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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사업장’ 논란 현대중공업] 석달 새 3명 사망, 현대중공업에서 무슨 일이?

[‘죽음의 사업장’ 논란 현대중공업] 석달 새 3명 사망, 현대중공업에서 무슨 일이?

사업주 처벌 약해 사고 악순환… 노동부 관리·감독 부실 지적도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현대중공업 사업장에서 2~4월에만 3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하면서 또 다시 ‘죽음의 사업장’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위기에 내몰렸다. 2016년 11명의 사망사고가 발생했던 어둠의 그림자가 현대중공업에 드리우는 분위기다. 고용노동부(노동부)의 부실한 관리·감독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지부(현대중공업노조)에 따르면 지난 2월에 현대중공업 하청 근로자가 추락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4월에는 현대중공업 직영 근로자 2명이 문에 끼여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현대중공업노조 측은 “하청 근로자는 시설 문제 등으로 인한 사고였고, 직영 근로자의 사망은 사측이 지나치게 생산만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안전점검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관리의 문제”라고 했다. 현대중공업의 사망사고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현대중공업 노조에 따르면 2014~2015년에 현대중공업에서 13건의 사망 사고가 발생했다. 이듬해인 2016년에는 11명의 근로자가 목숨을 잃었다.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등까지 포함하면 그 해에만 14명의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시민단체와 노동계로 구성된 ‘산재사망대책마련 공동캠페인단’은 2017년에 현대중공업을 ‘최악의 살인기업’ 1위로 꼽기도 했다.
 11명 사망한 ‘2016년 악몽’ 떠올라
현대중공업은 2016년에 안전 관련 예산을 3000억원으로 확대하는 등 안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겠다고 거듭 밝혔다. 2017년 1월부터는 사내 협력사 173개사를 대상으로 ‘협력사 전담 안전 관리자’ 선임을 의무화했으며, 가상현실(VR) 안전교육시스템을 운영하기도 했다. 안전·보건 분야 외부 전문가 6인으로 구성된 ‘안전혁신자문위원회’도 만들었다. 이 같은 안전 대책 이후 현대중공업의 사망사고는 2017년 1건, 2018년 1건, 2019년 1건 등으로 줄었다. 이에 따라 현대중공업의 안전 문제도 일단락되는 듯 했다. 그러나 올해 또 다시 3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하면서 현대중공업의 안전 관리에 구멍이 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노동건강연대에 따르면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현대중공업에서 발생한 사망사고 가운데 노동부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가 있다고 판단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건은 2016년 8건, 2017년 1건, 2018년 1건 등 총 10건이다. 같은 기간 삼성중공업은 4건, 대우조선해양은 5건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이 다른 조선업체와 비교해 규모가 크다는 점을 감안해도 사망사고가 유독 많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노조에 따르면 1988년부터 올해 4월 말까지 현대중공업에서 중대재해로 사망한 인원은 200여명에 달한다.

노동부가 현대중공업에 대한 관리·감독에 소홀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노동부는 4월 20일 현대중공업 사업장을 대상으로 안전 점검을 실시했는데, 다음 날인 21일에 현대중공업 사업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이에 부산 지방고용노동청 등은 5월 11일부터 20일까지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를 상대로 안전보건 특별감독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부의 특별감독이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온다. 노동부가 현대중공업 사업장을 대상으로 두 차례나 안전보건 특별감독을 실시했던 2016년에 현대중공업에서 11건의 사망사고가 발생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노동부는 현대중공업 사망사고가 끊이질 않자 2016년 4월 25일~5월 4일, 10월 19일~11월 1일 두 차례에 걸쳐 안전보건 특별감독을 벌였다. 노동부는 당시 특별감독 결과 총 431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을 적발했다고 했다. 이 가운데 330건을 사법 처리했고, 작업 중지 38건, 사용 중지 52대, 시정명령 359건, 과태료 9억300만원 등의 처분을 내렸다.
 노동부 특별감독도 부실하기 마찬가지
현대중공업노조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이 지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관리·감독기관인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이 오히려 현대중공업의 눈치를 보는 실정”이라며 “울산고용노동지청이 2018년 현대중공업의 노조 선거개입 의혹과 관련해 압수수색에 나섰는데, 당시 회사 관계자들이 압수수색을 막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울산고용노동지청은 2018년 11월 압수수색을 위해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 본사에 진입하려고 했으나, 당시 회사 관계자들이 울산고용노동지청 차량을 막아서면서 10여 분간 실랑이를 벌인 바 있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 측은 “최소한의 정보 확인을 위해 출입을 통제한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울산지검이 지난 2월 현대중공업에서 목숨을 잃은 하청 근로자에 대해 강제 부검을 시도한 것도 논란이다. 유족에 따르면 울산지검은 사망자가 다른 지병이 있는지 확인하는 등 정확한 사고 원인 규명 등을 이유로 강제 부검이 적법하다는 취지를 전달했다고 한다. 유족이 거세게 항의하자 부검 영장을 철회했다.

