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승세 주택시장의 걸림돌은] 분양가 상한제보다 저물가가 더 무서워
[상승세 주택시장의 걸림돌은] 분양가 상한제보다 저물가가 더 무서워
저성장에 저물가로 주택 매수 위축 우려… 실수요 목적 아니면 관망할 만 서울 집값이 다시 들썩이고 있다. 지난해 9·13대책 후폭풍으로 11월부터 32주간 하락세를 이어온 서울 아파트값이 지난 7월 초부터 상승세로 돌아섰다. 3개월간 13주 동안 플러스 행진이다. 신축 등 일반 아파트에 이어 재건축 단지도 오름세를 타면서 집값 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 같다.
그런데 주택시장에 ‘마이너스’ 그림자가 나타났다. 소비자물가가 사상 처음으로 지난 8월 ‘마이너스’ 변동률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저물가가 저성장과 맞물려 주택시장의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전년 같은 달 대비 월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올해 들어 줄곧 1% 밑을 맴돌다 8월 급기야 -0.4%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 8월까지는 상승률이 0.4%에 불과하다. 역대 최저 물가상승률을 나타낸 2015년(0.7%) 같은 기간(1.3%)에 훨씬 못 미친다. 올해 경제성장률도 1%대를 위협하며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0.8%) 이후 가장 낮을 전망이다.
시장의 관심은 요즘 서울을 중심으로 다시 들썩이는 집값이 물가·경제에 아랑곳하지 않고 홀로 상승할 수 있을까다. 그동안 집값은 물가와 다른 행보를 보여왔다. 2010년대 초반 2%대이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15년 0%대(0.7%)를 보인 데 이어 지난해까지 1%대로 굳어졌다. 그런데도 서울 집값이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뛰었다. 집값이 급등했던 2000년대 초·중반 노무현 정부 때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에서 2%대로 떨어졌다. 우선 집값은 소비자물가 동향과 상관없다. 집값도 주택 소비자가 느끼는 ‘물가’이지만 통계상 소비자물가에 잡히지 않는다. 소비자물가는 일반 국민이 일상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상품과 서비스를 사는 비용의 움직임을 측정한다. 세금과 같은 비소비지출이나 주식·토지·주택 등 재산증식을 위한 비용은 제외한다. 주택 관련으로 주택 임차료 항목에 전세·월세가 들어있다.
기술적인 통계는 관련 없어도 저물가가 소비 위축을 뜻하는 것으로 주택 수요와 무관할 수만은 없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물가보다 시중 자금인 유동성과 정부 규제, 대규모 공급 등이 집값에 뚜렷하게 영향을 미쳤다. 허윤경 건설산업연구원 주택도시연구실장은 “일반적인 소비는 돈을 쓰는 것이지만 주택 구매는 돈을 벌기 위한 것이어서 주택시장은 소비심리와 다르다”고 말했다.
유동성 지표의 하나로 언제든 현금화할 수 있는 통화량인 M2로 보면 2015년 이후 연평균 8% 가까이 증가했다. 2000년 대 중반에는 연평균 증가율이 10% 선이었다. 물이 들어오면 수면이 올라가듯 부동산 자산가치가 올라간 것이다. 과거 정부도 주택 거래를 늘리고 주택시장을 부양하기 위해 무엇보다 대출 규제 완화 등으로 돈줄을 풀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이후에는 규제 반작용도 작용했다. 노무현 정부 때 강도 높은 규제 후 잠깐 하락하다 다시 튀어 오른 집값의 학습효과다.
현재 시장에서는 금리 인하와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가장 큰 변수다. 미국의 금리 인하를 따라 국내 기준금리도 한 차례 더 내려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 일각에서는 10월 민간택지 상한제 시행에 대해 유보적인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시장은 이미 시행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주택정책 주무부처인 국토부 홈페이지에는 ‘10월부터 분양가 상한제, 집값 안정, 내 집 마련 쉬워져’라는 안내문이 걸려있다.
가격을 규제하는 민간택지 상한제가 정부 기대와 달리 되레 집값을 자극하고 있다. 상한제로 앞으로 주택공급이 줄지 않겠느냐는 우려에서다. 미래에 대한 불안 심리로 갈 곳을 찾지 못하는 풍부한 유동성이 요즘 주택시장을 움직이는 것이다.
