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데타’인가 ‘민중 봉기’인가
‘쿠데타’인가 ‘민중 봉기’인가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선거 부정 의혹으로 퇴진 요구 거세지자 멕시코로 망명… 미국은 정권 교체 환영하지만 러시아는 쿠데타로 규정 러시아의 최고위 외교관은 최근 서방이 볼리비아 사태를 러시아 탓으로 돌리지 않아 상당히 의외였다고 농담했다. 그러자 미국의 한 의원이 바로 볼리비아 사태에 러시아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지난 11월 12일 파리 평화포럼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세계 어디서든 혼란이 발생하면 곧장 러시아가 배후라고 비난받는 데 익숙해졌다고 냉소적으로 꼬집었다. 실제로 근년 들어 특히 미국이 러시아를 많이 탓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같은 나라에서 내전을 부추겼고, 유럽 전역에서 불안을 조장했으며, 시리아와 베네수엘라 같은 나라에서 위기를 장기화시켰다고 미국은 주장했다(베네수엘라는 극단적인 정치 갈등에 휘말린 중남미의 여러 나라 중 하나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라브로프 장관은 파리 평화포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열릴 예정이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폭력적인 반정부 시위 때문에 취소됐다. 그러면서 우리는 러시아가 칠레 사태에 개입한 배후 세력 중 하나라는 말을 들었다. 따라서 이라크와 레바논, 그리고 지금은 볼리비아에서 발생한 정치위기에선 왜 러시아가 관련됐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볼리비아의 쿠데타 배후로 러시아가 지목되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평상시엔 그런 지정학적 의제를 잘 만들어내던 서방 사람들이 지금은 심경에 무슨 변화가 생겼을까 궁금할 따름이다.”
2006년 볼리비아 첫 원주민 대통령으로 취임해 14년 가까이 집권한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4선 연임에 도전한 지난달 대선에서 부정 의혹이 불거지면서 퇴진 압력이 거세지자 지난 10일 전격 사퇴했다. 미주기구(OAS)가 선거에 부정이 있었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한 데 이어 군 수장까지 나서서 퇴진을 종용하자 백기를 들었다. 결국 그는 멕시코로 망명했다.
모랄레스의 사임 발표 직후 그의 망명을 수용할 것이라고 밝혔던 멕시코는 모랄레스가 12일 멕시코에 도착하자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외무장관을 공항으로 보내 그를 맞았다. 멕시코는 모랄레스를 태우기 위해 자국 정부기를 볼리비아로 보냈지만 몇몇 나라들이 모랄레스 전 대통령이 탑승한 항공기가 자국 영공을 통과하는 것에 반대하는 바람에 모랄레스를 멕시코로 데려오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멕시코에 도착한 모랄레스는 자신이 지난달 대선에서 승리했음에도 쿠데타로 축출됐다는 주장을 고수하며, 볼리비아에서 자신을 겨냥한 공격이 잇따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은 쿠데타라는 표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얄궂게도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소속인 마르코 루비오(공화당·플로리다) 의원이 라브로프 장관이 암시한 그대로 볼리비아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 쪽으로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그는 “볼리비아의 쿠데타”라는 발언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중남미 설계 전략의 일부일 수 있다고 말했다.루비오 의원의 부모는 1950년대 쿠바에서 피델 카스트로 공산주의 지도자가 혁명으로 정권을 잡자 그곳을 탈출해 미국에 도착했다. 그런 배경으로 루비오 의원은 오랫동안 중남미, 특히 볼리비아·쿠바·니카라과·베네수엘라의 좌익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루비오 의원은 지난 12일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러시아가 볼리비아 사태와 관련해 허위 정보를 퍼뜨렸다고 비난하며 미국 언론도 그 정보를 그대로 받아 전달한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푸틴이 허위정보를 어떤 식으로 외교정책 도구로 사용하는지 알고 싶다면 요즘 언론의 볼리비아 사태 보도를 연구하면 된다. 첫째, 그들은 가짜뉴스를 만들어낸다. 둘째, 그들은 그 가짜뉴스를 소셜미디어를 통해 광범위하게 퍼뜨린다. 셋째, 그 허위 정보가 주류 언론에서 반향 효과를 낸다.”
그렇다면 최근 볼리비아에서 발생한 사태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쿠데타라는 시각과 민중 봉기에 의한 대통령 하야라는 두 가지 시각으로 극명하게 갈린다. 우선 쿠데타로 보는 논리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의 퇴진을 압박하는 데 군부가 합세했고(군부의 수장이 모랄레스에게 퇴진을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둘째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이 중남미 전역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지도자를 제거하기 위해 사용한 전술이 그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모랄레스의 퇴진을 두고 볼리비아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중남미 등 주변국에서도 철저히 이념에 따라 상반된 평가를 내놓으면서 볼리비아 안팎의 분열과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쿠바·베네수엘라·니카라과 등 중남미의 좌익 정권 지도자들은 모랄레스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그의 망명이 쿠데타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또 대표적인 사회주의자에 부패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가 580여 일 만에 석방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브라질의 극우파 현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르는 모랄레스를 비판했다)과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 후보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쿠데타를 비난하며 모랄레스 편을 들었다.
