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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 요르단 왕실의 갈등과 국제 정세] 요르단 왕실이 권력투쟁해도 국제 지지를 받는 이유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 요르단 왕실의 갈등과 국제 정세] 요르단 왕실이 권력투쟁해도 국제 지지를 받는 이유

서방세계의 정보 채널이자 중동 난민의 피난처로 평가 받아
요르단 국민들이 3월 15일 수도 암만에서 정부의 코로나19 확산 봉쇄 조치에 따른 경제난과 의료사고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사진:AFP=연합뉴스
중동의 ‘뼛속까지 친미국가’인 요르단의 하심 왕가에서 승계와 관련된 갈등이 되풀이되고 있다. 요르단 국왕인 압둘라 2세(59·재임 1999~)의 이복동생인 함자 왕자(41)가 쿠데타 시도설 속에 계속 가택연금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면서 왕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관광이 주요 산업인 요르단은 코로나19로 인한 주민 봉쇄와 경제난으로 3월에는 수도 암만 등에서 항의 시위도 이어졌다.

요르단 왕실의 불안이 표면화한 것은 지난 4월 3일이었다. 요르단 국왕의 이복동생인 함자 빈 후세인이 쿠데타 기도로 짐작되는 정치적 움직임에 연루돼 가택연금 상태에 있다고 영국 BBC 방송 등이 보도하면서다. BBC는 요르단 보안당국이 이날 수도 암만의 함자 왕자의 거처에 들이닥쳐 그를 사실상 구금하고 있다고 전했다. AP·로이터 통신은 함자 왕자와 함께 바셈 아와달라 전 재무장관과 왕실의 일원인 샤리프 하산 벤 자이드도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왕정국가인 요르단에서 왕실 일원이 보안당국에 체포되거나 구금되는 일은 이례적이다.

함자 왕자는 영국 BBC 방송이 입수한 영상에서 자신이 가택연금 상태에 있다고 밝혔지만 쿠데타에 연루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함자 왕자는 요르단군 참모총장이 3일 오전 일찍 자신을 찾아와 밖으로 나가지 말고 사람들을 만나거나 통화하지도 말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함자 왕자는 참모총장이 자신에게 국왕을 비난하는 여러 부족 모임에 참석한 것에 대한 처벌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자신은 어떠한 모의에도 참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함자 왕자는 대놓고 요르단의 현실을 대놓고 비판했다. “우리나라의 통치 시스템에 지난 15∼20년간 문제가 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통치 실패, 부패, 무능이 가중됐지만 그 책임은 내가 아닌 의지가 부족한 기관의 책임자들에게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민의 안위는 통치 시스템의 뒷전으로 밀려났다”며 “사익과 금전적 이득, 부패가 1000만 국민의 삶과 존엄, 미래보다 더 중요해졌으며 그 결과 우리는 희망을 잃었다”고 말했다. 함자 왕자는 동영상에서 거처의 전화와 인터넷도 끊겼다고 말했지만 이 동영상이 어떻게 BBC에 전달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함자 왕자가 쏘아 올린 요르단의 부정·부패
요르단 국립병원인 알후세인 알살트 병원에서 코로나19 중증 환자들이 산소 공급 중단으로 사망한 사고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몰려들자 군인들이 병원 밖에서 경계를 지키고 있다. / 사진:AP=연합뉴스
이날 요르단군은 함자 왕자가 체포됐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대신 국가가 안정과 평화를 해치는 데 이용될 행동을 중지할 것을 함자 왕자 측에 요구했다. 군은 함자 왕자와 측근, 그리고 관련자들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왕실 일원인 함자 왕자의 권위를 존중하되 그의 행동에 경고를 보낸 셈이다.

함자 왕자는 5일 왕실 내부의 중재로 압둘라 2세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자신에 대한 처분을 국왕에게 맡기며 헌법을 따르겠다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함자 왕자는 삼촌인 하산 왕자를 만난 뒤 입장을 바꿨다. 하산 왕자는 전임 후세인 1세 국왕의 동생으로 1947년부터 1999년 1월까지 왕세제를 맡다가 폐위되고 왕위승계권자 자리를 조카인 압둘라 2세에게 넘겼다. 옥스퍼드대 출신으로 왕실에서 가장 엘리트로 평가 받는다.

궁정 권력투쟁은 일단락돼 보이지만 함자 왕자가 언급한 요르단의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요르단에선 지난 3월 14일 수도 암만에서 주민들이 코로나19에 따른 봉쇄와 경제난, 의료 사고 등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유 있는 시위였다.

전날 요르단 국립병원에서 코로나19 중증 환자 7명이 산소 공급 중단 사고로 숨지는 일이 벌어져 민심이 악화했다고 AP·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앞서 3월 13일 암만 서부의 알후세인 알살트 병원의 코로나19 환자와 임신부용 집중치료실(ICU)에 산소 공급이 1시간쯤 끊겼다. 이 국립 병원은 요르단 정부가 수백만 달러를 들여 건립했으며 지난해 8월 개원했다.

