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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그린 뉴딜에 ‘그린’ 없다] 일자리 욕심과 재정 부담에 핵심 외면

[정부 그린 뉴딜에 ‘그린’ 없다] 일자리 욕심과 재정 부담에 핵심 외면

탈탄소 빠진 백화점식 정책… 지자체장들 ‘2050년까지 탄소제로사회’ 선언 요구
지난 5월 26일 청와대와 세종청사에서 영상회의로 진행된 국무회의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하고 있다. / 사진: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정부가 경제 위기를 넘기 위한 처방전으로 꺼내든 ‘그린 뉴딜’이 시작부터 방향을 잃었다. 정부는 지난 6월 1일 ‘2020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그린 뉴딜을 담았지만,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새로운 투자를 진행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는 그린 뉴딜 핵심인 ‘탈탄소’를 제외했다. 특히 정부는 ‘도시·공간·생활 인프라 녹색전환’과 같은 일자리 사업에 집중하면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 등은 담지 않았다. 홍종호 서울대 교수(환경계획학과)는 “당장 고용효과를 낼 수 있는 곳에만 집중하느라 정작 중요한 기후 위기 대응은 빠졌다”고 지적했다.

그린 뉴딜은 에너지 중심을 화석연료에서 재생에너지(그린)로 옮기면 투자가 늘어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구상에서 출발했다. 미국 언론인 토머스 프리드먼이 2007년 쓴 [코드 그린]에 처음 나왔다. 10여년이 흐른 현재 그린 뉴딜은 새로운 성장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4차 산업의 고용 창출이 적고,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기후 위기가 생존을 위협하고 있어서다. 미국에선 지난해 ‘재생에너지 100%’를 담은 그린 뉴딜 결의안이 하원을 통과했고, 유럽연합(EU)은 ‘그린 딜’ 투자 계획을 내놨다. 국내에선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등이 그린 뉴딜을 공약했다.
 ‘탄소제로’ 선언 빼고 일자리 창출 집중
그러나 정부의 그린 뉴딜에는 ‘그린’이 빠졌다. 그린 뉴딜(2020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의 구체적 방안이 담긴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안’에 따르면 그린 뉴딜은 ‘뉴딜’에 방점이 찍혔다. 정부는 2022년까지 12조9000억원을 투입해 13만3000개의 관련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도시·공간·생활인프라 녹색전환’과 ‘녹색산업 혁신 생태계 구축’ ‘저탄소·분산형 에너지 확산’을 그린 뉴딜의 3대 축으로 잡고 도시·공간·생활 인프라 녹색전환에 가장 많은 5조8000억원을 쏟기로 했다. 노후 어린이집·보건소·의료기관 등 건물 친환경 리모델링이 골자다.

특히 그린 뉴딜의 핵심인 탈탄소 목표가 제외됐다. 유럽의회가 지난 1월 15일 통과시킨 그린 딜 정책 법안 핵심이 2050년 온실가스 배출량 제로(탈탄소) 달성,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 50~55%로 강화(이전 대비 10~15% 상승)인 것과 대조된다. 홍종호 교수는 “유럽이 그린 딜을 빠르게 추진한 이유는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침체한 경제를 살리기 위한 적극적인 경기부양 정책의 일환”이라면서 “명확한 목표를 제시하고 에너지 전환 산업에 대한 투자 활성화를 이루려 하는 EU와 달리 우리 정부는 소극적인 접근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그린 뉴딜은 지난해 국책연구기관들을 중심으로 꾸준한 논의가 진행돼 왔지만, 이번 2020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대폭 축소돼 반영됐다. 정부가 최초 추진한 코로나19 경제 위기 극복 방안에는 포함되지도 않았다. 지난 5월 12일 문재인 대통령이 비공개 국무회의에서 “요즘 그린 뉴딜이 화두라며 한국판 뉴딜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면서 “그린 뉴딜이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지 환경부, 산업부, 중기부 등이 협의해서 보고해 달라” 전한 게 뒤늦은 포함을 이끌었다.

