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현의 IT 사회학] 코로나 테크 최전선은 ‘전환의 용기’
[김국현의 IT 사회학] 코로나 테크 최전선은 ‘전환의 용기’
기술은 난관의 산물… 우리는 판단의 순간을 살고 있다 도무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코로나 사태. 스페인 독감이 어땠는지 누구도 직접 겪어 본 적 없으니, 현세대로서는 정말 미증유의 수난이 따로 없다. 이제 툭툭 털고 일어나고 싶지만 섣부른 낙관과 방심의 대가가 얼마나 큰지는 세계 각국에서 실시간으로 들어오는 뉴스가 다시 일깨워 준다.
그럼에도 주가가 오르는 기현상이 함께 벌어지고 있다. 주가를 지탱하는 근거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인간이란 본디 참으로 낙관적인 생물인가보다’ 느낌이 먼저든다. 어느 나라나 주로 기술주들이 지수를 지탱하고 있는데, 기술주는 경기 민감주라는 상식과는 다른 움직임이다. 달라진 생활에서는 결국 기술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에 더 의존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 때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바이오주 등의 급등에서 볼 수 있듯 결국 이 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 희망의 주체 또는 이 사태 뒤에 올 사회에 대한 미래상에 사람들은 투자하고 있었다. 지금 ‘코로나 테크’가 뜨겁다.
그런 기대를 알기라도 했다는 듯이 애플과 구글은 이례적으로 손을 잡고 코로나 대책을 위한 시스템 기능을 재빨리 내놓았다. 노출 알림(Exposure Notification) API라는 것이다. 스마트폰에 내장된 블루투스 기능을 통해 감염자와 접촉 여부만 개인정보 공개 없이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 부품을 공개하고 업데이트로 배포하기 시작했다. 각국의 보건 당국이 이 API를 써서 만든 앱을 설치하면 지난 2주간 내가 확진자와 동선이 겹쳤는지 알림을 받게 된다.
기존 접촉 추적 활동이 결국은 프라이버시 침해를 수반할 수밖에 없었던 것에 비해 이 방식은 코로나19에 직접 노출되었을 가능성만을 알려준다. 원래 접촉 추적(Contact Tracing)이었는데 노출 알림으로 바꾼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확진자 동선 공개에 거부감이 큰 지역에서는 유용하다. 시민들이 직접 앱을 깔아야 하므로 실제로 얼마나 효과적일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르다. 하지만 비말의 확산을 블루투스라는 전파로 계산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기술이 지닌 주요 특성을 일깨워 준다.
그건 바로 현실을 어떻게든 가상으로 복제해 내려는 본능이다. CPU가 도처에 널려 있고 각종 센서가 주머니마다 들어 온 시대, 소프트웨어는 현실을 총망라해 파악하고 또 동시다발적으로 계산해낼 수 있게 된다. 개인정보 보호라는 마지막 보호막이 막고 있을 뿐이다. 그 위력은 한국의 방역 활동을 통해서도 입증된 바 있다. 많은 일이 요즈음 ‘원격’으로 벌어지고 있는데, 사실 그 위력은 떨어져 있을 수 있음이 아니라, 떨어져 있지 않고 늘 언제나 곁에 있을 수 있는 가상을 만드는 데 있다.
세계 도처에서는 지금 원격 의료가 뜨겁다. 의료 붕괴가 일어나는 일에 대비 다양한 시도가 벌어진다. 로봇팔로 초음파 검사봉을 원격으로 움직여 검진하는 등 로봇 의료도 운영되었다. 원래는 지구로부터 격리된 우주에서 생활해야 하는 우주인을 위한 유럽 우주항공국의 기술이었는데, 바이러스로 격리된 지방 도시로 내려온 것. 봉쇄 상태에서는 원격 의료의 존재란 생사와도 관련이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텔레헬스를 적극 권장하는 등 각국 정부 당국에 전향적 자세가 퍼지고 있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접촉 추적 등 공중위생 목적의 앱 등은 비의료기기로 위치 짓고 규제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고 밝혔다. 기술이 지닌 가상의 힘을 현실의 관습이 훼방 놓을까 걱정하는 듯했다.
