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경제 위기로 이어진 팬데믹] 벼랑 끝에 선 기업들
[실물경제 위기로 이어진 팬데믹] 벼랑 끝에 선 기업들
글로벌 밸류체인 타격 이어 북미·유럽 소비 축소 우려… ”추가대책 세워달라” 아우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국 산업 전반에 심각한 피해를 안겨주고 있다. 제조·서비스를 불문하고 국내 산업 곳곳에서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파탄이 나타나고 있으며 글로벌 확산으로 인해 위기감은 더욱 커진다. 코로나 사태는 정부의 올해 ‘V자형 경기 반등’ 기대를 꺾어놓았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부)는 “전반적인 경기 상황이 악화되던 가운데 가해진 코로나19 충격은 국내 실물경기의 추락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또 “특히 해외 의존도가 높아 대외교류가 많았거나 국제적인 가치사슬에 연결돼 있던 기업들을 중심으로 어려움이 확산되고 있다”며 “고용 악화로 경기침체가 더 깊어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장 복합적인 양상으로 피해를 입은 것은 현대·기아자동차다. 코로나 사태가 시작된 직후 글로벌 공급망 붕괴로 가장 먼저 타격을 입었고, 이어 감염병이 글로벌 확산하면서 수요 부진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19일 현대차의 주가는 종가기준 6만5900원까지 내려앉았다. 이는 약 11년 전인 2009년 5월 수준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회 삼아 글로벌시장에서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하던 시점으로 회귀한 것이다.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 주력 계열사의 주가도 큰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현대차의 주가 하락은 코로나19 사태가 현대차에 얼마나 큰 피해를 입혔는지를 방증한다. 현대차의 글로벌 자동차 판매량은 1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현대차는 2월 해외 시장에서 전년동기보다 10.2% 감소한 23만5754대를 판매했다. 특히 코로나19 발원지인 중국에서 판매량이 급격히 줄어 2월 한달 동안 1007대 차량 판매에 그쳤다. 지난해 2월(3만8017대)에 비해 97.4% 준 수치다. 같은 기간 기아차 판매량도 2만2032대에서 972대로 95.6% 감소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중국에서 현대·기아차 공장가동이 중단되고, 영업점이 휴업하면서 자동차 판매가 거의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중국시장뿐만이 아니었다. 코로나19 사태는 국내 공장을 멈춰 세우기도 했다. 공장 내 확진자 발생으로 문을 닫기도 했지만, 세계의 공장인 중국에서 벌어진 감염병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된 영향이 더 컸다. 차체에 다양한 전자부품을 연결하는 케이블 묶음인 ‘와이어링 하네스’ 등을 중국 공장에서 공급받았는데, 이 공장들의 가동이 수일간 중단된 것. 이는 현대·기아차뿐만 아니라 르노삼성과 한국GM, 쌍용차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글로벌 공급체인의 붕괴로 인한 산업 악영향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은 단순 수출국에서 글로벌 공급체인의 중심국으로 성장한 상태다. 해외 생산기지도 많이 늘었고, 특히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다행히 발원지 중국은 일단 수습 단계에 접어들었다. 한국도 정점은 지났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시작됐다. 코로나19가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과 유럽으로 퍼지며 수요 위축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1분기가 중국시장의 침체와 공급망의 붕괴에 어려움을 겪었다면 다가오는 2분기는 미국과 유럽 판매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지난 2월 현대·기아차의 판매 실적은 그나마 북미와 유럽 지역에서 버텨줬기 때문에 큰 폭의 하락은 피할 수 있었다. 2017년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의 판매에 주력한 결과 지난해 현대차 전체 매출 중 북미와 유럽의 매출비중은 51.7%에 달한다. 김진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주요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의 미국·유럽 공장 가동이 연이어 중단되고 경기가 급랭하면서 수요 타격도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현대차 미국 앨라바마 공장은 직원 1명이 코로나19 양성 반응을 보여 3월 18일 오전부터 가동을 중단했다. 유럽에서도 공장가동이 중단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체코 언론에 따르면 현대차 체코 공장 노동조합은 14일간의 조업 중단과 방역을 요구하고 있다.
