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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점 국립대학이 살아야 지역이 산다] 지역인재 육성, 국가균형발전 토대 되는 거점 국립대학

[거점 국립대학이 살아야 지역이 산다] 지역인재 육성, 국가균형발전 토대 되는 거점 국립대학

수도권 쏠림 현상, 미흡한 정부 지원 문제 해결해야
“각 지역에 소재한 국립대학들이 지역 혁신의 거점이 되어줬으면 합니다”

2019년 8월 문재인 대통령은 전국 국립대 총장 24명을 청와대에 초청해 이렇게 말했다. “지역의 모든 혁신은 지역 국립대학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확실히 지역주민에게 체감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해 달라”고도 했다. 문 대통령은 지역 국립대학과 지방자치단체가 중심이 되고 지역사회와 지역 산업계가 연계할 때 국가균형발전도 가능하다며 국립대 총장을 격려했다.

국공립대학교는 지난 70여 년간 지역발전의 거점 역할을 해왔다. 저렴한 학비로 학생들에게 양질의 교육 기회를 제공한 곳도 국립대였다. 특히 서울대를 비롯해 강원대, 충북대, 충남대, 전북대, 전남대, 경북대, 경상대, 부산대, 제주대 등 각 지역을 대표하는 거점 국립대학교의 역할이 컸다.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대학알리미에 공개한 ‘2020년 4월 대학정보공시 분석 결과’를 보면 올해 평균 등록금은 전국 국공립대가 418만2700원, 사립대가 747만9800원이다.
 학생들 ‘수도권 쏠림’에 거점 국립대 위상 하락
그러나 학생들의 수도권 쏠림 현상이 가속화하면서 거점 국립대의 위상이 떨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인구의 수도권 집중 현상이 불러온 폐해다. 통계청에 따르면 수도권의 인구 비율은 1980년 기준 35.5%에서 2015년 49.5%까지 늘었다. 같은 기간 초중고 학생 비율은 수도권에서 급격히 증가했다. 종로학원하늘교육이 1965년부터 2018년까지 전국 시도별 초중고 학생 수를 비교 분석한 결과 1990년대 1기 신도시, 2000년대 2기 신도시 개발 후 ‘서울의 도심 팽창과 수도권 지역 쏠림’ 현상이 가속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1980년 수도권 초중고 학생 수 비율은 31.8% 수준이었지만, 2015년엔 48.6%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수도권 인구 집중 현상이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토연구원과 국회미래연구원의 조사 결과를 보면 2050년의 수도권 집중도는 50%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 통계청이 2017년 발표한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인구의 수도권 집중도는 2045년 50%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문제는 최근 급격한 출산율 하락 문제와 수도권 쏠림 현상이 겹쳐지면서 지역발전의 불균형이 심화되는 것에 있다. 비수도권 지역에서 학령인구가 줄어들면서 지역 대학들의 위기를 부채질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8월 26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출생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92명으로 전년 0.98명보다 6%가량 감소했다. 합계출산율은 여자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말한다. 차정인 부산대학교 총장은 [이코노미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청년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공부하는 시기에 ‘인 서울’ 쏠림 현상이 급격하게 진행된다”며 “지역 명문대학을 육성해야 국가 균형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선 지역 명문대학들이 산학협력 활성화를 통해 지역발전의 중심이 되고 있다. 영국 정부는 2013년부터 지역 대학과 기업의 산학협력을 돕는 대학기업촉진지구(University Enterprise Zone)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리버풀 대학, 브래드포드대학, 노팅엄대학, 브리스톨대학이 있는 4개 지역에서 시범 사업을 시작한 후 확대하는 추세다. 미국 뉴욕의 코넬테크는 캠퍼스의 모든 강의실과 건물을 개방형 공간으로 만들었다. 한 건물에 대학 연구실과 민간기업이 입주해 유기적인 산학협력이 이루어지게 돕고 있다. 각종 세금 혜택도 있다. 코넬테크 캠퍼스에 입주한 기업에 신규 채용된 근로자는 근로소득세도 감면받는다. 기업은 인재를 모집하는데 수월하다는 장점과 대학 캠퍼스의 지리적 이점에 더해 금전적인 이익도 누리는 셈이다.
 공공기관 지역인재 채용 할당제 등 보완 필요
우리나라에서도 인재들의 지역 분산과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해 공공기관 채용 할당제를 시행하고 있다. 혁신도시 이전 공공기관은 신입사원 채용 시 일정 비율만큼 해당 지역에 있는 대학이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을 뽑도록 한다. 공공기관 취업 혜택을 통해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지역 대학에 진학하도록 유인한다. 다만 지역발전을 위해 공공 이관 채용 할당제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도 있다. 차정인 총장은 “지역할당제는 유지하면서 공공기관이 비수도권 지역 학생들을 지역에 관계없이 추가로 선발하는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경남지역에 있는 공공기관이 신입사원을 뽑을 때 선발인원의 25%는 경남 출신 학생을 선발하고, 25%는 수도권을 제외한 강원, 충청, 전라도 지역 학생들에게 할당하는 방식이다. 차 총장은 “비율은 정치권에서 결정할 사안이지만, 이런 방법을 통해 공기업은 지역 인재 모집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고, 각 지역 학생들의 취업 기회도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거점 국립대학들도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특히 거점 국립대 네트워크를 통해 지역 인재들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아도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거점 국립대학교 총장협의회는 지난 8월 비공개회의를 열고 ‘고등교육 제도 변화를 위한 방안’, ‘4차산업혁명 시대 인재양성을 위한 재정 확대 방안’, ‘대학 간 학생 교류 활성화 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거점 국립대 네트워크는 일종의 ‘연합대학’ 성격을 갖는다. 소속 대학들이 교육과정과 학점, 교수 등을 교류하는 방안도 담겨있다. 네트워크가 활성화되면 부산에 사는 학생이 부산에서 서울대 수업을 듣고, 전주에 사는 학생이 자기 지역에서 강원대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 사업 ‘지지부진’ 상태
하지만 당초 정부가 추진하기로 했던 거점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 사업은 지지부진한 상황인 것으로 파악된다. 배태섭 교육혁명포럼 정책위원장은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에 대한 담론이 20년 동안 이어지고 있지만 아직 국립대의 공동 선발, 공동 학위 등 통합 네트워크에 대한 구체적인 진전은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거점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는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에서 출발한 담론이다. 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 2001년 ‘국립대 협력 및 개방화 방안’을 발표한 이후 약 20년간 관련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장 교수는 당시 서울대를 포함한 주요 국립대를 상호보완적인 협력 체제로 묶고, 서울대 학사 과정 입학생을 선발하지 않는 대신 해당 정원만큼을 국립대에 추가 배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후 2004년 정진상 경상대 교수가 ‘국립대 통합네트워크’라는 제목의 저서를 내면서 관련 논의도 본격화됐다.

