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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 어디까지 왔나] 레벨 4단계 상용화 앞두고 합종연횡 줄 이어

[자율주행 어디까지 왔나] 레벨 4단계 상용화 앞두고 합종연횡 줄 이어

거액 투자한 동맹 연이어 등장… 한국의 자율주행 준비도는 세계 13위 그쳐



자율주행 시대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완성차 회사와 자율주행 기술 기업 등의 합종연횡이 줄을 잇고 있다. 자율주행차 개발을 위한 완성차와 부품사, 정보통신기술(ICT) 업체의 협업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투자 단위가 달라졌다. 그만큼 자율주행 시대가 가까워졌다는 방증이다. 미국 시장조사 업체 IHS에 따르면 세계 자율주행차는 2021년 5만1000대에서 2040년 3370만대로 급증할 전망이다. 현재 자율주행 기술도 6단계 중 4~5단계에 근접해 있다. 현대차그룹도 거액을 들여 자율주행 기술 유력 기업인 앱티브와 조인트벤처를 세우는 등 적극 나서고 있다. 다만 국내 제도와 인프라는 자율주행 시대와 거리가 멀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왼쪽)과 케빈 클락 앱티브 최고경영자(CEO)가 9월 2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한 합작법인 설립 본계약을 체결했다. / 사진:현대차그룹
미국자동차공학회(SAE)는 자율주행의 단계를 레벨 0~5의 6단계로 구분한다. 현재 양산차에 탑재된 기술은 레벨 3에 근접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레벨 2 수준은 이미 상용화됐다. 현재 완성차 업계에서 내놓은 자율주행차는 레이더와 카메라 센서를 이용해 차선과 주변의 차 등을 인식하고 정해진 속도 범위에서 자동으로 운행할 수 있다. 신호가 없는 고속도로 등에서는 사실상 조작 없이 운전이 가능한 수준이다. 신호를 인식하고 주체적으로 차선을 바꿀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간을 인식해 자동으로 주차할 수 있는 기능도 갖췄다.
 현재 레벨 3 상용화 단계
레벨 2와 레벨 3 모두 부분적 자율주행이다.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긴 어렵지만 통상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목적지까지 운전자의 개입 없이 운행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러야 레벨 3로 볼 수 있다. 완성차 업체들은 레벨 3 수준의 자율주행차 양산에 빠르게 다가가고 있다. 지난해에는 아우디가 플래그십 세단인 신형 A8에 양산차 첫 라이다 센서를 장착해 한 단계 진보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미 연구개발 중인 차량으로 레벨 3 수준의 기술을 입증한 사례는 많다. 국내에서는 현대자동차가 지난해 2월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서울에서 평창까지 190km 구간을 운전자의 개입 없이 주행하는 장면을 시연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2020~2021년쯤이면 레벨 3 단계에 근접한 자율주행차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마커스 쉐퍼 메르세데스-벤츠 승용개발총괄 이사는 올해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수개월 후 출시 예정인 신형 S클래스에 레벨 3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을 적용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현대차도 2020년 3단계 자율주행차 양산을 목표로 잡고 있다.

세간의 관심은 운전자 없이 주행 가능한 레벨 4~5의 자율주행 기술이다. 자율주행이 운전자의 편의 외에 더 큰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려면 운전자가 필요 없는 4단계 이상의 자율주행 수준에 다다라야 한다. 그래야 로보택시로 모빌리티 서비스의 패러다임을 바꿔놓는 것은 물론, 교통체증을 줄이고 차량의 소유 개념까지 바꿔놓을 수 있다. 안드레아스 헤르만 장크트갈렌대학교 고객통찰력연구소 소장은 저서 [자율주행(Autonomous Driving)]에서 “자율주행 기술은 발명되면서부터 독립형 제품이었던 자동차의 본질을 바꿀 혁신적 기술”이라며 “기업은 우리가 파는 상품이 무엇인지를 다시 정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율주행은 자동차의 본질 바꿀 혁명
현재 여러 나라에서 레벨 4~5 단계의 자율주행차를 시험 운행하고 있다. 내비건트 리서치 평가에서 자율주행 기술이 가장 앞서 있다고 평가받은 구글의 관계사 웨이모는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공공이익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자율주행차 승객 시범 서비스(Autonomous Vehicle Passenger Service Pilot)’라 불리는 테스트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비상상황에 대응할 운전자가 탑승하지만 실제 승객을 실어나르는 시험까지 실시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경기도가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에 의뢰해 자율주행 셔틀을 개발하고 2017년 11월 시험 운행에 성공했다. 다만 아직 정해진 코스만을 주행하는 수준이다.

자율주행 기술은 레벨 4~5 단계를 앞두고 주춤하고 있다. 카메라와 레이더, 라이다 센서로 주변을 인지해 컴퓨터가 어떻게 행동할지를 판단하는 자율주행차 방식은 지난 10년간 큰 틀에서 변한 게 없기 때문이다. 웨이모는 구글에서 분사하기 이전인 2009년부터 운전자가 위급상황에만 개입하는 형태로 자율주행 테스트를 실시했는데, 지금도 비슷한 방식으로 실험을 하고 있다.