발견과 발명이 주는 기쁨, 그리고 이를 축하하는 일은 문명의 원동력이다. 새로운 발견은 명성을 허락하고, 그 명성은 경제적 혜택 또한 가져다주기에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개발과 같은 반자본주의적 모델도 성행할 수 있었다. 더욱이 IT는 논문을 사전평가 하는 과학계와는 달리 그 평가가 사후적으로 벌어지기에 훨씬 더 이른 단계에서 더 적극적으로 성과가 공유된다. 신기술의 커뮤니티나 사용자 수, 즉 응원단의 규모가 그 중요성과 존재의미의 척도가 된다. 과학계에도 이러한 역동성은 탐나는 일이었다. 근래에는 동료 평가를 거치지 않는 논문 사전 공개 사이트에서도 다양한 인용이 이뤄지며 속도감 있게 연구가 전개되기도 한다. 이미 인공지능 학계와 업계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아카이브(aRxiv) 뿐만 아니라, 바이오아카이브(bioRxiv) 등에서는 최근 코로나 관련 혁신의 공유가 활발하다.
이와 같은 적극적 공유 문화는 이미 코로나 대처의 지형도 바꾸고 있다. 병상이 태부족했던 이탈리아에서는 컨테이너를 재활용해 긴급 병동으로 활용하려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우한에 최대 규모 임시 가설 병원을 건립한 중국 당국의 속도전 같은 것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이왕 할 바에는 각자의 기술을 구사해 제대로 된 플러그인(결합해 확장하는) 음압 응급실로 만들자는 의기투합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성과를 오픈소스로 공개하자 세계 곳곳에서 참여와 격려가 이어졌다. 필립스, MIT 연구소, 덴마크의 IoT(사물인터넷) 스타트업들도 뛰어들었다. CURA라는 이 신개념 오픈소스 컨테이너 집중치료실은 이탈리아 북부에 설치된 후 UAE와 캐나다로 진출 중이다.
대개의 기업에게 힘든 시기다. 시대의 총아였던 에어비앤비와 우버조차 대규모 해고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나마 IT가 태생이라 유연한 이들이 저 정도이고, 관련 업계의 노장 허츠(Hertz)는 파산보호 신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 스타트업들에게는 대기업과는 다른 비장의 무기가 있다. 바로 ‘피봇(pivot)’, 즉 사업의 지체 없는 궤도수정이다. 어차피 대부분은 망하는 창업, 생각처럼 될 리가 없다. 이룬 것이 없기에 잃을 것도 없는 이들이기에 변심도 쉽다. 제조 역량을 살리는 신소재 마스크를 만든다거나 인공호흡기를 생산한다거나, 인공지능 기업의 경우 화상 해석 능력을 코로나19 진단으로 하는 식으로 변심 중인데, 이 전환 덕에 특히 전반적인 헬스케어 플랫폼은 전례 없는 진보를 거듭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와 같은 피봇의 정신이다. 생각처럼 되지 않는 것이 인생. V자의 회복 커브도 핸들을 꺾어 궤도 수정을 해야 벌어지는 법이다. 게다가 이번 궤도 수정은 외롭지 않다. 모두 변해야 하고, 변하자고 하는 이들도 많아서다.
