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보여준 속살] 우리가 알던 시스템의 대변혁 위기
[코로나19가 보여준 속살] 우리가 알던 시스템의 대변혁 위기
코로나로 무너지는 글로벌화·공급체인·식량공급·항공·유통 붕괴 어디까지인가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가 100만 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는 5만2000명에 이르렀다. 통계정보 제공 사이트인 월드오메터스가 집계한 결과로, 시간은 한국시간 4월 3일 오전 8시 기준이다. 이 사이트에 따르면 전 세계 204개 국가나 속령에서 코로나19가 발견됐으며 여기에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와 MS 잔담 등 2척의 크루즈선이 추가된다.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국가와 속령의 숫자는 유엔 사이트가 밝힌 회원국 숫자 193개보다 많다. 홍콩 등 주권국가가 아닌 속령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누적 확진자의 경우 미국이 이날 24만 명을 넘어 전 세계 확진자 4명 중 한 명을 차지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11만 명을 넘었으며 독일과 중국의 8만명대, 프랑스와 이란이 5만명 대다. 영국이 3만 명 이상이며 스위스·터키·벨기에·네덜란드·캐나다·오스트리아가 1만명대다.
신규 확진자 숫자도 속도가 빠르다. 미국이 이날 하루에만 2만5000명이 넘는 추가 확진자가 나왔다. 스페인이 하루에 7900명을, 독일이 6809명, 이탈리아와 영국이 4000명이 넘는 추가 확진자가 발견됐다. 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과 대량 검사가 결합한 결과로 보인다. 이란과 터키, 프랑스에서 하루 2000명 이상의 추가 확진가가 나온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캐나다·벨기에·네덜란드·스위스·브라질에서 하루 확진자가 1000명을 넘었다.
늘어나는 확진자 만큼이나 우려되는 것은 사망자의 급속한 증가다. 이탈리아에선 1만3000명 이상이고 스페인은 1만명을 넘었다. 미국과 프랑스가 각각 5000명 이상이고, 이란과 영국이 3000명 안팎이다. 네덜란드·독일·벨기에도 1000명을 넘어섰다. 주목할 점은 뛰어난 의료 인프라 등의 영향으로 초기에 사망자가 비교적 적었던 독일도 이날 사망자가 176명이 늘어 1107명에 이르렀다. 확진자 대비 사망자의 비율인 치명률은 1.3%로 다른 나라에 비해 여전히 낮다.
통계가 말해주듯이 코로나19가 가히 세계를 흔들고 있다.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만으론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광범위한 분야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있다. 팬데믹(전 세계적인 범유행)이란 표현이 모자랄 정도로 영향이 강력하고 분야와 범위도 넓다. 보건의료를 넘어 경제와 정치와 사회 체제에도 심각한 변화가 불가피하다. 바이러스와 대항하는 과정에서 전 세계는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세계는 어디까지, 어떻게 변할 것인가. 경제를 살펴보면 세계경제의 중심인 미국과 유럽의 사정이 말이 아니다. 특히 미국의 경우 ‘셧다운(일시정지) 경제’ ‘록다운(제재·폐쇄) 경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코로나19로 인한 이동 제한과 소비 위축의 영향을 직격탄으로 맞고 있다. 실질적으로 경제 자체가 셧다운이나 록다운 된 상황이다. 2일(현지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나란히 참석한 백악관 회견에서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자국민 90%가 자가격리를 명령 받고 있다고 밝혔다. 약국·수퍼·주유소를 제외하고는 개인적으로 이동할 수 없도록 한다.
