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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정비사업 대전] ‘춘추전국시대’에서 ‘삼성·현대 2강 체제’로

[강남 정비사업 대전] ‘춘추전국시대’에서 ‘삼성·현대 2강 체제’로

왕좌 탈환 나선 삼성물산 VS 시장 1위 수성하는 현대건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4월 재입찰에서 시공권을 따낸 서울 서초구 반신반포15차 재건축 투시도. / 사진:삼성물산
춘추전국시대나 다름없던 주택정비사업(재개발·재건축) 시장이 하반기엔 2강 체제로 좁혀질 양상이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하 삼성물산)이 돌아오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삼성물산이 비웠던 왕좌를 두고 다퉜던 대형 건설사들은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하반기 정비시장은 ‘왕좌 탈환’ 삼성물산과 ‘왕좌 수성’ 현대건설 간의 대전이 예상된다. 국내 주택시장 위축, 해외 건설실적 감소, 신사업의 불확실성 등 악화된 건설경기도 경쟁을 더욱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삼성물산의 컴백은 판세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2015년 이후 5년여 만에 기지개를 켜자마자 서울 강남권 정비사업 2곳을 연거푸 따냈다. 그 중 하나가 서울 서초구 반포동 신반포15차 재건축(공사비 2400억원)이다. 지난 4월 총회에서 삼성물산은 75% 득표율로 호반건설과 대림산업을 따돌렸다. 서울 노른자에 입성해 지방 건설사 꼬리표를 떼려던 호반건설에겐 공든 탑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아크로 브랜드로 깃발을 꽂으며 반포에서 입지를 다져온 대림산업 에게도 참담한 사건이었다.
 5년 만에 컴백하며 정비사업 시장 흔든 삼성물산
현대건설이 6월 입찰에서 수주한 서울 용산구 한남3구역 재건축 투시도. / 사진:현대건설
신반포15차는 규모가 작은 사업장이지만 삼성물산은 복귀 전 첫 도전인 만큼 사활을 걸었다. 당시 경쟁사들 중 가장 먼저 보증금을 내는 등 결의를 나타냈다. 신반포15차는 신반포21차, 반포1단지3주구와 함께 강남 신흥부촌으로 떠오르는 곳인데다, 곧 있을 서울 서초구 반포동 반포1단지3주구수주전의 전초전 성격도 강했다.

결국 삼성물산은 5월 반포1단지3주구 재건축 시공권(공사비 8087억원)도 따냈다. 신반포15차를 삼성에게 뺏겼던 대우건설은 이곳을 통해 설욕하고 정비 실적 ‘1조’ 반열에 오르려 했으나 결국 꿈을 접어야 했다.

하지만 이런 삼성의 성과를 시장에선 진검 승부로 보지 않는다. 신반포15차에선 2017년에 대우건설을, 반포주공1단지3주구에선 2018년 HDC현대산업개발을 각각 시공사로 선정했는데 두 곳 모두 조합과 시공사가 공사비 문제로 계약을 해지하고 재입찰을 진행한 곳이다. 신반포15차 조합 측은 “그렇다 보니 조합원들 사이에선 인지도가 더 높은 건설사를 원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는데, 눈높이를 맞춰줄 업체라곤 현대건설·GS건설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의 복귀는 희소식이었다”며 “대림산업이 자사에 불리한 기성불(공정률에 따라 공사비를 받는) 방식까지 제안했는데도 탈락한 배경”이라고 말했다.

삼성은 2000년에 래미안 브랜드를 출시한 이래 10여년 동안 서울 강남권 정비사업의 약 30%를 쓸어 담았다. 삼성의 정비사업 수주는 2015년 서울 서초구 반포동 신반포3차·경남아파트 재건축이 마지막이었다. 같은 해 GS건설에 패했던 서울 서초동 무지개아파트 재건축 입찰을 끝으로 정비사업과 연을 끊었다. 사내 주택사업부가 빌딩사업부에 흡수됐고, 아파트 건축 인력도 빌딩사업에 배치됐다. 국내 1위 건설사가 2015년 건설시장을 밝게 전망하면서도 발을 빼려는 움직임에 업계는 의아해했다. 이를 두고 당시 삼성이 ‘주택사업을 접는다’ ‘해외사업에 주력하려 한다’ 등의 추측들이 난무했다.

삼성물산이 떠난 정비시장은 춘추전국시대가 됐다. 대림산업 ‘아크로’, 대우건설 ‘푸르지오써밋’, 롯데건설 ‘르엘’, 현대건설 ‘디에이치’ 등 경쟁사들은 프리미엄 브랜드로 재단장하고 전담팀 확대, 인력 증가 등 주택사업 부문을 강화하며 칼날을 갈았다. 2015년엔 GS건설(8조180억원)이, 2016년엔 대림산업(3조2996억원)이, 2017년 현대건설(4조6467억원)이, 2018년 다시 대림산업(2조2061억원)이, 2019년엔 또다시 현대건설(2조8322억원)이 각각 왕좌에 오르며 뺏고 뺏기는 고지전이 이어졌다. 대우건설·롯데건설·포스코건설·현대엔지니어링·HDC현대산업개발·SK건설 등도 각개전투를 벌였다.