유족 측은 “울산대병원이 사망자의 사인을 ‘추락에 의한 외인사’로 진단했고, 폐쇄회로(CC)TV 확인 결과 발의 헛디딤이나 어지러움 등의 비틀거림이 전혀 없었음에도 검찰이 강제 부검을 시도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노조 관계자는 “명백한 산업재해 사고에 대해 검찰이 부검을 시도하려 했다는 것 자체가 현대중공업에 유리한 것”이라며 “그만큼 현대중공업의 ‘입김’이 세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반복되는 현대중공업 사망사고의 원인으로 조선업 특유의 원·하청 고용 구조, 사업주 처벌 미미, 노동부의 행정 집행 미흡 등을 거론했다. 정우준 노동건강연대 활동가는 “조선업의 경우 원·하청 고용 구조 때문에 하청업체 직원들이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업무를 맡는 경우가 많다”며 “사업장에서 하청업체 직원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해도 원청의 사업주가 처벌받는 경우가 거의 없는 점도 문제”라고 말했다. 하청업체 직원들이 위험도가 높은 일에 내몰리지만, 이들에게 사고가 나도 원청은 책임지지 않는 구조라 사망사고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하청업체 근로자들이 처음으로 참여한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 조사위원회’가 2018년 8월 노동부에 제출한 보고서를 보면, 2007년부터 2017년 9월까지 조선업에서 발생한 업무상 사고로 인한 사망자 가운데 하청업체 근로자의 비율은 79.3%에 달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9년 5월까지 조선업종에서 사고로 사망한 근로자 116명 중 하청업체 근로자는 98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위험의 외주화’ 원·하청 고용구조 개선해야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 조사위원회는 다단계 재하도급의 원칙적 금지, 원·하청 근로자 차별 방지 등을 조선업 산업재해 대책으로 제안했다. 조사위원으로 참여했던 강태선 세명대 교수(보건안전공학과)는 “산업재해는 원칙적으로 사업주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면서 “사업주가 반복되는 사고에도 요지부동인 것은 산업재해에 대한 행정, 사법 등의 집행이 대단히 소극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문성, 책임성, 독립성이라는 원칙을 갖춘 행정조직이 필요하다”며 “최근 질병관리본부가 ‘청’(廳)으로 승격된 것처럼, 산업재해 관련 행정조직을 승격시켜 산업안전보건의 전문성을 갖춘 고위직을 양성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 측은 “최근 발생한 중대재해의 고리를 끊어내고, 안전불감증을 뿌리 뽑기 위해 전사적인 역량을 총집결한 고강도 안전 대책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한영석 현대중공업 사장과 각 사업부 대표 등 현대중공업 최고경영진은 5월 초 연휴 기간 내내 울산 본사에서 긴급회의를 갖고 안전대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현대중공업노조는 ‘중대재해 사업주 구속 수사와 기업살인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연일 쏟아내고 있다. 노조는 5월 11일 최근 발생한 사망사고와 관련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한영석 사장 등을 검찰에 고발했다. 5월 13일에는 노조 전문위원 등이 7시간 동안 부분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이후 ‘단체교섭 승리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를 위한 중식 순회집회’가 줄줄이 잡혀있다.

현대중공업노조는 “1974년 현대중공업이 설립돼 지난 46년 동안 466명의 노동자가 중대재해로 사망했는데, 2004년 현대중공업 안전보건총괄책임자가 구속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무혐의 처분을 받거나 1500만원 이하의 벌금만 부과 받는 등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현대중공업 사업주 엄중 처벌,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 조선업종 다단계 하도급 금지 등을 요구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최근 사망사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내면서 지난해 타결되지 못한 임금 및 단체협상도 난항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조선업계 안팎에서는 “코로나19 사태로 수주 감소에 내몰린 현대중공업이 노사 갈등 등으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그룹 조선 3사(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는 올해 1분기에 연간 목표치의 6.74%인 12억 달러를 수주하는데 그쳤다.

- 이창훈 기자 lee.cha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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