인류 앞에 놓인 그 어떤 난관도 결국은 기술에 의해 극복될 것이다. 기술 자체가 극복의 산물이라서다. 난관이 잉태한 기술들은 그 후로도 오랜 기간 민간 부문을 꽃피우기도 했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포함한 많은 기술이 전시의 산물임만을 봐도 그렇다. 자신의 밥그릇을, 지위를, 체면을, 표를 지키기 위해 미래를 거부하는 이들은 어디 시대에나 있지만 기술을 찾아내는 것도, 쓰는 것도, 내팽개치는 것도 모두 인간의 판단이다. 판단의 순간을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 필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겸 IT평론가다. IBM,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IT 자문 기업 에디토이를 설립해 대표로 있다. 정치·경제·사회가 당면한 변화를 주로 해설한다. 저서로 [IT레볼루션] [오프라인의 귀환] [우리에게 IT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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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주가가 오르는 기현상이 함께 벌어지고 있다. 주가를 지탱하는 근거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인간이란 본디 참으로 낙관적인 생물인가보다’ 느낌이 먼저든다. 어느 나라나 주로 기술주들이 지수를 지탱하고 있는데, 기술주는 경기 민감주라는 상식과는 다른 움직임이다. 달라진 생활에서는 결국 기술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에 더 의존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깨달음 때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바이오주 등의 급등에서 볼 수 있듯 결국 이 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 희망의 주체 또는 이 사태 뒤에 올 사회에 대한 미래상에 사람들은 투자하고 있었다. 지금 ‘코로나 테크’가 뜨겁다.
그런 기대를 알기라도 했다는 듯이 애플과 구글은 이례적으로 손을 잡고 코로나 대책을 위한 시스템 기능을 재빨리 내놓았다. 노출 알림(Exposure Notification) API라는 것이다. 스마트폰에 내장된 블루투스 기능을 통해 감염자와 접촉 여부만 개인정보 공개 없이 파악할 수 있게 하는 시스템 부품을 공개하고 업데이트로 배포하기 시작했다. 각국의 보건 당국이 이 API를 써서 만든 앱을 설치하면 지난 2주간 내가 확진자와 동선이 겹쳤는지 알림을 받게 된다.
기존 접촉 추적 활동이 결국은 프라이버시 침해를 수반할 수밖에 없었던 것에 비해 이 방식은 코로나19에 직접 노출되었을 가능성만을 알려준다. 원래 접촉 추적(Contact Tracing)이었는데 노출 알림으로 바꾼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확진자 동선 공개에 거부감이 큰 지역에서는 유용하다. 시민들이 직접 앱을 깔아야 하므로 실제로 얼마나 효과적일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다르다. 하지만 비말의 확산을 블루투스라는 전파로 계산하려는 이러한 시도는 기술이 지닌 주요 특성을 일깨워 준다.
그건 바로 현실을 어떻게든 가상으로 복제해 내려는 본능이다. CPU가 도처에 널려 있고 각종 센서가 주머니마다 들어 온 시대, 소프트웨어는 현실을 총망라해 파악하고 또 동시다발적으로 계산해낼 수 있게 된다. 개인정보 보호라는 마지막 보호막이 막고 있을 뿐이다. 그 위력은 한국의 방역 활동을 통해서도 입증된 바 있다. 많은 일이 요즈음 ‘원격’으로 벌어지고 있는데, 사실 그 위력은 떨어져 있을 수 있음이 아니라, 떨어져 있지 않고 늘 언제나 곁에 있을 수 있는 가상을 만드는 데 있다.
세계 도처에서는 지금 원격 의료가 뜨겁다. 의료 붕괴가 일어나는 일에 대비 다양한 시도가 벌어진다. 로봇팔로 초음파 검사봉을 원격으로 움직여 검진하는 등 로봇 의료도 운영되었다. 원래는 지구로부터 격리된 우주에서 생활해야 하는 우주인을 위한 유럽 우주항공국의 기술이었는데, 바이러스로 격리된 지방 도시로 내려온 것. 봉쇄 상태에서는 원격 의료의 존재란 생사와도 관련이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텔레헬스를 적극 권장하는 등 각국 정부 당국에 전향적 자세가 퍼지고 있다. 미 식품의약국(FDA)은 접촉 추적 등 공중위생 목적의 앱 등은 비의료기기로 위치 짓고 규제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고 밝혔다. 기술이 지닌 가상의 힘을 현실의 관습이 훼방 놓을까 걱정하는 듯했다.