이동이 막히면서 소비는 꽁꽁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서비스업은 그야말로 ‘진공동결’ 상태다. 월가는 대공황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요동치고 있다. 공장도 멈추거나 가동을 줄일 수밖에 없다. 므누신은 재무장관은 부양자금을 2주 안에 풀겠다며 660만 명에 이르는 실업 인구에 대한 대책도 곧 내놓겠다고 밝혔다. 프랑스2 방송은 자국에서 샴페인 소비가 84%, 향수 소비가 60% 줄어 생산·유통업계가 고통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장례 수요는 83%가 늘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고 보도했다. 의료 요원들은 물론 장례업계 종사자도 감염의 위험에 시달리는 가운데 묵묵히 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도 가장 상황이 심각한 뉴욕주는 이날 9만2000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왔으며 사망자도 2373명에 이르렀다. 인구2000만의 뉴욕주는 국가로 치면 확진자가 미국·이탈리아·스페인 다음으로 독일·중국·프랑스·이란보다 많다. 사망자도 이탈리아·스페인·미국·프랑스·중국·이란·영국 다음이다. 네덜란드·독일·벨기에보다 많다. 특히 미국의 번영을 상징하며 전 세계 이민 희망자에게 꿈의 도시로 통했던 뉴욕시는 병원들로 몰려드는 코로나19 환자를 감당하지 못해 아수라장을 연출하고 있다. 센트럴 파크에 자원봉사단체가 환자를 수용하기 위한 야전 텐트를 설치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초현실적이다. 뉴욕시나 뉴욕주를 넘어 냉전 이후 글로벌 유일 강국으로 군림해왔던 미국이 처한 심각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CNN은 미국이 심각한 의료장비와 물자 부족에 시달린다며 수 천 개의 고장 난 인공호흡기를 수리해 수요에 맞추려고 한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국제적인 위상은 코로나19 위기를 맞아 그야말로 흔들리고 있다. 팬데믹으로 인한 가장 가시적인 국제 권력지형의 변화다. 미국은 코로나 위기를 맞아 전 세계에 지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 뾰족한 대응 방법을 보여주지도 못하는 것은 물론 자국 상황도 제대로 통제하기나 위기에 대응하지 못하고 허둥대는 모습을 보여줬다. 코로나19 방역과 대응에 관한 한 미국은 글로벌 지도국과 거리가 멀다. 트럼프 대통령의 상황판단 미숙, 보건의료 전문가의 조언이 아닌 정치(재선을 노린 11월의 대선)를 고려한 판단, 리더십 부족을 큰 이유로 지적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엉성한 인식과 미숙한 대응은 2월 27일 코로나19와 관련해서 연 백악관의 첫 브리핑에서 바로 드러났다. 이날 트럼프는 미국에서만 한해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가 2만5000명에서 6만9000명에 이른다며 코로나19가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는 평소 주장을 반복했다. 심지어 2019년 존스홉킨스 대학이 작성해 코로나19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떨어지는 ‘미국 유행병 대비 세계 1위’ 보고서를 들고 나와 흔들며 코로나19가 별 게 아니며 미국은 문제가 없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이 보고서는 유행병에 대비가 잘 된 나라 1위로 미국을 꼽았으며 뒤이어 영국·네덜란드·호주·캐나다·태국·스웨덴·덴마크·한국·핀란드의 순이었다.
이들 나라의 대부분은 현재 코로나19가 확산돼 있다. 중국 등에 코로나19가 확산하는 상황에서 “독감 수준”이라며 코로나19를 오판하는 발언을 한 것은 트럼프의 오판과 미숙함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평가된다. 미국은 군사적으로 수퍼파워일지 몰라도 보건의료와 전염병 대응에선 다른 나라와 별다른 차이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에 의지하거나 조언이나 정보를 얻으려는 나라가 나오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그 기회를 틈타 중국은 글로벌 방역 및 보건의료 지도국 위상을 차지하기 위해 대대적인 외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의 신화망·중국망·인민망과 외교부 발표에 따르면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3월 이후 이틀에 하루 꼴로 코로나19가 휩쓴 외국 정상들에게 전화하거나 전문을 보내 비대면 정상 외교에 집중하고 있다. 위기에 처한 해당국의 피해를 위로하고 물자와 의료진 지원을 약속하며 접근하고 있다. 82개국 이상에 의료용품·의료진을 보내 연대를 과시하고 있다.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을 중심으로 확산한 코로나19 초기 대응에 실패해 8000명이 넘는 확진자와 33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실패 사례를 오히려 성공 사례라고 감싸며 그 경험을 공유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중국 당국은 2019년 연말에 나타난 코로나19에 대한 초기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으로 지적 받아왔는데 이를 덮고 선전과 해외 지원을 앞세워 코로나19 글로벌 위기를 국가 이미지 개선과 책임 회피에 활용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중국은 2019년 연말에 나타난 코로나19를 무시하다 12월 31일에서야 비로소 첫 확진자를 인정했으며 그 이후에도 적극적인 조치를 하지 않고 춘제(春節·설·올해 1월25일)를 앞두고 연휴가 시작될 때까지 미루다 초대형 유행으로 이어졌다. 