볼리비아 사태를 ‘쿠데타’로 규정하는 것에 반대하는 진영의 논리는 모랄레스 정부가 4선을 금지하는 헌법과 선거법을 무시했으며, 최근의 선거에서 그들이 투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개표 결과 모랄레스가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지만 야권에서 부정 선거를 강하게 주장했고, OAS까지 선거에 부정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도 이런 관점을 채택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지난 11일 미국 국무부의 한 고위 관리는 기자들에게 “모랄레스와 그의 지지자들은 쿠데타로 정부가 무너졌다고 주장하지만 이 모든 사태가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며 “볼리비아 국민은 정부가 유권자의 뜻을 무시하는 데 신물이 났으며, 정부의 그런 허위 주장을 밀어붙이기 위한 선동과 소요, 폭력이 지속되면서 볼리비아의 민주주의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 바로 그 메시지”라고 논평했다.
또 다른 미국 국무부 고위 관리는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의 거리에서 모랄레스 지지 세력과 반대 세력이 충돌하면서 “모두 과도한 폭력을 행사했다”고 인정했다. 그는 모랄레스가 이끌던 정당 사회주의운동(MAS)이 다음 대선에서 후보를 내선 안 된다고 명시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지난번 선거 결과 왜곡 의혹에 직접 관련된 인사는 다음 선거에 출마해선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모랄레스를 지지하는 의원들이 여전히 의회의 과반 의석을 차지한다). 한편 볼리비아의 우파 야당 사회민주주의운동 소속의 자니네 아녜스 상원 부의장은 12일 저녁 의회에서 “즉시 임시 대통령으로 취임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나라의 평화를 되찾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것”이라며 최대한 빨리 대통령 선거를 치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같은 날 러시아 외무부는 “볼리비아의 격변적인 사태에 경악했다”며 “야권이 주도한 격렬한 폭력 사태가 모랄레스 대통령의 직무 수행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쿠데타와 유사한 사태로 인해 건설적인 해결책을 찾으려는 볼리비아 정부의 역량이 무너졌다.”
미국과 러시아가 중남미에서 서로 완전히 상반되는 입장을 견지하며 대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푸틴 대통령은 옛 소련 시대 맺은 좌익 정당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중남미의 좌익 세력은 미국이 21세기 들어서도 제국주의를 추구한다고 의심한다. 지난 7일 유엔은 총회를 열고 약 60년에 걸친 미국의 쿠바 경제봉쇄를 규탄하고 즉각적인 철회를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193개 유엔 회원국 가운데 찬성 187표, 반대 3표로 채택했다.
물론 러시아도 당연히 찬성표를 던졌다. 지난해에도 반대표를 던졌던 미국과 이스라엘 외에 올해는 브라질이 처음으로 미국 편에 섰다. 미국은 쿠바 혁명과 이어진 쿠바 당국의 미국 시민과 기업에 대한 자산 국유화 이후인 1960년부터 쿠바에 대한 경제제재를 단행했다. 유엔 총회는 1992년부터 해마다 미국의 쿠바 경제제재를 비판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미국은 전임 버락 오YONHAP바마 정부 때인 2015년과 2016년 표결에선 기권한 바
있다.
오바마 정부는 2014년 미국의 쿠바 제재를 완화했지만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은 쿠바 제재를 다시 강화했을 뿐 아니라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도 한층 확대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의 사회주의자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와의 모든 관계를 단절했다. 지난해 마두로 정부의 대선 조작 의혹이 제기되면서 베네수엘라에선 선거 결과 불복 시위가 이어진다. 그에 따라 지난 1월부터 임시 대통령을 자처한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중심으로 한 야당과 이에 동조하는 시위대가 정권 퇴진과 재선거를 요구하면서 정국은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이 문제를 두고도 국제사회는 두 진영으로 분열됐다.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임시 대통령을 인정하지만 러시아는 마두로 대통령을 지지한다.
러시아를 비롯해 중국·이란·터키 등이 마두로 대통령 편에 섰고 서방의 대다수 국가는 과이도 임시 대통령을 지지했지만 과이도는 그동안 권력을 잡지 못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인종주의자들에게 희생양이 된 볼리비아 국민을 수호하기 위해 동맹들이 뭉쳐야 한다”며 “단언컨대 우리의 형제 대통령(모랄레스)을 겨냥한 쿠데타를 비판한다”고 말했다.
