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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스타트업 엘리트리그 지형도(2)] 창업 사관학교 ‘NHN·네오위즈 사단’ 판교 밸리 이끌어

[한국 스타트업 엘리트리그 지형도(2)] 창업 사관학교 ‘NHN·네오위즈 사단’ 판교 밸리 이끌어

이해진·김범수·장병규 사단 연쇄창업 ‘밀어주고 끌어주고’… 밀레니얼 창업자 네트워크도 공고화
사람의 ‘관계’는 개인의 목표와 경험, 가치관과 상호 신뢰 등 복합적 요인들로 형성된다. 관계의 깊이는 자신이 가진 여러 고려 요소에 상대가 얼마나 부합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 학벌은 노력과 성찰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며, 사회적 지위는 욕망과 실력을 가늠하는 척도다.

그러나 연애와 결혼이 다르듯, 사적으로 친한 관계여도 함께 일 해보기 전까지는 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한국과 같은 고맥락 사회는 더욱 더 그렇다. 간접 정보만으로 상대의 의중과 진의를 파악해야 할 때가 많다. 이 때문에 창업가들이 비즈니스 파트너를 고르는 조건은 대단히 까다롭다. 대학 시절 가깝게 지냈더라도 함께 창업 경험이 있는 사람이어야 친분을 넘어선 파트너십을 맺는 까닭이다. 한국의 스타트업 네트워크가 폐쇄적이며 구도도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스타트업 엘리트들이 누구와 함께 움직였고, 어떤 행보를 밟고 있는지 대략적 지형도를 그려봤다.

국내 정보통신(IT) 산업과 스타트업 생태계의 조성은 NHN의 등장 전과 후로 나눠볼 수 있다. NHN이 2000년 대 다음·엠파스·프리챌 등을 물리치고 온라인 서비스 분야에서 독보적 존재로 성장해서다. 주로 검색서비스만 제공하던 네이버와 김범수 카카오 의장이 이끌던 한게임이 2001년 결합해 만든 NHN은 벤처업계에 새 시대를 열었다. 이해진 네이버 GIO(글로벌투자책임자)와 김 의장은 대학 동기이자 삼성SDS 입사 동기이다.
 네이버 출신은 외연 넓혀, 한게임은 다시 뭉쳐
NHN 네트워크는 크게 네이버 출신과 한게임 출신으로 나눌 수 있다. 네이버 출신으로 현재도 판교 밸리에서 활동 중인 창업자는 20여명이다. 이준호 NHN 의장과 국회의원을 지낸 김병관 전 웹젠 대표를 비롯해 삼성SDS를 다니다 네이버에 합류한 김정호 베어베터 대표, 최휘영 트리플 대표 등이 대표적이다. 한성숙 네이버 대표와 이람 TBT파트너스 대표도 초창기 멤버다. 네이버 출신은 아니지만 1세대 창업자인 변대규 휴맥스홀딩스 회장이 2017년부터 네이버 의장을 맡으며 외연 확장에 도움을 주고 있다. 이들은 투자, 비즈니스 개발 등 상호 협력하고 있다.

네이버의 네트워크 확장은 라인을 발판으로 일본으로도 확장하고 있다. 지난해 라인과 야후재팬 합병의 키맨 역할을 한 신중호 라인 공동대표는 ‘라인의 아버지’라 불리며 일본 IT산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또 네이버의 일본 라이브도어를 주도한 마츠다 준(舛田淳) 라인 최고전략마케팅책임자(CSMO)와 이데자와 다케시(出澤剛) 라인 공동대표도 일본 IT산업의 거물급 인사가 됐다.

네이버가 일종의 창업 사관학교로서 네트워크를 외부로 넓히고 있는데 비해 김범수 의장을 중심으로 한 한게임 네트워크는 카카오 내부로 뭉치고 있다. 지난 2년 새 카카오가 인수 등을 통해 영입한 창업자들은 대부분 김 의장 인맥의 한게임 출신들이다. 분야는 주로 게임이다.

카카오는 남궁훈 카카오게임즈 대표가 창업한 엔진을 사들이며 남궁 대표를 카카오게임즈 공동대표에 앉혔다. NHN 마케팅 부문장을 역임한 조수용 대표도 김 의장의 인맥이다. 카카오는 조 대표가 만든 JOH(제이오에이치)를 2018년 사들인 뒤 조 대표를 카카오 공동대표에 임명했다. 최근 내부적으로 비판이 커진 카카오IX의 권승조 대표도 NHN 출신이다. 문태식 카카오VX 대표도 한게임커뮤니케이션 부사장 출신이다. 문 대표가 창업한 마음골프를 2017년 카카오가 인수하며 카카오에 둥지를 틀었다. 천양현 일본 코코네 회장도 한게임 재팬 대표를 역임한 김범수 패밀리다. 천 대표는 라인이 장악하고 있는 일본 모바일 메신저 시장을 야후재팬과 손잡고 공략한 바 있다.

네이버·카카오가 등장하기 전에도 한글과 컴퓨터를 창업한 이찬진 대표, 안랩을 만든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오상수 새롬기술 대표 등 벤처업계에 파워그룹이 있었다. 메디슨을 창업하며 벤처라는 단어를 세상에 알린 고 이민화 KAIST 교수도 1세대 창업자다.

그러나 당시는 국내에 창업 생태계가 자리하지 못했고, 네트워크와 협업이란 개념이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의 외풍에 시달리며 전산·통신 업종에 종사하던 40~50대의 창업률이 급속히 떨어졌다. 이후 인터넷이 등장하며 온라인 플랫폼을 중심으로 한 여러 버티컬 서비스가 확장하는 방식의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했다. 이에 20~30대 엔지니어들이 대거 창업에 뛰어들었고, 벤처 생태계에서 네트워크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다.