중국 당국은 1월23일에야 인구 1108만의 우한을 봉쇄했으며, 이어 인구 5850만의 후베이성의 다른 도시들도 비슷한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전염병이 돌면서 우한 등에서 약 500만 명이 봉쇄 전에 외부로 이동하면서 봉쇄의 효과가 줄었다는 평가다. 중국 당국의 조치가 늦었다는 이야기다. 후베이성 당국은 두 달이 지난 3월 24일 후베이성 봉쇄는 3월 25일을, 우한은 4월 8일 봉쇄를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은 이런 초기 대응 실패를 덮기 위해 코로나19에 대응하면서 얻은 정보와 노하우를 전 세계에 대대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이미 113개국 이상에 비디오 회의로 노하우를 전수했다. 3월 24일에는 중남미 25개국과 3시간 동안 영상으로 접촉하며 방역지도를 했다. 당장 데이터도 대처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도 없는 나라로서는 중국의 정보 전달과 지도에 눈을 번쩍 뜰 수밖에 없다. 전염병 발생 진상 규명과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묻히고 중국이 방역 지도국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이다.
포린폴리시는 중국이 이를 계기로 기존의 일대일로 전략에 더해 ‘보건의료 실크로드’를 건설하려고 시도한다고 지적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중국이 코로나19에 따른 글로벌 위기를 틈타 소프트파워 국가로 올라서려고 시도한다고 평가했다. 코로나 19로 인한 미국의 신뢰 추락은 글로벌 사회에서 미국와 중국이 더욱 격렬하게 경쟁하는 상황을 부르고 있다. 다만 중국도 코로나19 확산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만큼 코로나19 위기를 얼마나 활용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미국과 함께 196개국의 회원국을 거느린 유엔과 세계보건기구(WHO)·국제금융기구(IMF)·세계은행(WB) 같은 국제기구의 역할과 위상도 코로나19를 계기로 재평가되고 있다. 코로나19에 대한 사전 경고는 물론 초기 대응도 제대로 하지 못해 엄청난 예산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어서다. 거대한 관료기구를 유지하는 유엔은 사실상 사무총장의 발언 외에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특히 WHO는 위기를 자처하고 있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의 노골적인 중국 편들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권위와 신뢰가 떨어진 상황이다. 3월 11일의 팬데믹 선언도 너무 늦어 시기를 놓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예상되는 국가·글로벌의 경제 위기로 개별 국가별로 대책이 나오고 있을 뿐, IMF 차원에선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가난 없는 세상 건설’을 구호로 개발도상국을 지원하기 위해 창설된 WB도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개도국 보건·경제 위기를 앞두고 선제적인 대응을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때문에 ‘존재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는 상황이다. 거대한 예산과 기금에 대한 혹독한 조치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이와 함께 26개국이 가입한 유럽연합(EU), 22개국으로 이뤄진 아랍연맹(AL), 10개국의 회원국이 있는 아세안(ASEAN), 55개국의 회원국을 거느린 아프리카연합(AU), 12개국이 가입한 남미국가연합(USAN) 같은 지역기구의 효용도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지역의 정치·경제·문화 공동체를 표방했지만 정작 코로나19 같은 보건위기가 오자 지역기구 단위의 협의나 합의, 대책을 내지 못하고 있다. 서로 문을 걸어 잠그고 국가 단위의 대책을 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나마 EU는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한 솅겐(Schengen) 조약에 따라 코로나 위기 초반에도 국경을 열어뒀지만 상황이 심각해지자 국경을 제한적으로 닫을 수밖에 없게 됐다. EU 차원의 대책과 지원도 초기에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개별 국가가 자국에서 벌어지는 코로나19확산에 대응하기에도 벅차기 때문이다. 다만 보건의료 강국인 독일의 병원들이 병상 부족에 시달리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환자를 비행기로 이송해 받고 있는 정도다.