사고가 나자 요르단 정부는 즉각 고개를 숙였다. 압둘라 2세 국왕이 직접 병원을 찾았으며 병원 입구에서 책임자에게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느냐고 물었다.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한 것이다. 요르단의 비셰르 알 하사우네 총리는 정부에 책임이 있다며 공식 사과한 데 이어 사고 책임을 물어 나티르 오베이닷 보건부장관과 보건부 차관 3명을 한꺼번에 경질했다. 요르단 경찰은 병원 책임자 5명을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사실 요르단의 코로나19 상황은 심각하다. 인구 1000만의 작은 나라에 4월 9일까지 확진자가 65만5456명, 사망자가 7565명이 발생했다. 4월 8일에만 4775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3월 17일 하루에만 9535명의 확진자가 나올 때보다는 조금 줄었지만 여전히 심각하다.

관광이 재개되지 않는 이상 경제사정이 올해도 나아질 전망이 없다. 요르단은 여전히 안개 속에 남았다. 그동안 겉으론 중동에서 가장 안정적인 나라라는 평가를 받아왔던 요르단이 코로나19로 한계상황에 직면하는 나라가 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왕세제 자리를 두고 다툼 벌인 요르단 왕실
압둘라 2세(왼쪽)와 그의 이복동생인 함자왕자(오른쪽) / 사진:REUTERS·AFP=연합뉴스
왕실의 불화가 이미 오래 전부터 잠복해왔기 때문이다. 압둘라 2세는 1999년 부왕인 후세인 1세(1935~1999년, 재임 1952~1999년)가 별세하면서 국왕에 올랐다. 압둘라 2세의 승계에는 2가지 독특한 점이 있었다. 우선 1965년 왕세제를 맡아 34년 동안 왕위계승 예정자로 있던 동생 하산(73)을 1999년 1월 25일 폐위하고 아들인 압둘라를 왕세자로 세웠다는 사실이다.

사실 하산은 요르단 왕실인 하심 가에서 가장 공부를 잘했다. 형인 후세인 1세가 다녔던 영국 런던의 해로스쿨을 마치고 옥스퍼드대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서 동양학을 전공해 우등 졸업했다. 일찍이 험악한 중동정세를 경험한 후세인은 영민한 후계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후세인 국왕은 후계자를 동생 하산에서 아들 압둘라로 교체한 지 불과 2주 만에 세상을 떠났다. 게다가 후세인은 압둘라에게 배다른 동생인 함자를 왕세제로 삼으라고 요구했다. 1952년부터 47년 동안 요르단을 통치했던 4대 국왕 후세인이 1999년 1월 25일 별세하면서 압둘라 2세 국왕이 즉위하고, 그의 이복동생인 함자가 왕세제를 맡았다. 압둘라 2세는 어머니가 영국인, 함자는 미국인이다.

하지만 함자의 왕세제 자리는 오래 가지 못했다. 압둘라 2세가 2004년 11월 함자를 왕세제에서 폐위했다. 당시 국영방송에서 낭독한 압둘라 2세 국왕의 편지는 “상징적인 자리가 너의 자유를 속박해왔다”며 “네게 맞는 자리에서 일할 자유를 주자”고 왕세제 폐위 이유를 밝혔다.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요르단 헌법은 국왕의 장남이 부왕이 별세하면 왕위를 승계하도록 되어 있어 자신의 아들인 후세인(26)이 자동으로 법적인 계승권자가 됐다. 후세인 왕자는 2009년 7월 공식적으로 왕세자에 올랐다. 요르단의 궁중 투쟁은 2004년 왕세제이던 이복동생 함자를 폐하고 2009년 아들 후세인을 왕세자로 책봉하며 이미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왕실의 이런 갈등에도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서방과 중동 이슬람 국가는 여전히 요르단 왕실을 지지한다. 인구 1000만의 중동의 작은 왕국 요르단의 궁정 투쟁에 서방과 이스라엘 언론은 연일 속보를 보도했다. 이는 요르단이 서방의 대중동 정책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이슬람권 군사·정보 대리인
첫째는 요르단이 중동 군사·정보 분야에서 미국의 충실한 대리인 역할을 꾸준히 해왔다는 점이다. 1952년 설립된 요르단 종합정보부(GID)는 왕실을 지키는 핵심 기관으로 평가 받지만 동시에 중동에서 미국을 겨냥한 반미 테러를 사전에 적발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9년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채프먼 기지에서 자폭한 알카에다 삼중스파이 후맘 칼릴 아부무달 알발라위 사건이다. 알발라위는 팔레스타인 난민을 부모로 쿠웨이트에서 태어나 요르단에서 자라고 터키에서 공부한 의사 출신이다 요르단에서 알카에다 인터넷 선전요원으로 일하다 체포됐다. 요르단 정보부인 GID는 그를 전향시킨 뒤 이중스파이로서 알카에다에 침투시키는 임무를 부여했다.

이 작전을 맡은 요르단 정보요원은 샤리프 알리 빈 자이드라는 고위 가부로 왕족인 것으로 전해졌다. 알발라위는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돼 그곳에 숨어있는 것으로 알려진 알카에다 2인자 아이만 알자와히리를 찾는 임무를 맡았다. 하지만 알발라위는 사실은 알카에다의 3중 스파이였고, 채프먼 기지에서 자폭하면서 CIA 요원과 요르단 정보부 요원 등 14명을 폭사시켰다.