‘86학번’들이 이런 흐름을 주도했다. 이해진 GIO와 김범수 의장을 비롯해 김정주 NXC 대표(서울대 컴퓨터공학),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서울대 컴퓨터공학), 김상범 전 넥슨 이사(카이스트 전산학), 이재웅 다음 창업자(연세대 컴퓨터공학) 등이 대표적이다.
 김정주·김택진·권혁빈 등 게임사 출신들도 약진
김정주 NXC 대표,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의 네트워크는 태생처럼 주로 게임 개발사로 몰려 있다. 넥슨 대표이사 출신으로 네시삼십삼분을 설립한 권준모 의장과 공동창업자인 소태환 전 공동대표가 대표적이다. 게임개발사 썸에이지는 ‘서든어택의 아버지’로 불리는 백승훈 대표가 설립한 회사다. 백 대표는 최근 자신이 이끌던 서든어택 개발진을 끌어 모아 썸에이지의 자회사로 로얄크로우도 설립했다. 이 밖에도 슈퍼어썸·오리진게임즈·A-33스튜디오 등이 모두 넥슨 출신들이 만든 게임 회사들이다.

넥슨의 게임 개발 스튜디오 넥스노바(Nexonova)의 대표로 활동한 김호민 대표는 스파크랩스의 공동대표로 엑셀러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스파크랩스는 김 대표를 비롯해 이한주 베스핀글로벌 대표, 버나드 문 대표 등 해외파가 주축이며 미국 등 해외 네트워크에 강점이 있다.

넷게임즈를 창업한 박용현 대표는 엔씨소프트 출신으로 김택진 사단으로 분류된다. 리니지2 프로그래밍 총괄 경력이 있다. 트라이팟스튜디오스는 엔씨소프트 글로벌 론칭사업실장을 맡았던 김승권 대표가 설립했고, 모바일 게임 데스티니차일드를 흥행시킨 시프트업도 엔씨소프트 출신 개발자들이 창업했다. 넥슨·엔씨소프트 출신 성공 창업자들은 서로 개발을 거들거나 투자금을 지원하며 성장하는 상승효과를 내고 있다.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도 스타트업 분야의 리더로 꼽힌다. 장 의장은 움직일 때마다 벤처업계의 이목을 끈다. 장 의장은 제2의 게임 사관학교로 불리는 네오위즈 공동 설립자다. 장현국 위메이드 대표, 김강석 블루홀 전 대표, 김재영 액션스퀘어 대표 등과 함께 네오위즈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2005년에는 스타 개발자들을 끌어모아 인터넷 검색 업체 ‘첫눈’을 설립했다. 장 의장과 신중호 라인 대표, 이상호 11번가 대표, 박의빈 라인 CTO 등이 첫눈 출신이다. 김병학 카카오 AI 랩 총괄부사장도 첫눈에서 일했다.

장 의장은 또 벤처캐피탈(VC)인 본엔젤스파트너스의 설립자로 창업 초기기업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장 의장은 김한준 대표가 이끄는 VC 알토스벤처스와의 관계도 돈독하다. 알토스벤처스는 크래프톤의 시리즈A 라운드에 500만 달러(약 60억원)를 투자해 현재 취득 원가의 50배에 달하는 평가이익을 거두고 있다. 이후부터 본엔젤스가 초기 기업을 발굴해 투자하면 알토스벤처스가 후속 앵커(핵심) 투자자로 참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우아한형제들도 본엔젤스와 알토스벤처스가 공동투자한 성공 사례다.

권혁빈 스마일게이트홀딩스 의장도 네트워크를 넓히고 있다. 1974년생인 권 회장은 서강대 전자공학과 출신이다. 중국의 인터넷 통신 실정에 맞춘 게임 크로스파이어로 중국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포브스에 따르면 권 의장의 재산은 총 40억 달러(약 4조8000억원)으로 국내에서 여섯 번째로 많다. 권 의장은 영화제작과 e스포츠 등 분야로 네트워크를 넓히며 국내 스타트업 발굴 및 투자에 나서고 있다.
 IT 트렌드 대응 빠른 3040 창업자도 급부상
2010년대 들어서는 1970~1980년대생 창업자들도 두각을 나타내며 자신들만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학연·출신보다는 창업 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조성된 네트워크란 게 이전 세대와의 가장 큰 차이다.

태터&컴퍼니의 창업자 노정석 대표와 소셜커머스 업체 신현성 티켓몬스터 의장, 패스트트랙아시아 박지웅 대표 간의 네트워크가 대표적이다. 노 대표는 KAIST 재학 시절 해커로 이름을 날렸으며, 대학 졸업 후 가입형 블로그 서비스 티스토리를 개발해 2008년 구글에 매각한 바 있다. 구글이 한국 기업을 인수한 첫 사례다. 펜실베니아 주립대 출신인 신 의장은 티몬 창업자며, 포항공대를 나온 박 대표는 스톤브릿지캐피탈 팀장으로 근무하다 이들과 함께 패스트 트랙아시아 사단을 주도하고 있다. 출신 대학도, 경력도 다른 이들은 서로 협력해 비즈니스를 개발하거나, 공동 투자하는 등 끈끈한 유대관계를 발휘하고 있다.

VC 관계자는 “10~20대 때 인터넷 서비스의 확산을 경험한 밀레니얼 세대 창업자들은 생태계 이해가 깊고 트렌드 변화에 잘 대응한다”며 “이들이 사회에 진출하기 시작할 때쯤부터 정부가 창업 지원을 늘리면서 최근 역량 있는 30대 CEO들이 대거 등장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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