코로나 위기는 그동안 전 세계로 확산하던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가 위협 받고 권위주의와 감시사회로 옮아갈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중국은 코로나19 확산을 막는다는 이유로 철저한 주민 통제와 도시 봉쇄, 드론 등을 이용한 주민 감시를 벌였다. 효용은 별개로, 인권 침해 소지가 다분한 방식이다. 하지만 중국은 이제 이런 ‘중국식 방역모델’을 전 세계에 자랑하며 이를 퍼뜨릴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중국의 방역방식이라는 미명 아래 중국식 권위주의와 감시사회를 개발도상국에 수출해 중국 체제를 인정받고 인권과 소수민족 문제에 대한 국제적 비난을 누그러뜨리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중국을 비롯한 저임금 국가와 지역을 ‘세계의 공장’으로 운영하면서 전 세계가 혜택을 누려온 ‘글로벌 공급체인’도 재평가 받을 위기에 처했다.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초기에 부품 이동이 중단되거나 연기되면서 전 세계 수많은 기업이 위기에 처했다. 중국의 생산기지가 가동을 중단하면서 중국에 부품과 소재를 공급하던 전 세계 기업들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게 됐다. 공급망의 글로벌 의존도를 줄이는 방안이 각국에서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 소비자상품의 물가가 높아지고 기업 이익이 줄어드는 대신에 개별 국가에서 고용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마스크와 방호복, 인공호흡기를 비롯한 코로나19 대응 의료·방역 물자가 새롭게 ‘전략물자’가 되는 상황도 나타났다. 중국산 등에 의존하다가 중국에서도 물자가 부족해지면서 세계 각국이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됐다. 이를 계기고 세계 각국이 보건의료와 방역 관련 물품을 자급하려는 노력이 확산될 전망이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월 200만 개이던 마스크 생산 능력을 4월부터 1000만개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물러가더라도 보건의료 관련 물자의 자급 기조는 바뀌지 않을 조짐이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이 달린 물자를 이국에 의존할 수 없다는 여론 속에서 각국 정부는 경제논리가 아닌 안보논리와 정치논리로 이 사안에 접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식량 문제도 같은 차원에서 안보와 직결된 전략물자로 취급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글로벌화와 글로벌 공급체인에 의존하던 경제체제가 한바탕 재편되는 홍역을 겪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세계화의 수혜자였던 항공·여행 산업은 상당 기간 침체를 겪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파산 사태를 피하기 위해 각국 정부는 국정 항공사를 국영화하는 강수를 둘 수밖에 없다. 각국 정부가 기업과 가계에 직접적인 지원금을 지급하는 상황도 이젠 전 세계에서 일반화할 조짐이다. 자본주의를 받쳐왔던 여러 기준들이 경제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어떤 상황으로 갈지 전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글로벌화도, 민주주의도, 자본주의도 변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고 사람들이 어떻게 적응하느냐다.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 기자 ciimccp@joongang.co.kr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누적 확진자의 경우 미국이 이날 24만 명을 넘어 전 세계 확진자 4명 중 한 명을 차지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11만 명을 넘었으며 독일과 중국의 8만명대, 프랑스와 이란이 5만명 대다. 영국이 3만 명 이상이며 스위스·터키·벨기에·네덜란드·캐나다·오스트리아가 1만명대다.
신규 확진자 숫자도 속도가 빠르다. 미국이 이날 하루에만 2만5000명이 넘는 추가 확진자가 나왔다. 스페인이 하루에 7900명을, 독일이 6809명, 이탈리아와 영국이 4000명이 넘는 추가 확진자가 발견됐다. 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과 대량 검사가 결합한 결과로 보인다. 이란과 터키, 프랑스에서 하루 2000명 이상의 추가 확진가가 나온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캐나다·벨기에·네덜란드·스위스·브라질에서 하루 확진자가 1000명을 넘었다.
늘어나는 확진자 만큼이나 우려되는 것은 사망자의 급속한 증가다. 이탈리아에선 1만3000명 이상이고 스페인은 1만명을 넘었다. 미국과 프랑스가 각각 5000명 이상이고, 이란과 영국이 3000명 안팎이다. 네덜란드·독일·벨기에도 1000명을 넘어섰다. 주목할 점은 뛰어난 의료 인프라 등의 영향으로 초기에 사망자가 비교적 적었던 독일도 이날 사망자가 176명이 늘어 1107명에 이르렀다. 확진자 대비 사망자의 비율인 치명률은 1.3%로 다른 나라에 비해 여전히 낮다.
