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선 심리학 공간] 브레이브걸스의 ‘존버’ 심리학
[조지선 심리학 공간] 브레이브걸스의 ‘존버’ 심리학
‘버텨봤자 소용없다’에서 ‘버티다 보면 될 수도 있다’ 희망 신드롬 선물 브레이브걸스(브브걸) 멤버들은 2017년에 ‘롤린(Rollin’)’을 발표한 후 3년 5개월의 공백을 견뎌야 했다. 새 앨범 ‘운전만 해’를 비장한 각오로 준비했지만 제대로 된 활동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그들의 프로듀서는 스타 작곡가, 용감한 형제. 선미, AOA, 빅뱅, 씨스타 등, 그가 곡을 준 가수들은 하나같이 히트를 기록했지만 제작에 손대는 그룹마다 기이할 정도로 망해 나갔다.
꽃다운 20대를 폭망한 아이돌 소리를 들으며 보낸 그녀들의 마음 고생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나이는 어느덧 서른. 마지막 앨범이 처참한 실패로 끝난 후, 절망의 벼랑 끝에 선 4명의 멤버들은 지난 2월 결심했다. “이제 그만 끝내자.” 그리고 바로 다음 날부터 기적이 시작됐다. 한 순간에 무명 가수에서 대한민국 전체가 알아보는 그룹이 된 것이다.
유튜버 ‘비디터’가 올린 ‘브레이브걸스 롤린 댓글 모음’ 영상이 유튜브에서 그야말로 ‘터져 버렸다’. 브브걸의 공연 모습과 팬들의 댓글을 재치 있게 편집한 이 영상의 조회수는 현재 1500만을 눈앞에 두고 있다. 달린 댓글만도 4만개가 넘는다. 몇 주 만에 그녀들은 4년 전에 발표한 곡으로 각종 음원 차트를 올킬하고 음악방송 1위 6관왕을 차지했다. 이 기적을 마치 자신의 일인 양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두가 외면할 때, ‘롤린’을 알아보고 ‘밀보드(밀리터리+빌보드) 차트’ 1위 자리를 전세 내준 군인들이다. 브브걸의 영상엔 장병들의 진심 어린 응원 메시지가 가득하다. ‘입대할 때 선임에게 인수 받고 전역할 때 후임에게 인계해 주는 노래’ ‘군생활, 이거 하나로 버텼다. 엄청난 활력소가 되어줬던 노래.’ ‘역주행했으면 하는 곡 1위’ ‘전국 군부대를 방문했던 이 그룹에게 보답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롤린’을 들으며 군생활을 했던 이들에게 브브걸은 짠하고 애틋한 존재다. 이 신드롬의 발원지가 국방TV ‘위문열차’라는 것을 부인할 순 없다. 팬이 아니더라도, 병사가 아니더라도, 이 역주행 서사를 듣고 있노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울컥하게 된다. 그들이 겪은 고생이 남의 일 같지 않아서다.
짧은 공연을 위해 땅끝마을, 거제도, 심지어 백령도까지, 때로는 배 타고 버스 타고 왕복 12시간 이동을 마다하지 않았으나 좀처럼 뜰 기회를 잡을 수 없었던 이들의 모습에 자신의 모습이 겹쳐진다. 코로나19 한파에 시달리는 N포세대 청년들에게 브브걸 신화는 단순히 벼락 성공을 의미하지 않는다. ‘롤린’은 위로와 희망의 응원가다. ‘브브걸이 1위를 한 순간, 마치 내가 취업에 성공한 것 같았다.’ ‘내 노력이 언젠가는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힘들지만 버텨보자고 마음 먹었다.’