- 톰 오코너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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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2일 파리 평화포럼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세계 어디서든 혼란이 발생하면 곧장 러시아가 배후라고 비난받는 데 익숙해졌다고 냉소적으로 꼬집었다. 실제로 근년 들어 특히 미국이 러시아를 많이 탓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같은 나라에서 내전을 부추겼고, 유럽 전역에서 불안을 조장했으며, 시리아와 베네수엘라 같은 나라에서 위기를 장기화시켰다고 미국은 주장했다(베네수엘라는 극단적인 정치 갈등에 휘말린 중남미의 여러 나라 중 하나다).
러시아 관영 타스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라브로프 장관은 파리 평화포럼에서 이렇게 말했다.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열릴 예정이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폭력적인 반정부 시위 때문에 취소됐다. 그러면서 우리는 러시아가 칠레 사태에 개입한 배후 세력 중 하나라는 말을 들었다. 따라서 이라크와 레바논, 그리고 지금은 볼리비아에서 발생한 정치위기에선 왜 러시아가 관련됐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볼리비아의 쿠데타 배후로 러시아가 지목되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평상시엔 그런 지정학적 의제를 잘 만들어내던 서방 사람들이 지금은 심경에 무슨 변화가 생겼을까 궁금할 따름이다.”
2006년 볼리비아 첫 원주민 대통령으로 취임해 14년 가까이 집권한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4선 연임에 도전한 지난달 대선에서 부정 의혹이 불거지면서 퇴진 압력이 거세지자 지난 10일 전격 사퇴했다. 미주기구(OAS)가 선거에 부정이 있었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한 데 이어 군 수장까지 나서서 퇴진을 종용하자 백기를 들었다. 결국 그는 멕시코로 망명했다.
모랄레스의 사임 발표 직후 그의 망명을 수용할 것이라고 밝혔던 멕시코는 모랄레스가 12일 멕시코에 도착하자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외무장관을 공항으로 보내 그를 맞았다. 멕시코는 모랄레스를 태우기 위해 자국 정부기를 볼리비아로 보냈지만 몇몇 나라들이 모랄레스 전 대통령이 탑승한 항공기가 자국 영공을 통과하는 것에 반대하는 바람에 모랄레스를 멕시코로 데려오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멕시코에 도착한 모랄레스는 자신이 지난달 대선에서 승리했음에도 쿠데타로 축출됐다는 주장을 고수하며, 볼리비아에서 자신을 겨냥한 공격이 잇따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은 쿠데타라는 표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얄궂게도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 소속인 마르코 루비오(공화당·플로리다) 의원이 라브로프 장관이 암시한 그대로 볼리비아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 쪽으로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그는 “볼리비아의 쿠데타”라는 발언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중남미 설계 전략의 일부일 수 있다고 말했다.루비오 의원의 부모는 1950년대 쿠바에서 피델 카스트로 공산주의 지도자가 혁명으로 정권을 잡자 그곳을 탈출해 미국에 도착했다. 그런 배경으로 루비오 의원은 오랫동안 중남미, 특히 볼리비아·쿠바·니카라과·베네수엘라의 좌익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루비오 의원은 지난 12일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러시아가 볼리비아 사태와 관련해 허위 정보를 퍼뜨렸다고 비난하며 미국 언론도 그 정보를 그대로 받아 전달한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푸틴이 허위정보를 어떤 식으로 외교정책 도구로 사용하는지 알고 싶다면 요즘 언론의 볼리비아 사태 보도를 연구하면 된다. 첫째, 그들은 가짜뉴스를 만들어낸다. 둘째, 그들은 그 가짜뉴스를 소셜미디어를 통해 광범위하게 퍼뜨린다. 셋째, 그 허위 정보가 주류 언론에서 반향 효과를 낸다.”
그렇다면 최근 볼리비아에서 발생한 사태를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쿠데타라는 시각과 민중 봉기에 의한 대통령 하야라는 두 가지 시각으로 극명하게 갈린다. 우선 쿠데타로 보는 논리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의 퇴진을 압박하는 데 군부가 합세했고(군부의 수장이 모랄레스에게 퇴진을 종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둘째는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이 중남미 전역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지도자를 제거하기 위해 사용한 전술이 그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모랄레스의 퇴진을 두고 볼리비아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중남미 등 주변국에서도 철저히 이념에 따라 상반된 평가를 내놓으면서 볼리비아 안팎의 분열과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쿠바·베네수엘라·니카라과 등 중남미의 좌익 정권 지도자들은 모랄레스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그의 망명이 쿠데타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또 대표적인 사회주의자에 부패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됐다가 580여 일 만에 석방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브라질 대통령(브라질의 극우파 현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르는 모랄레스를 비판했다)과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 후보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도 쿠데타를 비난하며 모랄레스 편을 들었다.