완성차 업체의 위기는 자동차 부품업계의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국내 2위 규모의 자동차 부품업체 만도는 최근 전체 생산직 근로자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고 순환휴직도 추진키로 했다. 자동차 판매 부진이 지속되던 가운데 코로나19 사태로 공장가동률이 낮아져 이같은 결정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만도가 생산직 희망퇴직을 추진하는 건 2008년 이후 처음이다. 지난해에는 관리직 대상으로만 희망퇴직을 받았다. 배터리 기업과 철강 업체들도 위기감이 크다. 글로벌 자동차 판매 자체가 줄어들면 1분기는 물론 상반기 실적 악화가 불가피하다.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셀 생산업체 3사는 유럽과 미국 등지에 생산거점을 가지고 있는 만큼 공장 가동 중단 리스크도 안고 있다.
수년간 고사 위기에서도 부활을 도모하던 조선업체들 역시 미래가 불안하다. 한국조선해양은 최근 사내 소식지인 인사저널을 통해 “글로벌기업으로서 세계경기침체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고, 최악의 상황을 대비할 수밖에 없다”며 “연초 수립한 올해 수주 등 사업 목표 및 경영계획에 대해 전면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경제의 중추 역할을 담당해 온 반도체 산업은 직접적인 피해보다는 시황 회복세가 위축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급격한 하락세에서 벗어나 올해부터는 상당한 수준으로 회복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회복 시기가 늦춰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코로나19로 인해 가장 직접적이고 큰 피해를 입는 산업군은 여행과 항공이다. 코로나19 사태로 국가간 경계를 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지면서 수요가 완전히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한국항공협회는 올해 상반기 8개 국적항공사 매출이 최소 5조875억원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여행객 수를 보면 상황이 얼마나 힘든지 한 눈에 알 수 있다. 2월 국제선 여객 수는 전년 동월 대비 47% 줄었는데, 3월 사정은 이보다 더 악화될 것이 확실하다. 인천국제공항에 따르면 3월 1~15일 인천공항을 이용한 승객은 41만7009명(출·입국 합계)으로 집계됐다. 전년 같은 기간 282만8047명보다 85.2% 감소한 수치다. 특히 지난 3월 11일에는 하루 이용객 수가 1만522명에 그쳐 조만간 하루 1만명도 붕괴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코로나19 사태가 발발하기 이전 인천공항의 하루 이용객 최저 기록은 ‘사스(SARS)’가 정점에 달했던 지난 2003년 5월 20일로, 당시 이용객 수는 2만6773명이었다.
2017년 사드 보복의 영향에 한차례 크게 흔들렸던 항공업계는 지난해 일본과 무역 마찰에 이어 이번 코로나19 쇼크에 최악의 위기상황을 맞았다. 항공업계에선 현재 상황을 ‘생존이 걸린 버티기 단계’라고 말한다. 사실상 영업활동이 중단된 상황에서 고정비용을 감당하며 사태가 종결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태다.
항공사가 가장 먼저 취한 대처는 직원들 대상의 유·무급 휴직이다. 대한항공은 객실승무원을 대상으로 무급 희망휴직을 신청받았고, 아시아나항공은 전 직원이 열흘간 무급휴직을 실시했다. 6개 LCC 역시 유·무급휴직 또는 단축근무를 실시하고 있다. 업계에선 국적항공사의 전 직원 4만여 명 중 20%가량이 휴직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상황의 심각성은 만성적 인력 부족에 시달리던 조종사들마저 고정비 감축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대한항공은 계약직인 외국인 조종사(300여 명)를 대상으로 무급휴가 신청을 받고 있다.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조는 경영위기 극복과 고통 분담을 위해 임금의 25%를 자진삭감하겠다고 먼저 사측에 제안하기도 했다.