통계가 말해주듯이 코로나19가 가히 세계를 흔들고 있다.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만으론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광범위한 분야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있다. 팬데믹(전 세계적인 범유행)이란 표현이 모자랄 정도로 영향이 강력하고 분야와 범위도 넓다. 보건의료를 넘어 경제와 정치와 사회 체제에도 심각한 변화가 불가피하다. 바이러스와 대항하는 과정에서 전 세계는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세계는 어디까지, 어떻게 변할 것인가.
미국·유럽 수퍼파워도 전염병 대응 부실 드러내
이동이 막히면서 소비는 꽁꽁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서비스업은 그야말로 ‘진공동결’ 상태다. 월가는 대공황을 연상하게 할 정도로 요동치고 있다. 공장도 멈추거나 가동을 줄일 수밖에 없다. 므누신은 재무장관은 부양자금을 2주 안에 풀겠다며 660만 명에 이르는 실업 인구에 대한 대책도 곧 내놓겠다고 밝혔다. 프랑스2 방송은 자국에서 샴페인 소비가 84%, 향수 소비가 60% 줄어 생산·유통업계가 고통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장례 수요는 83%가 늘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고 보도했다. 의료 요원들은 물론 장례업계 종사자도 감염의 위험에 시달리는 가운데 묵묵히 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도 가장 상황이 심각한 뉴욕주는 이날 9만2000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왔으며 사망자도 2373명에 이르렀다. 인구2000만의 뉴욕주는 국가로 치면 확진자가 미국·이탈리아·스페인 다음으로 독일·중국·프랑스·이란보다 많다. 사망자도 이탈리아·스페인·미국·프랑스·중국·이란·영국 다음이다. 네덜란드·독일·벨기에보다 많다. 특히 미국의 번영을 상징하며 전 세계 이민 희망자에게 꿈의 도시로 통했던 뉴욕시는 병원들로 몰려드는 코로나19 환자를 감당하지 못해 아수라장을 연출하고 있다. 센트럴 파크에 자원봉사단체가 환자를 수용하기 위한 야전 텐트를 설치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초현실적이다. 뉴욕시나 뉴욕주를 넘어 냉전 이후 글로벌 유일 강국으로 군림해왔던 미국이 처한 심각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CNN은 미국이 심각한 의료장비와 물자 부족에 시달린다며 수 천 개의 고장 난 인공호흡기를 수리해 수요에 맞추려고 한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국제적인 위상은 코로나19 위기를 맞아 그야말로 흔들리고 있다. 팬데믹으로 인한 가장 가시적인 국제 권력지형의 변화다. 미국은 코로나 위기를 맞아 전 세계에 지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 뾰족한 대응 방법을 보여주지도 못하는 것은 물론 자국 상황도 제대로 통제하기나 위기에 대응하지 못하고 허둥대는 모습을 보여줬다. 코로나19 방역과 대응에 관한 한 미국은 글로벌 지도국과 거리가 멀다. 트럼프 대통령의 상황판단 미숙, 보건의료 전문가의 조언이 아닌 정치(재선을 노린 11월의 대선)를 고려한 판단, 리더십 부족을 큰 이유로 지적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엉성한 인식과 미숙한 대응은 2월 27일 코로나19와 관련해서 연 백악관의 첫 브리핑에서 바로 드러났다. 이날 트럼프는 미국에서만 한해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가 2만5000명에서 6만9000명에 이른다며 코로나19가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는 평소 주장을 반복했다. 심지어 2019년 존스홉킨스 대학이 작성해 코로나19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떨어지는 ‘미국 유행병 대비 세계 1위’ 보고서를 들고 나와 흔들며 코로나19가 별 게 아니며 미국은 문제가 없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이 보고서는 유행병에 대비가 잘 된 나라 1위로 미국을 꼽았으며 뒤이어 영국·네덜란드·호주·캐나다·태국·스웨덴·덴마크·한국·핀란드의 순이었다.