‘여러분, 버티니까 이런 날이 오네요. ‘존버(끈질기게 버틴다는 뜻)’는 승리합니다.’ 브브걸이 외친 이 메시지는 ‘버텨봤자 소용없다’에서 ‘버티다 보면 될 수도 있다’로 사람들의 생각을 옮겨 놓았다. 그래서 이 신드롬이 무척 반갑다. 그런데 이 희망적인 전환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브브걸의 존버’가 어떤 의미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존버와 가까운 심리학적 개념은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심리학자 안젤라 더크워스가 제시한 그릿(grit)으로 열정적 끈기를 말한다. 끈기는 지속하는 힘을 말하고 열정은 마음의 온도를 이른다. 존버는 단순히 목표를 버리지 않은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노력의 수준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브브걸은 자신의 일을 사랑했고 5분짜리 공연을 하기 위해 62차례나 군부대를 방문했다. 버티는 모습은 다양하다. 목표를 유지한 채, 노력을 거둬 들인 상태는 브브걸의 ‘존버’가 아니다. 심리학자 카스튼 로쉬(Carsten Wrosch) 연구팀의 제언에 따르면 이는 목표 포기보다 더 위험하다. 현재의 목표에 충실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지도 않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태다. 때로는 목표를 포기하는 것이 더 안전하고 유익한 선택이다. 목표에 헌신하는 것은 성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이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목표로부터 멀어지기로 자발적으로 결정하는 능력이다.
‘승자는 절대 포기하지 않고 포기하는 사람은 절대 승리하지 못한다’고 배운 우리에게 포기는 무기력이며, 실패의 동의어다. 버티는 사람은 칭송을 받고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은 책망을 받는 이 사회에서 목표를 버리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과연 포기해야 할 시점은 언제인가? 누구나 살면서 이 묵직한 질문을 마주한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우리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어떤 땐, 목표를 포기하지 못한 채, 노력을 포기한다. 도달할 수 없는 목표 안에 갇혀서 노력을 멈출 때 찾아오는 것은 공허함과 괴로움이다. 혹은, 노력은 포기하지 않지만 목표를 포기할 수도 있다. 목표에서 자신을 떼어놓고, 목표가 차지하고 있던 자원을 새 희망을 위해 쓰는 것이다. 하나를 닫으면 다른 하나가 열린다.
존버는 승리할까? 브브걸의 멤버들은 역주행의 역사가 쓰여지기 하루 전날 목표 철회를 결정했다. “노력해서 낸 앨범이 바스러지니까 우리가 설 자리가 아닌 것 같았어요.” 막막해도 자신의 자리가 아니라고 판단하면 떠날 용기를 내는 것. 이 또한 브브걸의 존버가 아닐까? 새로운 삶을 위해 한국사를 공부하고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고 의류업 종사를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브브걸에게 기적이 일어나서 다행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도 그녀들은 새로운 희망을 찾고 다시 노력했을 것이다.
노력을 포기하는 것은 희망을 포기하는 것이다. ‘존버’하는 사람은 열정을 품고 장기적 목표를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끈기와 적절한 시점에 목표를 철회하는 용기를 동시에 가진 사람이다. 브브걸처럼 ‘존버는 승리한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 필자는 연세대학교 객원교수, 심리과학이노베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이다. 스탠퍼드대에서 통계학(석사)을, 연세대에서 심리학(박사·학사)을 전공했다. SK텔레콤 매니저, 삼성전자 책임연구원, 아메리카 온라인(AOL) 수석 QA 엔지니어, 넷스케이프(Netscape) QA 엔지니어를 역임했다. 유튜브 ‘한입심리학’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꽃다운 20대를 폭망한 아이돌 소리를 들으며 보낸 그녀들의 마음 고생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나이는 어느덧 서른. 마지막 앨범이 처참한 실패로 끝난 후, 절망의 벼랑 끝에 선 4명의 멤버들은 지난 2월 결심했다. “이제 그만 끝내자.” 그리고 바로 다음 날부터 기적이 시작됐다. 한 순간에 무명 가수에서 대한민국 전체가 알아보는 그룹이 된 것이다.
유튜버 ‘비디터’가 올린 ‘브레이브걸스 롤린 댓글 모음’ 영상이 유튜브에서 그야말로 ‘터져 버렸다’. 브브걸의 공연 모습과 팬들의 댓글을 재치 있게 편집한 이 영상의 조회수는 현재 1500만을 눈앞에 두고 있다. 달린 댓글만도 4만개가 넘는다. 몇 주 만에 그녀들은 4년 전에 발표한 곡으로 각종 음원 차트를 올킬하고 음악방송 1위 6관왕을 차지했다.