2011년 서울대가 법인화된 이후에도 서울대와 9개 거점 국립대를 통합하자는 주장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반상진 현 한국교육개발원장은 2012년 ‘한국형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 방안을 제시했고, 문재인 대통령 역시 2012년, 2017년 대선 과정에서 국공립대 통합 네트워크 관련 공약을 내건 바 있다. 최근 여권에서 행정수도 이전이 화두로 떠오르자, 여권 유력 인사들은 국립대 통합론을 또다시 언급하고 있다.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해 행정수도 이전과 함께 거점 국립대 통합도 함께 추진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거점 국립대를 ‘한국대학교’(가칭)로 통합해 일종의 연합대학 형태로 운영하자는 것이다. 정부 예산을 지속 투입해 거점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이를 통해 거점 국립대를 서울의 중상위권 사립대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거점 국립대 통합을 위한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등은 현재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관련 법안이 발의됐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9개 거점 국립대가 올해 2학기부터 원격 수업 학점 교류를 시행하는 등 자체적으로 통합 네트워크 활성화 노력을 이어가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다만 교육부와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지난 8월 국가교육위원회를 조속히 설치하기 위한 공동 결의안을 채택했다. 정부와 여당은 올해 안으로 국가교육위원회 설치 관련 법안을 처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거점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 대신 2018년부터 국립대학 육성사업을 시행 중이다. 이 사업은 2018년부터 지방자치단체와의 연계 강화를 통해 거점 국립대를 집중 육성하고 대학의 자율 혁신을 지원하는 내용의 사업이다. 국공립대 간 기능별(연구·교육·직업 중심), 중점 분야별 특화지원으로 국공립대 네트워크, 혁신 강소대학 네트워크를 중장기적으로 구축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를 통해 국립대의 공적 역할을 강화해 국립대를 지역의 교육·연구·혁신 거점으로 육성하고 궁극적으로 국가 균형 발전을 꾀하겠다는 것이다.