발견과 발명이 주는 기쁨, 그리고 이를 축하하는 일은 문명의 원동력이다. 새로운 발견은 명성을 허락하고, 그 명성은 경제적 혜택 또한 가져다주기에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개발과 같은 반자본주의적 모델도 성행할 수 있었다. 더욱이 IT는 논문을 사전평가 하는 과학계와는 달리 그 평가가 사후적으로 벌어지기에 훨씬 더 이른 단계에서 더 적극적으로 성과가 공유된다. 신기술의 커뮤니티나 사용자 수, 즉 응원단의 규모가 그 중요성과 존재의미의 척도가 된다.
혁신은 발견을 공유하는 일에서 시작
이와 같은 적극적 공유 문화는 이미 코로나 대처의 지형도 바꾸고 있다. 병상이 태부족했던 이탈리아에서는 컨테이너를 재활용해 긴급 병동으로 활용하려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우한에 최대 규모 임시 가설 병원을 건립한 중국 당국의 속도전 같은 것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이왕 할 바에는 각자의 기술을 구사해 제대로 된 플러그인(결합해 확장하는) 음압 응급실로 만들자는 의기투합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성과를 오픈소스로 공개하자 세계 곳곳에서 참여와 격려가 이어졌다. 필립스, MIT 연구소, 덴마크의 IoT(사물인터넷) 스타트업들도 뛰어들었다. CURA라는 이 신개념 오픈소스 컨테이너 집중치료실은 이탈리아 북부에 설치된 후 UAE와 캐나다로 진출 중이다.
대개의 기업에게 힘든 시기다. 시대의 총아였던 에어비앤비와 우버조차 대규모 해고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나마 IT가 태생이라 유연한 이들이 저 정도이고, 관련 업계의 노장 허츠(Hertz)는 파산보호 신청을 할 수밖에 없었다. 스타트업들에게는 대기업과는 다른 비장의 무기가 있다. 바로 ‘피봇(pivot)’, 즉 사업의 지체 없는 궤도수정이다. 어차피 대부분은 망하는 창업, 생각처럼 될 리가 없다. 이룬 것이 없기에 잃을 것도 없는 이들이기에 변심도 쉽다. 제조 역량을 살리는 신소재 마스크를 만든다거나 인공호흡기를 생산한다거나, 인공지능 기업의 경우 화상 해석 능력을 코로나19 진단으로 하는 식으로 변심 중인데, 이 전환 덕에 특히 전반적인 헬스케어 플랫폼은 전례 없는 진보를 거듭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와 같은 피봇의 정신이다. 생각처럼 되지 않는 것이 인생. V자의 회복 커브도 핸들을 꺾어 궤도 수정을 해야 벌어지는 법이다. 게다가 이번 궤도 수정은 외롭지 않다. 모두 변해야 하고, 변하자고 하는 이들도 많아서다.
인류 앞에 놓인 그 어떤 난관도 결국은 기술에 의해 극복될 것이다. 기술 자체가 극복의 산물이라서다. 난관이 잉태한 기술들은 그 후로도 오랜 기간 민간 부문을 꽃피우기도 했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포함한 많은 기술이 전시의 산물임만을 봐도 그렇다. 자신의 밥그릇을, 지위를, 체면을, 표를 지키기 위해 미래를 거부하는 이들은 어디 시대에나 있지만 기술을 찾아내는 것도, 쓰는 것도, 내팽개치는 것도 모두 인간의 판단이다. 판단의 순간을 우리는 지금 살고 있다.
※ 필자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겸 IT평론가다. IBM,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IT 자문 기업 에디토이를 설립해 대표로 있다. 정치·경제·사회가 당면한 변화를 주로 해설한다. 저서로 [IT레볼루션] [오프라인의 귀환] [우리에게 IT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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