이들 나라의 대부분은 현재 코로나19가 확산돼 있다. 중국 등에 코로나19가 확산하는 상황에서 “독감 수준”이라며 코로나19를 오판하는 발언을 한 것은 트럼프의 오판과 미숙함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평가된다. 미국은 군사적으로 수퍼파워일지 몰라도 보건의료와 전염병 대응에선 다른 나라와 별다른 차이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에 의지하거나 조언이나 정보를 얻으려는 나라가 나오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中 해외 방역지도로 책임 회피 이미지 쇄신 나서
중국 당국은 2019년 연말에 나타난 코로나19에 대한 초기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으로 지적 받아왔는데 이를 덮고 선전과 해외 지원을 앞세워 코로나19 글로벌 위기를 국가 이미지 개선과 책임 회피에 활용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중국은 2019년 연말에 나타난 코로나19를 무시하다 12월 31일에서야 비로소 첫 확진자를 인정했으며 그 이후에도 적극적인 조치를 하지 않고 춘제(春節·설·올해 1월25일)를 앞두고 연휴가 시작될 때까지 미루다 초대형 유행으로 이어졌다. 중국 당국은 1월23일에야 인구 1108만의 우한을 봉쇄했으며, 이어 인구 5850만의 후베이성의 다른 도시들도 비슷한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전염병이 돌면서 우한 등에서 약 500만 명이 봉쇄 전에 외부로 이동하면서 봉쇄의 효과가 줄었다는 평가다. 중국 당국의 조치가 늦었다는 이야기다. 후베이성 당국은 두 달이 지난 3월 24일 후베이성 봉쇄는 3월 25일을, 우한은 4월 8일 봉쇄를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중국은 이런 초기 대응 실패를 덮기 위해 코로나19에 대응하면서 얻은 정보와 노하우를 전 세계에 대대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이미 113개국 이상에 비디오 회의로 노하우를 전수했다. 3월 24일에는 중남미 25개국과 3시간 동안 영상으로 접촉하며 방역지도를 했다. 당장 데이터도 대처 방법에 대한 아이디어도 없는 나라로서는 중국의 정보 전달과 지도에 눈을 번쩍 뜰 수밖에 없다. 전염병 발생 진상 규명과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묻히고 중국이 방역 지도국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커지는 상황이다.
포린폴리시는 중국이 이를 계기로 기존의 일대일로 전략에 더해 ‘보건의료 실크로드’를 건설하려고 시도한다고 지적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중국이 코로나19에 따른 글로벌 위기를 틈타 소프트파워 국가로 올라서려고 시도한다고 평가했다. 코로나 19로 인한 미국의 신뢰 추락은 글로벌 사회에서 미국와 중국이 더욱 격렬하게 경쟁하는 상황을 부르고 있다. 다만 중국도 코로나19 확산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만큼 코로나19 위기를 얼마나 활용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미국과 함께 196개국의 회원국을 거느린 유엔과 세계보건기구(WHO)·국제금융기구(IMF)·세계은행(WB) 같은 국제기구의 역할과 위상도 코로나19를 계기로 재평가되고 있다. 코로나19에 대한 사전 경고는 물론 초기 대응도 제대로 하지 못해 엄청난 예산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어서다. 거대한 관료기구를 유지하는 유엔은 사실상 사무총장의 발언 외에는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특히 WHO는 위기를 자처하고 있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사무총장의 노골적인 중국 편들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권위와 신뢰가 떨어진 상황이다. 3월 11일의 팬데믹 선언도 너무 늦어 시기를 놓쳤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예상되는 국가·글로벌의 경제 위기로 개별 국가별로 대책이 나오고 있을 뿐, IMF 차원에선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가난 없는 세상 건설’을 구호로 개발도상국을 지원하기 위해 창설된 WB도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개도국 보건·경제 위기를 앞두고 선제적인 대응을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때문에 ‘존재의 의미’가 퇴색되고 있는 상황이다. 거대한 예산과 기금에 대한 혹독한 조치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다.