이 사건은 2010년 미국 매체들에 의해 상세하게 보도됐다. 당시 대중은 삼중 스파이라는 화제성에 관심을 집중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대이슬람권 정보수집과 작전, 그리고 공작에서 요르단 정보부인 GID가 얼마나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요르단은 중동 대테러작전의 주역이다.

요르단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난민 수용이다. 1000만 국민 중 220만이 팔레스타인 난민으로 등록돼 있다. 요르단은 최근까지 자국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원하면 국적을 부여해왔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이 자치 국가를 꾸리는 등 변화가 생기면서 경계를 맞댄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주민이 요르단에 들어와 국적을 얻는 것을 막고 있다.

사실상 팔레스타인과 요르단은 지리적으로나, 주민들의 언어·문화 측면에서나 동질성이 강하다. 지리적으로는 요르단 강을 사이에 두고 서쪽은 시스요르단, 동족은 트란스 요르단으로 불려왔다. 라틴어로 시스는 이쪽, 트란스는 저쪽을 의미한다. 해상이나 해안에서 볼 때 요르단강의 이쪽이고 저쪽이라는 의미다. 제1차 세계대전 뒤에 프랑스가 지금의 시리아와 레바논, 영국이 옛 오스만튀르 영토인 이라크와 시스요르단, 트란스요르단에 각각 주둔했다.

트란스요르단은 영국의 지원으로 나중에 요르단이라는 독자 왕국으로 자리 잡았다. 시스 요르단은 1947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분할하는 방안이 유엔에서 나왔지만 아랍권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듬해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자 아랍권이 침공해 전쟁이 벌어졌다. 전쟁 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은 요르단이, 가자지구는 이집트가 각각 차지했다가 1967년 6일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점령했다.
 팔레스타인·시리아 난민 수용 보금자리 역할
이 때문에 1948년 1차 중동전쟁 직후엔 지금 이스라엘이 차지한 영토에 살던 팔레스타인 주민이, 1967년 3차 중동전쟁 이후엔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살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대거 요르단으로 몰려왔다. 1991~92년 걸프전 이후엔 쿠웨이트에 살다 이라크 침략군을 환영했던 팔레스타인 주민이 쫓겨나면서 요르단으로 몰려왔다.

이런 과정을 거쳐 팔레스타인 주민은 난민이 돼 전 세계에 퍼졌으며, 같은 아랍어를 쓰는 중동에 많이 정착했다. 특히 지리적으로 가깝고 1948~1967년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점령했던 요르단에 많이 몰렸다. 유엔 팔레스타인난민 구호사업기구(UNRWA)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난민은 전 세계에 540만명이 있으며, 이 가운데 요르단에 220만 정도가 거주한다. 등록된 난민 기준이다. 난민으로 등록하지 않고 요르단이 사는 팔레스타인 출신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요르단은 압둘라 2세 국왕의 부인인 왕비부터 팔레스타인 난민 출신이다. 팔레스타인 난민 중 요르단 국적을 얻은 사람을 통합하고, 더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의 귀화를 억제하는 것이 요르단의 국가 정책이자 생존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난민으로 등록하면 주거·식량·의료·교육 등에서 UNRWA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UNRWA는 유엔난민기구(UNHCR)와 별도로 팔레스타인 난민만 맡는 기구다. 1949년 설립돼 2020년 예산이 8억6000만 달러에 이르며, 주로 팔레스타인 난민들인 3만 명의 직원이 일한다. 이스라엘 건국과 유지 과정에서 생긴 팔레스타인 난민을 전 세계 각국이 분담금을 낸 유엔이 먹여 살리는 셈이다.

요르단은 팔레스타인 난민뿐 아니라 국경을 맞댄 시라아에서 내란으로 발생한 난민 중 140만 명을 수용하고 있다. 공식 등록된 난민은 65만 명이지만 2015년 인구 센서스에서만 126만 명이 파악됐으며 지금은 140만 정도로 추산된다. 364만 명의 시리아 난민을 수용한 터키에 이어 둘째로 많다.

이뿐만 아니다. 과거 이라크 전쟁이나 내전, 이슬람국가(IS)의 모술 지역 점령 당시 발생한 이라크 난민도 상당수가 다녀갔다. 120만 명 정도가 왔다가 지금은 거의 귀국한 상황이다. 다만 귀국해서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많은 이라크의 칼데아 기독교도 2000여 명은 요르단에 정착했다.

요르단은 종교적 도그마가 비교적 적고, 왕실이 무슬림형제단 등 이슬람주의자들을 막아주면서 중동에서 인도주의적인 피난지로 자리 잡고 있다. 문화적으로 구분할 수 없는 팔레스타인 난민, 전란으로 인한 시리아와 이라크 난민에 이어 종교적 박해를 피해 정착한 이라크 기독교도 난민까지 자유와 안전을 찾아 이주하는 등 수많은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되고 있다. 요르단은 중동의 ‘수도’로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서방이 요르단에 주목하는 이유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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