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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인 변화일까 속 빈 강정일까

극적인 변화일까 속 빈 강정일까

미국 일류 기업 CEO 181명이 조직한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 주주 제일주의 거부하고 사회에 더 큰 책임지겠다는 뜻 밝혀
BRT 성명에서 CEO들은 기업에는 주주뿐 아니라 모든 기업 이해관계자와 관련된 의무가 있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 사진:ADAM BETTCHER-GETTY IMAGES-AFP/YONHAP
기업의 목적은 무엇일까? 기업은 얼마나 큰 대가가 따르든 주주 이익 창출을 위해 존재한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미국 문화에 보편화된 이런 믿음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경영자의 탐욕과 부정뿐 아니라 환경악화 그리고 개인과 지역사회에 대한 무신경으로 나타났다. 기업은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이익을 좇는다는 사고방식이 미국 사회에 만연해 경제시스템으로서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타당성과 적절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난다.

몇 주 전 미국의 최대 그리고 가장 유수한 기업의 최고경영자 181명이 사회에서 기업이 수행해야 하는 역할에 관한 합의에 이르렀다. 미국 일류 기업 CEO들로 이뤄진 업계협회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BRT)을 통해 CEO들은 ‘기업의 목적에 관한 성명(Statement on the Purpose of a Corporation)’을 발표했다. 성명에서 CEO들은 기업에는 주주뿐 아니라 모든 기업 이해관계자와 관련된 의무가 있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이는 주주뿐 아니라 고객·직원·납품업체·지역사회와 관련해 기업에 의무가 있다는 의미다.
단기(분기별) 실적보다는 기업의 장기적인 전략에 초점을 맞춘 장기(연간) 실적 발표로 대체해야 한다. / 사진:JOHN ANGELILLO-UPI/YONHAP
이번의 새 성명은 BRT의 ‘180도 태도 변화’를 상징한다. BRT는 1997년 이후 기업은 주로 기업 주주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입장을 확고하게 유지해 왔다. ‘주주 제일주의(shareholder primacy)’로 알려진 개념이다. BRT가 과거 추종했던 주주 제일주의 개념은 약 50년 전 소수파 경제학자들의 경제이론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1980년대와 1990년대 그 이론이 꽃을 피우면서 하나의 큰 조류를 형성하며 학계와 기업계를 휩쓸었다. 궁극적으로 기업 도그마로 자리 잡아 그에 대한 반론이 터부시됐다.

왜 그렇게 됐을까? 어쨌든 비즈니스 형태로서 기업의 존재는 주주 제일주의 개념을 최소 100년 이상 앞선다. 주주 제일주의 독트린이 왜 기업 경영방식의 기본 입장이 됐을까? 단순함을 선호하는 우리의 인식에 그 답이 있다. 주주 우선주의 개념은 그런 인지적 선호를 겨냥한다. 주주 우선주의는 복잡하고 상호의존적이고 다면적인 법인격을 걸러내고 쉽게 이익을 측정할 수 있는 극히 미시적인 도구로 바꾸려 한다. 기업 성공의 척도는 발행주식 주당 기업 이익의 단순한 측정으로 축소된다. 이 이론의 단순성을 뿌리치기에는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다. 경제학자, 비즈니스 스쿨 교수, 기업 경영자, 판사, 언론매체 모두 사이렌의 노래에 홀린 항해자처럼 거기에 빠져들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사이 학자와 경영자를 포함한 기업계·학계 지도자들은 주주 제일주의 개념이 그 단순성에도 불구하고 기업 형태의 비즈니스가 오늘날의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실질적인 역할을 반영하기에는 상당히 미흡하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이들 지도자는 오래전부터 기업이 우리 사회에서 권리를 부여받았을 뿐 아니라 주주에의 이익 환원 말고도 권리에 상응하는 사회적 책임을 지닌다고 주장해 왔다. 그리고 지난 수년간 다수의 기업이 기업 주주 이외에 이해 관계자들에 대한 의무를 지지해 왔지만 이번에 주주 제일주의를 거부하고 사회에 대한 더 큰 책임이 기업에 있음을 인정하는 사상 가장 막강한 CEO 그룹이 결성됐다.

주주 제일주의 경제 실험의 오류가 충분히 노출되면서 구시대적인 유물로 전락해 기업사의 연표에 주석으로 달리는 처지가 됐을까?

그것은 상당 부분 BRT의 바로 그 CEO들에게 달렸다. BRT가 최근 개정한 기업목적에 관한 성명은 훌륭한 첫걸음이지만 말 그대로 첫걸음일 뿐이다. BRT는 곧바로 후속 조치를 취해야 한다. 신속히 그리고 신중히 리서치·보고서 그리고 정책적 입장을 검토하고 수정해 새로 공표한 성명의 문구뿐 아니라 그 정신과도 밀접하게 일치하도록 해야 한다.

더욱이 BRT뿐 아니라 그 CEO 회원들이 대표하는 기업들은 공동으로 가시적인 조치를 취해 주주 제일주의 독트린의 심장에 완전히 대못을 박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기업의 사회적 성과에 밀접하게 연관된 경영진 보수 관행을 지지하고 채택해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성과에 밀접하게 연관된 경영진 보수 관행을 지지하고 채택해야 한다. 사진은 제이미 다이먼 JP 모건체이스 회장(왼쪽).
둘째, 다른 이해관계자들을 기업 주주들과 동등한 위치에 올려놓는 기업 지배구조 관행을 개발하고 시행해야 한다. 그런 취지로 BRT와 그 회원들은 기업 경영에서 주주들에게 과도한 발언권을 주는 기존 규칙의 개정을 증권거래위원회에 요구하고 이해관계자 모델을 지지하는 새 원칙을 채택해야 한다. 아울러 기업들은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관점을 고려할 수 있는 자문위원회를 설립해야 한다. 나아가 새로 받아들인 사회적 책임과 관련된 가시적이고 유의미한 실적 목표를 수립하고 그런 목표를 향한 감시 가능한 진척 상황을 주기적으로 보고해야 한다.

셋째, 기업들은 BRT의 성명을 뒷받침하는 재무관행을 즉시 채택해야 한다. 단기(분기별) 실적을 발표하는 대신 기업의 더 장기적인 전략을 뒷받침하는 실적보고에 초점을 맞춘 장기(연간) 실적 발표로 대체해야 한다. 또한 주가를 끌어올리는 방법으로 자사주 매입을 활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끝으로 BRT와 그 회원들이 대표하는 기업들은 로비 관행을 투명하게 하고 사회 전체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자신들의 의무를 인정하고 회피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말보다 행동이 중요하다. 우리 사회는 주주 제일주의 독트린의 영향을 씻어내는 데 필요한 변화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기업과 그 경영자를 포함해 다른 사람들에게 완벽함을 요구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그러나 BRT, 그 CEO 회원, 그들이 대표하는 기업의 가시적인 조치야말로 궁극적으로 BRT의 ‘기업 목적에 관한 성명’이 기업 경영방식과 기업에 대한 궁극적인 시각의 극적인 변화를 의미할지 아니면 단순히 실속 없는 겉치레에 불과한지를 결정하는 최대의 변수가 될 것이다.

- 로버트 필



※ [필자는 오하이오대학 경영대학 기업법과 윤리학 교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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