소득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유동성이 인기 지역 고가 주택으로 더욱 쏠린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대비 10분위 분위별 소득이 상위 10%에서 가장 많이(15.5%) 늘었다. 평균 상승률(8.5%)의 두 배 수준에 가깝다. 서울 아파트값이 상승세로 돌아선 7월 이후 거래량이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이 강남권과 동작, 마포구 등 집값이 비싼 지역들이다. 상한제가 시행하면 낡은 주택 재건축 투자성이 떨어지고 신축 아파트 공급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 지은 지 오래되지 않은 아파트의 상승세가 뚜렷하다. 재건축이 활발한 동남권(강남·서초·송파·강동구)의 6월 말 대비 연령별 아파트값 상승률(평균 0.4%)을 보면 5년 이하 0.7%, 5~10년 0.8%로 월등히 높다.
하지만 이제껏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던 저물가 압력이 앞으로 높아질 수 있다. 마이너스 물가가 이어지는 디플레이션이나 금융위기와 같은 경제 충격이 오지 않더라도 지금보다 더한 저물가와 저성장이 주택시장의 디폴트(기본 환경)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잠재적인 주택 구매력인 경제활동인구가 줄고 저성장으로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고가 상품인 주택시장에 미치는 저물가 파급효과가 커질 수밖에 없다. 유동성이 풍부해도 대출 규제 강화 등으로 둑이 높아졌다. 자금 여유가 없는 ‘개미’가 달려들기 어렵다.
서울 집값이 오른 2014~18년 5년간 서울에서 거래된 아파트가 55만 가구다. 집값이 폭등했던 2006년 이후 2013년까지 8년간 사고 팔린 물량(57만 가구)과 비슷하다. 최근 몇년간 집값 상승세에 웬만한 수요자는 올라탄 셈이다. 최근 서울 집값 상승세가 이전의 단기 폭등 양상을 보이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많은 이유다. 7~8월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이 0.21%다. 8·2대책이 나온 2017년이나 9·13대책이 발표된 지난해 같은 기간엔 상승률이 각각 1%가 넘었다. 상한제가 시행되면 시장이 우려하는 만큼 주택 공급이 줄어들지도 불확실하다. 상한제 적용 기준에 반발하고 있는 서울 시내 재건축·재개발 관리처분 구역 66곳(건립 가구 수 10만 가구)은 사업을 포기할 수 없다. 2022년부터 정부가 수도권 30만 가구 주택공급 계획에 따른 서울 4만 가구가 기다리고 있다. 이들 물량이 시장에 제대로 나온다면 만만치 않은 공급량이다. 현재까지 분양한 물량만 보더라도 당장 내년까지 입주물량이 예년보다 많다.
지금 집을 사면 암울한 경기 전망과 입주 봇물이 기다리고 있는 안갯속 시장을 여러 해 헤쳐가야 한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투자를 목적으로 하기보다 필요에 따라 주택 매수를 판단할 때다”라고 말했다.
- 안장원 중앙일보 기자 ahnjw@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그런데 주택시장에 ‘마이너스’ 그림자가 나타났다. 소비자물가가 사상 처음으로 지난 8월 ‘마이너스’ 변동률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저물가가 저성장과 맞물려 주택시장의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전년 같은 달 대비 월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올해 들어 줄곧 1% 밑을 맴돌다 8월 급기야 -0.4%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 8월까지는 상승률이 0.4%에 불과하다. 역대 최저 물가상승률을 나타낸 2015년(0.7%) 같은 기간(1.3%)에 훨씬 못 미친다. 올해 경제성장률도 1%대를 위협하며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0.8%) 이후 가장 낮을 전망이다.
시장의 관심은 요즘 서울을 중심으로 다시 들썩이는 집값이 물가·경제에 아랑곳하지 않고 홀로 상승할 수 있을까다. 그동안 집값은 물가와 다른 행보를 보여왔다. 2010년대 초반 2%대이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15년 0%대(0.7%)를 보인 데 이어 지난해까지 1%대로 굳어졌다. 그런데도 서울 집값이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뛰었다. 집값이 급등했던 2000년대 초·중반 노무현 정부 때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에서 2%대로 떨어졌다.