기술의 발달은 주로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다. 자율주행 기술 업체들의 기술력 격차는 지도와 주행 데이터를 축적하고 인공지능(AI)의 판단능력을 고도화해 지연을 최소화하는 데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지만 최근 자동차 업체들이 자율주행 기술 업체와 맺은 대규모 계약을 보면 4~5단계의 자율주행 상용화가 먼 미래가 아님을 유추할 수 있다. 자동차 업체들은 2000년대 후반부터 자율주행 기술에 관심을 갖고 약한 고리의 기술 협업과 제휴를 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수조원대 금액을 투자해 강한 결속력을 보이는 동맹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이 회사의 명운을 걸 만큼 큰 규모의 투자를 실시하는 것은 4~5단계 자율주행 시대가 멀지 않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현대차그룹이 최근 발표한 미국 자율주행 기술 업체 앱티브와의 조인트벤처(JV) 설립(2020년 예정)이 대표적이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몇년간 오로라 메타웨이브 등 자율주행 관련 기술 업체에 투자해왔지만 이번 JV 설립은 무게가 다르다. 투자 규모만 봐도 차이가 크다. 현대차그룹은 앱티브와 50대 50의 합작법인을 세우기 위해 총 20억 달러(약 2조4000억원)를 출자했다. 현금출자액만 16억 달러(약 1조9000억원)에 이른다. 지난 6월 오로라에 투자할 당시 금액은 약 300억원에 불과했다. 앱티브와의 조인트벤처에 투자한 금액은 현대차 시가총액(약 27조6000억원)의 11분의 1 수준이다.

투자 금액의 차이는 투자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사실 오로라에 투자한 기업은 현대차그룹뿐만이 아니다. 유통공룡 아마존을 비롯해 독일 폴크스바겐, 중국 바이톤 등 다양하다. 최근에는 미국 FCA(피아트크라이슬러)가 투자하기도 했다. 이들의 투자는 사실상 다리만 걸친 형태다. 이와 달리 앱티브와 설립하는 JV는 현대차그룹과 앱티브가 절반씩의 지분을 갖고 앞으로 개발하는 기술을 독점적으로 공동 소유한다. 앱티브는 현금 출자는 하지 않지만 기업가치의 큰 축을 차지하는 자율주행 관련 핵심 기술과 700명의 연구인력, 4곳의 기술센터 등을 조인트벤처로 이관한다. 앱티브의 자회사인 오토마티카(ottomatika)와 뉴토노미(nutonomy)의 지분도 조인트벤처가 갖는다.

앱티브와의 JV 설립으로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 로드맵 자체가 달라졌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총괄수석부회장은 JV 설립을 발표한 후 “2022년 말 쯤, 자율주행 시범 운영을 시작하고, 2024년에 (자율주행차를) 본격 양산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그의 예상보다 1년 이상 앞당긴 것이다.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완전자율주행차를 2025~2026년에 양산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완성차 회사의 자율주행 회사 투자는 이뿐만 아니다. GM의 자율주행 기술 개발 자회사인 크루즈가 대표적인 사례다. GM은 2016년 자율주행 기술 개발 스타트업이었던 크루즈오토메이션을 인수한 후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 기술을 축적했다. 내비건트 리서치 평가에서 지난해 순수자율주행 기술력 2위를 차지했다. 이 회사가 더욱 주목받는 것은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주도로 조성한 비전펀드와 일본 자동차 브랜드 혼다도 지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소프트뱅크는 22억5000만 달러를 투자했고, 혼다는 12년간 27억500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자율주행 시스템이 유기적이어야 하다 보니 기본적으로 어느 한 회사가 모두 맡기는 어렵다”며 “특히 AI와 정밀지도 매핑 등은 특히 자동차 업체가 경험하지 못한 영역”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GM은 자회사를 대상으로 선제적 구조조정을 하는 동시에 크루즈오토메이션을 인수하는 결단을 보여줬는데, 현대차는 오히려 투자가 늦은 감이 있다”고 덧붙였다.
 자회사 구조조정 하면서 자율주행 투자 늘리는 GM
KT 5G 버스와 경기도 자율주행버스 제로셔틀이 주행하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포드와 폴크스바겐도 자율주행 연구기업인 아르고AI에 투자하며 끈끈한 동맹 관계를 맺었다. 폴크스바겐은 최근 포드가 2017년 인수한 아르고AI에 26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포드와 폴크스바겐은 아르고AI을 사이좋게 나눠가지게 됐다.

도요타와 우버의 협력관계도 주목할 만하다. 도요타는 지난 4월 덴소·소프트뱅크와 함께 우버에 1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도요타는 이와 별도로 지난해 8월, 5억 달러를 별도로 투자하기도 했다. 소프트뱅크와 도요타는 우버와 별도로 공고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두 회사는 지난해 모빌리티 전문 조인트벤처 ‘모네 테크놀로지’를 설립했다.