이와 함께 26개국이 가입한 유럽연합(EU), 22개국으로 이뤄진 아랍연맹(AL), 10개국의 회원국이 있는 아세안(ASEAN), 55개국의 회원국을 거느린 아프리카연합(AU), 12개국이 가입한 남미국가연합(USAN) 같은 지역기구의 효용도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지역의 정치·경제·문화 공동체를 표방했지만 정작 코로나19 같은 보건위기가 오자 지역기구 단위의 협의나 합의, 대책을 내지 못하고 있다. 서로 문을 걸어 잠그고 국가 단위의 대책을 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기존 시스템 무용지물 논란 재평가·변화 목소리
코로나 위기는 그동안 전 세계로 확산하던 민주주의와 자유주의가 위협 받고 권위주의와 감시사회로 옮아갈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중국은 코로나19 확산을 막는다는 이유로 철저한 주민 통제와 도시 봉쇄, 드론 등을 이용한 주민 감시를 벌였다. 효용은 별개로, 인권 침해 소지가 다분한 방식이다. 하지만 중국은 이제 이런 ‘중국식 방역모델’을 전 세계에 자랑하며 이를 퍼뜨릴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 중국의 방역방식이라는 미명 아래 중국식 권위주의와 감시사회를 개발도상국에 수출해 중국 체제를 인정받고 인권과 소수민족 문제에 대한 국제적 비난을 누그러뜨리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중국을 비롯한 저임금 국가와 지역을 ‘세계의 공장’으로 운영하면서 전 세계가 혜택을 누려온 ‘글로벌 공급체인’도 재평가 받을 위기에 처했다.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확산하던 초기에 부품 이동이 중단되거나 연기되면서 전 세계 수많은 기업이 위기에 처했다. 중국의 생산기지가 가동을 중단하면서 중국에 부품과 소재를 공급하던 전 세계 기업들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게 됐다. 공급망의 글로벌 의존도를 줄이는 방안이 각국에서 나올 가능성이 커진다. 소비자상품의 물가가 높아지고 기업 이익이 줄어드는 대신에 개별 국가에서 고용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마스크와 방호복, 인공호흡기를 비롯한 코로나19 대응 의료·방역 물자가 새롭게 ‘전략물자’가 되는 상황도 나타났다. 중국산 등에 의존하다가 중국에서도 물자가 부족해지면서 세계 각국이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됐다. 이를 계기고 세계 각국이 보건의료와 방역 관련 물품을 자급하려는 노력이 확산될 전망이다.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월 200만 개이던 마스크 생산 능력을 4월부터 1000만개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물러가더라도 보건의료 관련 물자의 자급 기조는 바뀌지 않을 조짐이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이 달린 물자를 이국에 의존할 수 없다는 여론 속에서 각국 정부는 경제논리가 아닌 안보논리와 정치논리로 이 사안에 접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식량 문제도 같은 차원에서 안보와 직결된 전략물자로 취급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글로벌화와 글로벌 공급체인에 의존하던 경제체제가 한바탕 재편되는 홍역을 겪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세계화의 수혜자였던 항공·여행 산업은 상당 기간 침체를 겪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파산 사태를 피하기 위해 각국 정부는 국정 항공사를 국영화하는 강수를 둘 수밖에 없다. 각국 정부가 기업과 가계에 직접적인 지원금을 지급하는 상황도 이젠 전 세계에서 일반화할 조짐이다. 자본주의를 받쳐왔던 여러 기준들이 경제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어떤 상황으로 갈지 전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 글로벌화도, 민주주의도, 자본주의도 변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고 사람들이 어떻게 적응하느냐다.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 기자 ciimccp@joongang.co.kr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안정보다 변화…이환주 KB라이프 대표, 차기 국민은행장 후보로
2 KB국민은행장 후보에 이환주 KB라이프 대표
3한스미디어, ‘인공지능 마케팅’ 기술 담긴 ‘AI로 팔아라’ 출간
4포스코, 포항에 민·관·연 협력 ‘대규모 바다숲’ 조성
5삼성바이오로직스, 내년 3월 ADC 사업 추진…수주 전략은
6"기준금리 인하할까"...내일 한은 금통위 앞두고 전문가 83%는 '이것' 예상
7“초코파이는 빼고”…오리온, 13개 제품 가격 10.6% 인상
8고현정, 전 남편 언급? "아들·딸과 연락은…"
9'분양가 50억' 서울원 아이파크 '펜트하우스', 1순위 청약서 10명 몰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