교육계에선 거점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에 대한 엇갈린 평가가 나온다.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가 구축돼야 지역 균형 발전도 담보될 수 있다는 찬성론과 수도권 과밀화, 학령 인구 감소 등의 현 상황을 고려하면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의 효과가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는 회의론이다. 수도권 과밀화와 지역 격차 해소가 선행돼야 통합 네트워크도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조상식 동국대 교수(교육학)는 “과거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를 추진했을 당시와 현재를 비교하면 학령인구 감소, 수도권 과밀화가 심화했고 지역 간 격차도 증대된 상황”이라며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하면 단순 국립대 통합으로 얻는 효과는 극히 제한적”이라고 했다. 조상식 교수는 “이미 벌어질 대로 벌어진 지역 격차를 줄이는 국가 균형 발전이 선행돼야 국립대 통합도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며 “국립대 통합 등 수도권과 지역의 교육 격차를 줄이는 것으로 국가 균형 발전을 꾀할 수 있다는 담론은 다소 과장된 논리”라고 했다.
 거점 국립대 지원 ‘미흡’ 해결해야
거점 국립대에 대한 정부 지원은 여전히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부의 주요 사업 대학 재정 지원 현황에 따르면 9개 거점 국립대 가운데 부산대와 경북대를 제외한 7개 대학의 지난해 대학 재정 지원 규모는 연세대·고려대·성균관대보다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

9개 거점 국립대가 80억~100억원 가량을 국립대학 육성사업을 통해 지원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서울 상위 사립대와 비교해 대학 재정 지원 규모가 턱없이 작다는 지적도 나온다. 거점 국립대 특화 지원 사업을 제외한 나머지 정부 지원 사업에 대한 지원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교육부의 대표적 대학 지원 사업인 BK21(Brain Korea21)플러스 지원액을 보면, 연세대·고려대·성균관대 모두 지난해 200억원 이상을 받았으나, 9개 거점 국립대 중 지원액이 200억원을 넘긴 대학은 없었다. 9개 거점 국립대 중 재정 지원 규모가 가장 작은 제주대의 경우 지원액은 12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가 거점 국립대 육성과 별개로 한국전력공과대, 공영형 사립대 설립 등을 추진하는 것을 두고 거점 국립대 육성 동력이 분산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계에선 한전공대 설립 효과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이미 한국과학기술원(KAIST)·광주과학기술원(GIST)·울산과학기술원(UN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포항공과대학교(POSTECH) 등 지역 중심의 이공계 특성화 대학이 5곳이나 있는 상황에서 기존 특성화 대학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한전공대 설립에 1조원 이상을 쏟아 붓는 과정에서 기존 이공계 특성화 대학과 거점 국립대 등에 대한 지원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가 거점 국립대의 특화 학문 분야 육성을 지원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거점 국립대를 활용해 에너지 분야 인재를 육성해도 충분하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공영형 사립대 논란도 여전하다. 공영형 사립대는 국가가 대학 운영비 50% 이상을 충당하면 학교를 운영하는 이 사진의 50% 이상을 공익이사로 구성하는 대학을 말한다. 일종의 ‘半 국립’ 형태의 대학인 셈이다. 공영형 사립대 설립은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다. 재정난에 허덕이는 지역 대학을 지원해 공영 사립대로 육성하고 궁극적으로 지역 대학의 질을 높이자는 취지다. 그러나 교육계에선 경쟁력 약화로 재정 악화를 겪고 있는 사립대에 혈세를 투입하는 것은 재정 낭비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 이병희 기자 yi.byeonghee@joongang.co.kr·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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