문제는 언제까지 버텨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2003년 사스나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를 되짚어보면 감염병은 발병 이후 2~3개월간 항공 수요에 큰 타격을 입혔고, 이후 항공 수요가 회복되는 데까지 길게는 6개월이 소요됐다. 코로나19 사태가 소강상태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적어도 상반기까지는 현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사태가 장기화 하면 올해를 내내 버텨야 할 수도 있다. 황용식 세종대 교수(경영학)는 “무급휴직 등으로 고정비 감축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항공기 리스와 주기비용으로 나가는 현금이 훨씬 많다”며 “모기업을 통해 현금을 지원받을 수 없는 항공사는 위기를 넘기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행업계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휴업을 넘어 이미 도산하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개방여행업 인허가데이터에 따르면 코로나19 국내 확진자가 발생한 1월 20일부터 3월 13일까지 폐업을 신고한 국내·국외·일반 여행사는 56곳에 달한다. 특히 국내 여행업계 1·2위 사업자인 모두투어와 하나투어가 공동 설립한 호텔앤에어닷컴이 청산절차를 밟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호텔업계도 최악의 위기에 몰렸다. 업계에 따르면 크라운 파크호텔 명동과 호텔 스카이파크 명동 1~3호점, 스타즈호텔 명동 2호점, 라마다 동대문 등이 최근 임시휴업에 들어갔다. 외국인 단체관광객이 주고객이었던 이들 호텔은 길게는 4월 말까지 영업을 중단한다. 온라인여행예약플랫폼인 트립 닷컴에 따르면 2월 말부터 3월 10일까지 상품 판매를 중단해 달라고 요청한 국내 호텔이 100곳에 달했다. 정유산업은 유가 급락으로 위기다. 에쓰오일은 1976년 창사 이후 처음으로 희망퇴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유업계 사업은 유가가 떨어질수록 힘든 구조다. 중동과 미국 등지에서 원유를 수입·정제해 석유제품을 판매하는데, 원유를 사서 한국에 오는 동안 가격이 떨어지면 손해를 본다. 유가가 떨어지면 정제마진 또한 감소한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3월 16일(현지시간) 기준 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9.6%(3.03달러) 내린 28.7달러에 거래를 마치며 배럴당 30달러선이 무너졌다. 2016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국제유가가 급락한 것은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미국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유럽 주요국에서 이동 제한과 국경 봉쇄에 나서면서 원유 수요가 급감할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가 석유 패권을 놓고 경쟁적인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어 공급 과잉이 심화될 것이란 우려도 커지고 있다.
코로나19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지만 지속된 경영난으로 체력이 바닥난 기업들도 글로벌 경기 불안정성에 따라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국내 5위 규모의 해운사인 흥아해운은 최근 채권단 공동관리(워크아웃)를 신청했다. 물론 흥아해운의 워크아웃 신청을 코로나19의 탓으로 보기는 어렵다. 흥아해운은 동남아시아 항로의 선복 과잉 공급으로 컨테이너선 시황이 악화되면서 2016년 이후 경영실적이 좋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컨테이너선 사업을 장금상선에 매각하고 영업외 자산매각, 주식감자, 대주주 유상증자 등 자구책을 시행하며 재건의 길을 모색했지만 경영개선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흥아해운 측은 “이번 공동관리절차 신청은 케미컬탱커 사업부문 등 존속기업의 단기 유동성 안정 및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경영안정화 차원에서 오랫동안 금융채권단협 의회와 논의해 온 사항”이라고 말했다.
다만 해운업계에선 코로나19 사태가 업황 개선에 대한 흥아해운의 마지막 희망을 꺾어놨다고 보고 있다. 워크아웃 신청의 ‘트리거’가 됐다는 얘기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국을 오가는 물량이 줄어들며 글로벌 해운시장 운임이 폭락했고, 단기간에 업황 개선이 될 것이란 기대감은 사라졌다”고 말했다.