완성차 업체들은 인텔과 웨이모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인텔은 2017년 17조원을 들여 카메라 센서 부문에서 독보적 경쟁력을 가진 모빌아이를 인수했다. 모빌아이는 현재 글로벌 자율주행 관련 부품 시장에서 핵심 중 하나인 카메라 센서를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카메라 센서 부문에서 모빌아이의 경쟁력과 인텔의 데이터 처리 능력의 시너지 효과가 최대 강점이다. 다만 인텔이 자동차 업계의 투자를 받을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자율주행 기술력 1위인 웨이모도 마찬가지다. 웨이모는 현재 FCA, 재규어랜드로버, 르노-닛산 등 다양한 완성차 업체와 제휴하고 있지만 연결고리는 그리 탄탄하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자율주행 시대를 대비하는 협업은 더욱 거세지고 광범위해질 전망이다. 단지 자율주행차를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레벨 4~5의 자율주행이 상용화되면 자동차를 이용하는 개념 자체가 달라진다. 2019 CES에서 아우디는 디즈니와 협업으로 눈길을 끌었다. 아우디는 디즈니와 만든 가상현실(VR) 콘텐트 ‘마블 어벤져스:로켓 레스큐 런’를 공개하고 전시 차량에 탑승한 승객이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운전자가 없는 시대에 자동차에서의 즐길거리를 개발하는 것까지 자율주행 시대의 연구 분야인 것이다.
 도로교통법에 발 묶인 한국 자율주행
다가오는 자율주행 시대의 주도권을 어느 기업이 쥘지는 아직 예측하기 어렵다. 실제 자율주행이 이뤄지려면 기술뿐 아니라 제도와 인프라, 법적 정비가 필요한 만큼 각국 정부의 역할도 상당히 중요하다.

현대차와 앱티브는 JV의 본사를 미국 보스턴에 두기로 했다. 연구개발을 위한 인프라와 제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다. 사실상 현대차그룹의 투자금액이 미국으로 향하는 셈이기 때문에 한국의 자율주행산업 생태계를 고려하면 아쉬움이 남는 결정이지만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자율주행 테스트에 제약이 많아 연구개발이 어렵고 AI 등을 연구할 전문 인력도 부족해 현대차가 미국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KPMG가 자율주행차 도입을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세계 25개국을 대상으로 평가한 자율주행차준비지수(AVRI)에서 우리나라는 올해 13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10위에서 3계단 떨어졌다.

AVRI는 자율주행 트럭과 버스 등 공공영역을 포함해 자율주행차 도입과 운용을 위한 사회와 인프라의 준비 상태를 점수로 평가한 것이다. 정책과 입법, 기술과 혁신, 기반 설비와 소비자 수용성 등 4가지 항목을 중심으로 평가한다. 한국은 4세대(G) 통신망 보급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고 화성에 지은 자율주행 시험도시 K-City 등이 좋은 평가를 받으며 기반 설비 분야 전체 4위에 올랐지만 정책과 입법에서 16위, 소비자 수용성에서는 19위로 하위권에 속했다. 국내에서는 도로교통법에 따라 모든 차량 운전자가 조향장치와 제동장치 등을 정확하게 조작해야 하고 운전자가 컴퓨터 등을 사용하는 행위도 금지돼 있다. KPMG 관계자는 “한국은 자율주행 최전선에 있는 국가들과 달리 레벨 3 단계의 자율주행 파일럿 운전만 허용하는 규정이 기술 개발의 걸림돌”이라며 “지수 상위 국가들에 비해 입법 과정도 느리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15일 발표 예정인 정부의 미래차 관련 육성정책을 지렛대로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규제 일변도의 정책으로 자율주행산업 경쟁력을 갉아먹은 측면이 있고 정부 부처 간 역할이 나뉘어져 있어 고민이 많은 상황”이라며 “자율주행 시대를 꿰뚫어보고 산업을 키울 수 있는 정책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에 운전면허 주려는 네덜란드
자동차 업계에선 올해 AVIR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네덜란드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이 주목 받는다. 네덜란드 정부는 지난해 3월 자율주행차 소유주를 위한 운전면허 발급 방침을 발표했다. 인간이 아니라 자율주행차 소프트웨어를 대상으로 새로운 운전면허 시험을 개발하겠다는 것으로 네덜란드 기업인 로봇튜너(robotTunner)는 이미 2개의 시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자율주행 시대가 도래할 경우 표준화 경쟁에서 한발 앞서 나갈 수 있는 셈이다.

이번 평가에서 2위에 오른 싱가포르는 자율주행 전기버스를 비롯해 택시 등 공공 교통수단을 자율주행화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싱가포르는 2020년까지 대학 캠퍼스를 비롯해 몇 개 지역에 자율주행 미니버스를 정식으로 도입할 목표를 잡았다. 싱가포르 정부는 자율주행 도입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줄일 부처 내 단일 조직을 설립하는 등 국가 차원의 강력한 추진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3위 노르웨이는 일부 도시에서 소규모 자율버스 서비스를 이미 상용화했다. 34개 사업자가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특히 노르웨이는 자율주행차로 적절한 플랫폼인 전기자동차(EV) 보급률이 높아 소비자 수용도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도 했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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