같은 시기 삼성물산은 2016년 12조원, 2017년 11조원, 2018년 12조원, 2019년 11조원대 수준으로 매출을 유지할 뿐, 정비사업은 일절 수주하지 않았다.
 삼성물산 정비사업이 이 부회장 승계와 연관?
정비사업 시장에선 삼성의 복귀에 뒷말이 무성하다. 여러 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분석이 주목받고 있다. 삼성이 정비사업 수주를 멈춘 시기와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 기간이 궤를 같이하고 있어서다.

여기엔 이영호 삼성물산 건설부문 대표의 거취가 연관된다. 2018년 대표가 된 그는 1985년 삼성전관(삼성SDI 전신)에 입사한 뒤 그룹의 경영진단·전략기획·감사 등에서 경험을 쌓으며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역임했다. 하지만 외부에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간여한 인물로 알려져 시민단체들의 퇴진 압박 명단에 올라있다. 국정농단과 경영승계 문제로 곤혹을 치르고 있는 이 부회장이 최근 그룹의 준법정신을 강조하는 모습과, 이 대표가 신년사에서 윤리경영을 강조한 모습도 상통한다.

게다가 이 대표는 지금껏 재건축 수주경쟁을 치른 경험이 없다. 그럼에도 이 부회장의 신임을 받아 올해 1월 임원인사에서 자리를 보존 받았다. 삼성이 한동안 정비사업을 접었던 배경에 세간에서 의심을 시선을 거두지 않는 이유다. A 건설사 주택건설 수주 관계자는 “정비사업 수주전이 민원, 분쟁이 많아 자칫 그룹 이미지 훼손과 경영권 승계를 방해하는 빌미가 될까 봐 미리 단속한 것이 삼성 정비사업이 잠시 멈추게 된 주된 이유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현대건설은 삼성이 자리를 비운 덕을 톡톡히 봤다. 최근 5년 동안 수주실적이 해마다 1조원을 넘는 등 정비사업을 독식했다. 수주액이 2017년 4조6467억원, 2019년 2조8322억원을 기록해 1위에 꼽혔다. 올해 들어서도 서울 신용산북측2구역(3036억원), 부산 범천1-1구역(4160억원), 대전 대흥1구역(853억원), 6월엔 서울 강북 최대 정비사업인 용산구 한남3구역(1조8881억원)까지 거머쥐는 등 벌써 9건 3조2764억원을 수주해 1위 자리를 예약했다. 한남3구역은 향후 한남뉴타운 개발에서 추가 수주 교두보가 될 것으로 현대건설은 기대하고 있다.

현대건설의 과열경쟁은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2017년 반포주공1단지1·2·4주구 수주전에서 가구당 이사비로 7000만원을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다. 당시 조합원들이 이를 담보로 외제차를 구입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을 정도다. 이는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위반 여부로 대형 로펌 간의 법적 분쟁과 정부 개입까지 촉발했다. 현대건설은 이를 무릅쓰고 반포주공1단지1·2·4주구를 결국 품에 안았다.

현대건설은 이 여세를 몰아 최근 3년(2017~2019년) 동안 약 9조원에 육박하는 수주액을 기록했다. 2위인 GS건설(약 7조원)과 격차를 2조원이나 벌렸다. 현대건설의 불도저식 수주전엔 박동욱 대표의 진두지휘도 한몫한다. 박 대표는 1988년 현대건설에 입사한 뒤 1999년 현대자동차로 옮겨 재무관리와 재경사업에서 부사장까지 역임한 재무통이다.

그는 현대의 탄탄한 재무구조와 풍부한 유동자금을 활용해 정비사업 수주에 공격적으로 나섰다. 특화비, 사업비, 금융 대여비, 분양가 보장, 미분양 대물변제 등 파격적인 비용을 제안해 조합원들의 표심을 움직였다. 이 때문에 박 대표는 같은 해에 취임한 삼성물산 이 대표와 종종 비교대상이 되곤 한다. 지난해 삼성물산의 매출과 영업이익이 감소할 때 현대건설은 증가해 희비가 교차했다.

업계 선두를 다투는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정비사업에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데엔 건설경기 침체도 한 배경이다. 정비사업은 건설사 사업 중 안전한 사업에 속한다. 자사 자본이 필요 없고 기반시설을 갖춘 환경에 건물만 다시 지으면 되는데다, 준비된 조합 자금만 받으면 돼 현금 확보가 용이하다. 건설사가 직접 토지 매입, 미분양 처리 등으로 골머리를 앓아야 하는 택지 개발보다 수월하다.
 국내·외 건설경기 위축으로 정비사업에 집중
국내 주택 공급물량 감소도 원인이다. 전국 인·허가 물량은 2015년 76만5328호에서 2019년 48만7975호로 급감했다. 이 가운데 민간부문 물량은 같은 기간 68만8900호에서 39만4349호로 줄었다. 해외 건설실적도 해마다 감소세다. 해외 수주 건은 같은 기간 697건에서 669건으로 줄었으며, 수주액은 461억 달러에서 223억 달러로 반토막 났다.

A건설 관계자는 “해외건설은 겉으로 보기엔 수익이 커 보이지만 공사기간이 길고 위험요소가 많으며 인건비도 상당해 최종 수익이 미미한 편”이라며 “요즘 유가 하락, 중동 분쟁, 중국·유럽 경쟁까지 겹쳐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건설사마다 스마트팜·태양광·리조트 등 신사업 청사진을 내걸지만 구체적인 실행이나 성과는 없고 검토만 할 뿐”이라며 “해당 목적보다는 향후 개발을 염두에 둔 토지 확보용 임시방편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이래저래 정비사업에 건설사들이 뛰어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 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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