매출 내리막길을 걷던 두산중공업도 궁지에 몰렸다. 두산중공업은 2월 희망퇴직 절차에 돌입한 데 이어 최근 전사 휴업을 검토하는 등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두산중공업은 올해 상반기까지 막대한 자금 상환을 앞두고 있다. 올해 두산중공업이 상환해야 하는 사채(회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 포함)는 1조2435억원이다. 당장 다음달 6000억원을 시작으로 6월까지 자금 대부분이 몰려있다. 두산중공업의 현금흐름창출 능력을 감안하면 버거운 수준이다. 재계 관계자는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 닥친 글로벌 실물경제 위기가 여러 한계기업의 호흡기를 한번에 떼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한계기업의 도태는 필요하지만 이 과정이 한 번에 이뤄진다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벼랑 끝에 몰린 기업들에 대한 ‘자금 지원’만이 가장 즉각적이고 실효성 있는 타개책이라고 말한다. 재계에선 법인세 인하를 비롯한 세금부담 완화와 유동성 공급 등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가장 심각한 위기를 맞은 항공업계의 주장이 강하다. 허희영 항공대 교수(경영학)는 “미국 정부도 자국 항공사와 공항 등에 역대 최대치의 보조금과 대출 등을 검토하고 있다”며 “우리나라 항공 역사에서 이런 사태는 초유이기 때문에 전례없는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계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위기상황에서는 자금 공급의 시의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무차별적인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계기업은 도태되는 것이 맞지만 사실상 현재의 상황에서 기업 평가를 통한 ‘핀셋지원’의 기준을 잡고 이를 실행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 18일 11조7000억원의 추경이 의결된 직후 추가적인 추경예산 편성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도 추가대책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강성진 고려대 교수(경제학)는 “코로나19가 미치는 경제적 피해는 소비자보다 생산자에게 더 크고 치명적”이라며 “영세 상인, 여행업계에 대한 추가 지원책을 중심으로 추가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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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복합적인 양상으로 피해를 입은 것은 현대·기아자동차다. 코로나 사태가 시작된 직후 글로벌 공급망 붕괴로 가장 먼저 타격을 입었고, 이어 감염병이 글로벌 확산하면서 수요 부진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19일 현대차의 주가는 종가기준 6만5900원까지 내려앉았다. 이는 약 11년 전인 2009년 5월 수준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회 삼아 글로벌시장에서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하던 시점으로 회귀한 것이다.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현대차그룹 주력 계열사의 주가도 큰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中 밸류체인 무너진 제조업, 수요 위축 우려도
중국시장뿐만이 아니었다. 코로나19 사태는 국내 공장을 멈춰 세우기도 했다. 공장 내 확진자 발생으로 문을 닫기도 했지만, 세계의 공장인 중국에서 벌어진 감염병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된 영향이 더 컸다. 차체에 다양한 전자부품을 연결하는 케이블 묶음인 ‘와이어링 하네스’ 등을 중국 공장에서 공급받았는데, 이 공장들의 가동이 수일간 중단된 것. 이는 현대·기아차뿐만 아니라 르노삼성과 한국GM, 쌍용차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글로벌 공급체인의 붕괴로 인한 산업 악영향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은 단순 수출국에서 글로벌 공급체인의 중심국으로 성장한 상태다. 해외 생산기지도 많이 늘었고, 특히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다행히 발원지 중국은 일단 수습 단계에 접어들었다. 한국도 정점은 지났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시작됐다. 코로나19가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과 유럽으로 퍼지며 수요 위축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1분기가 중국시장의 침체와 공급망의 붕괴에 어려움을 겪었다면 다가오는 2분기는 미국과 유럽 판매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지난 2월 현대·기아차의 판매 실적은 그나마 북미와 유럽 지역에서 버텨줬기 때문에 큰 폭의 하락은 피할 수 있었다. 2017년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의 판매에 주력한 결과 지난해 현대차 전체 매출 중 북미와 유럽의 매출비중은 51.7%에 달한다. 김진우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주요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의 미국·유럽 공장 가동이 연이어 중단되고 경기가 급랭하면서 수요 타격도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현대차 미국 앨라바마 공장은 직원 1명이 코로나19 양성 반응을 보여 3월 18일 오전부터 가동을 중단했다. 유럽에서도 공장가동이 중단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체코 언론에 따르면 현대차 체코 공장 노동조합은 14일간의 조업 중단과 방역을 요구하고 있다.
