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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마켓’ 오명 못 벗는 중고차 시장] 믿을 수 없는 성능점검부만 믿어야

[‘레몬마켓’ 오명 못 벗는 중고차 시장] 믿을 수 없는 성능점검부만 믿어야

소비자 피해 80%는 성능·점검 문제… 책임보험 의무화도 논란
서울 장안동 중고차 시장 모습. / 사진:연합뉴스
A씨는 중고차를 구입하면서 매매업자로부터 주행거리가 5만7000km로 적힌 성능·상태 점검기록부를 받았다. 그러나 자동차등록증을 살펴보던 중 주행거리가 21만8000km인 것을 확인했다. B씨는 중고차를 구입한 후 6개월 정도 운행하다 보니 차량 바닥 매트, 엔진룸 등에 토사가 있어 정비 업체에서 점검받은 결과 침수가 있었던 차량이라는 소견을 받았다. 그러나 매매업자는 공사장에서 이용했을 뿐이라며 침수 차량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중고차 관련 소비자 피해 사례다. 중고차를 사는 사람들은 이런 문제로 이른바 ‘호갱’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곤 한다. 중고차 시장은 대표적인 ‘레몬마켓’이다. 레몬마켓이라는 용어 자체가 중고차 시장을 빗대 만들어졌다. 레몬마켓 이론을 만든 미국 조지타운 대학의 조지 애컬로프 교수는 ‘정보의 비대칭성’을 레몬시장이 생겨나는 원인으로 꼽는다. 판매되는 차량의 성능과 이력 등의 정보를 판매자는 알지만, 구매자는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문가가 아니라면 차량이 어떻게 관리됐고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따라서 중고차 시장에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 필수적이다.
 정보의 비대칭성 문제 해소되지 않아
정부가 중고차 시장을 레몬마켓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제도적 노력을 기울인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정부는 2003년 ‘카히스토리’ 사이트를 개설해 차대번호를 입력하면 자동차보험 사고 내역을 누구나 조회할 수 있도록 했다. 중고차를 구매하기 전에 카히스토리를 확인하면 이 차가 어떤 사고를 겪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러나 카히스토리 조회만으로는 중고차를 안심하고 살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모든 자동차 사고에 대해 보험 처리를 하는 것은 아닌 데다, 특별한 사고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관리 부실 문제로 생기는 문제가 많아서다.

제도상의 허점도 있다. 심지어 폐차 사고를 당한 자동차가 중고차 시장에 버젓이 유통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지난해부터는 폐차이행 확인제를 실시하고 있다. 보험사가 전손 처리한 차량을 폐차장에 넘기면, 정부가 해당 차량을 직접 관리해 폐차장이 실제 폐차 처리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폐차이행 확인제 시행 이전에 유통되던 차량은 여전히 중고차 시장에 남아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은 자동차 성능점검 기록부다. 전문가들이 현재 자동차의 상태를 면밀히 점검해 차량 성능에 이상이 없다는 것을 검증한 서류다. 정부는 2005년 성능점검 기록부 의무교부제도를 시행했다. 중고차 매매업자는 차를 판매할 때 정비사업자에게 성능점검을 받고 해당 기록부를 구매자에게 의무적으로 제공하도록 했다. 또 중고차 품질보증제도를 도입, 매매업자가 중고차 판매 후 1개월 또는 주행거리 2000㎞까지 품질을 보증해 주도록 의무화했다.

하지만 성능기록부를 믿고 자동차를 구매했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최근까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중고 자동차 관련 소비자 피해구제 신청은 2016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793건이 접수됐다. 피해구제 신청 건수는 줄고 있지만 감소폭은 더디다. 2016년 300건에 달했던 피해구제 신청 건수는 2018년 172건으로 줄었고, 올해 상반기에는 77건이 있었다. 피해구제 신청 중 가장 많은 것(79.7%)이 성능·상태 불량이다. 성능점검부만 믿고 차를 샀는데, 정작 몰아보면 크고 작은 문제가 드러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같은 문제는 차량 성능점검부 발급 자체가 부실하게 이뤄졌기 때문으로 나타났다. 자동차 성능·상태 점검업무는 주로 자동차 정비 업체에서 이뤄졌는데, 이 업무가 부수적 업무로 형식적으로 실행되는 사례가 많았던 것. 중고차 업계 한 관계자는 “백지상태의 성능·상태 점검기록부를 중고 자동차 매매업자에게 대량 발급하고 수수료를 챙긴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성능점검부를 부실하게 발행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것이 지난 6월부터 시작된 ‘중고차 성능·상태 점검 책임보험’ 의무화다. 이전에는 문제가 발생할 경우 매매업자와 성능점검업자는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모르쇠로 일관하기 일쑤였기 때문에 정작 피해는 소비자가 모두 떠안을 수밖에 없었던 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책임보험은 성능점검 사업자가 가입하고 성능점검의 부실로 소비자가 피해를 보면, 보험금 형식으로 보상해주는 상품이다. 함진규 자유한국당 의원이 2017년 1월 발의해 2017년 9월 의결됐고 올해 6월 1일부로 시행됐다. 지난 6~10월 중고차 구매자 가운데 2724명이 이 상품 덕분에 보험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시행된지 채 6개월이 지나지 않은 현재, 이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앞서 책임보험 의무화 법안을 대표 발의했던 함 의원은 개정안이 시행된 지 채 3개월이 지나지 않은 8월 20일 이를 무효화하자는 법안을 다시 발의했다. “중고차 성능·상태 점검 사기를 막고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는 입법 취지와 달리 과도한 보험료가 발생하고 이로 인해 성능·상태 점검자와 매매사업자 간 분쟁 갈등이 나타나는 등 부작용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해당 법안은 지난 11월 25일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소위에서 보류돼 추가적인 논의가 이어질 예정이다.

함 의원의 법안 발의는 중고차 매매업계의 강한 반발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여겨진다.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관계자는 “책임보험 의무화로 성능점검 업체들은 보증 책임을 보험으로 면피하고, 보험료는 사실상 소비자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손해보험협회는 계약 차량 한대당 책임보험료 평균은 3만8400원 수준으로 많지 않다고 주장한다. 반면 중고차 업계는 가격이 저렴한 노후 차량일수록 보험료가 높아 부담이 크다고 말한다. 경기도 안성의 한 중고차 매매사업자는 “주행거리가 20만km에 가까워질수록 보험료가 높아진다”며 “300만원에 판매할 소형차를 판매하는 데 보험료를 포함한 성능점검 비용이 20만원이 넘게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국토교통부 역시 보험료를 낮추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국토부는 최근 금융당국과 보험개발원 측에 손해보험사들이 판매하는 책임보험의 보험료 인하 여력을 파악해달라고 요청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책임보험?
비용의 문제가 있지만, 전문가들은 책임보험 의무화 제도 중단을 논의하기엔 너무 이른 상황이라고 말한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기존 중고차 시장에서는 품질 문제에 대해 딜러에게 책임을 묻고 성능점검 업체에 구상권을 청구하는 복잡한 구조로 돼 있어 실질적인 소비자 보호에 한계가 있었다”며 “쉽지 않게 법제화한 책임보험 의무화를 불과 몇개월 만에 무효화하려는 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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