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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희의 테크&라이프] 사내 메신저, ‘양날의 검’이 되다

[한세희의 테크&라이프] 사내 메신저, ‘양날의 검’이 되다

격식파괴·빠른소통으로 조직문화 개선… 따돌림·편가르기로 분위기 해치기도
여러분이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아마 지금 스마트폰과 책상 위 업무용 컴퓨터에 여러 개의 카카오톡 창이 열려 있을 터다. 부서 단톡방에 간간히 부장님의 단체 공지와 부서원들의 ‘넵’ 응답이 올라오는 가운데, 부장님을 제외한 나머지 부서원들의 톡방에선 부장님 뒷담화가 오간다. 회사 동기 모임방에선 요즘 사내에서 벌어지는 임원들 정치 다툼의 뒷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것이다.

그 와중에 외주 프리랜서와 작업물 파일을 주고받고, 문자메시지로 들어온 거래처 문의에 답해야 한다. 업무 협조 요청을 메일로 받았는지, 톡으로 받았는지 헷갈려 컴퓨터를 뒤지는 사이에 전화가 울린다.

커뮤니케이션에서 메신저가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 커지고 있고, 특히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확대되면서 업무용 메신저와 온라인 협업 도구 사용도 늘고 있다. 업무 연락과 비공식 커뮤니케이션, 사적 대화가 메신저에서 한데 섞인다. 자연히 이로 인한 문제도 늘었다.
 편리한 메신저, 도리어 조직 갈등 부추길 수도
변호사가 같은 로펌 동료 변호사와 메신저로 사내 다른 변호사와 직원을 험담한 사실이 알려져 해고된 사례가 있다. 그는 해고 무효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원고의 행위는 징계 사유에 해당하지만 해고는 사회통념상 현저히 타당성을 잃었다”며 해고 무효 판결을 내렸다. 직장 동료가 자리를 비운 사이 그의 PC에서 사내 메신저 대화 내용을 훔쳐보고 복사해 다른 직원과 공유했다 처벌받은 사례도 있다.

이런 다툼보다 더 큰 문제는 협업 메신저가 사내 직원을 공공연히 괴롭히거나 따돌리는 장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미국의 작가이자 언론인 바리 웨이스는 직장 뉴욕타임스를 떠나면서 직원들이 사내 슬랙 대화방에서 자신을 공공연히 비난하고 ‘인종차별주의자’ 등의 낙인을 찍었다고 폭로했다. 웨이스는 진보좌파에 비판적인 성향의 컬럼니스트 겸 서평 기자로, 2016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뉴욕타임스가 편집국에 다양한 스펙트럼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취지로 영입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동료 직원들이 슬랙 채널에서 지속적으로 자신의 작업과 성격을 비하하고 “회사가 진정 포용적 조직이 되려면 웨이스를 내보내야 한다” 등의 주장을 하는 등 사내 온라인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공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공공연한 단체 대화방이 아니라 개인적인 1:1 톡으로 다른 사람을 비난한다 하더라도, 언제 어디서나 수시로 대화가 가능하다는 메신저의 특성을 생각해 보면 조직 내 특정인에 대한 비난이나 조롱 발언의 빈도와 강도가 점점 잦아지고 강해질 우려도 있다.

남성 직원들의 메신저 대화를 인권위가 성희롱이라 판단한 사건을 예로 들어보자. 이 회사의 남자 직원 두 명은 같이 근무하는 여성 2명에 대해 정도를 벗어난 욕설과 비하적 표현을 써가며 메신저 대화를 나눴다. 이 중 한 명이 휴가를 간 사이 대화의 주제가 된 여성이 휴가 간 남직원의 PC를 쓸 일이 있었고, 그는 메신저에서 문제의 대화를 발견해 사내에 알렸다.

불법적 방법으로 얻은 둘 사이의 사적 대화를 성희롱이라 판단한 것이 적절한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메신저로 인해 조직의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행위가 쉬워지고 그 결과 따돌림은 강화될 수 있음을 생각하면 조직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선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빠르고 재미있는 커뮤니케이션으로 조직 문화를 개선하리란 기대를 모은 메신저가 도리어 분위기를 해칠 수도 있는 것이다.