완성차 업체의 위기는 자동차 부품업계의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국내 2위 규모의 자동차 부품업체 만도는 최근 전체 생산직 근로자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고 순환휴직도 추진키로 했다. 자동차 판매 부진이 지속되던 가운데 코로나19 사태로 공장가동률이 낮아져 이같은 결정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만도가 생산직 희망퇴직을 추진하는 건 2008년 이후 처음이다. 지난해에는 관리직 대상으로만 희망퇴직을 받았다. 배터리 기업과 철강 업체들도 위기감이 크다. 글로벌 자동차 판매 자체가 줄어들면 1분기는 물론 상반기 실적 악화가 불가피하다.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 삼성SDI 등 국내 배터리셀 생산업체 3사는 유럽과 미국 등지에 생산거점을 가지고 있는 만큼 공장 가동 중단 리스크도 안고 있다.
수년간 고사 위기에서도 부활을 도모하던 조선업체들 역시 미래가 불안하다. 한국조선해양은 최근 사내 소식지인 인사저널을 통해 “글로벌기업으로서 세계경기침체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고 있고, 최악의 상황을 대비할 수밖에 없다”며 “연초 수립한 올해 수주 등 사업 목표 및 경영계획에 대해 전면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경제의 중추 역할을 담당해 온 반도체 산업은 직접적인 피해보다는 시황 회복세가 위축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지난해 급격한 하락세에서 벗어나 올해부터는 상당한 수준으로 회복될 것이란 전망이 나왔지만 회복 시기가 늦춰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직격탄 맞은 항공·여행업계는 ‘버티기’ 돌입
2017년 사드 보복의 영향에 한차례 크게 흔들렸던 항공업계는 지난해 일본과 무역 마찰에 이어 이번 코로나19 쇼크에 최악의 위기상황을 맞았다. 항공업계에선 현재 상황을 ‘생존이 걸린 버티기 단계’라고 말한다. 사실상 영업활동이 중단된 상황에서 고정비용을 감당하며 사태가 종결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태다.
항공사가 가장 먼저 취한 대처는 직원들 대상의 유·무급 휴직이다. 대한항공은 객실승무원을 대상으로 무급 희망휴직을 신청받았고, 아시아나항공은 전 직원이 열흘간 무급휴직을 실시했다. 6개 LCC 역시 유·무급휴직 또는 단축근무를 실시하고 있다. 업계에선 국적항공사의 전 직원 4만여 명 중 20%가량이 휴직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상황의 심각성은 만성적 인력 부족에 시달리던 조종사들마저 고정비 감축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대한항공은 계약직인 외국인 조종사(300여 명)를 대상으로 무급휴가 신청을 받고 있다. 이스타항공 조종사 노조는 경영위기 극복과 고통 분담을 위해 임금의 25%를 자진삭감하겠다고 먼저 사측에 제안하기도 했다.