볼리비아 사태를 ‘쿠데타’로 규정하는 것에 반대하는 진영의 논리는 모랄레스 정부가 4선을 금지하는 헌법과 선거법을 무시했으며, 최근의 선거에서 그들이 투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개표 결과 모랄레스가 근소한 차이로 승리했지만 야권에서 부정 선거를 강하게 주장했고, OAS까지 선거에 부정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정부도 이런 관점을 채택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지난 11일 미국 국무부의 한 고위 관리는 기자들에게 “모랄레스와 그의 지지자들은 쿠데타로 정부가 무너졌다고 주장하지만 이 모든 사태가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며 “볼리비아 국민은 정부가 유권자의 뜻을 무시하는 데 신물이 났으며, 정부의 그런 허위 주장을 밀어붙이기 위한 선동과 소요, 폭력이 지속되면서 볼리비아의 민주주의가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 바로 그 메시지”라고 논평했다.
또 다른 미국 국무부 고위 관리는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의 거리에서 모랄레스 지지 세력과 반대 세력이 충돌하면서 “모두 과도한 폭력을 행사했다”고 인정했다. 그는 모랄레스가 이끌던 정당 사회주의운동(MAS)이 다음 대선에서 후보를 내선 안 된다고 명시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지난번 선거 결과 왜곡 의혹에 직접 관련된 인사는 다음 선거에 출마해선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모랄레스를 지지하는 의원들이 여전히 의회의 과반 의석을 차지한다). 한편 볼리비아의 우파 야당 사회민주주의운동 소속의 자니네 아녜스 상원 부의장은 12일 저녁 의회에서 “즉시 임시 대통령으로 취임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나라의 평화를 되찾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할 것”이라며 최대한 빨리 대통령 선거를 치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같은 날 러시아 외무부는 “볼리비아의 격변적인 사태에 경악했다”며 “야권이 주도한 격렬한 폭력 사태가 모랄레스 대통령의 직무 수행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쿠데타와 유사한 사태로 인해 건설적인 해결책을 찾으려는 볼리비아 정부의 역량이 무너졌다.”
미국과 러시아가 중남미에서 서로 완전히 상반되는 입장을 견지하며 대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푸틴 대통령은 옛 소련 시대 맺은 좌익 정당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중남미의 좌익 세력은 미국이 21세기 들어서도 제국주의를 추구한다고 의심한다. 지난 7일 유엔은 총회를 열고 약 60년에 걸친 미국의 쿠바 경제봉쇄를 규탄하고 즉각적인 철회를 촉구하는 내용의 결의안을 193개 유엔 회원국 가운데 찬성 187표, 반대 3표로 채택했다.
물론 러시아도 당연히 찬성표를 던졌다. 지난해에도 반대표를 던졌던 미국과 이스라엘 외에 올해는 브라질이 처음으로 미국 편에 섰다. 미국은 쿠바 혁명과 이어진 쿠바 당국의 미국 시민과 기업에 대한 자산 국유화 이후인 1960년부터 쿠바에 대한 경제제재를 단행했다. 유엔 총회는 1992년부터 해마다 미국의 쿠바 경제제재를 비판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미국은 전임 버락 오YONHAP바마 정부 때인 2015년과 2016년 표결에선 기권한 바
있다.
오바마 정부는 2014년 미국의 쿠바 제재를 완화했지만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은 쿠바 제재를 다시 강화했을 뿐 아니라 베네수엘라에 대한 제재도 한층 확대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의 사회주의자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와의 모든 관계를 단절했다. 지난해 마두로 정부의 대선 조작 의혹이 제기되면서 베네수엘라에선 선거 결과 불복 시위가 이어진다. 그에 따라 지난 1월부터 임시 대통령을 자처한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중심으로 한 야당과 이에 동조하는 시위대가 정권 퇴진과 재선거를 요구하면서 정국은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졌다. 이 문제를 두고도 국제사회는 두 진영으로 분열됐다.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임시 대통령을 인정하지만 러시아는 마두로 대통령을 지지한다.
러시아를 비롯해 중국·이란·터키 등이 마두로 대통령 편에 섰고 서방의 대다수 국가는 과이도 임시 대통령을 지지했지만 과이도는 그동안 권력을 잡지 못했다. 마두로 대통령은 트위터를 통해 “인종주의자들에게 희생양이 된 볼리비아 국민을 수호하기 위해 동맹들이 뭉쳐야 한다”며 “단언컨대 우리의 형제 대통령(모랄레스)을 겨냥한 쿠데타를 비판한다”고 말했다.
- 톰 오코너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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