5분 공연 위해 12시간을 내달린 열정적 끈기
‘롤린’을 들으며 군생활을 했던 이들에게 브브걸은 짠하고 애틋한 존재다. 이 신드롬의 발원지가 국방TV ‘위문열차’라는 것을 부인할 순 없다. 팬이 아니더라도, 병사가 아니더라도, 이 역주행 서사를 듣고 있노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울컥하게 된다. 그들이 겪은 고생이 남의 일 같지 않아서다.
짧은 공연을 위해 땅끝마을, 거제도, 심지어 백령도까지, 때로는 배 타고 버스 타고 왕복 12시간 이동을 마다하지 않았으나 좀처럼 뜰 기회를 잡을 수 없었던 이들의 모습에 자신의 모습이 겹쳐진다. 코로나19 한파에 시달리는 N포세대 청년들에게 브브걸 신화는 단순히 벼락 성공을 의미하지 않는다. ‘롤린’은 위로와 희망의 응원가다. ‘브브걸이 1위를 한 순간, 마치 내가 취업에 성공한 것 같았다.’ ‘내 노력이 언젠가는 인정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힘들지만 버텨보자고 마음 먹었다.’
‘여러분, 버티니까 이런 날이 오네요. ‘존버(끈질기게 버틴다는 뜻)’는 승리합니다.’ 브브걸이 외친 이 메시지는 ‘버텨봤자 소용없다’에서 ‘버티다 보면 될 수도 있다’로 사람들의 생각을 옮겨 놓았다. 그래서 이 신드롬이 무척 반갑다. 그런데 이 희망적인 전환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브브걸의 존버’가 어떤 의미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존버와 가까운 심리학적 개념은 펜실베이니아대학의 심리학자 안젤라 더크워스가 제시한 그릿(grit)으로 열정적 끈기를 말한다. 끈기는 지속하는 힘을 말하고 열정은 마음의 온도를 이른다. 존버는 단순히 목표를 버리지 않은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노력의 수준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브브걸은 자신의 일을 사랑했고 5분짜리 공연을 하기 위해 62차례나 군부대를 방문했다.
새로운 희망을 위해 떠나는 용기와 노력도 필요
‘승자는 절대 포기하지 않고 포기하는 사람은 절대 승리하지 못한다’고 배운 우리에게 포기는 무기력이며, 실패의 동의어다. 버티는 사람은 칭송을 받고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은 책망을 받는 이 사회에서 목표를 버리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과연 포기해야 할 시점은 언제인가? 누구나 살면서 이 묵직한 질문을 마주한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우리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어떤 땐, 목표를 포기하지 못한 채, 노력을 포기한다. 도달할 수 없는 목표 안에 갇혀서 노력을 멈출 때 찾아오는 것은 공허함과 괴로움이다. 혹은, 노력은 포기하지 않지만 목표를 포기할 수도 있다. 목표에서 자신을 떼어놓고, 목표가 차지하고 있던 자원을 새 희망을 위해 쓰는 것이다. 하나를 닫으면 다른 하나가 열린다.
존버는 승리할까? 브브걸의 멤버들은 역주행의 역사가 쓰여지기 하루 전날 목표 철회를 결정했다. “노력해서 낸 앨범이 바스러지니까 우리가 설 자리가 아닌 것 같았어요.” 막막해도 자신의 자리가 아니라고 판단하면 떠날 용기를 내는 것. 이 또한 브브걸의 존버가 아닐까? 새로운 삶을 위해 한국사를 공부하고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하고 의류업 종사를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브브걸에게 기적이 일어나서 다행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도 그녀들은 새로운 희망을 찾고 다시 노력했을 것이다.
노력을 포기하는 것은 희망을 포기하는 것이다. ‘존버’하는 사람은 열정을 품고 장기적 목표를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끈기와 적절한 시점에 목표를 철회하는 용기를 동시에 가진 사람이다. 브브걸처럼 ‘존버는 승리한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세상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 필자는 연세대학교 객원교수, 심리과학이노베이션연구소 전문연구원이다. 스탠퍼드대에서 통계학(석사)을, 연세대에서 심리학(박사·학사)을 전공했다. SK텔레콤 매니저, 삼성전자 책임연구원, 아메리카 온라인(AOL) 수석 QA 엔지니어, 넷스케이프(Netscape) QA 엔지니어를 역임했다. 유튜브 ‘한입심리학’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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