회사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기억해야 할 또 다른 문제는 메신저에 남긴 대화가 소송이나 감사 등에서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메일에 담긴 내용이 소송의 중요한 증거가 된 지는 이미 오래 되었지만, 이제는 메신저 대화에도 신경을 써야만 하는 상황이다.

특히 메신저는 성격상 격식을 덜 차리고 짧은 대화를 부담 없이 빠르게 주고받다 보니 실언을 하거나, 맥락을 벗어나 엉뚱한 말을 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종종 생긴다. 2~3일 정도 지나면 서버에서 메시지가 삭제되는 카카오톡과 달리 슬랙, 팀즈 등 협업 메신저는 기본적으로 모든 대화가 저장된다는 점에서 더 주의가 필요하다.
 경계심 풀린 사내 대화가 회사 망하게도
프로레슬러 헐크 호건과 온라인 미디어 고커미디어 사이의 소송전은 사내 채팅의 위험성(?)을 잘 보여준 사건이다. 프로레슬링의 전설 헐크 호건은 2015년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져 레슬링 업계에서 불명예 퇴진했다. 문제의 발언은 그가 외간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 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에서 나왔다. 그런데 가십이건 사생활이건 알게 된 것은 모두 좌충우돌 보도하는 고커미디어가 이 영상 자체를 자사 사이트에 공개해 버렸다. 헐크 호건은 사생활 침해 등을 이유로 고커미디어를 고소했다.

고커미디어는 표현의 자유를 내세우며 방어했다. 유명인이자 이슈를 일으킨 헐크 호건의 영상은 보도 가치가 있다는 주장도 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런 판단에는 헐크 호건의 동영상 보도 당시 고커미디어 직원들이 ‘캠프파이어’라는 사내 협업 도구 메신저로 대화한 내용들이 영향을 미쳤다.

그들은 고령의 헐크 호건이 성관계를 맺은 것에 대해 농담을 하고, 호건이 항상 두건을 쓰고 나오는 것에 빗대 ‘그곳에 두건을 쓰고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이들 채팅 내용은 고커미디어 직원들이 프라이버시를 존중하지 않고 상업적 목적으로 동영상을 다룬 정황 증거로 법원은 간주했다. 결국 고커미디어는 1억4000만 달러의 배상금을 선고받고 파산하였다. 별 생각 없이 나눈 가벼운 대화가 회사의 파산을 불러온 것이다.

메신저는 전화와 이메일 중심이던 사내 커뮤니케이션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가볍고 효율적이며, 대화의 재미도 더했다. 많은 기업들이 조직 문화 개선을 위해 협업 도구와 메신저를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조직 문화가 개방적이고 포용적이지 않다면 아무리 재미있는 이모티콘을 쓸 수 있는 메신저라 해도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왕따가 자행되는 학급 단톡방에 사이버 괴롭힘이 일어나고, 군기가 엄한 학과 단톡방에서 후배에 대한 갑질이 일어나는 것이다.

협업 도구가 조직 문화를 따라갈 뿐이라면 무엇 때문에 도입해야 하는가? 그것은 메신저와 같은 협업 도구가 문화를 바꾸려는 경영자의 노력에 힘을 보탤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조직에는 ‘탕비실 대화’ ‘담배 대화’ 같은 비공식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있다. 여기서 오가는 이야기들이 생산적인지, 독소가 가득한지는 회사에 따라 다르다. 사내 메신저는 이 채널의 효과를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확대할 수 있다. 보다 솔직하고 서로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려는 노력이 없다면, 이들 도구는 조직이 갖고 있던 기왕의 문제를 증폭하는 역할만 할 수도 있다.



※ 필자는 전자신문 기자와 동아사이언스 데일리뉴스팀장을 지냈다. 기술과 사람이 서로 영향을 미치며 변해가는 모습을 항상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다. [어린이를 위한 디지털과학 용어 사전]을 지었고, [네트워크전쟁]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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