설 준공
6“내 버스 언제오나” 폭설 퇴근대란에 서울 지하철·버스 증회 운행
7안정보다 변화…이환주 KB라이프 대표, 차기 국민은행장 후보로
8 KB국민은행장 후보에 이환주 KB라이프 대표
9한스미디어, ‘인공지능 마케팅’ 기술 담긴 ‘AI로 팔아라’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