탈탄소 목표가 빠진 우리 정부의 그린 뉴딜은 중구난방으로 발표됐다. 예컨대 정부는 도시·공간·생활인프라 녹색전환에 국민 생활권역에 200개의 도시 숲을 조성하고, 48개 광역상수도 및 161개 지방상수도를 정보통신기술·인공지능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포함했다. 장다울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정책 전문위원은 “노후 공공건축물에 고효율 단열재나 환기시스템을 설치하는 리모델링의 경우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크고 에너지 감축 효과도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면서도 “상수도 관리 스마트화보다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 기후 위기에 대응해야 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또 그린 뉴딜에 녹색산업 혁신 생태계 구축과 저탄소·분산형 에너지 확산을 주요 과제로 담았다. 친환경 기술을 보유한 100개 기업을 선정해 사업화 등을 지원한다거나 태양광·풍력·수소 등 3대 신재생에너지와 관련한 대규모 연구개발과 각종 실증사업을 추진한다는 게 골자다. 보급 목표에 미달한 전기승용차 보조금을 전기화물차로 돌리는 내용도 담았다. 조동근 명지대 명예교수(경제학과)는 “지향점이 뚜렷하지 않는 백화점식 정책 나열”이라면서 “특단의 대책을 강조하면서 특단의 결정이 필요한 사안은 비껴간 꼴”이라고 말했다.

재원도 작다. 2050년 ‘탄소제로사회’ 실현을 지난 4월 15일 총선 공약에 담았던 더불어민주당은 당초 355조원 규모의 그린 뉴딜 추진을 계획했다. 하지만 지난 5월 20일 당정청 비공개 협의를 거치며 2022년까지 12조9000억원, 2025년까지 총 27조원으로 대폭 줄었다. 1972년 이후 48년 만에 처음 한 해에 세 차례 추경을 편성했고, 올 한 해에만 국가채무가 99조4000억원 순증하게 됐다는 기획재정부의 재정건전성 우려가 발목 잡았다. EU는 지난 1월 최소 1조 유로(약 1340조원)를 온실가스 감축, 일자리 창출에 투자하겠다고 정했다.

한국은 기후 위기 대응에 소극적인 국가로 꼽히고 있다. 특히 2018년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에서 정한 ‘2100년까지 기온 상승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로 묶자’는 목표는커녕 파리협약 ‘2도 제한’도 못 지킬 가능성이 크다. 국제 기후분석전문기관인 클라이밋 애널리틱스와 기후솔루션은 “한국의 탄소 감축 목표는 파리협정에서 정한 목표치의 절반 수준”이라며 “2030년까지 배출전망치(BAU)의 37% 감축이라는 현행 목표를 74%로 올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자체까지 나서 탈탄소 그린 뉴딜 요구
미래는 있다.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탈탄소 그린 뉴딜이 기후 위기를 막고 경제 성장을 동시에 이룰 수 있는 방안이라는 공감대가 커진 덕이다. 지난 6월 5일 국내 219개 지방차지단체장들은 기후 위기 비상선언을 내고 2050년까지 탄소제로사회 선언을 하라고 정부에 요구했다. 전세계 약 30개 국가 3500개가량 지방차지단체가 기후 위기 비상선언을 진행한 가운데 한국서만 200개 넘는 지방자치단체가 동참했다.

정치권도 동참하고 있다. 정의당은 지난 5월 28일 ‘정의로운 전환 실현을 위한 그린뉴딜 특별법’을 내고 공청회를 진행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김성환 의원과 양이원영·이소영 의원을 중심으로 법안 논의에 들어갔다. 장다울 정책전문위원은 “지금과 같은 속도로 온실가스를 배출한다면 기후 재앙을 막을 수 있는 시간은 7년7개월 밖에 남지 않았고, 기온 상승을 1.5도 아래로 억제한다 해도 재앙을 막지 못할 확률이 3분의 1이나 된다”며 “10년 이내에 온실가스 배출을 반으로 줄여야 한다. 온실가스 감축 중심의 그린 뉴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배동주 기자 bae.dong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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