소비자물가 통계에 영향 없는 집값
기술적인 통계는 관련 없어도 저물가가 소비 위축을 뜻하는 것으로 주택 수요와 무관할 수만은 없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물가보다 시중 자금인 유동성과 정부 규제, 대규모 공급 등이 집값에 뚜렷하게 영향을 미쳤다. 허윤경 건설산업연구원 주택도시연구실장은 “일반적인 소비는 돈을 쓰는 것이지만 주택 구매는 돈을 벌기 위한 것이어서 주택시장은 소비심리와 다르다”고 말했다.
유동성 지표의 하나로 언제든 현금화할 수 있는 통화량인 M2로 보면 2015년 이후 연평균 8% 가까이 증가했다. 2000년 대 중반에는 연평균 증가율이 10% 선이었다. 물이 들어오면 수면이 올라가듯 부동산 자산가치가 올라간 것이다. 과거 정부도 주택 거래를 늘리고 주택시장을 부양하기 위해 무엇보다 대출 규제 완화 등으로 돈줄을 풀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이후에는 규제 반작용도 작용했다. 노무현 정부 때 강도 높은 규제 후 잠깐 하락하다 다시 튀어 오른 집값의 학습효과다.
현재 시장에서는 금리 인하와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가장 큰 변수다. 미국의 금리 인하를 따라 국내 기준금리도 한 차례 더 내려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 일각에서는 10월 민간택지 상한제 시행에 대해 유보적인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시장은 이미 시행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주택정책 주무부처인 국토부 홈페이지에는 ‘10월부터 분양가 상한제, 집값 안정, 내 집 마련 쉬워져’라는 안내문이 걸려있다.
가격을 규제하는 민간택지 상한제가 정부 기대와 달리 되레 집값을 자극하고 있다. 상한제로 앞으로 주택공급이 줄지 않겠느냐는 우려에서다. 미래에 대한 불안 심리로 갈 곳을 찾지 못하는 풍부한 유동성이 요즘 주택시장을 움직이는 것이다.
소득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유동성이 인기 지역 고가 주택으로 더욱 쏠린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대비 10분위 분위별 소득이 상위 10%에서 가장 많이(15.5%) 늘었다. 평균 상승률(8.5%)의 두 배 수준에 가깝다. 서울 아파트값이 상승세로 돌아선 7월 이후 거래량이 가장 많이 늘어난 곳이 강남권과 동작, 마포구 등 집값이 비싼 지역들이다. 상한제가 시행하면 낡은 주택 재건축 투자성이 떨어지고 신축 아파트 공급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 지은 지 오래되지 않은 아파트의 상승세가 뚜렷하다. 재건축이 활발한 동남권(강남·서초·송파·강동구)의 6월 말 대비 연령별 아파트값 상승률(평균 0.4%)을 보면 5년 이하 0.7%, 5~10년 0.8%로 월등히 높다.
하지만 이제껏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던 저물가 압력이 앞으로 높아질 수 있다. 마이너스 물가가 이어지는 디플레이션이나 금융위기와 같은 경제 충격이 오지 않더라도 지금보다 더한 저물가와 저성장이 주택시장의 디폴트(기본 환경)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잠재적인 주택 구매력인 경제활동인구가 줄고 저성장으로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고가 상품인 주택시장에 미치는 저물가 파급효과가 커질 수밖에 없다. 유동성이 풍부해도 대출 규제 강화 등으로 둑이 높아졌다. 자금 여유가 없는 ‘개미’가 달려들기 어렵다.
서울 집값이 오른 2014~18년 5년간 서울에서 거래된 아파트가 55만 가구다. 집값이 폭등했던 2006년 이후 2013년까지 8년간 사고 팔린 물량(57만 가구)과 비슷하다. 최근 몇년간 집값 상승세에 웬만한 수요자는 올라탄 셈이다. 최근 서울 집값 상승세가 이전의 단기 폭등 양상을 보이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많은 이유다.
우려보다 주택 공급 줄지 않을 수도
지금 집을 사면 암울한 경기 전망과 입주 봇물이 기다리고 있는 안갯속 시장을 여러 해 헤쳐가야 한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투자를 목적으로 하기보다 필요에 따라 주택 매수를 판단할 때다”라고 말했다.
- 안장원 중앙일보 기자 ahnj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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