문제는 언제까지 버텨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2003년 사스나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를 되짚어보면 감염병은 발병 이후 2~3개월간 항공 수요에 큰 타격을 입혔고, 이후 항공 수요가 회복되는 데까지 길게는 6개월이 소요됐다. 코로나19 사태가 소강상태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적어도 상반기까지는 현 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사태가 장기화 하면 올해를 내내 버텨야 할 수도 있다. 황용식 세종대 교수(경영학)는 “무급휴직 등으로 고정비 감축에 적극 나서고 있지만 항공기 리스와 주기비용으로 나가는 현금이 훨씬 많다”며 “모기업을 통해 현금을 지원받을 수 없는 항공사는 위기를 넘기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행업계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휴업을 넘어 이미 도산하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개방여행업 인허가데이터에 따르면 코로나19 국내 확진자가 발생한 1월 20일부터 3월 13일까지 폐업을 신고한 국내·국외·일반 여행사는 56곳에 달한다. 특히 국내 여행업계 1·2위 사업자인 모두투어와 하나투어가 공동 설립한 호텔앤에어닷컴이 청산절차를 밟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호텔업계도 최악의 위기에 몰렸다. 업계에 따르면 크라운 파크호텔 명동과 호텔 스카이파크 명동 1~3호점, 스타즈호텔 명동 2호점, 라마다 동대문 등이 최근 임시휴업에 들어갔다. 외국인 단체관광객이 주고객이었던 이들 호텔은 길게는 4월 말까지 영업을 중단한다. 온라인여행예약플랫폼인 트립 닷컴에 따르면 2월 말부터 3월 10일까지 상품 판매를 중단해 달라고 요청한 국내 호텔이 100곳에 달했다.
유가급락·경기침체도 기업을 벼랑 끝으로 몰아
코로나19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 않지만 지속된 경영난으로 체력이 바닥난 기업들도 글로벌 경기 불안정성에 따라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국내 5위 규모의 해운사인 흥아해운은 최근 채권단 공동관리(워크아웃)를 신청했다. 물론 흥아해운의 워크아웃 신청을 코로나19의 탓으로 보기는 어렵다. 흥아해운은 동남아시아 항로의 선복 과잉 공급으로 컨테이너선 시황이 악화되면서 2016년 이후 경영실적이 좋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컨테이너선 사업을 장금상선에 매각하고 영업외 자산매각, 주식감자, 대주주 유상증자 등 자구책을 시행하며 재건의 길을 모색했지만 경영개선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흥아해운 측은 “이번 공동관리절차 신청은 케미컬탱커 사업부문 등 존속기업의 단기 유동성 안정 및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경영안정화 차원에서 오랫동안 금융채권단협 의회와 논의해 온 사항”이라고 말했다.
다만 해운업계에선 코로나19 사태가 업황 개선에 대한 흥아해운의 마지막 희망을 꺾어놨다고 보고 있다. 워크아웃 신청의 ‘트리거’가 됐다는 얘기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국을 오가는 물량이 줄어들며 글로벌 해운시장 운임이 폭락했고, 단기간에 업황 개선이 될 것이란 기대감은 사라졌다”고 말했다.
매출 내리막길을 걷던 두산중공업도 궁지에 몰렸다. 두산중공업은 2월 희망퇴직 절차에 돌입한 데 이어 최근 전사 휴업을 검토하는 등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 두산중공업은 올해 상반기까지 막대한 자금 상환을 앞두고 있다. 올해 두산중공업이 상환해야 하는 사채(회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 포함)는 1조2435억원이다. 당장 다음달 6000억원을 시작으로 6월까지 자금 대부분이 몰려있다. 두산중공업의 현금흐름창출 능력을 감안하면 버거운 수준이다. 재계 관계자는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 닥친 글로벌 실물경제 위기가 여러 한계기업의 호흡기를 한번에 떼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한계기업의 도태는 필요하지만 이 과정이 한 번에 이뤄진다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업 자금지원 포함된 2차 추경 가능성
경제계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위기상황에서는 자금 공급의 시의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무차별적인 자금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계기업은 도태되는 것이 맞지만 사실상 현재의 상황에서 기업 평가를 통한 ‘핀셋지원’의 기준을 잡고 이를 실행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 18일 11조7000억원의 추경이 의결된 직후 추가적인 추경예산 편성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도 추가대책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강성진 고려대 교수(경제학)는 “코로나19가 미치는 경제적 피해는 소비자보다 생산자에게 더 크고 치명적”이라며 “영세 상인, 여행업계에 대한 추가 지원책을 중심으로 추가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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